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의 거리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뉴욕 억만장자 거리에 숨겨진 이야기
캐서린 클라크 지음, 이윤정 옮김 / 잇담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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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짧고도 매우 극적인 일화가 실려 있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조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 37~100)가 집필한 『유대인 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93-94년)에서 서사적 구조로 확장되었으며, 16세기 초 플랑드르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마도 피터르 브뢰헬은 이들의 작품 가운데 하나를 〈바벨탑〉의 직접적인 출처로 삼았을 것이다. 그는 모두 3점의 〈바벨탑〉을 그렸다고 하는데, 현재는 2점만이 전해지고 있다. 빈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의 〈바벨탑〉은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에 소장된 〈작은 바벨탑〉(1564)의 두 배에 가까운 크기로 제작되었다. 두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빈의 〈바벨탑〉이 다양한 인물 군상들과 도시 풍경을 보다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 책 『억만장자의 거리』는 300m 이상 높이 솟은 초고층 건물들,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집값,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과 억만장자가 모여 사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판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라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센트럴파크 인근 ‘억만장자의 거리(BILLIONAIRES’ ROW)’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마천루의 거리는 한때 허름한 건물이 늘어선 낡은 거리였다. 불과 몇 년 만에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거리가 되기까지 그곳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캐서린 클라크는 이 책에서 억만장자 거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며, 뉴욕 부동산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클라크는 책의 맨 앞장에서 〈창세기〉를 인용한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자."(11장 4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뉴욕 스카이라인을 바꾼 사람들과 그들이 지은 건물을 다룬 이야기를 통해 뉴욕 부동산의 역사, 사회, 정치, 금융 등 관련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21세기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억만장자 켄 그리핀, 빌 애크먼, 마이클 델, 인기 가수이자 영화배우 제니퍼 로페즈···.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과 억만장자가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라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센트럴파크 인근 ‘억만장자의 거리’는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얇고 높은 저 건물은 무슨 건물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얼마에 집을 사고팔았을까? 부동산 전문지 『리얼 딜』과〈뉴욕 데일리 뉴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캐서린 클라크는 2011년 뉴욕 부동산에 관한 기사를 쓰다가 ‘억만장자 거리’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 주제에 관해 100여 명에 이르는 부동산업계 관계자를 취재한 끝에 이 책 『억만장자의 거리』를 펴냈다.

‘억만장자 거리’ 배짱 없이는 발을 디딜 수 없는 세계로 알려져 있다.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뉴욕 부동산 거물(개리 바넷, 해리 맥클로우, 스티븐 로스, 마이클 스턴)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그들이 지은 다섯 건물(원 57, 432 파크 애비뉴, 111 웨스트 57번가, 센트럴파크 타워, 220 센트럴파크 사우스)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은 억만장자 거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 뉴욕 부동산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했다는 평을 받으며, 2023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상 최종 후보작과 2023년 『CEO 매거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아마존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모두 3부 2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하늘을 꿈꾸다(1~9장)〉, 2부 〈난기류(10~17장)〉, 3부 〈땅에 떨어지다(18~28장)〉 등이다. 이 책의 주요 배경지인 뉴욕 맨해튼에서 건물의 높이는 점점 위로 향하는데 이곳의 이야기를 쓰는 저자 클라크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의 책 구성을 보여준다. 이 점은 저자의 의도적 구성인지, 아니면 신(神)의 관점인지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책의 본문 전에 게재된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뉴욕 센트럴파크 남쪽을 바라보는 것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부의 물리적 현현(顯現)을 보는 일이다. 줄지어 선 극도로 얇은 초고층 빌딩들이 공원 남단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초고층 건물들은 뉴욕 스카이라인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물론 평범한 뉴욕 시민은 초고층 건물 중 어느 곳에도 발을 들여놓을 일이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전망대처럼 망원경으로 도심을 들여다보거나 30 록펠러센터 유명 레스토랑인 레인보우 룸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출 수도 없다. 과거에 지은 마천루와 달리 최근에 지은 초고층 건물에는 공용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억만장자 거리'라고 불리는 '초고층 건물' 밀집 구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성소이자,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하늘 위 최상류층 커뮤니티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초대를 받아야만 한다.(p.15)

일반적으로 부동산에 관심 없는 독자라도 TV를 통해 뉴욕 맨해튼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보고 들었을 것이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서 방 한 개짜리 원룸 같은 크기의 임대료가 1500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억만장자의 거리’는 특별한 건물이 집중해 있는 곳이다. 이곳을 조성한 대표적 인물들이 이 책의 앞에 캐리커처 사진과 함께 별도 소개돼 있다. 이처럼 유명해진 억만장자의 거리’는 이젠 세계 각 나라에서도 비싼 거리 앞에는 이 수식어가 별명처럼 붙는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억만장자 거리의 핵심인 뉴욕 맨해튼 57번가의 길이는 1.6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주변에는 300m 이상 높이 솟은 건물이 쭉 늘어서 있다. 이 책에는 거리의 약도까지 포함해 별도 그림으로 처리돼 있다. 물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길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가다 보면 지난 100년간 뉴욕 부동산 개발과 건축의 진화 흔적을 볼 수 있을 정도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858년에 초대형 도심 공원인 센트럴파크가 개장한 이래 농지로 둘러싸여 있던 57번가 주변으로 뉴욕의 부유한 가문들이 몰려들며 초부유층의 메카가 되었고, 20세기로 접어들자 주거 지역은 점차 상업 지구로 변모했다. 1970년대 뉴욕 부동산 시장은 뉴욕 상류층 대신 돈을 가진 전 세계 제트족의 관심을 끈다. 세계에서 뉴욕 맨해튼으로 몰려든 부유층은 콘도를 구매했고, 이 성공에 힘입어 이들을 모방한 고층 타워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쇠퇴한 57번가에는 초호화 상점, 기념품 가게, 갤러리, 역사적인 아파트가 현대적인 사무실 빌딩과 주거용 빌딩 사이에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이후 2010년에 306m 높이의 원 57 공사를 시작으로, 더 높고, 더 얇고, 더 비싸고, 더 호화로운 초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며, 이 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저자는 미국 뉴욕 스카이라인을 바꾼 사람들과 그들이 지은 건물을 통해 뉴욕의 역사, 정치, 금융 등 관련 정보를 다채롭게 전달하며, 시대적?사회적 흐름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점점 건물을 더 높이 지으려 할까? 뉴욕은 오랫동안 마천루의 본고장으로 알려졌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와 중동에 자리를 내주었다. 높은 인건비, 비싼 건축 비용, 엄격한 규정, 점점 부족해지는 토지···. 크고 작은 건물이 블록마다 꽉 찬 맨해튼에 개발되지 않은 땅은 드물었다. 맨해튼 개발업자들은 토지 합병으로 이를 해결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땅을 발견한다. 1961년 뉴욕시 토지 용도 지정법에 따라 건물 연면적을 땅의 넓이로 나눈 비율인 ‘용적률(FAR)’과 이웃 건물 소유주로부터 기존 건물 위의 공간인 ‘공중권(air rights)’을 매입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된 것이다.

