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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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읽다가 몸살 나겠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 경우처럼 몸살을 앓았던 적이 없었다. 몸살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웬 몸살? 다름이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읽다가 멈추고 그 소설들이 기초하고 있는 배경들, 등장인물들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몸살이 났다는 이야기다. 사실적인 사건에 덧붙여져 교묘하게 진화하는 이야기. 허구임이 분명한데도 그것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를 알고 싶어지는 몸살 말이다. 그런 몸살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앓았다.

(, 여기에서 몸살() 나다는 말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못 견디다라는 의미의 관형구이니, 오해 없기를!)

 

그래서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읽기를 잠간 멈추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나 자신을 확인하고, 바로 베르베르를 떠올렸다. 그게 바로 베르베르의 경지가 아닌가? 이런 몸살은 첫 장부터 시작한다. ‘정말 서울시장 집무실에 깔려 있던 헤리트 카페트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개들의 사생활>에서는 어떤가? 자료를 검색해 보니, 프리온과 스탠리 푸르시너(191)는 실재하는 물질이고 인물이었다.

 

< 프리온(prion)1982년 미국 생리학자 스탠리 프루시너가 `단백질성'(proteinacious)`감염성'(intectious)을 조합해서 `감염성 단백질'이라는 뜻으로 만든 용어다. 프루시너에게 노벨상을 안겨줄 정도로 획기적인 특성을 가진 프리온이 우리에게는 고약한 광우병 발병 요인으로만 인식이 돼버렸다.>

(인터넷 자료 중 일부)

 

그리고 그것에 기반하여 이어지는 스토리, 과연 어디까지가 소설? 그런 흡입요소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느 멋진 날>에서의 샤론 전 총리, 자극과 소리에 반응했다’(218)는 어떤가? 그건 사실이다. 그러면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실? 아니다. 그렇게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 기억투쟁 - 당신의 기억은 안녕하십니까?

 

<라면의 황제>, 이것은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 사람의 기억이 덧없음을 그려낸 책이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일반화의 오류에 속아 넘어가는가,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한 비논리적 프로파간다에 바보처럼 속아 넘어가는가를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냉철하게 비판한 것이다.

 

일인당 라면 소비량이 많은 지역일수록 거주자의 월평균소득이 감소한다'(80)는 본말전도식의 결론에 소설 속의 사람들은 깜박 속아 넘어가지 않았는가?

그러니 소설 밖에서도, 급기야는 현대 사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의 주범으로 라면이 몰리듯이(80) 우리도 누군가를 (전혀 본질과는 관련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몰아) 마녀사냥하지 않았던가?

 

그러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세상의 모든 영수증’(94)을 간직한 박모 노인처럼 그렇게 영수증이라도 모아야 하나?

아니면 <교육의 탄생>에 등장하는 것처럼 오길훈이란 일개인의 우연한 자료 발견(46)에 기대어야 하나?

 

이 책은 그런 오류에 빠져 애먼 사람을 잡아버리는 그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경고이며,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심각하게 그러한 풍조에 대항하여 기억투쟁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3. 개념있는 주제의식

 

<교육의 탄생><어느 멋진 날>에서는 저자가 얼마만큼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을 비평가인 백지연은 개념있는 주제의식’(316)이라 부른다.

 

먼저 저자는 그 것을 소설화하기 위해 음모론이란 도구를 꺼내든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모든 학생들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을 저자는 텔레파시 신호를 보내는 진언으로 음모론의 얼개를 짠다.

그렇게 소리내어 - 마치 진언처럼 - 외우면 그것이 우리 뇌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헌장을 열심히 외우면 거기에서 생긴 소리의 파동이 우리 뇌에 비가역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67)

 

그런 인과관계를 감쪽같이 만들기 위하여 저자는 천재 최두식을 등장시키고, 또한 소련계 뇌신경학자 레오니드 몰로디노프를 등장시킨다.

 

그런 진언은 <개의 사생활>에는 이렇게 (엉뚱하게) 진화하기도 한다.

개를 인간보다 더 사랑하라는 궁극의 신호’ (198)

 

<가장 진화된 신호, 프리온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고 나는 이 신호들이 이미 개들에게서 발산되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198)

 

그러나 그의 주제의식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어느 멋진 날>이다.

