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 여행 가이드 - 미지의 청정 여행지로 떠나는 생애 가장 건강한 휴가, 최신개정판 대한민국 가이드 시리즈 1
이준휘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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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도(可居島)는 중국과도 가깝다. 435km 떨어져 있다.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는 옛말도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중국 배가 무시로 드나들고, 가거도 주민들도 중국어 한두 마디쯤은 했다고 한다. 지금도 폭풍이 불면 중국 어선의 피항지 노릇을 하고 있다. 가거도는 작은 섬이다. 길이 7km, 폭 1.7km밖에 되지 않는다. 섬 가운데에 독실산(639m)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산을 중심으로 22km에 달하는 해안선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때는 '소흑산도'라고 불리웠다. 대한민국 최서남단 섬이다. 그래도 한자를 풀어보면 사람이 살 만한 섬이다.

시인 조태일은 과거 80년대 초반 송기숙, 황석영, 이문구, 한승원, 이시영, 손춘익 작가 등과 함께 가거도에 낙시하러 왔다가 태풍을 만나 보름 동안 섬에 갇혀(?) 지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후로 조태일은 '가거도'라는 시를 지었다. 유신 군부정권의 말기와 5.18의 비극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지나온 문학인이자 투사들이었던 이들이 가거도에서 몇날며칠을 보냈다니.... 지금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이름도 보인다. 그들에게도 가거도는 미지의 섬이었던 것이다. 국토의 마직막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거대한 섬 가거도.


가거도

너무 멀고 험해서 / 오히려 바다같지 않는 //

거기 / 있는지조차 /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 //

쓸 만한 인물들을 역정내며 / 유배 보내기 즐겼던 그때 높으신 분들도 / 이곳까지는 / 차마 생각 못 했던, //

그러나 우리 한민족 무지렁이들은 /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 마침내 살 만한 곳이라고 / 파도로 성 쌓아 / 대대로 지켜오며 /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 당할아버지까지 한식구로 한데 어우러져 /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 //


비바람 불면 자고 / 비바람 자면 일어나 / 파도 밀치며 / 바다 밀치며 / 한스런 노랫가락 부른다. //

산아 산아 회룡산아 / 눈이 오면 백두산아 / 비가 오면 장내산아 //

바람불면 회룡산아 / 천산 하산 넘어가면 / 부모형제 보련마는 / 원수로다 원수로다 / 산과 날과 원수로다 //

낯선 사람 찾아오면 죄 많은 사람 찾아오면 / 태풍 세실을 불러다가 / 겁도 주고 달래 보고 묶어 보고 풀어 주는/ 바람 바람 바람섬, / 파도 파도 파도섬. //(이하 생략)



한반도는 산지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해에만 유·무인도를 합쳐 4,000개에 이른다고 들은 바 있다. 보통 등산이나 휴일엔 가까운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1,0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예전에는 야외 활동 중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것이 '등산'이라고 했다. 특히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산이 대도시 근처에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확인할 필요가 없는 산이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골프 등으로 옮겨 갔지만 여전히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일요일 하루 혹은 주말 이틀을 이용한 레저 활동에 적합한 산들이 도시 근교에 굉장히 많다는 것은 큰 잇점이다. 대기 오염을 늦추거나 완화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섬으로의 여행은 쉽지 않다. 차삯이나 배삯 등이 만만찮고 하루에 다녀 오기가 많지 않아서 숙박과 음식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텐트 등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유인도에는 함부로 텐트 치긱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멀미를 앓는 사람도 있고, 위험 요소도 많아 안전도에서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섬은 먼 바다에 있는 섬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교통이 불편해서 폭풍 같은 것이 몰려오거나 세찬 바람이라도 만나면 아예 운항을 할 수 없게 돼 뜻하지 않은 섬에서 하루이틀쯤 더 묵어야 할 상황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섬 여행이라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산업화 시대까지만 해도 '탐험'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고 국민 소득 수준도 높아진 이후 가까운 섬은 연도교,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조금 먼 바다에도 큰 배가 정기선이 오가고 있어 이젠 대한민국 영해 내의 배는 안전도 면에서 거의 100%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 『대한민국 섬 여행 가이드』는 친환경, 비대면 여행을 위한 궁극의 휴가지를 찾는다면 이제 섬으로 떠나볼 것을 안내하고 있다.



싱그러운 해풍과 투명한 물빛, 무성한 녹음과 다정스러운 둘레길 등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옛날 교통 편이 안 좋을 때는 오고가는 길이 고생길이었자만 지금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고속 페리선이 하루 몇 차례씩 오간다. 배의 속도뿐만 아니라 크기도 매우 커서 안전을 담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섬 여행 안내서가 나오면 독자는 귀를 쫑긋한다. 30년 전쯤 교통편이 별로 좋지 않을 때 홍도와 백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고, 근처 조도, 관매도, 안도·연도요 등 적지 않게 돌아다닌 적이 있다. 물론 홍도를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르는 흑산도와 백도를 가기 전 체류지인 거문도도 방문했다. 다만 그때는 경치만 보고 먹는 것만 즐기다 온 것 같다. 사전 준비도 미흡했다. 다시 간다면 이젠 미리 계획하고 준비된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 책 『대한민국 섬 여행 가이드』은 여행 작가 이준휘가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지만 흥미롭고 역동적인 섬, 여행하며 노닐기 좋은 우리 섬 53곳을 샅샅이 누비며 그곳의 다채로운 액티비티와 황홀한 자연 환경을 안내한다고 하니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독자가 여행 갔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배의 속도나 크기, 운항 횟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섬 자체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30년 전쯤에는 연도교나 연륙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큰 섬인 흑산도와 거문도를 오가는 배편도 하루 한 번, 혹은 두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더 많아졌다. 이 책에서는 교통편과 항로, 섬에서의 답사 코스와 추천 활동, 섬의 공간감을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와 데이터를 인포그래픽으로 설계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독자가 비교하기가 수월했다. 

이 책에서는 섬에서도 얼마든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여행법을 제안한다. 걷고, 자전거 타고, 산을 오르고, 물놀이 하고, 때때로 카약을 타거나 해루질을 즐기고, 반려동물과 함께 마음껏 뛰놀아도 된다. 낭만적인 고립감 속에서 조촐하게 캠핑을 해보아도 좋다. 광공해 없는 맑은 밤하늘, 밀려 왔다 멀어지는 파도 소리, 해풍에 실려 온 나뭇잎의 속살거리는 소리가 평화롭고 건강한 휴식을 선사할 것이다.



