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거두세요 - 소나무 스님의 슝늉처럼 '속 편한' 이야기
광우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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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시를 거두세요』를 손에 든 순간 '파란눈의 스님' 한 분이 생각난다. 지금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돼 두문불출하는 것 같은데 한때 그 스님의 책은 대한민국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 『멈추면~ 』으로 시작해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내는 책마다 '신드롬'이라 할 만큼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 개인적 사안에 문제가 제기됨으로써 언론에서도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애독자들의 뇌리에는 아직 남아 있을 듯하다.

광우 스님의 『가시를 거두세요』를 서평하면서 웬 파란눈의 스님을 얘기한다고 할 독자들이 많을 듯하지만 이 책이 그 책 못지 않게 잘 쓰고, 잘 만들어진 책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뒤질 것 없고 편집이나 책 제작에 있어서도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해 기분이 좋아져서 자랑 삼아 언급했다. 독자 여러분과 편집진들의 오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자는 광우 스님의 존재를 알게 돼 기쁘고 그의 팬이 됨을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시청하지 않던 불교방송도 프로그램 방송 시간에 맞춰 시청할 계획이다. 이 책을 읽으니 저자의 탁월한 '마음돌봄'의 태도나 시청자들의 힘들고 어려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돋보이는 '자비심'에 한없이 존경하고 기대고 싶은 분이다. 저자 광우 스님은 불교방송 BTN을 통해 이미 많은 팬을 가진 '인기 스님'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됐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있는 강의”,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자꾸자꾸 듣고 싶어지는 말씀”,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반복해서 들으며 마음을 다집니다”…. BTN 불교TV 최고 인기 프로그램인 〈광우 스님의 소나무〉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시청률 1위, 인기 검색어 1위를 놓치지 않는 ‘소나무 스님’의 명강의는 회를 거듭할수록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불교에 대해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광우 스님이 종교를 초월해 고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쓴 에세이집이 이 책 『가시를 거두세요』이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이 원수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자식이 가장 큰 아픔으로 나를 괴롭힐 때,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듯한 괴로움을 맛본다. 그러나 저자는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더라도 사람을 통해 다시 일어서야 하며, 마음을 다친 자는 마음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마음을 딛고 일어서는 법, 마음을 다스리는 기술은 어렵지 않다. 고요히 앉아 호흡하며 몸과 마음을 그저 바라보는 것. 잠시 마음을 바라보며 놓아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진다. 스님들은 누구나 수행과 명상을 강조한다. 늘 현재에 충실히 집중하는 것이 수행이고, 조용히 마음을 돌보는 일이 명상이다. 이는 종교를 막론하고 강조하는 사항인 것 같다. 철학자들도 사색과 현재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욕심 내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마음속에 뾰족뾰족 돋아난 가시로 나와 남을 찌르고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마음돌봄 이야기다. 스님은 이 가시들의 뿌리가 바로 마음 깊은 곳에 고인 슬픔, 분노, 미움, 고통, 후회 등 수많은 상처와 감정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그 가시는 '내 눈물이 굳어 뾰족해진 얼음송곳'이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나와 남을 찌르고 삶을 힘겹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뽑지' 않고 '거두라'는 의미의 제목을 택했을 터이다.

광우 스님은 이 책에서 귀로 듣고 귀로 나가는 ‘힐링’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고 몸으로 닦아나가는 ‘수행’을 강조한다. 살면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의 고민과 아픔, 갖가지 문제들은 결코 힐링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행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미처 돌보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나와 남을 찌르지 않도록 늘 마음을 살피고 스스로 알아차리는 연습이 바로 수행이니까.

 


 

이 책에서 저자는 ‘투명 고릴라 실험’ ‘변화맹 실험’ 등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실험과 불교 설화, 자신의 수행담,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내 삶의 문제와 잇닿아 있는 현실적인 사례들로 접근하니 더욱 공감이 간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조금씩 깨달아가며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이 원래 큰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

각 장의 마지막에는 누구나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상황별 생활명상법을 수록했다. 스님이 차근차근 이끄는 대로 호흡하다 보면 작은 실천으로도 평온함과 고요함에 이르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역시 명상은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을 돌보는 데는 꽤 유효한 방법인 것 같다.

 


 

열아홉 나이에 해인사로 출가한 광우 스님은 어느덧 법랍 23년 차를 맞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출가했다. 좌충우돌 설익은 절집생활과 오랜 참선 수행, 고민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깊은 사유와 관찰을 통해 스님이 찾아낸 답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인생이란 끊임없는 문제의 연속이라는 것, 산다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누구도 이러한 인생의 숙제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삶이 이토록 막막한 숙제로 다가올 때, 스님은 이런 조언을 들려준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과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 가운데 상당수는 처음부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바뀔 때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고민과 문제가 원래부터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p. 34)

 


 

‘남들은 별문제 없이 잘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괴로운가’ 묻는 이들에게 스님은 답한다. 누구에게도 쉬운 인생은 없다고,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온몸을 던져서 꿋꿋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더불어 자신도 모르게 너무 힘을 주고 사느라, 또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며 사느라 지친 이들에게 따듯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참된 행복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조건과 원인으로 일어난 행복은 그 조건과 원인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져버리니까요. 돈으로 얻은 행복은 돈이 없으면 사라지고, 명예·권력·인기로 얻은 행복은 그것들이 무너지면 함께 사라집니다. 사랑 때문에 행복했는데 그 사랑 때문에 가슴 아프고 힘들어요. 원인과 조건에 기댄 행복은 결코 참되지 못합니다.

