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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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집 『관내 여행자-되기』는 출판사 〈열린책들〉의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새로운 에세이 시리즈-「둘이서」'의 세 번째 책이다.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가 함께했다. 이 책은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개인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찾아가 그곳에서 그들을/우리를 관통한 것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다. 백가경과 황유지의 인연은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두 사람은 시인으로, 또 문학평론가로 첫발을 떼게 된 시기였고, 신춘문예는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속 깊은 친구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두 공동저자는 「둘이서」 시리즈에 이토록 제격인 두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사회 역사적인 「기억」과 개인의 「기억」을 에세이로 풀어보기로 생각하고, 「관/관통」을 키워드로 정한 듯하다. 여기에서 「관」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의미한다. 또한 「관통」은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통」은 「담아냄으로써(桶) 연결되는(通) 아픔(痛)들」이라는 중첩된 의미를 담는다. 

저자 황유지는 「통: 담아냄으로써[桶] 연결되는[通] 아픔[痛]들」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둘이서」시리즈 제안에 곧장 떠오른 단어는 '관통'이었다. 나는 어딜 가든 그 아래 축적된 것에 관심이 있다. 내가 자란 곳에서는 발아래를 파면 얼마든지 무엇이 나왔는데, 까닭에 우리 동네에서는 무슨 공사를 하든 중단되기 십상이었다. 건물을 세우려고 땅을 파면 옥구슬이나 장신구가 쏟아지고, 비가 내려 땅이 헐거워지면 도자기 파편이나 화살촉이 나왔다."고 회고한다. 팽창하는 도시는 지속적으로 땅을 요구했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었다. 그 일대는 가야 왕족의 무덤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저자 황유지는 이때 느꼈다. "쌓아 올리기 전에 확인하고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다. 그전까지 말이 없던 가야의 역사는 제 무덤이 품은 유품을 스스로 토해 냄으로써 기록화되기 시작한 참이다. 그건 평평하고 좁은 역사를 좀 더 환히 들여다볼 기회로서의 발굴, 그 지평을 넓히고 연장하는 파헤침인 셈이다. 2천 년 전 흔적과의 조우는 층층이 쌓아 올린 레이어드 케이크의 단면처럼 내게 어디를 딛는 텅 빈 발아래는 없으리라는 심상함을 이미지와 함께 새기께끔 했다. 「도시-관통」을 두루 주제로 삼자는 데 쉽게 동의해준 가경과는 어떤 지점을 향한 공통의 관심이 이미 있었던 게다. 서로 그것을 미리 안 것도 아니건만 그는 도시의 건축물에 유달리 관심이 있었다. 그럴 때 그가 바라보는 건축물과 내가 바라보는 건축물의 땅 아래는 분리 불가의 연결성을 가진다."(p.9) 

이처럼 한뜻으로 통과된 공동의 관심사는 「관」이고,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한다. 그러한 관은 상자(棺)일 때도 있고 건물(館)일 때도 있으며 수로나 지하도(管)의 형태이기도 하다고 황유지는 사유한다. 관이 연결의 공간적 감각이라면 통(通)은 시간적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층이 품은 오래전의 이야기들은 발아래 무수히 뻗어 나간 뿌리, 식물성을 닮은 리좀(rhizome)*의 육체적 감각이랄 수 있겠다. 

* 리좀은 ‘근경(根莖)’, 뿌리줄기 등으로 번역되는데, 줄기가 마치 뿌리처럼 땅 속으로 파고들어 난맥을 이룬 것으로, 뿌리와 줄기의 구별이 사실상 모호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arbre)형(arborescence)과 대비시켜 리좀 개념을 제기한다. 수목이 계통화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임에 비하여, 리좀을 제기하는 것은 욕망의 흐름이 지닌 통일되거나 위계화되지 않은 복수성과 이질발생, 그리고 새로운 접속과 창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려고 한다.(철학사전, 2009) 



저자 백가경은 「같이 관 걷기」란 제목의 이어쓴 〈서문〉에서 "「관」을 가지고 두 편의 시를 쓴 적 있다. 한 편은 시체를 담는 관에 대한 내용이며, 다른 한 편은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을 위한 시설물, 하부 구조 따위를 배경으로 쓴 것이었다."고 말문을 연다. 며칠 전 '유령을 보았다'는 저자는 을지로 3가의 허름한 건축물 안에서 희고 얇은, 하늘하늘한 천을 뒤집어쓴 세 명의 연극인이 〈유령-씨앗〉(창작집단 파라란)이라는 연극를 무대에 올렸다. 연극이 아니라 제(祭)인 이유는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주위에서 유령이 된 사람, 동물, 지역을 기리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좁은 무대 가운데를 걷고 말하고 다시 걷고 말하는 식으로 극을 이어 갔다. 그들의 이름은 마리, 명, 구다. 살처분당한 동물 몇 마리, 참사 현장에서 숨을 거둔 희생자 몇 명, 바다에서 되돌아온 시체 몇 구에서 따온 이름이다. (중략) 그곳에서 유령에 대한 인상적인 표현이 나온다. '그들은 살아생전 큰 고통을 당해서 죽은 뒤에 그들의 고통은 운동 에너지로 바뀌고 미립자가 되어 그공간을 떠도는" 존재라고 표현된다. 유령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미립자의 영향을 받아 우울감을 겪는데, 이를 막기 위해 낭만이라는 벽을 쌓아 올린다는 내용의 연극을 백가경은 인용한다.

