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벽
요로 다케시 지음, 정유진.한정선 옮김 / 노엔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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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자신의 벽』을 읽다 보면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우국 대강연 때 연설하던 것이 떠오른다.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철학자 J. G. 피히테가 적군의 점령하에 있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행한 우국 대강연 말이다. 우국 대강연은 1807년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마다 열렸다고 한다.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독일 국민의 분기(奮起)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알려진 명강연이다.

『자신의 벽』의 저자 요로 다케시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분이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의학자로서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저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 책은 최근에 자주 떠오르는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오래전부터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등의 그런 생각이 아니라 "나 자신이 왠지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고,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라고 언급한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한 신경이 너무 많이 쓰여 유치원에 가기 싫을 정도였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했다. 그런데 인턴은 거쳤지만, 임상의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의사가 되면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죽어 나갈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등 의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의사도 아니고, 심리학이라고는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일 수 있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믿지 않아서라고 풀이한다. 이는 세상과 잘 타협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신의 마음속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면 '막다른 곳'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거기에는 과연 내가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던 걸까?라는 동기가 있다고 한다. 사실 자신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른다고 고백한다. 매우 모호한 질문과 답을 마음속으로 하던 저자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을 밖으로 끄집어낸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려면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결국에는 결말이 그리 좋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자신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뇌과학을 말하는 것인지, 심리학 이야기인지, 혹은 철학이나, 컨설턴팅인지 모를 저자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이때 저자는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한다. "참고로 문학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해 온 것들은 소설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부분을 읽어 보면 안나 오빠의 삶의 방식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니츠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는 미네코가 마지막에 산시로를 만나는 장면에서 '나는 나의 허물을 알고 있다. 나의 죄는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는 성경의 구절이 인용됩니다. 젊었을 때부터 저는 이 소설들에 나오는 이 구절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자체가 저 자신에 대한 해답이 되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참 어렵군요. 해답은 눈앞에 있는데,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p.7)

저자 이야기의 물꼬를 어디서 어떻게 터야 할지 독자로서는 난감하지만 계속 경청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파헤치며 ‘자신’과 ‘개성’,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에세이라는 설명이 이미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치원생 시절부터 남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 경험,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음에도 자신을 신뢰하지 못해 의사의 길을 포기한 이야기 등, 저자는 자신의 불안과 고민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고,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위로와 공감을 얻게 된다." 출판사 측의 정리된 소개글을 읽게 되면 차츰 저자의 집필 의도가 안개 걷히듯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책 『자신의 벽』이란 표제어에 이제 조금 다가선 느낌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색다른 시각이다. 저자는 자신이란 “지도 속의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개성이나 자아의 확립,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자신’은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임사체험, 뇌과학 사례, 문학작품 인용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자신’의 경계와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좋아야 잘하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넘어,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회와의 조화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따뜻한 시선은,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과의 연결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문제를 용기 있게 드러내는 저자의 진솔함,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하는 보편적 진리는,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을 남길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 2장 〈진짜 나는 마지막에 남는다〉, 3장 〈나의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4장 〈에너지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6장 〈유대에는 좋고 나쁨이 있다〉, 7장 〈정치는 현실을 움직이지 않는다〉, 8장 〈「자신」외의 존재를 의식한다〉, 9장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10장 〈자신감은 「자신」이 키우는 것〉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나 「자신」은 '화살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흔히 하는 순수한 질문을 한 번 떠올려 볼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입안에 있는 더럽지 않은데, 왜 입 밖으로 뱉으면 더러운 거예요?" 이 질문은 꽤 날카롭다. 실제로 입안에 있는 침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지만, 그 침을 컵에 가득 모아서 마시라고 하면,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어 질문한다. 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갑자기 싫어지는 걸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좀처럼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은 자신을 「편애」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금방 풀린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의 뇌, 즉 의식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나다'라는 자아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그 범위 안에 속해 있으면 「편애」하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면 그때까지 「편애」하던 감정은 사라지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어 버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논리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사람들의 심리 상태의 변화 등을 저자는 1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침'에 이어 '대소변', '수세식 화장실 보급', '해부학에서의 잘린 목이나 팔' 등을 사례로 들어 하나하나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임사 체험'이다. 현장에 가보면, 체험 중인 사람은 의식이 없다. 그러니 말을 걸어도 당연히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희미한 의식이 남아 뭔가 끔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진다. 이 꿈에는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는 듯하다. '강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외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보고되고 있는 것이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경험이다. 이를 유체 이탈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실제로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뇌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이 분명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의 주장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군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국가주의에 대한 호소로 보기 쉽다. 그러나 독자가 보기에 단연코 이는 아니다. 저자는 5장 〈일본의 시스템은 살아있다〉 '시위(데모)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제한다. 한때는 총리 관저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매주 열릴 정도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도 우리의 일부 아닙니까?"라고 말하면, 분명히 화를 내는 이들도 있을 것 같아서 매우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우리의 속내는 이런 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원전이 언제 이렇게 늘었나 하고 의아해 한다고도 밝힌다. 그럼에도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이 문제 역시 나 자신과 연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의 성찰은 지속된다. 본래 일본인은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도 짚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천황이라는 한 사람이 '국민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천황이 상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한 사람에게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냉정히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일본인들은 거기에 특별히 위화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p.79)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수탈을 당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일본인이 왜 군국주의에 쉽게 빠져들었는지 전체주의 사상의 원류를 찾아 지적하고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의 이어지는 지적은 독자를 더욱 놀라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잊었거나 모르고 있겠지만, 과거 일본인에게는 '생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태어난 날은 각각 존재하고 기록은 하지만 그것을 축하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모두가 일제히 새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먹게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세는 나이'를 저자는 일본 전체주의 집단주의의 원류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음력설과도 비슷한 셈법인 것 같다. 음력 12월 31일 생이면 하루 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천황을 정점으로 한 사상의 가족이라는 뜻이라고 저자는 자성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세는 나이는 없어졌고, 이런 전쟁 이전의 습관이나 법률도 바뀌었지만, 어딘가에 이런 가족적 의식은 남아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의 주장은 왜 우리에게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일까. 우리도 아직 음력설을 쇠고, 음력의 나이로 나이를 셈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물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모두 양력에 따라 바뀌었지만(1961년) 중년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력 생일로 호적(?)에 올렸고 가정에서는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환산한 날짜에 맞춰 생일을 쇠는 문화이기에 저자의 지적은 참신한 느낌이다.