구로경찰서 관할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파키스탄인, 물론 그 신상정보는 여권상의 신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기시감을 느끼게 되며, 그래서 이야기는 저자의 상상력에 힘입어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스라엘의 전 총리,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샤론 총리의 무의식에 침투하여 전쟁의 참화를 알려주려 한다. 무의식에 침투한다니? 그게 바로 <교육의 탄생>에 등장하는 레오니드 몰로디노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물론 이번에도 그는 본명으로 행세하지 않는다.

 

<이븐 알 하둔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전공에 이슬람 신비주의를 결합하여 사람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방법을 만들어냈고, 그걸 테러에 이용하기로 마음 먹은 사악한 인간이다.> (222)

 

이븐 알 하둔이 바로 최두식에게 무의식에 관한 지식을 알려준 레오니드 몰로디노프이다.

그를 매개로 하여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은 시공을 건너 서울에서도 일어난다. 그것을 암시하는 말이 바로 기시감이다.

 

<기시감 :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나 처음 본 인물, 광경들이 이전에 언젠가 경험하였거나 보앗던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246)

 

<어느 멋진 날>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피를 동반한 사건은 그 장소를 서울로 옮겨 일어난다. 기시감이 서울과 이스라엘 사이, 그 천리길을 연결해주는 열쇠다. 그래서 이스라엘, 또는 팔레스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단순히 거기에서만, 그 때에만벌어지는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 저자는? 상상력의 여왕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그런 상상력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마 이런 기록은 저자에게 해당하는 말일게다.

 

<‘소설이라는 말은 얼마나 신비로운지. 그는 속으로 그 낯설고도 생소한 단어를 발음해보며 대답했다. “난 단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길 공책에 적었을 뿐인데요. 그냥, 이런 세상도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예요.>(225)

 

그런 상상력이 독자인 나를 즐겁게 한다. 이 세상 일들은,그러고 보면 연관되지 않은 일이 어디 하나라도 있던가? 그런 연관이 비록 지금 보기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어보인다 할지라도 속으로는 마치 용암처럼 지구 저 밑에서 서로 구렁이처럼 서로 얽혀 있을지 누가 아는가? 김희선의 이 소설집은 바로 그러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이런 표현으로 그 얽혀있음을 묘사한다.

<그건, 우리 모두가 세상의 기저에선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야.>(242)

 

덧붙여, 저자는 어떤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엔, 천재적인 직관이 필요하다’(189) 했는데,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저자는 그 연관성을 찾아내는데 천재적인 상상력으로 연관성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보라! 미우주국 나사에서 일하던 소련계 레오니드 몰로디노프가 이스라엘 샤론 총리의 무의식에 침투하여 장미꽃 한송이를 흔든 그 의사(232, 238)인줄 누가 알겠는가? 저자는 그렇게 우리 허를 찌르는 그럴싸한 상상력으로 베르베르의 경지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5. ‘비틀기의 여왕

 

더하여 그는 유쾌하게 비틀기도 잘한다. 비틀고 꼬집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김난도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이렇게 비틀어 놓는다.

<그러니 여러분,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한국의 속담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뭐라더라, 거 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명언도 있지 않습니까?> (271)

 

작은 마을에 대형마트, 우리 보기에는 일상화된 건물이며 사건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다. 누구 눈에?

<“얼마 전 새로 생긴 쇼핑몰이죠. 이 나라에선 저런 곳을 대형마트라 하더군요.

신기하군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저렇게 큰 쇼핑몰이라니요”>( 293)

 

외국인에게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저렇게 큰 쇼핑몰은 신기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신기하다는 것이 과연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말일까?