"미립자가 즐비한 이곳은 결국 내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무리 단단하고 두꺼운 벽으로 고통의 미립자를 막는다고 해도 벽은 언젠가 허물어질 테고, 그 뒤로 켜켜이 얽힌 이야기의 수관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났을 테다. 우리는 외면하지 않고 마리, 명, 구의 얼굴을 마주하며 길게 이어진 관을 걸을 것이다.인간이 인간을 위해 세운 관 건축, 지하 아래로 흐르는 지하철도 관, 수도관, 가스관, 마지막으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관들이있는 곳까지 걸으며 공기 속에 흩어진 고통의 미립자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살아간다."(p.17)

이렇게 도시의 건축물에 유달리 관심이 있는 시인과 발아래 축적된 것에 골똘한 문학평론가는 〈도시-관통〉을 주제로 삼고, 서로가 관심을 가진 것들이 연결되어 있기에 이 모든 것을 〈관〉으로 여기고 〈관내〉를 여행하기로 한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표제어 가운데 「-되기」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철학자 들뢰즈의 사유*를 빌려온 것으로, 너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그 자리에 놓이는 이해의 지향을 뜻한다. 누군가를 향한 온전한 이해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되기」는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두 사람이 공간을 걷고, 사유하고, 글을 쓴 것은 그들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진정한 관내 여행자-되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유유자적한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다. 

황유지는 인천 성냥 박물관에서 일했던 어린 여공들의 삶에서 친척 언니의 삶을 겹쳐 보며, 우리 이전의 소녀들이 자신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짐을 졌던 시간을 떠올린다. 함께 인천을 찾았던 백가경은 동일방직 공장의 터로 이동하여 최소한의 노동 인권을 위해 항쟁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역경을 되새긴다. 의정부에서는 미군 부대 앞 성매매 여성들이 살았던, 아니 그곳밖에 살 수 없었던 〈뺏벌〉이라는 곳을 찾아가 역사와 슬픔의 거주지인 언니들의 방을 목격한다.

*들뢰즈의 사유: 헤겔은 동물을 비웃는다. 동물은 존재하는 직접적인 상태를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고 다른 동물에 의해서만 벗어난다. 그렇게 벗어나는 일이란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다. 개가 더 큰 개에게 물려 죽는 방식으로만 자기 자신을 벗어나듯. 반면 인간은 ‘내적 부정’을 통해 직접적인 자기 상태를 지속적으로 벗어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할 장애로 여기고, 이 장애를 부정함으로써 발전한다. 난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어! 다음 목표는 수학에서 50점 받는 거다! 이렇게 나날이 장애물 같은 자기 자신을 지양하고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바로 이런 사상의 정반대 편에 스피노자의 제자로서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있다. 들뢰즈는 동물을 이렇게 찬양한다. “동물들은, 비록 필연적으로 서로 죽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자신 속에 품고 있지는 않다.” 동물은 직접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존재를 즐길 줄만 안다. 오로지 버려야만 하는 인간의 어떤 악습만이 내면에서 자신을 부정하고, 니체가 말하듯 자기 존재를 ‘가책’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 가책은 후에 프로이트에 와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죄의식’이 된다. 삶은 내면에서 죽음을 선고하는 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며 주어진 존재에 대한 긍정과 기쁨으로 차 있다. 이런 삶에 대한 찬가가 들뢰즈의 철학이다.(생활 속의 철학, 서동욱)



두 저자는 또 안산과 이태원, 광주와 서대문으로 상처를 마주하러 걸어간다. 두 사람은 사회적, 역사적 공간만 찾아간 것은 아니다. 그들을 지금까지 만들어 온 고향과 일터, 그리고 둘을 이어 주게 된 「등단」의 길도 다시 한번 찾아가 결국 그 관을 모두 통과하여 밖으로 나온다. 함께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 기어이 통을 하나하나 두드려 가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안부를 묻고, 역사학자도 연구자도 아니지만 백치의 상태로 둘이서 손을 잡고 길고 긴 관을 걸어서 결국 나온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사회적 참사나 재난의 현장, 우리가 잊고 살던 아픔의 공간을 찾아가 우리가 모두 느낄 수밖에 없는 공동체적 슬픔뿐 아니라 개인적 경험을 함께 들려준다. 우리 역시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2014년 4월 16일 TV 화면으로 목격한 참사를,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일어난 참사를. 그뿐인가 해마다 5월이면 가슴속에 울려 퍼지는 진혼곡과 '광주의 눈물'을. 그렇기에 두 사람은 잊지 않고 그곳들을 다녀와 그 아픔을 되새기듯 꾹꾹 눌러쓴 글로 공간을 기록하고 사람을 위로한다. 

이 책은 〈서문〉과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10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관 「인천」, 2관 「의정부」, 3관 「삶터」, 4관 「안산」, 5관 「이태원」, 6관 「일터」, 7관 「광주」, 8관 「서대문」, 9관 「고향」, 10관 「등단길」 등이다. 각 관에서는 주로 사회적, 역사적 참사가 일어난 장소 위주로 다루고 있다. 주제가 다소 무겁긴 하지만 참사의 현장이나 역사적 사건은 결코 가볍게 처리할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을 더욱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 독자의 판단이다. 역사적인, 사회적 참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결코 지워질 수 없으면 시대를 관통해 기억과 기억이 연결되며 이어진다. 그것이 역사 기록의 의미이기도 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시대적 사명을 가진 시민들의 몫이다. 


