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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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은 맨부커상의 전(前) 이름이다. 2002년 맨그룹(Man Group)이란 후원사가 추가돼 맨부커상이 됐다.

맨부커상은 우리 나라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수상함으로써 국내에 더 널리 알려졌다. 인터네셔널(국제)부문이다.

부커상은 노밸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1969년부터 시작된 이 상은 원래 영연방국가 소설만 다뤘으나, 2005년부터 국제상이 신설되며 영어로 출간된 모든 소설로 대상을 확대했다.

작품과 그닥 상관 없는 얘기 같지만 앞서 언급한 한강 작가가 수상한 상이 (맨)부커 국제상이다.

고백컨대 『더 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부커상 2019후보작이라고 해서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우리 독자에게 그만큼 큰 영향을 주었다.





난민과 불법 이민자, 국경과 장벽, 기후 변화, 자국중심주의 등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다양한 이슈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뀐다면,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소설 『더 월』은 이러한 여러 세계적 이슈를 배경으로 어쩌면 우리에게 곧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19년 부커상 후보작에 오른 이 작품은 ‘이 시대의 『1984』’라는 평을 받으며 그 문학성과 작품성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파이낸셜타임즈], [이브닝스탠다드] 등의 언론에서 2019 최고의 책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더 월』의 배경은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정치적 분열이 증가해 황폐해진, 지금보다 미래의 세상이다.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세상에서 한 섬나라는 침입자를 막기 위해 모든 해안선 및 국경을 둘러싸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다.

넘으려는 자와 그들을 막으려는 자가 교차하는 벽 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은 여전히 국경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상승한 해수면과 정치적 분열이 증가해 사람들이 이전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 황폐화된 시대.

한 섬나라의 모든 해안선, 국경을 둘러싸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세워진다. 조셉 카바나는 이 벽 위에 새로 발령 난 신입 경계병이다.

그의 임무는 벽 안으로 침범하려 드는 침입자, ‘상대’로부터 자신이 맡은 벽 위의 구역을 사수하는 것이다.

만일 운이 좋아 벽 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기간인 2년 동안 상대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고 아무 일 없이 지낸다면 그는 벽과는 상관없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해수면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바다에 갇혀 필사적으로 벽을 넘어 오려는 상대를 막는 데 실패한다면 그는 벽 너머 바다로 던져져 자신이 막지 못한 자들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벽 위에서는 대개의 경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매서울 정도의 추위, 홀로 경계를 해야 하는 외로움, 그리고 언제 상대가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카바나와 함께했다.

카바나는 동료 경계병과 가까워지고 엄격한 상사의 명령을 들으며 임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오늘도 변함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만약 상대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온다면, 목숨을 걸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면, 어쩌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대격변이 일어나 망가진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벽을 두고 일어나는 싸움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시사적이고 풍자적인 메시지를 매혹적인 필치로 그려낸다.





대 격변으로 황폐해진 세상에 해안을 따라 국경을 둘러싸고 세워진 차갑고, 추운 콘크리트 벽위에서 2년동안 벽 복무를 남여 모두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15명씩 하루 12시간 2교대로 벽 위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싸우면서 홀로 서서 수평선만을 노려보며 벽을 넘어 오려는 '상대'를 막아야 하는 벽 신입 경계병 '조셉 카바나'는 배달되는 커피 한잔과 에너지 바 하나를 꼭꼭 씹어가면서 제대할 그날까지 별다른일 없기를 바라며 벽위에서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상대'의 공격에 바로 앞에 서 있던 동료를 잃고 부상을 당했지만 방어 성공에 훈장도 받고, 처음부터 눈길이 갔던 동기 '히피'와 함께 번식자로서의 잠깐이지만 행복을 누린다.

최전방에서 후방으로 잠시 발령이 받아 옮긴 후에는 새로운 신입을 받게 되어 선임병이 되어서 후배들에게 벽에서의 생활에 대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고 평온한 반복 생활을 하면서, 히피와 함께 대학도 가고 아이도 낳는 평범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상대로부터 급습을 받게 되고 이에 많은 피해와 놓친 상대로 인한 결과로 바다에 버려진다.

희망도 없고 알수 없는 미래지만 힘겹게 살아 남았기에 삶은 계속된다.





암울한 미래에 대한 배경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분단이 현실이 한국 사람이라면 국경, 장벽, 경계선, 적, 군인의 단어에 익숙하고 군 복무가 의무인 한국의 남자들은 최전방 38선에서 여러명이 한방에서 생활하고 단체 훈련과 철 경계선에서 앞에만 바라보고 몇시간을 서있는 국군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황폐한 미래가 우리에겐 현실이라는 사실이 당황스러웠고 분단 국가의 서글픈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회색빛의 두꺼운 콘크리뜨 벽은 벽에 기어올라 넘으려는 사람들과 이러한 사람들을 막는 사람들은 하며 살기 위해 벽을 기어오르는 이민자들의 처절한 모습들을 떠올리게 한다.

벽, 적과 대치하는 경계선등은 무엇을 위한 장벽인가? 넘으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상대'편이 되었다는 이유로 죽고 죽임을 당해야하는 상황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많을 바랄 뿐이다.