빈 하늘은 ‘아직 아무도 건물을 짓지 않은 땅’이었다. 특히 57번가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용적률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빈 땅이었다. 이때부터 좁은 땅에 온갖 건축 기술을 활용한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건물에 틈을 만들고, 거대한 콘크리트 추를 달로 건물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등 최신 미적·공학적 기술을 총동원한 끝에 미국의 여느 평범한 가정집 뒷마당만 한 크기의 부지에 400m가 넘는 마천루가 지어졌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설 기술에 더해 성공과 야망을 열망하는 이들의 경쟁으로 건물은 점점 더 하늘에 가까워졌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초고층 건물' 밀집 구역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하늘 위 최상류층 커뮤니티라고 이곳을 소개했다. 저자가 432 파크 에비뉴를 몇 차례 방문하며 푸코의 파놉티콘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스트 56번가에 자리한 드라마틱한 건물 입구를 지나칠 때마다 부유한 입주자를 엿보고 싶어 했다면, 그러나 자신의 시선이 건물 로비에 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 개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억만장자 거리에는 호기심과 비판 어린 시선이 교차한다.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이는 그림자 문제로 이어졌다. 고층 빌딩으로 인해 센트럴파크에 그림자가 드리우자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고층 건물로 인해 한낮의 햇빛을 차단당했다고 지적하면서 1,000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인 일도 있었다. 도대체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기에 이토록 철저한 보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일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 자본의 움직임에 관여할 만한 인물들이 아닐까? 하는 일반인들의 의혹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단순히 그림자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러시아의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가 주체할 수 없는 현금을 세고 있을까? 다이아몬드를 가득 채운 욕조에서 슈퍼모델이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씻고 있을까? 미국 헤지펀드 억만장자들이 최고의 전망을 놓고 사우디 왕자들과 다투고 있을까? 아니, 그들이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건 아닐까? 이런 의혹들의 저자만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새롭게 건설한 초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열린 창으로 센트럴파크나 맨해튼 전망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그 건물에 평범한 뉴요커는 들어갈 수 없다. 고층 전망대나 식당처럼 대중에게 공개된 공공 공간이 점점 개발 계획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강조한 이유와 맥락이 같다.

억만장자 거리의 초고층 빌딩은 유명인, 금융업자, 러시아 올리가르히,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 세계 초부유층의 집인 동시에 세계 최부유층의 투자 수단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그래서 누군가는 억만장자 거리의 권력 구조를 파놉티콘에 비유하고, 불평등 시대의 대차대조표라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이 책 『억만장자의 거리』와 그곳에 들어선 첨탑처럼 생긴 건물 이야기는 돈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확실해진다. 우리가 경외하며 올려다보는 마천루의 눈부신 외관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천루를 통해 21세기 뉴욕,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깊이 있고 날카롭게 그려낸다.


어떤 사람들은 그 타워들을 보고 공간 낭비, 전 세계의 돈을 보관하는 그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이 건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부자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골드바를 거래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창고에 보관하기보다 벽에 걸어 두기로 선택한 미술 투자자에 비유할 수 있다. 타워는 자신들을 만든 개발업자들의 유산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쳤고, 일부 개발업자는 다른 개발업자들보다 훨씬 더 큰 재정적 성공을 거두었다. 2023년, 인플레이션과 암호화폐 폭락, 또 다른 금융 위기의 위협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개발업자들은 단념하지 않고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다. 이것이 바로 개발업자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개발업자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개발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몇 년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죠.” 감정평가사 조너선 밀러가 말했다.(p.451)


저자 : 캐서린 클라크(Katherine Clarke)


〈뉴욕 데일리 뉴스〉, 『리얼 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와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자는 2011년에 뉴욕 부동산에 관한 기사를 쓰다가 ‘억만장자 거리’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 주제에 관해 1백여 명에 이르는 부동산업계 관계자를 취재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거리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는 『억만장자의 거리』는 그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 후 2023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상 최종 후보작과 2023년 『CEO 매거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아마존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엑스 @KathyClarkeNYC

홈페이지 katherineclarke.com


역자 : 이윤정


한국외국어대학교와 한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크레셴도로 살아라』, 『데이터의 함정: 숫자에 가려진 고객 인사이트를 포착하는 법』, 『무의식적 편견』, 『시너지 셀링: 고객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산다』, 『인생을 바꾸는 작은 습관들』, 『나만의 커피 레시피북: 집에서 만드는 50가지 커피와 에스프레소 음료』, 『세상을 속인 의사』,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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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인의 턱뼈
    에드워드 포우위 매더스 지음, 성귀수 옮김 / 이타카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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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추리소설'이라는 이 책 『카인의 턱뼈』 홍보 문구가 독자를 멀어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끌리는 것은 인간 본능인 호기심이나 탐구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 같다. 추리소설도 그런 인간의 호기심에 기대어 생긴 문학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자는 추리소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 작품, 즉 '고전'으로 평가받는 일부 세계적 작가의 추리소설 작품도 채 읽어보지 못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 재택 근무를 하면서 출퇴근이나 식사 시간 등을 합쳐보니 꽤 많은 시간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직장에서의 휴식 시간은 매우 즐거운데 집에서의 휴식 시간은 반복되니 금세 지루했다. 덕분에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 독자 개인적으로는 '새옹지마'가 된 셈이다. 이때 추리소설 몇 편을 읽었는데 무척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책에 집중하게 하는 매력이 있고, 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줄거리가 실타래 풀리듯 하나씩 차근차근 풀리는 재미가 독서욕을 자극했다. 거기에 뒷 부분에는 독자의 추정이나 추리를 완전히 뒤엎는 '반전(反轉)'은 추리소설의 백미였다. 이때 주로 읽었던 추리소설은 모두 일본 추리소설이었다. 추리소설은 일본 독자들의 최고 인기 분야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이 책은 '카인의 턱뼈'라는 표제어도 조금 노골적이다. 독자가 노골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기독교 문화 속 작품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명이라면 당연히 유럽 쪽을 먼저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추리소설은 애호가가 아닌 독자도 알 정도로 이미 유명한 것 아닌가? 독자가 표제어와 기독교를 연결시킨 것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독자가 좋아하는 국내 작가 고(故) 황순원 작가의 『카인의 후예』라는 작품 때문이다. 『카인의 후예』는 6·25 전쟁 직후 쓴 작품으로 해방 직후 북한 토지개혁을 배경으로 인간의 근원적 악과 사회적 갈등을 다뤘다. 이 소설의 제목은 성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폭력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순원 작가도 북한이 고향인데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아마 피란한 것으로 추정한다. 

