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김민현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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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시간은 단 7일, 나를 토막 살인한 범인을 찾아야 떠날 수 있다.”

이런 카피 문장이라면 소설 애독자들에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죽었는데 범인을 찾는다고?

이 책 『경계인』은 카카오페이지 웹툰화가 확정되며 큰 기대감을 불러 모은 '저승' 미스터리 판타지이다. 독자들이 잘 아는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경계인'임을 알 수 있다. 이승과 저승의 세계라면 70년대 흑백 TV로 방영돼 인기를 모았던 '전설의 고향'부터 최근 영화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신과 함께 : 인과 연'이 생각난다. '전설의 고향'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세상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하고 교훈적인 얘기를 담아낼 수 있어 옛날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도 신비롭고 무섭고, 있을 것 같은 세상 '저승'에 대한 얘기는 젊은 층에게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한 재확인시켜 주었다.

 


 

독자는 이를 '상상력의 과학화'로 이름 짓고 판타지 미스터리 무대의 맨 앞에 나선 이런 미스터리 스릴러를 즐길 생각이다. 그것은 '삶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죽음의 과거'도 인문학적 해석에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연령 계층에 관계없이 흥미롭고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카카오페이지와 CJ ENM이 주최한 ‘제3회 추미스 소설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경계인』은 어느 날 갑자기 토막 살해된 회사원이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죽음의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관한 디테일한 묘사, 촘촘하게 설계된 복선과 반전, 매력적인 캐릭터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저승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결합으로 소설적 재미는 물론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생각하게 한다. ‘나’를 토막 살인한 범인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단 7일. 과연 주인공 주현은 자신이 죽임을 당한 이유를 찾고 악귀로 남는 대신 저승으로 무사히 떠날 수 있을까.

 


 

눈앞에 보이는 토막 살해된 시체가 다름 아닌 '나'라면 어떤 기분일까? 『경계인』은 주인공 주현이 토막 살해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됐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주현. 분명 퇴근 후에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가 빨간불에 걸려 멈춰 섰는데, 눈을 떠보니 토막 난 채 죽어 있다. 대체 누가, 왜 주현을 죽인 것일까.

『경계인』은 주인공이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 저승 미스터리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주현은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기 전까지는 절대 저승에 가지 않겠다며 저승사자 우진과의 저승 동행을 거부한다. 하지만 살해당한 영혼이 저승에 가지 않으면 악귀로 변해 이승의 질서를 흔들어놓을 터. 베테랑 저승사자 우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현의 요구를 들어준다. 그렇게 주어진 단 7일간의 시간.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경계인의 세계에서 주현의 숨 막히는 범인 찾기가 시작된다.

 


 

‘나’를 죽인 범인을 찾는다는 흥미로운 설정과 죽음 이후의 세계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활용한 이 작품은 소설적 재미를 주는 것은 물론 삶과 죽음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그려낸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인간의 마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뒤틀린 인간의 욕망 등 경계인의 눈으로 바라본 객관화된 인간 세상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카카오페이지 연재 당시 속도감과 몰입감에,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독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경계인』. 과연 주현은 자신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고 저승으로 떠날 수 있을지, 경계인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저승 사람도 아니고 이승 사람도 아닌 그 중간쯤에 있는 자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우리는 경계인이라고 부르지.”

- 본문 중에서

 


 

'추미스'란 단어도 처음 들었다. 약자를 하두 많이 써서 약자인 줄은 알았으나 추리 미스테리 스릴러의 줄임말이라 한다. 뜻이 통하면 되지만 너무 약자를 쓰다보면 자기소개서나 시험 같은 데에서 약자를 남발해 낭패를 보는 일이 없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자들을 일컫는 경계인. 『경계인』에서 묘사되는 경계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저승사자들의 사무실에서는 여느 회사처럼 7시가 넘어도 말단 저승사자들이 부장 저승사자의 눈치를 보며 퇴근하지 못한다. 이곳에서는 마치 출입국사무소처럼 망자들을 심사해서 G2, G4 등 이승에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이 다른 비자를 발급한다. 망자들의 생전 자산은 노잣돈으로 계산되어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이승에서 여행 경비로 쓰인다. 망자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북도 있다. 저승사자들의 사무실에서는 ‘심맥’이라는 커피믹스를 마시고, 망자들의 지하철에는 ‘마음의 힘이 되는 보교생명’ 광고판이 걸려 있다. 이렇듯 현실세계를 비튼 경계인들의 세계 묘사는 위트가 넘친다.

반면 경계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들의 세상은 질투와 배신, 거짓과 탐욕이 난무한다.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향한 발톱을 세우고, 사랑이라는 허상 아래 뒤틀린 욕망의 잣대를 들이댄다. 자신은 결백하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무심코 뱉은 말로 상대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추리 미스터리 『경계인』.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죽음 이후의 이야기로 과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잘 생각해보세요. 저승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벌을 내리지 않는 곳이 아니에요. 지은 죄를 정확히 찾아내 그에 맞는 벌을 내리죠. 하지만 저는 저승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감형 방법을 찾아드릴게요.”

주현은 성민을 바라보았다. 손은 떨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

평정을 가장하며 말하는 주현을 성민은 다시 한번 찔러보았다.

“윤리적으로요? 아니면 심정적으로요?”

“둘 다입니다!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왔어요!”(P. 99)

 

그러나 피 묻은 티셔츠가 발견된 이상 이야기가 달라진다. 헤어진 뒤에도 휴대폰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주현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다고는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휴대폰이나 SNS상에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집착했고, 분노한 주현이 피해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둘러 주현을 불러 조사를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마침 오늘 점심시간에 윤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박주현이라는 사람의 실종 사건이 접수되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었지만 사건 자료를 확인해보니 아니었다. 틀림없는 그 주현이었다.(P. 140)

 


 

“몽마예요.”