해안 경비대와 공군과 해군에 병가를 낸 병력 등등을 더하면, 벽을 방어하는 병력이 30만을 넘어선다. 그래서 모두가 열외 없이 벽에 배치되는 것이다. 이것이 규칙이다.

다만 번식자는 열외다. 이건 역설이다. 벽을 지키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고 번식할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벽에 배치시킬 병력이 충분하도록 말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병력 부족이 머지않아서 그런지 부족한 병력을 메꾸기 위해 복무 기간을 2년 반이나 3년으로 더 길게 연장시키자는 소문이 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이 너무 끔찍하게 변한 탓에 번식을 꺼린다. 그래서 번식할 경우 벽을 떠나도 된다는 우대 조치가 생겼다. 벽을 떠나고 싶다면 번식하는 거다.

언제든 벽 복무를 해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랴? 그때 가면 상대가 전멸해서 벽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이들도 때가 되면 번식할 수 있으니 그렇게 벽을 떠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 종의 수명도 연장하게 된다. 떠나고 싶다면 번식하라. 이게 표어다.사람들이 왜 번식을 원치 않을까? 대격변 이후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던 것이다.

- pp.40-41






컴컴한 동굴 같은 마음속 어딘가에 사는 괴물은 이렇게 속삭인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만약 상대가 공격해 온다면, 만약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면, 만약 혹독하게 훈련받은 대로 전투를 해야 한다면, 즉 악몽에서나 봤을 법한 그냥 아주 조금 궁금하기도 한 전투, 그래서 죽거나 죽임을 당할지 모를 전투를 해야 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게, 추위와 굶주림과 지겨움과 피곤함 말고 다른 걸 느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매일 아침 소총에 대검을 꽂아 휘두르면 신나지 않을까? 최악의 상황이 발발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여전히 나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 pp.50-51





저자 : 존 란체스터

JOHN LANCHESTER

1962년 2월 25일생. 영국의 언론인이자 소설가.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고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미란다 카터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며 런던에서 살고 있다.

그는 소설, 회고록, 논픽션 작가이자 저술가로서, 편집자로 일했던 〈가디언〉 및 〈더 뉴요커〉 등에 글을 썼으며

〈에스콰이어〉의 식품 및 테크놀로지 섹션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소설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는 1996년 화이트브레드 도서상의 처녀작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1997년 호소덴 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가디언〉의 초청으로 에드워드 스노든의 자료를 조사하고 스노든 파일에 대한 책을 썼다.

『캐피탈』은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로 수많은 영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였으며, BBC1에서 3부작의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또한 『더 월』은 2019년 부커상 후보작에 오르면서 작품성을 전 세계에 인정받았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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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 러시아 2 - 도시 이야기 줌 인 러시아 2
이대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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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엄청나게 큰 영토를 가진 지구 최대면적의 나라다.

구소련 시대 위성국가들이 대부분 독립해 자주국을 세웠는데도 여전히 영토는 세계 최대다.

유럽과 동아시아 최동단 지역까지 가로로 뻗어 있는데다 남북으로도 중국 못지 않은 폭을 가졌다.

다만 기후 특성상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은 아직은 자연 그대로의 영토가 대분이라 그만큼 자원도 많고, 개발 가능성도 높다.

냉전 시대엔 '갈 수 없는 나라'였으나 지금은 수교한 지 30년이 돼가고 한반도와 인접한 지리상 특성과 기술과 자본력이 우수한 우리 나라와 윈윈하기에 좋은 조건의 나라로 부각됐다.

철도 연결이 이미 돼 있어 우리 나라에서 유럽까지 물자나 자원, 제품 수송이 빠른 속도로 가능한 상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다.

이곳을 지나가는 러시아의 도시들은 도시 변천사를 하나의 횡축으로 꿰어놓는 살아 있는 도시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난 러시아 땅을 실제로 밟아본 적이 없다. 유럽 여행을 갈 때 경유지로 모스크바공항에서 2시간 여 머문 게 전부다.

지금은 러시아 여행을 버킷리스트에 올리고 여행 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관심이 컸다. 매스컴을 통해 들은 바로는 기차로 일주일 이상 걸리는 거리라니 쉽게 가늠은 안 될 정도다.

이 철도는 1903년 개통되어 8140km 길이로 시베리아 혹한 속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이 손노동으로 매일 평균 2km씩 건설했다고 한다.

그 엄청난 길이를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동원되고 당시로서는 세계 최강 길이의 철교를 3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런 시베리아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연결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제국에 군사기지보다 값진 보물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국 일본 3개국 모두를 지척에 두고 있어 동북아 공략에 최적의 입지였기 때문이다.

《줌 인 러시아》는 1권이 이미 출판돼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물론 나도 주의 깊게 읽은 책이다.

러시아에 대한 많은 지식과 몰랐던 내용이 많아 큰 재미를 느꼈고, 러시아 여행을 꼭 하고 싶다는 심중을 굳히기도 했다.





《줌 인 러시아 2》 이대식 저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러시아를 여행할 때는 도시별 여행은 꽤 유용한 방법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제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어 독특한 색을 띠게 된 도시들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을 시베리아횡단열차에 태운 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행을 마치는 이 책은 횡단열차 노선상에 있는 도시와 지선상에 있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크고 작은 도시 20여 곳을 방문한다.

