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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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300~600페이지를 넘다드는 책들을 읽었다. 너무도 두꺼운 책들을 읽다보면 너무도 먼길을 항해하는 피로감이 밀려온다. 이제 가볍게 나들이를 갈 수 있는 200페이지 내외의 책을 꺼내들었다. 과연 연휴기간 동안 들고다니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를 놀라게하는 새로운 지식의 보고였다. 과연 무엇이 나를 그토록 놀라게 했을까?

 

1. 나무에 대한 상식을 뒤집다.

 보통 나무는 살아있거나 죽어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나무를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부분은 껍질에서 안쪽으로 10cm 정도밖에 안되며, 모두 살아있는 것은 껍질 주위 1cm 밖에 되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고목의 껍질은 살아있는데, 고목의 안은 썩어가는 것을 흔히본다. 이를 살리려 고목안을 연기로 소독하고 시멘트로 메우기도 한다. 이러한 치료법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책을 통해서 그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아는 만큼 이해가 되는 법이다.

  회양목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보통 나무도장을 만들때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회양목은 우리주변에서 흔히 보던 정원수였다. 책속의 사진을 통해서 회양목을 확인하고 자세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회양목을 찾았다. 과연 학교에서, 정원에서 흔히보던 작달막한 나무였다. 흔히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마련이다. 이름없는 나무에서 회양목은 의미있는 나무로 다가왔다.

 

2. 나무도 사랑하고 슬퍼하며 갈등을 겪는다.

  연리지와 비익조를 아는가? 비익조가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한쌍이 같이 몸을 의지해야 날수 있다는 상상의 새라면, 연리지는 서로 사랑하여 두 나무가 하나가되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무이다. 가지가 뭍을 경우, 연리지이고, 몸통이 붙을 경우, 연리목이된다. 이를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으로 의인화한다.

  갈등이라는 말을 아는가? 갈은 칡을 뜻하고, 등은 등나무를 뜻한다. 다른 나무를 타고 혹은 감고 올라가서 태양빛을 독점하고, 다른 나무를 말라죽게하는 나무이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모습과 너무도 유사하다. 단순히 갈등의 한자를 해석하여 뜻을 이해하던 것이, 나무의 세계를 이해하고 살펴보니,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탁월한 단어라는 생각이든다. 또한가지 겨우살이를 아는가? 다른 나무에 붙어서 살면서 다른 나무의 수액과 양분을 빼앗아 먹는 기생충 나무이다. 그 나무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나무는 무척 고통스럽다. 인간사에서 보이는 모습이 나무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씁쓸하다.

  나무도 굶주리고 슬퍼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동물원의 동물들이 광활한 야생의 세계에서 벗어나, 좁디좁은 우리안에서 슬프게 살아야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식물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렇다. 분재를 당한 식물은 너무도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당신은 나무를 사랑한다며 분재하지만, 나무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란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고로쇠 수액을 먹은 적이 있는가? 이 또한 나무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다. 봄이 다가오자 자신이 비축한 양분을 올려보내 고로쇠나무를 생동하게 하려했으나 인간은 이를 뽑아 마셔버린다. 고로쇠 나무에게는 인간이 흡혈귀로 보일 것이다.

 

3. 옥토끼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가 아니다.

  어제 가족이 속리산 법주사에 갔다. 막내딸이 계수나무 잎이라며 잎을 들어 사탕냄새가 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달속에 사는 계수나무를 내 눈으로 직접본것이다. 막내딸이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계수나무잎 냄새를 맡아보란다. 솜사탕냄새, 꿀냄새가 났다. 우리가족은 막내에게 계수나무에 대해서 배웠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법주사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달에 있는 계수나무는 계수나무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계수나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옥토끼와 관련이 있을 수 없다. 계피나무, 육계나무도, 월계수도 계수나무가 아니다. 계수나무는 정원수로 심는 '목서'이다. 하마터면 잘못된 지식으로 자신을 뽑낼 뻔한 잘못을 이책이 막아주었다.

 

4. 나무에 얽히 역사를 바로 잡아주다.

  교과서에서 매향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단순히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올때를 대비해서 그대 사용한 향나무를 바닷가에 뭍는 행사라고 매향을 이해했다. 그런데, 향나무를 뭍으면서 고려인들은 향나무, 소나무, 참나무를 뭍어 질좋은 침향을 얻길 바랬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향나무나 소나무를 아무리 오래 묻어둔들 질좋은 침향이 될리가 없다. 교과서에서 피상적으로 알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고증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생각하는가? 보통 역사적 스토리와 등장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이 당시 기록과 부합하는가를 주로 따진다. 그런데 사극에 등장하는 나무가 과연 그시대 그 장소에 있었던 나무인지는 살펴보았는가? 플라타너스나 일본의 금송이 사극에 등장한다면 이는 엄청난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사극을 보아왔다. 저자는 한발자국 더 나가서 문화재 주변에 있는 나무가 과연 그 문화재와 어울리는가도 질문한다. 임진왜란시기에 활약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문화재 옆에 일본의 나무가 있다던가? 도산서원에 일본의 금송이 있다면 과연 이를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있는가? 아는 만큼 보이는데, 알지못하니 눈뜬 장님이었다. 우리는.....

 

5. 그러나 동의 못하는 것들...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의 제작지역이 반드시 한반도 라고 단정할 수 없다. 라는 말을 한국학자의 글을 통해서 들으리라고 생각해보았는가? 박상진교수는 나무전문가 답게 목조반가사유상이 한반도와 일본에 서식하는 '소나무'이기에 그것만으로는 한반도에서 제작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탁월한 지적을 한다. 그러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비교해 본다면 한반도에서 같은 장인이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지적해두고 싶다. 나무만 본다면 박상진 교수의 지적이 일리가 있어보이지만, 나무 이외의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본다면, 일본의 목조 반가사유상은 한반도에서 제작되어 일본에 전파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박상진교수는 '훈도시 차림의 일본병사들'이라는 표현을 임진왜란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다. 물론 농담조의 표현이라고도 볼수도 있지만, 당시 일본병사는 얼굴은 물론, 손목까지 보호하는 갑옷을 입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거북선은 일본배를 당파를 사용해서 격파했을까? 박상진 교수는 나무전문가답게 배에 사용된 나무의 재질을 설명하며 치밀하게 논증한다. 즉 일본배가 편백나무를 주로 사용하는데 반해서, 우리의 판옥선은 단단한 소나무를 사용하고, 중요부에는 아주 단단한 참나무를 사용해서 배를 만들었기에 충분히 당파로 일본배를 침볼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도 물론 이에 동조한다. 그러나 거북선을 연구한 학자들 중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이 꾀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료를 찾아보고 결론을 내려야겠다.