- p.202-203,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행복」 중에서

 


 

뇌는 늘 속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정교한 정보 처리 기관인 뇌가 이토록 허술하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옵니다. 그리고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왔던가?”

불완전하고 허술하고 빈틈 많은 뇌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성찰’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던져야 합니다.

“제대로 보았는가? 제대로 들었는가?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가?”

- p.259, 「인간은 착각 덩어리」 중에서

 

저자 : 광우

 

책과 명상을 좋아하는 수행자. 방송과 유튜브, 강연 등을 통해 고민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종교를 초월해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나무’ 스님. 마치 옛날이야기같이 재미있고 감동적인 설법,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로 사람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학창 시절에는 삶과 죽음, 진리에 대해 고민하며 철학자를 꿈꿨다. 손에 잡히는 대로 탐독하던 책들 속에서 마음을 밝히는 지혜의 말씀들을 접하고, 문득 ‘깨달음’을 얻고 싶어 열아홉 나이에 합천 해인사로 출가했다. 좌충우돌 설익은 절집 생활 속에서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들을 만나 귀중한 가르침을 받았다. 몇 년 동안 선원을 다니며 참선 수행에 집중했는데, 그토록 찾던 깨달음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항상 걸려 있던 답답증이 사라지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체험을 했다. 여러 사찰의 불교대학에서 강의하다 우연히 부탁받은 것을 인연으로 BTN에서 설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광우 스님의 소나무(소중한 나, 무량한 행복)’를 5년째 진행하며 시청률 1위 프로그램으로 이끌었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닦을수록 늘 부족함을 느낀다는 스님은 여전히 안으로 사유하고 밖으로 관찰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수행자로 살고자 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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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 도시에서 사일 시골에서 삼일
한순 지음, 김덕용 그림 / 나무생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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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서울 토박이는 아니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로 이사와 수십년 살았으니 말씨도 서울말씨이고 친구들도 서울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학교를 마치고 얼마 안 돼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군대와 취업 전 잠시 쉴 때를 빼고는 학교와 직장생활을 계속한 셈이다. 이제는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인데도 아직 직장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오직 노후준비의 부족 때문이다. 쉽게 표현하면 노후 생활에 대해 전혀 준비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들어가는 국민연금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노후에 큰 관심이 없었고, 큰돈 들어갈 일이 없으면 그럭저럭 살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근거 없는 낙관의 결과다.

그래도 시골에 가면 돈이 덜 드니까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순진함 그 자체였다. 우선 집값이 이른바 전원주택 규모는 서울집 팔아도 부족했다. 경기도에서만 찾아서 그런지 집값이 서울 변두리보다 비싼 데가 많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찾아보자며 우선 미뤘다.

 


 

이 책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의 저자 한순은 시인이고 에세이스트다. 지금은 출판사를 운영중인 것 같다. 그가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의 '반쪽 귀촌'을 생각한 것은 계속된 도시생활, 직장생활에서 오는 번아웃 현상 때문으로 읽힌다. 그는 "오십 중반이 되어서 삶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듯한 허기가 몰려와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 반절짜리 귀촌을 선택한 이유가 시골에만 가면, 빽빽한 빌딩숲을 벗어나 나무와 흙냄새 나는 시골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생활이 만만치 않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관성을 뿌리치며 일터인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매주 오가는 것도 숨 가쁘긴 매한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살면서 부러 외면하고 떨어뜨려 놓았던 '본질'과의 밀당이 본격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저자가 '본질'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일종의 '자아 찾기' '자신의 본성 회복하기' 정도로 독자는 이해한다. 평생 도시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허술하기는 저자나 독자나 매한가지 같다.

 


 

