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그 숨은 숨결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앤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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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시에 대한 마종기 시인의 애착은 눈물겹다. 먼 미국 땅에서 말도 제대로 잘 하지 못했을 텐데 험난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괜찮은(?) 의사로서 바로 설 때까지 그는 시를 놓지 않았다. 시가, 우리말로 쓴 시가 유일한 위안이었고 탈출구이기도 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그의 선친 마해송 작가는 잘 알지만 마종기 시인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태다. 그런데도 몇 년 전 어디선가 그의 시를 읽은 기억이 있어 찾아보았다. 아, 나태주 시인이 쓰고 엮은 책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시』에서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책에 마종기 시인의 시 한 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시가 바로 「바람의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찾아보니 조용필의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도 마종기 시인의 이 시를 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시인의 허락을 받았다.

그가 이번에 산문집으로 본격 독자 앞에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앞서 독자가 시인을 너무 몰랐다는 미안함, 그의 미국 생활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얘기를 듣고 보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죄송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이런저런 미안함을 갚기 위해서라도 그의 시를 사랑하고 싶다.

 


 

시인 마종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학가인 마해송과 현대무용가인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지금 한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에는 그가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시적 감성을 자극했던 수많은 예술 작품과 모티프들, 그 눈부시던 감동의 순간들과 삶에 대한 성찰, 모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했던 이들과의 예기치 못했던 작별 그리고 시의 행간 속에 고여 있던 뜨거운 눈물에 대한 이야기가 숨은 듯 담겨 있다.

1966년 여름 그는 공군 군의관 때 제대를 앞두고 재경문인 한일회담 반대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군본부 광장에서 체포돼 몇 달 후 미국으로 가야 했다.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을 찍고 떠났다. 미국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출구 없는 감옥이었다. 매일 새로운 생명을 받아내고 또 죽어가는 환자를 보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시신 부검에 참여하며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의 육체를 손상하는 것을 응시해야 했다. 혹독한 수련의 시간 속에서 그는 틈틈이 시를 쓰고 휴일마다 근교의 미술관을 찾아 고독과 향수를 달랬다. 오로지 모국어로 쓰는 시와 예술만이 구원이었다고 술회한다. 아는 사람은 없고 언어도 불편한 타지에서 극한의 인턴 생활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질 때마다 한글로 된 시를 갈망했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마음이 담긴 시는 더욱 빛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지에 있으면서 고국의 언어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고 자는 이로 인해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저자는 첫 번째 이야기로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새겨보며 담담하게 글자로 표현했다. 1장(독자가 편의상 '장(章)'으로 표현함)에서는 한국과 미국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감정들, 가졌던 생각들을 담백하게 들려준다. 2장은 예술에 대한 저자의 여러 생각들을 보여준다. 여러 장르의 예술에 심취하고 온전히 즐기는 저자만의 방법들이 담겨 있다.

3장은 문학과 의학 그리고 종교, 4장은 행복한 여행자란 제목으로 문학, 의학, 종교, 여행과 관련된 저자의 단상들이 주를 이룬다. 마지막 5장에서 저자는 예술이 직면한 위기를 조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저자만의 의견을 밝힌다. 시인 마종기를 수십년간 위로하고 지켜준 수많은 예술 작품과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준 예술가들을 만나기 위해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간다.

 


 

시뿐 만 아니라 미술과 음악을 즐기는 저자의 모습에서 독자로서 배울 점이 매우 많다. 그림 앞에 섰을 때 그림을 이해하고 해석하기보다는 즐기냐 아니냐로 접근하기에 부담감이 없다. 즐길 수 있으면 즐기고 아니면 그림 앞을 떠나면 되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할 때에도 레코드된 음악만 듣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의 생음악을 들으려 한다. 오선지 위의 음악에 생명을 불어 넣는 연주자들의 긴장, 초초, 집중, 노력까지 보면서 듣는 것이다. 미술과 음악의 핵심을 꿰뚫는 감상법이란 느낌을 받는다. 시인 마해송은 모든 예술을 대할 때 직접 부딪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야 감상법도 자신만의 감상법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 책은 저자의 예술에 대한 가치관뿐만 아니라 문학, 의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공포로 다가오던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 제1실에 전시된 25개의 동일한 크기의 자화상들, 오슬로의 고풍스러운 뭉크미술관에서 본 화가의 고통,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본 로댕의 조각품〈키스〉나 마크 로스코의 그림들, 비엔나에서 본 화려 방창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요염한 여인들과 그들을 둘러싼 찬란한 황금빛 색채. 이들 외에도 마종기를 압도한 예술가는 누구였으며 그들의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또한 예술적 영감의 세계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와 그 시절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생소한 오페라 문화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나이와 장르를 초월해 예술적으로 교감을 나눈 사람들과의 이야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의 인연, 문학작품과 의학상식, 미국 현대시의 비밀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오페라 하나에 완전히 감전되어서 그 후부터는 1년에 한 번이나 두 번 뉴욕에 갈 때마다 오페라 티켓을 미리 예약해서 관람했고 그런 날들은 내가 은퇴하기 전까지 거의 30년 세월 동안 반복되었습니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말고 내가 지켜본 오페라 극장은 단 하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오페라하우스로 마이어베어의 ‘예언자’라는 오페라였지요. 내가 꼭 그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가고 싶었던 이유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 유럽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바로 이 오페라 극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들었고 무척 좋아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그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19세기 말부터 10여 년 동안 맡아 오페라단의 수준을 최고급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그의 숨소리는 어떤지 그의 땀방울은 어디에 떨어졌는지를 보고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 「오페라의 황홀」 중에서

