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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서양 고전 - 슈퍼히어로물의 원형, 수천 년 서양문명의 기원을 단숨에 파헤치는
안계환 지음 / 나무발전소 / 2024년 6월
평점 :
최소한의 서양 고전
이 책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도로 알아야 할 서양 고전을 정리해 놓았다.
요즘 문화라 함은 동양의 고전도 물론 알아야 하지만, 문화 영역에서 서양 고전의 위치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그 비중이 대단히 높다.
하지만 고전이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막연하고 다양해서, 어느 부분까지 알아야 하느냐에 대한 답변,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신화 고전
역사 고전
종교 고전
이렇게 정리된 항목을 보니, 우리가 알아야 할, 읽어야 할 서양 고전이 어떤 것인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화 고전 ;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신들의 계보>, <아폴로도로스 신화집>, <아이네이스>, <변신 이야기>
역사 고전 :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아바나시스>, <알렉산드로스 원정기>, <리비우스의 로마사>, <갈리아 전쟁기>
종교 고전 : 기독교 또는 유대교의 성경, 이슬람의 <꾸란>
이 정도가 저자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서양 고전이다.
해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 최소한도로 알아야 할, 그러기 위해 읽어야할 책들을 최소한도로 정리해놓았다. 그중 몇 가지 기록해 둔다.
그리스 인들에게 신은 어떤 존재였는가?
신이 만든 세상에서 인간은 언제나 신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헬라인은 생각했다. (34쪽)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항상 궁금한 게 바로 이점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신화를 받아들였을까?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헤시오도스의 인간 역사 시대 구분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 (57쪽)
그리스 신화와 현재의 지명을 연결해서 읽어보자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오늘날의 그리스 공화국 영역에서 일어난 일로 착각하기 쉽다. 모든 일들이 아테네와 그 주변에서만 일어난 일로 생각하기 쉬운데, 지도를 놓고 일어난 사건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는 헬라인이 활약했던 동서 지중해 전역과 흑해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55쪽)
해서 이 책에 언급된 그리스 신화의 사건들과 현재의 지명을 찾아, 정리해 본다.
프로메테우스 : 지금의 조지아, 카프카즈 산맥 언덕에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고 있다.
북아프리카 서쪽 끝의 아틀라스 산맥은 티탄이었던 아틀라스가 벌을 받고 있다.
오늘날 튀르키예 -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모셔졌던 곳이 튀르키예 서부 해안지역을 의미하는 이오니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거품에서 태어난 곳은 키프로스 섬.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이야기가 전개된 지역은 에게 해와 지중해 동쪽.
호메로스의 탄생지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3대 도시인 이즈미르.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도 헬라스의 도시가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많이 등장한다.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스킬라와 카립디스의 경우, 오늘날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인 메시나 해협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전해진다. (36쪽)
오디세우스가 귀향 도중에 만나 고생했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그 괴물과 관련된 지명이 있다. 즉,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를 잡기 위해 던졌던 바위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시칠리아 동부에 있는 아치레알레. (33쪽)
이를 다른 책의 기록으로 보완해 본다.
카타니아 해안선을 따라가면 아치트레차(Acitrezza)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앞바다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솟아나 있다.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가 던진 바위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의 이주에 폭력으로 대응했던 시칠리아 원주민들의 모습이 폴리페모스 신화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칠리아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김상근, 40쪽)
칼립소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은 몰타섬이다. (37쪽)
지명과 관련해, 세이렌의 정체에 관한 저자의 추론을 소개한다. (35쪽)
고대의 배들은 먼 바다가 아니라 주로 해안선을 따라서 이동했다. 현재의 이탈리아 나폴리 부근은 해안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잘못 항해하면 암초나 절벽에 부딪혀 난파하기 좋은 곳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배들이 난파당한 사건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선원들이 세이렌의 노랫소리 때문이었다고 변명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지역 도시 이름에 세이렌에서 파생한 듯한 이름이 많이 보인다.
살레, 소렌토, 살레르노.
그리스 신화 중 저승에 다녀온 사람들
그리스 신화를 읽다보면 저승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여기 그런 사람들을 정리해 보았다.