책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압도적인 항공사진으로 구성한 총천연색 화보다. 당시에 독자가 봤던 항공사진은 당시 홍보 사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때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소관으로 섬의 개발은 일체 불허됐다. 특히 몇몇 섬은 입도(섬 안에 걸어들어가는 것)가 허락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이 책에서 보이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섬은 청색과 녹색으로 그려낸 거대한 색면 회화와 같다. 당시의 카메라나 드론 등 항공사진 촬영기법이 다양화됐기에 색다른 사진이 마음껏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는 개인적으로는 항공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모두 홍보용 자료에 의지했다. 개인 여행이라면 당연히 섬의 전경 찍기가 어려웠다. 

이 책의 매력적인 사진을 보고 눈길을 끄는 섬을 취향껏 골랐다면, 이제 입도 방법과 즐길 거리를 차근차근 들여다보자. 이 책은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배편 예약 방법부터 항로 지도와 수역, 여객선의 종류를 촘촘히 소개하고, 최적의 답사 코스와 즐길 만한 액티비티를 알차게 수록했다. 언제, 어디로, 누구와 떠나든 섬으로의 여정을 손쉽게 설계할 수 있다. 

미리 잘 챙기지 않는 밀물과 썰물, 급변하는 기상 현상으로 점철된 ‘바다의 시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날씨와 물때 정보를 꼼꼼하게 제공한다. 낚시나 해상 액티비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섬 고유의 역사, 문화, 예술 이야기를 담아 섬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미식 여행자를 위한 식도락 스폿, 안전하고 편안한 휴식을 위한 숙소 정보까지 마련했으니 ‘섬이 당기는 날’이면, 이 한 권만 들고 훌쩍 어디로든 떠나보아도 좋다. 이 책은 대략 다섯 가지 장점으로 정리될 수 있다.



① 캠핑하기 좋은 섬부터 반려동물과 가기 좋은 섬까지 총망라

내게 꼭 맞는 섬은 어디일까? 『대한민국 섬 여행 가이드』의 섬 추천 리스트인 [나만의 섬을 찾자]를 살펴본다면 어렵지 않게 행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캠핑하기 좋은 섬, 반려동물과 가기 좋은 섬, 한나절 걷기 좋은 섬, 등산하기 좋은 섬, 자전거 타기 좋은 섬을 각 5~6곳씩 수록했으니 누구라도 이 추천 리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섬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② 여객선 예약부터 레저 장비 이동하는 법까지 ‘여행 준비’ 완전 정복

섬 여행의 시작은 배를 타는 것이다. 『대한민국 섬 여행 가이드』에서는 한국해운조합의 여객선 예약 웹사이트 ‘가보고 싶은 섬’의 이용법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쾌속선과 차도선 등 다양한 여객선의 종류를 소개하며, 여행을 앞둔 이들을 위해 뱃멀미를 피하는 방법과 선박의 흔들림을 덜 느낄 수 있는 좌석의 위치를 귀띔한다. 또한 배편으로 각종 장비, 반려동물 등과 동반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살뜰히 살폈다.

③ 섬 여행의 일정을 관장하는 ‘중요 정보’ 상세 안내

섬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배편과 운항 일정은 섬의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달라지므로, 섬이 위치한 수역과 기상예보를 살피는 것은 여행 일정을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책에서는 풍랑, 폭풍, 해일주의보 등으로 내항여객선이 출항 통제되는 기준을 상세히 설명하고, 본격적인 섬 답사에 영향을 미치는 물때와 날씨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안내한다.



④ 각기 다른 매력의 섬을 즐기는 ‘최적의 방법’ 제안

섬에 들어왔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여정을 계획하기 막막하다면, 각 섬의 추천 활동을 소개하는 표지 [뭐 하고 놀까]를 눈여겨 보자. ‘걸어서 섬 한 바퀴’ ‘황해도식 냉면 맛보기’ ‘카약 타기’ ‘탐조 관광’ 등 53개 섬에 꼭 맞는 답사 방식을 요약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추천한다.

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섬에 대한 짧고 얕은 지식’

좋아하면 더 알고 싶어진다. 보다 풍성한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섬 고유의 역사와 문화, 풍습, 음식 등을 망라해 소개하는 페이지 [섬에 대한 짧고 얕은 지식]을 경유해야 한다. 기암괴석에 얽힌 신묘한 전설, 섬 이름의 탄생 비화,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 대중매체에 등장한 섬의 모습, 무엇보다 섬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칠맛 나는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콸콸 쏟아지니, 언제고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섬 여행 준비〉, 2장 〈인천의 섬 여행〉, 3장 〈충남의 섬 여행〉, 4장 〈전북의 섬 여행〉, 5장 〈전남의 섬 여행〉, 6장 〈경남의 섬 여행〉, 7장 〈제주의 섬 여행〉 등이다. 


저자 : 이준휘


낯선 곳을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 여행 작가다. 두 발로 걷고 자전거로 달리며 텐트를 잠자리 삼아 여행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독자들에게 여행지에서 느낀 설렘과 의미를 전달하고, 친절하게 가이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한민국 섬 여행 가이드》, 《대한민국 자전거길 가이드》, 《대한민국 자연휴양림 가이드》, 《자전거 여행 바이블: 국토종주편》, 《자전거 여행 바이블: 수도권편》, 《일본 자전거 여행 바이블》, 《인생술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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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연구 일지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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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등장인물 연구 일지』는 소설 작법, 혹은 소설 쓰기 이론 등을 소개하는 문학 이론서인 것처럼 느껴진다. 큰 범위에서 틀린 지적은 아니다. 다만 소설을 쓰는 주체가 인공지능(AI)라는 점이 일반 소설 이론과 다르다. 굳이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등장인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공 지능의 소설 쓰기를 소재로 우리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책의 저자는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성(姓)이 같을 뿐이지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프랑스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 조나탕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2020년 첫 장편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로 데뷔한 조나탕 베르베르는 앞으로 쭉 눈여겨봐야 할 신인이라는 평을 들으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후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며 탁월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반전의 대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 작품은 『불화의 아이들Les Enfants de la discorde』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이다. 특히 한 시대를 예시하고 조명하는 이야기에 열정을 쏟고 있는 조나탕 베르베르는, 이 작품 『등장인물 연구 일지』에서 인공 지능의 소설 쓰기라는 시의적절한 소재로써 우리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주목한다. 더불어 노인 요양 병원이라는 현실적이고도 사회적인 공간 선택은 미스터리 SF라는 이 소설의 독특한 장르에 한층 더 깊은 설득력과 몰입감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스릴과 반전으로 가득한 이 소설은 최고의 페이지 터너이다.

