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러시 소재집 : 흑백 일러스트·만화 편 - CLIP STUDIO PAINT 브러시 소재
배경창고 지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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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림책보다 만화를 더 많이 봤다. 그림책은 비싸고 만화는 싼 데다 빌려볼 수 있는 만화가게가 학교뿐만 아니라 동네 주변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가 이름과 캐릭터 등이 많다. 그때 본 만화들은 남성이어서인지 주로 전쟁만화가 많았다. 독일군과 미군의 제 2차 세계대전이 시간적 배경이었고, 공간적 배경으로는 유럽 일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로만 듣던 유럽 풍경도 사실 그때 봤던 만화의 배경이 주로 머릿속에 입력돼 있다. 특히 캐릭터는 얼굴을 지나치게 길게 그렸던 만화작가의 인물이 가장 기억에 난다. 조금 고학년이 되어서는 가족 중심의 만화도 적지 않게 봤다. 지금은 없어진 듯 보이는 '독고 탁'이 주인공이었다. 어려운 생활 환경에서 굳건한 의지로 성공을 위해 나아가는 당찬 어린이였다. 캐릭터도 동글동글해 한눈에 선하게만 보이는 인물이었다. 만화작가의 그림 솜씨도 좋았지만 스토리가 좋아 즐겨봤던 기억이 지금도 독자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다.

만화는 학교에 가져가면 '매를 버는' 행위라 독자는 만화를 책가방에 숨겨 가는 일은 없었지만 간혹 친구 중 그런 학생은 들키기만 하면 어김없이 매를 맞았다. 매를 맞는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대개는 다시 책가방 속에 만화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두 번, 세 번 들켜서 매를 맞는 학생도 있긴 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한동안 만화를 보질 않았다. 읽는 책이 만화에서 세계 명작 도서로 옮겨진 후 만화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세계 명작은 대부분 전집이어서 50권, 100권 단위였다. 여느 집에서 그런 접집류를 사놓고 보는 친구들은 드물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버지 영향으로 여러 번 사다 주셔서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대부분이 축약본이고 대하소설처럼 긴 소설은 두 권, 세 권으로 묶어 전집류에 끼어 있었다.

그래도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던 시절이라 소중하게 다루고 읽었다. 그러다 축구에 맛들인 이후부터 그나마 읽던 세계 명작 전집류와 멀어졌다. 오히려 가끔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친구들이 갖고 있을 경우 읽긴 했지만 비가 와서 축구를 못할 정도일 때만 읽었기 때문에 과독이라고 고백한다.

고등학교에서는 우리나라 소설책은 꽤 읽었지만 대입 앞에서 소설은 사치였다. 대입의 당위성은 독자의 되살아나는 독서욕을 채울 수 없이 시간을 빼앗아갔다. 결국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는 이성과 술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사회과학 책에 매료됐다. 사회과학 책 중에는 금서로 지정된 책이 많았다. 누가 지었나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독재를 다룬 책은 모두 금서로 지정됐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결국 사회에 나와서 책을 다시 손에 잡기 시작했으나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쳐 디지털 시대로 가면서 독서를 훼방치는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독자의 전 생애에 걸쳐 나타난 셈이다. 그래서 지금도 "책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라 읽을 생각이 없어서 시간을 못 내는 것이다"란 말이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책 읽는 것을 많이도 피해온 셈이다. 그런 와중에 만화가 크게 인기를 누린 적이 있었다. 지금도 모두 잘 아는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는 중국 고전을 바탕으로 한 만화작가의 스토리 구성력이 좋아 대히트를 쳤던 시대다. 일본은 이미 만화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만화 전성시대'였다. 그때 반짝 만화를 보다가 50대를 넘어서는 만화로부터 완전히 멀어졌다. 필요한 업무 관련 서적도 읽지 않은데 한가하게 만화를 읽을 시간이나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았다. 해외 여행을 처음 갔을 때 "사진만 남는다"고 한목소리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을 그릴 줄 알면 난 좀 독특하게 남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데생이었다. 정통 화가가 될 사람이 시작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그럴 생각도 없었고 나이를 생각해서도 터무니없는 일이라 급히 풍경, 인물 등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기도

했다. 이미 우리도 출판 문화의 엄청난 발전으로 원하기만 하면 국가기밀 기관 내부도 유추해 놓은 그림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됐고, 따라 그리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조금은 흉내를 낼 정도가 되자 이번에는 디지털, 즉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라 한다. 그럼 만화작가는 어떻게 먹고 살아? 이런 것을 '쓸데없는 걱정'이라 한다. 이미 유명한 만화작가들은 문하생들이 그린단다. 정작 본인은 캐릭터와 스토리만 구상하고 창작해 내면 나머지는 모두 알아서 해준다고 한다.

