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셰어하우스
케이트 헬름 지음, 고유경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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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스릴러나 추리소설은 심리묘사가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 같다. 예전 범죄소설은 대부분 심리묘사보다는 사건 묘사, 배경 묘사, 범죄 행위 묘사에 주력했지만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심리가 범죄 행위에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이 덧붙여지면서 현대 추리소설은 SF스릴러라고 불리우는 과학적 스릴러 소설에도 심리묘사는 크게 주목 받는다. 심리학이란 학문도 실제에 옛날 고대부터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프로이트, 칼 융, 아들러 등의 심리학 거장들로부터 비롯된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후 '양들의 침묵'이란 심리스릴러의 원조격인 소설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심리 묘사는 소설에서도 성공 여부를 판가름지을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졌다. 사이코패스의 등장이다. 이로써 현대 추리소설은 대부분 '심리스릴러'란 표현이 붙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물론 심리에 치중하지 않은 단순 범죄수사 등의 소설은 논외로 친다. 이 소설 『웰컴 투 셰어하우스』는 범죄 수사소설에 가깝지만 심리묘사 또한 매우 날카롭고 치밀하다. 더욱이 이 소설의 무대는 '셰어하우스'라는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발단-전개-파국-반전-결말의 대부분이 이 셰어하우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범죄 소설은 당연히 심리묘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셰어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임미는 런던, 그것도 중심부에 위치한 완벽한 조건의 새 집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숙박 시설에 옥상 테라스, 무료로 제공되는 유기농 음식, 요가와 명상 시간, 거기에 놀랄 만큼 저렴한 임대료까지. 이른바 ‘염색 공장’이라 불리는 셰어하우스는 대도시 생활의 외로움에 맞서기 위해 고안된 고급 공동체다.

하지만 임미는 새로운 안식처에 들어가자마자 그곳이 겉보기만큼 아늑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명상 시간에 돌연 스피커에서 동물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방에 누군가 들어온 흔적이 있는 등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만, 갈 곳 없는 임미는 셰어하우스를 떠날 수 없다. 그러던 중 셰어하우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점점 불안에 떨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절한 가면 뒤에 저마다 위험한 비밀을 하나씩 숨기고 있는 듯 보이는 룸메이트들. 이들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이곳에 온 걸까? 그리고 이들 중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이 소설은 연극으로 상연해도 될 만큼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심리묘사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의 심리를 쭈욱 따라가기도 한다. 소설이기에 가능하다. 연극으로서의 요소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다. 소설을 희곡 대본으로 잘 각색한다면 연극 무대에 올려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7명이다. 7명 모두 이 셰어하우스의 룸메이트이다. 런던에 있는 한 셰어하우스 안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곳에 거주하는 룸메이트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불안에 떨게 된다. 셰어하우스 안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긴장감을 더해간다. 공포와 계속되는 긴장감은 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읽을수록 진실과 결말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이는 이 책 저자의 탁월한 심리묘사 덕분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한 인물의 심리묘사를 위해 그 인물의 과거부터 현재의 심리 등이 엇갈려 교차하면서 범인 가능성을 오가기 때문에 독자들은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또 범죄소설이든 심리스릴러물이든 늘 반전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책 『웰컴 투 셰어하우스』는 결코 시시한 반전을 미리 남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당연히 후반부가 훨씬 재미있다. 초반에 임미와 덱스가 염색공장(셰어하우스)의 정식 룸메이트가 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염색업자(이미 셰어하우스의 정식 룸메이트)들에게 면접을 보는 부분은 조금 어색하다.이는 아마 우리와의 문화나 정서의 차이가 빚어내는 이질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참지 못할 정도의 어색함은 아니어서 이 부분에서 조금만 인내심을 갖는다면 매우 긴장감 높고 흥미 만점의 심리스릴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셰어하우스의 룸메이트 루카스, 버니스, 카밀은 임미에게 살아 있거나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누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은지, 특별한 장기가 있는지, 룸메이트로서 최악의 단점은 무엇인지 등 예상치 못한 질문을 건네고, 만만치 않은 질문에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한 임미는 셰어하우스 입성을 체념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4주 동안 함께 생활한 뒤 최종 합격 여부를 정하겠다는 버니스의 '임시 합격' 통보 전화를 받게 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셰어하우스로 향한다.

이 작품은 염색공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7명의 룸메이트들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집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이곳 염색공장 안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집을 두려움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셰어하우스. 본인의 스튜디오(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휴대폰이 필요할 정도로 보안이 일상인 곳이다. 밀실이라는 배경 설정은 범인이 우리들 중 누군가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의심하게 만든다. 소설은 뒤로 갈수록 굉장히 소설의 전개 속도가 빨라지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의도라면 소설 구성에서도 저자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임미는 함께 생활하게 될 구성원들과 낯을 익히며 자율적이지만 엄격한 공동체 규칙에 따라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방에서 우연히 ‘증거품 봉투’라는 낯선 비닐봉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곳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영리하고 독창적이며 긴장감 넘치는 전개, 비밀스런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로 작가 케이트 헬름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웰컴 투 셰어하우스』의 또 하나의 돋보이는 점은 예상할 수 없는 반전에 있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비밀의 퍼즐이 맞춰지기까지 사건의 진상은 독자의 추측을 계속해서 빗나간다. 그들의 위험한 진실은 곳곳에 복선으로 숨겨져 있다. 이로써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짜릿한 쾌감을 동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탁월한 심리묘사, 돋보이는 구성능력, 독자와 타협하지 않는 독특한 반전 등으로 기존 팬들에게도, 그리고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도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저자 : 케이트 헬름

 

