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트다운 -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 한승동 옮김 / 양철북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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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잇따라 폭발하였다. 영화속에서만 보았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했을 때, 나는 너무도 어렸다. 그래서 핵발전이 어떠한 재앙을 가져올 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25년이 흐른 시점에서 다시 한번 대재앙이 일어났다. 그 당시 나는 텔레비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일본을 침몰시키고 더 나아가 지구를 침몰시킬 수도 있는 핵에너지를 우리는 왜? 위험부담을 떠않고서 계속 사용해야할까? 한동안 인터넷을 통해서 핵에너지에 대한 자료를 검색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오시카 야스아키가 쓴, 『멜트다운』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읽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숨가쁘게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충격적 사실 하나가 있다. 핵발전소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가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1979년 3월 28일 미국 서 스쿼해나 강 가운데 있는 스리마일 섬에서 핵발전소 2호기(TMI-2)에서 일어서 노심 용융(meltdown)사고가 일어났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원전 사고 이전에 2번의 대형 핵발전소 참사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쓰리마일의 참사는 체르노빌 사고로 반복되었고, 다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상식과 겸손함을 인간이 가지고 있었다면, 도쿄전력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철두철미한 대책을 마련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그러하지 못했다. 이미 2002년 ‘원전 문제 은폐 사건’이 있었으며, 또한 지진이 일어나기 4일 전인 3월 7일에는 종래의 상정치 대규모 쓰나미가 덮쳐올 가능성이 있다는 내부보고를 무시했다. 원전마피아들은 후쿠시마에 재앙이 닥쳐올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진이 일어나면 원자력발전소가 가장 안전하다.’라는 괴변까지 했다고 한다.

대형쓰나미로 인해서 냉각장치에 이상이 생기자, 후쿠시마 제1원전의 1호기에 안전장치인 복수기가 작동하자, 운전 요원이 수동으로 이를 중단시키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1호기를 운전 조작했던 직원 가운데 누구 하나 비상복수기를 실제로 작동시켜 본 경험이 없었다. 이러한 어이없는 일들이 천재지변과 함께 연이어서 벌어졌고, 후쿠시마 제1원전은 연이어서 폭발하는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사건이 진정되고 나서 사건의 주범인, 도쿄 전력은 자신들을 가해자가 아닌 대재앙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아니한 대응을 한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 총리가 탈원전의 수순을 밟자, 핵마피아들은 용의주도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민당의 아베는 간 나오토 총리가 핵발전소에 해수 주입을 중지시켜 발전소가 폭발했다는 거짓정보를 흘렸고, 간 총리는 위기에 빠졌다. 결국, 간 내각은 8월 30일 총사직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무능한 도쿄전력을 다그치며, 사태수숩을 했고, 더 나아가 일본이 탈핵의 첫발을 내딛는 기초를 닦았던 간 총리는 핵마피아에 의해서 밀려나버린 것이다.

책을 다 읽고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분명 앞으로도 핵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고가 계속된다면, 한나라가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전멸하는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사고는 계속 그 위력을 더해가면서 일어나고 있다.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심각한 고민을 해보았다.

김익중 교수의『한국탈핵』이라는 책에도 나와있듯이, 인류는 탈핵의 길을 걸어야한다. 너무도 강대한 핵마피아와 대결해야 하기에 탈핵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탈핵의 길을 열었던 일본의 간 총리가 핵마피아에 의해서 밀려났고, 후쿠시마 핵사고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탈핵의 길이 얼마나 멀고도 험난할지가 예상된다. 그러기에 거시적으로 탈핵에 찬성하는 정치인을 우리가 길러 내야한다. 투표를 할 때에도, 탈핵을 지지하는 정당에게 한표를 행사하고, 탈핵에 찬성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내가할 수 있는 거시적인 대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 우리가 핵발전을 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전기 때문이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전기수요를 줄이지 않는다면, 핵발전을 멈출 수 없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나는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서 작지만 중요한 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나의 샤워물과 아이들의 목욕물을 모아두었다가 변기물을 내리는데 사용하고 있다. 물론 소변을 보고서도 손씻은 물로 변기물을 내리려니 화장실에 냄새가 나고, 큰 딸이 ‘아빠는 왜? 변기물을 내리지 않느냐’라며 핀잔을 주기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일들이 모여 큰힘을 발휘할 것이리라 믿는다. 태산은 한삼태기의 흙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한방울의 물도 내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한방울의 물! 한칸의 휴지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겠다.