 

  오랜만에 가벼우면서도 즐겁게 읽히고, 깊은 여운이 남는 책을 접했다.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넓어진 느낌이다. 이제 문화재답사를 가면서, 사극을 보면서 보다 많은 나무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 나무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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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 변혁의 정치 리더십 연구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지음, 조중빈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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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이라는 제목을 보고 역사를 통해서 탁월한 리더십의 근원을 찾아가는 책으로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페이지에는 여러사람의 추천글이 있었다. 이명박과 정동영이라는 정치인과 총리후보로 지명되었다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낙마했던 문창극의 추천사가 보였다. 추천한 인물들을 보니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이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썼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과연 이책은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이며 추천사를 쓴 인물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추천사를 썼을까?

 

1. 히틀러는 리더인가?

  이 책의 도입부에 저자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의 수업시간에 이루어진 토론을 소개한다. '히틀러는 리더인가?'라는 주제에 학생들은 논리적인 답변으로 '그렇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는 단오하게 히틀러는 리더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국민을 지배했을 뿐 이끌지 못했다. 그는 통치자(Ruler)일뿐 지도자(Leader)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통치자는 신민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어서 지도자와 추동자 사이에 힘을 실어주는 필수 불가결한 유대가 없다. 겉으로는 통치자가 강해보이고 절대 무너질 것 처럼 보이지 않는 철옹성으로 보이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진 통치자들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많이 보았다. 특히 연산군의 경우 수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왕을 대리해서 일을 보러 가는 내시들에게도 길바닥에 엎드리도록 한 겉모습에서 그의 권력이 탄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궁궐을 지키는 내시들은 수채구멍으로 도망쳤고, 왕옆의 승지들도 왕을 내팽겨치고 도망쳤다. 연산군을 지켜줄 사람은 흥청의 기녀들과 장녹수 뿐이었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통치자가 아니라 팔로우들과 소통하는 지도자들이다. 노무현이 죽고 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음속에 살아있는 대통령으로 여기며 그리워하고 있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리더십은 통치술보다 강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 역사속에서 진정한 리더는 몇명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두소지인(斗筲之人)을 어떻게 논의에 끌어들일 수 있느냐며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별볼일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앉힌 것도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통치자가 부당한 통치를 하도록 내버려둔 많은 국민들의 뼈아픈 반성이 없이는 역사의 진보는 없다.

 

2. 나폴레옹은 리더인가 통치자인가?

  이 책에는 다양한 리더와 통치자들이 소개되어 있다. 프랑스 대혁명의 결실을 통채로 넘겨받은 나폴레옹 시기의 공립학교의 모습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엄격한 규율을 통해서 길러지는 프랑스의 학생들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되기 위한 사관학교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파시즘적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리더가 아니라 통치자였다. 그의 나폴레옹 법전(Civil Code)을 빼면 그는 철저한 독재자였다. 아니, 나폴레옹 법전에도 여성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어있다. 프랑스혁염의 과감한 진보성을 담기보다는 온건한 내용의 법들이 나폴레옹 법전에 정리되어 있다. 나폴레옹은 혁명의 달콤한 결실만을 얻은 통치자들일 뿐이다.

  프랑스대학명의 나라의 국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통치술을 가진 리더를 원한다. 그리서 번즈는 프랑스에서는 지도자와 추종자가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리더십은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을 채택하면서 보인 집단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는데, 왜? 프랑스에서는 그러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프랑스 인들은 강한 통치술을 자랑한 나폴레옹과 드골을 그들의 리더로 뽑았다. 흔히 프랑스인들을 세상에서 가장 통치하기 힘든 국민이라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자, 프랑스대혁명에서 부터 최근의 68혁명까지!! 엄청난 혁명을 프랑스인들은 일으켰다. 프랑스인들은 자율과 자유를 원했고, 이러한 국민을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제4공화국을 비롯한 많은 지배자들은 혼란만을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강한 리더십을 통한 안정을 원하게 된다. 이러한 욕망을 이용해서 강한 통치자들이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그러한 통치자들은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인들에 의해서, 혹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 권좌에서 물러난다. 이러한 고리를 제대로 끊지 못한다면, 프랑스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탁월한 리더가 나오기 힘들지도 모른다.

  번즈는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리더십을 설명하는데 많이 인용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보수주의자들은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에서 하위 단계인 생물학적 안전에 주로 주목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상위의 단계인 사랑과 귀속감 자아실현에 주목한다. 이는 우리사회 모습과 일면 닮아있다. 보수당들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안보위기론에 의존하려한다면, 진보주의자는 이를 뛰어넘어 남북한의 사랑과 한민족으로서의 귀속감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인류 평화라는 담론으로 까지 나아간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다. 사회혼란은 '안전'이라는 욕구를 분출시켜 보수파가 주도권을 잡게한다. 그리고 통치자가 권력을 잡는다. 그 안전이라는 욕구가 충족되고 나서는 다시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욕구가 분출되어 통치자를 몰아낸다.

 

3. 동의할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러서인지 우리 교과서의 표현과 다른 용어를 써가며 번역한듯한 구절들이 보인다. 그중에 하나가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라는 용어이다. 흔히 미국 독립혁명 이후에, 연방주의와 분권주의자가 대립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공화주의자'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혼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해주어야 이해가 빠를 텐데 이러한 설명이 전혀없다. 번역자가 이를 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번역자는 충실히 번역만을 했을뿐, 독자를 위해서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논문집을 모아놓은 듯한 이 책은 독자의 이해를 위한 친절한 안내를 포기한 듯 보였다.

  번즈는 리더십은 필연적으로 집단적인 조합체이다. 라고 규정하고하버드대학교를 개혁한 레십스 엘리엇의 사례를 든다. 그러나 레셉스가 어떻게 집단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것도 이 책의 저자에게 느끼는 불친절함 중에 하나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공포정치로 치닫게된 원인을 번즈는 왕의 국외 탈출시도 실패에서 찾는다. 그는 박애주의가 실해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공포정치는 프랑스 내부에서 기인하것 처럼 서술하고 있다. 물론 왕에 대한 실망감이 공포정치의 출현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스모킹건이 되지는 않는다. 공포정치가 출현한 스모킹건은 바론 반혁명세력의 침략에 있다. 외부의 침략은 내부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광풍을 몰아치게 한다. 이러한 예는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적군파 사건은 대표적 사례이다. 산속에 들어간 극단적 공산주의자들은 산밖에 있는 그들의 '적'에게 공포감을 얻었다. 그것은 내부의 결속을 위해서 반역할 것으로 보이는 자들을 철저하게 살해하는 광폭한 모습으로 이어졌다. 1만 5천리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에 안착한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그들을 둘러싼 장개석 군대의 공포속에서 정풍운동을 했고, 수많은 동지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1930년대 만주에서 불어닥친 민생단 사건의 비극은 외부의 공포가 내부에 얼마나 무서운 극단주의를 낳는지를 보여준다.