 

무엇이, 지친 우리를 이보다 더 위로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선한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서 다정하고도 결곡한 목소리로 쓰인 글들의 강력한 힘에 대해 순정한 존경을 전한다고 말하는 유희경 시인의 추천사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며 그가 전하는 묵직한 물음 앞에 목이 멘다는 이병률 시인 그리고 선생의 글의 읽으면서 다시 북촌의 언덕길로 그리고 명륜동과 올랜도로, 그 어느 날로 여행을 떠난다는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봄날 아침에 듣는 투명한 음악 소리처럼 신선하다.

 


 

이 엄혹한 시절, 코로나19 팬데믹의 비극이 온 세상을 뒤덮은 처참한 암흑에서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비명 속에 죽어가고 시신을 덮을 관도, 묻을 땅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지구. 살아 있는 사람조차 마주 보고 담소도 주고받지 못하는 날들이 도대체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피하려고만 하는 이 암담한 외면 속에서 무슨 문학이, 무슨 음악 듣기가, 무슨 그림 구경이, 또 무슨 지난날의 동서남북 여행기가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야단을 치는 듯해서였다.

거기다가 내가 즐기는 음악이나 그림 감상이나 연극, 영화, 무용 공연이나 잡독의 독서가 뭐 그리 대단한 수준이라고 이 나이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낯간지럽게 책으로 출간하느냐는 질책이 귀에 들리는 듯해서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내게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사실이다. 바로 이렇게 경계가 다 막힌 경험해보지 못한 창백한 세상이기에, 치기 어린 내 생의 미로가 어쩌면 누구에겐가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잠시나마 푸근하고 편안한 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예술의 전문 분야를 전공하고 깊이 공부한 분의 학문적 분석이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의 생활 중에 만나는 예술의 즐거움,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살면서 나를 살려준 고마운 은인. 젊은 나이에 고국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했던 진한 외로움을 달래주고 힘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준 그 모든 예술이나 독서나 여행을 그냥 친한 이에게 말하듯 순서도 곡절도 이유도 없이 줄줄이 벌려놓은 게 이 책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꽃 몇 송이를 키우는 볼품없는 꽃나무 화분이고 내가 평생 키운 꽃은 의사라는 내 생업과 밤잠을 설치면서 만들어낸 시 몇 편이 전부인데 그 꽃 화분을 이렇게 오래 편하게 살게 해준 흙과 비료와 단비 같은 물은 바로내가 즐기는 음악 듣기고 그림 보기이고 독서이고 믿음이고 여행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마종기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의 초빙 교수로 본과 2년생에게 새 학과목인 ‘문학과 의학’을 5년간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우리 얼마나 함께』 (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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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노동조합
김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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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단편소설이 많지 않지만 한때 한국문학 단편소설은 전성기라 할 만큼 많은 단편이 쏟아져나온 때가 있었다. 독자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에는 70년대 전후라고 한다. 그때는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격변기이기도 했고, 워낙 가진 게 없는 나라라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풍부한 노동력을 이용해 24시간이 모자라게 일해 수출해야 할 때다. 피폐해진 농촌을 떠나 젊은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가던 때였다. 저임금이지만 일자리는 많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너나 없이 도시로, 특히 서울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일손이 모자라는 공장에서는 각종 혜택을 앞세워 농촌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다. 저임금에 복지혜택도 지금에 비하면 말할 수준도 못 되지만 농촌의 유휴인력은 이것저것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도시의 공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간혹 휴식시간에는 라디오의 음악이나 책 한 권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한 권에 있는 긴 장편소설은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안타까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단편소설은 분량이 200자 원고지 70장 내외로서 짧은 시간에 한 가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바쁜 대한민국 사회에 적절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90년 이후에는 단편소설보다는 장편소설, 그 이상의 시리즈로 나오는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소설이 많이 출간된다. 이야기가 압축된 단편보다는 더 긴 시간 삶에 대해 생각하고 스토리에 빠질 정도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이리라. 지금은 그래서 작가들도 단편보다는 장편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물론 단편은 단편대로, 장편은 장편대로 소설의 맛이 다르다. 그러나 독서 시간을 생각해보면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장편을 읽는 것이 독자들 마음에 맞는 것 같다. 이 소설책 『소비노동조합』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저자 김강의 두 번째 소설집이라고 한다. 저자의 첫 소설집은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라는 제목으로 다채로운 상상력을 보여줬다는 문단의 평을 받았다. 이 소설집도 다양한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 역시 저자의 상상력은 두드러진다. 무인도에 홀로 낙오되어 하루하루를 버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월요일은 힘들다」에서부터 기본소득제가 시행되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표제작 「소비노동조합」, 통일 이후의 사회는 어떤 식으로 다가올 것인지를 그려낸 「와룡빌딩」 등 현재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는 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담았다.

