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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 로망스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5년 7월
평점 :
문래동 로망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렇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문래동을 지나야 한다.
문래동, 거기에 늘어서 있는 철공소를 지나가야 한다.
그 곳에서 불꽃이 넘실대는 용광로를 잠시라도 들여다보면, 이윽고 더위가 가시는 느낌 들지 않을까?
물론 이건 예전, 아주 예전의 일이다.
서울에 살 적에 집으로 가는 길에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지나다니곤 했었다.
그래서 기억을 잠시 떠올려본 것이다. 그 때의 그 용광로를.
지금은?
여기 소설에 나오는 대로 집단이주(232쪽)를 한 모양인데, 그래서 그곳에 카페들이 들어서고,,,,, 그런 장면을 동남아 여행하면서 본 적이 있다. 공장 건물을 그대로 둔 채 그 안에 들어서면 커피향이 그윽한 카페가 있는 곳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 두 가지가 어른거린다.
하나는 그 옛날의 문래동 철공소 거리, 그리고 동남아 어딘가의 카페..
그런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피부로 와닿는, 거기에 코끝으로 커피향마져 스며드는 듯한 소설이다. 거기에 아주 달달한 시럽을 친, 아주 달콤한 로맨스 소설이다.
주인공은 김철과 은아연.
주인공 이름들이 등장할 때,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공소가 무대이니 철과 아연? 그렇다면? 혹시 둘이 합해진다는 설정?
역시 아니나다를까,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철과 아연. 이 두 금속은 사실상 합금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녹는점의 차이 때문이다. 합금이 되려면 두 금속은 특정 온도에서 동시에 액체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철과 아연은 그게 불가능했다. 철이 액체가 되는 점 즉, 철의 녹는점은 1,538°C이지만, 아연은 끓는점 그러니까, 기체가 되어 날아가는 온도가 907°C였다. 철이 액체가 되는 1,538°C에서 이미 아연은 사라진 상태라는 의미였다.” (70쪽)
이런 구절 사실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려는데, 문득 책을 펼치기 전에 읽었던 저자 약력이 떠오른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화학신소재 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니 일단 믿고 가기로 했다.
그렇다면 철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과 아연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 주인공은 끝까지 합금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거기에 대한 답은 밝히지 않으련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쇠는 달구어졌을 때 치라고 했는데
그런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소설가들은 심보가 이상하다.
소설 중간 중간에 이런 말들을 마구 뿌려놓는다.
인장시험은 금속을 위아래로 잡아당겨 얼마나 늘어나다가 끊어지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다. 단단할수록 적게 늘어나다가 끊어질 것이고 연할수록 길게 늘어나다가 끊어질 것이다. (201쪽)
주인공 커플이 사랑을 이어가다가, 다가온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잠시 헤어지게 되는 공식. (243쪽)
일종의 약을 치는 모양인데, 그런 말을 듣는 독자로서는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이 두 사람, 괜찮은 조합인데.....이러다가 사달이 날지 모르겠는데. 그러면 어쩌지?
그런 식으로 작가는 독자들의 가슴을 그냥 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흔들어보려고 한다.
하기야 그게 소설이다.
맨 처음부터, 알콩달콩하다가 중간에도 아무일 없고, 끝에도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로 끝나면 그 누가 책장을 넘길 생각을 하겠는가.
해서 독자의 가슴을 자꾸만 흔들어대는 이 소설, 재밌고 읽을만하다.
이 두 사람, 미리 말해두지만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위기가 찾아온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 맨 마지막 위기에서는, 대체 어떻게 저걸 돌파할 수 있을까 싶어 조마조마했는데, 참 다행스럽게도 저자가 그 상황을 잘 마무리해주어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마지막쯤 장면에서 그 두 사람과 아연에게 사랑을 고백한 과거가 있는 피 모씨가 등장해서 한꺼번에 만나는 장면은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그 장면이 얼마나 서스펜스 있게 전개되는지, 읽으면서 속으로 영화를 만들어볼 정도였다.
아, 남자 주인공는 배우 누구로, 여자 주인공은 조금 파워있는 개성파 배우 아무개로, 이렇게 나름 콘티를 짜가면서 영화 한편을 머릿속으로 찍어보았다.
결론은? 재미있다는 말이다.
이 소설, 두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면서 연애 세포를 잠시나마 가동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야 어려운 일이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니 소설 읽어가면서 상상의 세계로 진입해서 잠시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남성 독자라면 잠시 김철이 되어보고, 여성 독자라면 은아연이 되어보고.
그런 문래동 로망스의 세계로, 잠시 떠나보면 어떨까?
미리 읽은 독자로서 말하건대. 이 책 물건이다.
용광로에서 잘 달구어진 철과 아연을 잘 주물러서 만들어낸, 물건! 여러분께 감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