영국 랭커셔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브라이턴에 살고 있다. 법원 및 범죄 사건 취재 기자로 일하다가 BBC에서 뉴스와 시사 문제를 다루는 기자와 프로듀서가 되었다. BBC1 프로그램 〈죽음의 천사: 비벌리 앨리트의 이야기〉를 비롯해 다수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대본을 쓰기도 했다. 본명은 케이트 해리슨으로, 케이트 헬름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첫 번째 작품은 《당신이 숨기는 비밀들THE SECRETS YOU HIDE》이며, 두 번째 작품이 《웰컴 투 셰어하우스》다. 그녀가 쓴 논픽션과 소설은 20개 지역에서 무려 8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역자 : 고유경

 

영국 카디프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입시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글밥 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해 바른 번역 소속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수학님은 어디에나 계셔》, 《내 생애 한번은 수학이랑 친해지기》, 《밤의 살인자》, 《너는 여기에 없었다》, 《나, 책》, 청소년 과학 교양잡지 〈OYLA〉(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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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감정 - 민망함과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은 삶에 어떤 의미인가
멜리사 달 지음, 강아름 옮김, 박진영 감수 / 생각이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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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감정은 몇 가지나 될까" 독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다. 한 번은 그냥 한 번 헤아려보기도 하고, 사전을 찾아가며 세어보기도 했다.너무 많아서, 독자의 언어 능력으로는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것들도 있어, 더욱이 외국어로 된 것들도 많아 중도에 포기했다. '사람사전' '마음사전' 등의 사전은 나와 있지만 '감정사전'은 없다. 유아용 동화책, 그림책에 '행복한 감정사전' '어린이감정사전'은 있지만 우리 인간의 '감정사전'은 찾지 못했다. (있는데 독자가 몰라서 못 찾는지는 모르지만) 감정을 모아놓은 사전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워 못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독자의 판단에 가깝다.

참고 문헌을 찾아보니 의학이든, 심리학이든 우리의 감정을 구별할 때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으로 크게 나누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더 깊이 들어가면 같은 단어도 사용 시기나 상황 등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인문학적 해석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제인 '웅크린 감정' 역시 큰 개념에서 소극적 감정이고 부정적 감정에 해당된다. 예컨대 ‘너무 어색해’라는 말은 일상생활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의미하는 말일 수 있다. 또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대개는 움츠러들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생각이 든다. 민망함이, 또 어색함이 나와 타인 사이에서, 특히 내 안에 있는 편견과 마주할 때 느끼는 불편하고 되도록 피하고 싶은 자기 인식이자 감정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감정들로 내 삶의 방식이 바뀐다면? 여기 사례가 있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분명 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뉴욕 매거진 〈더 컷〉에서 건강 및 심리 보도를 이끄는 저자가 때로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까지 하는 이 감정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탐색을 시작했다. 어색한 대화를 시작하고, 가장 어색한 순간과 민망한 현장들을 직접 찾아다닌다. 그리고 예상 밖의 진실을 깨닫는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재밌고, 에세이 형식으로, 쉽게 읽힌다.(그러나 평소 이 방면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용어나 상황,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뉘앙스 때문이다. 이론적인 말을 해석하기 위해선 다수의 심리학 이론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함께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거의 모든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민망함과 어색함에 관한 이야기지만, 결국 내 삶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가 이 책 『웅크린 감정』을 쓴 이유다.

 


 

이 책은 건강과 심리 보도를 이끄는 현직 기자가 자신의 어색하고 민망한 경험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 당사자들을 만나고 이 감정들을 심층적으로 파고들면서 위트있는 글로 풀어낸다. 또 문학, 드라마, 시트콤, 공연, 웹사이트 등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고 수많은 심리학 논문과 이론으로 무장해 논리적 근거까지 더해준다.

독자는 심리학도, 의학도 공부한 적이 없다. 코로나 이후 쏟아져 나온 우울감이나 공포감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해 이를 위로하고 격려할 목적으로 쏟아져 나온 심리학 관련 서적, 의학적 분석을 한 칼 융과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 분석 관련 책을 몇 권 읽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빈약한 지식으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 해석되면 저자의 책에 낙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저자의 주장이나 논리에 반론을 펴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이 저자에 대한 예우이고, 빈약한 지식을 높이기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민망함'과 '어색함'에 천착한다. 사전적 의미로 '민망하다(憫?-)'는 '(겁이 나서) 움츠리다'와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민망'이란 아주 대하기 싫은 '어색함'이 있는 상태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도 거의 비슷한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 제목인 '웅크린 감정' 그 자체로 읽힌다.

'어색하다(語塞-)' 역시 '서먹서먹한 상태', '서투르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의 마음'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종합포털 사이트에서 연관 검색어로 오글거리다, 부끄럽다, 낯간지럽다, 쪽팔리다, 오그라들다, 쑥스럽다, 닭살, cheesy, 오글오글, lovey-dovey, 부끄러운, 민망, corny, ashamed, 수줍다, embarrassed ashame, 창피, 어색하다, cringe, 등 우리말과 한자어, 영어 등 많은 단어가 떠오르지만 한 단어로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는 듯하다.

저자 멜리사 달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색하다'를 풀어나간다. "내게 있어서 어색함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커질 때 내 행동이나 모습을 의식하는 행위다. 중세 영어에서 '어색하다'는 '잘못된 쪽(wrong-ward)'이나 '잘못된 방향으로 휜(turned in the direction)' 등의 의미로 사용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자주 '어색한 거북이'로 표현했다. 여러분의 한 손을 다른 손 위에 포갠 뒤 양 엄지를 돌려보라. 그러면 이 모양 전체가 마치 거꾸로 뒤집혀 버둥대다 점점 더 불편해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드는 거북이처럼 보인다. 살짝 불편한 상황은 무엇이든 어색하게 여겨지고, 바로 이때가 어색한 거북이가 등장하는 순간이다.(p. 16)

 


 

- 민망함과 어색함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색하거나 창피하거나 민망해지면 숨고 싶거나 도망치고 싶다. 이런 감정들은 모두가 공유한다. 사회적 상황이나 문화와 맞물려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민망함과 어색함은 지금까지 관련 문헌이나 연구가 거의 없이 방치되거나 무시되어 ‘웅크린’감정에 가깝다.

