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황경신의 한뼘노트
황경신 글, 이인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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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 독자인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것저것 의아한 대목을 만났는데...

 

첫째는, 글의 분류.

목차(차례)를 보면 글의 제목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 글들을 어떻게 분류를 해야 하는지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약간의 힌트가 있다. 그림이다. 그 구분되는 부분이 그림이다. 그림이 많이 있다. 그 것으로 글의 내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차례를 보니, ! 이미 분류가 되어 있다. 글의 제목이 네 칼럼으로 나뉘어 배열되어 있다. 그 하나 하나가 다른 스타일의 글이다.

이런 깨달음(?)이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재미를 주게 된다는 것, 저자는 알고 있을까?

 

둘째는, 알 듯 모를듯한 타이틀. 

그렇게 읽다가 앞으로 돌아온 김에 다시 표지까지 돌아와 보았다.

그랬더니 이런 글이 눈에 뜨인다. 책의 제목 위에 이런 글이 보인다.

<71 True Stories & Innocent lies>

그러니까 ‘71개의 진실된 이야기 그리고 순진한 거짓!’

 

그런 타이틀이 달린 책이다어떤 의미일까?

거기에 대하여 저자는 일언반구 하지 않으니 별수 없이 책 속으로 들어가 찾아볼 수밖에. 그러니 저자는 불친절하지 않은가?

 

수많은 감동이 보인다.- “이거다!”

 

그렇게 의아함으로 시작한 책이지만, 도처에서 이거다라는 감탄을 자아내는 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진눈깨비의 움직임을 봅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직선으로 또는 곡선으로, 소용돌이로 다시 휘감김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흔들리다 마침에 땅에 닿는 것들입니다.>(63)

 

진눈깨비를 형상화한 글이다. 진눈깨비에 대하여 이렇듯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 이가 있을까? 물론 누군가는 있겠지.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되지 못한 것 투성이입니다라며 진눈깨비를 우리 인생에 대입하여 바라본 이는 없다, 내 기억에저자는 그 진눈깨비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어느 새 진눈깨비, 다 흩어졌습니다라며 공허하면서도 애틋한 그것에 대하여 그리움을 연결시킨다.

 

진눈깨비가 간섭하는 이 세계는 온통 망설임입니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습니다.”

이렇게 진눈깨비를 인생의 망설임으로 또한 고통으로, 승화시켜서, ”안부를 묻기가 두렵습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글, 그런 글을 읽는 내 심정을 저자의 말을 빌어서 할 수 있겠다.

 

나는 창을 닫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무엇을, 나는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64)

 

나는 책을 덮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공간으로 들어와 버린 그 무엇, 가슴에 남아 있는 이 감동, 나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저자의 글은 도처에서 나를 끌어당겼다. 아니 끌어당겨 그의 문 안으로 집어 삼켰다.

 

저자가 두드리고 열어 보이는 수많은 문들

 

그제서야 저자가 여는 글에서 말한 '문'이 생각났다.

저자가 왜 문을 말했는지, 다시 여는 글로 돌아가 음미해 보았다.

 

<이길은 이렇게 끝났지만 막다른 골목은 아니다. 이제 내 눈앞에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수백, 수천 개의 문들이 있다.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열어보는 일에는 언제나 망설임과 두려움이 있지만, 그 문 뒤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무엇이 발현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그제서야 나는 저자가 말한 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는 수많은 문을 두드려 보고 열어보며 우리에게 거기에서 발견한 것들을 글로 형상화 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차례에서 두 번째 열(칼럼)에 들어있는 글들이 그러한 '문'들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가령, ()와 령()이 만나 이루는 글자. 아니 '문'.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가령, 이를테면, 만약에, 마음을 굳게 먹고 누가 누군가를 찾아간다면.”(73)

그러니 령()이 가()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으니, '가령'이 된 것이다.

 

이 글, 저자의 웅숭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서는 무슨 우화처럼 보이기 쉬우나, 그게 아니라는 것. 그렇게 두 번째 칼럼에 속해 있는 글들은 모두다 한 글자가 다른 한 글자를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단어들을 선보이고 있다. 모두다 저자가 만져보고, 두드리고, 열어보아우리에게 보여주는 문- - 들이다.