 

6.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그래서 <라면의 황제>를 읽고난 나는, 정색하고 말한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열광한 게 분명 한국의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도 열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독서계에도 사대주의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같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실과 허구를 그토록 맛깔스럽게 요리하여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베르베르에 필적할만한 글인데, 왜 외국인이 쓴 것이라면 그토록 오매불망하고 한국인이 쓴 책은 백안시하는가? 그런 태도는 바람직한 독서인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의 구독 내지 판매 여부가 우리 문화계가 여전히 문화적 사대주의에 젖어있는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평가를 받아 마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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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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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이 책의 몇 갈래 흐름

 

<왕의 한의학>을 읽었다. 실상 이번 종이책으로 읽으니, 이 책을 두 번째 읽는 셈이다. 전에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통하여 이상곤의 글을 접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은 맛이 다른 법! 이제 다시한번 읽으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 책에 흐르는 두 갈래 큰 줄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한 줄기는 한의학에 관한 내용이다.

다른 한 줄기는 <왕의 한의학>이라 저자가 이름붙인 재료를 통하여 조선의 역사를 다시한번 - 다른 시각으로 -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살펴볼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조선 왕의 몸은 당대 조선의 시대정신과 과학, 그리고 제도와 정치가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8)

<왕의 몸은 조선 왕조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8)

<왕의 한의학을 통하여 왕의 몸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 올릴 수 있다.> (9)

 

바로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보여주는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 그래서 저자의 인도를 따라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거머리 요법 - 기침법(蜞針法)

 

그럼 먼저 한의학에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자. 이 책 48쪽과 124쪽을 보면 거머리 요법이 등장한다.

거머리를 가지고 무슨 치료를?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나쁜 피를 거머리가 빨아먹게 하는 방법으로 종기를 치료했다.(124) 문종이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거머리를 사용하여 효과를 보았다. (49) 거머리를 사용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것을 동의보감에서는 기침법(蜞針法)이라 불렀는데, 다음과 같이 치료를 한다.

“ .... 종기의 꼭대기에.......그 속에 거머리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다음 찬물을 자주 부어 넣으면 피와 고름을 빨아먹는다. 그러면 헌데가 생긴 곳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허옇게 된다.”(49)

 

그런 거머리 요법을 사용하고 있었길래, 다음과 같은 소설속의 묘사는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루 위에 달군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릴 때, 신출내기 숯장이나 풀무꾼은 불똥을 뒤집어 쓰고 화상을 입기가 십상이었다. 쥐를 잡아서 대가리와 꼬리, 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라 내고 껍질을 벗겨서 끓는 물에 고면 하얀 기름이 엉겼다. 서날쇠는 그 쥐기름을 걷어내어 불에 댄 자리에 발라 주었다.

덴 자리가 곪으면 고름자리에 거머리를 붙여서 썩은 피를 빨아낸 뒤 파를 으깨서 붙여주었다> (김훈, 남한산성, 55)

 

종기, 나라를 망하게 하다 - 종기로 죽은 왕들

 

종기는 조선왕들을 가장 괴롭힌 질병이다. (216)

그리고 그 종기로 인한 죽음이 그 뒤의 역사를 바꾼 안타까운 경우가 되었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다.

문종의 경우, 종기로 고생하다가 일찍 죽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빌미를 제공하였고, 효종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혈요법을 쓰다가 지혈이 되지 않아 죽는 바람에 북벌의 꿈은 사라졌다. 정조 역시 종기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의 멸망이 가속화되었으니, 어찌 보면 종기가 나라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흉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6)

 

조선 왕들에게 사랑받은 약들

 

213쪽 이하에 보면 조선의 왕들이 마음의 안정에 효험있는 약들을 찾았는데 그 중 사랑받은 약들이 어떤 것들인지, 망라되어 있다.

우황첨심원부터 우황고, 저두환 등등 많은 약들이 조선 임금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런 약들이 사랑받은 이유가 안타깝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바로 왕들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런 약들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한의학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 한 기록들, 또한 많은 사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인조가 만약 자신의 건강을 이형익에게 맡기지 않고, 저주 타령에 빠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소현세자가 번침 같은 잘못된 처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처방을 받고 치료되었다면 어땠을까? 소현세자는 새로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않았을까?>(212)

 

저자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토로한 글이다. 과연 그의 말처럼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았더라면, 그래서 그가 인조 다음의 왕위를 물려받고 임금이 되었더라면?

