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판결문 -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
최정규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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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민은 법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법이 어려워서이기도 하겠고, 가장 큰 이유는 법을 몰라도 세상 사는 데 큰 지장은 없기 때문이리다.독자 역시 대학 교양학부 때 「법학개론」을 한 한기 선택 수강한 것을 끝으로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죄를 짓지 않는 한 법 조항이나 법 내용을 몰라도 어떤 불이익을 받거나 삶에 문제가 초래되지 않았다. 그러다 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3년 전부터 갈등을 빚었던 '검찰 개혁' 때문이었다.

왜 개혁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변은 명확한 듯하지만, 그럼 왜 개혁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꽤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이는 급기야 국회 여야 극한 대치와 몸싸움, 국회 상임위원장 야당 보이콧,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등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며 극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마침내는 진영 논리로 이어져 국민이 양쪽 편으로 갈리어 대립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노정했다. 화합과 일치단결로 나아가도 이루어질까말까한 경제 선진국 자리도 팬데믹과 함께 뒤로만 미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인구와 1인당 GDP를 곱해 산출하는 국가경제력을 10~11위에 걸쳐놓고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젠 우리 뒷 순위를 잇는 나라들의 추격에 우왕좌왕하는 모양새여서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거기에 최근 LH공사 일부 직원의 부동산 불법투기가 적발돼 임기 마지막 1년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힘을 빼놓고 있다. 팬데믹 방역에도 국민 방역 피로감에 정부 불신이 겹치면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선량한 국민만 방역 협조하느라 힘들고, 한편으론 일 못해 수입 없고... 양뺨을 다 맞는 격이다. 한시바삐 코로나 해제를 기다리는 온 국민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올해엔 바캉스를 갈 수 있으려니 하며 은근히 기대했던 다소 여유 있던 국민들도 기대감이 무너지는 느낌에 분노를 정부에 표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왜 사법개혁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질문하면 법조계에 있는 사람도 양 편으로 갈라지고, 법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일반 국민들도 두 편으로 갈라진다. 서로의 의견은 팽팽히 대립되며 과연 이번 정부 임기 내에 가능한 일이나며 회의론적 발언을 내는 법조계 인사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지난 검찰 개혁 때 법원 개혁도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에 자체 개혁과 판사 탄핵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일어난 적이 있다. 지금은 다소 가라앉았지만 이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눈밖에 났던 일부 판사들의 부각된 행동도 있었고, 조용히 법원 자체로 잘 해결하겠지 하는 바람은 역시 무지에서 나온 낙관(독자의 경우)이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법원 개혁은 단순히 사람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무지한 독자는 이 책 『불량 판결문』을 읽곳서야 깨달았다. 독자가 법을 몰라도 어지간히 모른 게 아니었나보다는 생각이 들 때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 책은 법원 내부, 특히 재판 과정을 자주 접하는 최정규 변호사가 썼다. 내용의 대부분은 법 해석과 판사의 자질, 재판 과정의 문제점, 문제 있는 재판의 결과 등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같은 법원의 문제점은 하나씩 하나씩 쌓이고 있던 것이었다.

 


 

이 책은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최정규 변호사가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법정을 향해 일침을 날리는 사회 고발서다. 불의를 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움을 거는 탓에 검경 블랙리스트에 오른 저자는 이번엔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대한민국의 마지막 특권, 재판부에 거침없이 반기를 든다. 입 꾹 닫은 법조계를 대신해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악한 법과 불량한 판결에 함께 맞서는 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을 비롯해 자신이 지나온 부당한 사건을 예로 들며 법정의 뒷모습을 생생히 포착해 이 책에서 부각시켰고, 오늘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불공정하고 불량한 판결을 향해 “그 판결은 유죄”라고 당당히 외친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 대신 상식에 부합하는 법 해석을 기대하며, ‘진짜 공정과 정의’란 무엇인지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본다.

 


 

법은 국회에서만 만들어질까? 우리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나쁜 법의 책임을 입법기관에 물으면 될까?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저유소 풍등 화재 사건 등 사회적 약자의 공익을 위해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워온 최정규 변호사는 “좋은 법도 나쁜 법도 국회가 아닌 법원의 해석을 통해 재생산될 수 있다”고 말하며 악법(惡法)의 책임을 법 해석의 주체인 판사와 법정에게 묻는다.

저자가 변호사로서 풀어놓는 법정의 생생한 뒷모습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왜 불신의 아이콘이 되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재판을 받을 일이 생겼다 치자. 기껏 시간을 내 법원에 방문해도 판사와의 약속 시간은 늦어지기 일쑤다. 판사가 짧은 시간에 많은 재판을 처리하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어떤 판사는 한 시간 10분 동안 무려 40여 건이 넘는 재판을 처리하겠다고 일정을 짰다. 한 재판당 2분 안에 끝내겠다는 말이었다.

책에 따르면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공판 기일이 변경되기도 한다. 선고를 받기까지가 아니라 재판이 열리기까지 1년이 넘게 소요되는 일은 허다하다.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보다 큰 2,500만 원이 법정에 가면 ‘소액사건’으로 치부되고, 그 때문에 판결의 이유가 생략되기도 한다. 어떤 판사는 재판 전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송 결과를 예단하는 듯한 말을 하고, 또 어떤 판사는 긴장해서 답변을 하지 못하는 피고인에게 “귀가 안 들리시나?”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한다.