유명 만화작가가 이미 기업 사장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확인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책 『브러시 소재집 : 흑백 일러스트 만화편』을 만났다. 정말 만화의 신세계였다. 문하생들도 일일이 붓이나 펜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CLIP STUDIO 유저 필독서' 제2탄이라고 표시된 이 책은 흑백 일러스트와 만화를 그릴 때 유용한 브러시 195점 수록. 현역 프로 작가들이 사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그들이 검증한 브러시 전문 제작팀의 명품 브러시와 활용 테크닉을 수록했다는 것이다. 고층 건물과 나무 등을 그대로 브러시의 「모양」으로 등록한다는 「발상」. 이 놀라운 발상을 만난 브러시는 타블렛으로도 연필 「비슷한」, 펜 「비슷한」 선을 긋게 해주는 단순한 기능에서 단 몇 초 펜을 움직이기만 해도 빈 공간을 각종 배경 요소와 효과로 채워주는 「시간 단축」과 「퀄리티 향상」의 비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러한 「브러시 소재의 혁명」에 이끌려 찾아온 디지털 작업, 대브러시의 시대라는 화려한 막을 올린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를 오래 전부터 지켜보고 예감한 선구적인 작가들이 흑백으로, 선화 중심으로(컬러에도 활용 가능) 작품을 제작할 때 널리 이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사용법을 설명한 브러시 모음집이다.

 


 

이 책은 '브러시 설치 방법'을 가장 먼저 소개한다. 더 멋진 그림 연출을 위한 브러시의 존재와 쓰임을 시작하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CLIP STUDIO PAINT'가 가지는 기본적인 내용들까지도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으로 브러시의 기본적인 기능들과 구성을 파악할 수 있고 연습하면서 익히게 구성했다. 주로 이 책에서 다루는 브러시로 벽이나 문, 학교, 울타리 등등의 '인공물 브러시'의 예를 들어주고 어떻게 완성도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소개한다. 또 우리 주변의 꽃과 나무, 풀, 구름, 바위, 날씨 등등을 표현하는 '자연물 브러시'를 재미있게 알려준다. '소품 브러시'는 우리 일상에서 옷이나 음식, 혹은 관객, 거리 등등의 말그대로 소품에 대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효과 브러시'라고 해서 '충격파'와 '만화적 효과'들도 재미있게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준다.

 


 

배경적인 요소로 충분히 그 가치와 효과를 가지는 브러시들이 작품들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무료 사용'을 강조한 대로 수많은 브러시들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 허가해 준 것도 특장점이다. 부록으로 많은 브러시들이 제공되어서 그것의 가치도 대단할 것 같다. 더욱이 제공되는 브러시들은 모두 특별한 허가를 받거나 할 필요 없이 사적으로도, 혹은 상업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다니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아마 더 진화한 기술 개발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만 가질 뿐이다.

이 책으로 그냥 흘려버리거나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었던 배경 브러시들에 더 큰 관심과 그 가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독자의 만화를 대하는 태도가 좀 더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브러시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특색있게 표현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가질 계획이다. 만화를 보더라도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펜과 붓으로 못 그린 그림을 컴퓨터로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갖게 됐다.

 


 

1. 인공물 브러시 : 길거리나 문, 벽, 가게 같은 인공물 블러시의 활용

2. 자연물 브러시 : 다양한 나무 표현, 배경이 될 수 있는 잡초, 꽃, 날씨와 판타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크리스털 수정

3. 소품 브러시 : 많이 사용되는 옷의 무늬, 끈, 지퍼 음식

4. 군중 브러시 : 뒷배경으로 사용되는 응원하거나, 손뼉 치거나, 구경꾼들

5. 효과 브러시 : 충격파, 속도 효과선, 강조 등 캐릭터 머리 위에 뜨는 각종 기호 등

 


 

부록으로 제공되는 브러시는 모두 별도의 허가 없이 사적 활동은 물론 상업 활동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자세한 사항은 CD에 수록된<위 사진> 텍스트 파일 참고). 또 전문 제작팀의 기술력에 현장에서 비롯된 발상력이 더해져 실제 일러스트/만화 원고 제작에 사용될 일이 많은 군중[Mob], 작품의 미세한 디테일을 좌우하는 소도구[Accessory] 등이 새롭게 마련되었다.