“몽마가 뭐죠?”

“사람의 꿈속에 나타나는 귀신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승은 이승의 일에 관여하지 못한다. 여러모로 불편했던지, 저승의 일부 연구자들이 경계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승에 관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자체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오랜 연구 끝에 찾아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살아 있는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는 것이었다.(P. 174)

 

저자 : 김민현

 

렌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경계인』은 CJ ENM과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제3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살해당한 회사원이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흡혈귀와 함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판타지다. 촘촘하게 설계된 복선과 반전, 매력적인 세계관의 묘사와 흡입력 있는 전개로 큰 기대를 불러 모으며 출간 전 웹툰화가 확정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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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 - 금을 삼키다
장다혜 지음 / 북레시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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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 거상(巨商)의 집안이 알지 못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격랑 속으로 휘말리며 풍비박산된다. 이후 벌어지는 이복남매와 야릇한 감정과 거상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사람들의 각종 추한 면모들이 드러나고 등장인물의 뚜렷한 성격과 스토리의 상황이 잘 맞물리며 멋진 시대극을 창출해낸다. 『탄금』은 소설로서 장다혜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빚어진 도자기를 하나 한국문학사에 올려놓았다. 장르소설이며 미스터리 스릴러로 분류되는 이 소설은 가장 작품성을 높이는 스토리 구성과 반전으로 극적 효과를 높임으로써 작가의 문재(文才)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시대극의 재미는, 도처에 산재하는 갖가지 제약과 한계가 더 많은 갈등을 조장하고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탄금』 역시 큰 얼개가 되는 홍랑의 실종과 귀환, 그를 둘러싼 믿음과 의심 사이에 데릴사위, 씨받이, 양자, 무당, 추노꾼, 싸울아비, 피장이 등 조선 시대만의 독특하고 간간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을 이어간다. 저자는 24절기를 빌려 이렇듯 복잡한 사건과 감정의 흐름을 날로 삼고 씨로 삼아 탄탄히 직조된 서사구조를 만들어 지금껏 보지 못한 놀라운 작품을 완성해낸다.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완성도 높은 이런 시대극이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호텔 관련 학교를 다녔고 두 나라에서 호텔리어로 일했던 장다혜 작가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무척 즐겼고 20대 초반에는 작사가로(이소은의 「사랑한다」, 박혜경의 「A Lover's Concerto」, 이수영의 「눈물이 나요」등), 30대엔 에세이스트로 활동하였다. 40대가 되어서야 첫 소설 『탄금』을 쓰게 되었다. 스스로를 밀어붙이지 않고,'내킬 때만' 글을 썼다는 작가는 써놓은 글을 몇 개월 지난 뒤에 객관적 시선으로 다시 보면서 주요 인물들의 감정선을 새롭게 다듬고 문장들을 수정했다고 밝힌다. 그런 작업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한국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역사 서스펜스 로맨스

『탄금』이 5년 만에 드디어 완성되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다 묘사와 스토리가 탁월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게 오랜 시간 긴 침묵의 공부와 사색이 있었으리라.

독자가 즐거이 누릴 시대극의 묘미가 산재해 있는 이 소설은 언어 선택 하나하나에 깃든 고심과 정성의 흔적이 엿보인다. 심열국이 업무를 보는 집무재를 비롯하여 응달 귀퉁이라는 뜻을 지닌 재이의 처소 요암재, 동궁같이 밝은 정동향에 위치한 홍랑의 처소 광명재 그리고 무진의 처소인, 말 그대로 이름 없는 무명재와 더불어 인물의 이름들 또한 의미심장하다. 하잘것없는 뜻을 지닌 재이의 이름과 밝은 무지개를 뜻하는 홍랑의 이름은 과연 이들이 남매라고는 하나 태생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양자로 들인 무진 또한 없을 무無, 다할 진盡이라는 뜻의 이름자를 지님으로써 평탄지 않은 앞날을 예고한다.

 


 

『탄금』은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로, 시대극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사극에서 맛볼 수 있는 대화체의 묘미와 탄탄한 줄거리 전개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한글 어휘와 다채로운 고어들, 구수한 방언들로 일구어낸 정교한 문장들은 우리의 글맛을 곱씹어 새롭게 느끼게 하며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빠져드는 독서의 즐거움을 전한다.

『탄금』에는 새 시대를 여는 임금도, 전장에 선 명장도, 국운을 틀어 쥔 궁궐여인들도 없다. 절망의 힘으로 또다시 절망과 싸워야 하는 시대의 부스러기들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작가는 풍파에 휩쓸린 인간의 몰락과 복수를 예술품 거래 상단이라는, 참신한 배경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풀어내며 사라져가는 토속신앙을 두루 재현하여 조선의 숨겨진 단면을 펼쳐 보인다.

