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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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다. 제법 많은 문항들에 차례로 답변을 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나온 유형지표를 보고 개인적 성향과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서 놀란 기억이 난다.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의 저자 김태형 씨는 조선의 다섯 인물들에게 칼 융의 심리유형론에 근거한 MBTI 분석으로 심리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조선조 22번째 왕이었던 정조 이산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고,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일설에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그로 인한 아버지 영조와의 불화로 죽음에 내몰렸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이복형 경종을 독살하고 세제로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농후한 영조의 피폐한 정신건강이 노론과 소론의 격심한 당쟁 가운데 영조-사도세자 불화의 도화선이었다고 한다.

사서에 보면 영조 대에 아버지 영조를 도와 14년간이나 대리청정을 한 사도세자가 공무 중에 정신질환을 앓았다면 그 증상에 대해 사관들이 기록을 했어야 하는데 사서에는 그런 증거가 없다고 한다. 다만 사적인 영역에서만 발병했다고 하는데, 이는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의 통제 밖의 일이다.

11살의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정조는 자신의 즉위를 방해하려는 노론의 끊임없는 방해와 즉위 후에도 암살음모와 역모에 시달려야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은 그 중심에 자신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가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혜경궁 홍씨를 풍산 홍씨 집안의 특공대원으로 부르면서, 왕실이나 자신의 친아들인 정조보다도 홍씨 집안만을 생각한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폄하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게 된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지아비를 구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아버지 없이 자란 정조는 비슷한 케이스의 연산군과는 대조적인 전략가형(INTJ) 인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유년기에 아버지 사도세자와의 건강한 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안정적 정서를 갖추고,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국정운영에 나서게 된다.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따르게 되는, 단시간에 무리를 해서 아버지의 추숭사업을 추진하려고 하기 보다는 많은 준비와 기다림의 긴 과정을 거치는 용의주도함을 보여 준다. 조선조의 마지막 개혁군주로써 비록 그의 계획한 개혁들이 완수되지는 못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모범적 정치지도자로서의 정조의 위상이 제시된다.

두 번째 인물로는 조선 3대 성리학자로 유명한 율곡 이이의 차례다. 율곡은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꼽히는 신사임당의 아들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빛나는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던 부인에 비해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너무나 초라한 삶을 살았다. 부인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벼슬에 뜻이 없던 율곡의 아버지는 일찍이 사회생활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 율곡에게 무능력한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중의 관계였다.

율곡은 무려 장원급제를 9번이나 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릴 정도의 천재였다. 율곡이 세운 기록은 조선조 500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율곡 역시 정조와 마찬가지로 전략가형(INTJ) 스타일의 인물로, 대쪽 같은 절개와 청렴함을 바탕으로 그가 섬기던 임금 선조 앞에서도 그야말로 할 말 안할 말 가리지 않는 선비의 모습 그 자체였다. 비록 세조의 쿠데타와 중종반정 등의 정치적 격변을 겪기는 했지만 적장자 직계 승계를 유지해 오던 조선 왕실은 선조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방계 출신 왕을 내게 된다.

이런 태생적 한계에 의지박약과 실천력이 부족했던 선조는 율곡의 아버지처럼 내향직관감정형(INF)의 인물이었다. 저자는 율곡이 자신의 아들 뻘인 선조를 무의식적으로 아버지화했을지도 모른다고 추론하고 있다. 율곡은 선조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했으나, 비록 율곡을 크게 중용할 정도의 위인이 되지 못했던 선조는 율곡의 사람됨을 알고 크게 처벌하지는 않았다. 율곡은 관직생활을 하면서 관직에 나가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낙향하기를 반복했지만 선조는 율곡에 대한 신임을 거두지 않았다. 그건 율곡만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목한 대가족이라는 율곡의 이상은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도원경이었지만 율곡은 평생 그 꿈을 버리지 않았던 참다운 유학자였다.