브러시가 없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생략했을 부분을, 같은 시간을 들여 훨씬 더 화려하게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브러시의 가장 큰 미덕이다. 목표로 하는 이상과 실제 작품-그리고 마감-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오늘도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모든 창작자분들에게 큰 응원이 될 듯하다.

 


 

저자 : 배경창고

 

㈜리프레드가 운영하고 있는 만화, 일러스트 배경 소재 전문 사이트. 만화 제작 환경에서 발생하는 「시간 부족」, 「인력 부족」, 「배경 작업 시간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콘셉트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배경 소재(데이터)를 다운로드와 CD-ROM의 형태로 제공한다. 주요 저서로는 『캐릭터 포즈 배경집』(하비재팬)이 있다.

 

역자 : 김재훈

 

한때 만화가가 꿈이었고, 판타지 소설 쓰기와 낙서가 유일한 취미인 일본어 번역가.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만화 작법서 번역에 뛰어들었다. 창작자들의 어두운 앞길을 밝혀줄 좋은 작법서 전문 번역가를 목표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옮긴 책으로 「디지털 배경 카탈로그 학교 편」, 「판타지 배경 그리는 법」, 「대담한 포즈 그리는 법」, 「프로의 작화로 배우는 만화 데생 마스터」, 「프로의 작화로 배우는 여자 캐릭터 작화 마스터」, 「CLIP STUDIO PAINT 매혹적인 빛의 표현법 : 보석ㆍ광물ㆍ금속에 광채를 더하는 테크닉」, 「인물을 빠르게 그리는 기본 남성 편」, 「코픽 마커로 그리는 기본」, 「ZBRUSH 피규어 제작 입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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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수행한담 - 본연 스님이 들려주는 삶과 정진의 길 미타행자 시리즈
본연 지음 / 담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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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행복한 공부, 진리를 향한 공부를 쉽고 친근한 언어로 전하는 생활 법문. 수행자 본연 스님의 ˝나를 세우는 공부는 결국 포기하게 되지만 나를 녹이는 공부는 나날이 행복해집니다˝란 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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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수행한담 - 본연 스님이 들려주는 삶과 정진의 길 미타행자 시리즈
본연 지음 / 담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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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에세이는 대부분 현대인으로서의 복잡한 삶에 지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회복하는 데 중점적으로 특화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산업사회, 민주화시대로 급격한 변화를 이루면서 사회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한 데서 생기는 소외감이 분노와 절망감 등으로 표출되는 사회 상황을 볼 때 그 추론은 적절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외부로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화됨으로써 우울증 등으로 나타날 때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해 사전 예방 차원에서 에세이 책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감정 치유에는 심리 치료 요법으로 에세이와 같은 다정다감한 문체의 글들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사회 상황과 맞물리며 우리 에세이는 급성장해 서점 판매부수에서 늘 1위를 오르내렸다.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에세이류가 더욱 분전한 것이 증명되기도 했다.

주, 월, 연 단위로 책 판매부수를 헤아리는 한 대형 서점이 지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서점 분류상 에세이 분야의 책이 단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그 전년, 그 전전년에도 에세이는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서점 측의 설명이다.

 


 

이 결과 발표를 하면서 "한 가지 특기할 상황은 자기계발, 의학, 심리학 등 타 분야의 책들도 전문 서적이 아닌 에세이 형식으로 출판돼 큰 판매부수를 올렸다"고 밝힌다. 분석심리학의 원조인 칼 구스타프 융의 저서나 심리학 이론서 등이 에세이 형식으로 출판돼 서점가를 휩쓸기도 했으며, 자기계발서 역시 두껍게 자신의 정서나 감정을 변화시켜 자기를 계발하는 것보다 심리적 접근법을 사용해 우선 독자를 안정시키고 계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위로와 격려'를 하는 식으로 책 쓰는 스타일의 변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외국의 번역책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번역돼 많은 판매부수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쉽게 이해되지 않은 점은 종교나 철학 분야의 책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는 좋은 효과를 올릴 것 같은데 의외로 숫자가 적다. 예술, 특히 음악과 미술 서적은 굉장한 약진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는 분 중 한 명인 본연 스님은 이 책 『미타행자의 수행한담』을 해가 바뀌자마자 펴냈다. 지난 한 해 꾸준히 준비해온 결과다. 저자는 선원과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수행하다 여법한 수행도량 하나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내려가 항파두리 근처에 무주선원을 세웠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법당에서 정진하고 마당에서 울력하며 수행자의 일상, 수행법, 어른 스님들의 말씀을 등을 카페에 꾸준히 업로드했고, 이는 여러 신자에게 큰 공감과 교훈을 주었다. 이 책은 그런 스님의 글 중에서 근래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흙먼지 날리는 땅을 홀로 가꿨던 일, 춥기만 했던 겨울을 지나 생명의 감응을 느끼고, 새벽에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홀로 정진하되 함께 공덕을 나누는 이야기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지친 마음을 감싸주고 앞을 향할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준다.