법원이 이처럼 무례하고 비상식인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과연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대한민국 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들며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법정의 현주소를 공개하고, 사법개혁이 시급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책은 계속해서 지적한다. 저자는 법원의 부조리한 재판과 판사의 직무유기에 가까운 '실패한 재판' 등의 사례를 많이 갖고 있다. 재판 현장에 있는 변호사기에 느낄 수 있는 사례들이다. 패소한 이유가 생략된 판결문,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버젓이 기록된 판결문, 오타 판결문, 기존 판례를 기계처럼 복사 붙여넣기 하는 판결문…. 믿을 수 없지만 지금도 법정에서는 이런 불량 판결문이 꽤 자주 탄생하고 있다고 한다. 온갖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마지막 관문인 법원에서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과연 우리의 사법부가 얼마나 신뢰 있는 기관으로 국민에게 인식될까? 국민의 신뢰 없는 법원이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는 것일 터. 신뢰할 회복한 데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더 이상 재판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 없이 소외되고 약한 국민의 마지막 권리를 지켜줄 법원과 판사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변호사이자 활동가로서 수많은 ‘비상식적인’ 일을 겪어왔다. 그중 가장 화가 났을 때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불량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다. 한 예로 염전 노예 사건 재판부는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쓸 수 있는 지적장애인 명의의 조작된 처벌불원서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인정해버려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를 만들어줬다. 또 10년 치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8,000만 원을 공탁했다고 집행유예 선처를 내렸던 판결은 이후 비슷한 다른 사건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에서 내려지는 불량한 판결은 더 나쁜 영향력을 행사한다. 법원이 늘어놓는 솜방망이 양형이 사업주로 하여금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선택 대신 경제적 이득을 위한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해도 사업주는 집행유예 선처를 받을 수 있고 최대 1억 원만 배상해주면 되는 현실에서, 사업주가 더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걸 현재 법원의 태도로 막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판결은 기존 판례에 의지할 때가 많고, 따라서 한 번 잘못 내려진 판결은 오래도록 남아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고 강조한다. 법원의 현명한 법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안일하고 관성에 젖은 태도로 판결을 내리는 법원의 행태를 경계한다. 그리고 판결에 ‘법관의 치열한 논증’을 담으라 말한다. 국민에게는 그런 예의 있는 판결을 받을 권리가 있다.

많은 법조인들이 법원의 눈치를 보기 급급할 때, 저자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법원의 불량한 서비스와 불량한 판결문에 눈감아선 안 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만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신념으로 그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디딤돌 판결·걸림돌 판결 선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판결문 모니터링을 통해 국민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판결문이 공익적 가치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직 판결문이 공개되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인 탓에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판결문 모니터링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저자는 어려운 법원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국민이 직접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대표적인 대처방안으로 ‘재판 녹음·속기 신청’을 소개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불량 판결을 가장 현실적으로 A/S 받을 수 있는 3심제의 활용, 법관 임용에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 등 명품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현실적인 경로를 모색한다.

매번 법정에 쓴소리를 하는 탓에 종종 “변호사 그만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판사, 시민을 존중하고 우러러보며 ‘존댓말 판결문’을 작성하는 판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아지기를, 이로써 법과 정의를 둘러싼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끊임없이 재판에 잘못을 묻는다.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고 사법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법원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책은 없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판례에 기대는 대신 상식에 맞는 법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는 것. 우리가 목소리를 높일 때 비로소 법원의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저자 : 최정규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공익 법무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로 일하며 부당하고 불공정한 법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에 국민을 대표해 나쁜 법과 불량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2014년 신안군 염전에서 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행해졌던 노예 사건을 긴 싸움 끝에 승소로 이끌었지만, 평소에는 판례상 패소할 것이 뻔한 사건에 맞서는 게 일상이다. 기득권의 논리로 가득한, 틀에 박힌 판례를 거부한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경 없는 마을’ 안산 원곡동에 2012년 원곡법률사무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이주민, 장애인, 국가 폭력 피해자, 공익제보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위해 변호사로서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5년 한국장애인인권상, 2017년 사랑샘재단 제2회 청년변호사상, 2020년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상, 제1회 홍남순변호사 인권상, 제1회 MBN 공익변호사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사)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SBS 〈인-잇〉 필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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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밤 - 나에게 안부를 묻는 시간
유희열.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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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자마자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약칭 '밤그대')가 생각난다. 밤 방송 프로그램, 음악, 에세이라는 키워드가 독자를 옛날 추억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5060세대임을 자백하는 격이지만 이 세대에게 밤그대는 전설과 같은 것이다. 깊은 밤, 아름다운 음악과 따뜻한 사연으로 청취자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요즘 말로 '신드롬'이 생길 만큼 청춘 남녀의 귀를 사로잡았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독자도 마니아는 아니었지만 자주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밤 12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됐던 것 같다. 밤 프로그램이니만큼 조용한 음악이 신청곡이고 방송곡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밤 TV가 자정쯤부터는 끝났기 때문에 TV 무풍지대에서 청소년들과 청춘 남녀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프로그램으로 대단한 인기였다.