‘도사시삼’, 말 그대로 도시에서 4일 시골에서 3일을 살겠다는 건 작가에게 크나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출판사를 운영하고, 두 아이를 키우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오십 중반이 되어서 삶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도시에서 나흘, 시골에서 사흘, 반절짜리 귀촌을 선택한 작가는 시골에만 가면, 빽빽한 빌딩숲을 벗어나 나무와 흙냄새 나는 시골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그 생활도 숨 가쁘긴 매한가지였다. 관성을 뿌리치며 일터인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도시로 매주 오가는 것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살면서 부러 외면하고 떨어뜨려 놓았던 본질과의 밀당이 본격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집요하게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라는 본질은 금형 프레스에 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저자는 살기 위해 귀촌을 선택했다. 작가의 유년 시절을 꽉 채웠던 자연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면 볕이 잘 드는 마당에 앉아 따스했던 옛집의 풍경을 떠올려보고 나라는 존재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전원생활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본질도 회복되고, 건강이나 감성, 감정 등 모든 게 다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저자의 희망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때로는 일로부터 삶으로부터 무심해지려고도 애를 썼다는 저자가 완전히 삶의 패턴을 바꿔 귀촌생활에 쉽게 안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는 저자에게 그런 시골의 한가롭고 정감어린 옛날 얘기만 머릿속에 있었지 현실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는 각자 주인공이면서 스스로 그러한 모두에게 조연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굴참나무로, 누군가는 고라니로, 누군가는 굴참나무 잎의 보호를 받고 피어난 남보랏빛 각시붓꽃으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 앞에서 나는 자비와 무자비가 비빔밥이 된 여름을 맞게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전적 정의가 무너지는 것이 한편으로 혼돈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 그동안 나를 누르고 있던 금형 프레스 같은 것이, 가벼이 날리는 아카시아 향기에 실려 사뿐히 사라진 기분이다.(p. 74~75)

도시에서, 살아오면서 확립했던 개념들이 무너지는 것은 혼돈스러운 일이 분명하지만 ‘나를 누르고 있던 금형 프레스’가 치워지는 순간 저자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잠든 순간에도 굴참나무는 종자를 떨어트리고, 내가 번민에 휩싸인 시간에도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깨운다.” 더는 고집부리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으며, 나라는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를 따라 도사시삼을 따라 들어가본다. 속도를 멈춘 순간, 작가에게는 ‘스스로 그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심한 듯 자신의 일을 하고, 생명을 빚어내는 ‘자연’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본질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저자에게 큰 위안이자 선물 같은 것이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싱그럽고, 우아하고, 때론 처절하고, 그러나 끝내 또다시 꽃을 피우는 여인의 삶을 부정하고 살았던가. 선머슴처럼 떠돌던 마음을 움찔하게 만드는 대자연과의 조우. 우주, 땅, 밭, 돌, 이들이 가진 여성성을 보며 작가는 여성이지만 더 큰 여성을 선망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아우르고 독려하고 참고 키우는 그 순함과 성실함에는 신앙과도 같은 경건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귀먹고 눈먼 후배들을 참아주고 끌어주던 선배들처럼 나이 먹은 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들어선 길에서 오지랖만 넓어졌다는 작가의 푸념에 사람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순하고 정갈한 마음이 느껴진다. 글속에서 저자는 생활에 완전 녹아든 것처럼 느껴진다.

"식물이 떨어뜨린 씨앗 하나가 생명의 움을 틔우기까지, 두더지는 포슬포슬하게 땅을 일궈놓고, 빗방울은 대지의 목마름을 적셔놓고, 또 낙엽은 이불을 덮어 온기를 지켜준다. 무심한 듯 자신의 일을 하지만, 이런 무심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을 빚어낸다."(p. 204)

 


 

이 책에서 시골 신입생의 묵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끝없이 이어진다. 누군가 하지 않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해, 얽매어 있던 일상의 문제들과 마음의 갈등에 대해, 한 끼 밥에 대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신체를 단련하듯' 저자는 도시와 시골을 매주 성실히 오가며 지금도 '여자 사람 한순'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아직은 적응이 제대로 안 된 듯한 느낌도 난다. 아마 또다른 적이 나타났나 보다.

"저 사이로 무엇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숲속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저것. 그것은 바로 ‘절대 고독’ 그분이다. 깨달아도, 깨닫지 못하여도 비껴갈 수 없는 그분. 사랑해도 소용없고, 사랑하지 않아도 소용없는 절대자 그분. 나는 그분과 아주 천천히 친해지려 한다. 나는 그분 앞에서 백전백패이므로 가급적 아주 천천히 다가가려 한다."(p 142)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는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다 번아웃에 빠진 저자가 자연과 만나면서 치러낸 ‘자신과의 직면’ 서사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나무와 만나듯 자신과 직면한 곳에서 자연은 때로 스승으로, 때로 부드러운 친구로 치유하고 다독인다. 그 과정에서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눈이 쌓인다. 자연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직 내 인생의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했다면 '도사시삼'의 탄력 있는 에세이에 빠져볼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 시대에는 바쁘지만 사람과의 접촉은 가급적 줄이기 위한 생활에는 그런 대로 괜찮아 보인다. '반쪽 귀촌'이라고 폄하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저자 : 한순

 

1960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시인, 에세이스트며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다. 2015년 문화체육부장관 출판공로상을 받았다. 첫 시집 《내 안의 깊은 슬픔이 말을 걸 때》와 함께 한순 노래 모음 《돌이 자란다》를 발매했다.