 

- 어색한 대화는 때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회피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에미상을 수상한 CNN 방송프로그램 〈유나이티드 셰이즈 오브 아메리카〉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는 월터 카마우 벨은 이제 어색함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제 인생의 상당 부분을 어색한 대화의 힘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보냈죠. 내 직업적인 활동의 상당 부분을요.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대화를 고무시키는 거예요.”

 


 

- 어색함이나 민망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인지하는 사람이 오히려 낫다.

『이성과 감성』에 등장하는 어색하고도 로맨틱한 주인공 에드워드 페러스가 대시우드가의 자매들에게 말한다.

“마음 상하게 하려는 게 결코 아니에요. 다만 저는 바보 같다고 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아요. 종종 무심해 보일 때도 있는데, 그건 어색해하는 타고난 성격 때문에 그래요.”

에드워드는 어색한 사람이지만, 자신도 그걸 알고 있다. 또 자신의 의도와 타인이 그 의도를 해석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도 통렬히 인지하고 있다

 

- 우리가 어색하다고 부르는 많은 상황이 때로는 기회로 채워지기도 한다.

어떤 관계에서나 초기에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모든 게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이 관계를 몹시 황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새로운 누군가와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가 그토록 흥분되는 건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거나 둘이서 어디로 갈지 함께 가는 방향의 여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의 어색함을 보지 않는다.

설사 보더라도 내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감정은 우리 얼굴에 전부 나타날까? 아니다. 감정을 읽는 최신 인공지능도 아직 인간의 감정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또 그래서 감정을 오해하는 일이 생긴다.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어색함이라는 감정이 대표적이다.

 

- 민망함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공감이다.

우리는 타인의 어색한 말이나 행동에도 민망함을 느낀다. 타인의 민망한 행동이 내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민망한 감정은 매우 특이한 감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공감은 연민에서 나오기도 하고 경멸에서 나오기도 한다.

 

- 일상의 어색함은 약자를 배려하지 않거나 과도하게 의식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에게 불쾌감을 줄까 두려워하다가 결국 공황상태나 어색한 상황에 빠져들기도 하죠. 비장애인들 다수가 이게 문제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해요. 자신들이 느끼는 사회적인 어색함 때문에 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낀다는 말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거든요.”

 


 

이 어색한 감정을 저자는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 내릴까. 수많은 사례와 자신의 경험과 참고문헌 등 길게 써 내려온 글들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자주하는 어색함과 민망함을 대처하는 방법은 이 같은 감정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매사에 열정적인 게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또 착한 척도 여전히 이따금할 때가 있다. 어쨌든 이제 내가 아는 것은 심리학 문헌에서 그 특성을 양심((conscientiousness)이라 부를 것이라는 점이다. 어딘가로 밀어뒀던 내 마음의 조각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장담하건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것이다"라며 전제를 깔고 간단한 문장 몇 개를 나열해 명쾌하게 단언한다.

"일단 나 자신을 보고 웃는 게 가능하다면 성공이 확실하다. 내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연구를 마칠 때쯤 날 민망하게 만드는 모든 것과 나 사이에 견고한 장벽을 세우는 법을 알게 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이상하고 소소한 감정이, 그것도 인류 공통의 우스꽝스러움을 매개로 우리(나, 여러분, 과거의 나, 과거의 여러분)를 연결해 주는 힘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어색함이야 늘 있을 것이다. 어색함으로 우리가 고립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가 함께 민망해지는 일이다."(p. 342)

 


 

저자 : 멜리사 달(MELISSA DAHL)

 

멜리사 달은 뉴욕 매거진의 더 컷THE CUT 수석 편집자로 건강과 심리학 보도를 이끌고 있다. 2014년 NYMAG.COM의 인기 있는 사회과학 웹사이트 SCIENCE OF US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글쓰기 분야와 관심사는 성격, 감정, 정신 건강이다. 그녀의 글은 뉴욕 매거진 이외에도 ELLE, PARENTS, TODAY.COM, 뉴욕타임스 등에 게재되었다.

 

역자 : 강아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사회학을 전공하고 동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한 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마스 룸〉, 〈널 만나러 왔어〉 등의 번역서가 있다.

 

감수 : 박진영

 

《나는 나를 돌봅니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을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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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선생
곽정식 지음 / 자연경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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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년의 나이쯤 되신 분들에겐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 제출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는 귀찮은 숙제였지만 '관찰력'을 기르는 과제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중학교 올라가 중3 영어 교과서에 각종 무기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었는데 굉장히 신기했다. 예를 들어 헬리콥터가 잠자리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것과 박쥐의 음파탐지 능력을 활용해 물속 잠수함을 찾아내는 능력과 레이더 등이 대표적 예로 들었다. 흥미로웠고 열심히 배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군사 무기로 사용한 것은 대부분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의 특별한 기능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관찰력은 과학의 첫걸음이라고 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어렸을 때 곤충채집은 더운 날 들에 나가 나비, 잠자리, 풀벌레(방아개비, 여치, 메뚜기 등)가 대부분이었다. 과제물 내놓을 때 잘된 것은 교실 뒤에 붙여놓고 교육을 시킬 정도로 화제거리의 숙제였다. 또 지방 대도시에 살았던 독자지만 인근 야산에는 이런 곤충이나 풀벌레는 굉장히 많아서 반나절이면 '면피'할 정도의 곤충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언제부터인지 곤충채집 숙제는 없어졌다고 들었다. 생물을 잡아 표본을 만든다는 것은 교육상 오히려 안 좋다는 판단이었다고 들은 바 있다.