저자 : 요로 다케시(Takeshi Yoro, ようろう たけし, 養老 孟司)


일본에서 대표적 지성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요로 다케시는 1937년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곤충채집에 열정을 쏟아 대학에서 곤충 연구를 희망했지만, 최종 진로는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1962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 대학원에서 해부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오랫동안 도쿄대 의대 교수를 지내다가 1995년에 퇴임한 후, 지금은 도쿄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사회시민단체 모임을 주도하고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뇌’를 주요 화두로 삼는 요로 다케시의 세계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함으로써 각계각층에 새로운 ‘앎’을 전파하고 있다. 특히 요로 다케시의 저서는 전공인 해부학, 과학철학에서 사회비평, 문예비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담론을 형성해 일본 문화계에 ‘요로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바보의 벽』, 『신체를 보는 법』, 『유뇌론』, 『죽음의 벽』 등이 있다. 특히 『바보의 벽』은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신체를 보는 법』은 산토리 학예상을 요로에게 안겨주었다. 그중 『바보의 벽』은 ‘요로 철학’의 돌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일본에서만 40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역자 : 정유진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기술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대기업에서 정보와 전략분야에서 일본 관련 일을 했고, 현재 출판과 번역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고등학생을 위한 경제학 입문』(CHIKUMA新書), 『특허미래』(日經BP), 『IoT의 미래』(日經BP)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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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60년
스튜어트 코들링 지음, 엄성수 옮김, 제임스 만 사진 / 잇담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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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람보르기니는 세계 젊은이들의 '로망'이다. 동종 타사가 먼저 출발했지만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부 차종은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람보르기니가 스포츠카를 컨셉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 『람보르기니 60년』은 표제어대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출간한, 출시 차량은 물론 경영 방식까지 모두 밝혀 람보르기니의 미래로 이어지는 디딤돌로 기획됐다. 세계의 명차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각고의 노력이 책 속 곳곳에서 드러나며 혁신적인 경영과 컨셉트카의 상징적인 외관, 스포츠카로서의 엔진 등 람보르기니의 모든 것을 밝히고 있다. 압도적인 존재감의 슈퍼카, 람보르기니의 경이로운 60년 역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람보르기니는 1963년,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350GT와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1947년부터 이어진 페라리 스포츠카보다 약 15년 늦은 셈이다. 그러나 람보르기니는 슈퍼카 유니버스에 지각변동을 불러온 미우라, 모든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쿤타치로 슈퍼카의 기준을 완전히 재정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터스포츠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 스튜어트 코들링은 이 책에서 전 세계 슈퍼카 마니아를 설레게 하는 놀라운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으며 60년이 넘는 격동의 세월을 우직하게 걸어온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가감 없이 기술했다.

다양한 모델의 기술 사양과 함께, 해당 모델에 관한 자동차 전문 기자들의 기록을 풍부하게 제공하며, 역사적인 사진과 람보르기니 기록보관소의 자료, 그리고 이 책을 위해 새로이 촬영된 이미지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람보르기니 모델들의 탄생을 현장감 있게 복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 한 권의 책이다. 기사의 내용은 물론 화보라고 해도 좋을 출시된 차는 다시 한 번 독자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창립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물론, 람보르기니의 성공에 기여한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의 면면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은 세심한 기록이 만들어낸 디테일한 람보르기니 탐구서이다.



책에 따르면 강렬하고 화려한 람보르기니 자동차 특유의 스타일을 보아서는 쉽사리 짐작되지 않겠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람보르기니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설립 이래 회사의 소유권이 다섯 차례나 바뀌는 중에도 멈추지 않고 도전을 이어온 ‘성난 황소’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기술돼 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엔초 페라리와 언쟁을 벌인 뒤 자신이 직접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는 1963년부터, 아우디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하며 브랜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후 활기를 되찾은 람보르기니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60년 역사를 책 한 권에 담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전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 발렌티노 발보니의 〈서문〉을 통해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당시 페루치오는 늘 경쟁사보다 나은 성능의 자동차를 내놓고 싶어 했다. 첫 양산 모델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독보적인 스포츠카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동시에 세상을 향해 자신이 어떤 성격과 기질을 지녔는지 뚜렷하게 보여주었다."(p.7)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가 창업자와 람보르기니 소유주들을 차별화하는 독보적인 이미지를 쌓으며 통념을 깨고 나아가는 선두에 서길 바랐다는 발보니는 "그 과정에서 나온 미우라(Miura)는 분명 스포츠카 세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모델이었다."고 말한다. 덕분에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는 전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어 쿤타치(Countach)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디자인으로 지금 봐도 아주 독특하다는 발보니는 열린 마음에 더해, 현대적인 스포츠카는 유려하면서도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람보르기니 정신을 대변하는 모델로 꼽는다. 물론 미우라와 쿤타치는 람보르기니의 역사를 규정짓는 많은 모델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람보르기니의 모든 전통과 열정은 현재 산타가타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자에서 생산되는 예술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발보니는 강조한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트랙터를 제조해 부와 명성을 쌓았다. 아울러 공압 밸브와 난방 장치 제조를 통해서도 큰 수익을 거두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페라리의 엔초 페라리와 감정 섞인 언쟁을 벌이고 나서 람보르기니가 자신의 자동차 제조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사실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저자 스튜어트 코들링은 말한다. 또 사실이더라도 언쟁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그럴 듯한 이야기'라서 회사 소유권이 다섯 차례나 바뀐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가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창업 비화로 회자되곤 한다고 책에 적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1960년대 초 자동차 업계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트랙터 제조, 난방 장치 공급, 공압 밸브 제조 등 다양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였다. 당시는 고성능 고급 자동차 제조사 창업 붐이 일던 시기였다. 따라서 그가 페라리의 애프터 서비스 방식에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동차 브랜드를 만들기로 한 건 필연에 가까웠다. 저자는 브랜드에 신비감을 부여하는 데는 '신화'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전제하고, 많은 사람이 6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황소 엠블럼을 부착한 람보르기니 자동차를 구입하고 간직하는 것도 신화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또 1964년 잡지 〈스포팅 모토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페루치오가 언뜻 내비쳤듯이 당시 고성능 자동차 시장에는 어떤 빈틈이 있었다. 