특히 출연자의 속삭이는 듯한 아나운스멘트는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출연자와 스탭진만 바뀌면서 이어오고 있다. 최장수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산업사회로 치닫는 한복판에 있어서 젊은 노동자부터 화이트칼러 직장인까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야근하는 곳도 이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일했다는 곳도 많았다. 일의 피로를 풀어주고 음악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최고 프로그램의 대명사였다.(프로그램 방송사 사이트로 들어가 확인해보니 1964년부터 시작(당시 TBC)돼 지금은 KBS 제 3방송에서 유지원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 지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피로감이 큳 요즘이다. 마음의 환기가 절실한 지금, ‘프로 산책러’ 유희열이 일상 속의 작은 여행을 위한 밤의 산책지를 책으로 펴냈다. 카카오TV 오리지널 예능 「밤을 걷는 밤」을 알차게 재구성한 이 책은 도시의 고즈넉한 밤 풍경, 유희열의 산책길 토크, 재기발랄한 일러스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 산책하는 기분이 드는 사랑스러운 에세이다. “익숙한 동네도 밤에 걸으면 전엔 전혀 몰랐던 게 보인다”는 저자 유희열은 그만의 날카롭고 따스한 관찰력으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시의 다정함을 꼼꼼히 비추어 보여준다.

이 섬세한 기록은 무력하고 무거운 마음을 한 자락씩 일으켜 당장이라도 집밖을 나서 자기만의 밤길을 걷고 싶게 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사는 게 문득 견딜 수 없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거리로 나서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힐링이자 마음 치유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책 속의 그가 그랬듯, 돌아오는 길에 독자들의의 마음은 산책을 나설 때와 다른 말을 들려줄 것이다.

 


 

저자는 뛰어난 음악성과 따뜻한 감수성으로 폭넓은 세대로부터 사랑받아온 뮤지션이다. 그가 산책 중의 사색을 담은 에세이 『밤을 걷는 밤』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베스트셀러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이후 22년 만의 신작이다. 카카오TV 오리지널 예능 「밤을 걷는 밤」을 재구성한 이번 에세이엔 『익숙한 그 집 앞』 속의 감성과 「대화의 희열」 속의 연륜이 고루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밤은 하루 중 제 에너지가 가장 반짝이는 시간이에요.”

「FM 음악도시」부터 「스케치북」까지 유독 심야 방송 진행을 자주 맡아온 저자 유희열은 한결같이 ‘밤의 남자’였다.(이 표현은 임경선 작가가 사용했다고) 평소에도 밤에 걷기를 좋아하는 저자는 ‘그냥 아무 준비 없이 같이 걸으면 된다’는 제작진의 출연 요청을 선뜻 수락했다. 독자는 밤 음악방송과 위 사진의 결합으로 '서울 야곡'이 생각나 어쩔 수 없는 5060 세대임이 알려지지만 '꼰대'로부터는 벗어나는 느낌이어서 다소 위로를 받는다.

 


 

그로부터 약 4개월간, 청운효자동, 홍제천, 성북동, 합정동 등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시종일관 놀라고(“와! 저게 뭐야?”), 감탄하고(“와, 여기 이런 게 있었어?”), 쓸쓸해한다(“와……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 특유의 익살과 즉흥적인 감탄사로 오디오를 가득 메웠던 이 영상은 “잊었던 라디오 감성을 고스란히 되살린 힐링 방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대본도, 조명도 없이 오직 ‘혼자 걷는다’는 한 줄짜리 연출로 시작한 〈밤을 걷는 밤〉이 수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붙든 건 ‘유희열의 시선’이 있기에 가능했다.

‘매의 눈’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우리가 무심히 스치는 일상의 풍경들을 한 컷, 한 컷 남김없이 따사롭게 비춘다. 먼발치서 걷는 행인의 등 뒤, 인적 없는 버스 정류장, 담벼락의 풀꽃 등, 지극히 평범한 장면들도 그의 시선이 닿으면 한 폭의 다정한 그림이 된다. 사는 게 문득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찬찬히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자. 잘 안다고 믿었던 길들은 낯선 여행지가 되고, 쓸쓸하고 삭막했던 밤의 길목은 더없이 특별하고 매혹적인 산책지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산책을 닮은 에세이입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제가 좀 앞서 걸어가고 있고 한번 같이 밤 산책을 떠나신다, 하는 마음으로요.”(- 출간 전 저자 인터뷰 중에서)

이 책에는 독자가 잘 아는 길도 있고, 처음 들어본 길도 있다. 독자도 서울에서 50여년을 살았으니 웬만한 곳은 다 아는 편인데 처음 들어본 곳이 여러 곳 있다는데 저으기 놀랐다. 그러나 이내, 1,000만 명이 넘게 사는 서울 구석구석을 다 안다는 것은 직업상 서울을 이잡듯 다니는 사람이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바꿔먹는다. 독자가 유독 서울을 더 사랑해서 골목 구석구석을 일부러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곳이 많다는 것은 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차면 쉬엄쉬엄 갈 수 있지만, 내리막길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가 뒤에서 등을 툭툭 미는 것 같다. 산도, 인생도, 오를 때만큼이나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책 속에 저자가 사용한 멘트가 마치 귓가에 스치듯 들려온다.