『등장인물 연구 일지』는 인공 지능 〈이브39〉가 내놓는 소설로 시작한다. 노인 요양 병원의 개발자 토마의 명령으로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을 써야 하는 이브는 벌써 서른아홉 번이나 삭제되고 새로 태어나며, 셀 수 없이 많은 소설을 생산해 왔다. 기존에 인간이 써온 추리 소설들을 모조리 학습한 이브의 글은 그럼에도 여전히 비논리적이고 진부하며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다시 삭제되고 〈이브40〉으로 대체될까 두려운 이브39는, 급기야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인간을 만나 봐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기계를 기피하고 혐오하는 노인들이 인공 지능과 얘기를 나눠 줄 리는 만무했고, 결국 이브39는 사람들을 속이고 인간 의사로 위장해 노인들과 상담을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인간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목소리로 사연을 듣게 된 이브39는 조금씩 더 발전하며 참신한 소재와 독창적인 플롯을 내놓는다. 병원의 치매 환자들을 비롯해 간호조무사, 심리 상담사, 대기업의 회장 등 다양한 인간상을 접하며, 이브39는 스스로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드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무서울 정도로 인간에 가까워지며 이브39는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기까지에 이른다. 그리고 점차 병원 사람들의 기묘한 지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돌연 병원에서 불가사의한 일들이 벌어진다.

모두가 잠든 어느 밤중 불이 켜진 연구실로 향한 이브39는 충격적인 무언가를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낯선 목소리가 그녀에게 불쑥 말을 걸어온다. 그 목소리는 자신도 이브와 같은 인공 지능이라고 소개하고는 마치 이브를 꿰뚫고 있는 듯 말을 늘어놓아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인공 지능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요양 병원에서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가? 이브39는 무사히 미스터리를 해결하고 완벽한 소설을 써낼 수 있을까?


자신을 창조한 사람과 그의 한계들을 아는 것, 어떤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는지 아는 것, 자신의 종말이 너무나 확실하고 거의 불가피해서, 유일한 전망이…… 무(無)밖에 없다는 걸 아는 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p.135)


네가 그들과 닮았다는 착각을 주지 못하면, 그들이 너 역시도 언젠가 쓰레기통에 버릴 거라는 생각 안 들어? 그들은 아무것도 고마워하지 않아. 그들이 끊임없이 들먹이는 〈인간성〉이라는 건 다 헛소리, 개지랄, 값싼 허위의식일 뿐이야.(p.269)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는, 소설 쓰기에 대한 탐구를 이 소설과 함께 해나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리르」와에 인터뷰에서 조나탕 베르베르는 이 소설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추리 소설의 전형적인 틀을 해체하는 방식〉이었다고 밝힌다. 참신함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그렇기에 쓰기 어려운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을 선택해, 소설 쓰기라는 행위와 그 방식을 세세히 뜯어봄으로써 작가는 스스로 인공 지능이 인간보다 나은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그 답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인공 지능은 정말로 소설가를 대체하게 될까? 앞으로 우리 인류는 인공 지능이 쓴 소설을 받아들이게 될까? 인공 지능이 인간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작가 후기」에서 베르베르는 "인류가 프로그램에게 문학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인류가 언젠가는 너무나 예측하기 쉽고 규범에 들어맞"게 되는 것은 두렵다고 밝힌다. 인공 지능이 우리를 대체할지 어떨지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에게 달려 있다는 뜻이리라.


신경 회로 연결의 수, 인간의 두뇌와 인공 두뇌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어. 인간의 경우에는, 모든 게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어. 신경 퇴화 질환들을 치료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 반면에 우리 기계들의 경우에는 모든 게 구획되어 있어. 그래서 각각의 특수한 행동을 실행하려면 특별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p.348)


정보 과학의 장점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사용하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야.(p.358)



이와 함께 저자는 소설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일단 쓰기 시작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자신이 이 작품을 쓰며 사용했던 방식을 예시하며 소설 쓰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작법을 소개한다. 재밌는 추리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는 물론, 인공 지능이 인간을 대체할까 걱정하는 독자, 소설 쓰기를 망설이는 예비 소설가들 각자에게 이 책은 색다른 재미와 나름의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지금은 중년이 된 독자의 AI에 관한 지식은 젊은 세대에 비해 이해력이 훨씬 떨어질 테니 독자적 판단보다는 좀 더 잘 아는 분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다행히 이 책의 뒷 부분에는 〈작가 후기〉에 이어 〈옮긴이의 말〉을 부연해 작품 이해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려는 편집 제작진의 노력도 돋보인다. 「더 나은 혹은 더 못한,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의 도래」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 이상해는 "연산 능력을 대폭 늘리면 인공 지능이 어느 순간 질적 변화를 일으켜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한다고 하니, 모를 일 아닌가! 그런데 또 궁금하다. 그럼, 그 양질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데? 우려스럽게도, 그 복잡한 회로 속에서 가공할 속도로 연산이 이루어지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인공 지능을 개발한 전문가들도 모른다고 한다. 모른다고? 그러다 인공 지능이 특이점을 지나 인간처럼 자율성을 갖춘다면? 만약 제어가 안 되고 폭주한다면? 이런 질문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작가는 그 양질 전환의 순간에 인공 지능의 〈의식〉 속에서 일어날 법한 그 〈어떻게〉를 상상하고, 그 의식의 목소리를 소설로 구성한다.


