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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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독자가 이 책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읽게 된 것은 우연히 책의 〈서문(프롤로그)〉에서 발견한 '진짜 나'란 문구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저자 '료'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책의 제목이 묘(?)하다는 느낌이 들어 독자의 시선을 잡아 당겼다. 저자 료가 직접 쓴 〈서문〉의 첫 문장을 여기에 옮겨 적어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짜 나로 살 수 있는 용기를 논하게 되는 것이 아이러니해서 '왜 우리는 이렇게나 진짜의 나로 가는 길에 용기까지 필요하게 된 걸까?" 

이 문장에 담긴 '진짜 나'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나'는 '가짜'로 살았던 것일까? '진짜'란 단어는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섞여 '참'과 '거짓' 중 '참'을 의미하는 것이고, 부족한 영어 실력을 동원하자면 'real' 'true'쯤 아닌가? 독자가 이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혼란했던 대한민국의 정국이 차츰 안정되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 뽑힌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전까지(정확하게는 취임사에서도 들었다)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천명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한민국은 '가짜'란 말인가? 국가 공동체가 진짜가 있고, 가짜가 따로 있진 않을 텐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이 후보자가 이런 뜻으로 썼을 리는 없다. '더 나은 대한민국'이란 표현을 놔두고 왜 '진짜 대한민국'을 외쳤을까? 더욱이 우리가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이 단어는 사실 한자와 우리말이 복합적으로 합쳐진 것이다. '眞'짜와 '假'짜는 상대적 개념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독자는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가짜(거짓말 잘하는) 정치인'이라는 자신에게 붙은 별칭의 허위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진짜'를 반복 주장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반대 세력이나 정당에서 비방하기 위해 가짜 프레임을 씌운 것 정도로 독자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 료가 사용한 '진짜 나'는 문맥상 '허상(虛像)'의 반대되는 뜻의 '실상(實像)'을 의미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 표현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자 이 대통령의 '진짜 대한민국'의 참뜻에 한층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대통령이 정치적 구호처럼 내세우는 '실용주의'에서 그 깨달음은 '참'에 가깝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 료는 ‘런던베이글(bagel)뮤지엄’, ‘아티스트베이커리’, 카페 ‘하이웨스트(high waist),’ ‘레이어드(Layered)’ 등의 감각적 공간 브랜드를 창업하고, 브랜드를 전국의 ‘빵지순례객’들이 찾는 명소로 만든 분이다. 그녀가 창조한 공간은 ‘꾸며진 컨셉’이 아닌, 감정이 축적된 풍경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 공간을 만든 그녀는 브랜드보다 오래 남는 감각과 마음을 믿는다. 그 믿음은 그녀가 만들어온 시간의 결, 그리고 켜켜이 쌓인 감정의 레이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다층적인 시간과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길어 올려, 자신의 첫 산문집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에 담아냈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이 책 속의 글은 생생한 언어이거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이거나, 비유적 표현이거나 모두 독자들이 바로 이해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밝힌다. "언제나 말보다 시선을 먼저 보내는 그녀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장르와 형식에 갇히지 않고, 온전히 ‘나다움’을 지켜내는 그녀의 글은 얼핏 가벼운 일상의 스케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삶에 대한 깊은 애정, 인간을 향한 다정한 시선,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담겨 있다"는 출판사의 글에 공감한다. 

이 책을 읽은 후 독자의 감상을 굳이 묻는다면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 과장 없이, 실제 모습 그대로 표현했다"고 독자는 답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마음속 작은 울림을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저자 료는 무심코 들어간 런던의 한 카페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작고 소박했던 런던의 한 카페에서,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완벽한 하나의 합을 이루며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형언할 수 없는 에너지에 커다란 울림을 받았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오랫동안 저는 타인을 관찰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 순간 생각했어요.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었을까? 평생 하리라 믿었던 일을 그렇게 내려놓고, 직업을 일순간에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저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렇게 “목표 대신 자유를 원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이 고백은 저자가 "진짜의 나로 가는 길에 용기가 필요한 것은 지금 살아가는 나의 많은 모습들이 사실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묻는 것 같다."며 "내가 나로 태어나 내가 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를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던 생각들이 모여 이 책이 된 것"이라고 말로 대신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아티스트로 태어났으며, 삶이라는 무대에서 모두가 배우로서 각자 자신만의 연기를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얼까?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는 저자가 추구하는 삶의 핵심 가치이며, 그녀가 만들어 온 브랜드의 철학이라고 답변한다. 매일, 매 순간을 ‘진짜 나’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에게, 일과 삶, 일상과 예술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간을 만들고, 옷을 입고, 음식을 만들고, 타인과 함께하는 모든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 속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점이 저자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고유함에 대한 예찬’이다.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나에게 가장 좋은 레퍼런스는 결국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정답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영어로 쓰고 사진도 책 속에 담겨 있다. “Being yourself, not being someone.” 그 과정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감각이 생긴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 속에는 진실과 진심이 잘 녹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에 하나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겉모습의 화려함이나 장식적인 감상과는 다르다. 그것은 그저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무언가를 저 끝까지 알고 싶은” 사랑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보려는 이와 같은 ‘몰입’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감정의 동일화”이다. 바게트를 들고 돌아오는 길, 오래된 찻잔의 무늬, 해 질 녘 창문에 드리운 빛과 같은 순간들을 붙잡으며, 저자는 말한다. “그저 세상의 아름다움을 빠짐없이 낚아채는, 아름다운 사냥꾼으로 살고 싶어요. 순간의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요.”라고.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움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다고 독자는 짐작한다. “"매일 순간의 아름다움을 스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다.”는 단순한 집필 취지와도 일치한다. 