 

이 책의 얼개 중 중요한 부분

 

그래서 이 책의 구조 중 특징적인 것은 두 번째와 네 번째의 글이다.

두 번째 칼럼에 속하는 글들은 한 글자가 다른 한 글자를 만나 새로운 것-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무엇이 발현하는을 만들어 낸 단어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네 번째 칼럼에 속하는 글들은 예컨대 이어지다’, ‘지키다’, ‘기대다등등 우리가 신경쓰지 않고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을 천착한다.

 

숨다를 살펴보자.

 

<난 말이야, 무서워죽겠어. 이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잖아. 처음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처음, 더 이상 처음일 수 없는 그 처음엔, 이 모든 에너지와 물질이 먼지보다 작은, 원자보다 작은 무엇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잖아. 그게 펑하고 터져서 별이 되고 태양이 되고 지구가 되고 당신이 되고 내가 되었단거지.>

 

그리고 이어서 이야기는 전환을 맞이한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제정신일 수가 없어. 사방에서 무슨 알갱이 같은 것들이 펑, , 터져서 일 초에 한번 씩 폭발하는 기분이라고.>

 

, 여기서, 잠간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단어가 떠오르는가? 이 상황을 잠재울 단어는? 미리 말했지만, '숨다',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 생각을 계속 밀어내고, 그 자리를 망각으로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거야. 무시무시한 가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기만을 기도하면서 숨어있을 수 밖에.>(250)

 

그런 식으로 저자, 황경신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 아깝게 - 스쳐 지나간 단어들을 만져보고, 두드리고, 열어보아우리 앞에 보여준다.

 

그러니, 독자들은 토끼처럼 쫑긋하며 귀 기울여 듣는 수밖에

 

모처럼 깊고 시원한 물맛을 본 느낌이다. 그냥 읽어도 그만 안읽어도 그만인 글이 아니라, 마시면 마실수록 우러나오는 깊은 맛을 맛보는듯한 글. 그런 글 만나기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책에서는 하나부터 끝까지 온통 그런 맛을 품고 있으니, 이 경박한 세태 - 그저 말초적인 감각에만 호소하는 경박한 글이 넘치는 - 에 참 별일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흡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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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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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수학자의 죽음을 둘러싼 방정식 풀기

 

내가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의 성격을 알지 못하고 덤벼들었던 것,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내가 이 책을 열면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목으로 일단 판단하고 들어갔다. 앨런 튜링이라는 사람이 어딘가 숨겨놓은 방정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두뇌 싸움, 그것을 상상했었다. 그래서 제목이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이겠지, 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던 것.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읽어갔다.

그런데 첫 페이지부터 의아한 생각에 사로잡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서술자의 인칭이 불분명하게 시작되었기에 그렇다. 누가 말하는 거지? 주인공의 일인칭 서술인가, 아니면 제 3자의 시각에서 말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되는데는 라는 삼인칭 대명사가 너무 늦게 등장한 탓도 있으리라. 아니, 읽으면서 중요한 곳 하나를 그냥 스쳐 지나간 탓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 비중있는 ..”(10)이라는 말이 3인칭 시점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렇게 헛갈리며 시작한 책 읽기는 어디에서 멈췄더라? 경찰관 레오나드 코렐이 등장하고도 한참, 그가 자살한 앨런 튜링을 보고도 한참, 난 그때까지도 이게 추리소설로서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쇄 발생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책 내용을 이상하다 여길 수 밖에.

 

그렇게 추리소설을 기대했는데, 이야기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말이다. 이게 뭔가? 추리소설이 아니라, 점점 사실적인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고, 결국은 인터넷 속으로 잠시 들어가 정보 검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아닌 실제 인물 앨런 튜링, 수학자 앨런 튜링을 만나게 되었다.

 

앨런 튜링, 그는 누구인가?

