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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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전직 극우파 펑크록가수로, 현재는 프레카리아트 운동의 기수이자 시사 잡지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 작가인 아마미야 카린을 위한, 그녀에 의한 책이다. 물론 최근 <88만원 세대>와 <괴물의 탄생> 등의 저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우석훈 교수도 공저로 되어 있지만, 기본 줄기는 아마미야 카린의 서울 탐험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마미야 카린의 전력은 특이 그 자체이다. 일본에서 버블경기가 빠지고 나서 취업의 빙하기가 도래했던 1990년대 그녀는 “유신적성숙”이라는 극우적 향기가 풀풀 풍겨나는 펑크록 보컬리스트로 사회경력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좌파감독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난 후, 아마미야 카린은 극적인 전향을 이룬다. 그리고 오늘날의 새로운 아마미야 카린이 탄생했다.

OECD 국가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중이 가장 큰 우리나라만큼이나 고용불안과 그로 비롯된 빈곤과 차별이 만연화된 일본에서 그녀는 ‘프리터’라고 불리는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허상을 발가벗긴다. 책의 말미에 달린 우석훈 교수의 글에서도 보이듯이, 해방 이후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동일하면서도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주제는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점점 사회적 괴물이 되어 가는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한일양국 비정규직 그리고 가난과 차별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아마미야 카린의 눈에 비친 오늘날 서울의 모습이 <성난 서울>이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자본주의 대국 미국에서도 아무리 일을 해도 현재와 미래의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working poor) 계층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작년에 또 다른 일본작가 츠츠미 미카의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를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그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충실하게 수행해온 일본과 한국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에서는 파견근로자법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미명 하에 진행된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을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의 시행으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소위 말하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이말삼초의 젊은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측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분열을 꾀하고 있다. 언젠가 뉴스에서 통근버스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좌석제를 실시하겠다는 어느 회사의 공고문을 보고서 지난 세대 미국에서 보았던 인종차별의 광기가 떠올랐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21세기판 인종차별 아니 노동차별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방인인 아마미야 카린의 시선으로 우리네 현실들을 되짚어 읽는 과정이 그렇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방인인 만큼 그만큼의 객관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짧은 일정 간에 여러 곳을 둘러 보다 보니 그만큼 다루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것도 불가피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우리도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는 이방인인의 존재에서 경쟁과 성공제일주의가 판을 치는 정글과도 같은 현실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과 연대의 씨앗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아마미야 카린의 이야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서의 모순들을 짚어내는 저술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우석훈 교수의 분석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빠진 점들을 상당 부분을 상쇄시켜 주고 있었다. 읽는 동안 절로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기가 막힌 운영의 묘를 보여준 편집인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우석훈 교수는 기존에 발표한 저서에서도 밝혔듯이, 안정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고용의 창출을 위해서 기존의 기업들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그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들을 육성할 것을 주문한다. 고용시장에서 실제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톺아낸다. 특히 적게 벌더라도, 적게 쓰면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에 되갚는 순환적 경제론에 큰 공감이 되었다.

언제나 시작은 미약하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희망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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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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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에 있어 출판계의 또 다른 마케팅 전략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소위 ‘스크린셀러’로 최근 화제를 몰고 있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중단편선 <다른 남자>를 읽었다. 물론 이 책의 타이틀인 <다른 남자> 역시 작년에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영화화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모두 6편으로 구성된 <다른 남자>는 독일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가 된다. 법률가 출신인 작가는 사물을 보는데 있어, 특히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인간관계 역시 예외 없이 냉정한 법률가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와 도마뱀>에서는 독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서재에 걸린 “소녀와 도마뱀”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자란 나는 그 그림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 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어느 유대인 화가로부터(르네 달만) 예의 그림을 입수하게 된 경위와 떳떳치 못한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알게 된다. 이것은 마치 전전세대와 전후세대를 가르는 기준점처럼 작용을 하면서, 아버지 세대의 잘못까지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외치는 독일 신세대의 그것처럼 들린다.

<외도>와 타이틀 <다른 남자>에서는 각각 통일 독일 그리고 외도 혹은 불륜이라는 주제로 독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법학자 출신답게 문장이 다소 무미건조할 수도 있지만, 본질을 꿰뚫는 시각은 더없이 예리하기만 하다. 우정을 가장해서 타인의 삶에 뛰어는 사람도 그리고 아내가 죽고 난 뒤 알게 된 아내의 불륜에 대해 분노하는 이에게도 모두 시간은 공정하다. 그런 감정들이 휘발되고 남은 자리에는 공허함만이 자리할 뿐이다.