세 번째 인물로는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교산 허균이 나온다. 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수많은 명문장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한 허균에 대해 저자의 평가는 정조와 이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냉정하고 박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려서 잃은 허균은, 둘째형 허봉을 실질적인 아버지로 대하면서 자랐다. 그리고 첫 번째 부인 김씨를 통해 유년기의 심리적 상처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지만 임진왜란 통에 부인을 잃고, 은둔과 사회적 성공이라는 서로 병존할 수 없는 이상 사이에서 평생을 고민하게 된다.

허균은 홍길동전과 같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신분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던 혁명가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지만, 저자는 이를 반박하고 있다. 허균에게는 현실세계에서 안주하려는 경향만 있었지 그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개혁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중앙정계에서, 다른 이들과 경쟁하지 않고 지방수령 자리들을 전전하면서 향락생활을 즐긴 것만으로도 그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파악할 수가 있다. 결국 권력을 쫓다가, 광해군 대에 이이첨의 간계에 걸려 역적의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연산군은 그동안 숱하게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접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이나 상황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연산군의 기행과 폭정은 그의 잘못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조의 쿠데타로 시작된 불의의 정치를 기원으로 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세조의 계유정난을 통해 득세한 훈구파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왕권에 버금갈만한 권력을 갖게 되면서 국정에 혼란이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은 마마보이로 세 명의 대비들에게 휘둘리게 되면서,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를 사사하게 된다.

이렇게 암울한 유년기를 보내게 된 연산군 역시 자신의 할머니뻘인 대비들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주변에 대해 불신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연산군은 군주의 성격보다는 예술가나 예능인의 재능을 타고났다. 훈구파의 조종에 의해 발생한 무오사화를 통해 자신에게 직간을 해대는 사림파들을 일소한 연산군은 갑자사화에서는 그 화살을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훈구세력에 돌리면서 사방을 적으로 만든다.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유배지 강화도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서두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전업 역사학자가 아닌 이상 그네들처럼 전문적인 고증 작업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자신의 전문분야인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작업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 역사 분야에 있어서 좀 더 전문적인 식견의 부족이 아쉽긴 하지만, 거의 전무했던 타 학문과의 퓨전적인 만남이 무척이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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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
홍지윤.홍수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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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테마여행을 한 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나의 지난 여행들은 언제나 즉흥에 기초한 마구잡이식 여행이었다. ‘여행 작가 언니, 큐레이터 동생의 인상파 그림 여행’이라는 책의 카피가 말해 주듯이 <인상파와 함께 걷는 달콤한 유럽여행>은 유럽 각지에 산재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찾아 나서는 테마여행길이다.

미술관을 아주 싫어하는 이가 아니라면(실제 여행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난 경험이 있다!), 누구나 대가들의 진품과의 만남을 마다할 이는 없을 거다. 아니 일부러 그 진품을 찾아 나서는 이도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런 면에서 홍지윤, 홍수연 작가의 만남은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그림 보는 눈이 있어도 베테랑 여행가가 아니라면 이 빡센 일정을 소화해낼 수가 없을 것이며, 여행가라고 하더라도 그림에 대한 안목이 없다면 아무리 고흐의 그 유명한 그림들도 여느 그림들과 다를 게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빛과 대기의 흐름의 미묘한 변화를 화폭에 담아낸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진적을 찾는 기행은 우선 카미유 피사로,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일단 무얼 알아야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볼게 아닌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이 기초부터 다져준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으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을 찾는 여행길에 나서 보자. 우리의 인상파 화가 길라잡이들은 유럽 대륙과 떨어진 영국의 런던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개인적으로 왜 영국에는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 두 번 유럽에 갔었는데, 그 때마다 영국에 갈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다만 입장료가 무료라는 내셔널 갤러리에는 관심이 갔다.

개인적으로 인상파 화가 중에서 무희들의 그림을 많이 그린 에드가 드가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못지않게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역시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그가 그린 태양을 바라는 해바라기와 자화상들이 너무나 좋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다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왜 사진을 절대 못 찍게 할까였다. 플래시만 쓰지 않는다면 그림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저작권과 그를 이용한 상품들의 판권 때문이 아닐까?