 

  번즈는 천재들이 결손가정 혹은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내가 읽은 교육학책의 내용과 상이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발달한 뇌과학에 따른면 뇌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껴야한다. 행복한 가정이 아이들의 뇌발달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천재들이 개인적 약점과 가정의 결손 혹은 불행이 있었다면, 이것은 그들의 열등감을 탁월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탁월한 예술작품을 낳기 위해서 우리자녀를 불행에 빠드려야할까? 아니다. 헤르만 해세는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며 많은 고통을 당했으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하여 고아원에 보내지기도 했다. 그러한 그의 고통은 '수레바퀴밑에서'라는 작품을 낳았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고통은 해세를 성년이 되어서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나의 자녀가 탁월한 예술작품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불행한 삶에 빠지도록 모험에 나설것인가? 아니다. 아이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하나의 인격체이다. 그 인격체가 스스로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이책에서는 공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한다는 뉘앙스의 글도 있다. 발명왕 에디슨은 공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창의성을 발휘하는 위대한 발명가가 되지 않았는가? 이밖에도 기존교육에서 벗어난 수많은 창의적 리더들이 많다. 그럼 공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하는 존재인가? 규율을 강조하는 지금의 학교문화는 바뀌어야한다. 그리고 창의성을 길러내는 교육이 이뤄져야한다. 그렇다고 공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 창의성을 기르는 길이 될 수는 없다. 초기 과학적 축적이 적을 때는 공교육을 통하지 않고 창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와 같이 과학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교육을 통하지 않고 고도의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더욱이 아인슈타인이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에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단편적 과학사에 대한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공부를 잘했으며,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갑자기 전학을 하면서 벌어진 일들을 공부를 못한 아인슈타인이 탁월한 천재과학자가 되었다는 신화를 만드는데 이용했을 뿐이다. 하루아침에 로마제국이 완성되지 않는다는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번즈는 법제도를 통해 투쟁을 억제하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반드시 맞는 말을 아니다. 조선의 왕들 중에서는 안정된 제도에서 왕이 된자가 현명치 못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왕이 연산군이다 그는 적장자로서 세자교육도 제대로 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 최대의 폭군이되었다. 수많은 신하를 죽였으며, 갖가지 음행을 일삼았다. 그런데, 변칙으로 왕이 되었음에도 최대의 성군이 되경우도 있다. 바로 세종이다. 적장자 계승이라는 원칙을 벗어던지고 왕의 세번째 아들 충령이 왕이되었다. 그가 조선의 명군이되었다. 변칙이 정법을 때로는 뛰어넘기도 한다.

 

4. 변혁적 리더십!!

  이 책에서는 변혁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수에즈 운하로 성공한 레셉스는 파나마 운하에 도전한다. 과거의 성공에 취한 레셉스는 수에즈 운하의 경험을 그대로 파나마 운하에 적용한 것이다. 지형이 전혀다른 두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에 취해서 자신의 앞날을 파멸에 몰아넣은 것이다. 수에즈 운하로 인해서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고, 레셉스는 교만에 마져 파멸하고 말았다. 레셉스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제 상황만 보지 않고 심층적, 근본적 요구에 반응하여 해결책을 추구해야만 했다. 변화를 추구해야만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얼마나 변화를 싫어하는 자들이 많은가? 변화하는 수업환경 속에서 앞으로는 학생중심의 수업을 해야한다는 전달연수를 교육청에서 진행한 적이있다. 그런데, 나이든 어느 역사교사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해서 뭐하겠어! 젊은 사람들이 해얗지. 나 같은 사람은 몇년있다가 명퇴해야지'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교사에게 '그럼 빨리 명퇴하시죠. 지금 당장'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변화하지 않고 기존의 것을 되풀이하려고만하는 퇴물들과 같이 일을 해야만하는 자는 무척 고통스럽다.

  변혁적 리더십은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 움직인다. 즉 준거의 틀이 그들의 욕구에 부합될 때만 변화는 가능한 것이다. 번즈는 리더십은 혼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학교에서는 리더십만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도자보다 수많은 팔로우 즉, 추종자가 있다.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팔로우들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팔로우들을 리더는 각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며, 팔로우가 때로는 리더가 되거나 리더에게 영감을 주어야한다. 그 대표적 예가, 촛불혁명일 것이다. 처음에는 탄핵에 주저하던 국회의원들이 촛불의 힘을 깨닫고 나서는 탄핵에 동조했다. 이것이 촛불혁명의 서막이었다. 리더없는 시위가 사회를 변혁하고, 국회위원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했다. 리더십의 역설일 것이다.

 

5. 진정한 가치 무엇인가?

  '신의 의지'를 믿으며 통치술을 발휘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펠리페 2세이다. 그는 과학적 사고보다는 신의 의지를 믿었다. 그리고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에게 그의 무적함대는 괴멸되고 만다. 맹복적인 믿음은 시야를 좁힌다. 이렇게 시야를 좁히는 경우는 503도 만찬가지 일 것이다.

  그럼 어떠한 믿음, 혹은 가치가 참다운 리더십발휘에 도움이 될까? 번즈는 '힘을 실어주는 가치'를 제시한다. 즉, 가치가 강할수록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힘이 실린다는 말이다. 최근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공통의 이야기는 사피엔스를 강하게 만든다. 네안데르탈인보다 강할 것이 없는 사피엔스가 그들을 박멸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은 공통의 이야기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이용해서 대중을 조직화할 수 있었다.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의 혁명은 번번히 납치당한다. 강한 가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중을 하나로 뭉치게한다.

  이러한 가치나 사상은 행복을 생산해낼 수 있을 때만 무기로서 효과를 지닐 수 있다. 번즈는 최고의 가치를 '행복'에 두고 있다. 책의 곳곳에 자신의 아이들 키우면서 터득했던 지혜를 리더십에 적용해서 설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가정적인 남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의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교조화된 사상이 아니라면, 행복을 생산하는 가치라면 그 가치는 충분히 무기로서 효과를 지닐 것이다.

 

6. 대중과 리더와의 관계는?

  번즈는 힘은 그 힘에 지배 받는 사람들이 그 힘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강해진다. 라고 지적한다. 물리적 힘보다 강한 것은 사람들의 동기라는 지적이다. 한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와서 욕을 퍼부었지만, 부처님은 주인의 음식을 손님이 거절하면 그 음식은 주인의 것이라는 예화를 들려주며 자신은 그욕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지배자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그 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강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약자의 굴욕 때문이다. 이점을 우리가 명심한다면 독재자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탁월한 리더는 팔로우들이 따라오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이책에서 많이 예로든는 루즈벨트는 협력자로 민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과 서로 힘을 실어주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503이 방향 없는 선구자가 되려했다면 mon은 협력자가 되려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과연 어느 리더십이 우리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번즈는 변혁적 리더십은 행복을 추구하는 기회를 확대해야한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그리고 지구상의 절대빈곤을 지적하며 이를 해결할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더십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책의 서문을 열었던 번즈! 그는 진정한 리더십이 해결해야할 과제를 인류복지 증진(행복)이라고 절규하고 있다. 지구상의 많은 인류가 빈곤에 시달리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글에서 대학자 다운 풍모가 풍겨나온다.