 


 

산책하는 모습은 살아가는 모습을 닮게 마련. 담담하고 차분하게 기억을 되짚는 그의 산책기에는 인생을 대하는 그만의 태도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미로 같은 골목길에 갇혀 우왕좌왕하다가도 느닷없이 나타난 옥수수밭에 감동해 넋을 놓고 감상하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라며 짐짓 여유를 부리는가 하면, 숨이 턱까지 차도록 오른 어느 산 정상에서는 “살다 보면 때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지만 순리대로 걷다 보면 어딘가엔 도착하더라”는 어른의 조언을 툭 내어놓기도 한다.

추억이 깃든 동네로 떠난 밤이면 시선은 늘 풍경 너머 아득한 기억을 향한다. 태어나고 자란 청운효자동에서는 텅 빈 골목에 혼자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생각하고, 홍제천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는 “재래시장 가서 과일 한 알 사는 것이 소원인” 어머니를 생각하고, 너무 변해 낯설어진 홍대 거리를 걸으면서는 “별일 없이 만나 시시한 얘기만 나누고 아무 소득 없이 헤어지던” 친구를 생각한다. 그렇게, 홀로 걷는 그의 밤은 잊고 지낸 ‘나’와 ‘우리’의 안부를 묻는 길이 된다.

 


 

예전엔 온통 뽕밭이었다는 잠실을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듯, 오늘의 풍경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기억 속의 사진을 찍어두자고. 길고 긴 밤을 걸은 끝에 그는 또 말했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와 그 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고, 그랬다면 내게 해줄 얘기가 참 많았을 거라고. 이제 그는 그 길을 딸과 함께 걷는다. 딸의 마음속에 언젠가 거짓말 같은 추억이 될 풍경을 새기며. 이 모든 기록은 익숙한 하루를 바라보는 우리 눈에 다른 안경을 씌운다. 지루했던 오늘을 언젠가 사라질 애틋한 풍경으로, 훗날의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덧칠하며, ‘견디는 삶’을 떠나 ‘만끽하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저자 : 유희열

 

28년째 대중음악을 하고 있고, 심야 라디오 DJ를 거쳐 방송인으로 살고 있다. 라디오 [유희열의 FM 음악도시]부터 뮤직 토크쇼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90년대 말부터 줄곧 ‘밤의 진행자’로 활약해왔다. ‘그냥 밤에 산책하면 된다’는 제작진의 간단명료한 설득에 넘어가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에 출연, 약 4개월간 서울의 동네 구석구석을 걸으며 그만의 기민한 관찰력과 오랜 DJ 생활로 특화된 심야 감성을 여과 없이 발휘했다. 평소에도 밤에 걷는 걸 좋아하지만 제작진이 물색해준 다양한 코스를 걸으며 예전엔 미처 몰랐던 서울의 아름다움을 많이 알게 됐다.

 

저자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국내 최초 디지털 모닝 예능쇼 [카카오TV모닝]의 한 코너로 ‘연출 없는’ 예능 〈밤을 걷는 밤〉을 제작했다. 조명도, 대본도 없이 촬영한 [밤을 걷는 밤]은 도심 속 매력적인 산책 코스와 밤 풍경의 아름다움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 “라디오 감성 충만한 힐링 방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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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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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에머슨의 첫 만남은 책을 통해서이지만 어색하게도 그의 저서를 통한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책이나 말 중에 수많은 명언이 있어서 세계명언집을 통해 독자와는 일찌감치 '한줄의 명언'으로 만났다. 명언의 수로 보자면 아마 가장 많은 명언을 올린 인물이 아닌가 싶다. 왜 에머슨의 말과 글이 명언집에 많이 올라 있는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우선 그가 남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뜻이 깊다. 다음, 화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어휘 사용에 자유로울 정도로

적절한 단어를 적절한 위치에 놓는다. 또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놓고 보아도 그 자체의 문장에 모순이 없고, 전체 맥락에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휘력이 풍부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번역된 책이라 번역자가 한몫 거들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에머슨은 이 책 저 책에 등재된 워낙 많은 명언과 명문장을 남겼기 때문에 어떤 명언으로 처음 만났는지 기억에 없지만, 명언 때문에 맺어진 인연임은 틀림없다. 그의 명언은 독자의 인생에도 한몫을 한 셈이 되었다고 독자는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철학자 니체도 에머슨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머슨의 초월주의가 니체의 '초인(超人)'의 사상적 뿌리이다. 니체는 여행길에 항상 에머슨의 책을 가지고 다녔고, 「자기 신뢰」를 읽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상했다고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에머슨의 애독자이며, 마이클 잭슨은 에머슨의 사상을 노래에 녹여내 표현했고,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에머슨의 제자이자 사상적 동지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옮긴이 이종인은 책 뒷부분에 쓴 「해제」를 통해 소로에 주목하는 이유를 『월든』에서 에머슨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으로 밝힌다.