 


 

그때 가장 큰 적은 '벌'이었다. 자칫 쏘이면 족히 며칠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꽃 근처에 가면 늘 주위를 맴도는 벌들이 있었다. 그래서 꽃이 있는 곳을 피해 풀이 많은 곳으로 가서 곤충채집을 했던 기억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 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학교의 과제와는 달리 개미들이 유독 많았고(지금에 비해) 개미들은 작은 재미를 주었다. 유리병에 흙을 담아 개미 몇 마리 잡아 놓으면 어김없이 굴을 파고 들어가 자신들의 집을 짓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신기하고 기특해 재미 있게 관찰했던 기억도 있다.

매미는 우렁찬 울음소리에 비해 잡기는 조금 까다로운 편이었다. 조심조심 매미 울음소리 들리는 곳으로 가면 대개 매미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잡기는 어려웠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장대를 포충망을 달아 높이 올려도 닿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간혹 나무로 기어올라가 잡을라치면 인기척을 느끼면 재빠르게 날아가버린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서울로 이사 온 이후로는 곤충에 대한 기억도 없고 관심도 잃어버려 더 이상의 친근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 기억 속에 곤충은 수십년 전으로만 남아 있다. 고향의 아늑함과 고향 친구들과의 도타운 정도 기억과 함께 모두 묻힌 것이다.

 


 

이 책 『충선생』의 저자 곽정식은 곤충학자는 아니지만 곤충에 대단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직업과는 별 상관 없는 일인데 곤충에 매료된 것 같다. 곤충학자로 유명한 파브르와 같은 관심과 애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을 쓰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지치지 않게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생태계에 대한 아련한 추억 때문이다. 아련한 추억의 조각들은 벌레들에 대하여 '잘 안다'라는 과도한 자심감을 느끼게 했다. 사실 그 자신감으로 책을 쓰기로 결심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저자는 여기서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일단 쓰기로 결심한 후 자료를 차근차근 모았다고 술회한다. 그 어렵고 지난한 과정에서 곤충과 벌레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쳤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스승이 되었다."

이 책의 제목에 '선생'이란 단어가 추가된 이유다. 한참 책을 써 나가던 2019년 초 '어떻게 해야 곤충에 대한 좋은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 빠져 애태우다 문득 중국 곤명시(昆明市)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후 중국 곤명시에 있는 '자원곤충연구소'에 전화해 "우리 동양철학과 곤충에 대한 해석론을 널리 전파하고자 한다"고 설득해 그곳을 방문해 중국 연구원들과 이것저것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진드기와 나비를 연구하는 Chen Hang(?航) 박사에게 많은 의견을 들었다. 책을 써 나가다 보니 단순히 자연과학적 묘사보다는 동양의 문화인류학적 내용까지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이 책의 발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다.

 


 

저자가 곤충과 벌레들에게서 배운 것은 어떤 것이고 관찰하고 연구하고 자료를 보충한 것들은 어떤 것일까. 저자의 표현대로 단순한 자연과학적 묘사를 넘어 문화인류학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예컨대, "한여름이 되었음을 알리는 곤충중에 매미(?)를 빼놓수가 없다. 매미는 곤충들 중에서도 몸집이 크고 볼륨감이 있어 어릴때 방학숙제인 곤충 채집에서 귀하신 몸으로 대우를 받았다. 참매미는 온도가 섭씨 23도 이상일때 울고 시작하고 말매미는 섭씨 27도부터 운다. 낮에는 도시가 시골보다 덥고 말매미는 도시의 소음을 이길 정도의큰 소리로 울어야하기 때문에, 시골 매미보다 도시매미가 더 크게 운다는 말이 맞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구애를 위해서이기 때문에 수컷만 운다. 암컷 매미는 울지 않는다. 수컷 매미는 옆구리 근육을 비벼서 내는 소리를 배 속의 빈 공명실로 보내 소리를 증폭시킨다. 매미 알들은 나무껍질 속에서 일년을 지내고 부화하여 유충이 되면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무뿌리 수액을 빨아먹으며 5년간 네번의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된다. 그리고 6~7년만에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 우화와 탈피를 거쳐 비로서 매미가 된다.

매미의 탈피를 의인화 하여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의 금선탈각(金???)은 유방이 항우에게 포위되었을때 부하가 유방으로 변장하고 대신 잡히고 그 틈을 타고 유방이 무사히 도망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게되면 매미 소리가 잡자기 뚝 끊긴다. 매미는 조금만 한기를 느껴도 울지 못하고 힘을 잃는다. 가을 매미를 한선(寒?)이라고 하는데 찬바람을 맞은 매미처럼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금약한선(?若寒?) 이라고 한다.

'매미는 머리의 파인 줄이 선비의 갓끈과 비슷하니 지혜를 갖추었고, 이슬이나 나무의 수액을 먹고 사니 맑으며, 농부가 지은 곡식을 축내지 않는 염치가 있고,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이 없으니 검소함이 있다. 여기에 때를 봐서 떠날 줄 아는 신의의 덕까지 가지고 있다' 이것을 매미의 오덕(다섯가지 덕목)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5개의 장으로 나눠 각 장에 해당하는 곤충과 파충류 등을 다루면서 특이점이나 생명 유지 방법 등 생태 기능적 특징은 물론 신체적 특징의 인문학적 해석으로 자연과학을 이용한 우리 생활에 많은 필요한 많은 연구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Part 1. 가까이 있는 충선생

잠자리, 매미, 꿀벌, 나비, 귀뚜라미, 반딧불

Part 2. 멀어져 가는 충선생

쇠똥구리, 사마귀, 땅강아지, 방아깨비

Part 3. 지상에 사는 충선생

개미, 거미, 지네

Part 4. 해충으로만 알려진 충선생

모기, 파리, 바퀴, 메뚜기

Part 5. 곤충이 아닌 충선생

개구리, 두꺼비, 지렁이, 뱀

 


 

저자는 이 책 마지막 부분 「맺는말」을 통해 발간 취지는 물론 '충선생' 예찬을 다시 되풀이해 강조한다.