"틈틈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하염없는 기다림, 어긋난 약속, 전달되지 못한 서신과 같은 애틋한 낭만들을, 또 지엄한 법도 아래 오가는 눈빛과 꼭꼭 여민 의복 사이로 드러난 살결처럼 금지된 긴장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제일 공을 들인 부분은 미스터리를 끌고 나가는 홍랑이 단편적 인물이 되지 않도록, 식상한 복수를 꿈꾸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수정하는 일이었습니다. (……) 그렇게 여러 이름을 지닌 미스터리한 인물, 홍랑이 만들어졌습니다. 시대극이다 보니 캐릭터를 구축함에 있어 가장 고심했던 건 역시 여성인 재이였으나 가장 정이 갔던 건 무진이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의 큰 얼개는 당시 시대상으로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정한 데서 비교적 합리적 설득력을 독자들로부터 확보하고 있다. 고가의 미술품 거래로 돈왕이라 불리게 된 조선의 거상 심열국. 어느 날 그의 외동아들 홍랑(8세)이 실종된다. 심열국과 민씨 부인은 수많은 재물과 사람을 풀어 아들을 찾고 시체에까지 현상금을 붙이지만 실마리도 찾지 못한다. 씨받이가 낳은 딸 재이(9세)는 홍랑의 수호부를 빼앗았다는 죗값으로 별채에 감금당하고, 양반 핏줄인 무진(11세)이 양자로 들어온다. 가문의 흉사로 인해 하루아침에 남매가 된 두 사람은 서슬 퍼런 상단에서 오로지 서로만을 의지한 채 자라난다. 십 년 후, 추노꾼 독개는 홍랑을 찾아 데려온다. 곧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지만 떠들썩한 상단에서 재이와 무진만은 홍랑을 사기꾼이라 확신하고 그의 면전에 멸시의 말들을 쏟아낸다.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재이는 홍랑의 진심에 혼란스러워하고 끝내 친아우로 인정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의 매력에 속절없이 빠져든다. 아우의 귀환에 대한 감격도 잠시, 재이는 마땅히 끝내야 할 연모를 접지 못해 애달파한다. 무진은 홍랑에게 제 자리를 박탈당하고 설상가상 재이의 마음마저 빼앗기자 홍랑의 뒤를 캐려고 혈안이 된다. 진정 홍랑의 정체는 무엇인가? 각자 믿고 싶은 것과 믿고 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교묘한 외줄타기가 계속되고, 결국 시대의 금기와 모순, 그 추한 민낯이 드러나는 대반전에 이르러 모든 상황은 단박에 전복된다. 과연 금을 삼킨 자는 누구인가?

 


 

풀물이 잔뜩 밴 재이의 광목 치마는 닳고 닳아 해거름에 다리속곳이 다 비쳤다. 트실트실한 볼은 군불 한 자락 못 쬐고 동절기를 난 듯 벌겠고, 가시랭이가 붙은 산발에선 풋내가 풀풀 풍겼다. 잔망스러운 뒤통수에 깡똥하게 달린 홍댕기는 차라리 거무튀튀한 팥죽색이었다. 얇은 은박이 죄 벗겨져 얼룩덜룩 자국만 남은 것이, 댕기가 주인보다 나이를 더 먹은 듯도 하였다. 남매가 한 핏줄이 분명한데도 곡해를 사는 결정적 이유는 다름 아닌 피부색이었다. 천방지축 깨춤을 춰대며 온데를 쑤시고 다니는 누이는 잘 여문 보리알처럼 갈색인 반면, 방 안에 들어앉아 서책만 뒤적이는 아우는 갓 탈곡한 쌀알마냥 희디희었다. 그 대비는 단순한 성정 차이가 아니었다. 온종일 밖으로만 나돌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애꾸라기 계집과, 불면 날아갈까 쥐면 터질까 시시각각 과보호를 받은 옥동의 삶의 차이였다. 한 해 먼저 태어났다곤 하나 이지러질 재?, 떠날 이(離)라는 하찮은 이름의 계집은 실상 무지개 홍(虹)에 밝을 랑(朗) 자를 쓰는 금자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p. 13~14)

남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홍랑과 재이, 그리고 주변인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사그라져버린 무진. 상단주인 심열국과 민씨 부인, 심열국의 수하 방지련과 민씨 부인의 심복 육손. 무진의 수원인 부영과 홍랑의 벙어리 의제 인회. 제 성정에 눈먼 민씨 부인을 쥐락펴락하는 귀곡자와 송월 객주의 존재. 그리고 재이를 가장 가까이서 수발하는 을분 어멈과 을분에 이르기까지 실타래같이 얽힌 이야기에 어느 누구 하나 관여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그만큼 사건의 얼개는 정교하고 탄탄하다. 또한 모두가 반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 할 만큼 이야기는 풍성하고 다채롭다. 특히나 결말로 치달을수록 전혀 예상치 못한 비밀스러운 사건들이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러한 반전의 요소들은 이 소설이 선사하는 여러 묘미 중 하나일 뿐이다. 각 인물의 성정이 드러나는 묘사 하나하나는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아홉 살 누이에게 홍동백을 따다 주겠다고 했던 그날 밤 이후로 사라져버린 아우가 10년 후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 채 살벌한 검계가 되어 돌아왔다. 진짜 아우가 아니라고 수십 번을 부정해보지만 서서히 이끌리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하고 재이는 누이로서, 또 여인으로서 갈망에 젖어 홍랑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애와 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재이. 어느 한 군데 정 붙일 수 없었던 무진 또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누이를 향한 연정을 끊어내지 못해 괴로워한다. 이와 같은 설레고 애달픈 감정선을 타고 상단의 비리가 얽힌 비참하고 잔인한 이야기가 맞물린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은 더 큰 죄와 악으로 치닫고 마침내 업을 지닌 자들은 더없이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닥뜨린다. 아름다운 서정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영상미 가득한 소설이다. 실제 표지부터 속지까지 들어간 그림은 로맨스 소설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스릴러 분위기도 보여준 잘 그린 그림으로 보인다.

조금의 방심도 용납지 않는 서스펜스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대중소설인 만큼 흥미로움의 요소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내재한 울림이 묵직하게 전해진다. 신분제도의 부조리나 탐관오리의 횡포는 물론 피가 튀는 칼부림 장면에, 이루어질 수 없기에 더 안타깝고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포개어짐으로써 소설의 분위기는 상승한다. 얽히고설킨 인물들이 선사하는 놀라운 반전과 속도감 있는 전개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의 결말에 이르면 독자는 (잔인한 고대 중국의 형벌인, ‘금을 삼키다’라는 뜻의) ‘탄금’을 제목으로 택한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가벼이 떨쳐버리기 어려운 서글픈 서정과 처절하고 애절한 운명을 이 소설은, 독자에게 감당하게 한다.