1115개에 이르는 러시아 도시 중 공들여 선택된 이 도시들은 러시아 역사에서 각자의 선명한 존재감과 개성을 뽐낸다.

우리에게 제법 잘 알려진 도시도 있는 반면 이름조차 발음하기 어려운 낯선 도시도 있으나 도시의 핵심 포인트를 포착하는 정확하고도 신선한 시각과 입체적이고 맛깔난 해설 덕에 익숙한 도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낯선 도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한러 수교 30주년이 되는 2020년에 출간되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 책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발견의 기쁨과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하는 탄식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극동연방관구와 프리모르스키(연해)주의 행정중심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점이며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관문이다.

여행지에서 아는 이름이나 사실을 확인하면 그곳이 왠지 더 반갑고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낯선 러시아 도시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름들의 흔적을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선물한다.

러시아 극동의 유일한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 속에는 이민자 출신 거상 율리우스 브리너가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우리에게도 [왕과 나]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명배우 율 브리너의 조부였다.

율리우스 브리너의 일대기 속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역사의 부침을, 그리고 대를 이어 계속되는 율 브리너의 오디세이를 함께해보자.





도시에 흐르는 이야기와 역사는 그대로 그 도시의 몸과 마음이 된다. 러시아에도 놀라운 이야기, 슬픈 역사를 품은 도시들이 있다.

입담 좋은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순식간에 독자를 이야기 속에 몰입시키고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많은 업적으로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았지만 자신이 부친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죄책감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알렉산드르 1세는 48세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충격을 준다.

그로부터 12년 후 톰스크에 한 유형수가 나타나는데 겉으로는 고향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랑자였지만 죄수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글과 성경 읽기를 가르쳐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가 바로 알렉산드르 1세라는 소문이 퍼진다.

나이가 같고 외모가 비슷할 뿐 아니라 이르쿠츠크 대주교와 톨스토이의 접견을 받는 등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런 의심을 받자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가 황제라는 인식이 굳어졌으며 사망 후에는 톰스크의 성인으로 모셔졌다. 수수께끼의 유형수는 과연 알렉산드르 1세일까?





‘새로운 시베리아’라는 뜻의 노보시비르스크는 인구가 161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러시아 제3의 도시이다.

산업·교육·문화 등 다방면에서 일찍부터 세계적 수준을 자랑해왔으며 무엇보다 이 도시가 가장 자랑하는 보물 ‘아카뎀고로도크’를 갖고 있다.

‘과학도시’라는 뜻의 아카뎀고로도크는 1957년 기네스북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세계 최초의 연구단지로 등재되었다.

러시아인들의 창의력이 집적된 도시로 세계 수준의 기초 과학기술 연구소가 즐비하다.시베리아 최초의 도시 토볼스크와 시베리아의 대표적 대도시 예카테린부르크는 로마노프왕조의 비극적 종말을 생생히 간직한 곳이다.

러시아혁명 이후 폐위된 황실 가족은 토볼스크로 옮겨졌다가 다시 예카테린부르크로 왔고 이곳에서 총살을 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황실 가족이 머물렀던 장소를 눈앞에 펼쳐진 듯 설명하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는 긴장된 분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서 승리하며 우리에게 기적의 무대로 기억되는 카잔은 흥미롭게도 러시아 역사에서도 내내 기적의 도시로 알려져왔다.

1579년에 발견된 카잔 성모화가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등에 전해지며 러시아 역사의 고비마다 기적을 행했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카잔은 러시아인들의 영혼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아주 중요한 유적지로 여겨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무기 공급지였던 니즈니노브고로드는 이제 대표적 중공업도시로 변신하여 러시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니즈니노브고로드는 러시아 경제의 대명사인 ‘자원’ 분야 산업의 비중이 0.1%에 불과하다는 점이 놀라운데, 이 도시를 대표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이다. 저자는 1932년 미국 포드 사에 의해 러시아 최초의 자동차 공장이 이곳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현재 한국 기업을 포함해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여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러시아 최고의 IT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는 현황을 알려준다.

굳게 닫힌 나라인 줄로만 알았던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개방의 큰 흐름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도시들 중 페름과 황금고리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곳들이다.

특히 황금고리에 속하는 도시들(야로슬라블, 블라디미르, 수즈달, 세르기예프포사트)은 모스크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외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오랜 기간 러시아에서 생활한 저자가 자신 있게 안내하는 도시들인 만큼 독특한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소금의 생산지이자 유전도시 페름은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풍부한 자원을 자랑하는, 러시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은 도시이다.

그 비옥함 덕분에 페름의 산업과 경제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고 든든한 재정의 뒷받침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토대도 두텁게 쌓을 수 있었다.