 

그림 : 김덕용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UAE관광문화청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미의 고유한 특성을 나무와 자개를 사용하여 세계화시키고 있는 대표적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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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격언집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임경민 지음 / 노마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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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격언집을 언제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는지 특별한 기억은 없다. 다만 어느 해 연말 서점(당시 오프라인 매장)에 볼 일이 있어 들렀다가 무척 예쁘게 생긴 책 한 권이 눈에 띄어 사 읽다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연말쯤 되면 한 권씩 구입하기도 했느데 벌써 10년은 넘은 것 같다. 때문에 집 책장에는 격언집이나 '한 줄 명언집', '1일 1명언' 등 비슷한 책이 10권 가량 꽂혀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끔씩 펼쳐보긴 하지만 처음 샀을 때처럼 열심으로 읽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욕심이 지나쳐 외우려고 애썼고, 다음엔 이해하려 애썼지만 한 권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하루 한 줄이라지만 일년이 모이면 앞에 읽었던 것이 잘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많다. 지금껏 기억속에 저장돼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명언은 몇십 개에 불과한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꼭 읽고 가능하면 라틴어도 배워볼까 하는 심정이었다. 우리가 아는 많은 명언이나 격언 중에 그리스 로마의 것임을 확실히 아는 것도 셀 수 없이 많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로마제국에 대한 무한 동경심을 갖고 있다. 로마사를 자세히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아는 지식으로는 로마제국이 멋진 나라였다는 생각이다. 결정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 책을 읽기로 한 것도 라틴어 격언이니만큼 로마제국 시대의 격언이 많으리라 생각하니 더 기대되고 궁금해졌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격언은 당대 집단지성의 핵심이자 시대를 초월한 지혜일 것이다. 그 격언들은 때로는 비수와 같은 날카로움으로 때로는 미소를 자아내는 풍자로 현재 우리의 삶과 사유에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우리 속담보다 자주 사용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격언도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뜻도 모르고 쓰기보다는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알고 쓴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칫 잘못 쓰면 오히려 망신이니까.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은 '암흑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중세에 베스트셀러였던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ADAGIA)』를 근간으로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를 향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그 지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아다지아』의 자리를 이제 이름에 걸맞게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이 대신한다.

 


 

이 책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음을 알게 됐다. 책에 따르면 당시 에라스뮈스가 유려한 문체로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를 보여 준 『아다지아』는 발간되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필독해야 할 교과서로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다. 저자 에라스뮈스는 당시 본격화되던 루터의 종교개혁에, 즉 교회 권력에 대한 루터의 비판에 호의적이기는 했으나 극단적인 신앙을 싫어했다. 그래서 종교 개혁에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과 찬성하는 개신교 양 세력이 에라스뮈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때문에 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곤경에 처한다.

특히 로마 교황청은 그를 공격하면서 『아다지아』에서 삭제할 부분을 세부적으로 지정해 교구에 지시했으며, 다른 저작물들은 목록을 만들어 작품 자체를 통재로 금지하거나 허용했다. 하지만 지극히 세부적인 해설이 달리 고대 그리스 및 라틴어 격언의 기념비적인 모음집 『아다지아』는 금지도서로 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독을 권장하기도 힘든 책이었다.

 


 

이 책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열한 번째 책이다. 이 책의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향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의 『아다지아』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자, 작가, 정치가 등의 명언들을 한데 모아 1500년에 파리에서 『고전 격언집(COLLECTANEA ADAGIORUM)』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선보였다. 첫 출간 후 사람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받고 읽힌 이 책은 저자 살아생전에 증보판을 거듭 펴냈다. 1508년 에라스뮈스는 항목을 3,000개로 늘리고, 여기에 풍부한 주석을 단 논평들과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주제에 대한 짧은 단상들을 덧붙여 『수천 개의 격언집(ADAGIORUM CHILIADE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후 저자가 세상을 떠난 1536년까지 계속 증보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4,151개의 항목을 수록한 방대한 모음집이 되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에 실린 항목들은 유럽에서 아주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고, 이제는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표현들이 많이 있다.『아다지아』는 고전·고대 문학에 대한 전형적인 ‘르네상스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고전 작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드러난 ‘시대를 초월한 지혜의 표현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변용과 확장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 휴머니즘의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아다지아』는 고전문학을 더욱 광범위하게 고찰할 수 있는 지적 환경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전·고대의 지혜를 발휘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는 능력이 학문적으로나 심지어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시대에 출간된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가 당시에 가장 인기 있는 책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세의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에라스뮈스는 밝은 눈으로 ‘시대를 초월한 지혜의 표현들’을 걸러내고, 여기에 풍부한 주석을 단 논평과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주제에 대한 짧은 단상들을 덧붙여 위대하고 독보적인 격언집 『아다지아』를 완성했다. 교회의 압력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아다지아』는 오늘날 전 세계인의 애독서로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계몽주의자 ‘에라스뮈스의 이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Nomen Erasmi nunquam peribit).’『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라틴어 격언집』은 로버트 블랜드(Robert Bland)가 펴낸 『Proverbs, Chiefly Taken From the Adagia of Erasmus』 가운데 현재의 삶과 사유에도 여전히 유효한 글들을 뽑아서 엮었다. 이 텍스트는 대부분 헨리 스티븐(Henry Steven)이 1550년에 펴낸 에라스뮈스의 『아다지아』에서 뽑아 편찬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격언들도 같이 묶어 보충해놓은 것이다.