 


 

"민씨 부인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의붓딸년을 경멸스러운 눈씨로 을러댔다. 아직도 씨받이 하씨 년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 너절한 것 하나 꼬꾸라진 일로 부군께서 삼 년을 심란해하셨다. 이름 석 자 아는 것이 전부인, 예쁘긴커녕 답답한 이마에 작은 이목구비를 한, 실로 볼품없는 계집이었다. 잡스러운 딸년도 저승꽃으로 만들면 속이 다 시원할 텐데 손을 대면 부정 탄다는 귀곡자의 말에 민씨 부인은 재이가 제 풀이 꺾여 고사하길 부추기는 수밖에 없었다."(p. 110)

"그 새벽, 모닥불을 지피던 홍랑은 마침내 강물로 뛰어들어 동이 트도록 찬 물살을 거스르고 또 거슬렀다. 그때마냥 끓어오르는 흉심을 그는 모질게 다잡았다. 차마 맘껏 탐할 수 없었다. 연약하고 야들한 꽃잎은 위험천만한 독화였다. 팽그르르 돌며 저무는 낙화처럼 애련을 가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치명적 향취에 홍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여기까지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진정 사달이 날 것이었다. 마지막 숨을 부여한 그가 독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자근자근 여인을 떼어내었다."(p. 314)

 

저자 : 장다혜

 

1980년생. 20대 초반에 작사가로 상업적 글쓰기를 시작, 30대엔 에세이스트로 활동하였고 40대가 되면서 첫 소설 『탄금』을 썼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쓰는 글의 호흡이 점점 길어졌으나 소설은 말 그대로 아직 작은 이야기인지라, 언젠가는 대설大說을 쓰고픈 욕심이 있다. 여운과 벅참의 크기가 남다른 글을 쓰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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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배워야 합니다 -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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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겪고 있는 우리에겐 행복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간절하다. 평범한 일상의 우울을 떨쳐주고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략) 이 책은 세로토닌 이론보다도 특별히 테라피를 중심으로 썼다.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들이 많이 하는 호소를 듣고 내가 권하는 세로토닌적 처방전과 세로토닌 워킹, 세로토닌 다이어트도 함께 실었다. ‘평범한 일상을 바꾸는 마법의 세로토닌 테라피’ 라는 부제목 아래 쓰인 책이라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 책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의 저자 이시형은 '세로토닌 박사'로 일컬어질 만큼 세레토닌에 천착한다. 행복의 실체는 세로토닌이다. 세레토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책을 읽어나가면 훨씬 이해도 쉽고 경우에 따라선 동기부여도 될 터이다. 세레토닌의 기능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자연의 리듬과 체내 리듬을 조절한다

- 뇌내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을 한다

- 몸을 아이돌링 상태로!

- 뇌를 냉철하게 각성시킨다

- 자율신경에도 영향

- 스트레스에 강한 몸으로 만든다

- 항중력근에 작용한다

- 심신을 젊게 한다

- 아픈 통각을 경감시켜 준다

- 조절력

- 면역력 강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호되게 겪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그저 편안하고 행복해지고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행복’을 ‘공부’해야 한다. 행복이 솟아나는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이뤄질까? 저자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웃에 있는 상담심리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우울증이니까 정신과 의사를 찾아 항우울증 치료제 처방을 받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우울증 같지는 않습니다. 우울증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는데, 내 마음과 정신 상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는 게 재미가 없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고 매일의 연속입니다. 정서적으로 메말라버려 달달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 세로토닌 처방전 : 작은 일에도 감동하세요.

감동은 웃음보다 6배나 강한 힐링 효과가 있습니다. 감동하는 순간 뇌에는 세로토닌이 넘쳐납니다. 감동은 인간만이 갖는 고급 감정이며 전신, 전뇌의 반응이지만 특히 인간 최고의 사령부 전두엽에 가장 강하게 반응합니다. 쉽게 감동하는 사람은 그만큼 대뇌의 유연성과 감수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감동에는 잔잔한 감동과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감동할 때 어떤 느낌이냐고 물으면 아주 복잡합니다. 왜냐면 감동은 대뇌변연계와 신피질의 상호작용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정서적 측면, 인지적 측면의 혼합으로 감동이 생겨납니다. 감동은 사전에서 ‘느껴서 마음이 움직인다’로 풀이되는데, 영어에선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Touched(느낌) & Moved(동, 움직이다)로 표현됩니다.

잔잔한 감동은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침 여명, 저녁노을이 얼마나 화려한가요. 감동 없는 삶은 인생이 아니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감동은 우리에게 삶의 환희, 사는 맛, 멋, 보람을 안겨줍니다. 벅찬 감동은 사람을 바꾸게 하는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잔잔한 감동에는 세로토닌이 주로 분비되지만, 벅찬 감동에는 긍정감정이 더 격해져서 세로토닌뿐만 아니라 도파민, 엔도르핀 등도 분비됩니다. (p. 19~21)

 


 

최근 발달한 뇌 과학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마음이 뇌에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마음은 대뇌변연계와 대뇌의 전두전야에 있다.

마음의 3요소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의 분비량에 따라 우리 마음이 결정된다. 세로토닌은 마음, 머리,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뇌 속에 이러한 신경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음의 기본은 감정이다. 괴롭다, 즐겁다, 아프다… 우리는 매일 그런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살고 있다. 뉴노멀 시대, 우리는 마음과 몸을 어떻게 지키면서 살아내야 할까?