나의 작은 투쟁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공부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기. 진실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특정 집단이 시간을 끌며 대중의 망각을 유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끝끝내 증명하기. 계속 말하기. 계속 쓰기. 작든 크든 계속 투쟁할 수 있는 위로와 에너지를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기.(p.153)


계엄과 백골단이, 무장한 경찰이 죽지도 않고 돌아온 것을 이번 겨울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나며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우리 사회는 얼마나 성숙했는가. 민주화도 성인도 되지 않은 채 이 사회가 얼렁뚱땅 나이만 먹어 가고 있지는 않나.(p.196)


저자 : 백가경

시인.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5년 시집 『하이퍼큐비클』을 펴냈다.


저자 : 황유지(황혜경)

문학평론가.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했다.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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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 마음에게 말을 걸다
윤창화 옮김 / 민족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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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독자들은 『법구경』의 명칭을 다 들어봤을 정도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책 이름이다. 명확하게는 진리(dharma)의 말씀(pada)이란 뜻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Dharmapāda)와 팔리어 (Dhammapada)로 표기되었다. 이후 세계 여러나라로 전파되면서 각 나라말로 번역되어 출판됐다. 2,500년 간이나 읽혀왔기 때문에 숫자나 횟수로 표기하기는 어렵다. 1998년 출간된 『종교학대사전』에 따르면 원전은 팔리어 5부 니카아야의 하나인 소부(Khuddakanikāya)에서 찾을 수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법구경』은 전 26장 423의 시를 수록한 팔리어본의 국역(國譯)과 전 39장으로 구성된 한역 법구경(2권)의 국역(國譯) 두 가지가 있다.

이 한역본과 팔리어본은 그 장수(章數)라던가 시구(詩句)의 배열 및 종류가 같지 않기 때문에 한역본의 원전은 팔리어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집은 주로 단독의 게(偈)로 되어 있으나 때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게(偈)가 한데 묶여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시들은 물론 석존이 직접 읊은 것은 아니지만 석존의 요긴한 뜻이 시(詩)의 형태로 엮여져서 원시불교 교단 내에서 널리 유포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각각 달리 편집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법구경』은 불교의 윤리적인 교의(敎義)를 시(詩)의 형태로 나타내어 불도(佛道)에 입문하는 지침으로 하고 있는데 방대한 불교성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석존의 진의(眞意)를 전하는 주옥(珠玉)의 문자이다. 

이 책 『법구경 : 마음에게 말을 걸다』의 편역자 윤창화는 13년간 출가 생활 중 8년 동안 월정사 조실 탄허 큰스님 시봉을 하면서 학문의 세계와 만났다. 1972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13회), 1978년 환속했다. 1980년 불교 전문 출판사 민족사를 설립해 42년째 불교책을 내고 있다.



『법구경 : 마음에게 말을 걸다』는 불교 최고의 명언집으로 불리는 『법구경(法句經)』의 423개 게송을 하루 한 문장씩 내 마음과 마주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감성 에세이이자 자기 돌봄 명상서다. 동시에 경전이면서 시집이고, 명언집이며, 명상 노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오늘의 언어로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제어 '마음에게 말을 걸다'는 “붓다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대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편역자는 말한다. 이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하며, 돌보는 일이다. 외부의 정보와 소음이 넘쳐나는 시대, 이 한 권의 책은 조용히 묻는다. “오늘, 마음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매일 밤 잠들기 전 스스로 자문하고 하루를 조용히 돌아보면서 성찰하기에 적절한 책이다.

“오늘도 간신히 버텼다.”는 말은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입에 붙은 탄식이다. 특히 2025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 국민들은 입버릇처럼 되뇌었을 것 같다. 짧은 고백이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 불면의 밤, 무너지는 관계와 일상. 우리는 모두 지쳐 있다. 편역자는 우리의 삶에 공감하면서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거대한 담론도, 화려한 성공 신화도 아니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단 한 줄, 귓가에 스며드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고, 그것은 붓다의 한마디라고 편역자는 설명한다. 편역자에 따르면 『법구경』은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으로 붓다의 생생한 핵심 가르침이 응축되어 있다. 그 안에는 마음, 윤리, 지혜, 절제, 자유, 고통, 해탈 등 인간 존재와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편역자는 불안·불면·번아웃·자책에 흔들리는 시대정신을 정확히 겨냥해, ‘하루 한 문장’이라는 포맷으로 『법구경』을 새롭게 엮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마음을 흔드는 문장은 독자들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오래 남는 한 줄,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힘이다.



「법구경의 미학」이라는 제목의 해설이 담긴 〈옮기며 엮으며〉에서 편역자는 『법구경』의 시적 번역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법구경』은 붓다의 지혜가 가득한 명언집이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처럼 삶의 지침이 되는 말씀과 가르침, 그리고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훌륭한 인격과 지혜를 갖추고 싶다면,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과장하자면, '이 한 권이면 끝이다'라고 말해도 좋다."(p.295)

『법구경』을 오늘의 감성으로, 독자들의 하루와 삶에 맞게 다시 번역하고, 다듬고, 어쩌면 '시처럼' 정리한 작은 마음의 기록이라고 편역자는 말한다. 편역자에 따르면 『법구경』은 붓다의 가르침을 간결한 시 형식으로 엮은 경전이다. 그 속에는 붓다의 핵심 가르침이 응축되어 있다. 그 안에는 윤리, 도덕, 절제, 노력, 정진, 탐욕, 욕망, 증오, 분노, 어리석음, 무지, 번뇌, 선악, 지혜, 선정, 명상, 수행, 고통, 해탈, 마음, 윤회, 그리고 니르바나(열반) 등 불교의 중요한 주제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인간 존재와 삶을 관통하는 통찰이 담겨 있다. 