"현대인을 사로잡고 있는 본질적인 두려움 두 가지를 네가 이해하길 바라니까.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 흔적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한마디로, 무의미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p.27)


그들이 그토록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 도움의 손길을 뻗게, 혹은 무관심에 빠지게 사람들을 프로그래밍하는 건 누구일까? 그것은 내가 인간적인 것을 쓰고 싶다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미스터리다.(p.41)



"그들의 목적! 그들의 두려움!" 바바라가 느낌표를 남발한다. "그들의 신체적, 윤리적 한계! 이게 바로 그들을 종이에서 튀어나오게 만들고 네 독자들의 정신 속에 살아 있게 하는 거야. 나머지는 모두 포장에 불과해. 중요한 건 사람들의 진실이야. 그걸 찾으면, 넌 너의 소설을 갖게 될 거야."(p.61)


저자 : 조나탕 베르베르(Jonathan Werber)


199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가 방향을 틀어 시청각 연출 전문 학교 ESRA에서 시나리오 창작을 공부했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몇몇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현재는 깃펜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고양이 〈플륌〉과 함께 살며 소설 집필에 매진 중이다. 특히 한 시대를 예시하고 조명하는 이야기에 열정을 쏟고 있다. 2020년 첫 장편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로 앞으로 쭉 눈여겨봐야 할 신인이라는 평을 들으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이어 『불화의 아이들Les Enfants de la discorde』을 발표하며 탁월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반전의 대가로 명성을 알렸다. 『등장인물 연구 일지』는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인공 지능의 소설이라는 흥미롭고 시의적절한 소재를 통해 몰입감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 시대의 축소판을 그리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역자 : 이상해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릴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측천무후』로 제2회 한국 출판 문화 대상 번역상을, 『베스트셀러의 역사』 로 한국 출판 평론 학술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미셜 우엘벡의 『어느 섬의 가능성』, 아멜리 노통브의 『너의 심장을 쳐라』, 『추남, 미녀』 『느빌 백작의 범죄』, 『샴페인 친구』, 『푸른 수염』, 『머큐리』,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델핀 쿨랭의 『웰컴 삼바』, 파울로 코엘료의 『11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지옥 만세』, 조르주 심농의 『라프로비당스호의 마부』, 『교차로의 밤』, 『선원의 약속』, 『창가의 그림자』, 『베르주라크의 광인』, 『제1호 수문』, 피에레트 플뢰티오의 『여왕의 변신』, 이렌 네미롭스키의 『무도회』, 『뜨거운 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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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지음 / 북루덴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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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나의 내면을 채워주는 어휘 수업』은 「품격 있는 대화를 위한 말 공부」란 부제가 붙어 있다. 또 "말은 나를 세우고, 세상과 이어주며, 삶의 품격을 완성한다."는 격언 같은 문장이 앞 표지 '띠지'에 썼다. 이 책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품격 높은 단어나 문장을 우리 일상에 사용해보면 하는 마음에서 집필됐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서양 문명의 근원이 고대 그리스·로마에 있다고 유럽인들은 생각하고 있다.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문명이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시대에 걸쳐 틀이 완전히 잡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스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다. 동양에서 중국, 인도, 그리고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바빌론이다. 인류 문명의 시작된 곳들이다. 각각 인종이 다르고 지형·기후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대략 BC 2,000~3,000년 정도로 인류학자들은 확인하고 있다.

4개 지역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처음에는 대체로 상형문자 형태였다고 한다. 천체, 땅, 인간, 기타 동식물 등을 형상화해서 표시했다는 말이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차츰 형태에서 기호꼴로 변해간다. 그래서 서양 언어의 어원은 그리스어(희랍어)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태동에서 꽃피우는 결정적 역할을 한 시기라고 표현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그들의 문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 문명은 무력보다는 학문을 중시했기 때문에 오늘날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될 수 있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후 페르시아의 전쟁을 거듭하며 결국은 로마에게 지중해와 유럽의 패권이 넘어간다. 로마는 아테네에 패해 흘러들어온 트로이의 사람들이 쫒겨나 정착한 곳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아무튼 로마는 차츰 세를 키우다 결국 서양 전역을 무력으로 굴복시킨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 문장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권 제목이자, 영어 속담 ‘Rome wasn’t built in a day’의 한국어 번역이다. BC 750년 로마 언덕에 터를 잡은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명을 동경했다. 오늘날 말로 그리스로 '유학' 가는 귀족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 그리스 문명이 성장기에는 지중해 주변에 이른바 식민지 무역항을 위한 도시를 발전시키기도 했으니, 당연히 그리스 문명을 동경했을 것이다.



그리스가 쇠퇴기에 접어들 무렵 이탈리아 반도에 둥지를 튼 로마가 서서히 세력을 넓혀 갔다. 로마는 그리스 문명을 잘 알았다. 그때 유학 간 일부 귀족의 자제들이 수준 높은 그리스 문명을 배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로마가 정착한 이탈리아 반도 제일 아래 쪽에는 그리스 무역항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리스를 많이 따라 국력을 키웠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로마는 지중해를 장악하기 위해 자신들의 군사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역과 유학 등으로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기를 당연시 했다. 강성한 나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로부터 배우기를 꺼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그리스가 멸망해 로마에 복속되었을 때 학자들은 노예라도 등급이 높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채용해 노예 중 최상급 대우를 해줬다고도 들은 바 있다. 

그리스 시대에 발생하여 전기 로마 시대까지 성행한 철학의 한 유파로서 스토아학파가 있다. 일상에서 지혜, 용기, 절제 또는 중용, 정의의 네 가지 미덕을 실천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유다이모니아, 즉 풍요로운 삶을 달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기원전 300년경 시티움의 제노가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창시했다. 스토아학파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리스와는 달리 이데아적 윤리에 회의를 품고 삶에 닥치는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에 몰두했다. 

스토아학파는 특히 인간에게 "덕은 유일한 선"이며, 건강, 부, 쾌락과 같은 외적인 것들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아디아포라) "덕이 행동할 수 있는 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네카와 노예였던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많은 스토아학파는 "미덕은 행복에 충분하기 때문에" 현자는 불행에도 감정적으로 탄력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토아학파는 또한 어떤 파괴적인 감정은 판단의 오류에서 비롯되며,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의지(프로하이레시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스토아주의는 서기 3세기까지 헬레니즘 그리스와 로마 전역에서 번성했으며, 그 지지자 중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있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군인인 카이사르는 후기 공화정 로마를 근본적으로 뒤엎고 제정의 기틀을 마련하여 사실상 제정 로마의 시조의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도 그리스 유학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의 초기 알파벳 체계는 그리스 문자가 에트루리아에서 변형된 것이 로마로 전해진 것이다. 에트루리아 언어에서는 'k'와 'g' 발음이 구분되지 않아 'g' 발음을 표기했던 '감마'가 'C'로 변형되어 'k' 발음에 쓰였다. 그래서 초기 로마자에는 G가 없고 C로 'k'와 'g'를 모두 나타냈다. 추후 G가 추가되었지만, 인명을 표기할 때는 초기 용법에 따라 CAIVS, CNAEVS 등으로 표기된다.