저자의 얘기를 들어본다. 세로토닌 기능에서 제일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 조절력이다. 노르아드레날린의 화난 공격성을 조절하는 것도 세로토닌이고 도파민, 엔도르핀 등으로 너무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혀 평상심을 유지시켜준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평상심을 유지할 때 공부도 잘된다. 세로토닌 공부 호르몬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잘 씹어먹으면 뇌간의 세로토닌을 직접 자극하여 식욕이 조절된다. 비만한 사람은 예외 없이 밥 먹는 속도가 빠르다. 다이어트 제1조가 잘

씹어 천천히 먹으라는 것이다. 수면조절, 강박성을 조절하여 정신건강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가끔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형 사건들, 보복 운전, 묻지 마 살인, 홧김 방화사건 등은 모두가 세로토닌 부족으로 조절력이 발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세로토닌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p. 109)

 


 

책에 따르면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우리 뇌 속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다. 뇌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균형과 조절 역할을 함으로써 평상심을 유지하여 편안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물질이다.

인간의 뇌에 있는 약 150억 개의 신경세포 중, 세로토닌 신경은 불과 수만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로토닌 신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평온을 가져다주는 걸까? 세로토닌은 대뇌 신피질의 활동을 적절하게 억제함으로써 걱정거리와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자율신경의 조정 균형에도 큰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 경감에 큰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노르아드레날린의 공격성, 도파민과 엔도르핀 등으로 흥분한 상태를 가라앉혀 평상심을 유지시켜 주는 것도 세로토닌이다.

이처럼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에서는 세로토닌과 행복의 연관관계를 뇌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행복이 ‘운’이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세로토닌을 공부하라. 그러면 행복이 따라올 것이다. 걷기 위해선 일상의 공간을 떠나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뇌 속에 새로운 회로가 생긴다. 일단 하는 일을 접고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들면서 스트레스가 가신다. 이게 기분 전환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침침한 방에서 나오면 밝은 태양 빛이 직접 망막을 자극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킨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웅크린 자세가 걸을 때는 반듯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거기다 바람과 하늘을 느끼면 감정 뇌인 대뇌변연계의 편도체가 자극되어 쾌적 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활력이 넘친다. (p. 187)

 


 

배고픔과 뭔가를 먹고 싶은 식욕은 아주 다르다. 배고픈 걸 못 참아 다이어트를 그만두었다는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즉,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은 배고픈 굶주림이 아닌 먹고 싶어 하는 식욕 때문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보면 식욕이 자극된다. 이것이 문제다. 먹고 싶은 식욕을 못 견뎌 실패한다.

배고파서 먹느냐 식욕 때문에 먹느냐를 구분해야 한다. 식욕 신호가 오면 배고픔보다 먹고 싶은 것을 못 참아 먹는다. 이것을 억지로 참으려니 엄청난 의지의 힘이 필요하다. 애를 쓰다가 결국 의지가 약해져 먹게 된다. 다이어트 실패의 원인은 먹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하는 의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로토닌 파워 다이어트는 의지의 힘이 아니라 뇌의 힘으로 식욕을 조절한다. 세로토닌이 저절로 식욕을 조절해준다. (p. 146)

우리가 보통 피곤하다고 말할 때는 대체로 몸이 피곤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땐 휴식을 취하거나 하룻밤 푹 자고 나면 피로 회복이 된다. 하지만 뇌 피로에는 휴식이 오히려 더 피로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 쉬지 말고 가벼운 일을 해야 피로 회복이 빠르다. 단 머리를 너무 쓰는 일 말고 정원 손질, 청소, 정리 등 가벼운 일이 좋다. 하고 나면 깔끔하고 기분이 좋다. 특히 요즘은 만성 피로가 오래가면 면역계 약화로 코로나19나 독감에 걸리기 쉽다. (p. 226)

 


 

저자에 따르면 뇌 과학에서 본 인간 유형은 세로토닌형 인간, 노르아드레날린형 인간, 도파민형 인간으로 나뉜다. 이 책에는 세로토닌형 인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우리가 왜 세로토닌형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세로토닌형 인간은 한마디로 세로토닌이 언제나 뇌에 넘치는 사람이다. 겉보기엔 부드러운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불타는 열정과 힘을 소유한 인간, 소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적극적인 인간, 상황에 따라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균형 잡인 삶의 전형이다. 세로토닌형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이야말로 21세기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세로토닌형 인간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행복의 나라, 이상향이 된다.

이는 평범한 이들에게 마치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완벽한 인간상처럼 보일 것이다. 또는 비현실적이도록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로토닌의 중요성과 세로토닌 신경을 강화하는 방법만 안다면 어렵지 않다. 당신도 세로토닌형 인간이 될 수 있다. 『행복도 배워야 합니다』를 읽는 동안 독자들은 단순한 지식 쌓기용 독서가 아닌, 세로토닌형 인간을 향한 첫걸음을 떼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꼽는다.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삶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생각 때문으로 풀이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매 순간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감정에는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짜증나고 화가날 때도 있고, 슬프고 속상할 때도 있다. 그런 순간들을 스스로 잘 극복하고 이겨내서 다시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이 책의 저자는 주장한다. 독자로서는 특히 인간에겐 '감정 뇌'가 있어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을 관장한다는 것을 안 것은 굉장한 수확이다.