"에머슨의 「자연」이라는 에세이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그 뜻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소로는 구체적 사물과 사건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소로는 『월든』에서 자연의 대상을 우화(寓話)에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대상이 동물이라면 '돼지=탐욕', '여우=교활', '황소=우직' 등으로 인간성의 어떤 부분을 우의적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연의 사물은 인간성과 조응한다는 뜻이다."

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강의의 핵심도 일맥상통한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생각한 대로 따라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견해 속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직관과 열정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최근에는 BTS의 멤버 김남준이 이 사람의 도서를 소개하면서 전 세계 아티스트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렇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면, “너 자신을 믿으라”라고 에머슨은 말한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 독립 이후 가장 활발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특히 그의 에세이 「자기 신뢰」는 수많은 집필 에세이 중 하나이지만 가장 널리 읽히고 미국 독립 이후 개척 사회의 원동력이 될 만큼 미국 사회는 물론 세계 지성사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자기 신뢰」는 제목 자체가 지금은 보통 명사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즐겨 읽는다고 알려져 근래 200년간 가장 널리 읽히는 책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에머슨 사상은 '초월주의'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 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에세이가 「자기 신뢰」이다. 그리고 그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과 자연 그리고 신성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에세이 「운명」은 에머슨의 저서 『인생의 처세』에 첫 번째로 실려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문장이다.

그리고 마지막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유출 혹은 진화의 개념에 따라 인간은 한없이 향상하는 쪽으로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로, 번역 소개되었다. 이번에 현대지성이 발간한 『자기 신뢰』는 앞서 언급한 「자기 신뢰」와 「운명」, 「개혁하는 인간」을 한 권에 묶었다. 특히 「개혁하는 인간」은 꼼꼼한 해제와 가독성 높은 완역을 거쳐,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책에 따르면 에머슨은 대중 강연을 많이 했지만,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동물적 야성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콩코드의 현자'로 불렸으며 19세기 후반 미국 사상계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였고,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통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에머슨을 꼽았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로렌스 뷰얼은 “에머슨의 정신은 미국의 정신이자 미국 그 자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에머슨이 살았던 19세기,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문화와 사상적으로는 영국이나 유럽에 아직도 종속되어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국가 정신이 필요했다. 에머슨은 30대 중반부터 시작한 40년간의 강의로 미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유럽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독립할 것과 미국인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에머슨의 저서는 당대 미국과 영국에서도 널리 읽혔고 또 유럽 대륙에까지 잘 알려져 있었다. 가령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에머슨의 저서 『인생의 처세』를 읽고 에머슨에게서는 세네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깊은 명상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머슨의 글은 처음 읽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축약된 표현을 많이 사용하며, 당시 독자들이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 생략해버리는 불친절함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는 대중 강연을 마친 후 에머슨이 직접 원고를 수정해서 낸 것이라,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횡설수설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특히, 지금껏 대부분 번역본이 시적 표현이나 난해한 사상이 나오면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의역함으로써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문장이 많았다. 그렇다. 에머슨은 친절하지 않다. 그러므로 압축된 시어와 사상을 현대 독자, 특히 문화와 시간대가 다른 한국인 독자들이 읽어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가이드가 필요하다.

이 글을 읽고 인용하는 독자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니체, 그렇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말과 글이, 그리고 행동까지도 닮은 점이 많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독자의 지식으로는 밝혀낼 재간이 없지만 두 인물에 대해 비교 연구한다면 분명 좋은 논문 하나는 탄생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에머슨의 「자기 신뢰」 한 부분을 인용해본다. 옮긴이가 한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장미에게는 시간이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매 순간 완벽하다. 잎눈이 트기 전에 그 온 생명이 약동한다.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해서 그 활동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잎 없는 뿌리 상태라고 해서 활동이 더 적어지는 것도 아니다. 장미의 자연(본성)은 충족되어 있고, 동시에 모든 순간마다 자연을 충족시킨다.

이에 비해 인간은 뒤로 미루거나 기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는다. 뒤로 눈을 돌려 과거를 한탄하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풍요로움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발끝으로 서서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자연(본성)과 함께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거나 강인해질 수 없다."

- p.38~39, 「자기 신뢰」 중에서

 


 

에머슨이 내세우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오버 소울이다. 독자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부분이다. 각 개인의 영혼은 오버 소울에서 유출된 것으로, 그 안에 잠재적으로 오버 소울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기 신뢰는 영혼의 지시에 따라 자연과 합일하면서 사는 것이므로 자연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오버 소울이며 자신의 영혼을 믿고 오버 소울을 통해 일자(一者)와 합일하는 것이 자기 신뢰다.

영혼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하여 운명의 이치를 깨닫고 물질주의에 갇혀 있는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핵심 주제이자 이 글을 통해 교훈 삼아야할 덕목이다. 철학적이라 어려운 듯 느껴지지지만 한편으론 깊은 사유의 재료를 던져주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오히려 반갑다. 이 책은 결국 인생을 살아가며 행해야할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삶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실천사항들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삶의 지침서가 될 만하다. 특히 후미에 실려 있는 이종인 역자의 「해제」가 에머슨과 그의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자기 신뢰의 네 가지 실천 방법

1. 진정한 기도를 올려라

2. 어디를 가든 너 자신이 되라

3. 독창적인 사람이 되라

4. 문명의 본 모습을 파악하라

 


 

저자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1803년 5월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겨우 8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에머슨 가족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머니는 막심한 고생 속에서도 네 아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1817년(14세)에 하버드대학교를 입학하고, 그 후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학업을 중단한다. 1829년(26세) 3월, 보스턴 제2교회 목사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형식적인 종교의식에 실망하여 1832년 목사직을 사임하고 유럽 지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다. 1834년(31세) 콩코드로 이사하여 월든 호수 근처의 땅과 집을 사고,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47년 동안 왕성한 지적 노정을 시작한다. 에머슨의 제자 소로는 이 호수를 배경으로 『월든』을 펴냈고, 에머슨 자신도 이 숲과 호수를 산책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고 안식을 누렸다.