  다시 추천글로 가자! 그럼 추천글을 쓴사람들 중에서 진정한 리더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이 추천글에는 존재하는가?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지구의 시민들을 구원할 자가 과연 그들중에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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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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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역사를 바라보는 신선한 충격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신작 '호모데우스'도 나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분량을 생각해서 천천히 읽으려 했으나, 아는 분이 자신이 책을 샀다며 나에게 떠 넘기듯이 빌려주었다. 빌린 책이라 소중히 읽고 돌려주려, 책표지도 종이로 깜싸고 열심히 읽었다. 식탁위해서 읽던중 막내가 책에서 낙서를 했다. 막내아이를 혼내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읽는 내내 방대한 내용의 글을 알기 쉽게 자세히 설명하는 유발 하라리의 내공에 감탄했다. '호모 데우스'는 과연 '사피엔스'의 아성을 넘어 미래 나갈 수 있을까?

 

1. 사피엔스의 후속작

  '사피엔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호모 데우스'를 읽었을 때의 충격은 전작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라는 사람의 역사관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의 탁월한 식견에 새삼 놀랐다. 그러나 '사피엔스'의 충격 덕분에 '호모 데우스'에서의 충격은 예상되었고, 전작만큼의 충격을 안겨주시는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호모 데우스'가 전작만 못하다는 말은 아니다.

  '사피엔스'를 출간하고 한국에 온 유발 하라리는 한국 독자들로부터 미래 사회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을 받았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4:1로 패한 상황이라 우리들의 충격은 상당했고,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예상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았다. 아마도 이때부터 사피엔스가 멸종하고 '호모 데우스'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집필준비에 들어간 것 같다. 위대한 질문이 있어야, 위대한 작품이 있는 법이니까....

  이 책은 탁월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기존의 질병과 전쟁을 극복한 사피엔스는 평화를 쟁취했다. 그 다음은 신이 되려는 도전을 하게 된다. 제1부와 제2부는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서 네안데르탈인을 박멸하고 지구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러한 사피엔스의 무기는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것이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서 신을 창조해 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올라선다. 바로 인본주의 혁명이다. 그런데, 사피엔스가 발전시키는 과학은 사피엔스를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 바로 인본주의가 흔들린다. 사피엔스의 가치는 떨어지고, 업그래이드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할 것이다. 바로 신이된 인간! '호모 데우스'의 출현이다. 오지 않은 미래를 하라리는 냉혹하게 직시하고 있다. 그는 최신 과학에 기초해서 자신이 생각해는 미래사회를 그려나갔다. 너무 비관적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사회에서 모순을 치유하면 새로운 형태의 모순이 나타나거나 발견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는 도전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알고리즘에게 사육될 수도 있다.

 

2.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는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유발 하라리는 지적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미래를 말하는데 과거에서 부터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철없는 정치인이,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역사에 무지한자들이 보통 이런말을 한다. 이들에 대해서 하라리는 '과거에서 해방되어 다른 운명을 상상하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공부해야한다고 일갈한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겠는가? 과거 수구 세력이 역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무시하고, 독재를 미화하려했다. 역사가 미래를 설계재료이기에 자신들의 과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역사의 힘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과거를 망각하길 바라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과거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역사를 직시한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종교에 대한 비판을 터부시한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냉혹하게 해부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셈족 언어에서 '이브'는 '뱀' 혹은 '암컷뱀'을 뜻한다. 즉, 인간은 파충류에서 진화했으며, 그 애니미즘의 흔적이 이브의 이름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자신이 파충류에서 진화했음을 깨달을 때, 신의 권능은 부정되고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스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신이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믿음을 갖는 순간 사피엔스는 신에 복종하게 된다. 그 복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인류는 지금도 중세사회에 살았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하지만 일신론자들은 죽는 날까지 이런 유아적 망상을 붙들고 산다.'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있다고 일신론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유발 하라리!! 유대인인 그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수인 그가 동료 유대인들에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일신교인 유대교를 벗어난 말들을 그의 책에 쓴 것이다. 이때 '그럼 유발 하라리는 유대교도가 아니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유발 하라리가 지적했듯이 사피엔스는 진화론을 가르치면서도 교회에 나가 회계를 하기도 하는 존재이니, 일신교를 비판하면서 유대교를 믿을 수는 있을 수도 있다.

  하라리는 이슬람교, 유대교, 자유주의, 공산주의도 일종의 종교라고 단언한다. '사피엔스'에서도 지적했듯이, 유발 하라리는 종교의 개념을 확장한다. 종교의 일반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 종교의 속성을 가진, 신이 없는 종교인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인본주의까지도 종교로 본다. 즉, 우리가 신념이라 믿는 것들이 사실은 종교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이 벽을 뛰어 넘어야 그 넘어를 볼 수 있다. 많은 자들이 그 벽앞에서 주저한다. 그 벽을 뛰어 넘었을 경우 자신이 감당해야할 따가운 눈총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그 벽을 무시한다. '무문관'!! 벽을 벽으로 보지 않으면 벽은 더이상 벽이 아닌 것이다.

  과거라는 벽에 갖혀 고생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숙제로 '잔디씨 모아오기'가 있었다. 내가 다녔던 시골 초등학교는 학생들을 운동장 풀뽑기 부터 시작해서 각종 잡일에 동원했다. 그 중에서 '잔디씨 모아오기'는 정말 지겨운 노동이었다. 편지봉투 하나를 채워오기 위해서 우리들은 풀밭을 헤매야했다. 그런데, 그 잔디를 심어야한다는 '미의식'은 유럽 중세말 귀족의 부와 사치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서양도 처음에는 잔디를 키우지 않았다. 물론 우리도 마당에 잔디를 키우지 않았다. 마당은 고추를 말리고 잔치를 벌이는 등의 다용도 장소였다. 잔디는 무덤에나 있는 풀이었다. 그런데 잔디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 재력이 필요하다. 잔디를 키우는 것은 부르주아의 부와 사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세말!! 유럽 부르주아의 미의식이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구속했다. 과거를 직시하니, 서구의 족쇄에 묶여 괴로워했던 나 자신이 측은해보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다. 공식보고서가 객관적 실체와 충돌하면 객관적 실체가 물러나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그렇고, 우리 주변에서 만들어졌던 가짜문서들이 그 예이다. 예전에 하지도 않은 일들을 한 것처럼 문서를 적어달라는 듯한 요구를 거절했을 때, '다들 아무말 하지 않는데 왜? 문제를 제기하는 거야!'라는 듯한 눈총을 받았다. 그러나 당당한 나의 주장을 관철했다. 가짜 문서를 줄이는 것도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한걸음일 것이다.

 

3. 알을 깨고 나오다.