독자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우선 문외한인 불교의 가르침을 풀어써 놓아 지식욕을 자극하고, 읽으면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세이 식으로 스님들의 수행, 생활, 포교 등의 활동도 알 수 있어 따라 실천할 수 있는 행동 목록을 만들기에도 좋다. 이 목록은 수시로 체크하며 익혀 실 생활에서 실천하고 반영해본다. 물론 실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의 목록이다.

 


 

『미타행자의 수행한담』은 제주도의 무주선원에서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과 다겁생에 걸쳐 행해가는 수행자의 노력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한 권이다. 어려운 경전을 그대로 인용하기보다는 옛 스님들의 일화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심지어 축구 선수의 인터뷰까지 주제로 삼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활 법문을 담고 있다. 독자처럼 초보자라 하더라도 수행과 정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스님이나 신부, 목사님들이 직접 종교에 몸 담고 수행하고 공부하고 명상을 통해 지혜를 갈구하는 현장에서 실천한 많은 일들에 대해 쓴 글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글에는 많은 종교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수행 방법, 공부 노력, 이타적 학문 연구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독자에게 삶의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역할을 독자에게 충실히 해줘서 두 손으로 받쳐들고 재독할 예정이다.

즉 이 책은 독자의 독서 성향에 따라 스님의 수행관, 나(我)를 녹이는 공부의 어려움과 보람을 담은 문장들, 재가불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격려해주는 메시지를 때로는 산문으로, 때로는 압축된 시로 표현하며 다양한 갈래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척박한 곳에서 살아보니 승복 입은 사문에게는 ‘스님’이란 호칭만도 대단한 선근이고 더 나아가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인연은 극락세계와 이어진 귀한 인연이며, 한자리에 모여서 염불하는 인연은 극락세계를 현현하는 회유한 인연이라 생각합니다.

- 「무주선원」 중에서

문경에 있는 도반의 절에서 작은 능소화를 얻어다 무주선원 이름이 새겨진 돌에 기대어 심었는데, 칠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작년에서야 제법 어우러졌습니다. 하나의 꽃나무도 자세 잡는 데 칠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데 우리가 중생의 때를 벗는 데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다만 쉼 없이 지어갈 뿐입니다.

- 「토굴살이」 중에서

마음 밖에서 얻는 행복은 그늘이 있지만 마음 안에서 얻는 행복은 그늘이 없습니다. 재물로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하려면 뒷감당이 안 되지만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금강심론』에 ‘마음의 빛은 삼천대천세계를 감싸도 그늘이 없다’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삼천대천세계를 장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삼매가 현현하지는 않아도 좌선을 하나 염불을 하나 환희심이 일어나기에 밖으로 안 돌고 도량 내에서 일과를 보내는 것입니다.

- 「나이가 들수록 조심히」 중에서

진정한 노후 대책은 ‘마음 비우기’입니다. 떠날 적에 이름이나 수행 이력은 거품일 뿐이고 마음을 제대로 비워야 사바세계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워 죽음의 공포 없이 옛날 어른 스님들처럼 “나 간다” 하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 「노후 대책」 중에서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망할 수밖에 없는 부질없는 망상, 번뇌를 털어내고 진정한 행복을 찾자는 것입니다. 사유와 수행을 통하여 부질없는

망상과 번뇌가 소멸한 자리는 자비심과 헌신으로 채워집니다. 염불을 하든 진언을 하든 화두를 하든 수행의 살림살이가 증명되는 것이 자비심과

헌신입니다.