"과거에 저는 가장 비싼 고성능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그 멋진 차마다 늘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차는 덥고, 어떤 차는 불편하고, 어떤 차는 빠르지 못했죠. 아니면 마무리가 완벽하지 않거나. 그래서 제가 직접 흠 없는 고성능 자동차를 만들려고 합니다. 기술적 문제가 많은 폭탄 같은 자동차 말고요. 아주 정상적이면서도 완벽한 자동차 말입니다."(p.11) 

이 말은 1962년 자동차 회사 설립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할 때, 그리고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여러 금융 기관과 지방 정부 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일 때 제시한 창업 목표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350GT의 제작 출시에 관한 에피소드도 저자는 귀띔한다. 이에 따르면 람보르기니 측은 시제품 보디 다자인 작업을 프랑코 스카글리오네에게 의뢰했다. 스카글리오네는 토리노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훗날 이 보디 디자인 작업은 보디 제작업체 카로체리아 투어링으로 넘어가 양산차 350GT 모델의 토대가 된다. 엔지니어 지오토 비자리니에 따르면, 그가 페루치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배기량 1.5리터짜리 쿼드-캠 12기통 포뮬러 원 엔진을 보여주었는데, 배기량을 더 키워 페라리의 경쟁 모델보다 더 강력한 엔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비자리니는 애초의 계획과 달리 너무 강력한 경주용 레이스카 엔진을 만들었고, 그 결과 페루치오와 결별하고 만다. 이와 관련해서는 엔지니어 잔 파올로 달라라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아야 할 듯하다. 그들에 따르면 당시 페루치오는 빠른 로드카 엔진을 만들지, 아니면 또 다른 경주용 레이스카 엔진을 만들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오토 비자리니의 엔진은 제작된 적이 없고, 람보르기니의 12기통 엔진은 혼다(Honda) 자동차가 비밀리에 제작했다"고 한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밝힌다.

혼다가 1965년 배기량 1.5리터짜리 12기통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로 포뮬러 원에 참가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엔진은 유입관이 V자 안이 아닌 캠샤프트 사이에 위치하는 등 몇 가지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고 익명의 출처와 희망 사항에 근거를 둔 듯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L.J.K. 세트라이트처럼 공공연한 혼다 예찬자라면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는 주장이었다. 오랜 세월 람보르기니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밥 윌리스는 그런 주장이 다 '헛소리'라고 일축한다.

이 책은 모두 1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미우라〉-「세계 최초 미드-엔진 슈퍼카」, 2장 〈주류가 되다〉-「슈퍼카 성능의 가정용 자동차」, 3장 〈쿤타치〉-「슈퍼카의 전형」, 4장 〈루프를 들어 올리다〉-「미국 시장 진출」, 5장 〈디아블로〉-「거듭난 슈퍼카」, 6장 〈무르시엘라고〉-「아우디, 실력을 발휘하다」, 7장 〈가야르도〉-「운전자의 슈퍼카」, 8장 〈레벤톤〉-「독보적인 성능」, 9장 〈아벤타도르〉-「슈퍼카의 공식을 바꾸다」, 10장 〈세스토 엘레멘토〉-「출력은 올리고, 무게는 줄이고」, 11장 〈우라칸〉-「현재가 미래다」, 12장 〈괴물들〉-「'람보 람보' 출시」, 13장 〈미래의 과거를 향해〉「리메이크, 재해석, 리부트」 등이다.



람보르기니 마니아라면 차 이름만 들어도 어떤 차이고 어떻게 생겼다는 슈퍼카의 이모저모를 잘 알 터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은 여간해선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멋진 외관에 쏠려 차이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사실 누가 옆에서 알려주거나 엠블럼 정도로 구분하는 정도다. 이 책의 1장은 앞서 언급한 〈미우라〉에 관한 이야기다. 1장의 발제문으로 대신한다. "1965년 람보르기니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던 걸까. 잔 파올로 달라라에 따르면, 350GT 모델은 가까스로 제작에 들어간 걸로 보인다. 적절한 테스트 없이 작업을 서두르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했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젊고 야심만만한 엔지니어링 팀은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 1965년 11월, 그들은 토리노 모터쇼에 신차를 공개한다. 아직 보디 셸도 없고, 정식 모델명도 붙지 않은 자동차였지만 모터쇼를 찾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 세울 만큼 매혹적이었다."(p.21)

저자는 미우라는 색깔 덕에 한층 매력적으로 보였다고 말한다. 그 어떤 자동차에서도, 심지어 어떤 모터쇼에서도 본 적 없는 색깔,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중간 어디쯤인 그 색깔은 이후 몇 년간 가장 매혹적이고 유행하는 자동차 색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미우라에도 비사가 있다.

"이렇게 혁신적인 자동차가 롤링 섀시 상태로 모터쇼에 정식 공개되기까지 단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잠깐, 제네바 모터쇼에 진열했던 미우라 모델에 수치스러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아는가? 그건 바로 자동차 뒷부분을 적절한 높이로 유지하는 일부 바닥짐을 제외하곤 엔진 격납실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제품 완성을 서두르느라 그랬을 텐데, 하긴 엔진이 할당된 공간에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무튼 모터쇼 기간 내내 엔진 격납실은 꼭 잠겨 있었다. 그 사이 람보르기니의 영업 책임자 우발도 스가르지는 미우라와 400GT 모델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미리 확보해 놓았다.(p.25)



람보르기니가 합성 소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부풀린 내용이 아니었다. 람보르기니는 실제로 많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787 드림라이너를 생산하고 있는 보잉과 제휴하는 등, 다른 기업들과 협력해 새로운 주물 기술을 개발했다. 2007년에는 보잉과 미국연방항공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미국 시애틀에 자리한 워싱턴대학교에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 첨단 합성 구조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p.183) - 「10장 세스토 엘레멘토」 중에서


저자 : 스튜어트 코들링(Stuart Codling)

저명한 모터스포츠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 미국에서 스포츠카 레이싱을 취재한 이후, 2001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포뮬러 원 잡지 《F1 레이싱》에 합류했다. 『포뮬러 원: 생존을 위해 달리다FORMULA 1: DRIVE TO SURVIVE』 등 F1을 다루는 다양한 도서를 집필했고, F1 전문가로 TV와 라디오에 출연했으며, ‘르노 F1’팀의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 서리의 파넘에 거주하며 《F1 레이싱》, 《오토스포트》, 《오토카》, 《더 레드 불레틴》 등에 기고하고 있다.


사진 : 제임스 만(James Mann)

영국 도싯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및 오토바이 전문 사진작가. 30년 넘게 자동차 산업 전반을 위한 사진을 촬영해왔으며, 전 세계의 출판사, 자동차 기업과 함께 작업했다. 그의 작품은 『람보르기니 슈퍼카LAMBORGHINI SUPERCARS』 등 70권이 넘는 책의 표지 및 내지에 실려 있으며, 《클래식 앤 스포츠카》, 《카》, 《포르자》, 《선데이 타임스》, 《오토모바일 매거진》 등 다양한 신문, 잡지에도 인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왔다.