 


 

표제작 「소비노동조합」은 기본소득제가 시행된 이른바 '황금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2069년 지금으로부터 48년 후다. 소설 속 인물은 기본소득제도 하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도된 생산과 소비의 역학, 채권자와 채무자의 권리를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낸다. 이 같은 배경을 두고 고리대금업자를 화자로 내세운 설정이 흥미롭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채업을 운영하는 ‘나’는 일관된 원칙으로 채무자들을 만난다. 그런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인물인 형진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다.

형진은 ‘나’에게 빌린 돈으로 친구들과 기본소득 인상을 주장하며 기본소득부 장관 집무실을 점거하는 사건을 벌인다. 결국 체포돼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서는 자신의 직업이 ‘소비자’임을 강변한다. 부정수급, 도덕적 해이 등을 말하면서 반대한 그들의 불로소득과 도덕적 해이 등을 눈감는 현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 어차피 벌어진 일은 벌어진 것이고. 이름이 그게 뭐냐? 소비노동조합이. 소비자는 뭐고 노동조합은 또 거기에 어울리기는 하고? 차라리 시민이나 국민, 연맹이나 회의, 연대 뭐 이런 말을 써야 하는 것 아니야?

― 소비자 맞고요. 노동조합 맞거든요. 제 직업은 소비자거든요.

기본소득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 녀석이 물었다. 먹고 입고 자고, 사채도 빌리고 그러는 것 아니냐 대답을 했다. 먹고, 입고, 자는 비용은 다시 누구에게로 가느냐 녀석이 물었다. 당연히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입을 것을 만드는 사람들, 잘 곳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 아니냐 대답했다.

― 글쎄 그 사람들이 누구냐니까요?

녀석은 그 돈이 다시 돌고 돌아가는 곳이 결국은 가진 자들이거나 재벌들이고, 그들이 세금이라는 명분으로 내어놓은 돈으로 다시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소비노동조합」 중에서

 


 

「월요일은 힘들다」는 제목만 보면 직장인의 '월요병'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소설 속 무대는 무인도다. 요일도 자신이 직접 정했다. 섬 밖의 현실 속 요일과 같지 않을 것이다. 힘이 드는 이유는 그가 섬에서 생존을 위해 하는 일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실제 이 소설의 재미난 지점은 이런 설정과 황당한 가능성을 걱정하는 장면들이다.

 

책이라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정말 고맙군.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이었어. 이렇게 말하면 될까? 시대와 세대, 지역을 뛰어넘는 고전이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고?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찰과 인간애를 체화해 비로소 완벽해진 나, 그걸 원하는 거야?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외딴섬에서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누군가 묻겠지. 네, 우연히 파도에 밀려온 묵자를 읽으며 그의 겸애사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되는 거야? 혼자 지낸 이 섬에서 그것을 배웠다고? 어느 나라 글자인지도 모르는 그 책으로? 책, 그래, 어쩔 수 없이 책이라면 두꺼웠으면 좋겠다. 불쏘시개로 쓰려면 두꺼운 편이 낫다.

- 「월요일은 힘들다」 중에서

 


 

내 생애에 통일된 한반도를 보다니. 모두들 꿈만 같다고 생각했다. 백 년, 반목과 굴욕의 역사를 지우고 영광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그해 팔월부터 십이월까지 전국은 축제의 공간이었다. 국방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복지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북한의 천연자원을 이용한 재화 생산의 증가와 비용의 감소는 기업의 발전을 이루고 북한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과 설비의 수요 증가는 일자리와 임금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했다.