    '카인의 턱뼈'란 성경에서 카인이 아벨을 죽일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인류 최초의 살인도구라고 한다. 출판사 측은 이 책 『카인의 턱뼈(Cain’s Jawbone)』의 저자 에드워드 포우위 매더스가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첫 두 아들이다. 맏아들 카인은 농부였고, 그의 동생 아벨은 양치기였다. 형제들은 각자의 밭에서 희생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다.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카인은 아벨을 죽였고, 하느님은 카인을 저주하여 유랑하는 삶을 살게 하셨다. 카인은 그 후 놋 땅(고대 히브리어: נוֹד)에 거주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에녹으로 시작되는 후손들을 낳았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아벨의 희생이 믿음으로 바쳐졌기 때문에 카인의 희생보다 더 받아들여졌고, 아벨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쿠르아에서는 카인과 아벨이 각각 카빌(아랍어: قابيل)과 하빌(هابيل)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카인을 질투와 욕정에 사로잡혀 악마의 인도를 받아 살인자가 된 첫 살인자로 묘사하며, 죄책감과 불명예로 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일부 학자들은 형제들의 정체와 동기에 대해 논쟁한다. 세트파 요한의 묵시록에서 카인과 아벨은 아르콘이자 데미우르고스 얄다바오트의 자식들로, 야훼와 엘로힘이라 불리지만 속이기 위해 카인과 아벨이라고 불린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학문적 성경 연구에서 초기 농업 사회의 긴장—예를 들어 유목 목동과 정착 농부 사이의 긴장—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널리 해석되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엔릴이 농부 신을 선택한다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카인과 아벨은 중세 시대부터 현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예술, 문학, 연극, 음악, 영화에서 인용되고 재해석되며 형제살해와 형제간 갈등의 영원한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이후 예술 분야에서는 글로, 음악이나 미술에서, 혹은 정치나 사회적으로 카인과 아벨은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앞서 황순원 작가가 책 제목을 '카인의 후예'라고 적은 이유는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표현되는 6·25 전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출판사 측은 이 소설 『카인의 턱뼈』가 "추리소설의 본고장 영국에서 85년 만에 재발견되어 영미 문화권과 유럽 등 12개국에서 출간, 전 세계 유튜버와 틱톡(TikTok)을 통해 추리 매니아들을 열광시킨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또 『카인의 턱뼈』는 이야기 전체에 "스푸너리즘(두음전환), 말장난, 암호, 비유, 은유, 역사적 사건, 상징, 문학 인용문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은 해결 단서가 된다"며 이 단서들의 해독은 "고도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요구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00장의 순서(100장이 모두 낱장으로 떼어 순서를 맟줘가면서 독자들은 상상 이상의 즐거움과 지적 희열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특히 가장 먼저 나오는 스푸너리즘은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한 단어 또는 어군(語群)의 내부에서 두 음소나 그 이상의 음절이 자리바꿈을 하는 현상을 말하며, 한 언어에서 음소나 음절이 서로 그 위치를 바꿀 때 그것을 각각 음운도치·음절도치라고 말한다. 이 도치현상은 동화(同化)·이화(異化)·중음생략(重音省略)·혼성(混成) 등과 더불어 통시적인 면에서 음운변화의 중요한 유형으로 취급되는데, 스푸너리즘은 이화의 한 유형으로 다루어진다. 대체로 이러한 언어변화의 현상은 언어 사용시의 잘못된 발음에 따른 것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간혹 이것을 음성변화의 규범으로 보고자 하는 학자도 있다. 또, 도치는 한 언어의 음성적인 면에서 특별한 연속음에 영향을 끼치는 규칙적인 변화로 보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스푸너리즘(spoonerism : 두 단어 이상의 머리글자를 각각 그 위치를 바꾸어 발음하는 언어현상)과는 구별된다고 말하고 있어 영어와 한글의 차이인가 싶다. 

    『카인의 턱뼈』는 1934년 영국의 저술가이자 옵저버지에 암호십자낱말풀이를 제작, 연재한 에드워드 포이스 메더스가 'Torquemada'(토르케마다)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크로스워드 퍼즐 북 뒷면에 수록한 소설로 ‘crossword puzzle' 과 'Whodunnit’ 의 절묘한 혼합으로 탄생한 범죄추리소설이라고 출판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책 속에는 6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진술이 담겨있으며, 독자들은 100장에 담긴 서술을 읽고 살인사건에 연루된 살인자와 희생자가 누구인지 찾아내야 한다고 단순 추리로는 풀리지 않는 어려운 퍼즐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역자 성귀수는 '87년 동안 전 세계에서 단 4명만이 풀어낸 문학 퍼즐'이라고 말하고 있어 쉽지 않음을 귀띔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저자 이외의 이 책 『카인의 턱뼈』에 대한 설명을 가장 잘 해줄 사람으로 역자 성귀수를 지명하고 있어 그의 말을 들어본다면 추리나 풀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상상해 보라, 당신은 머리가 비상할뿐더러, 풍부한 상식과 섬세한 언어 감각을 두루 갖춘 명탐정이다. 살인의 원형적 이미지가 지배하는 당신의 삶에 6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아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시신이 발견된 것도, 용의자를 추정할 만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증거라고는 몇 명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사건 관련자들의 100장에 달하는 자술서가 전부다. 문제는 그 모두가 일인칭 화자의 진술인 만큼 극히 주관적인 시각과 개성이 난무하며, 자신의 행위와 정체를 위장하려는 각양각색의 전략들이 치밀하게 작동하는 글들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 100장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엄밀하게 재구성해야만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100장의 문서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순열의 가짓수로부터 단 하나의 유효한 순서를 조합하여, 그로부터 얽히고설킨 살인사건을 해결해내는 문제야말로 분명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심오한 난제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체가 퍼즐의 원리, 그것도 ‘암호화된 단서들(cryptic clues)’로 촘촘하게 짜인 텍스트이기에, 초지일관 독법은 섬세해야 하고 추론은 창의적이어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연애하여 낳았을 법한 자식”이라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의 서평이 이 책의 정곡을 찌르는 이유다.

    15세기의 이단심문관 ‘토르케마다’의 피비린내 나는 악명 앞에 각오는 할지언정, 주눅들 필요는 없다. 문제를 풀었다 해서 반드시 텍스트를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 없는, 바꿔 말해, 텍스트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를 푸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참으로 기이한 체험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이다. 명심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겐 지니(Genie)를 능가하는 구글(Google) 요정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리 양해의 말을 먼저 하자면 독자는 아직 이 추리소설의 정답을 찾지 못했다. 해결은커녕 단서가 될 만한 것과 단서가 되지 않는 일반 진술과의 구별도 잘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독자는 최소한의 영어 능력을 갖추고 범죄 추리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지금까지 정독한 독자로서는 단서가 될 만한 단어나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천천히 숙독을 했지만, 책에는 영어 원문까지 병기했지만 영어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추리소설 몇 권 읽어본 독자의 실력으로는 한 번 읽어낸 소감으로 "쉽지 않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태다. 물론 앞으로도 이 책은 계속 옆에 두고 풀이를 위해 노력할 참이다. 단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책의 얼개를 남긴다.