분명 우리나라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으리라. 심양과 북경에서 강성한 청과 서양의 문물을 보고 배운 소현세자는 무언가 다른 눈을 가지고 국정에 임했으리라. 그렇다면? 분명 조선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 역시 다른 모습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왜 소현세자는 그러지 못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저주 타령에 빠진 인조의 무능과 돌팔이 의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만은 분명하다.> (209)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나라가 잘 못 흘러간 것이 아쉬워서 그 소회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어디 소현세자뿐이랴?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조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조선을 개조하겠다는 의지로 정약용들 실학파들을 중용하던 개혁군주 정조도 허망하게 약화사고(350)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의 개혁정치는 끝이 나고 그 뒤로 조선이란 나라는 멸망을 앞에 두고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성리학의 문제점

 

더하여 이 책을 통하여 유교와 성리학이 조선시대에서 노출한 한계를 알 수 있다먼저 성리학이 어떤 것인지 정의부터 하고 들어가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학이 공자를 조종으로 하여 국가와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했다면, 성리학은 주자를 조종으로 하여 태어난 마음을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141)

 

그래서 유학과 성리학은 안팎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한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왕의 질병이 생기면, 성리학자 대신들이 그 치료에 참여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어떻게 그런 제도가 가능했을?

 

<조선 시대에는 문과 출신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상당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자 말하길, “효자는 의약에 대하여 알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식이 의약 지식이 있어야 어버이가 오래오래 목숨을 부지하며 살수 있다는 의미이다.>(이덕일, <조선왕 독살사건> 1, 22)

 

그래서 성리학자인 대신들이 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를 감독하는 위치에서 임금의 치료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용인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바로 문제가 있었으니, “왕의 진료와 치료에 참여한 성리학자 대신들은 거시적 총론에는 강했지만, 미시적 각론에서는 예리한 기술적 진보에 걸림돌이 되기 일쑤였다”(10)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의원 대신에 참여한 대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자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이불상(哀而不傷)의 가르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논어 팔일편(八佾篇)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關雎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번역하자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첫 번째 편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낙이불음(樂而不淫) 즉 즐기되 빠지지 말고, 애이불상(哀而不傷) 즉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하였다.

 

그러니 애사를 당하였을 때 공자말씀을 따른다면, 슬퍼하는 마음을 허용하되 그 슬픔이 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자말씀을 금과옥조로 삼는 조선시대에 그 가르침을 잘 지켜졌을까? 이 책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왕들은 대부분 즉위하면서부터 국상을 치르다가 건강에 타격을 입는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면 조선의 모든 왕들은 선대왕의 국상을 치르는 것으로 정사를 시작했고 건강을 망쳤다. 충효가 국가 운영의 근본 가치였던만큼 임금은 상사에 있어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선대왕의 장례절차가 새 왕의 몸을 해칠만큼 복잡하고 힘들었다는 점이다. (227)

 

따라서 이런 국상 때문에 몸을 상한 왕이 한 둘이 아니다. 인종도 그 중의 한명이다인종이 세상을 뜬 것은 지나친 효도가 스스로의 몸을 끊은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144) 중종의 국상 때에 몸을 지나치게 상한 것이다. (142)

 

문종은 어떤가? 부왕인 세종이 병환이 나자 근심하고 애를 써서 그것이 병이 되었으며 상사를 당해서는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싹 야위었다, 고 실록은 전한다. (42)

 

, 조선의 왕들은 애이불상이란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라를 위란지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다시 결론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던 그 목적은 이 책 안에서 충분히 이루어졌다. 나 또한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여준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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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이야기
장회익 지음 / 현암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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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이야기 -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가 재미있다. 더하여 그가 했다는 공부도 재미있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져들면서 공부도 재미있게 하는 셈이다.

 

어떤 공부?

그가 전공했다는 물리학에 대한 매력을 담뿍 느끼며 또한 깨달음에 대한 과정을 마치 공부하듯 차근차근 해 나가는 재미, 이게 바로 책을 읽는 기쁨이 아닌가 싶다.

 

먼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이 책의 줄기가 잡힌다.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또 하나는 창고에 갇힌 도둑이야기이다.