대표적 사례로 페름 차이콥스키 오페라발레극장이 있으며, 이외에도 러시아 3대 발레스쿨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1967년 소련의 잡지 기자가 모스크바 근교의 8개 고대 도시를 돌아보고 ‘황금고리’라는 시리즈 기사를 발표한 데서 유래한 황금고리는 러시아 근현대사에서 모스크바의 큰 그늘에 가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낙후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고대 러시아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고 오히려 이 점이 강력한 자산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중 4개 도시를 돌아보는데 블라디미르에서는 러시아적 아름다움의 정수인 백석건축물들을, 세르기예프포사트에서는 러시아 정신의 중심 세르기예프 수도원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18세기 이후 러시아의 궁정 및 귀족 문화를 거의 그대로 간직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축에서는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러시아인들의 놀라운 지혜와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 (p. 23)





책을 통해 러시아의 중요 도시들을 숨 가쁘게 돌아본 후 러시아가 독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여행서는 독자가 그곳에 갈 것을 전제로 하여 정보를 전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집필된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일부 도시는 많은 독자가 실제로 가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곳을 모르고 지난다면 그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굴곡진 역사, 그 안에서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 그들의 눈물과 경건한 신앙심을 고스란히 담아낸 건축물들, 절절한 사연을 그림으로, 문학작품으로, 음악으로 남긴 예술가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아름다운 자연…… 그렇다. 이 책을 통해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만난다면 그곳에 꼭 가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에 가게 된다면 더없이 풍요롭고 의미 있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가 될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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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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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에서 '반일'로, 반일에서 '극일'과 '지일'로 우리 국민의 일본에 대한 정서는 변해왔다.

위정자들의 일본에 대한 의식과 정책에 대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국민들의 정서는 지난 20세기 내내 변화를 지속했다.

21세기 들어 우리의 경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대외 수출 의존도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국민의 기저에 깔려 있는 감정과 상관없이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상대가 중국으로 변한 것이다.

거기에 우리 국민과 중국 국민의 대일 감정은 비슷하다. 일본에 의해 침략 당했고, 민간인 대량 학살의 뼈아픈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심정이 신뢰감의 바탕에 깔려 있다. 1990년대 초 수교를 기점으로 G2로 올라선 중국과의 교류는 점차 확대되는 상황이다.

우리 국민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이념적인, 즉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때문에 대립했지만 비교적 선린 관계를 맺어왔다.

중국 본토라 일컬어지는 한족이 다스리던 나라가 우리 조선에 직접 침략한 일이 한 번도 없다.

물론 황제국과 신하 관계로 유지된 양국은 서로의 관계를 깨기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전쟁 때 북한을 돕기는 했지만... 침략은 아니었다.





그러나 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선 2012년 이후, 일본 정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및 강제징용 문제 등과 관련된 망언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2019년 8월에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무역 갈등을 일으켜 ‘NO 재팬’으로 대변되는 반일 정서가 다시 대한민국 전체를 휩쓸게 했다.

그 결과 일본 국민들에게 ‘아베 정권이 반한 감정을 건드려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넘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거듭된 정책 실패와 스캔들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한일 관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아베 정권은 자민당 내 강성 우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강성 우파는 일본 내 반한·혐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극우세력이란 1997년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이어 극우 단체 ‘일본회의(특별고문 - 아베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를 결성해 일본 내에서 역사 왜곡을 심화시키는 데 주체적인 역할을 한 세력과 그 추종자들을 일컫는다.





그런데 일본 극우 세력에 동조하는 집단이 일본 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에도 그와 같은 부류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9년 7월 《반일 종족주의》를 출간한 저자들이다.

《신친일파》의 저자 호사카 유지(세종대학교 교수)는 그들을 ‘신친일파’라고 규정한다.

신친일파는 '친일파'라는 단어에서 파생된다. 대한제국 말기 일본 침략에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 등 '매국 5적'부터 비롯된 말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 일제에 부역하거나 애국 독립지사 등을 억압한 사람들도 확대됐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나라든 겨레든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에 협조해 재산도 불리고, 직위도 따냈다.

새로 등장한 단어 '신친일파'는 지금 현재도 일본에 부역하거나 일본의 극우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국민 정서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친일'이라 딱지를 붙이지만 엄밀한 의미로 '매국'에 가깝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적하는 '신친일파'는 일본 내에서 반한·혐한을 외치고 있는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 대부분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다.

특히 대표 저자인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이영훈은 과거에 일본 극우 성향의 도요타 재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식민지 연구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기적에 가까운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바탕은

일제 강점기의 기반에서 비롯되었다는 황당한 주장인 ‘식민지 근대화론’도 그때를 전후해서 구체화되었다.

따라서 왜곡과 오류가 섞인 그들의 주장이 오직 학문적 소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

구체적인 근거 제시와 함께 『반일 종족주의』의 왜곡과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1. 강제징용 관련

여기에서 이영훈은 ‘미불금이나 미수금의 문제가 재판의 본질’이라는 큰 거짓말을 했다.

원고가 받지 못했다고 하는 통장이나 미불금, 미수금이 이번 재판의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훈은 그것을 알면서 쟁점을 흐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강제 징용자 판결에 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적당하게 자기주장을 쓴 셈이다.

이영훈의 말대로 한국에 거짓말 문화가 있다면, 이영훈 자신도 그 문화에 오염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부분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선 이번 재판은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소위 미불금, 미수금의 문제가 아니다.

미불금, 미수금의 지급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모두 끝난 문제이므로,

2018년 10월 이후 한국 대법원은 미수금이나 미불금을 문제 삼지 않았다. 원고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영훈의 판결에 대한 이해는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다. (_「판결이 거짓이라고 우기는 이영훈」 중에서)





2. 일본군 ‘위안부’ 관련

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로 발전되었다는 논리는 하타 이쿠히코秦郁彦가 제공했고, 조선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의해 기생집으로 팔려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 논객인 니시오카 스토무西岡力의 주장이다.

