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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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책까지 읽게 됐다. <개소리에 대하여>. 도대체 헌재에서 대통령측이 떠드는 이 말도 안되는 발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고 싶었다. 저자는 '거짓말'과 '개소리(bullshit)'의 차이가 발화자가 진실을 의식하느냐, 아니면 무관심하냐에서 온다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진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와는 반대되는 말을 한다. 하지만 개소리쟁이는 진실에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더욱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꾸미려고 노력이라도 하고 만약 들통이 날 경우에는 부끄러워할 줄 안다. 하지만 개소리쟁이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누가 사실을 지적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에, 진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개소리를 왜 하는 것일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이고, 정치적으로는 적과 동지를 나누어 선동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 부분은 본문 뒤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 나온다. 옮긴이는 '권력형 개소리'의 예로 트럼프와 윤석열의 사례를 든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한 '산업화된 개소리'가 종편과 유튜브에 판치고 있음을 개탄한다. 옮긴이는 정치적 개소리의 해악으로 타자에 대한 멸시를 든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페이지도 얼마 안 돼 금세 읽을 수 있다. 원저는 1986년 발표된 논문에 바탕을 둔 책이라는데, 2005년 출간된 후 정치적 개소리의 만연과 더불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2016년 처음 번역됐다. 옮긴이의 글에 '바이든, 날리면'이 정치적 개소리의 예로 소개되는데, 아마 2023년 재출간되며 추가된 듯싶다. 개소리가 정치적 언어를 이렇게 오염시키기 전에 출간된 본문에는 정치적 사례는 하나도 언급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의 일화가 언급되는 철학적 논설이다. 


다음은 본문의 일부:


그것[개소리의 본질]은 바로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다. (38페이지)

그[개소리쟁이]가 반드시 우리를 기만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의 기획의도enterprise이다. 개소리쟁이에게 유일하게 없어서는 안 될 독특한 특징은,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을 부정확하게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57페이지)

오늘날 개소리의 확산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회의주의 속에 보다 깊은 원천을 두고 있다. 회의주의는 우리가 객관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사태의 진상이 어떠한지를 인식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이러한 ‘반실재론적’ 신조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심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무너트리고, 심지어 객관적 탐구라는 개념이 이해 가능한 개념이라는 믿음을 약화시킨다. (6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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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01-27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었을 때 대통령은 그네였어요.. ^^;;

blueyonder 2025-01-27 11:26   좋아요 0 | URL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정치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평안한 명절 보내세요~

서곡 2025-01-27 1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언감생심 윤리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의 형식논리도 없는 말들이 판치더라고요 정말 가지가지 한다 싶습니다 연휴 잘 보내시길요!

blueyonder 2025-01-27 11:27   좋아요 1 | URL
서곡 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5-02-24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봤습니다.
여기서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어요.
지금 상황에서 100% 공감되는 말들만!
거짓말을 얼굴색도 안바뀌고 하는 데 분노보다는 웃음이 나오는 건 왜일까요?ㅠㅠ

blueyonder 2025-02-24 13:20   좋아요 1 | URL
슬픈 현실이고, 그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레이스 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The realization that even man-made creations, as well as what seemed inherent in the design of nature, proved to be extraordinarily applicable soon became an argument for a totally new approach to mathematics. Why should this not happen with future free creation of the mind? Hence, many mathematicians concluded, it was not necessary to undertake problems of the real world. Man-made mathematics, concocted solely from ideas springing up in the human mind would surely prove useful. In fact, pure thought, unhindered by adherence to physical happening, might do far better. Human imagination, freed of any restrictions, might create even more powerful theories that would also find applications to the understanding and mastery of nature. (p.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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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카렐 차페크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 여행기 흄세 에세이 5
카렐 차페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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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의 영국 여행기이다. 차페크는 1924년 펜클럽 등의 초대로 영국을 두 달 정도 방문하여 여행하며 당시 영국인들에게도 꽤 인기를 끌었던 이 여행기를 남겼다. 1924년은 1차 대전이 끝난 지 6년 정도 지난 후로 아직 대영제국의 위세가 남아 있던 때이다. 이 책에서 차페크는 직접 그린 펜 그림을 곁들이며 그가 여행하며 겪은 영국인과 영국의 자연, 도시 등에 대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영국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차페크는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도 여행했다. 아일랜드는 위험하다고 해서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글 속 그의 농담과 해학을 읽으며 그가 쓴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난 이 유명한 체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은 것이 없다!)