저자가 이 책을 내며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는 반복되는 '나로 사는 것'은 두려움이 동반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과 섞여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인간이기에 불가피하다고 배웠기에 '나답게' '진짜 나로' 산다는 것은 혁명적인 관점의 차이가 있는데 쉽게 가능할까? 이 책을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가질 만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알고도 그저 시작할 수 있던 '용기'가 필요하며 누구나 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비에 젖은 작은 새’와도 같은 마음이 들 때, 우리를 다시 날아오르게 하는 건 무엇일까. 무심코 들어간 런던의 한 카페에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오래된 빈티지 물건에서 누군가의 시간을 마주하며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내가 제일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은 가장 약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비에 젖은 작은 새 같던 시절이었다. 열두 번 바뀌는 생각과 출처 없는 공포에 손도 못 쓰고 자꾸만 숨이 차던, 그 안에서 지도 같은 건 손에 쥐지 못한 걸 알면서도, 소맷부리로 눈물을 훔쳐내고, 캄캄한 길목에서 한 발자국 용기를 낼 때, 그 어떤 일의 시작은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성장했다는 것은 꼭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두려움을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작든 크든 성장했다는 것은 어둡고 보이지 않음을 알고도 발을 내디딘 용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그 어떤 성공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두렵지만 “첫선을 그을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그저 시작할 수 있다.”고.

어쩌면 내가 제일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은 가장 약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비에 젖은 작은 새 같던 시절이었다. 열두 번씩 바뀌는 생각과 출처 없는 공포에 손도 못 쓰고 자꾸만 숨이 차던, 그 안에서 지도 같은 건 손에 쥐지 못한 걸 알면서도, 소맷부리로 눈물을 훔쳐내고, 캄캄한 길목에서 한 발자국 용기를 낼 때, 그 어떤 일의 시작은 바로 그때였다. ‘무엇을 알아냈다.’고 강하고 단단하게, 부족함 없이,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자꾸만 우스워 눈치 없이 그저 서 있던, 알고 보면 더없이 지루했던 때가 아니라.(p.82)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인터뷰)〉를 제외하고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를 뒤흔든 런던〉, 2장 〈그저 시작할 수 있는 용기〉, 3장 〈진짜의 베이스는 외로움〉, 4장 〈매일의 아름다움〉, 5장 〈생각 없는 생각〉, 6장 〈준비된 즉흥성〉, 7장 〈내가 나로 산다는 것〉, 8장 〈모든 질문의 끝에 사랑이〉 등이다. 제목을 잘 살펴본다면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순서로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8개 장에는 모두 186개의 단상(斷想)이나, 짧은 생각 등이 수록돼 있다. 모든 내용이 별도의 생각이나 내용이지만 각 글은 모두 한 가지로 수렴된다. '사랑'이다. 

6장 121번째 글을 여기에 옮겨본다. 타인의 경험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내가 눈을 떠 직접 느끼는 모든 것들만이 결국은 내가 풀어내는 과정에 베이스가 될 거라는 사실을 제법 정확하게 알게 된 뒤로는, 운전을 하거나, 출근길을 걷거나, 회의를 하거나, 팀원들의 스타일을 구경하거나, 줄 서서 커피를 주문하는 사운드들을 라디오처럼 듣거나, 같은 책을 계속 읽거나, 컨펌을 하거나, 수정을 하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테스트를 하거나, 해의 크기와 높이의 다름을 보거나, 물이 끓고 있는 형상을 보거나, 길 건너 신호 대기 중인 사람을 관찰하거나, 무작정 선 채로 매장의 바이브를 느끼는 일까지. 사소한 발견과 미미할지도 모르는 반응과 기억을 의심하던 매일의 사진과 잊지 않기 위해 써댄 글들의 반복이, 매번 기분 좋은 공짜 학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그대로 내가 투영될 때, 그 언젠가의 분주했던, 차분했던, 어려웠던, 즐거웠던 나를 빌려 쓰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저 멀리 언젠가 또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두서없이 무엇이든 채우고, 보고, 쓰던 나를 빌려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두 눈과 귀와 맘이 바빠진다.(p.229)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나를 알아가는 방식이란, 결국 물리적으로 자꾸만 써대는 뭔가라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고, 택하고 있다. 고민 같은 것 없이, 자주 생각하고 자꾸 써대는 것들이 모여 잘하는 일이 되는 과정임을 알고 있다. 더 이상 의심 같은 건 접어 두고, 거창하든 사소하든 그저 끌리는 대로 쌓여가는 거대한 시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믿으며, 나는 그저 간다.(p.247)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인터뷰)〉에서 두 가지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적는다. 

- 예술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료가 생각하는 ‘예술’과 ‘생활’, 혹은 ‘예술’과 ‘일’ 사이의 경계는 어떤 것인가요?

네. 우리는 이미 예술 안에 살고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아티스트’로 태어났으니까요. 인간의 탄생, 나무의 성장, 벌레의 움직임, 돌과 대리석의 질감 - 이 모든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경이롭고 완벽한 질서 속에 존재하고 있어서, 결국 ‘존재 자체가 이미 예술’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표현하는 모든 방식들, 글씨체, 말투, 먹는 방식, 작은 습관들까지 모든 것이 예술 활동이죠. 그렇게 보면 이 지구에 수십억 개의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아티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할 때의 나’, ‘집에서의 나’, ‘사랑할 때의 나’처럼 나를 분리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데,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게 된 건 삶이 이미 너무 분절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특히 요즘 많은 사람들이 취미 대신 SNS에서 인증된 즐거움으로만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데요. 하지만 예술은 그런 것들과 별개로, 하루하루 나를 발견하고 바라보는 과정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내 몸의 모양을 관찰하거나, 피부의 감각을 느끼는 것, 발가락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것, 그런 일상이 곧 예술 활동인데, 중요한 건 ‘나는 어떻게 남들과 달라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미 다르다’는 점을 아는 것입니다.(p.342~343)


- “나에게 가장 좋은 레퍼런스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자각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물리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소셜 미디어에서 레퍼런스를 찾거나,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정답’을 따라가는데, 오히려 가장 강력한 레퍼런스는 이미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가장 ‘나’다운 자료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인 것이죠. ‘자기 자신을 레퍼런스로 삼는다.’라는 자각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했는데, ‘자아’라는 것은 처음부터 정해진 본질이 있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내가 내리는 선택들의 합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스스로 표현하고, 그것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 지켜낼 것인가?’가 나를 결정하기 때문에, 타인의 정답을 따라가며 성공하려는 건 위험한 오해입니다. 결국 그것은 나에게 맞는 삶이 아닐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을 표현하고, 스스로에게 시간을 내어주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감각이 생기고, 그 과정이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p.344~345)


