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
주창윤 지음 / 마음의숲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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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바다에 빠져봅시다.

 

사랑이 무어냐고?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답하겠어요.”

나훈아의 노래, 가사중 일부이다.

 

그 가사처럼 사랑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고 간단하게 정의해 놓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간결함은 높이 사줄 수 있으나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완벽한 대답은 분명 아니다.

그럼, 사랑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이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이다. 사랑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주마 하는 자세로 이 책은 거침없이 사랑을 묻고 탐구하고 정리해 놓는다.

 

읽다보면 , 사랑이 이런거구나하며 무릎을 치기도 하며, ‘, 그런 거였구나하며 탄식을 하게 만드는 책. 그래서 사랑에 대해 한 수 배웠다.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이 여기 있다.

 

지금껏 사랑에 대해 알아오고, 하기도 했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여러권 그야말로 수레 하나를 채울만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는 손 들었다. 그런 책을 모두 합해 놓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 사랑에 대해 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 누가 이렇게 사랑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모두 등장하는 것 같다. 사랑에 관한 문학작품, 열을 올리며 이야기 했던 이야기들, 보면서 눈물 흘리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 여기 모두 있다. 그래서 색인이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예로 들어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부터, 소크라테스, 그리고 21세기 디지털사랑까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연구를 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왜 지금 사랑이 중요한가?

 

저자는 사랑을 이루는 핵심요소는 열정과 낭만이지만 지금은 인정욕구와 불안감이라는 중요한 요인이 추가된다고 말한다.

 

사랑의 기능이 거기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받으면서,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고,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 사랑은 그렇게 사람을 구원한다.

 

<사랑은 나와 너 에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한다. 사랑이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마음을 나누려는 시도 속에 사랑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7)

 

그래서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사랑은 필수불가결한 감정인 것이다.

 

사랑의 바다에 빠져봅시다.

 

이 책은 마치 사랑의 바다같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사랑에 관해서 해 놓은 모든 설명, 이론, 생각들이 사랑의 강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것을 모두 품고 있는 바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에 대하여는 빠짐없이, 흐트러짐 없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해 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을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에 대한 해답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그것이 남녀간의 사랑이든, 아니든 심리적 안정감을 잃고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에 잠겨 외로운 시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구원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에 사랑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랑은 실존적 불안에 대한 가장 완벽한 처방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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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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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제대로, 확실하게 알아봅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있었나우리 조상들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나,를 우리는 배운다. 역사책을 통해서, 그리고 역사학자를 통해서.

그런데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가 잘 못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잘못이 비단 우리 세대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 해본 적이 없다. ? 역사는 역사학자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특히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 나라들과의 관계에 있어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역사전쟁, 곧 영토분쟁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지금 한창 전쟁중이라 한다. 역사전쟁이 지금 한창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는 영토분쟁이 한창이다.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곧 역사분쟁이다. 대한민국은 중국 및 일본과 역사분쟁을 겪고 있다.”(370)

 

그 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일본은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임나일본부를 통해서 고대일본이 직접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어떤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북한의 지역 전체가 한때 자신들의 영토였다고 주장하며, 그 역사조차도 자신들의 역사라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일본과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분쟁, 곧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국사관 이적행위자들

 

그런데 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름 아니라, 그러한 역사분쟁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 역사, 우리 영토를 수호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정부는 물론이고 학자들도 거기에 대응해야 하는데, 뜻밖에 아군이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쟁의 대상이 되는 역사와 영토에 대해 적군에게 유리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소위 식민사관을 가진 학자들이 바로 그러한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이다 .

그런데 저자 이덕일은 그런 식민사관은 과거 일제가 한국을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창작한 역사관, 즉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보는 조선총독부 사관이므로, 해방 후에도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그런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한다면 식민사관이 아니라 매국사관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이다.

 

매국사관 학자들의 주장

 

그들, 매국사관을 가진 학자들의 주장은 위에 언급한 일본과 중국의 주장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아니 소이(小異)는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그 주장을 다시 거론하기에는 지면이 아깝다.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그들의 학문적 태도만 언급하기로 하자.