"앎은 크지만 깨우침은 적은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알아야 한다. 우리의 앎이 단순한 지식의 확대로 끝난다면 그것은 허무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앎과 소유에 대한 욕망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권태로 물질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다.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동(動)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박한 정(靜)의 시간은 줄어들어만 간다."

 

저자 : 곽정식

 

가장 가난하지만 풍요로웠던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저자(1957년)는 시간(時間), 공간(空間), 인간(人間)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다. 대학에서는 정치학과 경영학을 공부하였고 기업에서 35년을 근무하면서 기업윤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해외 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 외에도 스위스 제네바 소재 UN과 지방정부에서도 수년간 근무하였다. 주요 저술로는《THE GLOBAL STEEL SCRAP》(1997), 《생존과 자존》(2013), 《KOREAN INSIGHTS》(2018)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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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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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을 일컬어 '기록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는 한 사학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무렵이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한다. 조선왕조실록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자세하고 공정한 국정 전반에 대한 기록이라고 한다. 더욱이 왕이라 할지라도 당대(후대 왕도 그렇지만) 에 열람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하니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록일까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정치라는 것이 자신의 편은 후하게, 상대편에겐 없는 죄도 뒤집어씌울 수 있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다. 특히 최고권력자에게는 당연히 민감하게 신경 쓰일 것이다. 자신이 선정을 베풀었는지 악행을 일삼은 불민한 왕이었는지가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만일 아무리 신념 굳은 사관이 쓰는 기록이라도 당대에 열람할 수 있다면 당연히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기록된 것을 빼거나 고칠 우려가 크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공정한 기록을 남기는 일은 공정과 평등 등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보여준 단면이기도 하다.

더욱이 사관들이 어떻게 기록할지 모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공정하고 개방적인 정치를 하려 애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은 물론 당대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기록을 일절 볼 수 없게끔 제도화한 선조들의 공정에 대한 신념은 세게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역사 정신이다. 그 사학자가 '기록의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말한 것도 그만큼의 깊은 뜻을 가진 것이다. 결국 우리 정치나 민족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란 점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누구에게 보여줄 리 없는 사관의 기록은, 개인적으로 보면 남에게 보여줄 리 없는 일기와 맥락이 비슷하다.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은 감추고 싶은 비밀스러운 일도 왜곡 은폐할 필요가 없었고, 개인의 일기도 나중에 고쳐 쓰지 않는다. 자신이 쓴 일기라고 나중에 고쳐 쓴 적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우리 선조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거짓말을 일기에 쓰는 사람은 없다. 이 때문에 이런 개인적인 일기들은 민생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재미대로, 비밀스러운 것은 비밀대로, 슬픈 일은 슬픔대로 읽혀질 것이다. 당연히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없는 민생이 담겨 있다. 개인에게 오늘의 삶은 일기가 되고, 그 일기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 평범하지만 찬란했던 역사의 참 주인공들이 써 내려간 알짜배기 역사책을 만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 박영서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전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에 이어 이번에는 조선 사람들의 ‘일기’에 주목했다. 일기는 가장 사적인 기록이다. 개인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 세세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달을 보며 자리에 들 때까지 시시각각 스쳐 지나간 온갖 감정과 생각과 행동의 흔적들이 조용히 내려앉으면 일기가 된다. 그러나 일기는 거시적이기도 하다. 일기를 쓴 사람이 자신이 살아 숨쉬던 시대와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일기는 개인이라는 씨실과 시대라는 날실이 직조된 저마다의 직조물인 셈이다. 똑같은 일기가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저자는 망국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원한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활약을 읽는 일은 『난중일기(亂中日記)』 덕분에 가능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사투를 이해하게 된 데에는 김구의 『백범일지(白凡逸志)』 역할이 크다. 『안네의 일기』 덕분에 우리는 유태인 소녀 안네가 겪었던 나치 치하의 참혹상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고, ‘일기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 『아미엘의 일기』는 매일매일 행해지는 내면의 성찰과 명상이 어떻게 격조 높은 문학으로 탄생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 모두 일기가 개인의 사유와 행동 및 희망과 절망을 담아내며, 동시에 후대 사람들에게 한 시대의 영광과 추락을 전해준다는 것을 뜻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사람들이 쓴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그들은 왜 글을 썼을까? 글은 양반의 전유물이었으니 일반 백성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시대를 통찰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시대정신을 기록하기 위해, 후대에 남길 정신적인 유산을 축적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높으신 양반’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목숨 걸었던 마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내미가 긴 병치레에 들어가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 백성은 먹고살기도 힘든 마당에 정력제를 구해오라 다그치는 양반네를 고급스러운 유머로 받아치는 마음, 근성 있는 대탈주를 감행한 조선 노비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며 ‘아이고, 내 재산’(당시 노비는 가축처럼 재산이지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다)을 되뇌는 주인의 분통 어린 심정. 양반들의 속사정은 물론 함께 호흡하던 일반 백성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모두 담아낸 이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다채로운 빛으로 채워준다.