저자 : 료


런던베이글뮤지엄, 아티스트베이커리, 카페 하이웨스트, 카페 레이어드를 창업하였으며, 현재 브랜드 총괄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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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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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란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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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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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작가 이름은 익숙한데 표제어가 독자에게는 낯설다. 아마 독자가 흔히 말하는 '로맨스', 혹은 '연애' 소설을 읽은 지가 오래되어서 그랬을 터다. 그런데 긴 제목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니 이상하게도 오래 전이지만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연애'라는 단어가 표제어에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다. 긴 제목을 가진 이 소설 작품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서로 모순된 느낌의 단어가 조합을 이뤄 미스터리 소설이나 추리 소설 느낌이기도 하다. 사실 많은 독자들이 알겠지만 '조찬모임'이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친목과 정보 교환의 목적으로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아침 식사를 겸해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의 장소로도 이용되는 회합이다. 이를 테면 비지니스 맨들의 시간 활용법이다. 이런 모임 참여자들은 대부분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비즈니스 담당 이사 등이다. 간혹 비즈니스 전문가들의 짧은 강연을 듣기도 한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참여한 적이 없지만 참여한 지인 덕에 먼 발치에서 지켜본 적은 있다.

    이 작품은 사실 초간본이 아니다. 13년 전 출간됐다. 매우 인기가 좋았던 덕분에 개정판을 내다가 이번에 완결판으로 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에 따르면 초판의 서사를 따르되 문단을 리드미컬하게 다듬었으며, 문장 일부를 단호히 삭감하고 시대상을 반영해 단어를 세공했다. 또한 스타일리시한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양장판) 책의 만듦새에 감성을 불어넣었다. 임선애 감독이 연출하고 수지·이진욱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화로 그 의미를 더한다. 소설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많지만, 이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어쩌면 출연 배우들의 인기로 더 큰 홍보 효과 덕일 것이다. 

    저자 백영옥은 이 작품 전 훨씬 단순한 제목의 단편집을 낸 적이 있다. 첫 작품집 『아주 보통의 연애』이다. 8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이 단편집에는 「육백만원의 사나이」, 「청첩장 살인사건」, 「가족드라마」, 「강묘희미용실」, 「푹」, 「미라」, 「고양이 샨티」, 그리고 표제어로 쓰인 「아주 보통의 연애」 등 여덟 편이 게재됐다.


    이 단편집의 공통적인 점은 등장 인물들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자신의 직업, 업무, 역할이 매개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독특한 설정이 깔려 있다. "이 단편집의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의 명함이나 프로필 뒤로 내쫓기듯 숨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총출동한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일터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보장받고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의 직업과 직장만으로 그 사람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직업이나 직책 뒤에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그 정체성을 버텨온 심리적 장막이 사라지자마자 공황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아를 찾기 위해 직업을 가졌지만 거꾸로 그 직업의 역할에 철저히 구속됨으로써 자아를 상실한다. 백영옥의 소설은 그렇게 명함과 프로필 뒤로 자신의 맨얼굴을 숨긴 사람들의 연약한 내면과 상처입은 자의식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정여울(문학평론가) 

    표제작이 된 「아주 보통의 연애」에서 잡지사 관리팀 직원 ‘나’ 김한아는, 한 인간의 모든 욕망을 그가 사용한 영수증을 통해 해독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짝사랑하는 패션팀 수석 ‘이정우’의 삶 역시 그가 나에게 제출하는 영수증으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영수증을 몰래 복사해 차곡차곡 모아둔 노트는 그를 향한 나의 마음 그 자체이다. 어느 날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나를 이태리 식당으로 데려간 이정우는 실은 자기가 반지 영수증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각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수증 처리 담당 직원, 갈빗집 사장님, 청첩장 디자이너, 기업의 CEO, 출판사 편집자, 인터넷서점 북에디터 등 평범하지만 독특한 사랑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제목은 '아주 보통'의 연애라고 저자는 묶어놓는다. 

    등장 인물들은 자신의 꿈과 목표, 이상의 실현을 위해 선택한 '직업'이라는 굴레에서 자신을 잃어간다. 직업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갈수록 그들을 이루는 '나'라는 알맹이는 점점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것만 같다. 저자 백영옥은 그들이 경험하는 변화를 통해 참된 자아와 마주할 용기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전작 『아주 보통의 연애』 출간(2011) 1년여 만에 펴낸 장편 소설이다.(2012) 출간 당시 “투명하면서 아름다운 서사”, “독특한 설정과 세련된 필치”, “신선한 제목의 소설”이란 호평을 이끌어냈던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 영화화가 확정돼, 원작 소설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소설은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이라는 간판을 건 레스토랑에서 시작한다. 오전 일곱 시에 모인 실연당한 사람들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실연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실연의 기념품”을 교환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동병상련의 상처를 위무하기 위한 모임”이라기보다 각자가 “실연을 선언하는 모임”인 동시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 작품의 세 주인공은 만난다. “남자라는 신인류”와 치명적 사랑에 빠졌지만 끝내 이별을 고한 뒤 상실감에 빠진 항공사 승무원 윤사강, 오랜 연애의 갑작스러운 종료 앞에서 일상이 무너진 컨설팅 강사 이지훈, 사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뒤 이직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미도. 이들은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얽히고 맞물린다. 

    작품을 통해 저자는 사랑의 오해가 깊어질 때 사랑은 종말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것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실연’이라 부른다. 언젠가 다시 결합할 수 있는 헤어짐이 아니라 이제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을 수 없는 것이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거절과 거부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p.28)” 

    그리고 그것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뿐 아니라 부정하고 밀어내고 있는 어떤 기억을 내포한다. 사강은 짧은 연애 끝에 이별했다. 뜨겁게 끌렸던 정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적개심”을 느꼈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관계”가 되기를 바랐지만 마주치지 않기 위해 1년 동안 거리 두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별은 유년 시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의 이별과 상처를 다시 마주하게 했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레스토랑 상호명)에서 사강을 바라보던 지훈은 현정과의 10년 연애 끝에 이별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지속적인 연애는 “변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결국 사랑”일 수 없다는 것으로 종결된다. 그 이별은 어린 시절 이해할 수 없는 외할머니와 형에 대한 기억과 원망을 대면하게 했다.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주인공의 시선이 교차하여 전개되는 이 소설은, 이별이라는 공통된 상처를 통해 사랑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배운다는 것을 알려준다. 눈물겨워 털어내고 싶던 이별에 ‘안녕’이라 말하며 손짓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진짜 이별을 이해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믿어보고 싶게 만든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 한눈에 그 사람의 모든 게 이해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이란 지훈의 말은, 긴 연애 끝에 돌연 찾아온 이별에 대한 고백이자 우리네 사랑과 인생에 대한 진리로 읽힌다.