 

아인슈타인의 생애는 저자의 생애와 오버랩되며 저자가 자기 생의 고비고비마다 비교하며 따라간 멘토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생애는 많이 알려져 있기에 여기에서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도둑이야기는 조금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앎을 훔쳐내는 학문 도둑

 

도둑 이야기는 강희맹(姜希孟)이 쓴 도자설(盜子說)에 나오는 것으로, 저자가 공부 도둑이라 자칭하며 자기 생에서 공부를 마치 부잣집 곳간에 들어간 도둑처럼 금은보화 같은 공부를 빼내어 온 것을 비유하는 아주 적합한 비유이자,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여기 등장하는 도둑 이야기는 강희맹이 아들을 훈계하기 위해 쓴 '훈자오설(訓子五說)'중 하나로, 아들에게 스스로 터득하는 '자득(自得)'이 학문 연구에서도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해 지극히 천하고 몹쓸 짓을 하는 도둑의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다. (도둑 이야기 http://blog.yes24.com/document/7903939)

 

아버지 도둑이 아들 도둑에게 스스로 지혜를 깨우치도록 하기위해 일부러 아들을 창고에 가두는 이야기를 '발단- 전개- 위기- 결말'의 서사적 구성 방식을 취하여 아들에게 훈계하고자 하는 내용을 뒤에 제시하고 있다. 강희맹은 도둑의 도()에도 '자득(自得)'이 있듯이 학문의 도() 역시 자득(自得)이 있어야 천하에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그래서 도둑 이야기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자득의 원리는 장회익 교수의 학문 방법을 그대로 말해주는 아주 적절한 비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자득의 이치를 여러 군데에서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나는 이 기간 동안 혼자 공부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스스로 체득했고, 이후 이 것이 내 일생의 공부방식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내가 수시로 미지의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공부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대학 교육을 통한 수동적 학업에 지치고 질린 나머지 학업을 거의 포기할 상황에서 나 홀로 몇 년간 공부에 몰두 할 수 있었던 것이 평생의 학문적 자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412)

 

<공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다. 이미 초판을 낼 때도 내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그간 칠팔 년이 경과하면서 공부가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다른 하나는 공부에는 오로지 앎의 깊이를 더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더 아름다운 삶, 더 즐거운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내 최근의 생각이다.>(5-6)

 

<나는 나 자신을 공부꾼이라고도 했고 때로는 앎을 훔쳐내는 학문도둑이라고도 했다. 그저 앎을 즐기고 앎과 함께 뛰노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이 과정 자체를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기로 했다. 혹시 이러한 앎의 유희에 흥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공감하는 바를 넓혀보자는 것이 취지라고 할 수 있다.>(9)

 

깨달음 이란 무엇인가?

 

이해의 새 지평이 열리는 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부에 관한 이야기만큼 더 의미있는 것이 바로 그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그는 어떤 스님을 방문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201) 그런데 그 스님 방에 들어가니 탁자 위에 지구의가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이 지구의는 나중에 커다란 깨달음의 소재가 된다. (‘지구인의 눈우주인의 눈’ - 343) 그러나 그 때는 그 지구의에 대하여 묻지 못하고 그저 깨달음을 얻는 방법만을 물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돈오와 점오에 관한 경험을 하고 - 그저 듣고 오는 경험?- 돌아 온다.

돈오(頓悟)란 그 스님의 표현에 따르면 즉석에서 깨닫는 것이고, 점오(漸悟)조금씩 학습해 가면서 깨닫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해의 틀과 그 틀 안에 넣어야 할 이해의 내용을 말해주고 있으며, ‘관념의 틀관심의 폭패러다임의 전환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깨달음의 정의를 이렇게 표현한다.

<작은 돈오로 구성되는 하나의 큰 점오>가 바로 깨달음이다. (207)

그러기 위해서는 물음이 필요한데, 그 물음은 꼭 명시적으로 질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 구석 그 어딘가 답답함을 느끼거나 찜찜함을 느끼는 형태로 오기도 한다. (207)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어떤 현상을 대할 때에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으니, 그것도 하나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종교에 대한 의미있는 성찰

 

공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의외로 종교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특색 중 하나이다. 각 마당마다 거의 한 꼭지씩 담아 놓았다.