 

처음에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헛갈리기도 했는데 인터넷 상의 자료와 이 책을 통하여 앨런 튜링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코렐이라는 수사관의 눈으로 앨런 튜링이라는 숨겨졌던 역사적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그게 바로 소설로 형상화 된 것이다. 그러니 추리극은 추리극이로되, 범인이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으로는 등장하지 않는 추리극.

 

<어릴 때부터 앨런은 숫자를 글자보다 훨씬 좋아했소. , 모든 사물들에서 숫자를 봤죠.>(95)

 

<어떤 선생 하나는 그가 늘 수학 냄새를 풍기고 다닌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그 얘기로 시를 썼다.

 

튜링은 축구장을 좋아했다.

측선에서 기하학 문제를 보았기에.‘> (97)

 

그런 튜링, 그리고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함으로써 연합군의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생을 마감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바로 동성애.

 

그래서 이 책은 고발장이다.

 

그러니 이게 살인사건이라면 범인은 그 누가 아닌, 동성애 현상을 죄악으로 몰아간 그 시대.

따라서 앨런 튜닝은 그 시대의 희생자인 셈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범인을 밝힌다면, 한 위대한 수학자를 그렇게 자살로 몰고 간 배경에는 동성애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가 있었던 것이니, 살인자는 인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슬픈 일이지만, 인간이 한 인간을 죽인 것이다.

 

인간이 단지 자기와 성향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반전 - 엔딩 크레딧을 읽어라

 

그렇게 소설은 자살 사건을 수사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 시대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까운 수학자 한명이 그 시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실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 그런 시대, 그런 사람들을 살인자로 고발하면서 끝이 난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여기 등장한다. , 에필로그를 읽기 전까지는 이 소설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경찰 레오나드 코렐이 가상의 인물인줄 알았다. 이 책의 작가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인줄 알았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에 즈음해서는 그 부제가 앨런 튜닝 학술대회 인사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길래, , 앨런 튜닝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한 학술대회구나, 했다. 그런데 거기에 뜻밖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경찰관 레오나드 코렐이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시작하기도 전에 극장을 빠져 나오는 것처럼, 이 소설 에필로그는 그저 부록이거니 생각하고 넘겨 버렸다면, 이런 반전을 몰랐을 것인데...

 

아니, 이 에필로그 조차 소설의 일부분이라면? 그 또한 반전의 반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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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4
예병일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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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의학에 손을 내밀다.

 

이 책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의학은 우리 사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생명을 다루고, 몸을 다루는 학문이니 다른 학문보다 더 잘 알아야하는데, 어디 실정이 그런가? 막상 아파야 그제야 관심을 가지고 병이 왜 생겼는지, 또 이병은 나을 수 있는 병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게 현실이다.

의학 자체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어려운 과목이기에 그렇다. 따라서 의학을 조감해 볼 수 있는 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학 전체를 - 문외한일지라도 - 조망해 볼 수 있는 책은 없을까?

단편적인 지식 말고, 의학을 종으로 횡으로 꿰어 볼 수 있는 그러한 책, 어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책이 있으니, 바로 이 책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이다.

 

또한 의학이 발전하면서 전문과목이 계속 나뉘다 보니 이제는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가면 무슨 과 의사를 만나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181) 그래서 일반인들은 몸이 아프면 먼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그런 고충을 아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문외한이 이해하기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저술해 놓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분야

 

그럼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점을 알게 되는 것일까?

의학의 기초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의과대학 진학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일까? 아니다, 이 책은 의료에 관련된, 의료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 진짜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을 망라하여 놓은 책이다.

 

잠시 그 내용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의료보험 제도, 우리가 아플 때에 그 비용은 어떻게 지불하고 있는가? 의료보험 혜택은 어떤 이로움이 있는가?

건강하게 수명을 연장한다는 것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현대 한국의 상황은?

환경은 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료의 모습은 과연 사실일까?

인체 해부는 언제 누가 시작한 것일까?

피는 사혈을 해도 괜찮은 것일까?

안락사는 시켜도 되는 것일까?

 

접근성과 이해도

 

그러니 이 책을 흥밋거리로 생각하고 읽어도 될 것이다, 그렇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데에는 저자의 필력도 한몫을 한다. 의학에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서술해 놓아 접근성과 이해도에서 나무랄 데 없다.