    이 소설 작품은 이별이라는 감정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 아픔이 어떻게 일상을 바꾸고 회복되는지를 풀어낸다. 여기서 실연은 단순한 감정의 붕괴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궤도를 비틀고, 잊고 있던 과거를 끌어올리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내적 훈련이 된다. 실연의 아픔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서 어떻게 바꾸는가. 시간은 상처를 흐려지게 하는 약이다. 그러나 “넘어져서 피가 철철 나는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하면서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무한 위로다. 저자는 실연을 ‘고통의 종착지’가 아니라 ‘내면 근력을 길러내는 자기계발의 장’으로 그린다. 사강은 연인과의 이별뿐 아니라 아버지와의 이별을, 지훈은 지나간 사랑의 습관을 되짚으며 이별 후 폐허가 된 마음을 다시 들여다본다.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게 진짜 위로야. 무릎이 깨졌으면 아프더라도 과산화수소수를 퍼붓고 빨간약부터 발라주는 게 진짜 위로라고” 말하는 미도는 “헤어져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새로운 사람에게 “연락처를 묻고, 무너진 감정을 복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전 일곱 시”에 시작하는 이 소설은 “오후 일곱 시”에 끝난다. 열두 시간의 시차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을 마주한 이별의 아침부터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다시 시작”됨을 깨우치는 이별의 저녁까지의 과정을 상징한다.

    서로의 슬픔이 때때로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란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취약한 인간은 “남의 슬픔을 보면서 진심으로 위로”받는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 모인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경계하지만, 곧 공통의 슬픔으로 연결된다. 슬픔이 다른 슬픔을 알아보는 것이다. 슬픔을 농담처럼 말하는 미도, 묵직하게 고통을 짊어지고 슬퍼하는 지훈, 오랜 슬픔을 끌어안은 사강. 이들의 서사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상처를 줄 수 있고, 상처를 입을 수 있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예고한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은 연애소설이자 성장소설, ‘심폐 소생 소설’이다. 어긋난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새로운 회복에 이르는 이야기, 가슴 안에 있던 트라우마가 가슴 밖으로 나오면서 치유되는 이야기, 심폐가 멈춘 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폐를 소생시키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상처받은 사람이 또 다른 상처를 감지하고 품을 수 있다는 치유의 아이러니를 되새긴다.

    저자는 말한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밖과 안 모두를 보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고 자기의 중심축을 잡으며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슬픔에게 손짓할 수 있게 된다"고.


    사강이 원한 건 작은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삶이었다. 재작년에 심은 라일락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눈으로 가늠하는 삶. 집과 동네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삶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는 것이었다. 사강이 원했던 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자신의 반경 안에 있는 익숙한 것들을 손으로 만지고 친숙함을 코끝으로 느끼는 것이었다.(pp.243-244)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현정이 들고 가는 저 사진들처럼. 가끔, 아주 가끔은, 지루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진짜 이별을 이해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p.325)


    저자 : 백영옥


    소설을 쓰는 일이 고독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명랑한 노동이라 믿고 싶은, 예술가라기보다 직업인에 가까운, 오전 5시에서 오전 11시 50분까지의 사람. 네 권의 장편소설, 두 권의 소설집, 다섯 권의 에세이를 써내는 동안 때때로 야근. 자주 길을 잃고, 지하철 출구를 대부분 찾지 못하며, 버스를 잘못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는 일이 잦은, 외향적으로 보이는 내향성인, 아주 보통의 사람.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08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다이어트의 여왕』, 『애인의 애인에게』, 소설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다른 남자』,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를 펴냈다.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는 작가 백영옥이 연간 500권이 넘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 수집한 인생의 문장들 중 정수를 담은 에세이다. 매일매일 일상 곳곳에서 밑줄을 수집해, 아픔을 토로하는 사람에게 약 대신 처방할 수 있는 문장을 쓴다. 상처의 시간을 겪은 사람들에게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과 같은 문장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 작가의 오랜 기쁨이다.