- 「와룡빌딩」 중에서

 

등이 굽은 늙은이가 있었다. 바오밥 나무를 닮은 유목의 꼭대기에 앉아 아래를 지나가는 무리를 향해 무어라 소리쳤다. 고개를 들어 늙은이를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무리는 유목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갈라졌고 유목을 지나자 다시 합쳐졌다. 물기둥을 향해 물살을 거슬러 나아가는 무리였다. 물살을 거슬러 가다 물기둥을 만나는 것, 물기둥과 함께 내려가 황금빛 자갈을 흩고 지나가는 것, 그리고 다시 물기둥의 끝자락에서 출발하는 것. 전통이냐 본능이냐 이도저도 아니면 숙명이냐. 따져 묻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 「도르다」 중에서

 


 

문학평론가 허희는 책 뒷부분에 「발문」을 통해 저자 김강에게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1907)에 준하는 장편소설 집필에 조만간 착수해야 할 것 같다"며 "『어머니』와 닮은 소설을 쓰라든가,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려는 게 아니다. 김강이 매달려왔고, 매달리고자 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고민'을 펼쳐내기에 단편은 어울리는 틀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덕담을 준다. "김강이 내비친 흥미로운 주제 의식과 폭과 깊이만큼 앞으로 그가 전개할 장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저자 김강은 「작가의 말」을 통해 "첫 단편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등단을 하고 나서 소설을 업으로 삼아도 된다는 허략을 받았다"며, "이제는 조금 부지런해지겠다. 나의 언어를 건넬 수 있는 다양한형식을 알게 되었고, 협업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면, 누군가의 겨드랑이에 양 팔을 넣어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알게 되었다. 부지런함으로 이 앎들을 증명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자 : 김강

 

부산에서 태어났다. 2017년 단편소설 「우리 아빠」로 심훈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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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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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심리스릴러, 타임슬립. 요즘 국내소설도 무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소설이 인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일이다. 예전 범죄추리소설은 심리스릴러로 진화하고,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던 미래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SF(Science Fiction) 소설, 타임슬립 소설로 확장됐다. 양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훨씬 풍부해진 느낌이다. 소설가들의 상상력이 소재나 배경으로 나오는 우주공간, 시간개념을 잘 인지할 수 있는 듯 자유자재로 상상력의 날개를 편다. 독자들도 게임의 영향인지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가나 독자나 과학적 지식이 크게 높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인터넷이 아닐까 독자는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3D 등 작가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끌어갈 수 있는 소재가 널려(?) 있어서일 것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소설은 어차피 픽션인데 배경이 우주로 가든 시간을 뛰어넘든 크게 저항이 없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에 독자도 공감한다. 더욱 소설이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다만 독자가 허무맹랑하다고 저항감을 보인다면 당연히 인기를 끌지도, 유행이 되지도 않을 터이니 사회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저자와 독자의 상상력에 맡길 일이다. 이 소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도 타임슬립 소설이다. 제목처럼 과거여행을 하는 여행사가 일정한 요금을 받고 과거여행을 주선해 '캡틴', '세일러'와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온다는 줄거리다. 모두 10개의 소설이 실렸으니 연작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옴니버스와는 결이 다르다. 여행사가 모두 같고, 과거로만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이라 해야 할 듯하다.

소설마다 에피소드 한 개가 있어 각각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독립적 이야기를 끌고 간다. 특별한 여행사에 과거여행을 가는 여행객도 평범하지 않다. 대부분 과거로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시절 그 곳에 가서 상황을 바꾸려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계단에 툭 떨어진 명함 한 장. 언제, 어디든 떠나고 싶다면 오늘 당장 과거로 떠날 수 있다고 말하는 여행사 명함이다. 여행을 안내하는 세일러와 고객을 쥐락펴락하는 캡틴을 만나 여행상품을 고르고, 비용을 지불하면 그것으로 과거여행 준비는 끝.

그러나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시간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강제귀환을 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행사 상품도 특별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고객들의 여행 동기도 다양하다. 엄마의 결혼을 막으려는 딸, 과거의 어떤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교수, 반백 년 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고 싶은 오빠의 이야기까지. 이 책을 보는 순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하나의 팁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며 자유롭게 여행하던 평범한 일상은 사라졌지만, 인간들은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인간 본성이 그런 것 같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 호기심이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다는 인류학자의 연구 분석도 있다. 이 호기심으로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해온 게 사실이다. 팍팍한 현재를 벗어나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고, 또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여행도 있고, 탐험 수준으로 미지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은 틀림없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바로 과거여행이니 더 호기심을 자극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과거로 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가기 때문에 그 당시 그곳에서는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우리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현재를 모두 알고 있지 않겠는가.

