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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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사이토 고헤이齋藤幸平는 1987년생으로 현재 도쿄대학교 부교수이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마르크스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후 위기로 인류의 미래에 의문이 드리운 이때,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자본주의로는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 자본주의는 그 특성상 성장을 지속해야 하는데,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에 기반한 급격한 성장이 현재의 기후와 생태 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현재 제기되는 다양한 해법들, UN의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나 기후 케인스주의 등은 모두 미봉책일 뿐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그는 이제 탈성장(degrowth)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버리고 생태주의에 기반한 코뮤니즘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소련의 해체로 역사와 공산주의에 종말이 선언된 이때, 그는 코뮤니즘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코뮤니즘은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소유하여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운영하는 코뮤니즘이다. 


그는 말년의 마르크스가 당시의 생태주의와 중세의 공유(commons)에 기반한 전통사회 연구를 통해 인류는 자본주의를 거쳐 코뮤니즘으로 진행한다는 단선적 '역사의 진보'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 연구 결과는 어떠한 저작물로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연구노트와 편지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년에 마르크스가 수행했던 연구로부터 통찰을 얻을 수 있으며, 협동체로 번역되는 게노센샤프트genossenschaft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과격할지 몰라도 곱씹어 볼 만하다. 


책 속 몇 구절을 다음에 옮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과 생산의 변혁이다. 이 책의 입장이 기존의 탈성장파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기존의 탈성장파는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운동에 대한 반감을 신경 쓰느라 '노동'이라는 차원에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 기존의 탈성장파는 주로 소비 차원에서 이뤄지는 '자발적 억제'에 초점을 맞춘다. 절수.절전을 하고, 육식을 그만두고, 중고품을 사고, 물건을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유, 재분배, 가치관 변화 등에만 주목하여 노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맞서지 못하는 것이다. (290페이지)

생산이라는 영역에서는 공동체가 태어난다. 제8장에서도 살펴보겠지만, 그 공동체에는 더욱 넓게 퍼져서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노동에서 생겨난 운동에 정치까지 움직일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책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일상생활 차원의 '제국적 생활양식'이 아니라 그런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생산이다. 즉, 중요한 것은 '제국적 생산양식'의 극복이라는 말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제국적 생산양식을 극복해야 한다.

  단, 생각 없이 하향식 해결책에 의존하는 '정치주의' 모델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해두겠다.

  물론 정치는 필요하다. 기후 변화 대책의 제한 시간을 앞두고 하향식 대책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정치가 기후 변화와 맞서려면 자본에도 도전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그런 정치를 실현하려면 사회운동의 강력한 지원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294페이지)

  그[<자본>에 숨어 있던] 진정한 구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용가치 경제로 전환, '노동 시간 단축', '획일적인 분업 폐지', '생산 과정 민주화, '필수 노동 중시'. (297페이지)

오해하지 않도록 거듭 이야기하지만, 마르크스가 만년에 했던 주장은 도시 생활과 첨단 기술을 버리고 촌락공동체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생활을 이상화 할 필요도 없다. 촌락공동체 같은 생활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며 도시에도 기술 발전에도 높게 평가할 점은 많이 있다. 도시와 기술의 합리성을 전부 부정해버릴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현재의 도시에는 문제가 많으며 수정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상호부조가 속속들이 해체되었고,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지속 불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도시화가 도를 지나친 상태다.

  그 결과 도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약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기후 위기와 맞서 상호부조를 되찾으려면, 도시 생활을 바꿔야 한다. 도시를 버리고 산골에 틀어박힌들, 최종적으로 지구 전체가 '대홍수'에 휩쓸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낸 도시라는 공간을 비판하고 새로운 도시의 합리성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324-3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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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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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이후 두 번째로 읽는 소세키의 소설이다. 읽으면서 곁가지로도 여러가지를 느꼈다. 일단 <풀베개>보다는 훨씬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풀베개>는 내 생각에 소세키 소설 입문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행인>은 신문 연재 소설이어서 그런지 숫자로 나뉘어진 비교적 짧은 글들이 이어진다. 


책 뒤 표지에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있다. 소설에 나오는 당시의 삶을 지금 우리의 삶으로 읽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다른 한편, 100년 전에 일본인들은 벌써 이렇게 선진국의 삶을 구가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1912년~13년에 <행인>을 연재했다고 하니 제국주의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이고,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어 사라진 이후이다. 난세에 이렇게 평온한 삶을 이어가며 내면의 고뇌와 사념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럴 여건이 됐다는 것이리라.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떠오른다. 앞 부분과 크게 연결되지 않고 애매하게 끝나는 것도 느낌이 비슷하다. 우리의 황석영 소설에 비하면... 


책의 만듦새는 매우 좋다. 감탄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읽기를 이렇게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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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저자, 황국영 역자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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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류이치 사카모토(1952~2023)의 마지막을 정리한 책이다. 암 진단을 받은 후 그의 심경과 경과, 그리고 자서전 형식으로 정리하는 마지막 나날들이다. 인터뷰를 통해 구술한 것을 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2009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라는 책을 통해 정리했던 그의 삶 이후가 나와 있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그의 절친이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에 나오는 대사이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사카모토도 이 구절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영화의 이후 대사에 나오듯, 우리는 삶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하며 산다. 사실 모든 것은 유한하다. 문제는 그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책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왠지 나도 마지막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같다. 건강검진 결과를 보면 당장 병원에 뛰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의 이곳저곳이 이제는 낡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를 볼 수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사실 잘 알지는 못했다. 부분부분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 있긴 했지만, 책을 통해 마지막을 앞에 둔 그의 삶에 대한 마음가짐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배움이 됐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예술가--는 숨이 다하는 날까지 일--한편으로는 삶의 의미--를 지속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내가 직장에서 은퇴하면 세상에 무언가 내놓을 것이 있을까. 