책의 제목에서는 비록 ‘유럽여행’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이 상당 부분이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의 모국인 프랑스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영원의 도시 파리가 빠질 수가 있나. 루브르나 오르세 미술관은 너무 많은 책들에서 다루어서 식상할 정도이고, 개인적으로 미처 관람하지 못한 오랑주리 미술관의 아쉬움을 지면으로나마 달래 본다.

재작년에 두 번째로 파리를 찾았을 때, 튈르리 정원 옆에 붙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모네의 그 유명한 <수련> 연작을 보러 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이 휴관일이 아닌가. 그 당시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진품을 직접 대하지 못한 게 어찌나 아쉽던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인상파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사실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특히 밀레의 아틀리에 편에서 다룬 그 유명한 밀레의 <만종>에 얽힌 일화는 섬뜩할 정도였다. 인상파 화가들인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주름 잡던 많은 문인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했는데, 마네가 그린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의 초상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책에서는 미처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제대로 된 사진을 구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유태계 장교 드레퓌스를 변호한 프랑스의 진정한 양심을 대표하는 에밀 졸라의 초상과 마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올랭피아>가 그림 속의 그림으로 들어 있는 그림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이 초상화에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일본의 우키요에(일본의 목판으로 제작된 풍속화)도 한 점 들어 있다.

마네와 더불어 어려서 항상 날 헷갈리게 했던 클로드 모네가 만년을 보낸 지베르니의 정경을 다룬 에피소드 역시 일품이었다. 사진만으로도 그토록 아름다운 파리 교외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았던 모네의 만년이 신기루처럼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삶과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역시 파리의 상징처럼 된 물랭 루주 부근에서 무희, 가수 혹은 창녀들 같은 소위 말하는 사회의 밑바닥의 삶을 그려낸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도 빼놓을 수가 없다. 다양한 카바레의 포스터 그림으로도 유명한 로트레크는 유전병으로 어려서 불구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만약에 신체건강한 몸이었다면, 그처럼 예술혼에 불타는 작품들을 남길 수가 있었을까 하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책의 말미에는 깜짝 보너스로 역시 여행 작가답게, 이 모든 여행을 위한 친절한 가이드라인이 소개된다. 여행일정 짜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이미 몇 번의 여행을 해본 이들이라면 패스할지도 모르겠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는 아마 꼭 필요한 부분이리라.

책을 읽는 내내 이렇게 유럽의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인상파 화가들의 진품들과 만나볼 수 있었던 작가들이 마냥 부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되서 유럽에 가게 된다면, 작가들만큼은 아니어도 작은 인상파 화가 테마여행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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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의 지름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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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는 다카노 히데유키다. 사실 그 외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 밖에는 잘 모른다. 이번에 읽은 <유코의 지름길>은 나가시마 유라는 작가의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이라고 하던가. 사실 나가시마 유도,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일본 순수문학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는 오에 겐자부로 상에 대해서도 처음 들었다.

<유코의 지름길>에는 공간적 배경은 존재하지만, 시간적 배경은 모호하게 그려져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나의 서양 골동품 가게 “후라코코”에서의 몇 달 간의 생활 그리고 그 공간을 바탕으로 해서 빚어지는 관계의 이야기들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상대방에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들 특유의 성격이 <유코의 지름길>을 통해 아주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후라코코 2층에 기거하는 나는 돈이 없거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라기보다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에 손님도 그다지 많이 찾지 않는 골동품점에서 알바를 한다. 가게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보다, 후라코코를 사랑방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이 찾는다.

나는 그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근처에 사는 결혼했지만 남편의 존재감이 부재한 미즈에 씨와 오토바이 면허시험에 이야기를 하고, 후라코코 주인집 아저씨의 손녀딸인 미대생 아사코의 졸업 작품 준비를 지켜보고, 또 정시제 고등학교에 다니는 코스프레의 꿈을 안고 사는 말썽꾸러기 유코짱의 카운슬러가 되어 주기도 한다. 모두가 적어도 한 가지씩의 비밀을 안고 사는데, 주인공인 나는 언제나 그들과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들에게 적당선 이상이 관심이 없어서일까? 사실 창피한 일이지만, 책의 1/3 정도를 읽기까지 주인공 ‘나’의 성별도 알 수가 없었다.