 


 

이 책에는 가히 조선 사람들의 웃기고도 슬픈 조선 사람의 속마음,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조선의 하루가 담겨 있다. 특히 독서의 재미를 위해 저자가 직접 그린 주요 등장인물의 캐리커처와 저자가 직접 쓴 한문일기 필사본이 실려 있다. 다른 책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자료만으로도 독자들의 선택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사에 재미를 붙이고 싶은 학생들, 읽을거리를 찾아 온오프라인 서점을 방황하는 독서가들, 그리고 ‘역사라면 한국사, 한국사라면 미시사’를 외치는 역사 마니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에 소개된 자료들은 모두 전문 연구자들과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쏟아부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선시대 개인일기 학술조사’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의 개인 일기들은 무려 1431건에 이른다. 여행 중에 쓴 여행일기, 전쟁 중에 쓴 전란일기, 궁중의 여인들이 쓴 궁중일기, 단맛 짠맛 다 드러나는 생활일기, 공무를 수행하던 중에 쓴 사행일기 등 짧게는 수십 일, 길게는 몇 세대가 이어 쓴 일기들이 있다. 우리는 그 수많은 기록자료 덕분에 21세기 책상에 앉아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낱낱이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처럼 웃을 수 있고, 때로는 슬픈 영화를 볼 때처럼 눈시울을 붉힐 수도 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기록에 푹 빠져 일기의 주인들과 완전히 공명할 수 있다. E.H 카의 말처럼 “과거의 조선인들과 현재의 우리가 대화하는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남긴 선조들과 소통하며, 이제 또 다른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글은 선비들의 전유물이어서 민초, 노비들은 자신들의 생활이나 생각을 직접 글로 남긴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자기 ‘라인’을 과거에 합격시키기 위해 거주지를 허위로 등록하게 하고, 과거장까지 이끌고 온 조즙의 뻔뻔한 행위에 동네의 선비들은 분개합니다. 감독관과 응시생의 말싸움은 점차 커져, 둘 다 시험장을 나가버리는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하죠. 초유의 감독 거부와 응시 거부 사태는 결국 부상자를 초래하죠. ‘조즙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 고개를 떨궜다.’라는 내용은 조즙 자신도 본인의 행위가 비도덕적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즉, 비록 ‘관례적’으로 온갖 종류의 부정행위가 매우 자주 벌어졌지만, 그런 행위가 부정한 것이라는 최소한의 인식은 공유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과거 시험장의 부정행위는 야근을 하지 않고 수당을 입력하는 우리 시대의 ‘관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떠한 부정한 행위가 ‘관례’가 되는 순간, 오히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곤 하죠.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한 선비처럼요.

- 「나는 네가 과거 시험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중에서

 


 

1614년 3월 2일 『계암일록(溪巖日錄)』

오늘 아침, 승문원(承文院)?에 첫 출근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윤 대리님이 엄청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를 대청마루의 현판 밑으로 내보내 시를 짓게 했다. 오 과장님은 끝도 없이 시 짓는 문제를 내어서 나를 괴롭혔다. 그가 너무, 너무 미웠다. 저녁에는 선배들 집을 돌면서 명함을 돌렸다. 열심히 말을 달려 윤 차장님, 오 과장님, 김 대리님, 윤 대리님 댁 등을 포함해 열네 곳이나 명함을 돌렸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숙소에 돌아오니, 민 부장님이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았지? 내일부터는 허참례(許參禮)를 할 때까지 명함을 그만 돌려도 되네.”라고 하셨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한 38세의 ‘뉴비 공무원’ 김령.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환대와 조언이 아닌,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신고식이었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선배들이 일도 안 하고 온갖 퀴즈를 내며 김령을 괴롭히더니, 이제는 ‘명함 돌리기’를 시켰습니다. 명함 돌리기 풍습은 많은 곳을 돌아야 했기에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김령도 열네 곳이나 되는 집을 두루 돌아다니며 명함과 함께 인사를 드렸죠.

게다가 꼭 귀신 분장을 한 것처럼 낡고 찢어진 옷을 입어야 했는데, 야간통행금지 시간에 사람들을 단속하는 경찰도 이들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부러 창고에 가두고 밤늦게까지 뉴비 관원을 붙잡고 얼굴에 먹물을 칠하는 모습이 담겨 있죠? 주변에서는 아예 BGM까지 깔아주며 제대로 놀리는 모습입니다. 신입생 환영회 때의 추태가 동기들 사이에서 내내 회자되듯, 조선 시대에도 이때 망가지는 모습이 관직 생활 내내 술안주로 쓰였겠죠?

- 「신입 사원들의 관직 생활 분투기」 중에서

 


 

아내 김돈이가 이토록 거칠고 예민하게 반응한 까닭은 하녀들이 전해준 거리의 풍문 때문이었습니다. 기생 종대가 마치 이문건의 두 번째 부인이 된 것처럼 행세하면서, 이문건과 있었던 ‘베드 토크(bed talk)’를 자랑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죠.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아내의 항의는 정당합니다. 그런데 이문건은 사실이 아니라며, 대꾸할 가치도 없다며 차가운 태도로 일관합니다. 오히려 쓸데없이 거짓 소문을 전하는 아내의 하녀들을 비난하죠. 하지만 이미 전과(?)가 있는 남편의 해명을 믿기 어려웠던 아내는 삶의 의욕을 잃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건강이 점점 악화하죠. 어느 날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남편에게 “기생 종대가 보고 싶어서 나랑은 못 살겠지? 그렇지?”라며 우격다짐을 펴기도 합니다.

이문건은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아내의 상태를 걱정합니다. 그래서 며느리나 하녀에게 아내를 제대로 모시라며 혼을 내면서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하지만, 결국 본인이 풀어야 하는 문제임을 알았죠. 기생집 사장님과 남편, 그리고 아내 사이의 삼자대면이 벌어지고, 다시는 기생 종대가 이문건을 만날 일이 없다는 확약을 받고 나서야 이 일은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 「식구인지 웬수인지 알 수가 없다」 중에서

 


 

오희문이 끔찍이도 아꼈던 막내딸, 단아는 잔병치레가 잦은 소녀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오희문 부부는 전쟁을 치르듯, 아이의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특히,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할 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기 위해 발바닥에 땀 나듯 뛰었죠.