 


 

과거란 누군가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갔던 모두는, 또 우리에게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18~20세기 근현대부터 홍콩, 프랑스, 북대서양 바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대하는 자세가 바뀔 수 있다면... 이 점 또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이다. 내게 과거여행 왕복 티켓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갈까?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 '히라이스(HIRAETH)'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라고 책 맨 앞부분에 밝혔다. 책 제목만 봐서는 일본어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단어다. 사실 이 여행사로 돈을 번 사람은 일본에서 재일교포라고 차별을 받는 사람임이 에필로그에서 암시된다. 그렇게 유추하다보니 핑크빛 책표지, 각 장마다 구분되는 곳에 있는 햇살무늬에도 의심이 간다. 소설에서도 일제강점기 시절로 돌아가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일본 소설이라는 유추도 지나치지 않을 터, 햇살무늬는 편집진의 실수인가, 의도인가 사뭇 의심스럽다. 물론 우리 한국사람을 비하하거나 옹졸한 사람으로 소설 속에서 표현하지 않아 지나친 억측이길 바란다.

 


 

“거기서 나오는 조명은 빛이고, 안에 하얀 가루는 소금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리고 거스른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빛과 소금처럼 필수 불가결의 요소지요. 사람들은 과거는 무조건 잊고 미래를 맹신하고자 합니다만,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때로는 과거를 통해 미래가 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미래를 위해 현재가 달라지기도 하죠. 아마 여러분들께서도 한순여 고객님께 그런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이 단체 여행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까?”(p. 320)

 

저자 : 고호

 

일꾼, 이야기꾼, 때로는 상상꾼.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재미없는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밥벌이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의정부전국문학상에서 수상한 바 있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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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경제 - 과거 위기와 저항을 통해 바라본 미래 경제 혁명
제이슨 솅커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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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는 우리나라 경제에도 막심한 타격을 입혔다. 내수 경제도 방역에 꽉 막혀 1년 이상 정지 상태이니 경기가 좋을 리 없다. 무역수지도 국경 봉쇄 때문에 아무래도 원할치 못하다. 코로나 때문만이라면 지금처럼 심각한 상태에 이르지는 않을 텐데 미중 무역전쟁이 여전하고, 중동발 전쟁 소식도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는 뉴욕 등의 방역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아직 진행중이고 올림픽 개최를 강행하려는 일본의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새 정부가 취하는 것을 예의주시하는 상태이고 점점 경제 압박이 심해지는 북한은 이제 문재인 정부에 막말까지 해댄다. 어느 하나 얼굴에 웃음 띠게 해주는 뉴스는 들리지 않는 현재 국제정세가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미래 경제학자로 세계적 신뢰감을 얻은 제이슨 솅커의 최신작이 화제다.

제목도 『반란의 경제』로 뭔가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는 듯해 읽는 것마저 두려울 지경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속 국제정세와 국내 방역 상황이 세계 인류의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하는 실정이다. 누구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위험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보고 위기에 준비된 자가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정세가 불안정할수록 이런 생각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저자 제이슨 솅커가 이 책을 낸 이유다. 두려움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낸다면 인류는 극복해낼 것이란 믿음에서다.

 


 

제이슨 솅커의 미래 예측은 믿을 만하다는 이유가 그가 말한 여러 가지 예측이 들어맞아가고 있어 더욱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의 논리는 정연하다. 지금의 어떤 충격이 있으면 그는 늘 과거의 사례를 철저히 연구한다. 미래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주로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지금은 코로나와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안에 있지만 이 소용돌이를 벗어날 무렵 세계 경제가 어떻게 재편될지, 어떻게 유지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예측은 제목에서처럼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지, 아니면 연착륙에 성공해 다시 발전의 흐름을 잡을지를 진단한다. 이후 세밀한 분석을 통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한다. 현재의 경제가 어떤 상태를 치닫을지 모르기 때문에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다만 지금 같은 상항이 계속된다면 중대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저자의 믿음은 확실한 것 같다.

저자는 과거 수세기 동안 혁명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혁명 연구 결과로 얻은 결론이 이 책에서는 변화의 동인(動因)이 된다. 저자는 우선 전반적으로 열악한 경제 조건, 경제적 기회 부족, 구조적 불평등, 주변국의 영향, 대규모 무력 충돌, 정치적 대표성 결여 등 6가지 분석 툴을 통해 세계사의 물결을 뒤바꾼 역사적 사건 15가지 사례를 정리한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 통계와 함께 보여준다. 일자리와 실업률, 정부의 재정정책 및 부채, 통화정책과 현대화폐이론, 불균형과 불평등,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 등과 관련된 현재 세계 상황을 알기 쉽게 이해시킨 다음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 경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 책은 각자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발단과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저자의 탁월한 통사적 통찰을 바탕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향후 수년 동안 코로나19가 AI 및 자동화를 너무 빠른 속도로 앞당겨 고용시장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다수 경제학자가 정부의 재정 지원이 대규모 부채와 이자 부담으로 파산에 가까워져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게다가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는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선택할 수 있는 통화정책 카드가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재정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치적 양극화는 지속해서 심화될 것이며 강대국 간 패권 경쟁으로 많은 분쟁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현재도 국경을 초월한 여러 정체성의 조직들이 사이버 공간에 포진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급격한 로봇과 자동화는 대중으로부터 정치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계의 경제와 미래는 현재 많은 위험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을 읽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정치·경제·사회의 시나리오를 고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출간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독자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첫발을 내딛다면 머지않아 다가올 많은 역학관계를 개인이 변화시키기는 힘들더라도 개인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 준비를 하고, 이후 찾아올 커다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계획을 세워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은 『반란의 경제』를 사전에 대비하자는 것으로 이해하자는 뜻이다.