나가시마 유의 글쓰기는 참으로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하다. 일본 문학의 우수성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뽑혔다고 하는데, 번역하면서 말맛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영어로된 작품들도 그렇지만, 그 나라 말 고유의 말맛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일어로 보면 또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이 우리말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부스러진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후라코코라는 공간을 통해 그리고 작은 시골마을길을 따라 부유하는 주인공의 움직임이 문득 느껴지는 듯했다. 유코짱이 끌고 다니는 자전거 바큇살이 빙그르 도는 청각을 동반한 이미지가 눈에 선하게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하고, 24시간 편의점에서 컵술과 컵라면 등을 사가지고 달랑달랑 후라코코 2층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스릴러나 혹은 호러 같은 장르 소설에서 보이는 아싸라한 클라이맥스 같은 것은 없지만, 어느 자그마한 일본의 마을길에서 만나게 되는 골동품점의 한가로운 여유와 지극히 평범한 이들과의 만남이 숨어 있는 정감을 <유코의 지름길>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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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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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출신의 국민 작가로 추앙을 받고 있는 아지즈 네신과의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은 올해 초에 읽었던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였다. 군사독재 시절의 터키에서 정치범으로 부르사에서의 유배기를 유머로 승화시킨 그의 글에서 고통마저도 유머와 함께라면 순화시킬 수 있다는 그의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 작품이었다. 역시 풍자와 해학의 대가답게 <개가 남긴 한 마디>에서는 15개의 현대판 우화로 현실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현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다.

역시 타이틀로 뽑힌 <개가 남긴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개를 무척이나 사랑한 주인공 카슴은 개가 죽자, 마치 사람처럼 장례를 치르려다가 발각이 돼서 재판정에 서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마저도, 현행법에 대한 신랄한 우화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어째서 개에게 사람과 같은 대접을 해주었냐는 판사의 추궁에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개의 유언이 있었다고 하자, 판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한다. 그러자 카슴은 죽은 개가 판사에게 황금 500냥의 유산으로 남겼다는 폭탄선언을 발표한다. 그 다음 결과는 말할 것도 없겠다. 사사로운 소리(小利)를 탐하는 사법부의 위선을 아지즈 네신은 이렇게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늑대가 된 아기 양>에서는 좀 더 정치적인 색깔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양들을 쥐어짜서 젖과 고기 그리고 양털을 얻어내는 양치기의 혹독한 매질과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그가 치는 양 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아기 양이 살아남기 위해 늑대로 진화를 해간다는 이야기다. 이 책이 쓰인 1958년 터키 정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고,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사회혼란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아지즈 네신은 아기 양을 힘없는 국민들로 그리고 포악한 양치기를 군사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정부로 대치한다. 결국 이야기에서 양치기는 늑대가 되어 버린 양에게 물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어느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아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는 <까마귀가 뽑은 파디샤>에서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이어진다. 어느 나라에서 파디샤(이슬람 국가의 군주)를 뽑는데, 까마귀가 어느 사람의 머리에 똥을 세 번 싸면 그가 파디샤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 결국 그는 자신을 파디샤로 뽑히게 해준 까마귀에게 보답을 하고, 까마귀들 역시 그 사람을 다시 연달아서 파디샤로 뽑아준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방식이 이처럼 까마귀들이 자기들에게 잘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식으로의 선출에 대해 아지즈 네신은 동물들, 특히나 어리석고 떼 지어 다니기로 유명한 까마귀들을 예로 들어 풍자의 한 마당을 펼쳐 보인다. 이런 그의 당시 터키 정치 풍토에 대한 비판은 <당신을 선출한 죄>에서 반복된다. 자신의 아들이 잡혀가는 부조리에 주인공은 분연히 항의하고, 그 책임자를 찾아간 끝에 그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와 해학은 확실히 재밌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삐뚜름한 세상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정신은 예리하기 그지없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이토록 뚜렷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아지즈 네신의 탁월한 능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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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 빛과 어둠의 대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8
로사 조르지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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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기 전에 내가 아는 유일한 미켈란젤로(‘피에타’상의 조각가)는 단 한 명 밖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카라바조 - 빛과 어둠의 대가>의 주인공인 미켈란젤로 메리시 역시 미켈란젤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고, 르네상스 시대 말기에서 바로크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주자로서 그 위명을 떨쳐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가 있었다.