영국인들의 근엄함, 그 속의 다정함, 유머, 영국의 자연, 문화, 산업 등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그였지만, 언제나 그의 관심과 애정은 그의 고국 체코로 돌아간다. 체코는 1939년 3월 나치 독일에 병합되며 사라지게 되지만, 차페크는 1938년 12월 크리스마스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이 비극을 직접 목도하지는 않았다.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통찰이 묻어나는 한 구절을 다음에 옮긴다. 


  영국에서 저는 거대함과 막강함, 부유함, 번영, 비할 데 없는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작고 미완성의 상태라는 사실이 결코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작고 어수선하고 불완전한 것은 그 나름대로 용감한 사명이거든요. 바다에는 세 개의 굴뚝과 일등석, 욕실을 갖추고 반짝거리는 황동으로 장식한 크고 호화로운 대서양 여객선이 있는가 하면, 공해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흔들거리는 작은 증기선도 있으니까요. 여러분, 이처럼 작고 불편한 고물 선박으로 살아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하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감사하게도 우리나 대영제국이나 같은 우주에 존재하고 있잖아요. 작은 증기선은 대영제국처럼 커다란 배만큼 많은 짐을 실을 수 없죠. 하하, 하지만 작은 증기선도 큰 배와 똑같이 멀리까지, 혹은 그와는 다른 곳까지 항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거기에 누가 타고 있느냐입니다. (186~18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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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수학 그리고 물리학의 여러 주제에 대해 잘 정돈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내 생각도 함께 정리해 볼 수 있다.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느낌도 조금 난다. 하지만 이 책은 물리학에 관한 교양 강의를 정리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수학과에서 수리물리학을 연구했는데, 이 책은 그의 평소 생각을 정리한 '수필집'이라고 머리말에서 언급된다. '수필집'이라는 말이 정겹다. 


다음은 수학과 물리학의 차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수학과 물리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물리학은 "실험과학"이지만 수학은 실험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수계에서 무한개의 소수들(prime numbers)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클리드(B.C. 300)에 의하여 증명되었고 그것은 앞으로도 변할 수 없는 수학적 진실이다. 하지만 한 물리학 이론이 수학적으로 아름답고 지금까지의 관측과 실험결과들을 잘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이론은 태생적으로 유한성(finiteness)을 갖고 있다. 관측과 실험으로 이론을 검증하는 것은 유한번이며, 앞으로 한 번이라도 실험결과와 이론이 일치하지 못할 때에는 일치하지 않는 정도와 상황에 따라서 그 이론은 고전역학과 같이 하나의 근사이론으로 살아남거나 아니면 수정되거나 완전히 포기될 수밖에 없다. 물리학자가 물리이론의 수학적 엄밀성보다는 물리적 진실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21~2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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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904호 : 2025.01.1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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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검은 글씨로 된 '시사IN' 표제가 슬프다. 하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사진이 일말의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지난 연말부터 이런저런 책을 읽어 젖혔다. 자꾸만 인터넷 뉴스를 켜 보게 되는 내게 다른 집중할 거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현실이 너무 답답하지만 역사라는 긴 안목으로 바라보면 조급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달이 길지만, 일 주일이 길지만 그래도 세월은 흐르며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이상한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기에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64년 만에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을 의결했다. "대한민국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나도 우리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문득 외쳐본다. "영광입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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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3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ueyonder 2025-01-13 21:56   좋아요 0 | URL
친절한 공쟝쟝님, 감사합니다! 공쟝쟝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