1838년(35세) 하버드 신학대학원 졸업반에서, 형식적이고 영감 없는 설교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자 목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서 즉각 이단 취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에머슨은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40년간 총 1,500회 이상의 강연을 하면서 수많은 미국인에게 오롯이 자기 힘으로 우뚝 서는 삶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는 미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유럽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독립할 것과 미국인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머슨은 대중 강연을 많이 했지만,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동물적 야성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콩코드의 현자”로 불렸으며 19세기 후반 미국 사상계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였고,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통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에머슨을 꼽았다. 대표 저서로는 『자연』, 『제1 에세이』, 『제2 에세이』, 『인생의 처세』, 『대표적 인간』, 『사회와 고독』 등이 있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옮겼으며, 최근에는 인문 및 경제 분야의 고전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진보와 빈곤』, 『리비우스 로마사 세트(전4권)』, 『유한계급론』, 『공리주의』, 『걸리버여행기』,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중세의 가을』, 『마인드 헌터』 등이 있다. 집필한 책으로는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 고전 읽기의 참맛을 소개하는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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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생존 수업 - 인공지능 시대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조중혁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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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많은 경제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대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1년 넘게 맹위를 떨친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안책도 뚜렷하게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형국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가장 실감나게 하는 인공지능(AI)은 우리 실생활에 파고들면서 우리 일을 도와 삶이 편리해질 것으로 믿었던 예상은 빗나가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일자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실감하기도 전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AI는 단순 일자리뿐만 아니라 판사의 재판, 의사의 수술 등을 파고들고 있고, 심지어는 창조 상상력의 최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을 내보이고 있다.

이처럼 각계 분야에서 우리의 일을 편리하고 신속하게 도와줄 줄 알았던 AI는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예견하고, 대비하고 있던 산업계 각 분야에서 패닉 상태에 이르는 등 심각한 실정이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 있고 그 속도와 파급력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존속성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점점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고, 언론에서도 어떤 일자리가 매해 얼마나 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사라질 것인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며 이야기한다.

 


 

생각하는 기계는 사람에게 위협이 된다. 최근 들어 사람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기계가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빠르게 되었고, 이대로라면 몇십 년 내로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사람이 공존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 『인공지능 생존 수업』은 엄밀히 말하면 AI를 인간이 다루기에는 이미 수위를 넘어서 있어 '공존'의 법을 말하고 있다. 저자 조중혁은 AI가 인간의 존엄성마저 파괴하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을 집필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4개의 장으로 구분해 '생존 수업'을 진행한다.

 

PART 1 인공지능은 어떻게 인류를 바꾸고 있는가?

PART 2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PART 3 인공지능,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PART 4 인공지능 시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책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상업화된 컴퓨터를 생산한 IBM은 1958년 자신들의 컴퓨터를 홍보하면서 “이미 전기를 이용해 계산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다. 컴퓨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서서히 진화할 것이다. 컴퓨터는 사람의 창의력과 상상력, 수학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발전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또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가 쓴 『창조의 엔진』은 시대를 앞서간 예언서로 불과 28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IBM의 주장과 다르게 “분자 조립 기계와 생각하는 기계는 사람과 생명에 근 본적인 위협이 된다. 사람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기계가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빠른 현실에 비추어볼 때 아마도 몇십 년 내로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이러한 기계와 사람이 서로 공존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인간의 존속성에 대한 우려를 꺼내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사회적 존속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실제로 언론에서도 어떤 일자리가 매해 얼마나 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얼마나 사라질 것인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 물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쪽에서는 그 숫자를 제시한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과 복지 등을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개인에게는 별 이득이나 의미가 없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을지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가 많을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의 일자리는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며 그것이 내 일자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직업이 사라진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왜 사라지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며 "이유를 알아야 현재를 예측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이 책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거품을 뺀 후 그 특징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떻게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지"를 모색하고 있다. 또 일자리 감소에 대해 은행 창구 업무자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빠질 필요는 더욱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유는 "은행 창구 업무가 불필요하게 될 때 창구 업무 외에 다양한 업무가 생긴 것처럼,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교육하거나 훈련시키는 일자리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생긴다"는 희망적 미래를 내놓는다. 이와 더불어 이런 업무를 통해 연쇄적으로 생기는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며,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창구 직원이라면 어떤 서비스로 자신을 특화시킬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고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에 대한 의문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2년, 중국에 비해 1년 정도 발전이 늦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중국의 속도가 놀라울 정도"라며 경계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이며, 중국은 14억이 넘는 인구에서 만들어내는 엄청난 데이터와 함께 체제의 특성상 개인정보 보호 등의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음에 우려를 표시한다. 이 점이 발전 속도가 미국을 위협할 정도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안면인식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미국을 넘어섰으며 미국 국가기술표준연 경진대회에서 2018년부터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중국 업체였음을 주지시킨다.