- 「자비심과 헌신」 중에서

 


 

이 책에서 발췌된 글들은 독자의 독서 목록 한 편에 따로 필사되고, 그 부분만 재독, 삼독을 거치며 명상과 사색을 계속하며 독자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어쩌면 그 자체가 삶일지도 모른다.

 

저자 : 본연

 

본연(本然) 스님은 전남 곡성 태안사로 출가했을 때 평생을 하루같이 용맹정진하다 열반하신 청화 큰스님(1923~2003)께서 스승과 제자 간의 인연을 맺으면서 내려주신 법명이고, 미타행자(彌陀行者)는 염불 수행하는 사제를 격려하기 위해 사형 스님이 지어준 별호다. 승보종찰 송광사 강원에서 사 년간 경전 공부하고 비구계를 받은 뒤 기도처와 선원을 오가며 정진하던 중, 큰스님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2003년 서귀포 성산 자성원 주지를 자청하여 사 년간 기도하며 차 밭과 텃밭을 가꾸고 살면서 제주도와 인연이 시작되었다. 자성원 주지 소임을 놓은 뒤 다시 선원과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수행하였으며, 2012년부터는 제주시 항파두리 근처 자그마한 수행도량 무주선원(無住禪苑)을 열어 수행과 울력으로 극락도량을 일구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타행자의 편지』, 『미타행자의 염불수행 이야기』, 『미타행자의 수행한담』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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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해 - 연꽃 핀 바다처럼 향기로웠다
도정 지음 / 담앤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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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고독하면서도 독립된 개체로서의 고유한 우주지만, 상호 연결된, 소통해야만 존재하는 연기적 생명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생명체에는 향기가 존재한다. 향기를 머금은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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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해 - 연꽃 핀 바다처럼 향기로웠다
도정 지음 / 담앤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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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향수해』는 아름다운 불교의 경전 한 구절과 사람 사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독자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우선 문외한인 불교의 가르침을 풀어써 놓아 지식욕을 자극하고, 읽으면 평온한 마음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세이 식으로 스님들의 수행, 생활, 포교 등의 활동도 알 수 있어 따라 실천할 수 있는 행동 목록을 만들기에도 좋다. 이 목록은 수시로 체크하며 익혀 실 생활에서 실천하고 반영해본다. 물론 실생활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의 목록이다.

“우리 삶은 소중한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이 문구는 널리 알려진 말이긴 하지만 꼭 머릿속에 기억해둬야 한다. 순간순간의 연속이 결국 우리의 삶이며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 집중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일 터다.

저자는 전작 『사랑하는 벗에게』를 마무리할 때쯤, 막 교계 신문에서 『향수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글이라면 차고 넘치게 써 봤지만, 경전에 빗댄 삶을 녹여내려니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고 술회한다. 수행자의 삶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그 고민은 책에서 ‘기쁨’ ‘위로’ ‘사랑’ ‘외로움’ ‘신심’으로 각각 나눴다. 수행자 스님의 고민과 책 쓰기의 열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향수해(香水海)는 화엄경에 나오는 ‘연꽃 피는 향기로운 바다’를 뜻하는 말이다. 즉 연꽃은 우주를 하나의 꽃으로 상징화시킨 것이며 모든 존재가 가진 각자의 고유한 세상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연꽃의 향기를 머금은 그대, 그대는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도정 스님은 시를 짓는 시인이며 부처님 말씀에 기대어 사는 수행자이기도 하다. 등단으로 여러 권 시집을 내기도 했고, 산문집과 경전 해설서를 내기도 했다. 글로써 마음을 내비치는 스님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는 도정 스님은 경전 한 구절과 삶 속 이야기로 책을 엮었다.

『향수해』. 제목으로나 불교 경전 구절이 드러나는 내용이나 독자에게 불교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듯하지만, 강요보다는 자연스러운 믿음을 갖기를 바라며, 그럴듯하게 꾸민 말 대신 진리로서 타인은 더 이해하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부처님께 복을 빌지언정 부처님께 복을 빌어주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한 할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 손녀를 데리고 새해에 가까운 절을 찾아 부처님을 참배하였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올 한 해 모두 건강하기를 발원하고 자식이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원만하게 이뤄지기를 기도하였다. 그런데 어린 손녀는 할머니를 따라 “부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각 단에 돌아가며 절을 하였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무릇 선법을 행함에는 반드시 선한 과보가 있나니

맑고 깨끗한 행을 하면 반드시 깨끗한 과보가 있으리라

夫行善法必有善報

行淸白行必有白報

〈불설장아함경〉이란 경전 한 귀절을 빼내 슬며시 독자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전달한다.