 

저자 : 이시형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그리고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박사후과정(P.D.F)을 밟았으며, 이스턴주립병원 청소년과장, 경북의대ㆍ서울의대(외래)ㆍ성균관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로 대한민국에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2007년 75세의 나이에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건립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생활습관과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수십 년간 연구, 저술, 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세로토닌하라!』 『배짱으로 삽시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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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수업 -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
신고은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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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독자들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거나 혹시 그 상처가 너무 커서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연애하다 이별해서, 친구와 가장 가깝게 지내다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로 마음의 상처가 된 사람도 많다. 꼭 사랑이나 우정을 배신해서가 아니라 가벼운, 지나가는 듯한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를 끊고 평생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는 사람도 많다. 전문가에 따르면 마음의 상처는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크게 입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상처의 원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채 '그런 것 같다'를 '그렇다'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할까?”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등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드는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층위는 생각보다 깊고 다양해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또 타인의 마음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딱 그만큼만 상대를 통해 보는 것뿐이다. 나와 타인을 안다는 섣부른 판단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상처를 주었음에도 그게 왜 상처가 되는지 모르고,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상처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등 우리는 관계에서 받는 상처에 점점 무뎌지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학문으로서의 심리학뿐만 아니라 삶에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심리학자로 정평이 나 있는 신고은 저자는 심리학만큼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좋은 수단은 없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행동을 상대방을 통해 발견하는 ‘투사’, 어렸을 적 양육자와의 불안정한 애착 형성으로 인해 성인이 된 후 관계에서 보이게 되는 ‘회피성 성향’, 일단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예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여러 가능성 중 결과와 일치하는 가능성 하나만 선택해 그것만이 자신의 예측이었던 것처럼 확신하는 경향을 뜻하는 ‘사후 확신 편향’ 등은 나도 몰랐던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심리학은 마음의 매뉴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발달하고, 어떤 행동에 대한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 잘 정리된 설명서와 같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았을 때 ‘아, 이게 내 잘못이 아니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게 되고, 상처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타인에게 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나를 치유하고 앞으로 받을 상처를 예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자두씨 설명'에 공감이 가고 논리적으로 보아도 설득력을 갖는다.

“나도 모르게 삼킨 자두씨가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있을지도 몰라.” 자두는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라고 한다. 특히 자두씨의 동그란 부분은 장을 잘 빠져나오지만 뾰족한 부분은 장을 긁으면서 내려와 출혈을 일으키고 상처를 낸다. 우리는 모두 이 자두를 통째로 삼킨 강아지처럼 살아간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누군가 주는 자두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꿀떡 삼키기도 하고 악의 없이 자두를 상대방에게 건네기도 한다는 말을 위해 저자가 꺼낸 '이론'이다.

하지만 자두씨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떨까? 누군가 주더라도 먹지 않을 것이고, 상대방에게 굳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도 똑같다. 자두씨는 ‘나만 옳다’는 마음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내 생각이 맞고,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 “정말 이해가 안 돼” 상대의 말과 행동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고 틀렸다고 재단하는 순간 관계는 어그러지고 내 마음은 괴로워진다. 또 “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상대가 의도 없이 던진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는데, 대부분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지레짐작함으로써 확대 해석하는 데서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는 행위를 멈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만 옳다’는 자두씨를 과감히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산뜻한 결론이다. 다만 그렇게 쉽게 뱉을 수 있을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성숙한 어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여러 접근법이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학문 중 심리학만큼이나 쉽고 재미있는 학문도 없다. 아홉 번 잘해도 한번 잘못하면 화를 내는 이유인 ‘부정성 편향’,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끔 유도하는 ‘손다이크의 효과의 법칙’,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는다는 ‘검은 양 효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리액턴스 효과’ 등은 일상의 다양한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예를 들어 아홉 번의 칭찬보다 한 번의 비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가중치를 두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인간의 본능이자 선천적인 마음가짐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상대를 볼 때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할 수 있다. 또 나와 같은 집단에 소속된 사람을 더 사랑하고 높이 평가하게 되는 ‘내집단 편애’를 인식한다면 나와 같은 편을 대할 때 좀 더 객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할 수 있다. 이렇게 심리학은 우리 일상에 아주 밀접한 사례이자 이야기로서 타인을 이해하는 노력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발견하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 '~ 법칙' '~ 효과'라고 붙이니 어려운 듯하지만 대개 한 번쯤은 들어본 실례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고민 없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때 타인을 이해하는 힘도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 양육자와 불안정한 애착 형성을 맺었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 회피성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면서도 ‘저 사람은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회의적인 시각에서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 깊고 진지한 관계로 발전되기 어려운데, 자신의 인간관계가 매번 이러한 패턴을 반복한다면 자신의 어렸을 적 애착 관계를 돌아보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또 하나의 자기는 없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족 앞에서의 나와 친구 앞에서의 나, 직장 동료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나는 각각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자기 복잡성이 높다고 말하는데, 어느 하나의 자기가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툭툭 털고 있어날 수 있는 힘은 또 다른 자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나를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 그 다양한 나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유의미한 방식이다. 내가 누군인지 알 때, 비로소 타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욕구와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포용이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이 나와 너를 이해하는 '관계의 심리학'에 대해 알지 못하면 결국 서로 상처만 받고 분노하고 시기질투하다 안 좋은 결과를 남기기 마련이다. 저자는 "우리 마음에도 통풍이 필요합니다"며 상처만 가득했던 관계를 치유하는 38가지 심리학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가장 먼저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을 쓴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맛도 향도 너무 좋은 자두가 끝이 뾰족한 씨만 남았을 때, 누군가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저자의 '자두씨 설명'부터 독자는 마음이 가 닿는다.