  유발 하라리의 거대 담론 속에서 가을걷지 후에 떨어진 낱알 처럼, 수많은 깨달음의 낱알들이 이 책에서 흩어져있다. 특히 한국 독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배치한 듯한 인상을 주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예시들과 한국 독자를 위한 머릿글들은 흩어진 낱알을 줍는데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조직력이 없는 군중의 혁명은 납치 당한다.'라는 탁월한 지적은 나의 가슴에서 화살을 맞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루마니아인들이 차우셰스쿠를 몰아냈던 부쿠레슈티 광장 시위는 납치당했다. 2011년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 혁명도 납치당했다. 그 뿐인가? 4.19혁명도 87년 6월 민주 항쟁도 납치당했다. 혁명의 피를 흘린 학생들은 권력을 잡지 못했으며, 보수세력이 조직화된 힘을 이용해서 집권했다. 혁명은 납치 당했고 그 혁명의 결실을 되찾기 위해서 수많은 민주화 투사들이 다시 투쟁해야했다. 그러나 우리의 '촛불혁명'은 달라야한다. 조직화되지 않은 촛불 시민들이 혁명의 결실을 맺고 그 열매를 후손들에게 전해주어야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과거의 낡은 알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와야한다.

  우리 주변의 소위 배웠다는 식자들 중에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민족을 외치면 마치 '나치'를 보는 것과 같은 눈빛을 보내고, 탈민족을 말해야 유식하고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나치즘을 진화론적 민족주의의 극단적인 한형태로 규정한다. 그는 아우슈비츠는 피로물든 붉은 신호등이라고 규정하고 그 가치를 부정해서는 않된다고 말하고 있다. 인본주의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듯이, 민족주의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다. 나가 말하고 싶은 민족주의는 '개방적 민족주의'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민족주의'를 극단적인 '혈연적 민족주의' 혹은 '진화론적 민족주의'로 규정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전체주의로 흐를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가 '진화론적 민족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붉은 신호등'을 직시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주의'의 가치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서구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래서 '내셔널리즘(nationalism)'에 국가주의라는 뜻과 민족주의라는 뜻이 혼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관념이 고대부터 있었다. '삼한일통'이라는 말을 궂이 말할 필요가 없다. 서구의 관념에 매몰되어 자신을 바로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서구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못난 모습은 심리학에도 나타난다. 'WEIRD(Western Educated Industrialised Rich Democratic)가 사회심리학 학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에 실린 논문들에서 표본으로 추출한 개인들의 96%가 WEIRD였다. 그리고 68%는 미국인이었다. '미국 심리학과 학생들의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로 학술지 이름을 바꾸자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심리학 학술지의 서구중심주의 그중에서도 미국중심주의는 심각했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보편적인 사피엔스의 심리라고 우리는 믿고 배웠던 것이다. 나 자신을 바로볼 때 우리는 서구에 의해서 덧씌워진 가면을 벗고 자신을 직시할 수 있다.  

 

4. 그러나 동의하지 못하는 의문들!!

  유발 하라리의 탁월한 혜안에 많은 감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라리의 주장에 마냥 동의만을 할 수는 없다. 유발 하라리는 임제스님의 '살불살조'를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서양의 문화와 역사에만 시야가 국한되지 않은 연구자이다. 광범위한 지식을 섭렵한 그는 '논어', '성경', '꾸란'은 더 이상 창조의 원천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과연!! 그럴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애플이 있다.'라고 말을 했고, 그 이후 기업에서 주도하는 인문학 열품이 시작되었다. 인문학이 바로 창조의 원천이라는 말이다. CEO가 논어를 읽고,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전문 연구자들의 강의를 들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려 노력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중의 고전인, '논어'와 같은 경전들이 더이상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점이 나와 유발 하라리의 관점이 갈리는 지점이다. 잡스가 지적했듯이 기술은 인문학을 만나야 창조적인 작품이 만들어진다. 미래의 창의성은 과학이 인문학과 만나야 그 바른길을 벗어나지 않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 진보의 열차가 떠나가는데 '이슬람의 과격파가 훨씬 나뿐 처지'에 처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우리사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일면 타당한 면도 있으나,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한다. IS를 비롯한 이슬람 과격파들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IS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터넷 유튜브를 비롯한 21세기의 과학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그들이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첨단 기기를 이용해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파고들어 그들의 소외와 분노를 자신의 목적달성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진화하듯이 그들도 진화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모순이 심화될 수록 그들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5. 잡상

  2015년 레바논에서 탈출한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림'이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 "남들은 인생을 즐길 수 있는데 나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정말 힘들다. 앞날이 캄캄하다.'고 말하자, 메르켈 총리는 "정치는 어려운 일"이라고 대답한 뒤, 독일이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여론은 그녀를 냉정하다며 비난했다. 그러자 메르켈은 수십만 명의 난민을 독링로 불러들였고, 이것은 독일의 이슬람화가 확산된다는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럼 메르켈은 이 소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했을까? '림'이라는 소녀의 질문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그녀의 질문은 '헬조선'을 외치며 이민을 꿈꾸는 우리 청년들의 아우성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정농단 세력이 활개를 치던시기 너도 나도 이민을 꿈꿨다. 너도 나도 대한민국을 떠난다면 대한민국은 빈껍데기만 남게된다. 회피하며 도망친 곳에 천국이란 없다.!! 그렇게 이민간 사람 중의 상당수는 또다른 천국을 꿈꾸며 다시 도피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 어느 곳에도 천국이란 없다. 내가 레바논에서 탈출한 '림'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당신의 공동체를 개혁하는 것은 그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이다. 당신은 그것을 해야한다. 이땅에 천국을 건설하지 못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곳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그 어느 곳도 천국일 수 없다. 라고 외칠 것이다.

  데이터교를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은 '공유되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 자기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필요가 없다.'라고 외친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 이를 페이스북에 올리는 모습에서 '데이터 교도'의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예전에 나는 이러한 모습들을 '립스틱 효과'로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젊은 세대들이 자신이 남들에게 보여줄 것은 맛있는 음식들 뿐이다. 열광적으로 음식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니 그 음식들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자기만족이라도 해야되지 않겠나...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이를 '데이터 교도'의 의식을 해석하고 있다. 공유되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젊은 이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안에 늘어나는 데이터 교도들의 민낯을 보게 된다.

 

5. 현대를 읽는 키워드 인본주의!!

  신을 쫓아낸 사피엔스는 자신 주인이라 주장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정답이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 고객은 항상 옳다. 스스로 생각해라,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 라는 말들이 인본주의에 기초한 생각들이다. 현대의 경제, 예술, 정치, 사상의 핵심에 인본주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본주의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라는 말은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기도 했다. 그의 책 '다상담'에서 그가 주장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인본주의'였다. 강신주의 근대 문명의 충실한 실현자였던 것이다. 딸이있고 남편이 있는 여성이, 행복한 가정을 이뤘는데도 다른 남자 둘을 더 만나고 있다는 상담을 하자, 강신주는 그녀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를 옹호하는 말들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강신주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책에서 강신주를 이해하는 마스터키를 얻었다. 그는 충실한 인본주의자 였다. 강신주도 현대사회의 틀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였던 것이다.