역자 : 엄성수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다년간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다.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의 종말』, 『승리하는 습관』,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나아가라』, 『테슬라 모터스』, 『더 이상 가난한 부자로 살지 않겠다』, 『러브 팩추얼리』, 『창조하는 뇌』, 『유전자 클린 혁명』, 『유튜브 컬쳐』, 『노동 없는 미래』 등이 있으며, 저서로 『초보탈출 독학 영어』, 『친절쟁이 영어 첫걸음』, 『왕초보 영어회화 누워서 말문 트기』, 『기본을 다시 잡아주는 영문법 국민 교과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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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 저널리즘/리얼리즘 -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20여 년 기자 경력의 현직 사회부장이 들려주는 저널리즘의 생생한 속사정
김정훈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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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저널리즘 리얼리즘』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표제어를 수식하는 문구와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이라는 부제로 앞뒤로 달려 있어 무엇을 이야기하는 책인지 다소 헷갈리게 한다. 핵심어는 '저널리즘'이겠지만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붙여 저널리즘과 리얼리즘의 관계를 먼저 풀어보려는 의도일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수식하는 문구 '지극히 현실적이고 다분히 이상적인'이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한데 묶어 모호하게 한다. 기자 경력 20여 년의 현직 사회부장으로서 제목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저자 김정훈은 왜 혼란스러운 제목의 책을 썼을까? 자칫 제목만 보아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과 분리될 수 없는 당신에게」란 제목의 〈서문〉을 여는 순간 '저널리즘'을 말하기 위한 책이라는 걸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저널리즘을 내건 이 책이 당신에게 닿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저널리즘을 폄하하고, 특히 레거시 미디어*를 외면하는 요즘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람들은 갈수록 뉴스를 믿지 않습니다. 뉴스를 만드는 기자는 조롱받기 일쑤이지요. 권력 놀음을 했던 흑역사가 있었으니, 언론의 침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면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언론이 왜소해지는 현실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을 테니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 건전한 토론이 사라져 가고 있고, 민주주의도 힘을 잃어 갑니다. 이대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모두가 정의를 얘기하지만, 종국엔 그 모두가 정의롭지 않게 되는 세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생각을 하면 참담합니다."(p.9)


* 레거시(L egacy) 미디어 : 웹 기반의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견줘 전통적 미디어인 TV, 라디오, 신문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 레거시는 정보 시스템에서 낡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새로 제안하는 방식이나 기술을 부각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즉 레거시 미디어는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지만, 과거에 출시되었거나 개발된 오래된 대중매체를 지칭한다.(시사상식사전)


느닷없는 비상계엄령으로 전 국민을 불안과 공포를 몰아넣은 윤석열 정권은 탄핵되고, 파면되었다. 헌법에 정해진 절자대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여야는 바뀌고 비상계엄령을 옹호하거나 탄핵을 반대하던 당시 여당은 야당이 되었지만 아직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당내 분열로 소수당인 당력마저 한데 모으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계엄 6개월만에 완전히 뒤바뀐 정국이다. 

이 책은 현 정국의 틈에서 기존 언론의 한 언론인으로서 한 번쯤 성찰해볼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사상 초유의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2024년과 202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다시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집필의 전제를 내세운다. 비정상이 이어질 때는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려내기 위해서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언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비상계엄령의 여파로 생긴 혼란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은 당장 닥친 민생 경제의 회복과 민주주의 회복력을 세계를 향해 외쳐 달라고 야당인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어 민생을 꼭 챙겨 줄 것을 당부했다. 아직 20일도 안 된 새 정부가 소기의 성과를 내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모자란 탓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의 언론 성찰은 뒤늦게라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독자로서는 판단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묻는다. 이제 ‘언론이 더 잘 하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될까요? 그리고 답한다. "언론에 대한 규탄과 이에 따른 성찰만으로는 미사여구로 치장된 장밋빛 청사진은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낡고 금이 간 그릇을 올바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의 하나는 이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손쉬운 욕지거리만으로는 문제를 푸는 첫 단추도 꿸 수 없습니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지적으로는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습니다. 잘 알게 되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분명한 비판의 지점이 보일 것입니다. 알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p.9~10)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는 말(서문)〉과 〈맺는 말〉을 제외하면 6장이다. 2장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저널리즘'의 첫발〉, 3장 〈밋밋한 현실 어딘가에 있나, 흰 까마귀〉, 4장 〈사실과 진실, 참과 거짓의 뫼비우스 띠〉, 5장 〈이해와 소통의 폭 넓히는 커뮤니케이션〉, 6장 〈알다가도 모를 한 길 사람 속을 향해〉, 7장 〈저널리즘 심폐소생, 정죄와 자조를 넘어〉 등이다. 2장에는 저자가 CBS의 기자로 입사해 20년 동안 근무하며 느낀 CBS 기자로서의 생활, 자신의 언론관, 우리 언론의 현실 등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방송'이라는 종교 언론으로 시작했지만 방송 본연의 정도 보도를 위한 기본적 체계는 시작부터 잘 갖춰진 방송국이었다.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상업 방송처럼 기업의 압박을 받지 않는 정도 언론을 표방했고 이 기조를 잘 지켜냈다는 CBS 기자로서의 자긍심도 담겨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정부 측 지분이 있어 어떻게든 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이거나, 특정 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나, 경영권이 사주 일가 안에서만 대물림되거나 하는 모습을 띠는 게 일반적입니다. 각기, 기자들이 자유 의지를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지요."(p.29)

저자는 CBS 기자 경력 20여 년 동안 비교적 눈치 보지 않고, 압력도 적은 기자 본연의 자세를 지켜온 데에는 앞서 지적한 권려과 경영주,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가능했다는 자긍심을 자신의 CBS 기자 경력 동안 충분히 저널리스트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주었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이는 상대적으로 그런 배경의 언론사는 자사 이익이 먼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정도'를 걷기 어려웠다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3장에서는 '흰 까마귀'를 등장시켜 대한민국 언론 역사를 조망하고 역사의 분기점마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해 낸다. 여기서 흰 까마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서 도출한 비유적 표현이다. "검은 까마귀 세 마리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가 다 검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흰 까마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우리는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라고 쓴 것을 인용하고 있다. 수많은 검은색 까마귀와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흰색 까마귀 속에서도, 세상에 흰 까마귀는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가 흰 까마귀를 인용한 것은 12·3 내란 사태 국면에도 충격적 깨우침에서 비롯된 비유다. 