1596년 9월 25일 『쇄미록(鎖尾錄)』

단아의 병세가 약간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밤새 통증에 시달렸다. 우리 부부는 서로 교대하며 밤을 새워 단아를 돌봤다. 며칠째 이러니, 내 정신이 어디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단아가 간신히 입을 움직여, “아버지……. 석류가 먹고 싶어요”라고 하기에 백방으로 구해봤는데 이 동네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 지인에게 석류가 있는지 물었더니, 저녁에 석류를 보내주었다. 단아는 석류를 보자마자 아픔이 무색하게 얼굴이 환해지면서, 그 자리에서 석류를 깨물어 반 개를 먹었다.

 


 

이 책은 ‘공명 유도서’다. 저자가 “책을 엮을 때 독자들이 일기 속 주인공과 충분히 공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미리 밝힌 이유다. 일기의 주인공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생활상과 시대를 마주할 때 비로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온몸으로 느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의미는 회고나 복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재의 순간을 사는 우리 자신 역시 찬란하게 빛나는 존재임을 깨닫는 데서 증폭한다. 저자가 원문 및 번역문을 쉽게 접하실 수 있는 생활일기들을 주로 선정한 것도 이 같은 매락에서다. 시시콜콜한 일상 속의 사건 중심으로 각 장을 꾸리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삶을 조망하기 위해 노력한 이 책을 통해 보통의 삶 따위 가뿐히 뛰어넘은 인생 선배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역사 해석의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저자 : 박영서

 

1990년생이며 충주의 작은 사찰에서 살고 있습니다. 금강대학교에서 불교학을 배우면서, 한편으로는 철학 플랫폼 ‘철학이야기’를 도반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쓴다는 핑계로 골방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완연히 몰입하는 시간만큼 행복해지는 시간이 없습니다. 역사는 저를 행복하게 하는 소중한 우물 중 하나입니다. 물 흐르듯 유려하거나 논리적으로 탄탄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도 잘 못 씁니다. 다만, 제가 울고 웃었던 것만큼 누군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덕후’의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던 10대와 20대를 뒤로 하니, 이제는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서 이루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어렵다’는 말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시대 안에서 ‘어려워도 행복한 삶’이 어떤 삶인지 한번 살아보겠노라, 오기를 부리는 중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가르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인스타그램 : @ddirori0_09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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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베이
조조 모예스 지음, 김현수 옮김 / 살림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일상을 빼앗긴 채 1년 여를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전 세계적인 일이라 지구촌 어디든 쉽게 갈 수도, 올 수도 없이 가능한한 활동을 줄이고 먹고 사는 데만 신경 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봄이라고 하지만 예전 같으면 앞다퉈 열리고 있을 각종 축제를 취소한 채 코로나 방역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백신이 접종되기 시작했고,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최소한 10~11월이면 100% 접종을 완료할 수 있다는 게 방역 당국의 말이다. 이에 따라 활동 반경도 최소한으로 한 채 숨죽이며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못 가면 더 가고 싶은 게 여행이고,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여행이 최고의 처방전이다.

집콕으로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느낌마저 있다. 오랜 기간의 집콕 생활로 피로감이 쌓이고 집안에서 즐기는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덜 하겠지만 평소 활동적이고 취미 생활도 주로 실외에서 하는 사람들에겐 창살만 없지 감옥 생활처럼 느껴질 것이란 추측도 어렵지 않다. TV도 이런 우리들의 상황을 감안 될 수 있는 대로 대리만족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프로그램을 편성해 내보내는 게 역력하다. 불행하게도 출연자가 코로나에 감염돼 자가격리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타깝지만 위로 격려의 마음만 보낼 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럴 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척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가 즐거움이 되고 우울감도 해소해준다. 이 소설 『실버베이』가 안성맞춤형 책이다.

 


 

아직은 자연이 훼손되지 않아 아름답기 그지없는 호주의 작은 만, 실버베이에서 벌어지는 우리 일상 같은 이야기가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넉넉한 미소와 편안한 여유를 갖고 쉽게 읽어갈 수 있는 작품이어서 '코로나 집콕'하는 독자들에게는 오랜만에 편안하고 행복한, 그리고 일상적인 미소가 온 얼굴에 퍼질 만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로맨스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 조조 모예스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낯익은 이름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저자다. 그가 쓴 『미 비포 유』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로 사랑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이미 1,50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한 소설가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돼 다시 한 번 큰 열풍을 일으키기도 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포함 3편의 장편소설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탁월한 사랑 이야깃꾼이다.

『미 비포 유』가 ‘존엄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대중성 있게 담아냈다면, 『미 비포 유』의 마지막 이야기인 『스틸 미』는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주인공을 통해 ‘삶의 주체성’을 다룬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이에 비해 『실버베이』 작가 특유의 쉽게 읽히는 문체와 가볍고 톡톡 튀는 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환경과 개발의 대립’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실버베이를 지키려는 라이자와 개발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국에서 온 마이크가 서로에게 다가가며 생기는 변화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삶의 키를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이 모든 것을 조정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로써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솜씨는 여전하다는 느낌이다. 사실 이 소설은 『미 비포 유』 이전에 출간된 작품이라 한다. 환경과 개발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랑, 독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곁들여 끌어나간다.