    『카인의 턱뼈』는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독자들이 직접 페이지를 재배열하고 살인 사건의 전말과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문학적 퍼즐이다. 정답을 맞히려면 추리력, 언어 감각, 끈기가 필수이다. 저자 매더스는 책을 집필한 후 페이지 순서를 섞어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페이지가 문장 끝으로 마무리되도록 작성하여 다음 내용을 추측할 힌트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매더스의 작품은 기발한 언어유희와 날카로운 재치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카인의 턱뼈』는 가장 어려운 난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1939년 매더스가 47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세계 대전이 발발, 그의 퍼즐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다만 한 가지 단서가 될 수도 있는 말로 10여년 전, 영국 요크의 샌디홀에서 이 책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샌디홀 큐레이터 패트릭 와일드거스트는 책을 기증받은 후 공개 요청을 통해 이 퍼즐을 풀었고, 이로 인해 2019년 『카인의 턱뼈』가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두 번째 장의 내용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페이지가 따로 매겨지지 않아서 글 뒤에 붙인 숫자(02)는 두 번째 장이라는 의미다.

    "헨리를 일일이 챙긴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월계수들을 지나자마자, 내가 갑자기 돌아보자, 거기 최근 희생된 시체가 있는 곳에 그가 웅크리고 있다. 사방에 피가 있었다. 내가 날카롭게 부르면 어리둥절한 눈치다. 다음으로 나는 오랜 친구 칼라바르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ㅡ보통 그런 용도의 전문적 처방이 이루어지는지 확인 없이 시도한 나의 디기탈리스 실험이 완전한 실패로 드러난 바로 그날 말이다. 한데, 왜 이런 그림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을까? 멀리, 저 멀리 아드리아해가 일리리아의 푸른 언덕 사이 따스한 해안을 파고드나니. 마태오, 마르코, 루카 그리고 요한. 마크 트웨인을 읽고 안으로 새길 것. 하지만, 나는 정신 바짝 차리고 주변을 살펴야 했다. 그가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마침내 헨리와 친해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폰세 데 레온이 그토록 찾아 헤맨 불로장생의 샘으로 내가 자기를 데려가고 있음을 이미 감지해/ㅅ다. 하긴, 딱히 틀렸달 수도 없지."(02)


    저자 : 에드워드 포우위 매더스


    번역가, 시인, 문학평론가.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재능으로 20세기 초 문학과 퍼즐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 인물. 시와 번역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중동과 아시아 시의 번역으로 주목받았으나 그를 세상에 독보적으로 알린 것은 바로 퍼즐과 암호에 대한 천재성이었다. 스페인 종교재판관 이름을 딴 토르케마다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1926년 옵저버 지에 합류, 매주 퍼즐을 선보였고, 당시 십자말풀이가 간결하고 직설적인 형식으로만 제공되던 시대에, 넉넉(nock-knock) 농담, 운문, 언어유희, 애너그램, 그리고 날카로운 재치로 암호 십자말풀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개척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1934년 옵저버지에 연재된 십자말풀이를 모아 낸 책의 마지막에 카인의 턱뼈를 실어 단순한 퍼즐을 넘어선, 문학과 추리가 결합된 실험적 작품을 남기고 1937년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역자 : 성귀수


    시인, 번역가. 연세대학교 불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 “내면일기” 《숭고한 노이로제》를 발표했다.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의 《침묵의 기술》,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아폴리네르의 《내 사랑의 그림자(루에게 바치는 시)》, 래그나 레드비어드의 《힘이 정의다》, 장 퇼레의 《자살가게》, 모리스 르블랑의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전10권), 피에르 수베스트르와 마르셀 알랭의 《팡토마스》(전5권),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공역), 조르주 바타유의 《불가능》, 베르나르 미니에의 《물의 살인》(전2권), 사뮈엘오귀스트 티소의 《읽고 쓰는 사람의 건강》 등 백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4년부터 사드 전집을 기획, 번역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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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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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은 전편에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가 흐른다. 불법 체류자들이 밀항하고 마약 거래에도 손을 대는 등 범죄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 풍자하는 소설로 정평이 난 고호 작가의 욕설이나 탄식은 '차지기로' 이미 유명하다. 

      “그 새낀 사람을 팔았지만, 난 사람을 구했어!”

      "니가 대체 누굴 구했다는 거야?!"

      "내 아이! 내 새끼! 뭐? 더 누가 있을 줄 알았어?! 내가 하느님이야? 부처님이야?! 나한테 뭘 더 바래?!"(p.260)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델피노 측은 일반적 문학론으로 고호 작가의 소설에 다가간다. "우리가 문학을 통하여 쫓고자 하는 즐거움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대부분은 어떤 대상에 숨겨진 실체를 파악하고 싶어 하거나, 과거의 감춰진 사실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 도대체 한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타인의 행동 뒤에 숨겨진 이유를 추적하거나, 사건의 원인을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엔돌핀을 내뿜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긴장감과 몰입을 경험한다. 이런 인간의 본능을 누구보다 교묘하게 파고드는 작가가 있다. 바로 고호 작가다."

      저자 고호는 이 소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은 지금껏 작가 고호만의 개성적이고 독창적 서사와 개성적 문체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독자들을 다시금 매혹시킨다.

      이번 작품은 경남 남해군 미조면을 배경으로, 낙향한 경찰대 출신 경감 양태열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이 설정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은 폭주한다. 경찰대 출신이라는 이력이 무색할 만큼 한적한 시골로 내려온 양태열. 그는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그의 과거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독자들의 궁금증으로도 부족해 연이어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밀항선과 교통사고가 사건의 중심에 등장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출렁인다. 소설의 첫 장면은 태열의 새 근무지 미조면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다. 

      매미 울음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오후 4시.

      끼이익- 하고 마을버스가 서자, 이윽고 차체 밑으로 막 내린 발길들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꺾어 신은 나이키 운동화 하나가 마지못해 낯선 흙바닥을 내디뎠다.

      "으···"

      더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버스가 떠난 자리에 우두커니 선 태열은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적막강산 같은 주변 풍경을 노려보았다. 저만치 자리한 논 곳곳에 덩그러니 놓인 곤포 사일리지(일명 하얀 마시멜로), 도무지 3층 이상의 건물이 없어 뵈는 사방, 음메- 하고 들려오는 소 울음. 그리고 바닷내음.(p.15)

      군(郡) 경찰서 관할 면 경찰로 근무지에 막 내린 태열의 눈에 비친 모습은 한적한 면 소재지 시골의 전형적 모습이다. 바삐 움직이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여름철임을 감안하면 권태로움마저 느낄 정도의 한가로운 풍경이다. 태열의 눈에도 실망감이 역력하다. 