PART1, 왜 경제인가

경제학자들과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이다. 사람들에게 음식이나 기본적인 필수품이 공급되지 못하면, 사회는 불안감으로 혼란이 야기된다. 바이러스 창궐로 팬데믹 상황에 이르면 세계 모든 나라는 식료품 가게의 품목이 동나고 이전에 샀던 필수품인 마스크 같은 재화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세계는 위기를 극복했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나 생활방식을 바꾸며 변화에 적응해왔다.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으로 일시적 양상의 변화를 꾀했고, 집회 등 모임, 전시나 공연의 관객을 제한하는 등 적극 방역 대책을 실시해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 호응을 얻고 비교적 안정적 방역 국가의 수준을 보여줬다. 위기의 순간 현 시대가 가진 잠재력으로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모습이다.

 

PART2, 저항의 시작점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 혁명 15개를 원인, 과정,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썼다. 프랑스 대혁명과 의화단 사건을 대표적으로 게재한다.

프랑스 대혁명 (1789년) : 저항과 혁명이 난무하는 역사에서 가장 전형적인 혁명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불평등했고 열악한 환경에 식량난까지 겹쳤다. 절대왕정은 타도의 대상이었고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독재적으로 권력을 통합한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대신했다. 철저한 공포 정치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났다. 로베스피에르가 11월에 처형되었고, 권력을 차지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제국 시대를 열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던 동인은 열악한 경제 조건, 경제적 기회 부족,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외국의 영향, 정치적 대표성의 결여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의화단 사건 (1899년) : 의화단 사건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외세 배척 운동이다. 오랫동안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중국 연안의 항구를 공격해온 유럽 열강에 반발해서 일어났다. 그러나 다른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제’ 상황 역시 이 반란의 주요 촉발제였다. 아편 전쟁 이후 열악한 경제와 계속된 가뭄과 홍수는 경제를 빈곤 상태에 빠지게 했고 참을 수 없었던 국민이 일어난 것이다. 1900년 5월 의화단 세력은 톈진과 베이징에서 외국 공사관이 모여 있는 구역을 포위하고 외국 세력의 추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일본, 유럽의 열강 8개국의 대응이 더 빨랐다. 이들은 연합군을 구성에 순식간에 톈진을 함락시키고 베이징으로 쳐들어왔다. 의화단 사건을 일으켰던 동인은 열악한 경제 조건, 경제적 기회 부족, 사람들이 인식한 구조적 불평등, 외국의 영향이었다.

이후 1917년 러시아에서는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가 등장했고, 1933년 1차 세계대전의 전쟁 배상금이 막대한 독일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59년은 쿠바에서 미국 정부는 자신의 코앞에 소련과 가까운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자 망명자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피그스만을 침공했다.

1968년 유럽에는 68혁명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프라하의 봄’이라고 알려진 체코슬로바키아 내 자유화를 위한 개혁을 시도했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은 기존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었던 냉전이 끝나는 순간을 의미했다.

 


 

PART 3, 세계 경제 위기 선언

불황은 영원하게 보이지만, 경기는 순환한다. 숨는 전략은 침체에 상대적으로 강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경기가 회복되면 이전보다 경험을 기술을 갖춘 상태로 다시 몸을 드러내는 것이다. 불황이 언제 오는지 알아내고자 한다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면 불황을 예측할 수 있다.

실업률은 고용 시장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수치 중 하나이다. U-3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20년 2월 당시 실업률은 3.5%로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후 2020년 4월 14.7%까지 치솟았다. 수치 자체만 놓고 보면 재앙 수준의 증가였다.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이었다.

2020년 첫 10주 동안 실업 보험의 주간 신규 실업 급여 신청 건수는 평균 21만 2,000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12주 차에는 330만 명을 넘어섰고, 13주 차에는 거의 690만 명이 실업 급여 신청을 했다. 그 중간에 코로나 팬데믹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경제 폐쇄, 불황의 여파에 세계 경제는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으로 간신히 부양되고 있다. 통화정책은 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중앙은행에 의해 정해진다. 반면 재정 정책은 기록적인 수준으로 부채를 증가시키는 정부에 의해 추진된다.