이 책의 저자 이덕일이 주장하는, 가장 애타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매국사학에는 사실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은 없고 주장만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1차 사료(史料)를 해석하는 학문이므로, 1 차 해석에 대한 해석이 주가 되는데, 그들의 학문적 태도는 그런 사료와 사료에 기초를 둔 해석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 없으니, 말장난만 난무한다.

예를 들면, 이덕일이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을 거론하자, 매국사관 학자중 한명인 임기환은 이렇게 답변한다.

“ .......이러한 이덕일 소장님의 주장에 대하여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80)

 

이덕일의 주장에 대하여 객관적인 사료를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할 수 없다는 의지만 밝히는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역시 말장난에 불과한 것들이다.

“ ......한국 고대사 역사지리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와 관련한 자문회의를 13차 진행했습니다.”(80)

 

역시 객관적인 자료제시가 아니라, 어떻게 결론을 내렸나를 말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떼거리로 모여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81)

 

게다가 상식적이지도 못하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국경선을 세로로 그려 놓았는데, 고대 국경은 산이나 바다를 경계로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상식을 깨고 산맥을 두 개나 자르고 강을세로로 자르면서 그어 놓았다는 것이다. (58)

 

매국사관 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 대하여

 

역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그러한 매국사관 학자들의 학문적 태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다.

 

<역사학이란 학자들끼리 합의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치열하게 1차 사료와 다투는 학문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이들(매국사관 학자)에게 학문은 다수결이다. 그것도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역사학자는 모두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모여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역사학이다.>(65)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당부한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 문제에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한국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다.”(381)

 

모름지기 국민이라면 자기 나라 역사가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그리고 확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무를 가진 우리들에게 아주 안성맞춤인 역사교과서가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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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갈 용기 - 자유롭고 행복해질 용기를 부르는 아들러의 생로병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노만수 옮김 / 에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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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용기시리즈다.

물론 아들러가 쓴 책은 아니라, 일본인 기시미 이치로가 쓴 책이다.

그는 계속해서 아들러의 심리학을 응용하여, ‘용기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지금껏 아들러 심리학을 주제로 한 책을 여럿 읽었다.

아들러가 쓴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기시미 이치로가 지은 책들이다.

 

<미움받을 용기>, <엄마가 믿는 만큼 크는 아이>,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 <행복해질 용기>를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늙어갈 용기>를 읽었다.

또한 같은 저자가 쓴 책이 많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 <버텨내는 용기> 가 있다.

 

왜 저자는 책의 제목에 용기라는 말을 집어넣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그의 주장에 용기가 필수불가결한 개념이라 그렇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용기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찾아내 정리해 보고 싶었다,.

 

아들러에게 용기는 무엇인가?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231쪽에 용기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도움은 ......강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과제를 분리한 상태에서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거야...이러한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부여라고 하지.>(231)

 

<행복해질 용기>에서는 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고 자각하고, 지금의 자신을 어떻게든 바꿔야 한다고 마음먹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하기로 결심했다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바로 목적이 된다. 하나하나의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행복이다.>(36)

 

그래서 그것을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럴 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용기이다. 그렇게 용기라는 말은 아들러 심리학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인의 결단과 행동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늙어가는데 용기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이 책, <늙어갈 용기>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이 책에는 비단 늙어가는 것에 대한 용기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다.

 

대화할 용기에서는 인생의 과제와 대화를 하라고 권한다.

사고나 재해, 또는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병이나 노화, 죽음는 모두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는데, 아들러는 직면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현실을 해석하고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26)고 한다,

 

그러니,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즉 인생의 과제와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화할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다.