저자는 12·3 비상계엄을 '느닷없는' '불시에' '예상치 못한' 계엄으로 본 것이다.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광주 5·18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계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쓴 것이다. 사실 12·3 비상계엄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설마' '갑자기?' '전쟁?' 등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설마 가짜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 이 점에 있어 저자도 귀가하려고 운전하다가 동료로부터 '비상계엄'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독자도 TV를 보면서도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난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했나? 하는 두려움을 안은 채··· 저자도 너무나도 황당한 소식을 믿지 못해 휴대전화로 TV화면을 보았더니 믿기지 않은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밝힌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3 내란 사태는 저자에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흰 까마귀'로 비유한 표현이 등장한 이유다.

"결국 그는 권좌에서 끌어내려졌자만, 독재자 윤석열의 망동과 계엄 선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세계관을 교정해야 할 정도의 충격을 남겼습니다. 사실 김민석, 김병주 의원 등이 사전에 계엄령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할 때만 해도 과격한 주장 정도로 흘려들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고쳐야 했다.


'비상계엄령'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은 '5·18 광주'다. 12·3 이전 마지막 비상계엄이기도 하고, 어느 때보다 선량한 시민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5·18은 신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고 국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시민 학살'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광주 시민이나 호남 사람들, 심지어는 5·18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침묵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군부를 비방하거나 희생된 아들 딸에 관한 이야기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서슬 퍼런 신군부가 계획대로 정권을 잡고 헌법을 고쳐 7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되며 국정을 장악했다. 그들 앞에서 광주 시민들은 죄인이었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일부 떠드는 사람은 일부 국회의원의 발언을 통해 있었지만 그것도 면책 발언이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전두환 아래서는 말 그대로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광주에서조차 5·18에 관한 말은 활발하지 못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문재인 정권 때인 2017년에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추가적인 진실 규명에 나섰을 때 계엄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영, 이희성 등의 목소리가 아니라 광주 거리에서 총을 들었던, 시민들을 향해 실제 방아쇠를 당겼던 그 계엄군들의 목소리 말이다. 실제 게엄군의 목소리는 그때까지 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상황이 가장 궁금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묘사되던 전남도청 앞 발포 상황을 가리킨다. 그때 현장에 있던 한 계엄군의 목소리를 여기에서 전한다.

"학생 시민들하고 대치하고 있는데, 시민들 쪽에서 화염병 하나가 날아오더라고. 그게 하필 장갑차 아래로 굴러 들어갔어. 근데 장갑차는 기름 탱크가 아래에 있단 말이야. 그래서 그 상황에 차가 터질까 봐 급히 장갑차를 후진했는데, 마침 뒤에서 졸고 있던 ○○○(장교)가 눈이 뒤집히면서 기관총을 빠바박 쏘더라고. 그렇게 발포된 거지."

그러나 장교가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쐈는지 시민들을 향해 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책에 기술하고 있다. 다만, 첨예한 대립 속 팽팽한 긴장감을 깨고 울리던 총성에 다른 총구에서도 연이어 불꽃이 튀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 현직에 있지만 이번 비상계엄령 이후 달라진 언론 환경에서 성찰하고 다짐해 다시 언론의 정론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올곧은 기자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서 기자라는 명함을 갖고 살아온 2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고자 노력한 모습으로 독자에게는 기대감을 준다. 또 이 문제를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함으로써 올바른 기자상을 세우고, 언론사 측의 각성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 훌륭하지도 않고 혁혁한 성과와도 거리가 먼 저의 담백한 고백을 녹여, 언론계에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고민과 과제 등을 솔직히 적어 보았습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언론 내부를 여실하고도 넉넉히 반영하려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동료 기자들을 향한 제안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올바른 당위를 바로 세우고,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함께 찾아보자는 요청입니다. 대중의 외면과 수익성 하락, 기술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각자도생하기보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언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책임은 우리 스스로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길에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은 언론과 관계하는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언론 지망생들을 위한 길라잡이이기도 합니다. 이들을 염두에 두고, 기자라는 직업인과 언론 현장을 가능한 한 생생히 묘사하려 노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언론에 친숙함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제가 목표한 바는 거의 달성하는 셈입니다. 이 모두를 위해 취재와 보도의 원칙뿐만 아니라, 진짜와 가짜, 사실과 진실을 가리는 작업의 난해함, 주관적 인지 편향과 이로 인한 갈등, 미디어 및 기술의 환경 변화, 그리고 언론의 수익 모델 등을 두루 짚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독자, 기자, 지망생 등 언론과 떨어져 살 수 없는 모든 이들을 향한 언론의 자화상입니다. 이를 보고 기자와 언론을 이해해 주시고 따끔히 지적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가운데 다시 기대와 희망이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책은 앞선 현자(賢者)들의 다양한 글들을 종종 인용했습니다. 제 생각의 깊이가 도저히 그들을 따를 수 없는 탓입니다. 제가 탄복해 마지않던 그들의 지혜를, 독자 여러분과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언론 일반에 관한 글임에도 제 성장 과정과 제가 속한 언론사에 대한 이야기로 글문을 열겠습니다. 저널리즘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제가 가진 시각이 그 연원부터 더 잘 이해되기를 바라는 취지입니다."(p.10~11)


저자 : 김정훈


2003년 CBS에 입사한 뒤 정치부·사회부·경제부·산업부·뉴미디어팀 등에서 취재 보도를 이어왔다. 또 노동조합과 기획조정실을 거쳤고, 〈김현정의 뉴스쇼〉 팀에 파견돼 PD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경험도 익혔다. 현재 보도국 사회부장으로, 저널리즘의 쇠락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언론학 석사)

· 美 위스콘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연구원

·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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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절대 천국은 없습니다
장대은 지음 / 퍼스트펭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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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명 인물들이 성경에 대해 극찬한 말들은 의외로 많다. 이 책 『도망친 곳에 절대 천국은 없습니다』를 펴낸 출판사 측은 레프 톨스토이, 임마누엘 칸트, 에이브러햄 링컨, 존 애덤스, 레이 달리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로 책 소개를 시작한다. 앞선 인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성경을 자신의 삶 속 나침반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양 문명은 사실 성경에 의해 새로 시작되었다고 봐도 틀림이 없을 듯하다. 오늘날 가장 선진 문명을 구가한 곳이 유럽 지역이다 보니 당연히 그들의 종교에 대해 맹신적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사실 그럴 만한 이유도 역사상으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 서양 문명의 원류는 그리스 문명이라고 배웠고, 사실 그렇게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문명이 가장 먼저일까? 굳게 믿었던 그리스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문학의 원형이라고 추켜 세웠던 그리스 신화의 전설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의해 상당 부분 깨졌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그리스 문명의 '신화'는 수메르의 점토판이 발견되면서 무너졌다.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4.000년경 이미 〈길가메시〉란 영웅에 관한 신화가 있었다. 20세기 들어 발견된 문명 발상지에서 발굴한 점토판의 문자는 그리스 문명보다 앞선 것으로 판독되었다. 〈길가메시〉는 우리가 배웠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보다 무려 1,000년을 앞당겼다.