 

가장 큰 장점 - 인문학적 접근

 

그렇게 이 책은 여러 장점이 있으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잇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글을 씀에 있어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의학의 탄생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 항목이 12쪽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의학은 원래 인문학에서 출발했다.”이다. 그 장에서 의학이 본래 철학적 바탕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의학이 역사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과학과 사회학을 거쳐 이제는 인문학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설명해 놓고 있다.

 

의학의 역사 - 인류의 질병치료의 역사

 

이 책은 질병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인류가 질병에 의해 얼마나 고통받았으며,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해 왔는가를 역사적 기록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콜레라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콜레라가 어떻게 발병했으며, 어디로 전파되었는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166쪽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림으로 의학을 이해하기

 

이 책에서는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그 방법 중 하나로 그림을 가지고 서술한다.

예컨대, 렘브란트가 그린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가 그런 경우이다. (142) 인간 신체를 언제부터 해부했는가에 대해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저자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통하여 그 사실을 전해주고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사진으로 볼 수 없는 아쉬움을 그림을 통하여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밖에도 <그림에 나타난 의학의 현실>이라는 장(144쪽 이하)에서는 당시 의학의 역할이 어디가지였나를 짐작하게 해주는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답답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피카소가 그린 <과학과 자비>는 신앙적 믿음과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풍자적인 그림(145)으로, 당시 의학의 수준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만 말하지 않는다 - 미래의 의학

 

의학의 발전함에 따라 의술은 발전하지만 세상도 또한 발전하기에 세상의 변화에 따른 의학의 자세 변화도 요청되는데, 저자는 이 부분에도 상당히 할애해 놓았다, 바로 미래에 의학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하는 항목이다.

 

그 항목들을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줄기세포로 장기 이식이 쉬워질까?

개인별 맞춤의학이 바꿔놓을 의학의 미래

정보기술의 발달은 의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렇게 이 책은 다양한 각도에서 현재 의학의 모습을 진단해 놓고 있으며, 더하여 미래에까지 시선을 돌려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학에 대하여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인문학을 동원하여, 치유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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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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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뜻을 알고나니 저 뜻이 다가온다

 

이 책의 개요

 

이 책의 소개 글에 의하면, 이 책은 지금까지 접근하기 어려웠던 두꺼운 세계 경전들을 지혜의 근원으로써 가볍게 맛볼 수 있도록 풀어냈다. 특히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이 시대에 꼭 읽어 봐야 할 7가지 경전들을 중심으로 감동적인 경구와 그곳에 함의된 의미를 맛깔스럽게 정리하고자 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과거 현인들이 지녔던 소중한 삶의 지혜를 상기시키고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 방향과 공부법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만든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런 취지 하에 저자가 7첩 반상에 차려 올린 음식들과 골라낸 요리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도마복음 - 나그네가 되십시오

중용- 간절함으로 스스로를 이루다

숫타니파타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도덕경 - 머물지 말고 흘러라

금강경 -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바가바드 기타 - 나는 누구인가?

동경대전 - 사람이 곧 하늘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 특히 나같은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 그 중 몇 개는 전혀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경전이다. 심지어 그런 것을 경전이라는 범주로 집어넣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터이다. 그러니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반 우려반으로 생각하면서 읽었음직 하다. 내 경우가 바로 그렇다.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그런데 오강남 교수의 추천사와 저자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약간씩 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서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막스 뮐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이 책은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경전 하면, 오로지 하나 내 경전만 있는 줄 안다. 이를테면 기독교인은 성경, 불교 신자는 금강경 식이다. 이 쪽 사람이 저것을, 저쪽 사람이 이 것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독선은 무관심과 편견, 무지를 낳는다. 너희 것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조차 알 수 없다. 더구나 종교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자들에게 의해 의도되고 탈색된 경의 껍질만 만지작거려서는 그 참뜻을 알기가 요원하다. 눈 감은 신앙으로는 경전에 숨은 속 뜻을 알아채릴 수 없으며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12)

 

 

그러니 내가 가진 경전을 알기 위하여 다른 경전을 읽어야하는 당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그 당위성은 올바른 진리의 방향으로 나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막스 뮐러의 말 -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 을 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만났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는 이미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는 나는 마치 나 혼자 이 책에서 막스 뮐러의 숨결을 느낀 양, 의기양양해 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일곱 가지 경전을 대하는 자세

 

그래서, (막스 뮐러의 말을 가슴에 품었으므로), 이 책을 심도있게 읽을 수 있었다.