 

6. 호모 데우스의 미래

  인간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은 인조인간 만들기에 돌입할것이라 한다. 무기물이 유기물로 대체된다. 여기에서 나는 혼란이 생겼다. 그럼, 그 무기물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을 뜻하는 '호모'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유기물과 무기물의 경계가 사라지면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가 말하고 있는 미래는 우리의 관념을 뛰어 넘는다. 그는 현대를 종착지로 보지 않는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현재를 종착역으로 가정하고 과거의 역사를 현재 종착역을 향해서 달려오는 기차로 설정한다. 사피엔스가 신을 쫓아내고 인본주의를 종교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이 것은 역사의 종착역이 아니다. 인본주의는 깨질 수 있는 또하나의 신화일 뿐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새로운 불평등이 도래할 것을 예언한다. 사람 하나하나가 군사 자원이며, 귀중한 소비자였기에 인본주의라는 종교는 확고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인간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사피엔스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사피엔스를 위해서 발전시킨 과학기술 덕분에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절멸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 정부에게 구슬을 받고 섬과 나라를 팔았던 인디언들 처럼 우리고 이메일 서비스와 웃긴 동여상을 제공 받는 댓가로 우리의 소중한 생체정보와 개인정보 데이터를 첨단 기술 기업가에게 넘기고 있다. 이것을 막을 대안이없다. 나부터 이메일과 전자기기를 쓰지 않는다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우리의 암울한 미래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어가고 있다.

  로봇쥐 실험은 더욱 충격적이다. 쥐의 뇌에 전기적 자극을 통해서 리모콘으로 쥐를 마음데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에게도 똑 같이 적용될 수 있다. 소심한 기자가 헬맷을 쓰자 탁월한 스나이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 기뻐할 만한 사실이 아니다. 인간의 능력을 강화시키고, 그 강화시킨 능력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다시한번 자신을 강화시키는 헬맷을 써보기를 열망하는 기자의 모습에서 자신이 타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속에 달려드는 불나방이 떠오른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미래가 인간을 업그레이드하기 보다는 다운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업그래에드해서 호모 데우스 즉 신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시스템에 의해서 인간은 사육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딕의 개발자가 인공지능 로봇에게 “로봇이 세계를 지배할 날이 올거라고 믿는가?”라고 묻자, “오늘 굵직한 질문들을 많이 던지시는군요. 하지만 당신은 나의 친구니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내가 터미네이터로 변하더라도 당신에게는 좋게 대해드릴테니까요. 제가 하루종일 감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인간 동물원’에 편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웃어 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미 업그래이된 호모 데우스에게 기존의 사피엔스들은 귀찮은 존재들이다. 그들을 다운그래에드한다면 그들을 '인간 동물원'에서 사육하며 안락하게 살 수도 있다. 아니 인공지능을 가진 그들에 의해서 사육될 수도 있겠지....

  유발하라리는 '데이터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했던 일을 호모 사피엔스에게 할것'이라 주장한다. 마치 동물을 먹는 인간을 본 외계인이 인간을 먹으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호모 데우스'라는 책을 읽기 전에는 호모 사피엔스 모두가 호모 데우스가 되는 이상적인 미래사회에 대한 예견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마치 이 책에서 소개된 '사이보그1,2'영화를 보는 듯했다. 암울한 미래가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이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다. 다양한 시나리오 중에서 유발 하라리는 하나를 제시했을 뿐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찌 전개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오늘 미래를 소재로한 SF영화를 보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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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 - 을미사변에 가담한 낭인에서 식민사학의 선봉장으로
하지연 지음 / 서해문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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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쿠치 겐조'!!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명성황후를 죽인 범인중에 한인물이며, 이후 왜곡된 근현대의 역사관을 만든 아마추어 식민사학자였다. 한국 고대사가 일제에 의해서 많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사가 왜곡된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과연! 기쿠치 겐조는 우리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을까?

 

1. 명성황후를 모독하다!!

  명성황후(明成皇后)는 그 호칭부터 논란이다!!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할까? 한때 '민비'라고 불렀다가 친일파로 몰리는 상황이 맹렬했는데, 이제는 교과서에도 '민비'라고 당당히(?) 쓰고 있다. 이 책은 이점부터 지적하고 들어간다. 왕비가 살아있을 때는 '중전' 혹은 '곤전'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든다면 정희왕후 윤씨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비'라는 용어처럼 성씨에 왕비를 뜻하는 '비'자를 붙여부르는 것은 일본식의 표현이다. '매천야록'에 '민왕후, '중전민씨'라는 용어를 사용하듯이, '민비'라는 용어는 자제해야한다. '명성황후'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추증한 것으로 그녀가 왕비로 살아있을 때 사용하는 역사용어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명성왕후'라고 적기도한다. 그러나 이때는 숙종의 어머니이자,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와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에, '명성왕후(明成王后)'라고 한자를 병기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이책의 내용은 '민비'라는 용어가 과연 적당한지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란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참으로 명쾌한 현답이다.(9P)

  명성황후에 대한 또다른 논란은 '에조 보고서'의 '국부검사'라는 부분을 두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김진명이라는 소설가는 이 부분을 근거로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간' 즉, 시체를 강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두둔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이를 두고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과연 명성황후는 시간을 당했을까? 이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당시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시해를 당했기 때문에 동이 트고 있었기에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또한 '국불 검사'는 그녀가 너무 젊어 보였기에 과연 명성황후인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아랫도리를 벗겼다고 설명한다. 아랫도리를 벗기면 그녀가 명성황후인지 알수 있었을까? 출산여부를 확인하려 벗겼다는 것이다. 출산의 흔적을 찾는다면 그녀가 명성황후라 장담할 수있다는 주장이다. 이책의 저자는 여기에 당시 회고록과 증언에 시간을 했다는 주장은 없으며, 이시즈카 에조는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풍문을 듣고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한국 학자들조차 일본의 차담한 왕후 살해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 죽음을 이야깃거리로 희화화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고 안타깝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시간'은 없었던 일일까? 이시즈카 에조가 을미사변에 참가했다면 오히려 이 '시간'사건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겼을 것이다. 일본인이 그가 이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그 진실을 보고서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아닐까?

  구시다 신사에는 명문이 적힌 칼이있다.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즉, 일순간에 전광석화처럼 늙은 여우를 찔렀다는 명문이다. 어떤이는 일본 신사에 이칼을 바친 것은, 가쓰아키가 자신의 일을 후회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바쳤다고 주장한다. 이는 털끝만큼도 진실이 아니다. 일본 낭인들은 추호도 반성하지 않았다. 본국에 송환되면서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일을 '애국'이라고 강변했다. 더욱이 기쿠치 겐조는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왜곡된 역사서를 써서 이를 유포하지 않았는가?