      태열이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만난 인물은 길을 묻기 위해 정류장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다 실망한 얼굴의 소년이다. 자신을 부르던 말끔한 차림의 청년을 흘끔 쳐다본다. "우체국 가려면 어디로 가야 돼?" 하고 묻는 태열을 힐끔 쳐다본 아이를 태열도 얼굴을 훑어 내린다. "숱이 빽빽하니 짙은 눈썹 밑으로 살짝 오목한 눈두덩이, 까맣고 깊은 눈동자, 볕에 그을린 것이 아닌 날 때부터 빚어진 게 분명한 피부색. 그리고 주름진 남방에 체육복 반바지. 농촌으로 시집온 어느 동남아 여성의 자식이겠거니, 하고 재빠른 판단과 함께 지역의 낙후화가 더욱 체감됐다.(p.16)



      이 소설 작품은 〈프롤로그〉와 〈쿠키〉를 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카르텔〉, 2부 〈열쇠〉, 3부 〈두 명의 사냥꾼〉, 4부 〈비에씬타〉 등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쉽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마성의 캐릭터를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더 복잡하게 얽어놓으며 독자들을 미궁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불법 입국자들이 주고받는 중국어 대화와 그들의 밀항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해 극의 현실감을 한층 끌어올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설정은 중국어나 그들이 언어 표현 관습에 익숙지 못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겸한다.

      지금까지 가리봉동의 조선족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등장한 적은 꽤 있었지만, 이들의 밀항 과정과 이후의 삶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은 독자의 기억으로는 없었다. 다만 가리봉동의 거주하는 조선족들의 생활 모습이 소설에 담긴 소설이 간혹 있긴 했다. 이 소설은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 인물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단순히 묵직한 주제 의식이나 어설픈 교훈으로 흐르지 않게 하는 점이 더욱 놀랍다. 긴장과 재미, 그리고 리얼리티가 조화를 이루며 독자들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필로폰 30kg을 손에 넣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망설였을 때, "뜬금없이 이 지경까지 와서 신고하자고? 정말? 그럴 수 있어? 그럼 당장 경찰에 전화 쳐."

      일반적으로 전화를 '걸다'가 아니라 '치다'는 표현을 썼다.

      역시 그 또한 打電話(따띠엔화)라는 중국어의 습관이 남아 있던 것이다.(p.214~215)


      전라도 흥덕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보수를 올려달라는 서현과의 입씨름 중, 

      "할 거야?"

      "네,"

      "진짜지? 또 말 바꾸면 그땐 곤란해."

      "네, 200으로 할게요."

      "90이야. 괘씸죄로."

      그러면서 숫자 '9'를 만들어 보이던 손가락 모양까지도.


      저자 고호는 특유의 리얼한 사투리와 생생한 인물 묘사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그의 필력은 이미 고정 팬층이 있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독자 역시 저자의 사투리 구사 능력과 인물 묘사에 크게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는 점에 이끌리기도 했다. 이쯤 되면 고호의 이름 자체가 곧 흥행 보증수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수도 있다. 『밀항선 하나에 두 명의 사냥꾼』. 매 장(章)마다 궁금증을 자아내며 독자를 단단히 붙드는 이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페이지터너임에 틀림없다. 분량도 장편소설 치고는 긴 편이 아니다. 이 작품뿐만 저자는 전작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노비 종친회』, 『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평양골드러시』 등 수많은 작품을 보더라도 벽돌책에 버금가는 긴 장편은 없는 편이다. 이 책처럼 한 가지 주제를 될수록 절제된 언어와 정곡을 찌르는 적확한 단어, 또 약간은 지나치다 싶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은 사투리나 욕 등의 사용을 통해 최대한 압축해 오히려 더 많은 암시를 포함시키는 문장력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같은 이유로 지금까지 영화화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도 여러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 작품은 누구보다 화려했던 엘리트 경찰 태열이 시골로 좌천돼 가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불법체류자의 밀항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태열은 그들의 뒤를 쫓는다. 그러다가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마을 카르텔이자 도주자였던 환국은 과잉 진압이라며 태열을 몰아세운다. 설상가상 뒤늦게 도착한 또 다른 실세 영춘.

      “조용히 덮읍시다. 양 소장.”

      "아하, 한 패거리다 이거지."

      "덮고 가죠."

      "현장을 은폐하자?"

      "안 그럼? 다른 수 있어요?"

      "사람이 죽었어! 똑똑히 봐! 사람이 죽었다고.!!"

      태열이 차 안을 가리키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영춘이 오히려 되묻는다.

      "대한민국 법에선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에요. 쟤네가 주민번호가 있기를 해요. 아니면 여권이 있기를 해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왜 신경 쓰죠?"

      그러면서 서울 시절 태열의 뇌물 수수 혐의까지 들춰내며 압박해온다. 그 순간! 차 밑에서… 기적(?)처럼 기어 나오는 생존자!(p.60~61)

      여자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중국어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긴 채 죽고 만다. 최악 중의 최악이다! 모두가 패닉에 빠진 순간, 죽은 여자의 옷섶에서 띠리링- 메시지 알림.

      그녀는 단순한 밀입국자가 아니다! 누군가 그녀가 한국에 올 걸 이미 알고 있고, 둘은 어딘가에서 접선을 약속했다.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영춘의 반문을 통해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욕망과 함께 승수작용을 일으킴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100% 돈이야 돈. 여기 가면… 뭔가 큰 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아?”

      세 사람은 죽은 여자를 대신할 대타를 구하기에 이르고, 마침 돈이 급했던 승무원 서현이 그 위험한 판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마약, 그리고 1천억 원. 유혹에 넘어간 태열은 화려한 미래를 꿈꾸지만, 그것도 잠시 곧 배신을 당하고 급기야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역추적으로 밝혀낸 거대한 음모와 마주하게 된 태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짜여진 판이었다. 배신과 음모, 진실과 위장이 교차하는 서스펜스가 매혹적이리만큼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이 소설 작품의 주인공은 태열과 진가림이란 여인이다. 진가림은 중국 길림성 안도현의 한 마을에 사는 여성이다. 곳곳에 오성홍기(중국 국기)가 붉은 지붕들 사이에 나부끼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는 조선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 지나는 노인에게서 말끝마다 특유한 억양의 '~마'가 심심찮게 들리는 까닭도 그래서이다. 어려운 생활을 벗어나 돈을 벌기 위해 한국 밀항을 꾀하는 여성이 〈프롤로그〉 부분 장면이다. 아이와 이별하는 모습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여인의 아이를 뒤로 하고 한국을 향해 떠난다.