그리스를 멸망시키고 유럽 전역을 통일한 로마 제국은 그리스 문명을 동경했다. 그리스인들의 앞선 문명, 학술 등 거의 모든 것을 그대로 가져와 로마식으로 바꿨다. 다만 제국의 틀을 만들어가기 위한 도로 확장, 법 정비 등은 완전히 새로 바꾸었다 할 정도로 정비했다. 혁명적이었다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그리스처럼 로마 제국도 다신교 사회였다. 때문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로마 제국은 정복된 이민족의 종교를 그대로 인정했다. 이를 테면 유대인들의 종교도 인정하고 탄압하지 않았다. 정복자의 아래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연명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자신들이 믿던 유일신을 믿고,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하는 교리에 따라 정복자 로마에게는 용서치 못할 반역의 무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살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신앙심은 대단했다. 무려 2,000년을 전 세계로 떠돌아다녔지만, 결코 유대인의 정체성은 숨기지 않았다.


《성경》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뉜다. 굳이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는 비종교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또 이 구별은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갈린다. 예수는 당시 나사렛이라는 유대인 지역의 한 마을이다. 예수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핍박 받지는 않았으나 차츰 제자들을 비롯, 세가 강해지니 로마 정복자들에게는 위험 인물로 지목되었던 듯하다. 선동해 피정복자들의 '반 로마' 의식을 강화시킨다는 이유다. 예수는 결국 로마 제국으로부터 선량한 양민을 부추겨 반란을 꾀할 수 있는 위험인물로 재판에 넘겨지고 결국은 십자가형을 받는다. 그의 나이 33세였을 때의 일이다. 유대인 마을에서 일어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로마인들에게 예수는 이내 잊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을 떠돌며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예수의 일생 등을 문자로 적어 널리 알린 것이 오늘날 『신약성서』로 불리우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경전 중 4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집대성한 정경(正經). 보통 ‘신약(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으로 약칭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언행을 기록한 4권의 복음서(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의 복음서), 그 제자들의 전도행각에 관한 기록(사도행전), 여러 사도들의 편지글(서간서) 및 예언서(요한의 묵시록) 등 27서(書)로 구성되어 있다. 전부 그리스어로 쓰여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죄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로 약속하였다는 신앙으로 일관되어 있다. 모두가 1세기경에 쓰였는데, 최종적으로 오늘의 형태로 정경화(正經化)한 것은 397년의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였다. 하느님이 구약성서에서 약속한 인류 구원을 신약성서에서 성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두산백과)

구약성서(Old Testament)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함께 경전으로 인정하는 종교문서이지만, 헤브라이어로 쓰여진 24권의 책들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39권으로 재편집한 것들이다. 사마리아인들은 구약성서 최초의 5권의 책, 즉 〈모세 5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는 외경을 구약성서와 동등한 권위로 수용하였다고 한다. 구약의 제1부인 토라(Torah), 즉 모세 5경은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말한다. 모세의 저작으로 알려졌으나, 후대의 편집과정을 거쳐 BC 586년 바벨론 포로 이후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리스찬도 아닌 비종교인인 독자가 《성경》을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장황해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서양의 유명 인물들은 그들의 세상이 오랫동안 기독교 문명이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확인해준다. 사실 기독교 문명이 이처럼 발전한 것도 로마 제국의 영향이 크다. 로마 제국은 엄청난 영토와 정복지에서 약탈한 전리품과 세금 등으로 초호화 사치에 빠졌다. 그들의 건축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콜로세움 등 각종 건축물, 그들이 즐겨했던 각종 문화 시설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천년 제국은 없다는 말처럼 그들 제국의 영화는 4세기말부터 서서히 붕괴조짐을 보이다 결국 475년쯤 동·서 로마로 갈라지고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이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정한 동로마제국은 1,000년간 유지되다 이슬람 문명권의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진다. 서로마 제국은 제각각 살 길을 찾아 여러 나라로 갈라지고 각각의 왕조가 들어선다. 이들은 모두 로마 문명에 익숙해 있지만 로마 멸망 후 마땅한 구심점이 없었다. 그러나 로마 멸망 전인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또한 교회의 압류된 재산을 돌려 주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정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또한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독교가 구심점이 되었다. 대제국이 붕괴되자 로마 이전으로 되돌아가기에는 각지의 어떤 나라도, 종족도 조그만 공동체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정복 전쟁을 시도할 마땅한 인물도 없었던 듯하다. 결국 기독교를 중심으로 교황을 추대하는 등 그들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구심점이 된다. 이른바 성직자들로 구성된 교황청은 막강한 권력이 손에 쥐어진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도 서양인들이 만든 말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오래지 않아 교황청은 부패한다. 성직자와 사제들이 일반 국가 관료들도 쉽게 하지 못할 부정과 부패로 타락한다. 심지어는 매춘업소도 운영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중동에서 이슬람 세력이 등장하고 발전하더니 결국 11세기 들어서는 양 세력간 전쟁으로 치닫는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전쟁의 발발이다.


별 전과 없이 200년간 전쟁을 치르다 보니 교황청은 더욱 부패해진다. 전쟁을 하느라 돈을 탕진했고, 각 나라에서 각각 준비한 전쟁 자금도 바닥이 났으니 교황청 운영도 힘들었던 것 같다. 면벌부를 판매하는 해괴한 방법으로 돈을 챙기는 등 성직자들이 맞나 싶다. 서양의 각 나라들은 종교 혁명을 감행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수십 년 간은 흑사병 창궐로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받았다. 그러나 '신들의 나라'라는 중세는 다행히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뀌면서 차츰 안정을 찾는다.(르네상스) 각 나라끼리 전쟁을 치르년서도 서양 전체가 전쟁에 휩싸이지는 않는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덕분에 인문학과 예술이 발전하며 발전의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다. 18세기 식민지 미국이 독립전쟁을 통해 북아메리카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로 우뚝 섰고, 유럽은 산업혁명을 이끌어내며 식민지에서 수탈한 자원과 금·은으로 학문과 과학을 발달시킨다. 근대화된 서양은 이젠 지구상에 더 이상의 적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지구의 끝과 끝을 알아냈고, 자신들보다 우월한 문명은 없다는 점도 확인했을 것이다. 