그리고 강제연행이나 취업 사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모집업자들에게 있다는 논리는 일본의 우파 논객들이 거의 다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우파 논객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리가 새삼스럽게 한국에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 속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_「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생겼는가」 중에서)




3. 독도 관련

이영훈은 칙령 제41호에 나온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관음도라고 우긴다. 일본의 주장과 똑같다.

이영훈은 그 이유로 울릉도에 속하는 “사람이 사는 섬”이 관음도와 죽도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큰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음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최근에는 울릉도 본도와 관음도에 다리가 만들어져서 관리하는 사람이 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2010년까지 관음도에는 역사적으로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리고 1900년 칙령 제41호가 반포되었을 때만 해도 관음도에는 ‘도항’이라는 제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칙령 제41호에 도항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석도’라는 명칭을 썼을까.

그 이유는 석도가 관음도 즉, 도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1882년에 이름을 상실하고 이후 울릉도 사람들이 돌섬이라고 부른 독도를 석도石島라는 한자로 부른 것이다. (_「석도가 독도다」 중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 문제는 항상 정확하게 규명해야 하고 사실과 거짓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 나라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의 역사 기록과 역사 의식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이 아직 침략 전쟁의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읽어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서 금방 그 화제는 사그라들었다고 기억된다.

이 책 <신친일파>는 일본인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조목모족 따진다.

일본인이지만 오랫동안 한국에서 한일관계를 연구한 전문가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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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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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라고는 대학 교양학부 때 한 과목 들은 '철학개론'이 전부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어렵고, 실생활에 직접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이후 철학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최근 철학이 다시 우리 사회 문제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라는 걸 알았다.

철학을 쉽게 이해하는 책부터 철학 자체에 대한 깊은 사유의 책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또 다른 학문과 결합해 우리 눈에 쉽게 띄는 사회로 변화하기도 했다.

삶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는 우리도 산업 사회를 응축시켜 놀랄 만큼 발전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이제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민주 사회, 편리한 삶을 위한 정보화 사회로 넘어오면서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닌,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는가로 발전적인 변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우리 사회를 이해한다.

이때 철학이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식인들이 철학에 주목하는 것 같다.





독자도 철학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도 배우지 못한 독자로서는 이 책 『틸리 서양철학사』를 읽어낼 수 있을까 조금 망설였다.

더욱이 철학사는 그리스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사상과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기 위해 철학의 흐름을 짚어내는 어려운 연구의 결과물 아닌가.

학구열이 다시 불타오른 건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긍정적인 면만을 자꾸 되풀이하는 독자의 이상한 습관(?)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닥쳐온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자신감이 가장 필요했다.

내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자꾸 생각하다보면 힘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곤 했다.

아마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고, 깊이 생각하다보면 우리 삶의 문제에까지 들어가는 것이 철학이란 학문과 유사한 점이라는 생각도 했다...(견강부회식 해석이지만)

책을 처음 받아들었 때도 기가 죽었다. 예상(물론 페이지는 알았지만) 외로 두껍고 중량감도 상당했다.

바로 읽지 못하고 하루를 묵혔다. 더 깊이 생각해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다.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서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어렵다고 생각되더라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란 사족을 달아둔다.





이 책은 철학에 깊은 조예가 없더라도 읽어내려가기 부담 없이 쓰였다.

철학사여서 시대 구분을 명확히 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이 연대순으로 쓰여 있으니 철학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쓰였다.

일단 책을 들면 끝까지 읽게 하는 저자 특유의 저술 능력 때문일 거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틸리 서양철학사』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주요 대학에서 철학 교재로 사용됨과 동시에, 일반 독자들에게 교양서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고 출판사 측은 강조한다. 그만큼 전문적이면서도 쉽게 씌었다는 것이다.

철학의 명문인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평생 봉직한 프랭크 틸리 교수가 쓴 이 책의 가장 탁월한 특징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틸리 교수는 철학사에서 나중에 등장하는 체계들이 앞선 학파에 대해 아주 훌륭한 비판을 제공한다는 확신을 갖고서 자신의 비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 점도 독자의 가독력을 높이는 저자의 능력일 것이다.





이 책의 꾸준한 성공 비결을 설명하는 또 다른 특징은 사상가들이 철학 운동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제시하는 데서 드러난 균형 감각이다.

틸리는 역사적 발전에서 내적 논리를 분별해내면서도 개별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정치·문화적 요소들을 인정했다.

철학자를 철학 운동 안에 놓고 보는 틸리의 솜씨는 근대철학의 구조를 짜는 데서 특히 뛰어났다.

『틸리 서양철학사』가 보여주는 마지막 특징은 틸리 교수가 가진 문체의 명료함과 단순성이다.

틸리는 역사적 철학자들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명료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고, 이러한 명료함은 이 책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철학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지 과거의 업적을 기록하려는 역사적 골동품 애호가의 것도 아니고, 이념과 개념의 지속성만을 추적하는 사상가의 것도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의 것이다.

그것은 철학사를 철학적 이념의 진열장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통찰을 끌어온 철학자의 관심이었다.





다음은 어떤 전문가의 서평이다.