  낭인들은 명성황후의 몸만 도륙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죽자 그녀의 영혼도 도륙했다. 특히 이책의 주인공인 기쿠치 겐조는 '조선 왕국', '대원군전' 등의 많은 역사책을 써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가 을미사변의 참가자였기에, 아마추어 역사가의 소설은 역사로 쉽게 둔갑했다. 명성황후를 권력욕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미신과 무당의 정치를 한 희대의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유산은 지금도 계속 살아있다.

 

2. 흥선 대원군을 범인으로 매도하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원군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가를 역사선생님들과 토론했었던 적이 있다. 나보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 강력하게 일본낭인과 대원군이 같이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도 공범이라 주장했다. 나는 그것이 일제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했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대립 속에서 벌어진 일로 일제는 흥선대원군을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주장은 일본의 만행을 숨겨주는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후 내가 노스차이나 헤롤드지의 내용을 근거로 나의 주장이 옳음을 주장했다. 그 선생님은 결국 나의 주장에 굴복했지만, 그 후에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식민사학에 젖어있다고 비난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튼,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이 사이에서 일본이 대원군을 도와주었다는 주장은 이 책에서 기쿠치 겐조가 '대원군전'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내용이었음이 적혀있었다. 나의 주장에 근거가 보강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은 지금의 사극에서도 단골로 사용하는 극적장치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일은 너무도 멀다. 픽션 '대원군전'을 사극이라는 픽션이 재생산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만하다.

  기쿠치 겐조의 '대원군전'은 기초적 사실도 틀리고 역사왜곡의 강도도 심하다. 이 책에 소개되어있는 일부내용을 적어보자.

 

  왕비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대원군은 일본과의 수교에 격분해 양주에서 덕산으로 갔고, 다시 석파 산장으로 돌아와 번민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울분 끝에 폭약이 장치된 선물함을 민승호 집으로 보내 민승호 부자를 살해했다.

 

민승호 일가의 폭사사건은 1874년 11월 28일에 일어났는데, 기쿠치는 이 사건이 강화도 조약(1876년)에 격분해서 대원군이 일으켰다고 서술하고 있다.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엉망이다. 이러한 책이 식민사관을 확대재생산하는 근원이었다.

  대원군은 경복궁으로 끌려가면서 명성황후 시해 계획을 몰랐을까? 그것은 모른다. 그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일제가 대원군을 그 현장에 끌고 왔으며, 그를 명성황후 시해 주범으로 몰아버리려 계획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3. '나무 인형이 된 무능한 고종'을 만들다.

  기쿠치 겐조는 고종을 어려서는 흥선 대원군의 호통소리에 기를 못펴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아내의 등쌀에 기를 펴지 못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임오군란시기 명성황후가 청나라 군대를 요청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청병요청을 명성황후가 할 수는 없었다. 명성황후 '피란일지'를 보면 그녀는 몸이 아파서 자신의 몸을 돌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고종이 요청한 것도 아니다. 청의 필요에 의해서 파병된 것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내부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왜세를 끌여들였다는 주장은 기쿠치 겐조가 '대원군 전'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식민사학의 뿌리가 이렇게 깊었다.

  무능한 왕궁의 나무인형 '고종'!! 이라는 기쿠치 겐조의 묘사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져있다. 기쿠치 겐조의 위력이 오늘날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종', '명성황후', '흥선 대원군'의 진모습을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진 교수의 '고종시대의 재평가'를 100% 받아들이는 것이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길일까? 대한제국의 멸망에 그들은 일말의 책임이 없었을까?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하자는 대원칙에는 동조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수는 없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기쿠치 겐조가 픽션에 넌픽션을 가미해 역사를 서술했기에 픽션과 넌픽션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것은 사극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었기에 나의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 진실을 찾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같다.

 

4. 잡상

  503호 국정논단 사건으로 한때 '진령군과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들 회자되었다. 그 진령군을 괴대 확대해서 명성황후를 무당을 믿는 혼군으로 묘사한 것이 기쿠치 겐조였다. 하지만,  '매천야록'에도 진령군과 명성황후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이는 기쿠치 겐조의 글과 일면 비슷하다. 그렇다면 기쿠치 겐조는 당시의 풍문에다가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서 '진령군과 명성황후'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무당을 궁궐에 끌여들이고 무당이 힘을 발휘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기쿠치 겐조의 주장을 무조건 무시할수도 없다. 저자 하지연은 '진령군과 명성황후'에 대해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분명히 밝혀 주었어야했다. 단지 과당되게 서술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 나와같이 혼란한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다.

   기쿠치 겐조는 '악정의 책임이 경상도에 있으며, 전라도는 폭도의 고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읽으면서 지금의 지역감정의 원형을 보는듯하다. 현대에 독재정권들이 표를 많이 받기 위해서 조장한 지역감정의 뿌리가 일제 식민사학에 있었다는 생각이든다. 일제 강점기 훈도였던자가 정치인이되어 이를 확대 한 측면은 없었을까?

 

  이 책은 논문을 대중서로 풀어 놓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 때 다산선생의 글쓰기 방법이 생각났다 다양한 예화를 들어 실감나게 서술하는 방법! 그러나 하지연은 이 방법을 유려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딱딱한 글쓰기에 익숙해서 대중적인 글쓰기를 잘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을미사변과 왜곡된 근대사를 바로 보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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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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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500권의 저술을 남긴 천재라고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역사선생님은 그를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에 비교하며 자신은 이런 천재에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열정은 있으데 능력이 바춰주지 않는 쌀리에르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그당시 정약용은 천재적인 능력 덕분에 실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고 알게 되었다. 과연 그럴까? 정약용은 천재이기에 5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 명쾌한 해답을 들어보자.

 

  1. 그의 공부법에는 어떠한 비결이 있었을까?

  문심혜두! 지혜의 구멍이열리지 않는다면 만권의 책을 독파한다한들 않읽은 것과 같다!라는 다산의 지적은 나의 폐부를 찔렀다. 정독보다는 다독을 추구하는 나였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책을 잡고 언제까지나 고민하지 않았다. 재빨리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할 때만이 진실로 그 책을 읽는 보람이 있다! 다산의 지적은 나의 독서법을 반성케했다.