이때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학문 역시 가장 앞섰다고 판단하지만 뿌리 깊은 의식인지 기독교에서의 신과 성경 등의 가르침은 철저히 따랐다. 다음의 인물들은 모두 근대에 활동했던 분들이고 기독교 문명에 살았던 인사들이다.


“성경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책이다.” - 레프 톨스토이

“성경은 모르는 자는 세계를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 임마누엘 칸트

“이 책이 없었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성경에는 전 세계의 도서관보다도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 존 애덤스

“나는 이 책을 통해 도덕적 가치관과 투자 철학의 기초를 세웠다.” - 레이 달리오



문학, 철학,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이들이 이토록 성경을 극찬한 이유는 명료하다. 인내, 자존, 용서, 회복, 공감, 결단 같은 삶의 핵심 요소를 인물의 이야기로 들려줌으로써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는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바벨탑 이야기는 진정한 소통의 중요성을, 모세와 형 아론의 이야기는 현명한 인간관계를 지켜낼 수 있는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눈을 신경 쓰느라 진짜 나의 삶을 놓치며 산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대로 사느라 정작 소중한 것을 챙기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한 답과 방식은 하나다. ‘스스로 삶의 목적지를 결정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것.’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자유로움과 기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이 책 『도망친 곳에 절대 천국은 없습니다』의 저자 장대은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란 제목의 〈서문〉에서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고, 방황하기도 하고, 막다른 골목 앞에 서서 좌절하기도 한다. 막막한 마음에 두려움도 느낀다."고 전제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혜는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헤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과도 같다. 한 치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인생길 위애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언제 멈추고 돌아서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p.5)

저자에 따르면 인류가 시작된 이후에 가장 많이 읽힌 글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은 지난 3,000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글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답을 찾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성경을 읽었다. 성경은 단순히 아름답고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가르침을 보여준다고 믿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정의와 공평, 정직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가르치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도망이 아닌 직면으로, 포기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에게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반대로 오래되어서 더 유효한 진리가 있다. 바로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통찰을 주는 성경 속 문장들이다. 톨스토이, 칸트, 마터 테레사, 마틴 루터 킹, 빅터 프랭클처럼 각 시대를 이끌었던 현자들은 물론이고 지금도 전 세계 수천만 독자들이 성경 속 문장으로 마음을 다잡고 온전한 스스로의 삶을 향해 당당히 뛰어들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절대자에 대한 믿음 너머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용기를 준다.” 그렇다. 진실된 믿음은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내면의 힘에 대한 존중이자 의지이며 진짜 삶에 뛰어드는 결단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단단해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있다.


"우리가 40대든 50대든 오늘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에 결코 늦은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도전에 대한 열정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계속 일하더라도, 충분히 새로운 관점과 접근 방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고 우리만의 특별한 통찰력을 활용하여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젊음의 힘과 연륜의 지혜,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40대. 우리는 이 독특한 시간의 가치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p.218)


저자 : 장대은


1998년 이후 25년간 독서, 글쓰기, 질문법을 통해 인간의 변화와 성숙의 마스터 키 ‘트라비움의 사고역량’을 세워가기 위한 강의, 교재 편찬, 책 저술에 힘써왔다. 저서로는 《십진분류독서법》(청림출판), 《새벽에 읽는 유대인 인생특강》(비지니스북스), 《트라비움 일상수업》(평단), 《유대인의 글쓰기》(유노북스), 《어휘력사전》, 《아포리즘》(이상 프로비9), 《트라비움 다이어리》(큐티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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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철학서 - 철학적 사유를 넘어 삶의 방식과 태도를 알려주는 위대한 문장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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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황제의 철학서』라는 표제어만으로도 누구의 어떤 책인지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책이름은 『명상록』(Meditations)이고, 저자는 로마제국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다. 황제 철학자는 인류 역사상 한 명뿐이다. 전쟁과 역병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아가며 아우렐리우스는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 태도로 로마제국을 이끌었고, 매 순간 스스로에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가 남긴 질문과 답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덕목과 태도에 대한 본질적 통찰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은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명성을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죽음 후에는 잊히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사색과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지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황제의 철학서』는 원문의 깊이와 사색을 고스란히 담아 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독자들에게 일상의 위기와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평온과 중심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공하며, 철학적 감동과 명료한 깨달음을 함께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우렐리우스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늘 권력 이상의 도덕적 책임감을 가지고 살았다.

삶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갈등, 시련, 다른 이들의 평가, 갈수록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는 우리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러한 혼돈을 피하려고 멀리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저 눈을 감으면 충분하다고. “너의 요새가 되고 안식처가 되는 곳은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어야 한다. 그보다 강력하고 튼튼한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며, 이를 알고도 그곳을 피난처로 삼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처럼 그는 혼란을 극복하는 열쇠는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견고히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심지어 전쟁터의 위험 속에서도 자신만의 내적 안식처를 찾으며 “사람들이 물러나 앉을 장소는 자신의 영혼 외에는 없다.”고 기록했다. 외부의 소음과 혼란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고요와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임을 강조한다. 황제의 철학은 독자들이 삶의 소란과 혼돈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타인의 인정과 평가를 갈구하며 지쳐 간다. 불행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외부의 인정에 달려 있지 않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남은 생을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공상으로 낭비하지 마라.”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 충실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인간은 자신의 생이 날마다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오래 산다고 해도 지적인 능력이 얼마나 기능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만 한다. 지적인 능력은 일과 사업을 판단하고 깊이 사색하는 능력이며, 신성한 것과 세속의 일 모두에 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략) 너의 남은 생을 타인에 대한 생각이나 공상으로 낭비하지 마라. 그것이 공동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이 더 나아지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도모하고 있는지를 고심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p.74, 3권 4장)