 


 

고래들의 이동경로로 쓰이는 바다를 끼고 있는 호주의 작은 만, 실버베이. 라이자는 과거의 비밀과 아픔을 묻어둔 채, 이모가 운영하는 실버베이 호텔에서 딸과 함께 조용히 살아간다. 이모의 배였던 ‘이스마엘호’를 물려받아 고래 관광 일을 하며, 관광객이 없을 땐 혼자 배를 몰고 나가 고래를 바라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이런 라이자에게 호텔에 장기 투숙하게 된, 영국에서 온 남자 마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엔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마이크가 이상하기만 했는데 같이 고래를 보러 가고, 자신의 딸 해나와 친근하게 어울리며 점차 이곳에 동화되어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런데 느닷없는 실버베이의 개발 소식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게다가 그 개발 계획의 중심에 마이크가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배신감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 리조트 개발을 성사시키기 위해 실버베이로 온 마이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실버베이 호텔’에 머물며 이 사업의 가능성을 조사하고 개발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수백만 달러가 걸린 이 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다면 마이크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안정적일 것이 분명했다.

회색 도시, 높은 건물 안에서 계절의 변화라고는 느낄 새도 없이 살아가던 과거의 일상과 너무 다른 실버베이에서의 생활이 주는 어색함도 잠시,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굴곡 없는 삶처럼 굴곡 없는 감정으로 살아온 그에게 라이자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안겨준다. 이곳에 머물수록 그의 가치관은 뿌리째 흔들리고 그의 삶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캐슬린은 소녀시절에 자신이 뉴사우스웨일스에서 가장 큰 상어를 잡았던 사실을 일흔여섯의 할머니가 되었어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몇년 동안 상어 소녀로 유명했고 그 명성으로 실버베이 호탤은 유명해져서 손님들이 많았다. 실버베이 호텔을 자신이 운영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현대식으로 개조하는게 좋겠다고 했지만 캐슬린은 손님이 적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필요한 만큼 돈을 벌고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큰 돌고래를 보기 위해 찾아왔고 고래관광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고래를 만나게 되면 환호했다. 열한 살인 라이자의 딸 해나도 고래를 보면 환호했고 캐슬린과 라이자 그리고 고래관광선을 운영하는 지역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고래 구경을 오는 관광객이 적으면 실버베이 호텔이 어려웠지만 오히려 관광객이 너무 많으면 바다 생물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균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자연을 지키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마이크는 회사에 입사해서 주니어 파트너로 성공하고 있었고 조만간 사장의 딸 버네사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버네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동생 모니카에게 고백한다. 타고난 모험가가 아니라 조사와 분석 그리고 준비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계획하는 마이크는 자신의 성공이 버네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니어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몇 건의 일을 진행시키면 지금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복합레저단지 휴양 리조트 개발을 조사하면서 부지가 될 호주의 작은 만을 찾게 된 것이다.

마이크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가 관광객이라고 했지만 고급 양복을 입고 혼자서 더 좋은 호텔도 많은데 만(灣)의 제일 끝부분에 있는 낡은 실버베이를 숙소로 선택한 사실이 의아했다. 마이크가 실버베이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해나의 생일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해나스 글로리라는 이름을 가진 파란색 소형 보트를 선물받은 해나는 기뻐하지만 그레그의 선물에 라이자는 화를 냈고 그런 캐슬린의 행동에 그레그는 해나를 평범하게 키우지 않으면서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실버베이에 나타난 마이크를 보면서 캐슬린은 그가 자신의 호텔에 묵는 이유가 궁금하면서 조카 라이자와 사귈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캐슬린은 라이자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해나에게 좋은 아빠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라이자는 이모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었다. 캐슬린은 동생의 딸 라이자에게서 동생을 보게 되고 라이자와 해나를 통해 집안의 핏줄이 이어지는 사실을 흐뭇하게 생각한다.

 


 

라이자는 과거의 비밀로 마음을 열지 알았고 이스마엘호로 고래관광선을 운영하면서 혼자 고래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라이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동거하던 남자의 폭력을 피해 실버베이로 왔고 해나의 동생에 대한 슬픈 기억을 간직하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마이크가 나타나자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고래관광선을 운행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와 고래를 보면서 마이크는 자신이 몰랐던 세상을 보게 된다. 라이자를 통해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자신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생각한다.

과거의 아픔으로 마음을 열지 못했던 라이자와 사랑을 믿지 않았던 마이크의 사랑은 새로운 삶을 보게 하지만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실버베이를 찾았던 남자와 자연을 보존하는 것을 원하는 여자의 로맨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몹시 궁금하다.

『미 비포 유』를 통해 안락사라는 민감한 주제와 로맨스로 마음을 울렸던 로맨스 소설의 여왕 조조 모예스의 『실버베이』는 환경과 개발에 대한 균형의 문제와 로맨스가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나가지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때 믿음으로 자신을 지켜나가고 묵묵히 촤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게 전해지고 개발을 위해 환경을 희생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환경과 개발의 적절한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소설이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개발과 환경'의 대립구조와 함께 균형이 중요함으로 로맨스의 앞날도 예고하는 탁월한 구성의 소설이다.

 


 

저자 : 조조 모예스

 

런던에 있는 로열 홀로웨이 대학(RHBNC)에서 공부했고, 시티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배웠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인디펜던트」 등에서 1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뒤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는 전 세계적으로 1,500만 부 가까이 팔린 『미 비포 유』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 비포 유』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첫 책인 『SHELTERING RAIN(비를 피하기)』 이후 『원 플러스 원』 『허니문 인 파리』 『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더 라스트 레터』 『스틸 미』 등의 소설을 썼는데, 모든 작품이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46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1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에서 4,000만 부 이상 팔렸다. 최신작 『THE GIVER OF STARS』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으며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역자 : 김현수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글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아 라디오 작가로 일하기도 했고, 글밥 아카데미 출판번역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나무처럼 살아간다』 『피터래빗의 정원』 『자기만의 방』 『불을 끄는 건 나야』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식수전쟁2017』 『에너지전쟁2030』 『미라클모닝』 『직장살이의 기술』 『의욕의 기술』 『혼자라도 괜찮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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