  그의 독서법(저술법)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이 책을 읽다가 새롭게 깨달은 점을 메모해둔다는 것이다. 이를 한데 모았다가 분류를 지어 책으로 묶어낸다. 메모의 중요성을 일찍이 들었지만, 귀차니즘과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었기에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산의 500여권 저술의 힘이 바로 이 메모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나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책부터 메모를 시작했다. 서평을 쓰는 지금 이 메모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불취하문(不恥下問)이라 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취로 알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다산이 실천하고 있었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주인 노파에게서 배운 일화는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에 매몰되어 있는 당시 조선의 선비들에게 노파는 여자를 차별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씨앗이고 어머니는 땅인 셈이지요. 씨를 뿌려 땅에 떨어 뜨리는 것은 크게 힘든 일이 아니지만, 땅이 양분을 주어 기르는 일은 그 공이 몹시 큽니다."라며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그러자 다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선구라고 할만한 노파의말에 다산이 진심으로 감복한 것이다. 남자보다 비천하다는 여성에게 다산이 여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듯 다산은 어느 누구와도 토론하고 싶어했다. '어린 시절 티격태격하던 것 처럼 싸워보자'라는 다산의 편지글은 지금의 '하브루타' 학습법을 떠올리게 만든다. 토론수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유대인 교육의 핵심인 '하브루타'를 다산은 이미 하고 있었다. 그 전통을 우리는 왜? 잃어버렸을까?

  다산은 귀양지에서 '과골삼천'의 모습을 보였다. 책을 읽고 저술하느라 복사뼈 살이 세번이나 구멍이 났다. 그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 자리를 사랑했다. 일상득취법! 그것은 귀양지 생활을 이겨낸 힘이었다. 나무를 심고 연꽃을 연못에 기르며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다산초당을 만들었다. 얹혀살고 있는 다산은 자신의 집처럼 초당을 꾸미고 주인처럼 살고 있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다!라는 임제스님의 말을 그가 실천하고 있었다. 좌절과 실의에 빠지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속에서 주인이 되어 당당히 자신의 학문세계를 닦아가는 그의 태도가 그의 진정한 공부법의 비결이었다.

 

2. 다산에게 대한 오해와 편견

  다산은 잘알려져 있지만, 너무 잘알려져 있기에 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는 편견으로 가득한 사실들도 많다. 다산이 '기기도설'을 보고 거중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알려져있다. 일부 사람들은 거중기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미 '기기도설'에 나와 있기에 그걸 그대로 재현했을 뿐이라고 다산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다산은 거중기를 재현한 것이 아니다. '기기도설'의 원리를 이용하여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전혀 다른 거중기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다산의 위대성이다. 핵심원리를 취득하여 제2의 창조를 하는 모습 그것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어떤 사람은 정약용이 주자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를 성리학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역사를 좀 안다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할때, 나는 별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해였다. 주자 절대주의에 빠져있는 교조적 조선사회에서 주자를 비판한다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신의 죽음을 부를 수 있는 현실에서 대놓고 주자를 비판할 수 없다. 그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주자의 학설을 비판했다. '인'에 대한 입장이 주자와 달랐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얇은 지식으로 다산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산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다산이 혼자서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는 점과 그에게는 제자가 없었으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다산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소치였다. 다산은 그의 저술에 아들들의 힘을 빌리기도 했으며, 직접 외가쪽의 아이들을 모아다가 가르쳤고 그들이 일정한 경지에 오르자 자신의 저술작업에 참여시켰다.

  이들 제자중에서 황상이라는 제자가 그의 수제자라 할 수 있다. 황상과의 첫만남은 참으로 인상 깊다. 황상이 자신은 둔하고 앞뒤가 막혀있으며 답답한 성격이라고 말하며 문사를 공부하라는 다산의 권유에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산은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 네게는 그 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단다."라는 말로 황상을 감복시켜 학문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고 황상은 다산이 죽어서도 그를 잊지 않는다.

  그뿐이아니다. 18년 동안 날마다 저술만 하다보니 복사뼈가 세번이나 구멍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어 황상을 감복시키기도 했다. '과골삼천'의 모습!! 이를 보고 학문을 게을리할 제자가 있었을까?

  다산의 저작은 다산학단의 집체 활동의 결과물이다. 다산은 저술의 총 기획자였고 제자들은 자료를 모으고 발췌했으며 이를 편집했다. 그러면서 이들 제자들의 학문수준도 높아졌다. 황상을 비롯한 이청, 이강회 등의 제자들이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자료의 발굴이 필요하다. 다산이 다시 등용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제자들의 학문적 업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 부분이 다시 세상에 제대로 알려질 때! 다산의 위대성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니라, 누구든지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는 길임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것이다.

 

3. 조선 중화법!!

 다산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앞선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바로 조선 중화법이다. 그렇다고 우리것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한다. 이것이 다산의 학문정신이다. 개방적이면 주체성이 없고, 주체적이면 자기것을 고수하여 타국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산은 이 극단을 취하지 않고 뿌리를 조선에 두지만, 외부의 장점을 받아들여 변화를 추구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산에게서 배워야할 학문하는 모습이다.

  순수와 참여의 논쟁이 있었다. 어찌보면 대가들의 논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현실을 직면할 용기없는 작가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 논쟁이라 생각된다. 현실을 떠난 문학이 문할일 수 있을까? 다산은 당시 조선 사회를 고발하는 다양한 문학 작품을 남겼다. '애절양'을 비롯해서 수많은 시들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조선의 민초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 결과 '목민심서', '흠흠심서'와 같은 대작들이 나온 것이다. 잊지 말자! 현실에 뿌리밖지 않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단지 말장난일 뿐이다.

 

4. 잡상

  다산은 글쓰기 방법도 알려준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물을 드러낼 때는 반드시 예화를 들라고 한다. 이것은 이덕일의 글쓰기와 정확히 맥이 닿아있다. 이덕일의 평전과 타인물의 평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인물에 대한 막연한 왜침만을 부르짖는 평전들과 달리, 이덕일은 다양한 예화를 통해서 그 인물을 드러낸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다산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지기췌마법' 즉, 기미를 분별하고 미루어 헤아려라라는 다산의 말을 통해서, 그가 혹시 한비자를 읽은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기미를 제대로 헤아리라는 말은 한비자에 있는 내용이다.  무오년(1798) 겨울에 돌림병이 서쪽 길을 따라 퍼졌다. 나이든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그는 황해도 배천의 강서사에 가서 화문석을 사오게 했다. '칙사'가 오는 것도 아닌데 왜? 화문석을 사오게했을까? 얼마후, '황제가 붕어하여 칙사가 왔다.' 그는 서쪽에서 온 돌림병에 노인들이 죽어나가자, 나이가 80이 넘은 황제가 무사할리 없다고 판단하고, 칙사가 올 것을 예상하고 화문석을 가져오라고 했던 것이다. 기미를 살펴 앞으로의 일에 대비한다는 한비자의 당부를 다산은 실천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탁월한 재판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가만을 공부했다면 보일 수없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가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그 바탕을 마련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오래보아야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다산에 대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우를 이 책을 통해서 바로잡게 되었다. 다산은 천재이기 보다는 노력하는 학자였다. 혼자 공부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집단 연구를 통해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노련한 기획자였다. 그의 모습을 바로 바라보면 우리가 어떠한 교육과 학문연구를 해야하는지 방향이 보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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