붓다는 『법구경』에서 번뇌가 소멸된 세계, 마음이 평온한 '니르바나'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편역자는 설명한다. 이는 곧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하며, 불교의 핵심 교리 속에 압축되어 있다는 것. 고집멸도 사성제, 팔정도, 무상, 무아의 상징인 삼법인, 해탈, 중도 니르바나 등 붓다가 사색을 거듭하며 탐구한 이 가르침들은 우리의 삶과 인생에 대해 깊고도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한다고 편역자는 강조한다. 또 편역자는 이번 번역은 새로운 번역은 아니며, 기존의 여러 번역을 참고하여, 독자들이 더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엮은 것으로 밝히고 있다. 가능한 원뜻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문장을 다듬었고, 독자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리듬과 문맥, 운율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언급한다. 경어체로 옮긴 것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좀 더 마음 깊게 다가가고 싶어서라고 편역자는 털어놓는다. 좋은 말씀은 향기가 되어야 하며, 가슴 깊이 와닿아야 한다.



저자는 빨리어본 《담마빠다》는 26품(장)과 423송(시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부 니까야 중 《쿳다까 니까야》에 수록되어 있다고 밝힌다. 특히 『법구경』은 붓다의 말씀 중 가장 원음에 가까운 경전으로, 그 가르침은 매우 실천적이며,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고 역설하며 주요 가름침을 전한다. 「악행을 피하고 선행을 실천하라」「집착과 번뇌에서 벗어나라」「욕망과 애욕을 끊어라」「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어라」「탐욕, 증오, 분노를 버려라」「방종과 게으름을 피하라」「항상 노력하라」「시간을 낭비하라」「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를 기르라」「참된 가르침을 따르되 삿된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진리를 깨달아라」「니르바나를 성취하라」 등이다. 

편역자에 따르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라는 불변의 진리와 마주하며 사색과 고뇌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 붓다의 지혜가 담긴 『법구경』이 있다. 이 경전 속에는 '불사(不死)의 길' '영원의 길'이 펼쳐져 있다. 『법구경』을 눈앞에 둔다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충분히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무겁지 않지만 깊이 있는 문장, SNS 시대에 최적화된 길이와 시적인 운율, 그리고 가방에 쏙 들어가는 핸디 사이즈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행위 자체를 ‘마음 챙김의 루틴’으로 만들어 준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라는 법구경의 첫 구절처럼,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요,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주춧돌이다.

법구경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든 편역자 윤창화는 오늘날의 독서 트렌드를 짚는다. “요즘 독자들은 무겁지 않게, 혼자 조용히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건강한 삶이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일상이 된 것처럼, 이 책은 붓다의 메시지를 일상 속 루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마음 다독임 콘텐츠’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 마음이 만들어 갑니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 끝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마치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듯이(p.10)


지혜는 명상에서 생겨나며,

명상을 하지 않으면

지혜는 점점 사라집니다.

이 두 가지 이치를 잘 이해하고,

마땅히 지혜를 기르는 데 힘써야 합니다.(p.205)


역자 : 윤창화


강원 평창 출신. 13년간 출가 생활을 했다. 8년동안 월정사 조실 탄허 큰스님 시봉을 하면서 학문의 세계와 만나게 되었다. 1972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13회), 1978년 환속. 1980년 불교 전문 출판사 민족사를 설립해 42년째 불교책을 내고 있다. 1999년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한국고전번역원)을 졸업했다. ‘창화’는 수계명이다.

논문으로 「해방 후 역경의 성격과 의의」, 「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한암선사의 서간문 고찰」, 「무자화두 십종병에 대한 고찰」, 「경허선사의 지음자 한암」,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론 비판」, 「경허의 주색과 삼수갑산」 등이 있고, 저서로는 『왕초보, 선 박사되다』, 『근현대 한국불교 명저 58선』, 『당송시대 선종 사원의 생활과 철학』, 『선불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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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모든 새들
찰리 제인 앤더스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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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과학적 발상과 초자연적인 요소를 결합해 재미 있고 작품성 높은 탁월한 SF 소설이 반갑다. 순정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주인공의 활약은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판타지적인 첫인상을 선사한다. 오랜만에 읽는 SF 판타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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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모든 새들
찰리 제인 앤더스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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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회란 다른 사람의 자유와 너의 속박 사이의 선택이야.” 이 소설 작품 『하늘은 모든 새들』은 멸망을 앞둔 지구 위,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실험을 가속하는 과학기술자들과 그들로 인해 상처 입는 자연을 보호하려 인류를 멸하려는 마법사들의 전면전을 그리고 있다. 소녀와 소년의 사랑과 성장을 통해 세계의 공존 같은 심오하고 복잡한 문제부터 자아정체성이라는 내밀한 문제까지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문제들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페러그린’이라는 AI가 핵심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만화 주인공 같은 등장인물 설정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판타지적인 첫인상을 선사하지만, 등장인물이 자아를 찾으며 느끼는 슬픔과 허무감을 표현하는 작가의 냉소적인 문장이 위화감 없이 조합되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신선함을 풍기기도 한다.