셋째 마당의 교회에서는 왜 질문을 안받나’, 넷째 마당의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나’, 다섯째 마당 성경이 과연 하느님 말씀인가’, 여섯째 마당 스님 방에서 받은 깨달음 수업’, 아홉째 마당의 인간의 도등이다

 

이중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나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게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내가 이 시험 - 서울대학교 입학시험 - 과 관련하여 하느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릴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내가 합격하면 누구 하나가 떨어져야 하는데 나를 붙여 달라는 것은 누구 하나를 떨어뜨려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가 아닌가?> (147)

 

여기서 잠깐! 독자들 중에 위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그런 고민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았다.

< 결국 나는 공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길밖에 없었다.>(147)

 

어떤가? 그런 기도가 적절한가?

이런 기도를 드린 후에 결국 그는 원하던 학교에 합격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다른 결론에 다다른다. 

다른 경우에서 발생한 일인데,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지 않고 그가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경우도 그렇게 - 공정하게 해달라고 - 기도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어떻게?

 

공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에, "내가 적합한 사람이라면 시험과정에서 실수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283)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게 더 인간적인 기도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끝으로 읽어야 할 대목은 410쪽 이하의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이다.

뉴턴은 자기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이는 그자신보다 한 세대 앞섰던 데카르트의 선구적 방법론에 힘입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414) 고 말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다. “ 그러나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익힌 사람이 뉴턴만은 아니었을진대, 오직 그만이 멀리 보게 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스스로의 공백기간을 통해 마련된 자기만의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기 어깨위에 올라설 수 있었기에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414)

 

그래서 그렇게 할 때에 시야가 하루 하루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요체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하여 그는 평생을 걸려 공부했고, 공부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기억해 두고 싶은 말들

 

<아침에 도를 깨닫고 낮에 이를 적어 놓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403)

 

<학문의 본령을 터득한 학자가 학문 전체의 내용을 재음미 해가면서 그 안에 가장 본질적인 내용을 추려내고 이것을 다시 일반 지식인들이 함께 깨우쳐내게 하는 매우 적절한 방식을 강구해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오직 이를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전유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407)

 

<‘앎 중심학문이 식품의 생산에 해당한다면 삶 중심학문은 음식의 마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상황은 엄청나게 많은 식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이를 적절히 선택하고 배합하여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줄 요리사가 부족한 실정이라 할 수 있다.> (408)

 

저자의 선조인 '장현광'의 우주설(宇宙說) - 303쪽 이하

 

'동굴의 비유'(367)

이 비유는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의 비유가 아니다. 저자의 독창적인 생각이 녹아 있는 신선한 비유인데, 이 부분 독자들이 읽어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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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한방처방 - 이해하기 쉽다 외우기 간편하다 간단한방 시리즈
니미 마사노리 지음, 권승원 옮김 / 청홍(지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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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산()과 환()을 구분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는 방법, 두 가지

 

이 책은 두 갈래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그저 상식을 추가한다는 생각으로, !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한방에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 취할 방법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한방을 직접 따라해 보는 방법이다. 그래서 여기 처방(?)대로 한약재를 이용하여 직접 해 보는 방법이다.

 

나는 한방에 대한 기초적 지식조차 없었던 관계로 첫 번째 방향으로 잡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정말 말 그대로 많은 지식을 얻었다. 아니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나에게는 상식조차 부족했던지라 그런 부족을 메워줄 수 있는 많은 상식적인 사항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흡족하게 받아 들였다.

 

()과 산()과 환()을 구분할 수 있느뇨?

 

이제 나의 지식은 하나 더 늘게 된다. 바로 탕()과 산()과 환()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약들을 먹고 산다. 비단 몸이 불편할 때만이 아니라, 그저 어떤 습관에 의해서 약을 복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규칙이 존재하지만, 웬만한 증상쯤은 각자 진단하고 약을 사 - 買- 복용하고 있다. 나의 경우만 해도 배가 아프다 싶으면 정로환(正露丸)을 몇 알 먹는다. ‘OO ’, ‘XX 을 마시기도 한다. 때로는 △△ 을 먹기도 한다.

그렇게 탕, , 환이라 이름 붙은 약들을 먹고 마시는데, 실상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지레짐작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 책의 설명을 통하여 확실하게 개념을 잡게 되었다.