 


 

PART4, 경제 도약을 꿈꾸다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는 불안하다. 예상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겠고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변동성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은 수준임에도 정부는 2021년에 적자 지출을 면치 못한다. 이로 인해 경제와 고용 시장을 가능한 한 빨리 회복시키려고 자금을 투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우리의 경제와 사회는 현재 많은 위험성과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 제이슨 솅커의 『반란의 경제』는 과거 저항과 혁명의 사례에서 우리가 현재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은 무엇인지 분석하고 이를 소개한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 쉬운 첫걸음을 허락한다. 차분하게 부정적인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도록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끝났을 때를 대비해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목처럼 반란이 닥친다는 의미보다 반란이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로 읽힌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기 위해 『반란의 경제』에서 소개하는 저항과 혁명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자 : 제이슨 솅커(JASON SCHENKER)

 

프레스티지 이코노믹스PRESTIGE ECONOMICS와 퓨처리스트 인스티튜트FUTURIST INSTITUTE 회장.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금융 예측가이자 미래학자 중 한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43가지 평가 기준을 통해 블룸버그가 선정한 최고의 예측 전문가로 꼽혔다. 이 중 유로화, 영국 파운드, 러시아 루브르, 중국 위안화, 원유 가격, 천연가스 가격, 금 가격, 산업 철강 가격, 농산물 가격, 미국의 일자리 등 총 25가지 평가 기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가 내놓은 분석들은 《월스트리트저널》, 《뉴욕 타임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에 실렸으며 CNBC, CNN, ABC, NBC, MSNBC, FOX, FOX BUSINESS, BNN, BLOOMBERG GERMANY, BBC 등에 출연한 바 있다. 또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행사에 참석하며 민간 기업, 공기업, 산업 단체 등 다양한 행사장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일의 미래, 블록체인, 비트코인, 암호화폐, 양자컴퓨터, 데이터 분석, 예측, 가짜 뉴스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나토(NATO) 및 미 정부에서 자문 역할을 했다.

21권이 넘는 출간 도서가 있고, 이 중 11권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금융의 미래』, 『코로나 이후의 세계』, 『코로나 이후 불황을 이기는 커리어 전략』, 『THE PROMISE OF BLOCKCHAIN』, 『FUTUREPROOF SUPPLY CHAIN』, 『THE FOG OF DATA』, 『ROBOT-PROOF YOURSELF』, 『FINANCIAL RISK MANAGEMENT FUNDAMENTALS』, 『MIDTERM ECONOMICS』, 『SPIKES: GROWTH HACKING LEADERSHIP』, 『READING THE ECONOMIC TEA LEAVES』, 『BE THE SHREDDER』, 『NOT THE SHRED』 등이 있다. 저서 『AFTERSHOCK』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래학자로 선정되었다.

현재 오스틴에 거주하면서 주와 연방 선거의 텍사스 당선인에게 조언해 주는 초당파적 기구 텍사스 기업 리더십협의회 소속 CEO 100명에 속해 있다. 전미법인이사회연합에서 정부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각종 이사회에 소속되어 있다. 끝으로 텍사스 내 저명한 초당파 리더십 그룹인 텍사스 레퀴움 집행위원회의 재무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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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컬러링북 : 플라워 - 손끝으로 완성하는 아트북 손끝으로 완성하는 아트 북 스티커 컬러링북
모모 편집.기획팀 지음, 성자연 그림 / 도서출판 모모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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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티커를 붙여 꽃을 완성하는 이 책 『스티커 컬러링북-플라워』는 간결한 아름다움을 목표로 만든 스티커 북이다. 어릴 때 미술시간에 교사와 함께 해봄직한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도구가 필요 없다는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말한다. 손 이외의 도구가 필요없다는 뜻이다. 책에 있는 것만을 떼어내 책 안에 마련된 판에 번호대로 붙이면 된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단순한 미술의 한 종류다.