인공지능 페러그린은 입력된 질문을 무한히 자동 학습하며 전 세계 단말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됐고, 결국은 그만의 방법으로 인간과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소통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가 “마치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라는 말처럼 읽히는 문장”이라고 평가한 이 소설은 약 10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래를 읽은 듯 지금의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저자 찰리 제인 앤더스은 〈작가의 말〉을 통해 다소 생뚱맞은 창작 취지를 내보인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즐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혹시 그러지 못했다면, 혹은 이해가 안 되거나 지나치게 생뚱맞은 대목이 있다고 생각되면 내게 이메일을 보내주시길. 내가 독자 여러분의 집으로 찾아가서 모든 것을 재연해 보일 테니까. 어쩌면 종이로 접은 손가락 인형들을 데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p.475) SF를 사랑하는 저자는 “나는 명확한 이분법에 직면할 때마다 항상 그것을 분해하고 복잡하게 뒤섞으려 한다. 어쩌면 그 안에 내재된 모순을 조화시키고 싶은 것 같다.”는 SF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이야기하고 있다.


“온 세상이 혼란에 휩싸이면 우리는 혼란의 전면에 나서야 해.” 마법과 과학, 자연과 기술, 감정과 이성··· 다른 방식으로 망가진 두 세계 속 인간과 마법사 사이에서 만들어진 AI의 목소리는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독자들에게 갈등과 대립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퍼트리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처럼 거대하고 오래된 존재와 맞닥뜨리자 갑자기 자신의 문제가 하찮고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난 가짜 마녀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내 친구 로런스는 슈퍼컴퓨터도 만들고 타임머신과 광선총도 만들어요. 원할 때면 언제든 근사한 일이 벌어지게 할 수 있어요. 나는 어떤 근사한 일도 일으키지 못해요.”

“근사한 일이.” 나무는 세차게 몰아치는 모음과 덜거덕거리는 자음으로 말했다. “벌어지고 있다. 바로 지금.”

“맞아요.” 퍼트리샤는 또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확실히 멋진 일이죠. 정말로요. 하지만 이건 저절로 벌어진 일이잖아요. 내가 원해서 일어나도록 만든 일이 아니라요.”

“네 친구는 자연을 통제하려고 하지.” 나무는 단어 하나하나를 힘 주어 말했다. “마녀는 자연을 섬겨야 한다.”

“통제는 환상이야.” 나무가 말했다.(p.73)


마녀가 되어 동물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순수함을 악마에 홀린 것으로 오해받는 소녀 퍼트리샤. 과학고 합격증을 혼자 타올 정도의 두뇌를 지녔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반사회적인 어른으로 자랄 거라는 평을 받으며 병영학교에 강제 입학하게 된 로런스.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두 어린이는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는데, 로런스가 퍼트리샤에게 자신이 만든 AI, ‘페러그린’을 우정의 증표로 선물할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재회한 둘은 멸망 직전의 지구를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펼치며 충돌하기 시작한다.



로런스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려는 프로젝트를 꾀한다. 퍼트리샤가 속한 마녀 사회는 인간들 때문에 죽어가는 자연을 살리기 위해 인간 절멸 마법을 구상한다. 그사이 사랑에 빠진 퍼트리샤와 로런스는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만,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 시작한 종말을 멈출 수 있는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이들은 함께 성장시킨 AI, 페러그린과 함께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이 책을 번역 출판한 〈허블〉에 따르면 전통적인 성장 소설처럼 보이는 줄거리지만 찰리 제인 앤더스가 그리는 ‘성장’은 일반적인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이는 관계라는 개념을 언제나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자의 시점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저자의 이력과도 관련되어 있다.


학교를 마치고 퍼트리샤는 침대에 걸터앉아 로런스의 슈퍼컴퓨터 CH@NG3M3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매일 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이 내가 살아 있는 한 절대로 숲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겠대. 그건 말이지, 내가 아무한테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학교에서는 모두가 나를 자해자, 미친 사람이라고 불러. 가끔 내가 정말로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그러면 견디기가 한결 쉬울 것 같아.”

“만약에 네가 미쳤다면, 미쳤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CH@NG3M3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네.” 퍼트리샤가 인정했다.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어야겠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둘이서 같은 것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주전자가 수놓인 누비이불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엄지를 깨물었다.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면?” CH@NG3M3이 물었다. “그럼 미친 거야?” 가끔 컴퓨터는 자신의 틀을 벗어던지고 퍼트리샤가 앞서 한 말을 살짝 바꿔서 돌려주곤 했다. 그러면 정말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p.84)



저자는 갈라진 세계, 다른 관점, 모순된 가치관 속에 등장인물을 던져넣고 결말을 지켜보는 작품을 주로 써왔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저자는 그동안 삶을 경험하는 방법으로 ‘마법’, ‘AI’, ‘기억’ 등의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며 독보적인 그만의 ‘성장’을 구축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데뷔작이자 람다 문학상을 받은 『성가대 소년Choir Boy』은 트렌스젠더 소년이 변성기에 대한 광기 어린 공포에 휩싸여 이를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휴고상을 받은 그의 두 번째 작품 「6개월, 사흘"Six Months, Three Days"」은 변할 수 없는 운명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변할 수 있는 미래의 변곡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다. 개인적 성찰 그리고 개인 간의 이해를 그린 저자 찰리 제인 앤더스는 시선을 세계 범위로 넓힌 『하늘의 모든 새들』을 세 번째 작품으로 써내며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다른 나머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제시했다.