먼저 경전을 읽을 때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경전을 대하는 기본 태도는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경전을 읽는다는 것,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 경을 거울삼아 내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옷깃을 여미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 (8)

 

그렇게 경전을 읽을 때에 얻어지는 결과를 오강남 교수는 다음과 같은 가벼움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경()을 경() 삼아 경()하게 되는 것

경전을 거울 삼아 삶을 가볍게 한다,는 말이다.

 

이 뜻을 알고 나니 저 뜻을 알게 되는 사례들

 

그러한 사례들을 몇가지만 추려본다.

 

. 도마복음과 누가복음

 

그 나라는 여러분 안에 있고, 또 여러분 밖에 있습니다.(도마복음, 3)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누가복음 17:20)

 

그 두 개의 구절이 지향하는 바가 같다. 그래서 이쪽 말을 이해하면 저쪽 말도 저절로 이해가 된다.

 

. 중용과 성경 - 중용의 지침과 성경의 황금률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 어떻게 다를까?

 

<내가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충서이며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 도리’()이자 사랑’()이다. 이런 중용의 실천 지침이 성경에서 말하는 황금률과는 사못 대조적이란 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중용의 입장은 일견 소극적이지만 갈등의 소지가 없다. 반면 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는 성경의 입장은 굉장히 적극적이지만 자칫하면 이기심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항상 좋은 것이 될 수는 없으며, 되돌려 받고자 행한다면 그 의도가 선하다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68-69)

 

. 우파니샤드와 도덕경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에 이런 말이 있다.

<젊은이여, 2 가지 지식을 알아야한다. 높은 지식과 낮은 지식이 그것이다. 종교의식,천문학, 언어를 통한 학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예술 창작행위, 이런 것들은 모두 '낮은 지식'이다. 그리고 깨어있음(自覺)을 향한 모든 노력, 이것이 '높은 지식'이다.>(124)

 

도덕경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함이 없는 지경(無爲)에 이르십시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123)

 

학문의 길, 하루하루 쌓아가는 길은 낮은 지식이다. 반면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이니, 그게 바로 깨달음의 증표요 따라서 그게 높은 지식’인 것이다.

 

더하여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를 읽었다. 읽었지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책을 읽는다고 이해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니, 리히 프롬은 언제나 나에게 못다한 숙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 읽다가 그 숙제 풀게 되었다. 86쪽 이하에 저자가 에리히 프롬을 풀어놓았다.

 

<삶의 근원적인 의미에 목마른 이들에게, 에리히 프롬은 삶을 소유냐 존재냐라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우리의 학습, 기억, 대화 , 독서, 지식, 그리고 신앙이 어떤 형태인지를 성찰하게 한다. 가령 앎이란 미망을 깨뜨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깊이알고자(존재양식) 하는 대신 더 많이알고자(소유양식) 급급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다. 내면화하고 변화를 이끄는 학습 대신 저장하고 쌓아두기 위해 학습해 온 것은 아닌지도 따진다. >(86-87)

 

바로 이거다. 이것 하나로 에리히 프롬은 나에게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깨달음이 되었다. ‘소유냐 존재냐를 다른 방향에서 살피려 할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그러니 내가 그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바가 있다는 말이겠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의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니, 그 실질적 의미가 이해가 된 것이다.

 

결론으로

 

이 책을 다 읽고난 나의 술회는 저자의 저술 의도가 적중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전들을 한꺼번에 살펴보면서 그 내용들이 때로는 한 뜻으로 꿰이기도 하고, 결국은 이 뜻을 알고 나니 저 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래서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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