나만의 이러한 활동으로 과연 얼마 만큼의 효과가 있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미래세대도 계속 이러한 행동에 동참해야 보다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전유아교육 진흥원에서 ‘녹색환경’을 주제로 유아 체험전을 한다는 정보를 얻고는 딸과 함께 교육에 참여했다. 딸과 허부차도 만들어보고, 우유팩 올림픽에도 참여하여 상품을 받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례발표였다. 부모가 모범이 되어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보고 자란 자녀의 마음 속에 자연사랑이라는 싹이 트게 되었으며, 이것이 자라서 자녀가 환경공학과에 갔고, 이제는 ‘세계 물포럼’에도 간다는 내용의 발표였다. 그렇다! 우리의 가슴에 자연사랑! 에너지 절약의 씨앗을 뿌리자! 그리고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가꾸자! 내가 먼저 씨앗을 뿌리고,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도록 한다면, 우리 딸들도 이를 본받을 것이다. 이러한 싹들이 모여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지구를 만들 것이다. 지구를 침몰의 위기에서 구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주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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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7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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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많은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갔지만, 단 한명의 학생도 살려내지 못했다. 전라도 진도섬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갔다. 그런데 422여년전, 그 곳에서는 13척의 조선수군이 130여척(혹은 330여척이라고도 한다.)의 왜선과 맞서 싸워 승리했다. 비슷한 곳에서, 단한명도 구하지 못하고 온 국민을 공황상태로 빠져들게 만든 사건과 모두가 패할 거라고 생각한 전투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한 사건이 420여년의 사간차를 두고 일어났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밝혀 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책한 권을 집어들었다. 『난중일기』라는 책이었다.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라는 부재처럼, 420여년의 새벽을 직접보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난중일기』의 첫장은 이순신 장군의 아우 우신과 조카 봉과 아들 회가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장군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자식이었으며, 5남 3녀의 아버지였고, 한여자의 남편이었다. 강인한 성웅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인간 이순신이었다. 『난중일기』 곳곳에는 이러한 인간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가 곳곳에 묻어있다. 항시 어머니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그림움을 표현하고 있었던 인간 이순신은 억울하게 의금부 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으로 괴로웠을 몸을 이끌고 겨우 풀려난 1597년 4월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열한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다.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게 보였다. 인간 이순신의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면이 왜적의 손에 죽은 것이다. 그는 꿈속에서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 떨어졌는데, 아들면이 엎드려 그를 안듯하더니 깨었다. 그날 저녁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는다. 『난중일기』에는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감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오디로 갔느냐!

 

임진왜란 7년 전쟁 속에는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수많은 인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참아내며, 이 국토를 지켜야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에 이순신이 있었다. 혈육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며, 전쟁준비를 해야했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며, 그 슬픔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고 그래서 전쟁터로 향해야했던 사람! 그가 바로 이순신이었다.

 

태구련이 만든 장검에는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河)라고 씌여있다.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글귀처럼, 그는 수많은 왜적을 쓸어버리고 그들의 피로 이 국토를 씻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조선이 무너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항상 승리해야한다는 무거운 짐이 그를 괴롭혀서였을까? 『난중일기』 곳곳에 그는 아프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그러나 그러한 몸을 이끌고서 전쟁터로 나가 승리를 거두었다. 어리석은 정치인들에게 고문을 받아 몸이 아프고, 사랑하는 아들과 어머니를 잃어 가슴이 미어졌지만, 자신이 주저앉으면 조국이 무너지기에 그는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6일, 13척의 배로 왜적과 맞선다. 130여척의 왜선을 보고서 당당히 앞장서서 적과 맞선다. 부하장수들이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있자, 그들을 다독이며 적과 맞서도록 한다. 그리고 무서워서 뒤에서 구경만하고 있는 부하장수들에게 호통을 친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 김응서함을 불러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하였다.