이태리의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의 가족은 그가 5살 때, 흑사병을 피해 롬바르디아의 카라바조로 이사를 갔다. 그후 미켈란젤로라는 이름보다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이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카라바조는 당시 이태리 최대의 명문가였던 스포르차 가문과 콜론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3살 때, 스승인 시모네 페레트차노의 휘하에 들어가 4년간 도제생활을 시작한다. 카라바조는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밀라노를 휩쓸던 인위적인 마니에리스모 스타일, 다시 말해 사실적 디테일을 강조하고 단순성을 중요시하는 사실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그의 초기 작품들에 등장하는 정물화와 정물 소품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카라바조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작품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 것은 21살이 되던 해인 1592년 예술을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의 도시였던 로마로 오면서부터였다. 로마의 교황과 추기경들은 로마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건축가, 조각가 그리고 화가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라바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지론처럼, 로마에 온 카라바조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풍과 도상 그리고 기법들을 개발해 나간다.

예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로 소개된 32쪽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에서는 전통적이면서도 딱딱한 고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도마뱀에 물론 소년”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있다. 깜짝 놀란 소년의 표정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반쯤 벗은 어깨의 주인공은 이후 카라바조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미소년 이미지의 전형이다. 심지어는 이런 그의 취향 때문에 그가 동성애자라는 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책에서 설명되고 있듯이, 쾌락과 고통의 알레고리에 대한 분석 또한 일품이었다.

카라바조는 또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모사로도 유명했는데, 예비 드로잉 없이 거침없는 붓질로 속사포 같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똑같은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약간의 차이를 지닌 다른 버전들이 양산되었다. 한편, 반종교개혁의 분위기에서 카바라조는 점점 더 종교화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근대시민혁명 이전까지 종교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인 그림들을 그리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고전적인 주제인 그리스 신화 같은 소재가 아니면 거의 종교화가 유일한 주제였다. 동시에 카라바조는 그동안 자신이 배워왔던 것들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면서, 빛과 어둠의 대비를 이용한 명암효과와 다소 느슨한 종교화의 소재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자신의 최고 절정기였던 1600년에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는 비로소 그에게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다주기에 이른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에 걸리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이전까지 예배당 벽화를 장식하던 프레스코 화를 극도로 싫어해서, 캔버스 화를 그려서 예배당에 걸었다고 한다. 그는 빛과 어둠의 대가로서 원숙미와 자신감이 넘치는 역동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아울러 자화상의 도입과 함께, 자신의 생애 내내 따라다녔던 폭력의 상징인 칼의 묘사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다.

일련의 성공과 더불어 그의 삶에 그림자가 비추기 시작했는데, 지속적인 폭력과 무분별한 행위로 결국 로마에서 버티지 못하고 제노바와 나폴리 심지어는 몰타 섬까지 자타에 의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카라바조 화풍의 영향을 받은 추종자들이 많은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지상에서 40여년을 보낸 카라바조는 열병으로 토스카나 지방의 에스콜레 항구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전반적으로 카라바조의 소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옥의 티라면 소개된 그림들과 부분 삽입된 사진들의 사이즈가 너무 적어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감상하는데 있어서 불편했다. 물론 파란만장했던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 세계를 150쪽 남짓한 지면에 담는다는게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사후 근 1세기 동안이나 잊혀져 있다가 19세기 들어 비로소 재평가를 받게 된 카라바조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특히 후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같은 작품에 대한 설명들을 예술작품에 대한 심오한 알레고리와 도상학적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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