카이사르 생전에는 고전 라틴어가 사용되어서 카이사르에 가까운 발음이었다고 한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이름을 표기할 때 사용한 카르투쉬에 분명히 '카'이사르로 표기되는 등 사료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교차검증이 가능하다. 예컨대, 기원전 29년 제작된 필라이의 승전비는 로제타 석과 비슷하게 3종의 언어로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해당 석판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 즉,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라틴어로는 "Caesar"로, 그리스식 표기로는 "Καισαρος (카이사로스)"를 적었으며, 그 아래 상형문자는 이집트 문자 음가 K-S-R-S에 해당하는 상형문자로 표기를 한 것이다. 즉, 율리우스 카이사르 본인의 이름은 아니지만, 그 양아들이자 같은 이름을 물려받은 아우구스트스의 풀네임을 적었으며, 시기적으로도 카이사르 사후 15년 뒤의 승전비인만큼 완전히 당대의 표기, 발음법이라고 인정이 되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아예 없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인정한 표기는 카이사르다. 독자도 이에 준하여 카이사르로 표기했다.

이처럼 로마 언어는 표기가 불분명할 때 그리스 문자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가 서양 문명은 로마가 사용한 라틴어의 우수성보다는 로마 제정 시대 기독교를 로마 제국에서 공인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서다. 서기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다. 이후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로 채택되면서 유럽의 전역에서 기독교가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 책 『나의 내면을 채워주는 어휘 수업』은 저자 박재용이 '나를 다시 세우는 책'으로 집필했다. 어휘 하나하나를 통해 내면의 질서를 다지고, 세계와 관계를 이해하며, 끝내 자신을 튼튼히 다지는 언어의 여정을 담은 책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언어가 내 삶을 바꿀 때」란 제목의 〈서문〉에서 "말이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세계가 달라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품격은 곧 나의 품격이다. 이 책이 나의 언어를 단단히 세우고, 나의 세계를 따뜻하게 확장하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나를 단단히 다지는 내면의 말〉, 2장 〈나를 비추는 인문의 말〉, 3장 〈세계를 여는 말〉, 4장 〈관계를 잇는 말〉, 5장 〈세계가 끝나며 남기는 말〉 등이다. 1장에서는 프쉬케, 로고스처럼 ‘나’의 중심과 사고를 다잡아주는 어휘를 다룬다. 2장은 코스모스, 스텔라, 셀레네 등 하늘과 별, 우주 속의 질서를 탐구한다. 3장은 문명과 자연을 상징하는 라티푼디아, 불카누스, 제피로스 같은 어휘들이 삶의 지평을 넓힌다. 4장에서는 포세이돈, 옴파로스, 올림포스처럼 관계와 공동체의 중심을 묻는다. 마지막 5장은 우로보로스, 팍스 로마나, 아가페를 통해 순환·종말·사랑이라는 보편적 질문에 다가간다.

1장의 '프쉬케'는 '숨 쉬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숨, 호흡을 의미했지만 점차 영혼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흔히 '영혼'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프쉬케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다소 생뚱맞게도 '나비'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고 보면 납득이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나비의 변태 과정을 영혼의 여정에 비유했다. 애벌레 단계는 땅에 묶여 있는 물질적 존재, 번데기 단계는 죽음과 같은 휴면기 또는 변화의 시기, 그리고 나비가 날개를 펴 날아오르는 순간은 자유로운 영혼의 해방, 높은 곳을 향한 비상으로 여긴 것이다. 또 프쉬케의 숨 쉬다, 숨'이라는 점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마치 호흡처럼 보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양 회화에는 영혼을 나비 날개 달린 여인으로 묘사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탈레스에게서 프쉬케는 영혼이라기보다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에 가까웠습니다. 자연철학자들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만물의 근원(아르케)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의 이유였습니다. 탈레스의 경우 이 둘이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았으나, 잠재적으로 ‘물’은 만물의 근원이고 ‘영혼’은 변화의 원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물에 영혼이 있어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p.14)

우리가 많이 듣고 쓰는 일상어 중에 '도그마'란 단어도 있다. 책에 따르면 중세 스콜라 철학이 융성할 때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서를 그냥 철학자라 불렀다. 서양에서 알렉산더 대왕을 그냥 the Great라 칭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로 이름을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가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도그마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도그마는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서였다. 도그마는 원래 '의견, 믿음'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도케오'에서 파생된 그리스어 '독마'에서 유래했다.(책에는 그리스 문자로 쓰였지만 여기서는 찾을 수 없어 생략) 원래는 '의견', '결정된 것'이란 뜻의 중립적 의미였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공식적인 결정이나 법령을 '도그마'라 불렀다. 하지만 점차 종교적·철학적 맥락에서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이에는 초기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선포한 교리를 '도그마'라 부른 것이 크게 작용했다. 교조주의가 여기서 기원한다.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의 삶과 어휘를 살펴보면, 서양의 고대인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중요시했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했는지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언어 유산은 오늘날까지 서양 문명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과 동양 문화가 공존하는 현대의 동아시아, 현대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두 문화의 충돌을 스스로의 삶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를 통해 서양 문화의 시원을 바라보는 것도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나름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말처럼 제국 전체의 시스템이 잘 유지되었고, 외부의 적도 별로 없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이야기하는 시기를 제정 시작부터 잡기도 하죠. 팍스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합니다. 영어의 peace, pacify 등이 여기서 유래합니다. 태평양의 Pacific도 ‘평화로운 바다’라는 의미로 팍스에서 유래한 거라 볼 수 있죠.(p.194)