      권력자를 이용하는 법은 간단하다. 그들로 하여금 빚을 지게 하면 된다. 그럼 그 빚은 현물로 돌려받는 대신,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 아주 손쉽게 해낼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면 충분하다. 그렇다고 둘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채무 관계는 끝났어도 또 다른 유대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정경유착의 운행 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p.167)


      저자 :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드라마 계약 체결)』,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드라마 계약 체결)』, 『노비 종친회』, 『도쿄 한복판의 유력 용의자』, 『평양골드러시(드라마 계약 체결)』, 『레디 슛(드라마 계약 체결)』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황토현 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DMZ문학상, 중원문학상, 교육부장관상, 통일부장관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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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모르고 있는 내 감정의 속사정 - 화내고 후회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 처방전
      미즈시마 히로코 지음, 박미정 옮김 / 생각의날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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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살면서 순간 욱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겪는 이 욱하는 심정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후회감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왜 순간적으로 흥분하고 항상 후회하는 걸까?" 이 책 『나만 모르고 있는 내 감정의 속사정』은 우리 안에 있는 감정 가운데 특히 '화'와 '분노'로 표현되는 감정을 주로 다룬다. 감정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꼭 참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화내는 것은 왜 늘 후회를 남기는가? 욱하는 감정을 참아내는 방법이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인 면과 이성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감정적'인 심리상태는 인간관계나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고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감정을 조절하거나 자제하는 데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이 책에서는 무슨 일에든 쉽게 감정적이 되거나, 혹은 반대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억누르며 감정적이지 않은 척하는 사람들의 감정의 속사정과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저자 미즈시마 히로코는 이 분석을 토대로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게이오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게이오대학 의학부 신경정신과에서 근무를 했으며, 현재는 대인관계 치료 전문 클리닉 원장과 모교 의학부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감정적으로 되면 인간관계나 일만 그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도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며 "감정적으로 되는 순간, 마음의 평안 또한 순식간에 깨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를 테면 집안 꼴이 엉망이라며 아내에게 화를 자주 내어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면 확실히 삶의 질은 크게 떨어진다. 게다기 이런 태도로 계속 가족들을 대하면 가족에게도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항상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과는 살고 싶지 않다"며 아내가 느닷없이 이혼 서류를 내밀지도 모른다고 주의를 준다.

      한편으론 "나는 감정을 잘 참으로니까 문제 없어"라고 자신하는 사람도 주의할 것을 주문한다. 이들은 감정적이지 않는 게 아니라 다만 감정적인 게 귀찮은 상황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저자의 지적대로 자기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지만, 계속 참고 살다가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기도 힘들어진다고 경계한다. 결국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사람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이들 모두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감정적이 될 것 같은 상황을 이들은 가급적 피하려고만 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점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일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한번 감정적이 되면 자신을 컨트롤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감정적으로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면 감정에 인생을 빼앗기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감정적으로 되는 경우든 감정적이지 않은 척하는 경우든 어느 쪽도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쉽게 감정적으로 되거나, 반대로 감정적이지 않은 척을 하는 걸까?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의문들을 상세하게 풀어가면서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다음 네 가지 방법을 함께 익혀 나갈 것을 제시한다.


      ① 욱하는 반응을 감정적으로 발전시키지 않는 법

      ② 감정을 참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되지 않는 법

      ③ 감정적인 상대방에게 상처받지 않는 법

      ④ 감정적인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습관


      저자는 대인관계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애티튜디널 힐링(AH) 봉사활동 등을 통해서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을 많이 만나온 사람으로서, 한 가지 분명하고 짚고 넘어가자고 말한다. "우리가 감정적이 되는 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감정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시중에 다양한 감정컨트롤법이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감정적이라는 상태가 주는 나쁜 이미지 때문에, 감정 그 자체를 성가신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감정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부분이다. 감정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 오히려 감정을 소중히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되지 않기 위한 하나의 커다란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감정적인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양한 심리 서적을 읽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본 사람도 그 정도가 가볍다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겠지만 감정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어떻게 해볼 도라기 없다. 또한 '감정을 놓아 버리자',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자', '신경 쓰지 말자'는 말을 들어도 '그게 그렇게 쉽게 될 거면 이 고생을 안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집필 취지를 밝힌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심리 상태의 구조를 상세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걸핏하면 감정적이 되어 손해 보는 인생을 살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p.10)

      이 책은 모두 6부(Part)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사람은 왜 감정적이 되는 걸까?〉, 2부 〈‘감정적’인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 3부 〈서로의 영역을 알면 상처받을 일이 없다〉, 4부 〈‘옳음의 줄다리기’에서 손 떼기〉, 5부 〈쉽게 감정적이 되지 않기 위한 7가지 습관〉, 6부 〈감정적인 사람과 잘 지내는 법〉 등이다. 

      각 부에는 6~11개의 장(章)을 두어 주제에 알맞게 설명을 해준다. 이를 테면 1부에는 「‘감정’이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걸까?」 「사람은 ‘감정적’이 되어 자신의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 「왜 한 번 실수를 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걸까?」 등 11개 장에서 왜 사람들이 감정적이 되고 후회하게 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2부 「자존감 이란 무엇인가」「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자주 하는 말」 등 9개 장을 통해 감정적인 사람의 낮은 자존감에 대해 밝힌다. 3부는 「서로의 영역 존중하기」「‘나의 옳음’과 ‘타인의 옳음’은 다르다」 등 7개 장에서 타인의 의견과 내 의견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줄 것을 주문한다. 또 4부에서는 「‘감정적’이 되는 이유는 ‘옳음’에 집착하기 때문이다」「서로의 ‘옳음’이 다를 때 대처하는 법」 등 8개 장에서 나와 상대의 '옳음'이 다를 때 대처하는 법을 강조한다. 5부는 7개 장에 걸쳐 감정적이지 않게 되는 7가지 습관을 제시한다. 마지막 6부에서는 「‘폭언을 하는 상사’가 두렵다면?」「갑작스러운 ‘언어폭력’에 대처하는 법」「SNS상에서 문제 해결법」「감정적인 진상들에게 대처하는 법」 등 6개 장에서 '막무가내' 감정을 건드리는 사람에 대처하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1부 「사람은 ‘감정적’이 되어 자신의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라는 장(章)을 살펴본다.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신체를 지켜 주듯이, 사람은 분노를 느낌으로써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기 마음을 지키고자 한다. 이에 따라 감정적이 된다는 건 어긋난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방어하는 방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방어하는 방식은 효과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한층에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정의 어긋남'과 '충격'에 따른 단순한 반응이었겠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적으로 됨으로써 되레 스스로를 괴롭힐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부적절한 자기 방어를 '어긋난 방어'라고 한다. 이 말보다 '과잉 방어'란 말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덧붙인다. 과잉 방어란 방어할 목적으로 행하는 일이 과도하게 격해지는 것을 뜻하는 반면, 어긋난 방어는 과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이 전혀 자신을 지키는 일로 연결되지 않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원인은 주로 영역 개념이 부재한 데서 비롯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옳다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을 때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이자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다. 자신의 옳음을 상대방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본인이 상처를 입는 것도 그렇지만 이는 옳음을 강요당한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너와 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간의 거리 두기가 어려울 때 발생한다. 저자는 감정적이 되어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기 위해서라도 영역 개념을 확실히 해둘 것을 강조한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거리 두기를 통해 영역의 개념을 확실히 확립할 수만 있다면 서로 간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마찰이나 갈등은 현저히 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5부 〈쉽게 감정적이 되지 않기 위한 7가지 습관〉에서 감정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감정 활용법을 7가지로 열거한다. 음주나 과로, 혹은 호르몬의 불균형과 같이 자신의 몸 상태를 미리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친구 노트'를 활용해 친구의 입장에서 상처 받은 자신을 다독이기, 혹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맞추며 생활하기 등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해 방법을 모색하되 자신이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일은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감정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화를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치거나 화를 낸 자신에게 상처를 받는 등 손해가 막심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은 당신 안에 내재된 강인함을 일깨우며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헤쳐 나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선사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습관①〉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한다