수많은 심리학 용어는 굳이 외우거나 시험 공부 하듯이 읽고 또 읽고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대하는 현상을 심리학적 시선으로 보면 그런 이론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구나 생각하면 된다. 머릿속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서 심리학 용어를 원용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렸을 때 덧셈 뺄셈을 잘 못하는 어린이에게 사과를 생각해서 셈을 가르칠 때를 돌이겨보면 된다. 한 가지 더 특기할 점은 설명을 존대어로 한다는 것이다. 보통 책에서는 존대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존대어는 길어서 쓸데없이 지면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속설 때문에 보통 반말을 쓴다. 독자들도 익숙해 있어서다. 삽화나 사진은 따로 게재하지 않는 대신 설명을 매우 맛깔나게

하는 데 힘입어 독자 자신의 '마음의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될까해서 읽었는데 무척 재밌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심리학 용어들을 드라마, 웹툰, 유명한 노래 가사 등을 활용해 모두가 접근하기 쉽게 이야기를 써내려 간 점도 이 책에 마음이 가 닿은 이유리라.

 


 

'내집단 편애'는 생존을 위한 본능입니다. 하지만 그 본능이 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단점이 도드라지는 사람이 들어올 때입니다. 집단의 구성원을 챙기고 편애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향한 애정과 사랑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얻게 될 집단의 이익 때문이지요. 그래서 더 이상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잔인하게 돌변합니다. 장애가 있는 새끼가 태어났을 때 동물들이 어떻게 하는지 아시나요? 버리고 떠납니다. 포식자를 만나면 무리 전체가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얀 양 떼에 검은 양 한 마리가 끼어 있으면 어떨까요? 맹수 등 천적의 주의를 끌게 됩니다. 무리에 속한 모두에게 위협이 되겠죠. 그래서 검은 양은 흰 양 무리에서 배척당합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협이 되는 사람을 배척합니다. 다른 집단에 소속된 사람보다 내집단에 소속된 사람의 단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현상을 ‘검은 양 효과’라고 부릅니다. 정리하자면, 내집단 구성원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이익이 될 때에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따지면 인맥이라는 건 꽤나 합리적인 판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순전히 학문적으로 봤을 때 말이죠). 자체적 검열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p. 223~224)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해석된 고통이지요. 고통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지요. 이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접근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 있는지와 관계없이, 어떠한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좋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고 나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요. 아찔한 높이의 낭떠러지에 서서 밧줄에 몸을 의지한 채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를 하나의 즐거운 놀이로 여깁니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느끼는 두근거림을 흥분과 기대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번지점프를 공포스러운 벌칙처럼 생각합니다. 놀려대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소리를 지르거나 울면서 나는 못한다고 도망가려 하지요. 이 경우에는 두근거림을 공포와 불안으로 해석한 것 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스트레스로 볼지 도전으로 볼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겠지요?(p. 333)

 

저자 : 신고은

 

충남대학교, 단국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학문으로서의 심리학뿐만 아니라 삶에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심리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교뿐만 아 니라 고등학교, 평생학습센터 등 다양한 기관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일반인, 직장인을 만나왔다. 심리학 연구만큼이나 드라마와 영화 보기,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그곳에서 만난 일상의 장면들을 심리학으로 설명하는 걸 유난히 즐겨 글로 옮기기 시작했으며, 카카오 브런치와 네이버 밴드를 통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많은 사람과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 ‘마음공방’을 제주도에 마련하고자 하는 소박하지만 큰 꿈을 꾸며 살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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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인류의 재앙과 코로나를 경고한 소설,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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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페스트)의 공포는 유럽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긴 글이나 그림은 너무나 생생한 기록 즉 페스트가 남긴 공포의 기록뿐이었다. 이 시대에 수많은 흑사병 관련 작품이 전해 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흑사병(黑死病, plague)이 페스트임을 대부분 잘 안다. 이 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병이니 주위에 쥐를 없애면 걸릴 염려가 없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서 흑사병이 창궐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요즘 늘어가는 야생동물의 주요 식량인 쥐를 너무 못살게 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흑사병이 사람과 사람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성 역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흑사병의 창궐에 쥐벼룩은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동물학자 크리스토퍼 던컨과 사학자 수잔 스콧이 공동 저작한 『흑사병의 귀환』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림 위 : 〈자파의 페스트하우스를 방문하는 나폴레옹〉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림 아래 : 177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창궐한 페스트. 두 그림은 사전에서 독자 임의로 캡처.

 

지식사전에 따르면 흑사병은 14세기 중반, 그러니까 1347년 무렵 킵차크(Kipchak) 군대가 제노바 시를 향해 페스트 환자의 시신을 쏘아 보냄으로써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방 원정에 나섰던 십자군 병사들이 보석과 동방 문화를 약탈해 오면서 부수입으로 한센씨병(나병)과 흑사병을 얻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때부터 순식간에 퍼져 나간 흑사병은 불과 수년 동안 시칠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 유럽 중부의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을 거쳐 벨기에, 네덜란드로, 그리고 처음 선보인 지 고작 3년여 만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그 무렵 기록은 전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4분이 1이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숫자로는 2500만에서 6000만 명에 이르는 유럽인이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숫자 사이의 간격은 페스트가 지속된 기간과 지역별 사망자 수의 집계 등의 차이에 기인한다. 여하튼 서유럽의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페스트 창궐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도 페스트의 위력은 심심찮게 계속되었으니 1664~1665년에는 런던 인구의 20퍼센트 정도가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19세기 말에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명을 앗아갔다.

 


 

이 소설 『페스트』는 생의 마지막을 처참하게 마감하는 감염자들의 실상과 그 앞에 당면한 천태만상의 인간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 내려간 처절한 드라마이자 긍정의 기록이다. 80여 년 전 소설 『페스트』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 너무나 닮았다. 도시 봉쇄의 대처방식과 지역 이기주의까지도 비슷한 세균의 공습을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예방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시사해주는 다큐멘터리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알제리의 오랑시에 페스트가 발생했다. 비틀거리며 죽어가는 쥐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몰려온다. 쥐 떼가 페스트를 전염시키는 바람에 사람들은 길 위에서든 집안에서든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것이었다. 처음에 전염병이 나돌 때는 몇 명의 의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이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다. 시 당국자들은 엄중한 조처를 취했다. 시의 문을 굳게 닫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해 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로 의사 리외는 피서지에 가 있는 아내와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또한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연인과의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리외는 아내의 일이 몹시도 마음에 걸렸으나, 비참한 환자에 대한 연민의 정과 직무에 대한 애정과 열성 때문에 사설 위생 기관을 설치하여 전력을 다해 병과 싸웠다.

