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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차토를 쫓아서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11월
평점 :

드디어 5년 만에 팀 오브라이언의 <카차토를 쫓아서>를 다 읽었다. 사실 5년 전에 읽기 시작하면서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다가 흥미를 잃고 책을 놓아 버린 모양이다. 나흘 전에 다시 집어서 읽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줄라이, 줄라이>를 완독한 기세로 금방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읽다만 기억의 힘이라고나 할까.
소설 <카차토를 쫓아서>는 1968년 베트남전에 파병된 미군 중에 탈영해서 파리로 가겠다고 나선 카차토를 추격하는 일군의 무리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베트남에서 파리까지 자그마치 8,600마일 KM로 환산하면 13,840KM라고 한다. 아무리 상상이라고 하지만, 가는 동안에 마주하게 될 무수한 국경들은 어쩌구. 아마 그래서 5년 전에 읽다가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하고 그만두지 않았을까.
카차토는 어쨌든 전장에서 이탈했고, 아메리칼 사단(미23사단) 198여단 소속 7명의 분대원들이 카차토 추격에 나섰다. 동시에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미네소타 출신의 폴 벌린 상병(아마 작가의 문학적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다)의 관측소 경계임무 그리고 레이크 컨트리 전투의 낯선 이야기들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면서 소설이 전개된다.
파리로 도망 중인 카차토는 친절하게도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추격자들이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거의 그를 잡을 뻔하기도 하지만, 항상 카차토는 그들을 앞서나간다. 그렇다고 해서 카차토가 겁쟁이나 버프처럼 전투 중에 심장마비로 죽을 법한 배짱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긴 그럴 배짱이 없다면 파리로 가겠다며 나서지도 않았겠지만.
첫 관문인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에서 기관총수 해럴드 머피는 추격 대열에서 이탈한다. 그 다음에는 머피를 대신해서 베트남 피난민 사르낀 아웅 완이 분대에 합류한다. 정글을 헤매던 그들은 베트콩 땅굴에 떨어져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 다음에 그들이 지상에 나왔을 적에는 버마 만달레이였던가. 지독한 전쟁의 서사를 다루다가 갑자기 판타지로 변하기도 하는 서사의 맥락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하긴 전쟁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사실 소설의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서로 보완하거나 벌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국의 멀쩡한 청년들이 베트남 땅굴에 숨은 베트콩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다가 불귀의 객이 되는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분대원들은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깐깐한 시드니 마틴 중위보다 '늙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코슨 중위를 더 선호한다. 설사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된 지휘보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추격자 집단에 든든한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관측소 근무를 하면서, 빨리 제대할 날만을 꼽는 폴 벌린 상병의 모습에서는 징집된 병사들의 애환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가고 싶어서 가는 군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끌려간 병사들의 마음은 동서양을 떠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시계를 보면 시간이 더 가지 않는다며, 아예 시계도 차지 않고 야간 근무에 나섰던가. 중간 근무보다는 초번이나 말번 근무가 차라리 낫다는 이야기도 왜 이리 공감이 가던지.
그나마 만달레이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치타공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로 돌입한다. 아니 소총과 세열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미군 병사들이 여권도 없이 인도의 수도 델리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누비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하긴 베트남과 라오스의 정글을 누빌 적에도 아니 보급품도 없이 계속해서 행군하는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긴 했었지. 그리고 카차토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방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그런 기행을 보여준다.
폴 벌린의 전우들이 잇달아 쓰러지는 레이크 컨트리 전투는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왜 싸우는지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이기기 위해" 싸운다는 벌린의 진급 심사를 맡은 장교들의 대화가 계속 귀에 맴도는 느낌이다. 오랜 외세의 개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쟁에 나선 이들과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른 채 전장에 나선 이들의 전투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는 이미 시작 전부터 정해진 게 아닐까.
델리에서 출발해서 기차를 타고 아프가니스탄의 페샤와르와 카불을 거쳐 이란의 테헤란에 도착한 벌린들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샤의 비밀경찰 사바크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매질과 폭력을 경험한 일행은 카차토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테헤란 시내를 질주하는 스릴 넘치는 도주에 나선다. 이런 장면들은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어떤지.
그 다음에는 터키의 앙카라와 이즈미르를 거쳐 마침내 카차토 추적대는 유럽 대륙에 발을 딛는다. 자그레브와 독일 그리고 룩셈부르크를 거쳐 대망의 파리에 도착하는 폴 벌린과 일행들, 그들은 과연 꿈의 도시 파리에서 카차토를 체포하는데 성공할 것인가.
어마어마한 여정 끝에(1969년 3월 말) 파리에 도착한 이들은 마침내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서로에 대해 인위적으로 형성된 혐오와 분노로 총질을 해대는 베트남과 파리의 평화로움은 너무나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사르낀 아웅 완은 그나마 대화가 통하던 폴 벌린과 파리에 정착할 것을 꿈꾸지만, 팀의 실질적 리더인 오스카 존슨은 원래 목표였던 카차토 추적의 의지를 단념하지 않는다. 무장한 벌린들이 카차토가 은신해 있는 곳으로 출동해서 한바탕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팀 오브라이언 작가가 직접 베트남의 전쟁터에서 경험한 것을 문학적 작품으로 풀어낸 전쟁의 서사는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바로 옆에서 웃고 떠들고 고락을 같이 하던 전우들이 어디서 날아온 지도 모른 그런 총탄에 즉사해 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더라도, 그들은 그 순간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처음에 읽을 적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 때문인지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싶었는데, 다시 읽다 보니 그런 부분들도 무난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도대체 어떻게 끝을 맺으려고 하는지 궁금해져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읽었다. 파리라는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는 탈영병 카차토를 추격하는 보병 분대의 모험담, 레이크 컨트리라는 치열한 전장에 대한 르포르타주 그리고 관측소에서 시간을 죽이는 폴 벌린의 심리 상태라는 삼각축으로 구성된 팀 오브라이언 작가의 <카차토를 쫓아서>는 확실히 평화를 노래하는 멋진 전쟁소설이었다. 5년이 지나도 결국에는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