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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푸른 벚나무
시메노 나기 지음, 김지연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5월
평점 :
그해 푸른 벚나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마침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때가 벚꽃이 마악 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며 지기 시작하고 떨어진 꽃에 이어서 잎이 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전에는 벚꽃 하면 산벚나무를 가리켰다. 그러나 요즘 벚꽃 축제의 주인공은 왕벚나무다. 왕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특성이 있다. 꽃이 일제히 피고 성장도 빨라서 꽃놀이를 즐기기 좋아,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잔뜩 심었다, (7쪽)
소설의 시작이다. 그런 대목을 읽으며 주변에 잔뜩 심겨진 벚꽃을 보러 갔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다.
화자(話者)는 산벚나무
이 소설의 주인공, 화자가 바로 맨 앞에 등장하는 산벚나무다.
산벚나무 한 그루가 일인칭 화자가 되어, 심겨져 있는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 체리 블라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체리 블라썸이란 카페는 모녀 3대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맨처음 할머니가 호텔을 운영했고, 그 다음 어머니는 호텔을 양식 레스토랑으로 바꾸어 운영했다. 이제 마악 30살이 된 히오는 그런 할머니, 어머니를 이어서 이제는 레스토랑에서 카페로 바꾸어 운영중이다.
그런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우리의 화자 산벚나무가 이야기해주는 게 이 소설이다.
작가는 벚꽃나무로 하여금 그 나무가 있는 카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하게 한다.
산벚나무의 이동법
그러면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가 보는 것이 너무 제한적이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었는데, 작가는 신기한 방법으로 나무로 하여금 시야를 넓혀준다,
시야를 넓혀 다른 이야기도 전하려면 불가불 나무가 움직여야 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이렇게 한다.
자주 드나들며 카페에 꽃을 장식해주는 꽃집 주인 미야코가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하는 날이다.
미야코가 이사하는 날에는 잠시 장맛비가 그쳐 쾌청했다. 히오는 가게 문을 잠시 닫고 이사를 도우러 갔다. (62쪽)
여기까지 읽고 잠시 멈추었다.
자, 그러면 카페 앞마당에 심겨져 있는 산벚나무 화자는 그 사정을 카페 주인인 히오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수밖에 없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니까.
히오가 이사하는 미야코의 새집으로 갔다가 와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사를 어떻게 했다. 새로 이사한 곳이 어떻더라.....는 식으로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데, 작가는 그 장면을 이렇게 이어간다.
나도 히오의 가방 안에 잎을 한 장 떨어뜨려 따라갔다. (62쪽)
우와, 이 문장을 읽으면서, 무릎을 쳤다. 작가의 기지가 보통이 아니다. 이런 수가 있구나.
그런데 신기한 게 말이다. 이 문장을 읽고나서의 일이다.
이 책을 읽은 다음날 아침 차를 타고 가려는데, 내 차 앞유리에 빨간 꽃잎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꽃잎을 보면서 이 책의 그 문장이 떠올랐다.
혹시 어떤 나무가 내가 가는 곳이 궁금해서 저 꽃잎을 떨어뜨려 놓은 것이 아닐까?
해서 사진을 찍어 놓았다. 다녀와서 살펴보니, 그 꽃잎은 차가 달리는 바람에 날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여튼 그 문장은 앞으로도 차를 타고 갈 때마다 기억이 날 것같다.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
카페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잔잔하게 진행된다.
등장하는 인물 각자에게 작가는 개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어간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사람씩 살펴보는 것도 소설을 읽어가는 재미다.
독자들도 그 부분 놓치지 말기를, 해서 이 부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음미하며 읽어보고 싶은 글들
사람은 지는 벚꽃을 보며 끝이 정해져 있는 인생을 돌아본다. (43쪽)
벚꽃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 에서 1m 사이라고 한다.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가 눈이 내리는 속도와 거의 같아서 하나후부키 라는 표현이 생겼다. (49쪽)
- 하나후부키 (벚꽃 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린다.는 뜻)
우리는 그런 경우를 꽃비라 부르는데, 일본 식 표현은 눈을 사용한다.
보리는 봄에 익는다. 그래서 보릿가을이라 부른다. 보리로서는 지금이 가을이라서.
모두가 여름을 향해 갈 때 가을을 맞이하는 식물이 있다니 멋있지 않아? (58쪽)
이런 사실에서 작가는 다시 철학을 보여준다.
모두가 신록을 향해 나아갈 때 보리는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맞이한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이의 정답을 쫓아갈 필요도 없다. (104쪽)
일본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는데
이런 속담 기억해두자.
“벚나무 자르는 바보, 매화나무 자르지 않는 바보”
의미하는 바는?
벚나무는 가지를 치면 자른 부분이 썩기 쉽다. 그러므로 가지를 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반면 매화나무는 가지치기를 게을리 하면 꽃이 안 예쁘게 열린다. 그러니 나무를 관리하는 방법을 틀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117쪽)
이 속담을 소개하는 작가의 속셈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히오와 미야코의 이런 대화를 듣게 된다.
히오가 다시 내게로 눈길을 돌리고 손으로 가지 끝을 쓰다듬었다.
“저기, 미야코 씨, 이거 어떻게 보여요?”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를 이어나가는가 싶더니 이윽고 미야코가 “그럼 요시이 씨에게 부탁해볼게” 하며 내가 모르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요.”
대화를 마치고 히오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156쪽)
그 벚꽃나무는 무려 100년이 넘었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 나무.
그 나무의 독백, 인생에 대한 회고조의 독백을 들어보자.
히오가 자신의 가지를 만지며 건넨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투다.
나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이곳에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봤다ㅣ 그렇기에 지난날을 떠올리며 아련히 추억에 젖어 들게 된다. 겨울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을까.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까지 아는 살아있을까. (189쪽)
그러니까 100년 넘은 나무, 이제 이 땅에서 사라질까봐 걱정을 하는 것이다.
자, 운명의 날이 왔다.
그 날 아침,
요시이라는 이름의 나이든 정원사가 어깨에 메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내 줄기를 꽉 움켜쥔 그의 거친 손은 늙고 굵은 내 줄기와 닮았다. 숙련된 기술자 특유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나무가 이 손을 거쳤을까 생각하다가 이 사람이라면 내 운명을 맡겨도 괜찮겠다고, 내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사람이 이 정원사여서 다행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204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은 <그해 푸른 벚나무>이다.
제목에 ‘그해’라는 말이 들어있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어느 한때 있었던 벚나무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데 작가는 그런 제목을 잡았으면서 아까 소개한 것과 같은 일본 속담을 알려준다.
그 속담은 여간해선 벚꽃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왜 작가는 그 나무에게 정원사를 보낸 것일까?
그런 것을 연관해서 생각해본다면, 카페 체리 블라썸의 마당에 있던 그 나무는 정원사의 손에 의해 잘라져버린 것일까? 그래서 ‘그해’의 푸른 벚나무가 된 것일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