 


 

그렇다면 이토록 위험한 AI가 차후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왜AI 개발을 서두르는가에 대해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소비자는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기술이라고 못박는다. 때문에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조금 길게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 3대 인공지능 전문가 중 한 명인 앤드류 옹(Andrew Ng) 박사처럼 직접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 "벌써부터 화성의 인구 과잉 상태를 우려하는 것과 같다"는 반응을 소개하며 인공지능을 만들 때 물리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인공지능이 하기 가장 어려운 일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일을 만드는 일'과 '일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구분되는데 약한 인공지능은 지금 막 꽃 피우는 인공지능으로 알파고처럼 특정 영역에서만 작동한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모든 영역에서 지능을 가지는 것인데 이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인간처럼 고차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아직 없을 뿐더러 기술적 가능성도 입증된 것이 없기에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달했다. 그래서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과거에 비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제 가능하게 된 것이 많아진 것이지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신중한 낙관론을 보인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막연한 환상은 무모하고, 반대로 무시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확신한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장단점을 명확하게 알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해 '열린 부분'과 '닫힌 부분'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쉽지만 인상적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우리가 준비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에 의해 세상이 변하는 것은 위기입니다. 위기는 해로움이나 손실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위기와 기회를 줄여서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며 위험에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으로 수없이 생겨나는 일자리에서 기회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누가 빠르게 잡느냐이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기회를 엿보면 됩니다. 준비를 하고 도전을 하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 : 조중혁

 

국내 최초의 인터넷 전문 모임이었던 ‘나우누리 인터넷 스터디포럼’의 대표 운영자 출신이다. 1996년 인터넷 전문지였던〈월간 INTERNET〉에 칼럼을 기고하며 IT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국내 최대 프로젝트였던 서울시청WWW.SEOUL.GO.KR 포털 사이트의 초기 메인 기획자로 일했다. 이 포털 사이트는 UN에서 선정한 전자정부 세계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이동통신사 본사에서 기획전략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자문위원 및 평가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심사위원,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경기도 4차산업혁명위원, 경기도 인공지능 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인터넷 진화와 뇌의 종말》이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올해의 우수교양도서 2013’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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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김혜진 지음 / 원더박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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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제목에 이름을 올린 압둘와합이란 인물이 '시리아' 사람이어서다. 독자에게 시리아는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세계사와 세계지리 시간에 중동에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며, 이슬람 종교 국가라는 사실 정도였다. 이후 로마제국에 관심이 있어 로마에 관한 책들을 읽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매료됐고, 그가 쓴 『십자군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시리아라는 나라는 머릿속에 완전히 인지되었다.

그러나 세상 변화는 알 수 없는 일인가 싶다. 그들이 민주화 요구를 기화로 내전에 돌입했으며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떠도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십자군전쟁 때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살라딘(살라흐 앗딘)이라는 유능한 지도자 덕에 무사히 극복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십자군 이야기』에도 지금의 지명 다마스쿠스와 알레포가 나온다. 그때의 지명을 8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도시들은 그 이전에 이미 들어서 있었다. 서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온 압둘와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그들의 영화(榮華) 때문이 아니라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독자의 결례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독자는 지금 치르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백과사전을 들여다봤다. 시리아 내전으로 집도, 가족도 잃고 떠도는 난민들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내면서 읽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의 퇴출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돼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 주변 아랍국 및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 등으로 비화되며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이다.

책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비롯됐다.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에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는 알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해지면서 점차 무장투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8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의 교외 지역에 생화학무기인 사린가스 공격을 가해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리아 사태는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다르게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시리아 인구 2,200만여 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임에도,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Alawi)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이란과 적대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면서 사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혼란상을 틈타 세력을 키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정부군·반정부군·IS 등이 3자가 복잡하게 대치하는 등 나라 전체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다.

 


 

국제정세는 것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나 풍전등화 신세다. 민주화 요구가 내전으로 비화되면서 시리아의 비극은 시작된다. 주변국은 물론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지금은 다소 몰락했지만 아직은 강국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은 러시아가 각각 상대 진영을 도우면서 전쟁은 알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는다.

2014년 9월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으며, 2015년에는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사태는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2017년 4월 4일 시리아 반군 거점 지역인 이들리브 주 칸셰이쿤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나 주민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미국은 참사 이틀 후인 4월 6일 시리아의 샤이라트 공군 비행장을 향해 59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미국이 IS가 아닌 정부군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고조되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2017년 7월 양국 정상(트럼프 대통령-푸틴 대통령)의 휴전 합의로 가라앉기도 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등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내전이 일어난 2011년부터 2018년 9월까지 36만 4,792명이 사망했다. 여기에 간신히 생존한 사람들도 난민이 돼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데, 실제 내전 발발 전 시리아 인구는 2100만 명이었으나 현재 시리아 난민은 그 절반이 넘는 1,200만 명에 이른다. 특히 시리아 내전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쏟아지는 시리아 난민들을 감당하지 못한 주변국들이 점차 국경을 봉쇄했고, 이에 시리아인들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유럽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 2015년 9월 터키 보드룸의 한 해수욕장에서 시리아에서 탈출한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국제사회에 난민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압둘와합이 겨우겨우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일상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그의 모국 시리아는 이렇듯 전쟁에 휩싸인다.