 

Chapter 1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 시기심과 우둔함

Chapter 2 잘난 척도 정도껏! : 허세와 위선

Chapter 3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당신에게 : 사랑과 우정

Chapter 4 가까이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 가족과 행복

Chapter 5 처음은 항상 어렵다 : 희망과 미래

Chapter 6 없다, 그러나 있다! : 신과 운명

Chapter 7 간결하고 분명하게 : 순리와 원칙

Chapter 8 무슨 일이든 지나치지 않게 : 처세의 지헤와 분수

Chapter 9 진퇴양난·절체절명의 순간에 : 사리판단과 선택

Chapter 10 팍스 로마는 그들만의 평화 : 통치와 권모술수

Chapter11 갈망하지만 얻기 쉽지 않은 : 부와 거래

Chapter 12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 전쟁과 애국심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즐겨라’는 말은 가장 유명한 라틴어 격언 중 하나일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송가』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을 즐겨라’는 낭만적인 뜻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오히려 ‘오늘을 열심히 살라’는 경건한 뜻이라고 한다. 다소 와전된 느낌이지만 원문은 “되도록이면 다음 번을 덜 믿고 오늘을 잡아라”는 뜻이다. 오늘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다.”는 격언과 통한다.

 

현명한 자는 감정을 지배할 것이요, 어리석은 자는 감정의 노예가 되리라.

Animo imperabit sapiens, stultus serviet.

폭식이 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인다.

Gula plures quam gladious perimit.

은혜는 은혜로, 원한은 원한으로

Par pari referre

 


 

역자 : 김대웅

 

전주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나와 두레출판사 편집주간, 문예진흥원 심의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충무아트홀 갤러리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교양 시리즈’인 『최초의 것들』, 『영어잡학사전』, 『신화와 성서에서 유래한 영어표현사전』 등을 비롯해 『그리스 7여신이 들려주는 나의 미래』, 『인문교양 174』, 『커피를 마시는 도시』 등이 있다. 편역서로는 『배꼽티를 입은 문화』, 『반 룬의 세계사 여행』, 『알기 쉽게 풀어쓴 일리아드·오디세이아』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독일 이데올로기』, 『루카치의 미학 사상』, 『영화 음악의 이해』, 『무대 뒤의 오페라』, 『패션의 유혹』, 『여신으로 본 그리스 신화』, 『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영어 이야기』, 『아인슈타인 명언』, 『마르크스·엥겔스 문학예술론』, 『마르크스 전기 1·2』(공역),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재미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공역),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르크스 엥겔스 주택문제와 토지국유화』, 『시민불복종』(공역) 등이 있다. 해설서로 『숨겨진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다.

 

역자 : 임경민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신동아』, 『월간 경향』, 『말』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현장들을 취재하고 관련 기사들을 기획·집필하며 자유기고가로 활동했으며, 산하출판사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마르크스 전기 1·2』(공역), 『사랑하는 어머니』, 『에스페란사의 골짜기』, 『폭군들』, 『47』, 『반 룬의 지리학』, 『동물의 권리』,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재미있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공역), 『숨겨진 그리스·로마 신화』, 『햄릿과 돈키호테』, 『시민불복종』(공역)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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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독자는 먼저 이 책의 제목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서평을 시작한다. 세계 인류가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과거 영화를 누렸던 서유럽 중심의 국가들이 힘을 잃어가자 과거 자신들이 패권을쥐고 세상을 이끌어가던 시절에 대한 향수, 누렸던 영화를 되찾으려 하는 데서 비롯된다. 20세기 들어 패권의 중심이 미국과 소련으로 바뀌고, 소련이 붕괴된 후 유일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절대적 힘과 경제력의 우위를 점한 데 대해 미국만을 믿고 살기엔 희망적이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거대한 힘이 다시 올라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EU(유럽연합)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려 했으나 중국의 예상치 못한 도약으로 미국만 믿고 있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21세기는 정보통신과 디지털,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자신들의 위치가 모호한 데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현재의 시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인류 모두의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보편적 가치를 찾아 함께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통계적 세계관과 상대주의적 시각 그리고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러다 보니 삶의 불안정성이 클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정신적 표류 상태는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구 사회가 ‘좋았던’ 그 시절, 즉 자신들이 패권을 잡았던 19세기 국민국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음을 질타한다. 그리고 이 회귀 움직임은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표상의 위기라는 다섯 가지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 이론인 ‘신실재론’을 통해 각각의 위기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핀 뒤, 그 속에 자리한 명백한 사실과 보편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살펴보고, 삶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옳고 그름의 철학적 기준을 바로세워야 할 때다.