책을 번역한 역자 장호연은 〈옮긴이의 말〉에서 저자의 작가적 성향과 이 작품의 독창성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장르소설은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선사한다. 현실에 없는 모습을 어떻게든 구현해 보여주는 영상물과 달리 책은 이를 우리의 상상에 맡긴다. 새가 말하고 컴퓨터가 말하고 웜홀 발생기가 부서지는 장면을 독자 스스로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독서는 곧 독자에게 많은 상상의 자유와 여지가 부여되며, 이런 경험은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이 된다. 이렇게 쌓은 훈련의 과정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페러그린’과 통하는 면이 있다. 로런스의 침실 벽장 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학습하고 성장해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컴퓨터 말이다. 두 주인공이 페러그린과 말을 주고받는 대목은 어느 모로 보나 챗GPT를 떠올리게 한다. 페러그린이 기계적인 존재에서 감응적인 존재로 넘어가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있다. 바로 질문이다. 그 질문은 퍼트리샤가 어렸을 때 새에게서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다. 평생 그녀의 마음속에 수수께끼처럼 남은 그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자연과 기계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두 주인공을 이어준다. 이렇듯 좋은 질문은 존재 - 사람은 물론 컴퓨터도 - 를 성장시킨다. 책도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을 경험하고 스스로 깨닫도록 만든다. 이 책은 좋은 질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p.478~479)



『하늘의 모든 새들』은 사춘기에 걸린 것 같은 소설 작품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채도 높은 자연의 정경과 이질적이지만 계산된 아름다움을 지닌 기계들을 생생히 묘사하며 날카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웨스 앤더슨이 SF에 흥미를 가진다면 이 소설을 각색하고 싶을 것이다”라는 평이 어울리는 선명한 묘사는 눈앞에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적나라한 언어로 서술하며 진행되는 서사는 결말을 예측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망가뜨려서는 안 됐어. 너한테 그러지 않았어야 했어.”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는 존재를 그저 감내할 것인가,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인가.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버둥거리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지켜보는 AI는 이런 인간들의 행동을 토대로 다시 학습하고, 분석을 다시 시작한다. 이 AI 성장의 구심이 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나무는 붉은가?” 이 질문은 퍼트리샤가 마녀 사회에 소속되기 위해 부여받은 궁극적인 과제이자, 지구를 ‘바위’라고 말하는 인간이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인 나무를 인지하게 만들며, 단순한 연산기기였던 슈퍼컴퓨터가 ‘페러그린’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게 했다. 이 한 가지 질문을 통해 자연과 과학이라는 두 세계를 설득력 있게 연결한 찰리 제인 앤더스는 독자에게도 한번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어른을 위한 성장 소설이다. 찰리 제인 앤더스는 도서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사실 성장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과거의 악몽을 이겨내는 멋진 성장을 잘 경험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다”라고 언급했다. 유년기에 겪은 문제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하고 어린 채 머물러 있는 독자들에게 『하늘의 모든 새들』은 위로를 건넨다. 명확한 정답을 찾는 것만이 인생은 아니며, 계속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일지 모른다고.



“정말 인상적인 기계야.” 확실히 공학의 결정체에는 미적으로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뭔가가 있었다. 반짝거리고 견고했다. 퍼트리샤는 발렌시아 스트리트의 힙한 갤러리에서 팔던 오래된 수동 타자기나 멋진 증기기관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애정을 이 기계에도 느꼈다. 이런 것들은 항상 망가졌고 더 나쁘게는 모든 것을 망쳤으므로 오만함의 산물이다. 하지만 로런스의 말처럼 이런 장치들은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들듯 우리는 기계를 만들었다.(p.225)


저자 : 찰리 제인 앤더스(Charlie Jane Anders)


장편소설 『밤 한가운데의 도시(The City in the Middle of the Night)』를 썼다. 다른 저서로는 네뷸러상, 크로포드상, 로커스상 수상작인 『하늘의 모든 새들(All the Birds in the Sky)』, 람다상 수상작인 『성가대 소년(Choir Boy)』, 중편소설 『록 매닝, 버티다(Rock Manning Goes For Broke)』, 단편소설집 『육 개월, 사흘, 다른 다섯 편(Six Months, Three Days, Five Others)』이 있다. [토르닷컴], [보스턴 리뷰], [틴 하우스], [콘정션스],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 [와이어드 매거진], [슬레이트], [아시모프스], [라이트스피드] 등의 매체와 여러 작품 선집에도 단편소설을 기고한 바 있다. 단편소설 「육개월, 사흘(Six Months, Three Days)」로 휴고상을 수상했고, 「요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고소하지 않겠습니다(Don’t Press Charges And I Won’t Sue)」로 시어도어 스터전상을 수상했다. 조만간 새로운 단편소설집 『심지어 더 큰 실수(Even Greater Mistakes)』가 출간될 예정이다. 찰리 제인은 또한 매월 〈작가와 술 한잔(Writers With Drinks)〉 낭독 시리즈를 조직하고, 애널리 뉴위츠와 함께 팟캐스트 [우리 의견은 옳다(Our Opinions Are Correct)]를 공동 진행 중이다. 단편소설 「아메리카 끝에 있는 서점」으로 2020년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역자 : 장호연