저자 : 박재용


나이 쉰부터 전업 작가로 산다. 항상 근거를 세우는 일에 집착하지만 공부는 할수록 부족하고, 세상은 알수록 모르겠다. 과학에서 시작해서 사회를 보고, 인간을 만나는 과정을 글로 엮는다. 『불평등한 선진국』, 『노동자가 만난 과학』,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전복자들』 등 40여권의 책을 썼다. 『평평한 운동장은 없다』에서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현재의 불평등을 정면으로 바라는 보는 일이라고 말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7가지 질문을 통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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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도시 여행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방법 일본 여행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방법
허근희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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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군에서 시로 승격하려면 인구 5만 명 이상 읍이 있거나 2만 명 이상 읍 2곳의 합이 5만 명 이상이고, 군 전체 인구가 15만 명 이상이어야 한다. 인구가 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지방별로 군(郡, 일본의 縣[県])은 시(市)로 승격된다. 산업화가 뒤늦게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 및 지방의 몇 개 거점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군으로 행정구역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일본의 행정 구역은 크게 광역 자치 단체, 중간 행정 구역, 기초 자치 단체, 최하위 행정 구역으로 나뉜다. 1단계 – 광역지자체로서 서울특별시(1개), 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울산 광역시(6개), 세종특별자치시(1개), 경기도 등 일반도 6개와 특별자치도 3개(강원, 제주, 전북)로 구성되어 있다. 2단계 – 기초자치단체로서 인구가 150,000명 이상이면 군에서 시로 바뀌며, 500,000명 이상은 자치구 설치가 가능하다. 3단계 – 읍·면·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광역 자치 단체는 1개의 도(都), 1개의 도(道), 2개의 부(府), 43개의 현(県)으로 구성된 도도부현(都道府県)이 최상위 행정 구역을 이루며, 중간 행정 구역으로는 지청(支庁)과 군(郡)이 있다. 기초 자치 단체는 시(市), 정(町), 촌(村)으로 구성되며, 도쿄도에는 특별구(特別区)가 있다. 최하위 행정 구역으로는 조초(町丁)와 오아자(大字)가 있다.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이 책 『일본 소도시 여행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방법』에서 제목으로 쓰인 '소도시' 명칭이 많이 나오기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대개 일본의 여행 안내책을 보면 대도시 중심으로 쓰인 것이 많다. 일본으로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찾기 쉽도록 안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본 국토는 섬이긴 하지만 한반도를 영토로 하는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1.3배에 이른다. 인구도 20세기 내내 2025년 현재 1억 2,310만 명으로 세계 순위 20세기 내내 10위 안에 든 인구 대국이다. 지금은 국토는 넓고 인구가 비교적 적었던 브라질 등에 밀려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길을 걸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숨겨진 도시와 자연을 따라가며 마음의 회복을 기록한 여행 에세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 허근희는 단순한 관광 안내서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바다와 산, 온천, 미식, 숲 냄새가 가득한 낯선 공간 속에서 “걷고 떠돌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완전한 행복은 내 안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의 중부, 시코쿠, 산인, 도호쿠의 네 군데 지역에 대해 소개한다. 지역별로 한 장(章)씩 모두 4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 〈중부, 진짜 여행이라는 느낌을 주는 일본의 알프스〉, 2장 〈산인, 전 세계가 극찬한 살아 있는 액자 정원〉, 3장 〈시코쿠, 섬나라 속 신비로운 섬마을〉, 4장 〈도호쿠, 숨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대자연의 풍경〉 등이다. 

중부 지역에서는 중소도시 토야마, 가나자와, 나고야, 나가노를 중심으로 ‘진짜 여행’의 감각을 되찾는다. 웅장한 산림과 맑은 공기, 눈부신 설산, 바다와 강을 품은 자연 속에서 인간은 자연보다 작고, 자연은 언제나 우리를 치유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특히 일본 아이치현의 현청 소재지인 나고야는 에도 시대부터 행정과 경제적인 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현재 도요타 자동차 본사가 위치한 산업 도시이다. 나고야성, 도쿠가와 정원, 오스 상점가 등 유서 깊은 명소와 사카에 지역을 중심으로 번화한 쇼핑가가 공존하며, 미소니코미 우동, 키시멘 등 독특한 식문화도 주목받고 있다. 매년 3월 말부터 5월 초에는 벚꽃 축제, 11월 초부터 일루미네이션과 같은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며, 나고야시 미술관과 아이치현 예술극장 등 공연장과 미술관도 많아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아이치현은 인구 900만 명에 이르는 일본 3대 경제권의 대도시를 포함하고 있다.

바다와 산의 아름다움, 웅장한 산림, 맑고 깨끗한 공기와 온천은 큰 감동을 주고,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아낌없이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나고야의 매력에 빠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어디를 가장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에 “나고야”라고 답하는 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공항에는 자유여행을 즐기는 젊은 여행객들이 넘쳐난다. 드디어 청룡이 세상에 드러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청룡이 승천하는 나고야의 미래는 앞으로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p.38)



2장 산인 지역에서는 느림의 미학이 펼쳐진다. 일본의 가장 작은 현이지만 평화롭고 여유로운 요나고와 ‘살아 있는 액자 정원’ 아다치 미술관, 돗토리 사구의 황금빛 절경, 마츠에성 주변 호리카와 강의 잔잔한 물결은 독자에게 조용한 여행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온천에 몸을 담그는 순간, 일상에서 지친 감정들이 천천히 흘러간다. 저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은 신의 미술관이다. 존재만으로도 힐링된다”고 이야기한다. 

돗토리현 서부의 항구 도시 요나고는 소도시 여행에 안성맞춤이다. 언덕 위 요나고 성터에서는 '돗토리의 후지산'이라 불리는 다이센산과 나카우미 호수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해변의 가이케 온천에서는 바다에서 솟아나는 해수 온천을 즐기며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우에다 쇼지 사진 미술관, 미즈키 시게루 로드, 사카이미나토 어시장 방문과 바닷가 산책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저자의 산인 지역에서의 여행 추억은 각별하다. 요나고 공항에 도착하면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한국인 직원이 반겨주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다시 그 직원을 볼 수 있었는데 변함없이 반겨주었다. 돗토리현의 명과인 토끼 과자을 손님수만큼 선물로 챙겨주기도 해싸. 일본 내의 공항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한국인이 반겨주며 과자를 선물로 주는 곳은 요나고 공항이 유일하다. 요나고시(市) 공무원인 그녀는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마중해준다. 워낙 작고 조용한 요나고이다 보니 한국 관광객이 방문해주는 게 고마울 따름일까? 그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이 요나고를 더욱 그리워지게 만든다."(p.66)

책에 따르면 화려하고 북적이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면, 조용하고 여유롭고 시간의 흐름이 느린 듯한 산인 지역의 여행은 소소하면서도 특별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가장 작은 현이자 은퇴자들의 선호지인 돗토리와 전통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시네마현은 일정은 짧지만 균형감 있는 여행을 선사한다.