 


 

저자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가 지배했던 중세 종교의 시대는 끝났다. 과학과 이성이 약속했던 근대의 화려한 영광도 모두 끝났다. 누구나 느끼고 있다시피, 지금 우리는 구별하기 어려운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포스트모던 사상의 영향을 받아 통계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까닭에, 강한 신조를 가진 사람을 경계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종교와 이성의 절대성을 잃고 정신적인 표류 상태에 놓이게 된 서구 사회는, 자신들이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며 전성기를 누렸던 19세기 국민국가 시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삶의 불안정성을 이겨내기 위해,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차별적인 자국 보호주의로 되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움직임으로 인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위기를 주제로, 마르쿠스 가브리엘과의 대담을 기획하면서 탄생했다. 이 책에서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를 다룬다.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로지의 위기, 그리고 이 네 가지 위기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표상의 위기가 그것이다.

먼저 「가치의 위기」에서는 절대적인 가치를 잃고 표류하는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또한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민주주의의 위기」에서는 민주주의의 느림에 주목한다. 또한 ‘다양성을 인정할 때 다양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중심으로, 패러독스를 철학적으로 들여다본다. 「자본주의의 위기」에서는 세계화 현상과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문제 등 오늘날 폭주하는 자본주의가 감추고 있는 악의 잠재성을 파헤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테크놀로지의 위기」에서는 현 기술산업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펼치며, 인공지능과 초대형 IT기업과 관련된 이슈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표상의 위기」에서는 이미지가 진실을 덮어 은폐하고 있는 현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표상과 현실 사이의 관계성을 논한다.

저자의 철학적인 논제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며, 앞으로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은 탈진실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포퓰리즘의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는 오늘날의 세상에 응답하기 위해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철학이라는 것이 사회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미래학자들의 중론이다. 또한 디지털혁명의 결과 완전히 바뀌게 된 사회경제적 체제와 공진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를 이끄는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문제는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진짜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는 모든 것이 가짜라고 여겨라’ 하는 생각을 전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삶의 중심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제 슬라보이 지제크가 ‘위대한 생각 실험’이라 칭한 저자만의 독자적 세계를 보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는 점점 더 빨라지고 무역간 혹은 다자간 협상이라는 명목하에 나라간 부익부 빈인빈도 심화해 가는 중이다. 정치 체계가 다르더라도 자본주의 방식의 경제 개념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그 잣대를 부의 편익과 힘의 불균형이 어디로 치우치느냐에 두게 된다. 이 지점에서부터 차별은 발생하며, 서로간의 경제적 정치적인 혼동이 발행한다고 보았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터넷은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플랫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다. 검색 엔진만 봐도 지금은 구글의 독무대이며, 아무리 웹서핑을 해봐도 인터넷에서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침에 트럼프가 우산을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 누구를 해고했는지 같은 인터넷 기사를 몇 분 훑어보고 나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실은 가려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소설을, 드라마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쉬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백일하에 밝혀내는 것인데 지금은 비판적이지 않은 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고, 이것이 인터넷 사회가 낳은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널리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저널리즘의 힘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자세가 실종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테크놀로지나 과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데, 과학적 세계관은 과학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과학을 우상화하고 마찬가지로 잘못 이해된 종교와 가깝게 두는 의심스러운 비과학적 사고 탓에 좌초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이를테면 분자나 일식을 설명할 뿐이다. 결국 과학은 인간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이나 소셜미디어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환상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지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기계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종이폴더에 나에 대한 출생증명서나 졸업장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생증명서나 졸업장이 웹상에 존재하고, 원하는 정보를 불러올 수 있다하더라도 종이폴더와 온라인이나 웹사이에 존재론적인 차이는 없다. 따라서 웹, 프로그램, 알고리즘, 딥러닝 같은 것을 지능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종이폴더 역시 지능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확실히, 다음에 나올 아이디어는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쪽이 될 것이다.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기업은 22세기의 정치 구조를 결정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친환경 핵에너지를 찾아내면 어떻게 될까. 독일은 최근 수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원자력발전의 대체물질을 발 견한다 해도 문제없이 작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벽히 제 기능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쩌면 물리적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핵융합이 아니라 다른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발견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아이디어를 내는 국가는, 어디가 되든지 간 에 22세기를 대표하는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에게 공통된 문제 중 하나는, 소위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이론가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이 믿는 자본주의 이론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마르크스 의 이론은 너무나 불충분하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응답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의 역할 분담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사실을 가치로 변환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비즈니스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이점이 된다. 상대가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시점에서 당신은 얼마의 금액을 청구할 수 있을지 를 계산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져 있는 경우라면, 그 금액을 청구할 수 없다. 당신은 자신의 제품이 실제보다 훨씬 뛰어난 척을 해야 한다. 사실은 상대를 믿지 못하지만 믿는 척해야 한다. 당신의 제 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자본주의의 '거짓' 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불투명한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에는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자제가 반드시 '악'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에는 악의 잠재성이 도사리고 있다.

이 사실을 이유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이론가가 '자본주의는 우리를 민주주의 반대 방향으로 끌고가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민주주의에서는 투명성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판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생산 상태를 좌우하는 자본가에게 민주적인 사고 훈련을 받게 하는 일이다.

 


 

표상의 위기는 이미지와 인간과의 관계성을 나타낸다. 표상은 정확한가 부정확한가의 속성을 지닌 현실의 모델이다. 개중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진짜인가 거짓인가 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의 배후에 있는 진실, 스크린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매해진다.