 


 

리외의 주위에는 여러 계층에서 선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타루는 인생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자가 되려고 했다. 공무원인 글랑은 아득한 연인에 대한 추억 속에 살고 있는 노인이었다. 파늘루 신부는 지금 온 시가지에 번지고 있는 이 페스트야말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형벌이며, 이 형벌이 만약에 자각과 회개의 기회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설교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설교도 잠시뿐이었다.

너무나 비참한 광경 앞에 처음의 생각을 고쳐먹고 열심히 방역과 간호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비록 그 방법에 있어서는 제각기 다른 길을 택했으나, 페스트 예방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선 그들 모두가 똑같았다.

그러던 중 타루와 파늘루 신부가 끝내 페스트로 쓰러지고 말았다.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페스트 초기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했지만, 나중에는 시민의 운명에 연대감을 느껴 리외의 사업에 협력하게 되었다. 이윽고 극성스럽던 페스트도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굳게 닫혔던 시의 성문도 열렸다.

리외는 한없이 피곤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는 휴가는 없는 것이고, 페스트균은 결코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금 행복한 이 거리에 습격해 오리라는 것을 일깨운다.

비참한 현실 앞에 작가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선 리외를 빌려 “이 난파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빈손에 비통한 마음뿐, 무기도 없고 대책도 없이 또다시 이렇듯 참담한 패배 앞에서 그는 그저 강 저편에 그대로 있어야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무기력하고 참담한 이 소설을 통해 카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한 인간들의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은 도시 봉쇄라는 조치가 따르고 여기엔 종교를 대표하는 신부, 기자, 의사인 리외, 미지의 인물까지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과 행동을 비추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어의 노력과 이를 넘어선 한계들을 보인 장면들이 고루 담겨 있어 섬뜩함을 지니게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바이러스의 창출이 인간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경고로 보낸 신의 신호인가, 아니면 인간들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자연에 대한 도전인가.

카뮈가 그린 오랑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의 사람들을 대비함으로써 한때 잠시 소강상태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인 페스트의 존재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을 끌게 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그 안에서 인간들의 사투를 건 싸움을 통해 스스로가 지닌 인간의 고귀한 생명력,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모색을 그려낸 책이란 생각이 든다.

독자로서는 사실적 묘사,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참상에 대한 표현, 인간의 심리와 부조리에 대한 적확한 묘사 등 그의 문체를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것이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은 이유이자 멋진 보답이었다. 여기에는 옮긴이의 역할도 한몫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쥐들의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신문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문은 오직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만 문제 삼는다. 그러나 현청과 시청에서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제각기 기껏 두세 가지 경우 정도만 알고 있을 때는 누구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두를 더해본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만 하면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 합하면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불과 며칠 동안에 사망 건수가 몇 배로 불어났으니 그 해괴한 병에 깊이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짜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리외와 같은 의사이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카스텔이 리외를 만나러 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 중에서

 

오랑시의 봉쇄가 발표된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저마다의 일상을 누리던 생활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로 생긴 놀라움과 불안에도, 시민들은 저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리에서 그럭저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상태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가 같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도 공포심이 더해지면서 저 오랜 귀양살의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 중에서

 


 

페스트라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교도소장에서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을 선고받은 사람들이고, 아마 사상 처음으로 감옥 안에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시당국은 그런 평등한 세계 속에 위계질서를 도입하려고 직무 수행 중에 순직한 간수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구상을 해보았지만 결국 헛일이었다. 계엄령이 발령되어 있었고, 또 어떤 각도에서 보면 그 간수들은 동원된 자들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죄수들이야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 군 관계자들은 그 일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당연한 지적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죽음의 묵시록」 중에서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되어버린 두 손이 침대 가장자리를 살며시 긁적거리고 있었다. 그 손이 다시 올라가서 무릎 근처의 담요를 긁었고, 그리고 갑자기 아이는 두 다리를 꺾더니 넓적다리를 배 근처에 갖다 대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 찰흙처럼 굳어버린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 마디의 비명과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로운 불협화음의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마치 모든 인간들에게서 한꺼번에 솟구쳐 나오는 것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벌한 삶의 현장」 중에서

 


 

멀리서 어두우면서도 불그레한 빛이 그곳에 불빛 찬란한 큰길과 광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해방된 밤 속에서 욕망은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게 되었다. 리외의 발밑에까지 으르렁거리며 밀려오는 것은 바로 그 욕망의 소리였다. 어두침침한 항구로부터 공식적인 축하의 첫 불꽃이 솟아올랐다. 온 도시는 길고 은은한 함성으로 그 불꽃들을 반기고 있었다. 코타르도 타루도, 리외가 사랑했으나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혀졌다. 노인이 말한 대로였다. 인간들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리외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힘차고 더 긴 함성이 테라스 밑에서 발밑에까지 밀려와 오래도록 메아리치는 가운데, 온갖 빛깔의 불꽃 다발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희망의 날이 밝았다」 중에서

 

저자 : 알베르 카뮈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 Dr?an)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대전 중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918년에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카뮈는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1936년에 고등 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해 대학 교수로 살고자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교수직을 포기했다. 이후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44년에 극작가로서도 《오해》,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1957년에 카뮈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삼 년 후인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 외에도 《표리》, 《결혼》, 《정의의 사람들》,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 등을 집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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