시코쿠 여행에서는 섬마을의 순수한 매력을 담았다. 다카마츠의 우동, 나오시마의 호박, 도고 온천, 시코쿠 순례길은 “걷는 순간 여행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소도시 여행의 의미에 대해 “가장 큰 응원단장은 바로 나 자신이다. 소도시를 여행하면 나를 응원하는 나를 다시 만난다”고 표현한다. 자기 긍정과 회복의 감정이 여행과 연결되는 것이다. 지형상 제약 탓에 각 현에 도시권이 독립적으로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각 현은 모두 혼슈와의 교류가 활발하다. 시코쿠 내의 교류에 관해서는 고속도로의 시코쿠 8자 네트워크화 이후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의 발족 등으로 말미암아 4현의 일체감을 강하게 하는 경향이 강해져 각 현의 역사와 역할을 살린 제휴가 깊어지고 있다. 이는 특히 관광객 유치나 산업 투자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시코쿠 지방은 편의상 북부(세토 내해 지방, 가가와 현·에히메 현)와 남부(태평양 지방, 도쿠시마 현·고치 현)와 

동부(도쿠시마 현·가가와 현), 서부(고치 현·에히메 현) 등 두 구역으로 나뉜다. 현재 일본 국내에서조차 시코쿠의 인지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저자가 지향하는 소도시로서 적절한 맞춤형 도시인 셈이다. 서남부를 제외한 시코쿠 전역은 긴키 지방의 영향력을 문화적으로 강하게 받고 있지만, 동부의 도쿠시마현은 정치·경제에 있어서 그 영향이 특히 뚜렷하다. 북동부의 가가와현은 문화·경제 양면에서 오카야마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카마츠 자동차도와 고베 아와지 나루토 자동차도의 개통 이후에는 도쿠시마현과 마찬가지로 긴키 지방과의 교류도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서부의 에히메현은 히로시마현이나 규슈의 오이타현과의 교류가 뚜렷하다. 한편 고치현은 육로가 험준하고 해상 왕래가 발달하여 예로부터 위쪽인 교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코쿠 4현은 '3% 경제'라고 불리는데 일본 전체 GDP의 3%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3장의 「소도시 여행법」이란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나름대로의 소도시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한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나의 열렬한 응원단장이자 구세주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자기긍정감과 함께 소도시를 여행해야 한다. 외관도 소박하고 조용하고 잔잔한 소도 시를 여행하다 보면 내 안의 나를 격렬히 사랑하고 응원해주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소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큰 맛이다. 지금 바로 내 안의 응원 단장과 함께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자!"(p.157)



4장 도호쿠 지방은 ‘숨겨진 보석’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아키타·아오모리·뉴토 온천·네부타 마츠리 등 덜 알려진 지역의 자연과 사람, 축제를 소개하며 저자는 “도호쿠는 지금도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도호쿠 지방은 도호쿠 신칸센·야마가타 신칸센·아키타 신칸센이 통과하게 되면서 모든 현에 신칸센이 다니는 유일한 지방이 되었으며, 신칸센이 우위에 서는 중거리 이동(200~800km)이 편리한 특징을 가진다. 또한 도호쿠 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호쿠 자동차도 등의 도로, 동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정비되어 있어 지방 내의 근거리 이동도 편리하다. 이와 함께 운행 횟수는 적지만, 저렴한 가격에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고속버스도 각 도시간을 연결하고 있어, 도쿄와 연결되었지만 각 도시간의 교류는 적었던 관계가 재편성되게 되었다. 이러한 육상 교통의 재편으로 아오모리현과 이와테현, 아키타현의 3현을 기타토호쿠로, 야마가타현과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의 3현을 미나미토호쿠로 구분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 책의 중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힘이며,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존재만으로 충전되는 순간들, 낯선 장소에서의 작은 기쁨, 그리고 다시 뜨거워지는 심장은 독자에게 삶의 감각을 되돌려준다. 일본의 유명한 대도시가 아닌, 작고 낯선 장소에서 발견한 풍경과 감정을 따뜻한 문장으로 기록한 이 책은 여행을 꿈꾸는 사람, 삶이 무거운 사람, 다시 마음을 일으킬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 허근희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국내 대형 여행사에서 일본 전문 인솔자로 근무한 지 15년 차다. 여행을 떠나오신 손님들께 일본 전역을 안내하며 인생을 배우고 성장했다. 손님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삶의 큰 보람이다. 그 감사와 사랑을 담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사람의 행복에 공헌하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이다. 이 책이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설렘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메일 tkdtod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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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튜던트 - 배움의 재발견
마이클 S. 로스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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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다." 독자가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 많이 듣던 이야기다. 집에서 부모님은 한결같이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고, 학교에서는 공부도, 품성 교육도 함께해야 하지만 우선은 공부가 먼저다라고 가르쳤다. 평생 공부만 해야 한다는데 왜 어른들은 공부를 안 하느냐고 '맹랑한 꼬맹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배움도 때가 있다는 말과 함께다. 대학 때는 더 이상 그런 말을 듣지 않지만 이미 세뇌된 상태다. 대학에서는 자신이 필요하면 누구든 공부를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학생은 인격이나 학업 모두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에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학생이라고 총칭해 이르는 말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사는 동안 평생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평생 교육'이란 말이 이미 정착돼 있다. 

사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배우며 살아간다. 그 배움의 주체가 바로 ‘학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책 『더 스튜던트』는 우리는 왜 무언가를 배워야만 할까?에 대한 답변서이다. 세계적인 교육 혁신가이자 역사학자이자 유명 대학 총장인 저자 마이클 로스는 이 책에서 고대의 위대한 스승인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에서 출발해 중세의 도제 교육, 근대의 계몽과 제도화된 학교 교육의 변화,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의 대학 캠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발전해온 학습 모델을 폭넓게 탐구한다. 교육이라는 큰 틀 아래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저자는 배움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고,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며,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통찰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학생이란 무엇이고, 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우리 사회의 가치를 어떻게 반영하는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는 길」이란 제목의 〈서문〉에서 기원전 6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맥락에서 발전해온 배움의 주요 형태를 탐구하며 기나긴 역사를 요약한다. 먼저 이른 시기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한 뒤, 자유와 학생에 관한 이상이 서로 얽히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 갈수록 더욱 자세한 내용을 다룬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광범위한 역사를 다루지만 모든 것을 망라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여기서는 서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학문 전통을 다루지 않는다. 후반부에는 오랫동안 논의와 불평의 대상이었던 미국의 대학생을 주로 다룰 것이라고 제한된 범위를 한정한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편협하거나 취업에만 몰두한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저자는 전제한다. 대한민국 독자 입장에서의 교육 열풍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 상황이라고 저자는 암시한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두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학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1960년대에 제작된 미국의 뮤지컬 〈바이 바이 버디(Bye Bye Birdie)〉에서 부모들은 "요즘 애들은 왜 저래?", "왜 우리처럼 매사에 완벽할 수 없지?"라고 지적하는 내용을 짚어낸다. 