책을 읽으며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찾아 들어 보기도 했다. 모르고 들어본 곡도 여럿 있고, 못 들어봤던 곡도 있다. 책에는 우리나라와의 인연도 몇 나온다. <남한산성>의 영화음악도 류이치 사카모토가 맡았었다. 


다음은 그를 널리 알린 영화음악 'Merry Christmas Mr. Lawrence'(1983)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오시마 나기사 감독) 영화에서 쓰였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배우로도 활약했다고 한다(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는 음악과 함께 하는 미술 전시나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는 등 매우 다재다능했다. 동일본 대지진 후 핵발전 반대 등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의 글 마지막 문장인데, 예술가에게 매우 적확해 보인다. 그의 평안한 안식을 빈다. 


책에 나오는 그의 말.

3.11 대지진 때에도 그랬지만,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충격을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강하게 듭니다. 100년에 한 번 겪을 듯한 이런 팬데믹은 분명 대부분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테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세계적 규모의 코로나 감염 폭발은 인간이 과도한 경제활동을 밀어붙이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지구 전체를 도시화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성을 미래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자연이 보내는 SOS에 의해 경제활동에 급제동이 걸린 이 광경을, 확실히 기억해둬야 할 것입니다. (303 페이지)

다만, 지금의 저는 하루에 몇 곡을 제대로 치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다려주신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라이브 콘서트를 해낼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아무래도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피아노 솔로는 13곡을 담은 60분 버전으로 12월에 먼저 온라인으로 공개된 후 NHK의 프로그램에서도 짧게 소개되었는데 언젠가는 총 20곡의 장편으로 편집된 ‘콘서트 영화' 버전도 선보이고 싶습니다.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촬영을 마치고 한 달 정도는 확실히 기력이 없다고 할까. 계속 몸 상태가 저조했습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연주를 남겼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3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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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14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이 양반이 벌써 갔다고요? 음... 거 뭐 바쁘다고... 승질도 급하지 거 참.

blueyonder 2025-04-14 18:56   좋아요 1 | URL
네, 23년 3월 28일에 타계했다고 나오니 얼마 전에 2주기가 지났네요.
누군가의 부고를 듣는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일입니다...

yamoo 2025-04-15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우환의 공간 전시장 음악을 담당한 적이 있었죠. 이우환의 제안이었지만 당시 사카모토는 아주 황송하게 작업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카모토는 이우환의 철학에 심취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도그럴것이 이우환은 일본 물파주의의 철학적 기조를 놓았던 사람..
어쨌거나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앨범을 완성하고 앨범 자켓을 이우환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우환은 흔쾌하게 응했고, 그의 앨범 자켓을 그려줬습니다. 오일파스텔로 낙서같은 선으로 이루어진 형상이었죠. 검색하면 나오니 한 범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 앨범 자켓을 액자화해서...사카모토는 그 그림 밑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어제 읽었던 글인데....류이치 사카모토의 앨범 포스팅을 여기서 보게 되네요!!

blueyonder 2025-04-15 13:53   좋아요 1 | URL
제 글에 적지는 않았지만 말씀하신 내용도 책에 나와 있습니다.
이우환 화백이 그린 앨범 자켓도 찾아봤습니다. 제가 미술은 잘 모르지만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네요.
 
격정세계
찬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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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쉐殘雪(1953~). 우리 식으로 읽으면 잔설이다. 녹지 않고 남아 있는 눈. 필명인데, 읽기 전에는 남성 작가인줄 알았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문단이면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일러일 수 있어 하지 않겠다.) 책은 본문만 681페이지이다. 문학가들의 이상향을 그린다는 평이 많은데, 동의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기도 하다. 이상향이란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알라딘 서재를 보면 이 세계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지 않나. 


찬쉐가 남성 작가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儀' 아저씨가 작가를 투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문학으로 인해 생활에서도 횡재한다.) 중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작가가 여성인 것을 깨닫게 됐다. 마침 '한마寒馬'가 소설의 중심 인물로 나올 때였는데, 그럼 한마가 작가 본인을 투영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의 삶이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 삶인가.) 


<XXXX>나 <XXXXX5>, <XX XX XX>와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감상을 나누며 삶에 적용하고자 애쓰는 문학청년들을 보면서 딴 세상 얘기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많이 언급되는 <XXXX>와 같은 책을 읽지 못한 나는 어떻게 삶의 '결계'를 풀고 그 수준 높은 '경지'에 들어가겠는가. (내가 과도하게 냉소적임을 인정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문학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소설을 한 문구로 요약하면 '문학청년들의 연애와 성장담'이다. 솔직히 기대보다 재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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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03-23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고 느낀 생각이 저랑 비슷하네요. 독서 모임 선정 도서 아니었으면 끝까지 안 읽었을 거예요.. ^^;;

blueyonder 2025-03-24 06:40   좋아요 1 | URL
저도 어떻게든 끝내야한다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 독서 모임은 없었지만요.

그레이스 2025-03-24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

blueyonder 2025-03-25 06:25   좋아요 1 | URL
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이상향에 대한 얘기인지 모르겠네요. ^^
 
시사IN(시사인) 제913호 : 2025.03.1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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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얘기들이 실려있다. 지금 우리 정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사부터 도대체 의대생, 전공의는 무슨 생각인지, 트럼프의 미국은 무슨 꿍꿍이인지까지.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어떻게 정신줄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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