    조선일보 ‘그 작품 그 도시’, 경향신문 ‘백영옥이 만난 색다른 아저씨’, 중앙SUNDAY S매거진 ‘심야극장’, 매일경제 ‘백영옥의 패스포트’ 등의 칼럼을 연재했다. 한겨레21, 보그, 에스콰이어 등에도 책과 영화에 대한 폭넓은 글을 발표하고 있으며, 조선일보에 ‘말과 글’을 연재 중이다. 교보문고 ‘백영옥의 낭독’과 MBC 표준 FM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 ‘라디오 북클럽 백영옥입니다’의 DJ로 활동했다. 현재 EBS ‘발견의 기쁨, 동네 책방’에서 골목을 여행하며 동네 책방을 소개하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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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만장자의 거리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뉴욕 억만장자 거리에 숨겨진 이야기
    캐서린 클라크 지음, 이윤정 옮김 / 잇담북스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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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짧고도 매우 극적인 일화가 실려 있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조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 37~100)가 집필한 『유대인 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93-94년)에서 서사적 구조로 확장되었으며, 16세기 초 플랑드르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아마도 피터르 브뢰헬은 이들의 작품 가운데 하나를 〈바벨탑〉의 직접적인 출처로 삼았을 것이다. 그는 모두 3점의 〈바벨탑〉을 그렸다고 하는데, 현재는 2점만이 전해지고 있다. 빈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의 〈바벨탑〉은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에 소장된 〈작은 바벨탑〉(1564)의 두 배에 가까운 크기로 제작되었다. 두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빈의 〈바벨탑〉이 다양한 인물 군상들과 도시 풍경을 보다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이 책 『억만장자의 거리』는 300m 이상 높이 솟은 초고층 건물들,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집값,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과 억만장자가 모여 사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판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라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센트럴파크 인근 ‘억만장자의 거리(BILLIONAIRES’ ROW)’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마천루의 거리는 한때 허름한 건물이 늘어선 낡은 거리였다. 불과 몇 년 만에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구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거리가 되기까지 그곳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캐서린 클라크는 이 책에서 억만장자 거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며, 뉴욕 부동산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클라크는 책의 맨 앞장에서 〈창세기〉를 인용한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자."(11장 4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뉴욕 스카이라인을 바꾼 사람들과 그들이 지은 건물을 다룬 이야기를 통해 뉴욕 부동산의 역사, 사회, 정치, 금융 등 관련 정보를 풍부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21세기 미국과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억만장자 켄 그리핀, 빌 애크먼, 마이클 델, 인기 가수이자 영화배우 제니퍼 로페즈···.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과 억만장자가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라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도 센트럴파크 인근 ‘억만장자의 거리’는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얇고 높은 저 건물은 무슨 건물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얼마에 집을 사고팔았을까? 부동산 전문지 『리얼 딜』과〈뉴욕 데일리 뉴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캐서린 클라크는 2011년 뉴욕 부동산에 관한 기사를 쓰다가 ‘억만장자 거리’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 주제에 관해 100여 명에 이르는 부동산업계 관계자를 취재한 끝에 이 책 『억만장자의 거리』를 펴냈다.

    ‘억만장자 거리’ 배짱 없이는 발을 디딜 수 없는 세계로 알려져 있다.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뉴욕 부동산 거물(개리 바넷, 해리 맥클로우, 스티븐 로스, 마이클 스턴)의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그들이 지은 다섯 건물(원 57, 432 파크 애비뉴, 111 웨스트 57번가, 센트럴파크 타워, 220 센트럴파크 사우스)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은 억만장자 거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 뉴욕 부동산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했다는 평을 받으며, 2023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상 최종 후보작과 2023년 『CEO 매거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아마존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모두 3부 2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하늘을 꿈꾸다(1~9장)〉, 2부 〈난기류(10~17장)〉, 3부 〈땅에 떨어지다(18~28장)〉 등이다. 이 책의 주요 배경지인 뉴욕 맨해튼에서 건물의 높이는 점점 위로 향하는데 이곳의 이야기를 쓰는 저자 클라크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의 책 구성을 보여준다. 이 점은 저자의 의도적 구성인지, 아니면 신(神)의 관점인지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책의 본문 전에 게재된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뉴욕 센트럴파크 남쪽을 바라보는 것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부의 물리적 현현(顯現)을 보는 일이다. 줄지어 선 극도로 얇은 초고층 빌딩들이 공원 남단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초고층 건물들은 뉴욕 스카이라인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물론 평범한 뉴욕 시민은 초고층 건물 중 어느 곳에도 발을 들여놓을 일이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전망대처럼 망원경으로 도심을 들여다보거나 30 록펠러센터 유명 레스토랑인 레인보우 룸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출 수도 없다. 과거에 지은 마천루와 달리 최근에 지은 초고층 건물에는 공용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억만장자 거리'라고 불리는 '초고층 건물' 밀집 구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성소이자,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하늘 위 최상류층 커뮤니티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초대를 받아야만 한다.(p.15)

    일반적으로 부동산에 관심 없는 독자라도 TV를 통해 뉴욕 맨해튼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보고 들었을 것이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서 방 한 개짜리 원룸 같은 크기의 임대료가 1500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곳에서도 ‘억만장자의 거리’는 특별한 건물이 집중해 있는 곳이다. 이곳을 조성한 대표적 인물들이 이 책의 앞에 캐리커처 사진과 함께 별도 소개돼 있다. 이처럼 유명해진 억만장자의 거리’는 이젠 세계 각 나라에서도 비싼 거리 앞에는 이 수식어가 별명처럼 붙는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억만장자 거리의 핵심인 뉴욕 맨해튼 57번가의 길이는 1.6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주변에는 300m 이상 높이 솟은 건물이 쭉 늘어서 있다. 이 책에는 거리의 약도까지 포함해 별도 그림으로 처리돼 있다. 물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길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가다 보면 지난 100년간 뉴욕 부동산 개발과 건축의 진화 흔적을 볼 수 있을 정도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858년에 초대형 도심 공원인 센트럴파크가 개장한 이래 농지로 둘러싸여 있던 57번가 주변으로 뉴욕의 부유한 가문들이 몰려들며 초부유층의 메카가 되었고, 20세기로 접어들자 주거 지역은 점차 상업 지구로 변모했다. 1970년대 뉴욕 부동산 시장은 뉴욕 상류층 대신 돈을 가진 전 세계 제트족의 관심을 끈다. 세계에서 뉴욕 맨해튼으로 몰려든 부유층은 콘도를 구매했고, 이 성공에 힘입어 이들을 모방한 고층 타워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쇠퇴한 57번가에는 초호화 상점, 기념품 가게, 갤러리, 역사적인 아파트가 현대적인 사무실 빌딩과 주거용 빌딩 사이에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이후 2010년에 306m 높이의 원 57 공사를 시작으로, 더 높고, 더 얇고, 더 비싸고, 더 호화로운 초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며, 이 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저자는 미국 뉴욕 스카이라인을 바꾼 사람들과 그들이 지은 건물을 통해 뉴욕의 역사, 정치, 금융 등 관련 정보를 다채롭게 전달하며, 시대적?사회적 흐름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점점 건물을 더 높이 지으려 할까? 뉴욕은 오랫동안 마천루의 본고장으로 알려졌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와 중동에 자리를 내주었다. 높은 인건비, 비싼 건축 비용, 엄격한 규정, 점점 부족해지는 토지···. 크고 작은 건물이 블록마다 꽉 찬 맨해튼에 개발되지 않은 땅은 드물었다. 맨해튼 개발업자들은 토지 합병으로 이를 해결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땅을 발견한다. 1961년 뉴욕시 토지 용도 지정법에 따라 건물 연면적을 땅의 넓이로 나눈 비율인 ‘용적률(FAR)’과 이웃 건물 소유주로부터 기존 건물 위의 공간인 ‘공중권(air rights)’을 매입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된 것이다.