1971년에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음악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공부했다. 음악 동호회 얼트 바이러스에서 음악평론을 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해 웹진 [웨이브]에 음악평론을 기고했고 방송작가로도 활동했다. 현재 음악과 뇌과학, 문학 분야를 넘나드는 번역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얼트 문화와 록 음악 2』(공저),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뇌의 왈츠』, 『뮤지코필리아』,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 『낯선 땅 이방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거금 100만 달러』,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긍정의 뇌』,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 『클래식의 발견』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스스로 치유하는 뇌』 『소리의 마음들』『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하워드 구달의 다시 쓰는 음악 이야기』 『고전적 양식』 『쇼스타코비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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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
김태환 지음 / 새벽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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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철학'이란 단어가 몹시 생소했다. 산업화 시대 이야기다. 대학에 철학과는 있었지만 사회적 분위기나 취업 등을 생각하면 공대, 법대, 상대 등이 가장 인기 있었다. 물론 의대도 있었다. 그러나 의대는 무척 어려운 길이다. 사법고시(옛날에는 '고시'란 이름을 썼다)에 합격한 예비 법조인들만큼의 사회적 대우받았다. 당시 예비고사나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에서 일정 점수 이상이어야 할 정도로 우수 인재들만 가는 곳이다. 인문계가 가장 홀대 받았다. 당연히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우수 인력을 뽑아야 했기에 취업이 쉽게 가능한 학과에 몰린다. 우수 학생이 문과에 가지 않는 것은 그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철학과는 정말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학과로 치부했다. 그들은 학교 교사로 가려 해도 사실 철학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과목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국민윤리〉란 과목을 두고 동서양 철학자들의 이름만 소개할 정도다. 철학과는 졸업 후 취업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더욱이 철학과가 있는 대학에서는 학생 시위가 있을 때마다 철학과 학생들이 꼭 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세상이나 사회 돌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더 신경 쓰는 학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옳은 삶인가.”

말이 철학이지 이런 문제를 다룰 만큼 사회의 변화는 한가하지 않았다. 당장 산업화에 기여하고, 돈도 빨리 벌어 출세해야 하는 사회 구조라서 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시대였다. 삶의 본질을 파고 들고, 인생을 논하는 철학은 무가치하고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었을까? 그러나 21세기 뉴밀레니엄에 들어설 무렵부터 철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때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기에 철학이 대두된 것으로 독자의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개인 소득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선진국 문턱이라고도 했다. 의식주가 해결돼야 '철학이 삶에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 같다. 두 가지 문제는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다고 느낀다.



이 책 『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27명의 철학자와 101개의 명언을 통해, 삶의 본질을 묻고 사유하도록 이끄는 철학서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 몽테뉴의 성찰, 니체의 초인 사상 등 시대를 초월한 철학자의 사유를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내어, 독자들이 스스로의 철학을 세우고 삶을 단단히 다질 수 있도록 안내한다. 특히 단순한 읽기를 넘어 명언 필사와 사유 질문을 함께 담아, 책을 읽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의 철학을 완성할 수 있도록 구성한 편집진의 '촉'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 김태환은 〈서문〉에서 철학이 삶에서 어떤 영향을 얼마나 끼치는지 '철학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오랫동안 철학을 읽고, 배우고, 삶에 적용하려 애써왔다. 그 덕분에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무너질 듯한 시절을 견디며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고 말한 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은 깊이 들여다볼수록 정답이 없고, 끝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밝힌다. 저자는 철학에는 완벽한 정답이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철학을 모르면 인생이라는 단어조차 공허하게 들린다. 철학은 스스로 무지함을 드러내지만, 바로 그 깨달음이 성장의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발전은 언제나 '나는 모른다'라는 자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27명의 철학자, 101개의 명언이 들어 있다. 숫자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을 건너온 삶의 고뇌와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고 독자들의 눈을 한 단계 올려놓는다. 흥미로운 건, 똑같은 주제를 두고 어떤 철학자는 A라고 말하고, 다른 철학자는 정반대인 B를 말한다. 또 철학자는 달라도 같은 뜻이 반복되기도 한다. 저자가 그 모순과 반복을 의도적으로 남겨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철학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스스로의 답을 길어 올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철학 책을 읽고 공부할 때 꼭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을 제시한다.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읽을 때는 그저 반듯한 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듯한 말일수록 실천은 어렵다. 그래서 반복해서 읽고, 마음에 새기고,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한다. 좋은 문장을 읽는다고 삶이 단번에 변하지는 않는다."(p.7) 저자는 이어 책 곳곳에 필사란과 질문란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문장을 손으로 직접 옮겨 적으며, 그 속에서 더 오래 머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손끝으로 적는 순간, 철학자의 문장은 독자들의 것이 되고, 질문은 독자들의 답을 찾아가는 길이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다른 누구의 철학도 아닌 독자들만의 철학이 완성되는 것,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독자들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고, 길을 잃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묻어나는 저자의 배려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를 이해하는 철학 : 자기 인식과 존재의 탐구〉, 2장 〈타인과 함께 사는 철학 : 관계, 사랑, 책임에 관하여〉, 3장 〈삶의 태도를 말하는 철학 : 고통, 운명, 자유, 죽음에 대한 응답〉, 4장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 정치, 사회, 권력, 자연에 대한 사유〉 등이다. 1장에는 「소크라테스」「르네 데카르트」「임마누엘 칸트」「장 폴 사르트르」「쇠렌 키르케고르」「블레즈 파스칼」「장자」「마르틴 부버」, 2장에는 「아리스토텔레스」「아르투어 쇼펜하우어」「장자크 루소」「바뤼흐 스피노자」「에리히 프롬」「공자」「마르틴 하이데거」를 다룬다. 3장에는 「프리드리히 니체」「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에픽테토스」「알베르 카뮈」「미셸 드 몽테뉴」, 마지막 4장에는 「플라톤」「존 로크」「노자」「레프 톨스토이」「에피쿠로스」「앙리 베르그송」이 각각 등장한다. 