오디세우스 : 마녀 키르케의 권유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40쪽)
오르페우스 :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려오기 위해 (96쪽)
페르세포네 : 하데스에게 납치되었다가 지상으로, 다시 저승으로. (90쪽)
헤라클레스 : 12 과업중 하나,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데려오기 위해 (78쪽)
디오니소스 : 어머니 세멜레를 구하기 위해 (39쪽)
아이네이아스 ; 미래를 알기 위해 (83쪽)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에르 (95쪽)
아스클레피오스 : 저승에 다녀와 의료의 신이 되었다. (39쪽)
헤라클레스와 황소 (76쪽)
뜻밖에 헤라클레스와 황소의 인연(?)이 많다.
그리스 신화에서 황소는 첫 번째로 에우로페를 납치하여 크레테로 데려온 황소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크레테의 왕비 파시파에와 관련된 황소가 있다.
파시파에는 황소와 관계하여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12과업 중에 하나가 바로 두 번째 해당하는 황소와 관련이 있다.
그 황소가 세상을 골치 아프게 하자, 헤라클레스가 크레테로 가서 그 황소를 잡아 죽인다. 그게 일곱 번째 과업이다.
이런 것 알게 된다.
지중해 맑고 깨끗한 이유를 아시나요?
유럽 여행을 하면서 지중해의 맑고 깨끗한 물에 감탄한다. 어떤 바다는 푸른빛을 띠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비릿한 바다 내음도 거의 없다.
그 이유는 ?
바다가 맑고 냄새가 없는 것은 플랑크톤과 어류, 해조류가 적기 때문이다. 어류와 해조류는 왜 적을까? 바다에 무기물과 유기물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를 바다에 공급하는 땅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59쪽)
멜리안 대화 (the Melian Dialogue)
“정의는 힘 있는 자가 정의하는 것이며,
약자는 힘 있는 자가 만든 정의에 순응할 때 행복과 안정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답을 아테네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멜리안 대화(the Melian Dialogue)로 부르는 이 장면은 후대인들에게 국제 정치와 권력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 (122쪽)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는 로마의 시조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강을 흘러가다가 마른 땅에 머물게 된 두 아들(로물로스와 레무스 형제)을 늑대가 발견해 젖을 물렸다. 목축업자인 파우스툴루스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아내 라우렌티아에게 건네주며 양육하게 했다. (149쪽)
그 뒤에 덧붙여진 기록이 의미 심장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의 근원을 다음 사실에서 찾고 있다.
즉 라우렌티아는 평범한 창녀였는데 당시 목동들에 의해 늑대라고 불렸다고 한다.
인신 공양에서 벗어나 동물을 제물로 바치게 된 사건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 명령에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아들을 잡아 제물로 바치려고 하는데, 그때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만류하고 대신 그 옆에 미리 준비한 동물을 바치라고 한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이때부터 인간 대신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번제물로 바친다는 개념은 예수가 자기 몸을 제물로 인간의 죄를 씻는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이기도 하죠. (203쪽)
시오노 나나미에 대하여 (153쪽)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이런 기록, 의미있다.
지식인중, 특히 역사가들 중에 로마인 이야기를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픽션에 가까워 역사서라고 볼 수 없으며 심지어는 읽지 마라고 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책을 역사서라 주장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역사 스토리텔러’라고 불리는 것을 즐긴다.
다시, 이 책은?
여기 등장하는 책들은 문화를 이해하려면, 모두 섭렵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리비우스의 로마사>, <갈리아 전쟁기>를 손에 넣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읽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전문가 말고 나 같은 일반 독자 말이다.
해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 최소한도로 알아야 할, 그러기 위해 읽어야할 책들을 최소한도로 정리해놓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문화의 내용을 실제 고전에서는 뭐라고 말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찾아보고, 그러다 진짜로 읽고 싶은 고전이 있다면 그때 한 권씩 꺼내 읽으시면 됩니다. (7쪽)
그런 저자의 말, 권면을 받아들여 고전 책들 꺼내기 전에 우선 이 책으로 최소한의 서양 고전, 읽기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한 권으로 서양 문화를 정리할 수 있는, 가치와 의미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