      〈습관②〉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습관③〉 ‘친구 노트’를 쓴다

      〈습관④〉 주어를 ‘나’로 바꾸어 생각한다

      〈습관⑤〉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습관⑥〉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습과⑦〉 ‘마음의 셔터’를 내린다



      타인이 내린 평가는 언뜻 자기 영역을 침범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영역 안에서 내린 평가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애초에 ‘영역 침범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참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참는다는 것은 피해를 당해도 모른 척 방관하는 것으로 마음속에 부정적인 에너지만 쌓일 뿐이다. 한편 ‘상대방의 영역 안에서 내린 평가’에 불과하다는 입장은 상대방이 애초 내게 피해를 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 정도 말은 참을 수 있어’가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 영역에서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냥 무시하자’고 생각하면 기분전환도 되고 다른 일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pp.133-134)


      ‘내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데 다들 진지하게 들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방어기제가 작동해 한층 더 ‘감정적’이 되어 버린다. 결국 ‘감정적’으로 된다는 것은 자신의 ‘옳음’을 둘러싼 ‘어긋난 방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어긋난 방어’는 문자 그대로 ‘어긋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걸 인정받기가 어렵다. 자기 말이 옳다고 ‘어긋난 방어’를 계속반복하다 보면 사태는 점점 악화될 것이다. 상대방과의 관계도 악화될뿐더러, 무엇보다 스스로 무력한 존재가 될 것이다.(pp.151-152)


      저자 : 미즈시마 히로코(水島 廣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게이오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대학원 의학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게이오대학 의학부 신경정신과에서 근무를 했으며, 현재는 대인관계 치료 전문 클리닉 원장과 모교 의학부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애티튜디널 힐링 저팬(AHJ)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0년 6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일본 중의원 의원으로써 아동학대 방지법 개정을 비롯해 다수의 법안 수정에 힘썼다.

      주요 저서로는 『분노가 단숨에 사라지는 책』, 『가까운 사람의 공격이 단숨에 사라지는 책』, 『나는 절대 외모에 집착하지 않는다』, 『질투가 단숨에 사라지는 책』, 『여자의 인간관계』 등이 있다.


      역자 : 박미정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감정도 습관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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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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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저자 자신의 경험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한다. "휴일에 어쩌다 함께 식사하게 되면 아버지는 넋두리처럼 회사 생활의 고단함을 늘어놓으셨다. 아침마다 회사에 가는 게 싫을 때가 있지만 가야 하는 게 이 직업이다. 너희믄 회사 다니지 말로 다른 일 해라." 하지만 형들은 모두 기업에 취직했고 나만 다른 길을 걸었다. 당신 말년에 내가 출근하지 않고 병상을 찾으면 우려 섞인 말을 건네셨다. 출근 안 해도 되냐고. "수업 없어서 괜찮아요." 하면 씁쓸히 웃으며 되받으셨다. "출근 안 해도 돈 주는 직업이 있는 줄 몰랐다." 은퇴한 아버지는 회한 섞인 말을 종종 하셨다. "몇 번 나와서 내 사업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 잠든 걸 보면 차마 그러지 못했다······"(p.5)

      저자 이철승은 자신의 과거이기도 한 아버지의 회사 생활의 일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고용주의 비위 맞추려 시도 때도 없이 호출당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걸 귀찮아 했다고 「왜 우리는 탈출하고자 하는가」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자신의 과거이자 아버지가 직장 생활하던 때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표제어 '오픈 엑시트'는 독자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열린 탈출구', 혹은 '개방된 탈출구' 정도가 아닐까? 사회 비평 혹은 사회과학 서적으로 분류될 이 책에서 왜 개인적 경험을 책의 「프롤로그」를 끼워넣었을까? 사례를 전제로 우리 사회 현실을 비판하자면 객관적 자료나 통계가 더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텐데. 독자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우리의 산업화 시대 직장을 다니셨던 아버지는 사실 충분히 객관화된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들기 전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 전쟁과 후유증 수습 등으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더욱이 전쟁을 치렀던 남북의 분단은 해방 이후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영토를 마음대로 분리 통치하기로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이념 대립으로 한반도는 허리가 잘렸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장기 집권 꿈을 학생과 시민들의 분연한 의지로 끊어냈지만, 정국의 혼란이 가시기도 전 다시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당시 박정희 장군(소장)은 정권을 탈취한 뒤 '개발 독재' '철권 통치'를 시작했다. '먹고살기'가 먼저라는 명분이다.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니만큼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은 국민들의 바람을 잘 궤뚫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개발만이 자신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할 명분이라는 점을 잘 간파했다. 사실 폐허에서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려면 당연히 먹고사는 일이 시급하다. 헌법에 정해진 대로 당초 약속했던, 재집권의 경우까지 8년에 한하던 대통령의 임기를 무기한으로 늘리는 개헌을 시도했다. 비상계엄령과 함께 시작된 장기집권 계획의 꿈은 경제 개발 성과로 가릴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른바 '유신'이다. 헌법도 유신헌법으로 바뀌고 임기 6년제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도 연임 횟수를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종신 대통령'의 기초를 다졌다. 민주화를 위한 모든 행위(학생 운동, 노동 운동 등)는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때 비상계엄령에 준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도 추가되었다. 위반할 경우 최고 사형을 언도받을 수 있는 엄청난 법적 제도도 마련됐다. 

      이렇게 다져진 유신체제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위세가 대단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으면서도 일정 기간 유지가 가능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긴급조치권으로 구속 체포해 최고 사형까지 시키는 데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더 급한 경제 발전에 주력한 후 어느 정도 나라의 체제가 갖추어지면 민주화에도 동의하겠다는 절대 정권의 말을 믿도록 국민들은 순치되어 갔다. 배고픈 사람들은 민주화보다 산업화가 먼저였으니 당연히 민주화를 추구하던 몇몇 인사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이 책 저자의 아버지 세대의 일이다. 아버지의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산업화 시대의 희생적 삶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저자 이철승은 한국 사회에 불평등과 세대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언론과 학계, 정계, 일반 대중에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회학자이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로 이 책은 전작 『불평등의 세대』와 『쌀 재난 국가』에 이은, 〈불평등 3부작〉의 완결작이다. 저자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세대가 구축한 세대 네트워크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의 구조를 파헤쳤으며, 이어 『쌀 재난 국가』에서는 그러한 불평등 구조의 기원을 동아시아의 쌀 경작 문화권에서 발달한 ‘벼농사 체제’라는 앵글을 통해 추적했다. 완결작이 된 이 책은 새롭게 떠오르는 불평등의 축으로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을 꼽으며,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과 그 힘들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social cage)’라는 기존의 제도 및 구조와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개인적 혹은 집합적 대안으로서 ‘엑시트 옵션(exit op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기존 케이지*의 룰과 관습으로는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당면한 미래에 이 세 가지 변동이 가져올 충격과 재구조화 속에서 개인과 기업은 어떤 적응 전략을 짜고, 국가는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할까? 시민사회는 어떻게 사회와 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는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불평등의 미래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까? 저자 이철승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던 구조 개혁의 문제를 ‘기업’을 분석 단위로 삼아 ‘개인의 엑시트 옵션’이라는 수준에서 논의한다. 기업이라는 소셜 케이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노동하는 인간이 인간 사회의 본질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이며, 구조 개혁의 문제를 개인 수준으로 낮춘 것은 “엑시트 옵션의 궁극적 행사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수준의 엑시트 옵션은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이렇게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오도 가도 못 하게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밀어내기 싸움에 목매는 이유는 바로 구조적으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제로섬게임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이 처절한 아귀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쉽게 엑시트할 수 있는 사회, 특히 중하층의 엑시트 옵션을 확대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이미 그 싹을 틔운 불평등의 미래에 직면해 노동시장의 구조 개혁,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을 예비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기치 않은 선거를 앞두고(책이 출판될 때는 2025 대선이 치러지기 이전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책이 될 것이다.