 

()은 달인 약, ()은 산제, ()은 벌꿀 등으로 산제(散劑)를 뭉친 환제(丸劑)를 말한다. (103좀 더 자세하게 읽어보자. 66쪽 이하에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은 달인 약, 즉 끓인 약을 의미한다. 갈근탕, 인삼탕 등이 그런 종류에 속한다. 그런데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개념이 하나 있다. 바로 음()이다. 음은 탕과 같이 만드는 방식은 똑같이 달이는 것이지만, 여러 차례 복용한다는 것이 탕과 다르다.

()은 파쇄한 생약을 벌꿀 등으로 둥글게 빚어 복용하는 방법이다. 여기 또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이다. 료는 같은 양을 파쇄하지 않고 다린 것을 말한다.

 

그렇게 이해가 되니, 이제 탕과 환, 산이 구분이 되었다. 나로서는 대단한 상식의 진보다.

 

명의의 정의가 새롭다.

 

이 책에 <퀴즈를 풀면서 한의학에 친숙해져 봅시다>라는 항목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것이 나온다. "명의(名醫)의 확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런데 그 정답이 의외다.

<처음부터 유효한 한의약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 처방이) 맞지 않다면 다음 처방을 순차적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이게 답이다.

추가 설명을 들어보자. <어떤 처방을 주고 효과가 없거나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던 것을 참고로 하여 처방을 변경해 갑니다. 명의라도 처방을 통해 진단해 가면서 보다 적절한 처방을 탐색해 나가게 되는 것이지요.>(106)

 

어찌 보면 이 말 속에 들어있는 처방 철학이 이 책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한약에 대하여 이해를 함에 있어 우리의 사고 방식을 전환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 시스템의 변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도록 하는 책이다.

 

그러한 생각의 전환을 통하여 한방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 지식을 얻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있다.

 

한약에 대한 친숙함 획득

 

서두에 말한 바와 같이 내가 애초 이 책을 읽었던 목적은 그저 한방에 관한 상식적 지식을 보충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다름 아니라, 여기 나온 바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STEP 3>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직접 한약을 복용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서양약에서는 그렇지 않다. 병도 없는데 양약을 시험삼아 복용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131)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한방에 친숙해 지는 방법으로 독자들 스스로 복용해 보는 것을 권한다. 한의약은 식재료의 연장으로 한번 복용하는 것만으로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꼭 시도를 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한약에는 우리 귀에 친숙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예컨대, 갈근탕, 십전대보탕 등이 있다.

 

그리고 이어서 각종 증상에 맞는 한약을 열거해 놓은 도표가 보인다. 각 증상별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놓아, 참고하는데 편리하게 제시해 두고 있으니, 이게 일반 사람들의 경우에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 책을 설사 첫 번째 목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할지라도, 이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이제 상식적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약에 대해 친숙해지고,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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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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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을 먼저 찍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떠올랐던 것은 회화 기법중 점묘법이었다.

점묘법이란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서, 점 또는 점과 유사한 세밀한 터치로 묘사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러니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화가가 캔버스 위에 붓으로 하나 하나 점을 찍어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내용이 짧아서일까, 아니면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 해서일까. 그러나 그 점들이 모여 캔버스 위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듯이, 이 점 같은 이야기들이 결국 모여서 장관을 연출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 이야기의 성격은 무엇일까? 저자가 말한 바, 저자의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라는 말을 믿기로 했다. 설령 그것이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개인사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를 그려내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주인공중 한 명인 민효의 이런 발언을 한번 들어보자.

<작년에 정치학과 수업을 들었거든. 교과서가 무려 8백 페이지였어. 거기에 우리에 대해서도나오더라. 우리가 세계의 모든 것인 줄 알았던 사건들이 단 한 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었어.>(486)

 

그렇게 주인공들 앞에 펼쳐졌던 세계가 단 한 페이지로 정리되는 게 바로 역사인데, 다행이 이 책은 한 페이지가 아니라 500여 페이지나 되니까, 역사책도 그렇게 상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2. 점은 선이 되고, 선은 ....