철학 체계는, 인격적·역사적·문화적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는 순전히 지적 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그 창시자들의 기질과 인격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문화적·역사적·철학적 상황을 반영하는 개별 철학적 천재의 업적이다.

모든 체계는 그 체계의 이론적 취지와 구조적 조직 모두를 결정하는 무수한 영향력의 수렴점이다.

“사유는 삶으로부터 분출되며, 삶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삶을 수정시킨다.

인간 사유의 수많은 파동은 문명과 역사의 파동이며, 거꾸로 문명과 역사는 사유의 파동을 야기하는 동시에 그 파동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 이광래 교수

어떤 철학 교수는, “철학사는 특색과 장점이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종류도 또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독일어권과 영미권의 철학사 책들이 있는데, 각각 장단점들이 있겠지만, 다양하게 번역되어 나오는 것이 교양의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널리 읽히는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훌륭한 철학자가 쓴 좋은 책이긴 하지만, 너무 독창성에 치우친 나머지 철학사에 대한 공정성과 균형 잡힌 객관성이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교양과 철학 개론을 위해서는 철학 교수의 공정하고 균형 잡힌 철학사 책이 더 나을 수 있다.

틸리 교수의 『서양철학사』는 미국 각 대학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철학 교재로 많이 채택된 책이다.





철학사는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우리의 경험 세계를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시도된 상이한 노력들을 연관지어 설명하려 한다.

이는 가장 초창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숙고된 인간의 사유의 발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철학 이론의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과 설명이 아니라 철학 이론 간의 관계, 그것들이 산출된 시대, 그리고 그 이론을 제공한 사상가들과 관련된 연구이다. 모든 사상 체계는 다소간 그것이 발생하는 문명과 그 창시자의 인격과 이전 체계들의 성격에 의존하면서, 당대와 그 이후 시대의 이념과 제도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철학사는 각각의 세계관을 그 고유한 상황에 놓고, 그것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지적·정치적·도덕적·사회적·종교적 요소와 연결지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인간의 사색의 역사에 나타나는 발전의 궤적을 추적하고, 철학이라고 불리는 정신적 자세가 어떻게 등장하며, 제공된 상이한 문제와 해결책이 어떻게 새로운 물음과 대답을 자극하는지를 보여주며, 각 단계에서 어떤 진보가 이루어졌는지를 규정해야 한다.





철학사 연구의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명명백백하다.

총명한 사람은 실존의 근본적 문제에, 그리고 인간이 문명의 상이한 단계에서 그 문제에 대하여 발견하고자 하는 해답에 관심을 갖는다.

게다가 그런 연구는 자기 시대와 다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철학사 연구는 철학적 사색을 위한 유용한 준비 과정으로 이바지한다.

이는 사유의 좀 더 단순한 구성에서 좀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구성으로 나아가면서, 인간의 철학적 경험을 회고하고, 지성의 추상적 사유를 훈련시킨다.

과거의 이론에 대한 연구는 자신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도움을 준다. 이는 철학이 다른 형태의 창의적 활동보다 철저한 역사적 정향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현재의 지식 상태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면, 성공적으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예술가는 예술사에 대하여 제한적인 지식을 갖고 있어도, 위대한 예술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선배의 작업에서 절대적으로 독립하여 철학 체계를 구성하려는 사람은 문명의 출발기에 나타나는 조잡한 이론을초월할 생각일랑 아예 포기해야 한다. 철학사는 건설적인 철학자에게 꼭 필요한 재료를 제공하는 과거의 철학적 통찰의 저장소이다.

철학자는 한편으로 동 시대의 다른 분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철학사로부터 자료를 끌어낸다.그래서 철학사는 지난날 철학자들의 업적에 대한 요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철학적 탐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재료도 제공한다.





이 책의 접근 방법은 역사적이면서 비판적이다.

[1] 저자는 각각의 철학 체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즉 철학사가는 당분간 각 체계의 이론적 통찰을 동정적으로 살펴서 그 체계를 구조적 전체로서 파악한다.

[2] 철학 체계의 논리적으로 기본적인 가정을 진술한다.

해당 철학자가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종종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철학 체계의 암시적 혹은 암묵적 전제를 진술한다.

그것은 철학적 분별력과 통찰력을 요구하는 엄밀한 작업이다.

[3] 각 체계는 엄격한 철학적 비판을 받아야 한다. 암시적이든 명시적이든 근본 모순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내적 비판을 받아야 한다.

또한 해당 체계의 한계와 부적절성을 드러내는 외적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적 혹은 외적 비판을 가하기 전에 먼저 그 체계를 이해하여야 한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체계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르친 덕목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대단한 자제심을 갖고 있었고 관대하고 고상하고 큰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점이 별로 없었다. 그는 칠십 평생에 전쟁에서나 정치적 의무를 수행할 때 용기 있는 태도를 많이 보여주었다. 재판 때 그의 태도는 도덕적 위엄과 견고함과 일관성에 대한 인상 깊은 모습을 제공한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공평하게 행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아무에게도 악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생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운명했다.

- p.92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합리적인 국가에 대한 갈망과 당대의 부패한 세속 및 교회 정치에 대한 혐오를 표현했다.

정치적 독재체제에 대한 그의 옹호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비관론적 관념에 뿌리를 둔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 본성은 굶어 봐야만 근면해지고 법에 의해서만 덕스러워진다.