    빈 하늘은 ‘아직 아무도 건물을 짓지 않은 땅’이었다. 특히 57번가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용적률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빈 땅이었다. 이때부터 좁은 땅에 온갖 건축 기술을 활용한 고층 건물이 들어섰다. 건물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건물에 틈을 만들고, 거대한 콘크리트 추를 달로 건물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등 최신 미적·공학적 기술을 총동원한 끝에 미국의 여느 평범한 가정집 뒷마당만 한 크기의 부지에 400m가 넘는 마천루가 지어졌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설 기술에 더해 성공과 야망을 열망하는 이들의 경쟁으로 건물은 점점 더 하늘에 가까워졌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초고층 건물' 밀집 구역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하늘 위 최상류층 커뮤니티라고 이곳을 소개했다. 저자가 432 파크 에비뉴를 몇 차례 방문하며 푸코의 파놉티콘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스트 56번가에 자리한 드라마틱한 건물 입구를 지나칠 때마다 부유한 입주자를 엿보고 싶어 했다면, 그러나 자신의 시선이 건물 로비에 닿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 개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억만장자 거리에는 호기심과 비판 어린 시선이 교차한다.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이는 그림자 문제로 이어졌다. 고층 빌딩으로 인해 센트럴파크에 그림자가 드리우자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고층 건물로 인해 한낮의 햇빛을 차단당했다고 지적하면서 1,000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인 일도 있었다. 도대체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기에 이토록 철저한 보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일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 자본의 움직임에 관여할 만한 인물들이 아닐까? 하는 일반인들의 의혹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단순히 그림자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러시아의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가 주체할 수 없는 현금을 세고 있을까? 다이아몬드를 가득 채운 욕조에서 슈퍼모델이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씻고 있을까? 미국 헤지펀드 억만장자들이 최고의 전망을 놓고 사우디 왕자들과 다투고 있을까? 아니, 그들이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건 아닐까? 이런 의혹들의 저자만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새롭게 건설한 초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열린 창으로 센트럴파크나 맨해튼 전망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그 건물에 평범한 뉴요커는 들어갈 수 없다. 고층 전망대나 식당처럼 대중에게 공개된 공공 공간이 점점 개발 계획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가 강조한 이유와 맥락이 같다.

    억만장자 거리의 초고층 빌딩은 유명인, 금융업자, 러시아 올리가르히,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등 세계 초부유층의 집인 동시에 세계 최부유층의 투자 수단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그래서 누군가는 억만장자 거리의 권력 구조를 파놉티콘에 비유하고, 불평등 시대의 대차대조표라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이 책 『억만장자의 거리』와 그곳에 들어선 첨탑처럼 생긴 건물 이야기는 돈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확실해진다. 우리가 경외하며 올려다보는 마천루의 눈부신 외관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천루를 통해 21세기 뉴욕,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깊이 있고 날카롭게 그려낸다.


    어떤 사람들은 그 타워들을 보고 공간 낭비, 전 세계의 돈을 보관하는 그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이 건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부자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골드바를 거래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창고에 보관하기보다 벽에 걸어 두기로 선택한 미술 투자자에 비유할 수 있다. 타워는 자신들을 만든 개발업자들의 유산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쳤고, 일부 개발업자는 다른 개발업자들보다 훨씬 더 큰 재정적 성공을 거두었다. 2023년, 인플레이션과 암호화폐 폭락, 또 다른 금융 위기의 위협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개발업자들은 단념하지 않고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다. 이것이 바로 개발업자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개발업자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개발합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몇 년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죠.” 감정평가사 조너선 밀러가 말했다.(p.451)


    저자 : 캐서린 클라크(Katherine Clarke)


    〈뉴욕 데일리 뉴스〉, 『리얼 딜』,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와 컬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자는 2011년에 뉴욕 부동산에 관한 기사를 쓰다가 ‘억만장자 거리’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이 주제에 관해 1백여 명에 이르는 부동산업계 관계자를 취재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거리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는 『억만장자의 거리』는 그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 후 2023년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비즈니스 도서상 최종 후보작과 2023년 『CEO 매거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아마존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엑스 @KathyClarkeNYC

    홈페이지 katherineclarke.com


    역자 : 이윤정


    한국외국어대학교와 한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크레셴도로 살아라』, 『데이터의 함정: 숫자에 가려진 고객 인사이트를 포착하는 법』, 『무의식적 편견』, 『시너지 셀링: 고객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를 산다』, 『인생을 바꾸는 작은 습관들』, 『나만의 커피 레시피북: 집에서 만드는 50가지 커피와 에스프레소 음료』, 『세상을 속인 의사』,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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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인의 턱뼈
      에드워드 포우위 매더스 지음, 성귀수 옮김 / 이타카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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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추리소설'이라는 이 책 『카인의 턱뼈』 홍보 문구가 독자를 멀어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끌리는 것은 인간 본능인 호기심이나 탐구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 같다. 추리소설도 그런 인간의 호기심에 기대어 생긴 문학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독자는 추리소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 작품, 즉 '고전'으로 평가받는 일부 세계적 작가의 추리소설 작품도 채 읽어보지 못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 재택 근무를 하면서 출퇴근이나 식사 시간 등을 합쳐보니 꽤 많은 시간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직장에서의 휴식 시간은 매우 즐거운데 집에서의 휴식 시간은 반복되니 금세 지루했다. 덕분에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 독자 개인적으로는 '새옹지마'가 된 셈이다. 이때 추리소설 몇 편을 읽었는데 무척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책에 집중하게 하는 매력이 있고, 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줄거리가 실타래 풀리듯 하나씩 차근차근 풀리는 재미가 독서욕을 자극했다. 거기에 뒷 부분에는 독자의 추정이나 추리를 완전히 뒤엎는 '반전(反轉)'은 추리소설의 백미였다. 이때 주로 읽었던 추리소설은 모두 일본 추리소설이었다. 추리소설은 일본 독자들의 최고 인기 분야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이 책은 '카인의 턱뼈'라는 표제어도 조금 노골적이다. 독자가 노골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기독교 문화 속 작품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문명이라면 당연히 유럽 쪽을 먼저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영국의 추리소설은 애호가가 아닌 독자도 알 정도로 이미 유명한 것 아닌가? 독자가 표제어와 기독교를 연결시킨 것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독자가 좋아하는 국내 작가 고(故) 황순원 작가의 『카인의 후예』라는 작품 때문이다. 『카인의 후예』는 6·25 전쟁 직후 쓴 작품으로 해방 직후 북한 토지개혁을 배경으로 인간의 근원적 악과 사회적 갈등을 다뤘다. 이 소설의 제목은 성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유래했으며, 인간의 폭력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순원 작가도 북한이 고향인데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아마 피란한 것으로 추정한다. 