 

얼마나 고독했을까? 얼마나 분노했을까? 그러나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 부하장수들은 목숨을 걸고 왜적에 맞서 싸운다. 이순신은 “이번 일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라고 일기에 적고 있지만, 하늘이 그를 도운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전쟁에 나서 모범을 보이는 리더의 모습을 보면, 많은 장수들이 감동을 받았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명량대첩에서 승리를 거두는 주요 요인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1598년 11월 19일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그는 적의 유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는 순국했지만, 그는 아직도 5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속에 살아 남아있다.

 

책을 덮고 다시 2015년 오늘로 돌아왔다. 아직도 저 바다속에는 세월호 희생자의 시신이 누워있다. 승객들을 무참히 버리고 자신이 먼저 살겠다고 도망친 이준석 선장과 너무도 어이 없게도 단한명도 살려내지 못한 우리의 무능함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긴다. 그러면 그럴수록 충무공 이순신! 그가 그리워진다. 그도 아버지였고, 아들이었으며, 남편이었다. 그에게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더 소중한 조국이 있었기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13척의 배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는 앞장서서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하여 수많은 조선 백성을 살려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리더십은 아직도 살아있다. 인간적이면서도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리더십이 우리의 가슴속에 살아 꿈틀거릴 때, 대한민국호는 절망 늪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한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들여다보며 그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우리가 장군과 같은 리더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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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도현신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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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한 나는 주변의 사물들을 역사와 관련시켜 대화를 이끌어갈 경우가 많다. 이럴때면, 상대방은 나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만물박사로 착각하곤한다. 이것이 역사학과를 나온 나의 장점이랄까.... 이책도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을 소재로 대화를 이끌어가기 딱 좋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1. 첫만남을 부드럽게 이끌어 주는 소재

우리가 먹는 수 많은 음식에도 많은 역사가 담겨져 있다. 처음 소개팅을 하는 자리거나, 친밀감을 형성하기에 필요한 대화 소재가 필요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이 책은 도움을 줄 것이다.

 

처음 만나는 이성과의 자리에서 '파스타'를 먹고 있다면, 이슬람교도가 전해준 이탈리아의 파스타 이야기는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연인과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간단한 음료를 마신다면, 나치 치하에서 탄생한 환타에 대한 이야기와, 오스만제국의 선물 커피와 크루아상 이야기,  메리 스튜어트와 오렌지 마멀레이드 이야기, 전쟁 식량 미숫가루이야기가 적당할 것이다.

 

연인과 사이가 진전되어 술을 마신다면, 몽골의 세계 정복의 산물인 소주와 설렁탕에 대한 이야기, 러시아인들의 애환이 담긴 흑빵과 보드카 이야기, 중국에 와인 문화를 싹 틔운 장건의 서역 개척이야기, 대항해 시대 선원들이 목숨처럼 아꼈던 럼주이야기는 더 좋은 안주꺼리가 될 것이다.

 

역사를 아는 것은 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나와 타인을 더욱 친밀하게 해주며, 나도 모르게 우리 모두를 인문학의 세계로 인도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2. 아쉬운점.

이 책의 1부와 2부의 분류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1부 난리 통에 탄생한 음식과 2부 전쟁이 남긴 음식 으로 분류한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또한 이들 음식들은 궂이 전쟁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필요성도 나는 느끼지 못한다. 1부와 2부 속의 이야기 배열도 특별한 의도가 있지 않고 단순히 나열한 듯한 느낌이 든다. 차라리, 음식을 통해본 세계사 라는 주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음식들을 소재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어떠했을까?

나 나름데로 한번 상상을 해본다.  상상은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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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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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사라는 일국사의 관점에서 우리역사를 바라보면, 우물안의 개구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좁은 틀에서 생각하다보니, 못보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김시덕이 이책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역학관계속에서 우리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물론, 저자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해양과 대륙의 역사로 바라보지만, 나는 이를 한국의 역사에 촛점을 맞추어 읽었다.

 

1.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항상 지정학적 요충지로 중요시된 것은 아니다!!