그는 강제력에는 강제력으로, 책략에는 책략으로 맞서고, 자신의 무기로 마귀와 싸우는 것 외에 당대의 부패와 무질서에서 벗어나는 길을 달리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목표를 추구할 때 드러나는 어중간한 기준을 비판했다.

그는 교회와 국가의 많은 정치가들이 실천하고 이 시대까지 계속 실천하는 바를 이론으로 정당화했지만, 국가를 구출하는 다른 방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정당화했을 뿐이다.

- p.352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내가 의심한다는 혹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참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생각하는 그 시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데카르트는 경험적 심적 사실, 자신에 대한 정신의 의식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의심이 의심하는 자를 함축하고 사유가 사유하는 자, 사유하는 사물(res cogitans), 혹은 정신적 실체를 함축한다고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합리적이며 자명한 명제로 보이는 것에 도달한다.

의심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며,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이는 질서정연하게 철학하는 자에게 등장하는 첫째이자 가장 확실한 지식이다.”(「철학 원리」)

--- p.389





니체는 초인 개념과 관련하여, 영겁회귀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처음에 그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에게서 이 관념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논리적으로 순수한 과학적 고찰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우주가 무한한 시대에 존재했지만 유한한 수의 원자 혹은 “권력(힘)량”과 유한한 양의 에너지로 구성된다는 가설에서 보면, 오직 유한한 수의 상이한 조합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 배열의 영겁회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모든 목적을 박탈하는 이 관념은 초인에게 공포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의 창조적 실존과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에 대한 그의 솔직하고 즐거운 긍정은 그로 하여금 실제로 영겁회귀를 환영하게 만든다.

오직 목표 없이 살며 본질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자신을 구속할 우주적 목적에 대한, 자신에게 만족을 가져다줄 천국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은밀히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떨어질 지옥에 대한 신념을 요구한다.

- p.631





저자 : 프랭크 틸리

FRANK THILLY, 1865-1934. 19세기 후반,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와 독일 베를린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평생 철학 교수로 가르쳤다.

저서로는 『라이프니츠와 로크의 논쟁』,『윤리학 서론』,『서양철학사』등이 있다. 틸리 교수의 『서양철학사』는 1914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쳤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 각 대학의 철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교과서로 사용되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내용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받으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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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존재하기 -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경험으로서의 달리기
조지 쉬언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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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많이 달려본 사람과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질문하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많이 달려본 사람은 달림으로써 얻는 육체적, 정신적인 이익을 말할 것이다.

반면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달리기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체력이 안 되니까 못 달린다고 말하기 십상이다.

마라토너에게 달리는 이유를 물으면 등반가에게 왜 산에 오르는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부분 "건강한 삶을 위해 달린다"고 말한다.

선수들에게 묻는다면 "달리기 위해서는 육체적 바탕에 정신적 무장도 중요하다고 답변할 것이다.

달리기는 굉장히 단순한 운동이다. 인간은 놀기를 좋아하지만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달리기는 놀이로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선수가 재미 없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는 정신력 때문이다.

그러나 달리기를 영혼과 접목시키는 일은 철학이나 의사들의 깊은 연구를 통해야 가능하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유산소운동으로 알려진 달리기, 하지만 달리기를 단순히 ‘산소를 더 들이마시기 위한’ 운동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달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은 많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중독’에 빠져 오늘도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릴 것이다.

이들에게 달리기는 단순히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서점에는 달리기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와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달리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부터 수십 일 안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방법과 심지어는 달리는 동안 생길 수 있는 부상을 예방하는 법까지 달리기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단조롭고 힘든 움직임을 일정 시간 이상 지속해야 하는 달리기는 무언가 다른 동기가 필요하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달리기가 건강이나 수명과 갖는 관계나 일정 시간 안에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신, 달리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여러 감정과 ‘가져야 할’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 조지 쉬언은 이 책에서 달린다고 해서 수명이 늘어나거나 더 건강해진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만 달리는 길에서 만나는 그 모든 생각들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거리로 달려 나왔던 이들은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왜 이렇게 힘들게 달리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장거리 러너라면 누구나 느끼는 이러한 감정은 단순히 식이요법이나 연습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그런 순간을 위해 쓰인 책이다.

하지만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굳이 달리지 않더라도 삶이라는 장거리 달리기가 갖는 의미를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해 말하는 듯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어떤 전문적인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조지 쉬언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발자국만이 찍혀 있을 따름이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쉬언은 책상에 앉아 러너에게 달리기와 관련한 수치를 나열하는 대신 곁에서 직접 달리며 함께 땀을 흘리고 함께 느낀다.

그런 자세가 인생에서도 땀을 흘리며 사는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한 달리기 상식이나 오래 달리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이 책은 그보다 달리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색의 시간에 주목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안고 달린다. 문제 안에서 직접 살아내기 위해서, 대답을 찾으려고 애쓰며, 삶에 대해 다른 해답은 없는지 살펴보며….”

그는 시장 가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달리기를 통해 ‘역사를 만들지 않고 사는 법, 원수를 갚지 않고 즐기는 법, 영적 성장의 최종 목적지인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또한 그는 달리기를 통해 체력의 극한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막연하게 ‘이렇게 하자’고 말하는 대신 ‘실제로 달려 보니 이래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먹거나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말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쉬언의 달리는 ‘자세’이다.