 

몸말에 응답할 용기에서 몸말이란 다름이 아니라, 몸이 아파서 신음을 하는 경우, 그것이 몸이 걸어오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사인은 심근경색이다.(107)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심근경색이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책의 저자도 심근경색으로 고통을 겪었다.(4)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병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죽음은 홀연히 찾아온다. 누구든 자신이 죽을 때를 정하지 못하며, 저것도 하고 싶었고 이것도 하고 싶었다는 미련을 품은 채 죽어간다. 아들러도 자신이 이렇듯 어느 날 급작스레 찾아온 심근경색으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들러와 다르게 다행이도 살아남았지만, 그 이후 생로병사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천착하게 되었다.”(107)

 

저자는 그런 몸말에 응답하였다. 그래서 결국 그 병이 인생의 근본적인 과제와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계기가 된 셈이다.

 

늙어갈 용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나이 들어감을 행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차원에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어떤 행위로 타자에게 뭔가 기여나 공헌할 수 없게 되었다고 자신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167) 그래서 늙어간다는 것을 그렇게 열등감의 차원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처음 겪게 되는 그 낯선 시간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유용한 용기

 

그렇게 이 책에서는 대화할 용기이어서 몸말에 응답할 용기’, 그리고 늙어갈 용기’, ‘책임질 용기’, 에 이어 행복할 용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한 용기들은 아들러의 심리학에서는 그저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적으로 인생의 문제와 직면할 힘을 주기도 하며, 미움받는 것을 각오하는 용기를 말하기도 하며, 이제 늙음이라는 미지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의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실, 누구에게나 조만간 사실이 될 것이니까 절실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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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조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8
김소연 지음 / 비룡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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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과거의 나 자신과 작별하다 

 

반갑다, 이런 소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던 조선의 민초, 근석이 눈을 새롭게 뜨다니!

그렇게 만들어준 이 소설, 처음에는 밋밋하게 시작된 소설이 끝에 가서는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은 저자 말에 의하면 장편 역사동화로 분류될 수 있겠다. 그러니 특히 청소년들에게 아주 좋은 역사교과서로 역할을 하며, 역사의식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책이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이 소설 안에 네 사람을 배치한다.

알렉세이, 비빅과 니콜라이. 그리고 베델 (실존인물). 이 네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근석을 가마실이란 시골에서 끌어낸다. 그리고 갖은 고생을 하게 한 다음에 드디어 자기가 살고 있는 조선의 모습을 마주하게 만든다.

 

근석은 사건을 통해 만난 새로운 생각을 이렇게 토로한다.

한 번도 산과 들이 내가 지켜야 할 내 것이라고 여겨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대장님과 여행을 하다보니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조선은 임금 한 사람만의 나라가 아닌 이땅에 사는 모든 조선인의 나라라는 걸 말이에요. 조선이 백성의 나라가 아니라면 왜 의병들이 목숨을 버려 가며 적군과 싸우고 동학당들이 탐관오리의 사창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겠어요?“ (250)

 

이런 고백 멋지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가 보고 싶은 나라는 조선이에요.”

전 지금 이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해요. 가마실에 살 때는 절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쉴 새 없이 터지는 이 나라가 너무 낯설어요. 그래서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어요.”

지금껏 살아온 나라와는 작별하고 새 조선과 만나고 싶어요.”(240)

 

그런데 그런 그의 결심이 근석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그런 그의 결심은 알렉세이와 니콜라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니콜라이는 그것을 이렇게 고백한다.

“....저 역시 녀석 덕분에 제 안에 있는 진심과 마주 할 수 있었죠.”(254)

 

알렉세이는 그러한 근석의 태도에 이렇게 자기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조선과는 작별하고 새로운 조선을 찾으러 떠나겠다는 아이의 말이 제겐 혹독한 가르침으로 들렸습니다.”

근석을 보며 세상에는 모두가 도망치려는 곳에서 머물 자리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근석의 말이 옳아요. 이 땅엔 절망의 운명이 닥쳐와도 도망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코레야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며 지난날 제가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그릇되었던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254)

 

그래서 그들의 인생행로는 바뀐다.

원래 중국으로 가려던 알렉세이는 다시 조국 러시아로 향한다.