 


 

저자의 에피소드와 경전 한 귀절과의 연계 솜씨는 아마 경전 공부를 많이 하고 뛰어난 관찰력의 합(合)에서 비롯된 듯하다. 저자는 다음 이야기를 잇는다. "절에 와서 늘 남 이야기를 하는 보살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보살님은 남의 칭찬만 하십니다. 누구는 봉사를 잘하고 누구는 함께 있으면 즐겁고 사람마다 가진 장점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끊임없이 칭찬을 이어나갑니다.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럿이 모이기만 하면 자리에 없는 다른 이를 입에 올리게 되는 불편한 대화의 장이었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니 왜 나는 먼저 나서서 남을 칭찬하지 못하고 남을 헐뜯는 그들을 비난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나 후회가 밀려오네요. 결국은 나도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만 하는 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스스로의 부족함을 성찰하며 슬며시 경전 한 귀절을 다시 내놓는다.

菩薩與他大樂不必歡喜

見他與人少樂心大歡喜

보살은 타인과 더불어 크게 기뻐하지만 반드시 기뻐하는 건 아닙니다.

타인이 남에게 적은 즐거움이라도 주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크게 기쁩니다.

〈대장부론〉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행동에서 기쁨과 위로, 신심을 느끼고 깨닫는다고 한다. 혹은 “어떤 사회학자는 인간의 이기심을 생존의 본능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지만, 이런 말들은 가뜩이나 팍팍한 우리네 삶을 더욱더 슬프게 만든다. 짓밟아야 높아지고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성공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무자비한 행태인가. 오히려 ‘모든 사람이 내 자식 같다’는 부처님 말씀이 특별할 것 없는 세상이면 참 좋겠다.” 저자는 이미 무한 경쟁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도 일침을 가한다. 이런 시스템의 사회에서는 '이겨야 내 것을 챙길 수 있다'는 욕망과 결합되면 '무자비(無慈悲)'한 세상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경계하는 것이다.

 


 

허무감이나 부질없음을 뛰어넘어 일상이 순간이 소중한, 그저 특별할 거 없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저자 도정 스님은 자신과 타인은 연꽃 같은 존재로 칭한다. 연꽃은 고독하면서도 독립된 개체로서의 고유한 우주지만, 상호 연결된, 소통해야만 존재하는 연기적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체에는 향기가 존재한다. 향기를 머금은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1장에서 5장까지 갈래는 다섯 개지만 불자로서, 아니면 일반 독자로서 모두가 생각해봄 직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기쁨

괴로움을 덜고 달래다, 위로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외로움

믿고 받드는 마음, 신심

 


 

「쓴맛의 소중함」

나이 들고 빵 몇 조각 접시에 담아 놓고서야 쓴맛보다 단맛 무서운 걸 새로 배우노라니 우습다. 쓴맛을 가만히 음미하면 입안에 단맛이 고이기도 하지만 단맛은 도무지 음미가 안 되고 금세 질려버리니 이어 먹기 오히려 고역이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쓴맛들은 모두 고마운 참맛이기도 하였다. 실패했던 경험은 위로의 할 말이 되었고, 사람에 대한 상처는 타인을 이해하는 자양분이 되었으며, 가난은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의 밑거름이었다. 어눌한 말 품새는 언어를 신중히 쓰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무엇이 여섯 가지 맛인가? 괴로움은 신맛, 무상함은 짠맛, 내가 없음은 쓴맛이며, 즐거움은 단맛, 나라고 함은 매운맛, 항상함은 싱거운맛이다.

- 〈대반열반경〉 

 


 

우주 만물이 나를 비추고 있으니 언제나 올곧은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최근 예쁜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무참히 짓밟고 부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에 얼마나 병이 들었으면 저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러한 불행도 사라질 수 있을까요.

 

저자 : 도정

 

하동 쌍계사에서 원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양산 통도사에서 고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시 「뜨겁고 싶었네」로 등단, 시집 『정녕, 꿈이기에 사랑을 다 하였습니다』와 『누워서 피는 꽃』을 펴냈다. 산문집 『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사랑하는 벗에게』와 경전 번역 해설서 『보리행경』 『연기경』도 펴냈다. 현재 불교신문」에 ‘시인 도정 스님의 향수해’를 연재 중이며, 월간 「해인」 편집장을 맡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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