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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11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7월
평점 :
반갑다,
뤼팽!
모처럼 아르센 뤼팽을
읽었다.
뤼팽을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몇
십년 만에 읽은 듯하다.
그래서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 세계에 가벼운 흥분을 느끼면서 읽어나갔다.
그래서 작중의 인물이
되어,
아니
작중의 주인공과 추리의 세계에서 겨루어 보는 재미,
그게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인데,
보기
좋게 당했다.
<가스통은
매우 화가 난 듯 했다.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아래 오랫동안 창문 난간에 기대어 있었기에 땀이 났다.
가스통은
방으로 들어가 물병을 들고 나온 후 몇 모금 마시고는 창가에올려 놓았다.>(65쪽)
여기 이 대목에서 무언가 있는
듯싶었다.
이
책이 추리 소설 아닌가?
저자는
이야기의 여러 곳에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작가를 따라갈 만한 힌트를 주곤 하는 게 추리 소설의 예의인지라,
이
대목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단서는
물병이었다.
왜냐?
이
소설 두 번째 장의 소제목이 <물병>이었기에,
작자가
여기 힌트를 남겨 놓았다고 당연히 생각했다.
물병이
등장했다.
물병의
위치는?
방에서
나와 창가로 이동한다.
물병에
남아있는 물의 양은?
측정할
수 없으나,
주어진
단서는 물은 ‘몇
모금 마시고’
남아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이런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더 이상 추리가 진척이 되지 않았다.
햇빛과
물병,
두
개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에서 드디어
물병이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돈다발이 성가신 물건이 되어버리자 아예 없애버리려고 했겠지?
방법은
간단했어.
창가에
배가 불룩한 커다란 물병을 올려놓았던 거지.
크리스털로
만든 유리병이 렌즈 역할을 하며 햇빛을 모아 적절히 준비해둔 모자 상자와 비단 종이로 보냈지.
10 분
뒤에 불이 붙기 시작했던 거야.
놀라운
발상이야.>(80쪽)
이건 분명
반칙이다.
65쪽에
인용한 부분에는 가스통이 방에서 들고 나온 물병이 배가 불룩한 크리스탈 유리병이란 정보가 제공되어 있지 않다.
독자들과의
추리게임에서 작자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니,
이
부분 분명 반칙이다.
그런데 그런 반칙을 탓하기 전에
나의 실수 하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병?
작가가
미리 제공한 정보에 나오는 유일한 단서인 물병을 현대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늘상 마시는 물,
생수가
담긴 물병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물병의 재질은?
유리가
아니고,
페트병,
즉
폴리에틸렌을 재료로 만든 병이다.
그러니
그런 물병을 생각하면서 어찌 햇빛과 연결시킬 수 있었겠는가?
이는 소설 속에서 작가가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남겨준 정보를 시대를 따져 해석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시대를
현대로 생각해버리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나의 잘못이다.
발견한 오마쥬 두 편
<오마쥬:
예술과 문학에서는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원작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혹은 존경하는 선배 영화인의 업적을 기리며 감명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장르에도 사용된다.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서 패러디나 표절과는 구분된다.
하지만
이 구분 기준이 모호하여 종종 저작권 문제나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도덕적인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
세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쥬
<그리고
여덟 번의 시계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홍옥수 단추를 돌려준다는 약속을 지켰더라도 다른 곳이 아닌 알랭그르 성의 괘종시계가 울려야 했기에
그전까지는 어쨌든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
아시다시피
...알랭그르의
괘종시계여야 한다는 것이 합의사항이었어요.>(289쪽)
<오르탕스는
숫자를 세었고 괘종시계는 여덟 번 울렸다.,
얼굴을 두 손에 묻고 힘없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괘종시계가
...거기에
있어야 할 그게 여기에 있어...저
종소리 ....기억이
나.”(290쪽)
이 대목에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이
떠올랐다.
샤일록의 돈을 갚지 못한 안토니오는
법정에 서게 된다.
샤일록은 법정에서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데,
포오샤가
말한다.
샤일록에게
“분명히
'살
1파운드'
라고만
씌어 있소.
그러므로
증서의 내용대로 '살
1파운드'를
가질 것.
그러나
살을 베어냄에 있어서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릴 때에는 원고의 토지나 재산은 베니스 국법에 의해서 이를 전부 베니스 국고로
몰수하겠소.”라고.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오마쥬
<레닌이
이마를 치며 말했다.
“이런!
바보,
멍청이,
얼간이!”
경감이
물었다.
“ 왜
그러십니까?”
“원형
탁자 위에 있던 모자 상자!
바로
거기에 돈다발을 숨겨 놓았습니다.
아까
우리가 수색하는 내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요.”
“그럴
리가!”
“안타깝게도
사실입니다.
눈에
너무 잘 띄고 손닿는 곳에 있어서 그곳에 숨겼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어떻게
범인이 뚜껑 열린 상자에 6만
프랑을 숨겨 놓았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느냔 말입니까?”>
(75쪽)
위의 글을 읽으면서, 어찌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모처럼 읽은
뤼팽,
르블랑에게
보기 좋게,
그러나
기분 좋게 당했다.
그러나
그렇게 작자와 두뇌 싸움을 하면서 읽어가는 것,
이게
바로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 아니겠는가?
더불어
셰익스피어와 에드거 앨런 포까지 기억하게 되었으니,
반갑다.
뤼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