김시덕의 도발적인 주장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과거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서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지점으로 대륙세력이 강할 때는 대륙의 영향을 받고, 해양세력이 강할 때는 해양의 침략지로서 고통을 받는다고 반도적 숙명론을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반도라는 우리의 한반도가 지정학적 요충지로 떠오른 것은 바로 세양세력이 떠오르기 시작한, 임진왜란 이후의 일이라는 사실을 김시덕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과거 일본인 학자들의 도식적인 역사해석에 얼마나 우리가 갖혀서 생각했는지를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김시덕은 역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간다. 일본에서 시작된 파동이 한반도를 거쳐, 만주대륙에 전해지고 마침내는 중국대륙의 주인을 바꾸고, 타이완에 정성공 세력이 터전을 잡는 것으로 끝났다는 서술은 참으로 신선했다. 이러한 역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파편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이를 하나의 실로 꿰어서 설명을 해준 김시덕의 책은, 내가 새롭게 동아시아사를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너무도 당여하여 발견하지 못했던 예쁜 꽃을 김시덕의 눈을 통해서 발견한 느낌이다.

 

2.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어야했던 근세 조선

임진왜란 이후, 교류의 역사는 더욱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일본은 난학이 발전한다. 네덜란드라는 창을 통해서, 일본은 역동적으로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해서 이를 막기 위해서 다양한 준비를 했다. 한편으로는 잔인할 정도로 크리스트교도를 처형하고,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해서 영토 탐험과 아이누인 정복을 실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이라는 기존의 강대국에 기대어, 안락함에 취해있었다. 전쟁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편안한 시기에 일본은 외부의 충격에 대비해서 부단히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조선은 그러하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그 이후에 전개되는 서양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조선의 운명은 바로 안락함에 취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위기가 온다고 내부로 움츠려든다면, 이는 패망밖에 없다.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맞서서 운명을 개척할 때에만이 새로운 시대는 열린다.

 

3. 슬픈 한국의 역사의 시작

서구의 충돌에 대해서 일본은 온건한 개방을 주장하는 막부가 망하고, 막부타도를 주장한 신정부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 신정부의 핵심인 사쓰마번과 죠슈번은 이미 서양제국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자 그들은 태도를 180도 돌려, 서구화로 전략을 수정한다. 반면,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통해서 프랑스와 미국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깊은 은둔의 길로 빠져든다. 이 책에 '잘 진 것은 잘못 이긴 것보다 낫다'라는 명문장이 숨어있었다. 그래 우리는 잘못이긴 것이고, 일본은 잘진 것이다. 그 결과 한쪽은 잘못된 선택의 나락으로 빠져들과 다른 한나라는 서구화라는 선택을 통해서 근대국가를 건설한다.

  잘못 이긴 쪽과 잘진 쪽의 역사는  잘진 쪽이 잘못 이긴 쪽을 식민지로 만든는 것으로 이어진다. 중국에게 기대어 나라를 유지하려하는 사대주의적 생각은 서양의 강대국 즉,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에 기대어 독립을 유지하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강대국들 사이의 줄타기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외교절략도 자국의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결국 그러한 외교전략은 실패로 끝난다.

 

이 책은 한국사를 바라보는 눈을 동아시아전체로 확장시켜주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여러가지 이유중에 하나가 '교훈'을 얻기 위해서이다. 과연 지금의 위정자들은 과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역사를 알려고는 하는가?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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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 - 백범 김구 비서 선우진 회고록
선우진 지음, 최기영 옮김 / 푸른역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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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언제나 큰 나무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자처한 사람! 그러면서 임시정부가 어려울 때, 임시정부의 간판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임시정부를 구한 사나이!

 

그가 보고 싶어졌다. 그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 그의 독립운동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환국이후의 그의 행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뽑아든 책이 선우진 선생의 '백범 선생과 함께한 나날들'이라는 책이었다. 광복 직전부터 백범이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질 때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모셨던 사람! 그러면서, 백범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남은 여생을 살아야했던 사람! 그 사람을 통해서, 백범의 삶을 알고 싶었다.

 

1. 분단을 막기 위해서...

 

이 책은 1948년 북으로 향하는 백범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신분이, 이제 또하나의 승부수를 던지며, 북으로 향했다. 광복이 되고나서 스스로 홀로서지 못하고, 허리가 두동강이날 위기에 빠진 조국!! 그 조국을 위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북으로 갔을까? 그 일이 현실성이 있느냐보다는 그 일이 옳으냐, 그르냐를 먼저 생각하신분! 그러하기에 친일파들로서는 너무도 무모해보이는 독립운동을 자신의 일생을 바쳐가면서 하셨으리라....