      * 케이지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은 막스 베버다. 베버는 그의 명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92, 1930)의 결론 부분에서 '쇠 우리(iron cage)라는 비유적 개념을 사용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자본주의와 근대적 관료제의 기술 통제하에서 고유의 자율성을 잃고 그 규칙과 규범에 종속된다. 이 속박의 '안정성'과 결박의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베버는ㅡ케이지도 강한 결박의 개념인데ㅡ앞에 '쇠(iron)'를 붙였다.((p.23, 저자 주)


      이 책은 「소셜 케이지와 탈출 옵션」이라는 제목의 〈이 책의 구성〉과 〈결론〉을 제외하곤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케이지에서 나가기 - 엑시트 옵션의 확장〉, 2장 〈케이지 업데이트 - 인공지능과의 협업〉, 3장 〈케이지 재생산 - 벼농사 체제와 저출생〉, 4장 〈케이지 열기 - 이민과 불평등〉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표제어 『오픈 엑시트』는 제목이 뜻하는 바 ‘이탈 혹은 탈출’과 ‘안착 혹은 속박’에 관한 사회방법론을 이용한 서사다. 소셜 케이지는 사회마다 전승되어온 문화적 구조의 유산으로, 작게는 가족에서부터 마을, 일터, 국가까지 아우르며 개인이 현재의 공동체에서 이탈(exit)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제도의 총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진화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소셜 케이지로 발달한 (학벌-내부 노동시장-연공제로 착종되어 뒤엉킨) 기업의 제도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제도들이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이라는 거대한 변동의 물결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에 논의를 집중한다.

      이를 테면 동아시아 소셜 케이지의 특징은 협업과 위계, 경쟁을 바탕으로 강력한 내부 규율과 상호 감시 기제가 작동하며, 진입도 어렵지만 빠져나오기(exit)도 힘든 사회적 연결망이자 협동 노동조직이다. 이 소셜 케이지에 한 번 들어서면 조직 안에서는 장기간 고용이 보장되지만, 더 높은 자리와 보상이 주어지는 권력과 부를 향해 구성원 전체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 집단주의적이고 위계적인 협업 시스템은 세대 간, 세대 내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 및 도구의 표준화와 평준화를 ‘빠르게’ 확산시킴으로써, 역시 ‘빠르게’ 서구 산업자본주의를 따라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응하고 키워왔던 소셜 케이지는 오늘날에도 잘 작동하고 있는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위기에 봉착한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를 어떻게 재구조화할지에 대한 고찰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가 새롭게 닥쳐오는 거대한 구조적 변동과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이탈 혹은 탈출’과 ‘안착 혹은 속박’의 메커니즘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먼저,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는 그동안 동아시아 생산 시스템이 점유해왔던 제조업 분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인공지능이 외부에서 밀려든 충격으로 인해 우리의 소셜 케이지를 업데이트하는 문제라면, 저출생은 소셜 케이지 내부의 룰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 구성을 거부하거나, 가족을 꾸리더라도 출산과 육아를 거부하거나 연기함으로써 가부장제가 강제하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커리어와 여가를 지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 경우, 출산을 택하지 않은 것은 개인 수준에서는 봉건적 가족제도로부터의 엑시트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저출생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회가 구성원의 새로운 가치와 운동에 그 룰을 맞추지 못해 스스로를 재생산 실패(사멸)로 몰고 가는 이 상황, 게다가 그러한 실패가 사회의 하층에서 더욱더 가속화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민은 다른 사회의 케이지를 엑시트하여 우리의 케이지로 진입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주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200만을 넘어 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의 협업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산업으로 유입되어 그들만의 지역적·산업적 게토를 만들고 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배제와 분리의 장벽들이 심화되면 미래의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저출생도 문제지만, 출산의 계급화는 그에 못지않은 사회문제다. 상층과 정규직은 더 적은 수의 자식에게 교육 자본과 자산을 몰아주기 위해 출산을 자제한다면, 중하층과 비정규직은 아이들을 키울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출산을 자제한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인 개인과 가구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이 상층과 정규직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 도태를 강제하는 힘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올 것이다.(pp.221-222)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가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인 재생산 위기를 초래하며, 이주자들이 이미 우리의 일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 책 『오픈 엑시트』는 개인과 기업, 국가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하면서, 저자 특유의 독창적인 시각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 이철승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고 현상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엑시트 옵션의 확대’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전략이지만,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일자리를 찾고, 스킬(숙련)을 쌓고, 그 스킬을 자유롭게 옮기거나 전환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학자의 책무라고 여겨 이 책을 썼다고 소회를 풀어놓는다. 다 같이 한 조직에, 현 조직에 매달려 서로의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제로섬게임에 올인하는 이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엑시트 옵션을 탐색하는 이 책은, 우리가 함께 설계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안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에 관한 흥미로운 사유서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중하층 백인을 결집하는 트럼프의 정치도 이러한 문화주의 우파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이민 이슈는 좌파정당뿐만 아니라, 우파정당 내부에도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균열은 미국과 유럽에서 국제주의와 세계화를 추진해온 전통 우파가 사그라들고, 신극우파가 출현하여 우파정당을 장악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2000년대 이후 극우정당에 의한 의회와 행정부의 장악은 한두 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그 궁극적 원인은 세계화와 이민이다.(p.299)


      저자 : 이철승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복지국가, 노동시장 및 자산 불평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복지국가와 불평등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2005). 유타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를 거쳐 시카고 대학교 종신교수로 2017년까지 근무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2011년과 2012년 전미사회학협회 불평등과 사회이동, 정치사회학, 발전사회학, 노동사회학 분야에서 최우수 및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Social Forces, Sociological Theory, World Politics,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한국사회학』 『경제와사회』 『동향과전망』 『한국정치학회보』 『비판사회정책』 등에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 「한국 복지국가의 사회경제적 기초」 「한국 노동운동과 복지국가의 미래 전략」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9년 번역?출간된 When Solidarity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6(『노동-시민 연대는 언제 작동하는가』, 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으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저술 부문)을 수상했고, 같은 해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세대, 계급, 위계―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로 2020년 한국사회학회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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