      '카인의 턱뼈'란 성경에서 카인이 아벨을 죽일 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인류 최초의 살인도구라고 한다. 출판사 측은 이 책 『카인의 턱뼈(Cain’s Jawbone)』의 저자 에드워드 포우위 매더스가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첫 두 아들이다. 맏아들 카인은 농부였고, 그의 동생 아벨은 양치기였다. 형제들은 각자의 밭에서 희생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다.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카인은 아벨을 죽였고, 하느님은 카인을 저주하여 유랑하는 삶을 살게 하셨다. 카인은 그 후 놋 땅(고대 히브리어: נוֹד)에 거주하며 도시를 건설하고 에녹으로 시작되는 후손들을 낳았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아벨의 희생이 믿음으로 바쳐졌기 때문에 카인의 희생보다 더 받아들여졌고, 아벨이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쿠르아에서는 카인과 아벨이 각각 카빌(아랍어: قابيل)과 하빌(هابيل)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카인을 질투와 욕정에 사로잡혀 악마의 인도를 받아 살인자가 된 첫 살인자로 묘사하며, 죄책감과 불명예로 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일부 학자들은 형제들의 정체와 동기에 대해 논쟁한다. 세트파 요한의 묵시록에서 카인과 아벨은 아르콘이자 데미우르고스 얄다바오트의 자식들로, 야훼와 엘로힘이라 불리지만 속이기 위해 카인과 아벨이라고 불린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학문적 성경 연구에서 초기 농업 사회의 긴장—예를 들어 유목 목동과 정착 농부 사이의 긴장—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널리 해석되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인 엔릴이 농부 신을 선택한다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카인과 아벨은 중세 시대부터 현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예술, 문학, 연극, 음악, 영화에서 인용되고 재해석되며 형제살해와 형제간 갈등의 영원한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이후 예술 분야에서는 글로, 음악이나 미술에서, 혹은 정치나 사회적으로 카인과 아벨은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앞서 황순원 작가가 책 제목을 '카인의 후예'라고 적은 이유는 동족상잔(同族相殘)으로 표현되는 6·25 전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출판사 측은 이 소설 『카인의 턱뼈』가 "추리소설의 본고장 영국에서 85년 만에 재발견되어 영미 문화권과 유럽 등 12개국에서 출간, 전 세계 유튜버와 틱톡(TikTok)을 통해 추리 매니아들을 열광시킨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또 『카인의 턱뼈』는 이야기 전체에 "스푸너리즘(두음전환), 말장난, 암호, 비유, 은유, 역사적 사건, 상징, 문학 인용문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은 해결 단서가 된다"며 이 단서들의 해독은 "고도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요구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100장의 순서(100장이 모두 낱장으로 떼어 순서를 맟줘가면서 독자들은 상상 이상의 즐거움과 지적 희열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특히 가장 먼저 나오는 스푸너리즘은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한 단어 또는 어군(語群)의 내부에서 두 음소나 그 이상의 음절이 자리바꿈을 하는 현상을 말하며, 한 언어에서 음소나 음절이 서로 그 위치를 바꿀 때 그것을 각각 음운도치·음절도치라고 말한다. 이 도치현상은 동화(同化)·이화(異化)·중음생략(重音省略)·혼성(混成) 등과 더불어 통시적인 면에서 음운변화의 중요한 유형으로 취급되는데, 스푸너리즘은 이화의 한 유형으로 다루어진다. 대체로 이러한 언어변화의 현상은 언어 사용시의 잘못된 발음에 따른 것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간혹 이것을 음성변화의 규범으로 보고자 하는 학자도 있다. 또, 도치는 한 언어의 음성적인 면에서 특별한 연속음에 영향을 끼치는 규칙적인 변화로 보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스푸너리즘(spoonerism : 두 단어 이상의 머리글자를 각각 그 위치를 바꾸어 발음하는 언어현상)과는 구별된다고 말하고 있어 영어와 한글의 차이인가 싶다. 

      『카인의 턱뼈』는 1934년 영국의 저술가이자 옵저버지에 암호십자낱말풀이를 제작, 연재한 에드워드 포이스 메더스가 'Torquemada'(토르케마다)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크로스워드 퍼즐 북 뒷면에 수록한 소설로 ‘crossword puzzle' 과 'Whodunnit’ 의 절묘한 혼합으로 탄생한 범죄추리소설이라고 출판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책 속에는 6건의 살인사건에 대한 진술이 담겨있으며, 독자들은 100장에 담긴 서술을 읽고 살인사건에 연루된 살인자와 희생자가 누구인지 찾아내야 한다고 단순 추리로는 풀리지 않는 어려운 퍼즐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역자 성귀수는 '87년 동안 전 세계에서 단 4명만이 풀어낸 문학 퍼즐'이라고 말하고 있어 쉽지 않음을 귀띔하고 있다.