고국을 떠나 러시아로 귀화하여 다른 생을 살던 니콜라이는 다시 한국에 남아 독립운동을 계속하기로 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비단 근석에게 다가온 깨달음만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석에게 영향을 주었다 생각하는 알렉세이와 니콜라이에게도 그러한 깨달음은 되돌아 온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과 인생을 변화시킨다. 이것이 이 책이 보여주는 가르침이라 할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아니 꼭 우리가 사는 나라만이 그 대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직장 더 나아가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새로운 눈을 뜨고 바라보게 하는, 그 무엇을 알게 해준 소설이다.

 

모쪼록, “과거의 조선과는 작별하고 새로운 조선을 찾으러 떠나겠다는 아이의 말이 제겐 혹독한 가르침으로 들렸습니다.”는 알렉세이의 말이 '과거의 나와는 작별하겠다'고 결단하는 우리 모두의 말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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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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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경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책.

 

묘한 여인을 만났다. 알면 알수록 매력있는 여자다

그 이름은 미미. 본인은 한사코 그 이름 대신에 하쓰미라 불러달라는 여자. (11)

이름을 모두 말한다면, 야마나카 하쓰미.

직업은? 단란주점 아가씨다. 본인도 그것을 어디서나 밝힌다.

 

운명적인 만남

 

이 책의 주인공인 도쿠야마 히사시는 운명적으로(?) 하쓰미를 만난다. 그게 이 책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발단이다.

 

도쿠야마 히사시는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삼수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아르바이트 동료들과 단란주점에 가서 그녀를 만난다.

단란주점에서 나오는데, 그녀가 그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준다. 명함이다.

 

그 명함에 급히 써 넣은 글씨가 보인다. ‘힘들거나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주세요. 언제든지

그게 이 책의 제목이다. 그러니 그 말이 당연히 의미있는 말이다. 무슨 의미일까?

 

그 의미를 역자는 두 가지로 읽힌다고 밝혔다.

그 하나는,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그런 생각일랑 접게 해줄테니

다른 하나는,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기꺼이 도와줄테니까..

 

압도적인 파멸

 

역자는 덧붙여 말한다,

<어쩌면 세계는 이 양 극단을 번갈아 오가는 거대한 혼돈인지도 모른다. 그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지, 그 결정에 이 압도적인 파멸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313)

 

역자가 말한 이 압도적인 파멸은 이 책의 결말을 말한다.

하쓰미는 도쿠야마에게 말한다.

죽는다는 거, 그냥 간단한 거예요. 진짜 눈물이 날만큼, 아하,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되는 일이예요”(303)

오늘 밤 자고 내일 아침에 눈뜨지 않으면 되는 거, 그냥 그런 거예요. 잘 자요. 이제 더 이상 아무 걱정 안해도 돼요. .......이제 푹 쉴 수 있죠. 자아, 이제 쉬자고요. 이런 일에 너무 빠르다느니 아깝다느니 따위, 없어요. 이제 충분해요. 그게 언제든, 너무 지나칠 만큼 충분해요.” (303- 304)

 

압도적인 파멸, 곧 죽음을 말한다. 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죽음에 다가간다.

 

니체가, 그의 영원회귀 사상이 떠오른다

 

그렇게 살다 가는 거,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하쓰미의 생각과 발언에서 그런 생각들이 읽힌다.

그녀의 서가에 니체의 책이 보인다.(65) 그녀는 말한다.

거기에 인간의 악의를 모두 다 진열하고 싶어요.”

 

그래서 인생은 그러한 악의로 인해 고통이 충만하고 괴로움이 반복되는 것, 그래서 그녀는 죽음을 택한다. 동반자살이다.

그러나 니체의 생각을 조금만 더 읽었더라면, 니체가 영원회귀의 사상의 결론으로 그런 어려움에 감연히 맞서라고 한 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침대에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힘차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 둘은 암흑의 세상에 죽음으로 항거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주인공이 걸어가는 암흑의 여행길에 함께 빨려 들어가고 그렇게 이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주위의 풍경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일거라는 마이니치 신문의 인터뷰 내용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책을 읽고나니, 더욱더 생이 소중하고 주변의 일들이, 사람들이 소중해 보이는 것은 이 책에서 얻어내는 효용인가, 아니면 반작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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