그는 또한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본래의 가치를 잃고 비루한 물건이 될까? 금과 상아와 진귀한 염료는 어떠한가? 흔히 보이는 꽃과 나무 같은 것들도 그러할까?”라며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 것을 권한다. 자신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타인의 판단이나 말에 흔들릴 이유가 없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이 책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초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며, 각자가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토아의 학도로서 로마 황제의 지위에 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원래 노예였던 스토아의 철인 에픽테토스의 훈계를 명심하여 마음속까지 황제가 되지 않도록 항시 자신을 돌아보고, 로마에 있을 때나 게르만족을 치기 위해 진영에 나가 있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꾸준히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일체의 것이 끊임없이 생생유전(生生流轉)하고, 인생도 과객(過客)의 일시적 체재에 불과하여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는 것은 오직 철학일 뿐, 그 철학이 인도하는 대로 자연의 본성에 알맞은 생활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우리를 구제하는 길이라는 그의 신념을 끝없이 나타냈다.(두산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던진 질문들은 특별히 이런 것들이다. 죽음은 무엇이고, 그 대척점으로서 삶은 무엇인가? 삶에서 필연은 무엇이고, 우연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학문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은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했을 혹은 생각함직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근본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이런 질문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의 기록이다. 특히 전장에서 어떻게 이런 사유를 해냈을까를 생각하면 현인이자 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명상록』은 사적인 일기, 즉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사적인 감상을 자신의 세계관, 즉 스토아철학의 기본틀 밑에서 표현하고 있는 일기이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자신과의 독백 형식이란 점에서 알 수 있다. 흔히 등장하는 2인칭 표현 '그대'는 물론 독자를 뜻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우렐리우스 자신이라고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명상록』은 애초에 책으로 계획되지도 않았다. 즉, 출판을 목적으로, 다시 말해 공중(公衆)에게 보여 줄 목적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다. '명상록'이라는 제목도 그리고 권수 및 절수의 표시도 아우렐리우스 사후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명상록』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쓴 글이다. 따라서 글의 흐름은 비조직적이고 산발적이면서 단편적이다. 『명상록』은 철학 냄새는 물씬 풍기지만, 전형적인 철학 텍스트는 아니다. 철학 텍스트는 주로 논증적 또는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명상록』은 그렇지 않다. 일기는 논리적 구조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상록』이 전쟁 막사에서 쓴 일기라고 보는 이유이다. 로마 황제 또는 그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이 게르만의 숲속 전쟁터에서 쓴 일기로는 『명상록』 외에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가 전한다. 하지만 두 텍스트는 성격상 판이하게 다르다. 『갈리아 전기』는 전쟁과 정치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있다. 『갈리아 전기』는 일반 사회의 공중에게 카이사르 자신의 군사적·정치적 역량을 증명할 목적으로 씌어진 전쟁 기록물이다. 하지만 『명상록』은 전쟁터에서 씌어졌지만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한 깊은 성찰을 자기 자신과 나누는 일기이다.

이런 점에서 『명상록』은 영성적 문학 작품의 효시인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De imitatione Christi)』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유명해지자 『명상록』도 그제야 유명해지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명상록』은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파스칼(Blaise Pascal)3)의 『팡세(고백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 맨 앞에 편집진이 썼을 법한 〈작품 소개〉에도 두 저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한다. 두 책 모두 절제라는 동일한 이상을 지향한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자신을 이겨 내야 하며, 자신보다 강해지는 것을 매일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욕망을 이겨 내는 곳에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깃든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무심하고 자기 주도적인 데 비해 기독교인들은 겸손하고 온유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현현과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는, 다소 수동적인 신앙을 지녔다. 로만인들도 자신의 잘못을 엄정하게 고백하지만 기독교인도 로마인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하고 권고한다.


"앞서 말한 두 책 사이에는 한 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라면, 『명상록』은 저자가 자기 자신을 향해 쓴 책이다. 전자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삶이 전혀 묘사돼 있지 않으며, 독자들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실천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p.23)

아우렐리우스는 일기처럼 전쟁터에서의 사유를 써내렸다. 살륙이 일상이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필에 열심인 황제가 쉽게 공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감성은 물론 냉정한 이성도 갖춘 철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주위와 우주까지 나아간 그의 사유는 마침내 "인생은 무엇인가?"에 이른다. 아우렐리우스에 따르면 인생은 하나의 연극이다. 연극의 무대는 이 우주 전체다. '나', 즉 자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등장 인물이다. 한 사람의 인생사는 이미 신이 쓴 각본으로 씌어져 있다. 내가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온갖 사건들은 각본에 의해 예고·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비극이라 부르는 사건은 이미 예고·결정된 것이기에 내가 절망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회적 직업과 역할로 인생을 살 것인지도 우주적 연출가인 신이 결정한다. 그것이 황제의 역할이든, 노예의 역할-예컨대, 에픽테토스이든, 전업 주부의 역할이든, 내게 맡겨진 역할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배우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역할 이탈을 자제하면서 자기 역할을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충실히 소화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주어진 배역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연기를 보여 주는 사람이 좋은 배우이듯이, 신에 의해 주어진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의 인생이 '좋은'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이다. 반대로 주어진 배역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자는 나쁜 배우이다. 이런 사람은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 배우는 연출가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대해 불평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불평을 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탓하지 마라. 만일 네 힘으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만일 할 수 없다면 불평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일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갖고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p.217)


저자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아우렐리우스는 121년 4월 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안니우스 베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으며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는 집정관 카르비시우스 투루스의 딸로서 교양 있고 경건하고 자애로운 부인이었다. 베루스 집안은 원래 스페인에서 살았는데 마르쿠스가 태어나기 1백 년 전부터 로마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 안토니우스 베루스는 총독, 집정관, 원로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아우렐리우스는 여덟 살 때 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도 그가 어릴 때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여 학교에 다니지 않고 훌륭한 가정교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 열중했으며 뛰어난 자질을 나타내어 당시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아우렐리우스를 사랑했으며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로 부르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숙모 파우스티나와 그녀의 남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는 아들이 없어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맞아들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고 이름 붙여 주고 그들의 후계자로 삼았다. 

138년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의 양부(養父)인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제위를 물려받았다. 이때부터 아우렐리우스는 미래의 황제로서 통치하는 법과 황제로서 해야 할 일들을 섹스투스, 루스티쿠스, 프론토 등에게 배운다. 139년 아우렐리우스는 피우스 황제의 후계자로 정해지고 황제의 딸 파우스티나와 약혼한다. 그 후 재무관과 집정관에 오르고 145년 24세 때 파우스티나와 결혼한다. 146년 장녀 안니아 카렐리아가 태어나고 이후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8명이 요절하고, 1남 4녀만이 남았다. 161년 40세 때 피우스 황제가 죽자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즉위하고 의동생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이때부터 게르만족, 스키타이족 등 외적의 침략과 변방 야만족의 소란 등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페스트와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등으로 시련을 겪는다. 그러다 169년 공동 황제인 베루스가 죽고 게르마니아가 다시 공격해 오자 아우렐리우스는 다뉴브강에 진을 치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이때부터 이 책《명상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야만족과의 싸움과 카시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고 이 원정에서 아내 파우스티나를 잃는다. 그 후 북방의 전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페스트에 걸려 며칠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노윤기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공기업에서 국제관계와 기업 홍보 업무를 보았으나 좋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번역가의 업에 매료되어 바른번역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군중의 망상』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옥스퍼드 튜토리얼』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남자의 미래』 『단순한 삶의 철학』 『커피의 모든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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