독재자 아사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정부가 이를 폭력으로 탄압하면서 결국 반군(자유시리아군)이 생겨나고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초반에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반군이 승기를 잡는 듯 보였으나,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국과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와합의 고향 락까는 그 악명 높은 IS의 본거지가 되고 만다. 와합의 가족은 IS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시리아 북부 지역의 유력 가문이기도 했던 와합의 가족은 그렇게 난민이 되어 지금 터키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의 전쟁과 이로 인한 난민 문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와합은 시리아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 모금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믿을 만한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이 책 저자의 말에 와합은 바로 단체를 만든다. 그게 바로 현재 시리아 난민 구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헬프시리아’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씨앗이 되어 진짜로 시민 단체가 만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이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헬프시리아는 그동안 작은 규모의 단체임에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냈다. 큰 규모 국제기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규모의 난민 캠프를 찾아 구호 활동을 펼쳐 왔는데,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비행기표 값을 아끼기 위해, 와합이 국내 취재진이나 연구진의 현지 가이드 일을 하게 될 때 며칠씩 따로 시간을 내어 인근에서 적절한 물품을 사 필요한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현지에서 물품보다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학교 세우기’에 집중하여, 2019년에는 시리아 쿠부리 지역 난민 캠프 근처에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은 시리아에서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프랑스로 유학 갈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프랑스가 아닌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쿠스 거리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던 한국인 유학생을 우연히 도운 것을 계기로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와 돈독한 관계가 되어, 어느샌가 ‘한국인들의 대부’와도 같이 되어 버린 압둘와합. 시간이 지나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와합은 그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러다 그때까지 한국으로 유학 간 시리아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내가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힌다.

가족, 지도 교수, 선배 변호사 들의 만류에도 기어코 선택한 한국행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출발은 막막하기만 했다. 시리아와 한국은 수교국이 아니라 국가 장학금은 신청도 할 수 없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면전에서 “솔직히, 나는 이슬람과 무슬림이 싫어. 다른 학교 다른 교수님을 찾아가 보게”라고 이야기하는 교수도 있었다고 압둘와합은 술회한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비자 만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한 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받았고, 그렇게 한국에서 법학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와합은 지금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랍 법과 한국 법의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는 압둘와합과의 인연이 우연이라고 말한다. 압둘와합이라는 이 청년은 시리아에서 명문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엘리트였다. 시리아와 한국 사이의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은 전혀 만만치가 않았다. 심지어 그사이 압둘와합의 모국 시리아는 민주화 혁명에 이은 전쟁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그의 가족도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은 물론이다.

이 책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는 평범한 중학교 교사가 만난 한 시리아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압둘와합이라는 친구를 두면서 비로소 무슬림과 난민, 이주민 등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친구의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와합과 함께 ‘헬프시리아’라는 구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과의 만남에서부터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압둘와합이 겪은 여러 이야기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시리아인의 시각으로 '시리아 이야기'는 시리아의 역사·문화·정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아주 소중한 글이다. 한국에는 늘 서구의 시선으로 소개되고 있는 시리아와 중동에 대한 이야기가 못내 불편했던 압둘와합은 이번 기회를 맞아 최선을 다해 자국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교차로에 정확히 위치한 시리아의 입지 조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도시 다마스쿠스, 로마 제국에 기독교 전파의 싹을 틔운 시리아 출신 황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독자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시리아가 이슬람 국가로 기독교나 불교 등 타 종교에 배타적인 나라라고 알았다. 독자가 전혀 모르는 시리아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에 나와 시리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제사회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 큰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압둘와합의 이야기에 근거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를 실었다. 시리아의 역사와 문화, 복잡한 현대사와 가슴 아픈 현실을 차근차근 정리한 이 글을 통해, 낯설지만 우리와 묘하게 닮아 있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 : 김혜진

 

시와 댄스를 사랑하는 중학교 국어 교사. 떠밀리듯(?) 시리아 구호 인권 단체 헬프시리아의 창립 멤버가 된 이후, 8년 가까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행동이 느리고 에너지도 부족한 편이나, 일단 뭔가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기는 한다. 우연히 시리아에서 온 와합과 만나 친구가 되는 바람에 난민·차별·인권 문제, 그리고 세계 시민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교단에서는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기가 쑥스러웠다. 글을 통해서라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썼다.

압둘와합 알무함마드 아가(Abdulwahab Almohammad Agha).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이자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에서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이 보장된 프랑스 대신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한국을 선택해, 한국에 온 시리아인 유학생 1호가 되었다.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공부하며 ‘아랍 법(이슬람법 포함)과 한국 법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평화로운 시리아로 돌아가 집 앞 맑은 유프라테스강에 발을 담그고 꿀같이 단 수박을 먹으며 한국에서 시리아를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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