저자는 독자들의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철학자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요약하고,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했다고 밝히고 있다. 철학자들의 언어를 마음 깊이 새기고 독자들만의 철학을 만든다면, 이전보다 삶이 훨씬 더 단단하고 풍요로워졌음을 문득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권유하고 있다.



서양 철학사 등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철학자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소크라테스다. 이 책 역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명언과 함께 소크라테스가 가장 먼저 소개된다. 철학 책을 한 번이라도 읽거나 TV 강의 등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출연하는 철학의 시조 소크라테스를 알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대화)를 통해 지식과 진리를 탐구했다. 그가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누명으로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당시 그의 제자들로부터 탈옥을 권유받았으나 "악법도 법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셨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누구나 아는 그의 간단한 프로필을 이 책은 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아테네 출신의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다. 그는 어떤 책도 남기지 않았지만, 아테네 거리에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철학을 실천했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도 그것을 자각하게 했다. 당시 아테네는 전쟁과 민주주의의 변화를 겪었고,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진리와 올바름을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독배를 마시며 생을 마쳤고, 철학자로서 삶과 죽음 모두를 진지하게 마주한 인물로 남았다."(p.10)

저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조차, 실제로는 모호하거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평범한 사람보다 한 걸음 나아갔다. 그는 자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겸손이 최고의 지혜임을 알았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나는 모른다"고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고, 더 겸손하게 배우게 된다는 점을 소크라테스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또 소크라테스의 이 문장은 우리에게 묻는다고 밝힌다. "당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인가? 아니면 익숙한 믿음일 뿐인가?"라는 질문이다. 내가 확신하는 신념, 옳다고 믿는 가치관 위에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우리는 철학이 시작되는 첫 문단에 서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밖에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알려진 것 중에는 "너 자신을 알라"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바로잡는다. 이 짧은 문장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말로, 소크라테스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철학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이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선 세상을 알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늘상 말했다. 자신의 감정, 욕망, 두려움, 가치, 약점까지 철저히 직면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몸소 실천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종종 삶의 방향을 사회가 요구하는 길에 맡긴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고, 누군가와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녀를 키우는 일련의 과정들을 '성공한 인생'이라 여긴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묘하게도 공허함이 찾아오는 순간을 맞이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온전한 나의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 시나리오'를 따라 살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호불호를 명확히 모른 채 살아간다.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는지, 어떤 순간이 나를 답답하게 하는지, 어떤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지 모른 채 막연하게 산다. 이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인데,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대신 그냥 흘려보내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세상을 알기 전에, 너 자신을 알라."

저자의 해석이 이어진다. "그 말은 단순히 자기소개서를 잘 쓰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알려주는 단서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단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묻고, 잘못을 성찰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 믿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건 누구나 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 묻는 일은 아무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남이 짜준 틀에 휩쓸려 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였는지 모르게 된다고 저자는 경계한다. 

당신은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본 적이 있는가?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에게 소홀히 굴었던 순간들이 있지는 않은가? 저자의 질문에는 소크라테스의 답이 뒤를 잇는다. 소크라테스는 "반성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이 말은 지나간 삶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삶을 돌아보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경고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반성으로 자신을 자책하라는 말도 아니다. 반성을 통해 나를 더 잘 알고,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더 나은 방향으로 한 발짝 나아가라는 의미라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우리는누구나 실수한다. 하지만 반성은 실수를 삶의 재료로 바꾸고, 그 재료를 성장의 걸음으로 바꾸는 힘이 된다. 그래서 반성하는 삶은 아름답고, 반성하는 사람은 조금씩 내면이 단단해지고, 삶도 나아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이 책은 27명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그들의 철학을 단순하게 번역 소개하지 않는다. 당시 철학자들의 말한 격언 등을 중점적으로 다시 살펴본다.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나 철학의 논리 등을 풍부하게 수집한다. 저자가 철학 지식과 사유를 바탕으로 탁월한 27명의 철학자들의 삶에서 그들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 해석해준다. 독자들에게 철학자들의 언어를 자기 삶의 언어로 바꾸어내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책이 단순한 철학 해설서가 아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철학을 빌리지 않고, 오직 독자들 스스로의 철학이 완성되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안내서다. 철학하기 좋은 계절,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바랐던 가을이다. 이 한 권의 책 『철학을 모른다면 인생을 논할 수 없다』를 추천한다.


저자 : 김태환(장문)


4년 전부터 SNS에서 꾸준히 글을 써오며, 현재는 약 5만 명의 팔로워에게 따뜻한 글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매월 평균 500만 명이 작가의 글을 보며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있다. 저자는 인생에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질 때에도 부지런히 밝은 빛으로 채워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역시 슬픔과 불행 대신 기쁨과 행복으로 삶을 가득 채워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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