      출판사 측은 저자 이외의 이 책 『카인의 턱뼈』에 대한 설명을 가장 잘 해줄 사람으로 역자 성귀수를 지명하고 있어 그의 말을 들어본다면 추리나 풀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상상해 보라, 당신은 머리가 비상할뿐더러, 풍부한 상식과 섬세한 언어 감각을 두루 갖춘 명탐정이다. 살인의 원형적 이미지가 지배하는 당신의 삶에 6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아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시신이 발견된 것도, 용의자를 추정할 만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증거라고는 몇 명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사건 관련자들의 100장에 달하는 자술서가 전부다. 문제는 그 모두가 일인칭 화자의 진술인 만큼 극히 주관적인 시각과 개성이 난무하며, 자신의 행위와 정체를 위장하려는 각양각색의 전략들이 치밀하게 작동하는 글들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 100장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어서,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엄밀하게 재구성해야만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100장의 문서가 만들어내는 엄청난 순열의 가짓수로부터 단 하나의 유효한 순서를 조합하여, 그로부터 얽히고설킨 살인사건을 해결해내는 문제야말로 분명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심오한 난제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체가 퍼즐의 원리, 그것도 ‘암호화된 단서들(cryptic clues)’로 촘촘하게 짜인 텍스트이기에, 초지일관 독법은 섬세해야 하고 추론은 창의적이어야 한다. “제임스 조이스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연애하여 낳았을 법한 자식”이라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의 서평이 이 책의 정곡을 찌르는 이유다.

      15세기의 이단심문관 ‘토르케마다’의 피비린내 나는 악명 앞에 각오는 할지언정, 주눅들 필요는 없다. 문제를 풀었다 해서 반드시 텍스트를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 없는, 바꿔 말해, 텍스트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문제를 푸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참으로 기이한 체험이 여러분을 기다릴 것이다. 명심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겐 지니(Genie)를 능가하는 구글(Google) 요정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리 양해의 말을 먼저 하자면 독자는 아직 이 추리소설의 정답을 찾지 못했다. 해결은커녕 단서가 될 만한 것과 단서가 되지 않는 일반 진술과의 구별도 잘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독자는 최소한의 영어 능력을 갖추고 범죄 추리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지금까지 정독한 독자로서는 단서가 될 만한 단어나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천천히 숙독을 했지만, 책에는 영어 원문까지 병기했지만 영어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추리소설 몇 권 읽어본 독자의 실력으로는 한 번 읽어낸 소감으로 "쉽지 않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태다. 물론 앞으로도 이 책은 계속 옆에 두고 풀이를 위해 노력할 참이다. 단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책의 얼개를 남긴다.

      『카인의 턱뼈』는 단순한 살인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독자들이 직접 페이지를 재배열하고 살인 사건의 전말과 범인을 밝혀내야 하는 문학적 퍼즐이다. 정답을 맞히려면 추리력, 언어 감각, 끈기가 필수이다. 저자 매더스는 책을 집필한 후 페이지 순서를 섞어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페이지가 문장 끝으로 마무리되도록 작성하여 다음 내용을 추측할 힌트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매더스의 작품은 기발한 언어유희와 날카로운 재치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중에서도 『카인의 턱뼈』는 가장 어려운 난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1939년 매더스가 47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세계 대전이 발발, 그의 퍼즐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다만 한 가지 단서가 될 수도 있는 말로 10여년 전, 영국 요크의 샌디홀에서 이 책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샌디홀 큐레이터 패트릭 와일드거스트는 책을 기증받은 후 공개 요청을 통해 이 퍼즐을 풀었고, 이로 인해 2019년 『카인의 턱뼈』가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두 번째 장의 내용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페이지가 따로 매겨지지 않아서 글 뒤에 붙인 숫자(02)는 두 번째 장이라는 의미다.

      "헨리를 일일이 챙긴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월계수들을 지나자마자, 내가 갑자기 돌아보자, 거기 최근 희생된 시체가 있는 곳에 그가 웅크리고 있다. 사방에 피가 있었다. 내가 날카롭게 부르면 어리둥절한 눈치다. 다음으로 나는 오랜 친구 칼라바르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ㅡ보통 그런 용도의 전문적 처방이 이루어지는지 확인 없이 시도한 나의 디기탈리스 실험이 완전한 실패로 드러난 바로 그날 말이다. 한데, 왜 이런 그림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을까? 멀리, 저 멀리 아드리아해가 일리리아의 푸른 언덕 사이 따스한 해안을 파고드나니. 마태오, 마르코, 루카 그리고 요한. 마크 트웨인을 읽고 안으로 새길 것. 하지만, 나는 정신 바짝 차리고 주변을 살펴야 했다. 그가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마침내 헨리와 친해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폰세 데 레온이 그토록 찾아 헤맨 불로장생의 샘으로 내가 자기를 데려가고 있음을 이미 감지해/ㅅ다. 하긴, 딱히 틀렸달 수도 없지."(02)


      저자 : 에드워드 포우위 매더스


      번역가, 시인, 문학평론가.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재능으로 20세기 초 문학과 퍼즐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 인물. 시와 번역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중동과 아시아 시의 번역으로 주목받았으나 그를 세상에 독보적으로 알린 것은 바로 퍼즐과 암호에 대한 천재성이었다. 스페인 종교재판관 이름을 딴 토르케마다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1926년 옵저버 지에 합류, 매주 퍼즐을 선보였고, 당시 십자말풀이가 간결하고 직설적인 형식으로만 제공되던 시대에, 넉넉(nock-knock) 농담, 운문, 언어유희, 애너그램, 그리고 날카로운 재치로 암호 십자말풀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개척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1934년 옵저버지에 연재된 십자말풀이를 모아 낸 책의 마지막에 카인의 턱뼈를 실어 단순한 퍼즐을 넘어선, 문학과 추리가 결합된 실험적 작품을 남기고 1937년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역자 : 성귀수


      시인, 번역가. 연세대학교 불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 “내면일기” 《숭고한 노이로제》를 발표했다.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의 《침묵의 기술》,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아폴리네르의 《내 사랑의 그림자(루에게 바치는 시)》, 래그나 레드비어드의 《힘이 정의다》, 장 퇼레의 《자살가게》, 모리스 르블랑의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전10권), 피에르 수베스트르와 마르셀 알랭의 《팡토마스》(전5권),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공역), 조르주 바타유의 《불가능》, 베르나르 미니에의 《물의 살인》(전2권), 사뮈엘오귀스트 티소의 《읽고 쓰는 사람의 건강》 등 백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4년부터 사드 전집을 기획, 번역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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