 

다시한번 말하자.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점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점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 점들은 이윽고 선이 되고, 선들은 면이 되며, 면들은 이윽고 입체가 되어 독자 앞에 드러난다. 그러니 그 점들이 혹시 띄엄띄엄하게 보일지라도 참을성을 가지고 읽어나가야 한다.

그런 이치를 소설 속 강정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빗줄기라는 표현은 틀렸어요. 빗방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한 줄기처럼 보여도 띄엄띄엄 내리지요. 실은 세상 모든게 띄엄띄엄 존재합니다.>(28)

 

그렇게 사건 하나하나가 띄엄띄엄 존재하지만, 그래서 그것이 사건들이 방울방울 이어지는 것 같고, 또 그것이 사실 맞지만, 어디 사람 눈에는 내리는 비가 빗방울로 보이나, 빗줄기로 보이듯이, 이 소설의 이야기들도 이야기가 점처럼 하나하나 그려지지만 결국에는 사건의 줄기가 보이고, 결국은 그게 바로 우리의 역사인 것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역사를 그려내고 있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와 부딪히며 갈등하는 사이에 그들이 지나가는 궤적이 점이 되고, 점은 선이 되고 이윽고 그 선들이 면을 이루어 입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3. 이 세계가 입체적으로 보이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는 하나의 암시를 심어 놓는다.

바로 주인공의 한 명인 진우의 눈 말이다. 한 쪽 눈을 잃은 진우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나?

<이제 진우의 눈은 사물들이 떠도는 세계를 영원토록 평면으로만 인식할 것이다. 진우는 입체로 구성된 세계의 한 축을 잃은 대가로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자유의 권리를 얻었다.>(474)

 

저자의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진우가 한쪽 눈을 잃은 다음에 이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두 눈이 멀쩡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저자는 진우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대가를 우리에게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진우는 한 쪽 눈을 잃은 다음에서야 이 세상을 평면으로 보게 되었는데, 당신들은 두 눈을 번연히 다 뜨고 살면서도 이 세상을 그렇게 평면으로만, 아니 면이 아니라, 단선으로만 보고 있느냐고? 이 질문은 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앞에 보여지는 이 사건을 왜 그렇게 조각 조각으로만, 점 하나로만 보느냐고!

 

4. 음수사원 (飮水思源)

 

그래서 이 소설은 모든 일의 원인을 묻는 소설이다.

저자가 주인공 태의에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공연히 읽힌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주장했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원인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483, 505)

 

저자가 이 부분을 두 번 씩이나 인용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 태의가 빨강색 점퍼를 입고 시위에 나가고, 그 시위장면이 채증사진에 찍혔고, 그 사진을 들이대며 네가 맞냐고 추궁하는 문경사에게 오리발을 내밀지 못하고, 맞다고 대답하고 결국은 그것이 진우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더 한걸음 나가 진우가 한 쪽 눈을 잃게 되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는 무한궤도처럼 끝없이 달려간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읽은 독자인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어떤 현상에 대하여 거슬러 올라가 그 원인 A, 또 그 현상 A를 거슬러 올라가 원인 B.......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어떤 현상을 만들어 놓은 근본적인 이유 Z를 생각해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음수사원, 지금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평범한 이치, 그 이치를 우리 현상에 대입해 보라는 것일게다.

   

5. 역사는 이렇게 평가된다

 

저자가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평가한 대목을 보자

<황우석이 증명한 것이라고는 논문 검증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밖에 없다.>(489)

 

대학에서의 학사관리가 엄정화 - 여배우 이름이 아니다 - 되고 난 변화는?

<그 곳 캠퍼스에서는 오리가 한 줄로 서서 횡단보도를 건너 다녔다.>(490)

 

6. 아포리즘 몇 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아포리즘, 하나!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지, 그래도 내 행복 때문에 누군가 불행을 느끼는 건 싫어. 그렇게는 내가 충분히 행복할 수 없는거야.”>(101) 미주의 말이다.

 

그것 하나로는 섭섭하다, 하나만 더 들어보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보트에서 뛰어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제가 의아한 건, 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장롱에 침대까지 챙겨들고 보트에 탔느냐는 것입니다.>(154) 대석 형의 말이다.

형(兄)이 말하는 것이니까, 새겨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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