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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평점 :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자신의 벽』을 읽다 보면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우국 대강연 때 연설하던 것이 떠오른다.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철학자 J. G. 피히테가 적군의 점령하에 있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행한 우국 대강연 말이다. 우국 대강연은 1807년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열렸다고 한다.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독일 국민의 분기(奮起)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알려진 명강연이다.
『자신의 벽』의 저자 요로 다케시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저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은 최근에 자주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등의 그런 생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왠지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고,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고 언급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신경이 너무 많이 쓰여 유치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그런데 인턴은 거쳤지만, 임상의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의사가 되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죽어 나갈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등 의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이라고는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일 수 있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믿지 않아서라고 풀이한다. 이는 세상과 잘 타협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신의 마음속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면 '막다른 곳'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거기에는 과연 내가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라는 동기가 있다고 한다. 사실 자신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고 고백한다. 매우 모호한 질문과 답을 마음속으로 하던 저자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려면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결국에는 결말이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뇌과학을 말하는 것인지, 심리학 이야기인지, 혹은 철학이나, 컨설턴팅인지 모를 저자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이때 저자는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한다. "참고로 문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해 온 것들은 소설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부분을 읽어 보면 안나 오빠의 삶의 방식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니츠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는 미네코가 마지막에 산시로를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나의 허물을 알고 있다. 나의 죄는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는 성경의 구절이 인용됩니다. 젊었을 때부터 저는 이 소설들에 나오는 이 구절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저 자신에 대한 해답이 되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참 어렵군요. 해답은 눈앞에 있는데,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p.7)
저자 이야기의 물꼬를 어디서 어떻게 터야 할지 독자로서는 난감하지만 계속 경청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파헤치며 ‘자신’과 ‘개성’,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에세이라는 설명이 이미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치원생 시절부터 남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경험,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해 의사의 길을 포기한 이야기 등, 저자는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고,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위로와 공감을 얻게 된다." 출판사 측의 정리된 소개글을 읽게 되면 차츰 저자의 집필 의도가 안개 걷히듯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책 『자신의 벽』이란 표제어에 이제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다. 저자는 자신이란 “지도 속의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개성이나 자아의 확립,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자신’은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임사체험, 뇌과학 사례, 문학작품 인용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자신’의 경계와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좋아야 잘하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넘어,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따뜻한 시선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의 연결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문제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저자의 진솔함,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보편적 진리는,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을 남길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 2장 〈진짜 나는 마지막에 남는다〉, 3장 〈나의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4장 〈에너지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6장 〈유대에는 좋고 나쁨이 있다〉, 7장 〈정치는 현실을 움직이지 않는다〉, 8장 〈「자신」외의 존재를 의식한다〉, 9장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10장 〈자신감은 「자신」이 키우는 것〉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흔히 하는 순수한 질문을 한 번 떠올려 볼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입안에 있는 더럽지 않은데, 왜 입 밖으로 뱉으면 더러운 거예요?" 이 질문은 꽤 날카롭다. 실제로 입안에 있는 침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지만, 그 침을 컵에 가득 모아서 마시라고 하면,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어 질문한다.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갑자기 싫어지는 걸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좀처럼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은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금방 풀린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의 뇌, 즉 의식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다'라는 자아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 범위 안에 속해 있으면 「편애」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그때까지 「편애」하던 감정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어 버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논리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람들의 심리 상태의 변화 등을 저자는 1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침'에 이어 '대소변', '수세식 화장실 보급', '해부학에서의 잘린 목이나 팔' 등을 사례로 들어 하나하나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임사 체험'이다. 현장에 가보면, 체험 중인 사람은 의식이 없다. 그러니 말을 걸어도 당연히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의식이 남아 뭔가 끔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진다. 이 꿈에는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는 듯하다. '강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외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보고되고 있는 것이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경험이다. 이를 유체 이탈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뇌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이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군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국가주의에 대한 호소로 보기 쉽다. 그러나 독자가 보기에 단연코 이는 아니다. 저자는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시위(데모)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제한다. 한때는 총리 관저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매주 열릴 정도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도 우리의 일부 아닙니까?"라고 말하면, 분명히 화를 내는 이들도 있을 것 같아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우리의 속내는 이런 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원전이 언제 이렇게 늘었나 하고 의아해 한다고도 밝힌다. 그럼에도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이 문제 역시 나 자신과 연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성찰은 지속된다. 본래 일본인은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도 짚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한 사람이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천황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한 사람에게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일본인들은 거기에 특별히 위화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p.79)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수탈을 당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일본인이 왜 군국주의에 쉽게 빠져들었는지 전체주의 사상의 원류를 찾아 지적하고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의 이어지는 지적은 독자를 더욱 놀라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잊었거나 모르고 있겠지만, 과거 일본인에게는 '생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태어난 날은 각각 존재하고 기록은 하지만 그것을 축하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모두가 일제히 새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먹게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세는 나이'를 저자는 일본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원류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음력설과도 비슷한 셈법인 것 같다. 음력 12월 31일 생이면 하루 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사상의 가족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자성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세는 나이는 없어졌고, 이런 전쟁 이전의 습관이나 법률도 바뀌었지만, 어딘가에 이런 가족적 의식은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의 주장은 왜 우리에게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우리도 아직 음력설을 쇠고, 음력의 나이로 나이를 셈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물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모두 양력에 따라 바뀌었지만(1961년) 중년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력 생일로 호적(?)에 올렸고 가정에서는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환산한 날짜에 맞춰 생일을 쇠는 문화이기에 저자의 지적은 참신한 느낌이다.
저자 : 요로 다케시(Takeshi Yoro, ようろう たけし, 養老 孟司)
일본에서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는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곤충채집에 열정을 쏟아 대학에서 곤충 연구를 희망했지만, 최종 진로는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의 세계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죽음의 벽』 등이 있다. 특히 『바보의 벽』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신체를 보는 법』은 산토리 학예상을 요로에게 안겨주었다. 그중 『바보의 벽』은 ‘요로 철학’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일본에서만 40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역자 : 정유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기술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정보와 전략분야에서 일본 관련 일을 했고, 현재 출판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고등학생을 위한 경제학 입문』(CHIKUMA新書), 『특허미래』(日經BP), 『IoT의 미래』(日經BP)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