힘들 때면 쉬언은 이 순간을 견디는 과정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견디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하며 다음 발을 내딛는다.

이렇듯 쉬언은 삶을 더 깊이 살기 위한 방법으로서 달리기를 제안한다.

저자의 땀방울이 묻어 있는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인생이라는 장거리 달리기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보면 생각에도 논리가 없는 것 같고 육체의 움직임도 제멋대로인 듯하지만 이 마음에 귀를 기울일 때 다른 결과를 얻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신념은 그런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 마음을 통해 우리는 용기라는 최고의 실천을 얻는다.

살아가는 용기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두 팔을 올리고 스스로 보호자가 된다.

- pp.34-35

진정한 러너란, 축구를 하기에는 몸집이 작다거나 농구 골대에 공을 잘 던지지 못한다거나 커브공을 맞추는 재간이 없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러너는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달린다.

러너가 되면서, 고통과 피로와 아픔을 견디면서, 스트레스에 스트레스로 맞서면서,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남겨 놓으려고 하면서 러너는 자신에게 충실해지고 그대로 자신이 된다.

- p.56





내일이란 내 남은 삶의 첫날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오늘까지의 혼란스러운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 물음에 대한 정답은 ‘그렇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훌륭하신 분들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일까? 나는 그게 자신의 걸음걸이를 알아가는 일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 p.82

나는 책상물림이다. 이 말은 곧 내가 똑똑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관념적인 생각들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은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세계는 내 작은 몸뚱아리 속에 존재한다.

그 세계가 완성되느냐 마느냐는 내 육체적 건강에 달렸다. 내 몸이 완전해야만 나 역시 완전해질 수 있다.

- p.94

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 작정인데, 이 종교의 첫 번째 교리는 “규칙적으로 뛰어 놀아라”다.

하루에 1시간씩 뛰어 놀게 되면 사람은 온전해지고 건강해지고 오래 살게 된다. 이처럼 연습은 놀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습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간혹 언론 매체에 나오듯 연습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 p.120





만약 내가 대학교 총장이라면 학자가 아니라 운동선수를 채용할 것이다. 학문적 성취 대신에 운동을 위해 지원금을 책정할 것이다. 교육의 잣대가 너무 지식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관심의 영역을 스포츠와 놀이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쪽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 pp.146-147

제대로 살지 못한 삶이 인생의 가장 큰 적이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여러 가지 선입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런 위험에 처한다. 손을 써서 하는 일은 저급하다는 우리 사회의 통념에 따라 움직일 때, 내가 무슨 수로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사명감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 pp.182-183

내가 달리는 모든 1마일은 늘 첫 번째 1마일이다. 길에서 보내는 매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 날마다 러닝복을 입을 때마다 나는 처음 본 것처럼 삼라만상을 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보며 다시 태어난다.

- p.193

러너의 목표는 건강이 아니다. 러너의 목표는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몸 가꾸기이다. 건강이란 그렇게 몸을 가꾸는 과정에 지나게 되는 어떤 것이다.

한 번도 발휘하지 못한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의 능력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스치며 지나치는 정거장이다.

- p.230






건강은 몸이 온전하게 제대로 움직이며 최고의 능력치까지 이르렀는가에 달린 문제다. 내 건강은 내 삶의 태도와 많은 관련이 있다. 영혼과 육체가 알맞은 상태냐가 중요하다. 건강이란 온전한 인간으로 자신을 닦아 나갈 수 있느냐와 관련된 문제다. 내 몸에 병이 있더라도 내 건강은 최고조에 이를 수 있다.

- p.245

마지막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머리는 굴려야 한다.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힘을 모두 소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더 이상 반응을 보일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 힘을 모두 소진시키면서 속력을 내야만 한다. 장기판으로 치자면 외통수가 되는 순간이어야만 한다.

- p.277

믿음에서 비롯하는 결심은 마음으로만 가능하다. “과연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와 같은 엄청난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때, 우리는 그 모든 피로를 이겨낼 수 있는, 또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 p.305

우리가 진정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 든다면 그건 매 순간 실패할 위험을 안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됐다면 결승점까지 걸어서 들어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다.

- p.319





어떤 마라톤이든 결승점에 들어가는 때만큼은 가슴 벅차지 않을 수 없다. 달려오는 내내 러너는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힘든 일도 아주 많았지만 결국 이겨냈다. 그런 해방의 순간이 있을 수 없다. 그 시련이 끝날 때쯤이면 달리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p.349

거리를 달릴 때, 나는 철학자가 된다. 그 순간,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정신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옳다는 것을 보여줄 방법을 찾는다.

- pp.365-366

주기적으로 우울할 때, 나는 삶이란 하나의 경기라는 것, 하지만 사람이 제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오직 신만이 그 결과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기의 내용이 아니라 달리는 사람이 중요하다. 늘 그렇듯 적은 내 안에 있다.

- p.396

나는 신과 싸운다. 나는 신이 내게 부여한 한계와 싸운다. 고통과 싸운다. 부당함과 싸운다. 나와 이 세계의 모든 나쁜 것과 싸운다.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이 언덕에 올라설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올라설 것이다.

- p.40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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