아마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예술이라기보다 단순 오락거리로 생각할지 모른다. 붓이나 연필, 기타 도구를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일반적인 미술과는 다소 격이 다르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큰 오산이다. 어떤 것보다 정밀성을 요구하고 집중력과 관찰력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다. 어린이들이 하는 것은 맞다. 아직 붓이나 연필로 그리는 것이 익숙지 않을 유아기나 유치원, 초등하교 저학년들이 이용하면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독자가 어렸을 때 미술시간에는 이런 스티커 미술은 없었다. 지금 처음 경험하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인 인쇄술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인쇄술이 못 미쳐 스티커 인쇄 자체가 정교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때는 지면에 수십~수백 개의 점을 찍고 번호를 매겨 번호대로 이으면 영상이 나타나는 정도의 미술 작업이 고작이었다. 그 다음에 물체의 형상이 나타나면 크레파스로 색칠하면 됐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하는 미술을 가르치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독자는 스티커 컬러링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순 시간 보내기용으로 생각했으나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음이 직접 해본 결과 내린 결론이다. 선명하고 정확한 인쇄술 덕인지 그림이 매우 정교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도 큰 것부터 아주 작은, 어른 손으로만 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스티커까지 한 그림 안에 다 들어가 있어 고도의 집중력도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관찰력을 키워주는 데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꽃잎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심하게 관찰한 사람은 아마 더 정교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가 이 작업을 처음 해본 탓인지 손이 커져서 그런지 정교함이 떨어짐을 느꼈다. 꽃잎을 표현할 때도 큰 꽃잎 바탕 위에 작은 다른 색 꽃잎을 덧붙여야 하는데 스티커 크기가 작아지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세심함이 필요한 만큼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고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심정이어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물론 독자의 예술 감각이 떨어져 그런지도 모른다) 시간이 정확하게 2시간 걸렸는데 다 해놓고 보니 실수 투성이다. 잎 하나는 빼먹기도 했다.

좁은 지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예술 감각이 모자라거나 손이 적절하게 익숙지 않아서일 터,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실제 해본 것은 우선 앞뒤 재지 않고 코스모스(아련함)이었다.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데다 난이도도 별 4개로 여기 있는 꽃 컬러링 중에서는 중간 정도 어렵다. 너무 어려운 것은 중도에 포기할까 우려해서고, 너무 난이도가 낮은 것은 체면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하는 것 중 가장 초보적인 것은 누가 봐도 체면상 말이 아니어서다. 다른 사람이 보는 데서 하진 않았지만 독자 스스로에게 체면을 구길 것 같아서 중인 별 네 개짜리로 선택했다.





 

하나하나 해 나가는데 잘 되면 재미도 있고, 생각대로 잘 안 되면 스스로 약간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를 참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면 뭘해도 안 될 것이란 자조감이 들어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러나 역시 초보는 못 말리는 모양이다. 한 스티커를 다른 데 붙여놓고 찾고 있지 않나, 떼서 다시 붙이려니 접착력이 좋아 쉽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손상될까봐 더 이상 떼어내지 못하고 다른 조각을 덧대 실수를 감췄다. 당연히 마지막에 한 개가 모자란다. 낭패지만 어쩔 수 없다. 불현듯 화가들이 아틀리에나 방에 처박혀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손의 주름 하나를 그렸다는 이야기도 이해된다.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란 걸 깨닫게 됐다. 또 관찰력이 크면 대체적으로 순서대로 배열됐고 한 번 해본 작업을 반복할 때는 금세 파악을 할 텐데 몰두하다보니 잘못 붙이는 것도 모르고 나중에야 알게 된다. 멋적다. 그러나 어떻게든 인내심을 재충전해 마치고 보니 그럴 듯하다. 얼핏 보기엔 잘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접 한 당사자로서 어딘지 께름칙하다.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덧댄 것과 빠진 것에 자꾸 눈이 간다. 다른 사람의 눈은 속일지 몰라도 직접 작업한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 두 번째 다른 꽃을 시도할 때 경험을 지혜로 사용해야겠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시리즈물 첫 번째 책이다. 주제는 ‘꽃’. 책 안에 열 개의 꽃이 준비돼 있다. 일상생활에서 보는 친근한 자연물 중 꽃보다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꽃 편에는 꽃으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10가지 그림을 담았다. 아련한, 설렘, 애틋함, 행복함 등, 다른 주제마다 다른 분위기의 일러스트로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마음 가는 주제를 골라 한 장 한 장 스티커를 붙여 보자. 스티커 개수가 표시되어 있으니 조금 쉬운 것부터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고 출판사 측은 조언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경험해본 결과 한 장 한 장 번호에 맞춰 꾸준히 붙이는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물론 취미로 아무 장소에서나 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독자처럼 초보일수록 차근차근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한다. 손에 익으면 독자처럼 2시간이 아니라 20분만에도 해낼 것이다.

화가들이 화가 수업 중 그림 연습 전에 연필로 선 긋기부터 한다고 들은 바 있다. 하루에 수천 번씩 집중해서 해야 한다는 것. 선이 비뚤어지지 않으려면 집중해야 할 것이다. 선의 굵기도 달리하면서 연필을 잡지 못할 정도로 연습을 한다고 한다. 이 선 긋기만 수년씩 한다는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 없이 힘들 것이다. 예술가의 열정은 그래서 본받을 만한다고 한다. 위대한 화가는 선 긋기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들도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했다. 예술가의 길은 인내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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