스크린의 개념이 잘못되었기에 현실이 스크린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는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이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삶의 중심을 바로세우기 위한 사고의 틀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표상의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후보자가 당선되어 유권자를 대리, 표상하는 입장이 되면 그가 유권자를 위한 일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표상이 아니다. 의회에서 유권자를 표상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교섭 체계에 참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선 전에 무언가 공약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으로, 반드시 공약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상품을 사는 행위가 아니다. 즉, 무언가를 ‘사는’ 것이 아니다. 투표는 어떤 이념에 기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민주주의가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모르면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고,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러나 강한 임팩트를 갖고 있다. 저자 특유의 화법과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중요하고 굵직한 주제를 핵심적으로 담고 있다. 배경 설명을 구절구절 늘어놓거나 자신만이 아는 이론으로 몇 페이지를 할애하며 독자를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다. 다루고 있는 탄탄한 이론과 머뭇거리지 않는 천재 철학가의 사상은 읽는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

 

저자 :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

 

1980년생. 본대학과 하이델베르크대학을 거치며 철학, 고전문헌학, 현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2005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 논문으로 RUPRECHT-KARLS상을 수상했다. 29세에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본대학교 철학과에 사상 최연소 석좌교수로 발탁되었고, 인식론과 근현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동 대학의 국제철학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리스본대학교, 덴마크의 오르후스대학교, 미국의 버클리대학교 등 유수의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도 활동했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뿌리 삼아 그가 제창한 ‘신실재론(NEW REALISM)’은 21세기 현대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영향과 범람하는 정보로 인해, 무엇이 진실인지, 애초에 진실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때 신실재론은 세상의 진실과 보편적 가치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갈파하며, 현대 사회의 위기와 해결책을 고찰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그 외 저서로는 《나는 뇌가 아니다》, 《욕망의 시대를 철학하기》 등이 있다. 공저로는《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 《초예측: 부의 미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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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수업 3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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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이 책은 작가의 '존재 이유'나 '존재 방법'에 대한 내용임엔 틀림없다. 다만 기대했던 것처럼 쉽게 쓰인 책이 아니다. 강연 내용이어서 이 강연을 들은 청중의 수준이 문학적 지식이 높은 사람이어서인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쉽지만은 않다. 최소한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수준 이상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이해된다. 다만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과 해석을 붙여준 것은 저자의 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말, 즉 주제는 '작가로 사는 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자'로 읽힌다. 이를 위해 저자는 1탄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가 문학에 대한 가치관을 안내하고 2탄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가 창작에 대한 가치관을 소개한 바 있다고 밝히고 있어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은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 한국의 작가들 앞에서 행했던 강연 원고를 소재로 삼아 '좋은 작가'가 되려면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장,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은 후고 프리드리히의 『현대시의 구조』 서장을 텍스트로 삼아 강독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근대 이후의 시인들이 인류사 안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현대시의 변천 경로를 설명하고자 한다. 〈3장, 소설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 중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을 소개하면서 소설가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전한다.

1부인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싸움〉을 시작하며 김형수 저자는 '근대 이후의 작가들은 무엇으로 밥값을 했는가?'에 답하기 위해 글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이야기는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부터 시작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강연 원고를 소재로 삼아 출발하는 1부에서는 어떻게 세상과 만나고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아닌 것들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기만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경계해야 할 태도들에 대해 여러 작가들의 말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관점을 어떻게 익히고 가다듬어야 할지를 보여주면서 ‘좋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철학에서 ‘자기기만’을 찾아내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하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자기기만의 현상이 생긴 것을 해명해 달라는 것, 이게 진정한 비판이에요. 재미있지 않아요? 상대와 내가 그냥 다를 때는 그것이 다른 것일 수는 있어도 잘못한 것은 아니잖아요. 누가 잘못한 것인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한 사람 안에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태도가 담겨 있으면 어떤 것하고 상대하라는 말이에요.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상대인지 알아야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죠."(p. 19)

이 문단만 뽑아 적어놓으면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해 저자는 앞의 글 중에 가리타니 고진의 「미(美)와 지배 : 『오리엔탈리즘』 이후(민족문학작가회의 자료집, 1997, 저자 주」의 사례를 들었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낱말에는 소위 작가의 존재 이유, 즉 작가들은 왜 그렇게 사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다가갈 비상구가 감춰져 있다고 전제한다. 이 내용에 오에 겐자부로와 끌로드 시몽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핵문제를 일본의 문제가 아닌 인류사의 문제로 생각하는 오에 겐자부로와 클레드 시몽이 그것을 부정하는 글을 〈르 몽드〉지에 반론을 게재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이자 핵 피해국 일본과 2차대전 피해국 프랑스의 국민 감정이 서로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저항하고 반론을 폈던 것.