 

어쪄면, 독수리작전을 준비하고 본국에 투입을 하지 못한 시점부터, 백범은 예견했을 것이다. 조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함을...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서 '38도선을 배고 쓰러질 지언정 일신의 안일에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 협력하지' 않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견대로 그가 죽은 1949년 6월 26일! 그로부터 만 1년 1950년 6월 25일에 민족의 비극,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것을 걱정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백범을 수행한 선우진의 시선에서 본, 남북협상 당시의 북한은 이미 김일성에 의해서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있었다. 선우진은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를 보면서 6.25를 직감했다.

 

요즘, 백범의 남북협상을 '북한정권에게 이용만 당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분단을 막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분단을 막지 못했기에 민족의 비극, 분단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이아닌가!

 

 

2. 백범의 죽음

 

당시 이승만 정권에게는 백범은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었던 것인가 보다! 정계에서 은퇴하고 한가로이 휘호를 쓰며 생활하고 계시는 그분을 정권이 깊숙히 관여하여 암살하였다. 과거 나는 백범 김구의 위인전기를 통해서, 안두희는 공산주의자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두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육군 소위였다. 그리고 친일파였다. 더욱 어이 없는 것은 헌병대로 끌려간 안두희가 사무실에서 손님마냥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피가 꺼꾸로 솟아 오르는 듯했다.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신성모 국방장관,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장은산 포병사령관, 김창룡 소령, 김병삼 대위,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 김성주 서북청년단 부단장, 정치 브로커 김지웅 등이 가담하고, 홍종만 안두희 등이 하수인이었다는 정황에 따른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최고 책임자, 이승만을 몰랐을까?

 

이승만 정권하에서, 백범이 누워계신 효창원에 도둑참배를 해야했고, 백범과 관계된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야했으며, 백범일지를 읽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가슴쓰라린 일이다. 비열한자가 승리하고 올바른 정도를 가신분이 고통을 받아야하는 역사를 언젠가 바로잡을 수 있을까?

 

노무현 정권에서 10만원권 지폐에 백범을 그려넣기로 했지만, 정권이 바뀌고 10만원권이 발행되지 않았다. 그들은 백범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백범의 정신이 살아, 제2, 제3의 백범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을 그들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은 대한민국인이 맞을까?

 

백범의 암살을 막지 못한 선우진은 죄인처럼 살아갔다. 가장 존경하는 분! 그분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기에 너무도 그는 큰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짊어져야하는 사나이! 그의 눈을 통해서 백범에 대해서 미처 몰랐던 면모도 새로 알았다. 정치적 라이벌이라서 이승만과 백범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거나, 혹은 서로 경쟁심이 강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백범은 '환영 국부 김구 주석'이라는 현수막을 떼라고 하면, '앞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평생 대한민국의 문지기를 자처하신분! 낮은 곳에 임하시는 그 분의 삶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면서, 선우진은 " 내가 살기 위해서 대의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좌우명을 가졌다고 한다. 너무나도 암혹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지금, 백범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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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2-02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삼웅 선생님의 김구 평전도 읽어볼만 합니다. 허나 김구에 대한 저평가는 수구세력 뿐만 아닙니다. 자칭 맑스 레닌주의자들이나 트로츠키주의자들 그리고 녹색당 노동당
쪽 좌파들도 김구를 저평가 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오히려 일베가 만든 단어 킬구를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더 많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제가 페북에다 김구 기념관 갔다온 사진을 올리니 어떤 녹색당 다원은 대놓고 킬구드립을 치기까지 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한 평생을 독립과 조국해방을 위해 바쳐온 분인데 킬구드립은 너무 심한것 같네요. 참고로 전 김구선생을 독립운동가로서 존경하지만 여운형 선생님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강나루 2018-02-02 15:52   좋아요 0 | URL
좌와 우를 떠나서 독립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분을 제대로 평가해야한다고 봐요 몽양도 독립과 통일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친 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