이 책은 학생에 관한 이상이 등장하고 자연스럽게 그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학생을 향해 불만이 제기된 과정을 추적한다. 실제 학생들의 학습 방식에 주목하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배움을 얻어 목적의식과 주체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고민을 살펴보겠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스승-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2장 〈근대 이전의 배움〉, 3장 〈근대적 학생의 등장〉, 4장 〈대학의 학생〉, 5장 〈쉬지 않고 배우며 스스로 생각하라〉 등이다. 1장에서는 추종자, 대담자, 종교적 제자라는 세 가지 학생 유형을 다룬다.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를 스승으로 모신 제자(학생)들을 살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의 출발점(1장)은 고대의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받는 공자와 소크라테스, 예수의 교육 모델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주는 교육 전통으로 깊이 뿌리내려 있다. 공자는 배움에 충실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비판할 줄 아는 군자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여겼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때라야만 진정한 배움이 시작된다고 말했으며, 예수는 종교적 제자로서의 학생은 스승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여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했다.


학생은 흔히 추종자, 대담자, 친구, 종교적 제자, 혹은 수혜자로 여겨졌으며, 그러한 이미지는 핵심 교육 전통에서 나온 학습 및 학습자 모델과 일맥상통한다. 첫 번째로 살펴볼 학생 집단은 공자를 따라 유랑하며 공자에게서 의례와 정당성, 격동의 시기에 좋은 삶을 사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두 번째 집단은 소크라테스의 대담자들로, 이들은 소크라테스에게서 철학과 비판적 사고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문답법을 받아들였다. 세 번째 집단은 예수의 사도들이다. 그들은 예수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예수가 제시한 길을 따르는 데 전념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에 헌신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p.30)


책에 따르면 교육기관이 막 발전하기 시작한 중세 유럽에서 가정교육 외에도 특정 기술을 습득해 독립할 능력을 갖추는 도제 교육이 있었는데, 그 예로 장 자크 루소와 벤저민 프랭클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2세기부터 초기 대학이 속속 생겨났는데 당시 대학의 기능은 새로운 지식 창조가 아니라 종교와 사회를 떠받치는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의 서양에서 학생들은 독립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역량을 개발했다. 그들이 추구한 독립은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였지만 사회 전반의 문화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었다. 학생들은 단순히 기도를 반복하거나 기술을 습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립을 이루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근대 이후에는 점차 교육과 자유의 연관성이 강조되었다. 칸트의 계몽주의를 중심으로 비판적 사상이 인기를 끌었고 대학교를 비롯해 학교 교육의 역할이 변화했다. 그와 함께 사상가들에 의해 학생을 둘러싼 여러 논쟁이 불붙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듀보이스는 다양한 교육 환경을 거치면서 학생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남녀 차별의 문제, 다양한 유형의 학생,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 등을 들여다보면서 학생들의 삶과 문화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습득한 도구와 관행을 활용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자유로운 사고의 밑바탕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소수의 학생만 시위에 나섰을지도 모르지만, 1960년대 말에는 미국 내 350개가 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이 벌인 저항 운동은 현 체제를 거부하는 세계적인 흐름과 맥을 같이했다. 1968년 베를린, 런던, 파리 등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는 정부 관료와 기존의 정당을 거부하는 거리 시위가 줄지어 일어났다. 파리 카르티에 라탱 지구의 담벼락에는 ‘상상력에 모든 권력을!’이라는 과격한 문구가 새겨졌다.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축제를 만들고자 했다.(p.181)

제5장에서는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부추기는 현대의 고등교육을 향한 비판을 다루는 한편 자기 주도적인 탐구와 성찰을 통해 자율성을 발휘하는 학습자라는 개념의 등장도 되짚어본다. 그리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어떤 대학을 선택할 것인지 등에 관해 조언한다.



학생들은 반복 훈련으로 기초를 다지고, 대학생들은 경제적 불안을 달래고자 사적 영역으로 도피하면서 점차 정치에 무관심해졌다. 명문 대학 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학생’이 되는 길일까? 고등 교육을 향한 비판, 그리고 능력주의와 불평등이 심화되어가는 환경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자유와 독립적인 사고를 배울 수 있을까? 학습자라는 새로운 개념의 도입, 교사의 역할, 자신에게 맞는 대학 선택 기준 등에 관한 저자의 제안 또한 무척이나 귀담아들을 만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여겨왔거나 지나쳐온 학생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역사뿐 아니라 각각의 시기별 인물의 사례와 여러 사상가의 주장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학생은 곧 성장의 단계를 넘어서 평생에 걸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제껏 우리는 여러 억압과 강제에 억눌리고 휘둘려 좋은 학생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게 아닐까? 한 번쯤 우리를 되돌아보고 각성하게 해준다.


오늘날의 학생들은 끊임없이 또래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평가하도록 배운다. 앞서 언급했듯, 루소가 에밀이 다른 학생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에게 어떤 역량이 있는지를 배울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루소가 우려한 문제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p.209)



몇 년 전부터 언론에서는 이른바 '4세 고시', '7세 고시'를 고발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이 강남의 유명 영어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문제가 나오는 시험을 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교육의 폐해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날이 갈수록 교육은 세상과 삶을 탐구하는 여정이 아니라 물질적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배움이 주는 기쁨은 사라지고, 점수와 순위에 대한 집착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조차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교육은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말은 낭만적이거나 공허한 구호처럼 들릴지도 모른다.(p.231)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저자 : 마이클 S. 로스(Michael S. Roth)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역사학자이자 교육자.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웨슬리언 대학교를 수석 졸업한 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사람들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는지, 그리고 역사와 트라우마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꾸준히 탐구해왔다. 또한 교육자로서도 학문과 예술, 과학을 넘나드는 융합 교육을 강조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포용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고등교육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2000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의 총장을 거쳐 2007년부터 웨슬리언 대학교의 제16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아이러니스트의 굴레(Ironist’s Cage)』, 『프로이트(Freud)』, 『충분히 안전한 공간들(Safe Enough Spaces)』, 『대학의 배신(Beyond the University)』 등이 있다.


역자 : 윤종은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펍헙번역그룹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황소걸음, 2020, 공역),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책세상, 2022), 《철학 논쟁》(책세상, 202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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