저자는 어느 쪽을 편들진 않는다. 편을 들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했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랑스 지식인을 비판한 것에 대한 문제와 이에 반론을 편 프랑스 지식인 클레드 시몽에 대해 "근대(현대)를 살아가는 고뇌가 그런 고뇌가 프랑스에만 있겠는가, 당연히 일본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편견에 사로잡히면 그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벗겨내려면 반드시 '복잡한 문제를 사유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모두 이 점에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요지의 강연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즉 어느 쪽 편을 들지 않되 편견을 가지고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사유가 필요하다고 양쪽에 비판을 가한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저자가 직접 표현하지 않아 독자의 입장에서) 비판 글을 쓴다면 더 깊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2부 〈이성의 제국을 탈주하는 언어들〉에서는 근대 이후의 예술과 삶의 관계를 짚어보며 현대시가 형성되는 경로와 치열한 시인들의 미학적 고투 과정을 살펴본다. 오늘의 시인들이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현대성이 어떻게 발생하고 그 미학적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낯설게 하기, 불협화, 비규범성, 그로테스크 등의 키워드를 통해 현대시를 읽어낸다. 일상적인 삶에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심화해나가면서 변화하는 사회상이 문학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 작가들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낯설게 하기’라는 말은 들었죠? 시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낱말의 하나일 거예요. 흔히 인간의 의식이 식상한 상태에 빠질 때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바로 이거예요. 처음 대하는 것은 낯선 것이니 초심이란 낯설게 만드는 것을 가리켜요. 매너리즘의 반대편을 뜻합니다."(p. 74)

이 문장은 작가는 '매너리즘'에 빠져선 안 된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입맞춤의 매너리즘을 사례로 꺼내든다. 입맞춤을 처음 했을 땐 심장은 물론 머리에서 발끝까지 떨리는 체험이 담기기 마련이다. 입맞춤이라는 행위 자체에 존재를 요동치게 하는 마술적 떨림이 담겨 있다는 것. 그러나 이를 반복하다 보면 아침에 출근할 때 입맞춤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변하게 되는 현상을 지적한다. 입맞춤의 매너리즘이 거기에 담긴 '떨림의 감정'을 훔쳐서 어디로 달아나버린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이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작가는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떨림이 있는 감정이 시심이고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이며, 존재 이유라는 해석이다.

 


 

저자는 또 시 쓰는 사람들은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체제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한다고 말한다. '이성' '과학' 등이 사실의 진위를 식별하는 사유 형식의 하나일 뿐인데 거기에 절대적인 권위가 부여되다 보니 존재의 진실을 판단할 때 자꾸 모순이 생긴다고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삶에서는 다른 형식의 사유체계도 얼마든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설명도 덧붙인다.

"이성의 세계는 까다롭고 완고하고 꼼꼼하고 엄격해서 너그럽지도 않고 자유분방함도 없습니다. 그에 반해 감성의 세계는 대범하고 온후하고 느슨하고 인정이 많아요. 현실의 질서에도 정치, 역사, 학문, 인맥 등 이성이 만들어가는 것들은 그야말로 엄격하고 격식 있지만 실제로는 세속되기 그지없는 위계체계 때문에 숨 막히는 압력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자거리의 뒷골목에서는 은밀히 작동되는 감성의 영토에서는 토착 풍속이나 신앙, 욕망이나 본능, 감정적인 것, 감각적인 것, 원초적인 것, 미개한 것, 음산한 것들이 넘쳐나요. 그래서 거대한 감정의 해방고, 칠정의 카니발이 춤추지만 진정함이 있어요. 바로 그곳에 현대시가 자리를 잡고 개인의 내면에서 들끓는 언어의 광란과 과잉과 함성 속을 소용돌이치게 돼요."(p. 87)

 


 

저자는 현대시의 구조에 대한 설명도 이사도라 던컨의 말을 예로 들면서 해석한다.

"현대 무용의 대가 이사도라 던컨이 '누구도 저 바다를 보고 십년 후를 묻지 않는다'라고 말했어요. 바다는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철썩대면서 부서집니다. 이를 다른 말로 '지속 가능한 세계'라고 해도 될까요? 자연은 늘 이렇게 존재하는데 인간은 어쩌자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을까요. 소위 발전의 신화에 빠진 건데, 사실은 이게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알맹이입니다. 자기 욕망의 확장을 절대화하는 것, 『현대시의 구조』는 현대시가 그런 규범들과 선을 긋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전통과의 예리한 단절이 생겨났고, 문학적인 독창성은 작가의 비규범성에서 그 정당성을 찾았다. 문학은 치유가 아니라 섬세한 말을 추구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선회하는 고통의 언어로 자처했다."(p. 105)

 

저자 : 김형수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5년 [민중시 2]에 시로, 1996년 [문학동네] 에 소설로 등단했다. 1988년 [녹두꽃]을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민족문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시인이자 논객. 지금은 신동엽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시인이며 소설가, 평론가이다. 시집 『가끔씩 쉬었다 간다는 것』, 『빗방울에 관한 추억』,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나의 트로트 시대』 『조드-가난한 성자들(1,2)』, 소설집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외에 『문익환 평전』, 『소태산 평전』 『흩어진 중심-한국문학에서 주목할 장면들』 등이 있다. 작가 수업 시리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그리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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