<다른 남자>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글은 바로 하이네의 글에서 따왔다는 <청완두>였다. 두집살림도 아니고 무려 세집살림을 마다하지 않는 토마스의 삼중생활이 놀라웠다. 68세대로 성공한 중년의 삶을 보내고 있는 토마스는 건축자이자, 아마추어 화가 그리고 프로젝트 파트너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제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명의 여성들과 스릴 넘치는 사랑의 곡예를 펼친다. 슐링크는 이 글에서도 역시 <다른 남자>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결혼의 위기 그리고 상호신뢰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이렇게 <청완두>에서 클라이맥스를 보여준 슐링크는 <아들>과 <주유소의 여인>을 통해 하강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어느 남아메리카 국가의 감시단으로 파견된 아버지의 여정을 그리고 다시 중년의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떠난 로드트립에서 갑작스러운 일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독일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른 남자>에 나오는 부부간의 혹은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와 소통의 부재는 그런 독일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전 세계적 현상의 편린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래도 작가가 남성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모든 이야기들은 철저하게 남성의 시선에서 진행이 된다. 개인적으로 6개의 중단편 중에서 하나 정도는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발발 70년이 그리고 통일 독일이 출현한지로는 20년이 되는 해이다. 여전히 독일에서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화해와 통합 그리고 소통이라는 주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다룬 문학 작품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것도 유로 시대가 아닌 마르크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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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갤러리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2
김영범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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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철학과 고전을 읽자’를 목표로 세웠었는데 아쉽게도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책도 그리고 철학책도 지금껏 한 권도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철학갤러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목표를 이룬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김영범 작가는 고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로부터 시작을 해서 현대 철학자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모두 51명의 철학자와 4개의 학파를 통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조명한다.

역시 사유를 근간으로 하는 철학은 모든 사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근원과 본질에 대한 질문인 아르케(arche)로 시작이 된다. 물론 예의 질문은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반복될 질문일 것이다. “도대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대한 간단한 질문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하나의 화두로 다가왔다.

그 후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고대 철학은 완성기로 접어든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신비주의적 경향에서 영혼과 정신을 분리해내면서 자연철학의 기초를 닦기 시작한다. 그는 문답법을 통해, 사람들이 덕(arete)을 얻기를 원했다. 게다가 기원전 399년에 위험한 사상가로 지목이 되어 끝내 독배를 마시기도 한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다시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이원론과 일원론이라는 걸출한 논리도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상주의자였던 플라톤은 형상철학을 통해 모든 것은 이데아를 베낀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철인이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이상 국가를 <국가>를 통해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이원론을 대신 일원론을 주창하면서, 질료와 형상의 관계를 통해 사물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려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을 집대성한 고대 최고의 철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서양철학은 곧 중세라는 암흑기를 맞이하면서, 철학이 신학의 시녀로 격하되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된다.  중세 천년을 지배한 스콜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완성이 되고, 모든 이들의 사고를 신 중심의 사고에 얽어매게 되었다. 하지만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을 타고, 고전의 부활 그리고 인문주의의 발달은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의 회귀를 가져 오게 된다.

역시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처럼 이 시대의 극적인 변화를 대변해 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그리고 라이프치히로 이어지는 대륙의 합리론자들에 맞서 영국에서는 로크, 버클리 그리고 흄과 같은 경험론자들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류 사유의 한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칸트의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자체가 어려운 탓인지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 역시 다시 한 번 철학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전개되는 현대철학자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일천한 지식 때문인지 급속하게 이해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작년에 읽었던 강영계 선생의 책인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에서도 느꼈던 건데 마르크스를 철학자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마르크스를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과학자라고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서양철학의 전반적 흐름을 되새겨 보는데 확실히 <철학갤러리>는 뛰어난 구성과 상반되는 관계에 있는 철학자들을 배치하고, 또 중요한 주장이나 사상들을 탁월하게 톺아내고 있다. 하지만 “서양철학갤러리”가 아닌 이상에야, 동양의 철학들도 서양철학 못지않게 다루어 주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울러 폭넓은 주제의 철학 사상가들을 다루는 것도 좋지만, 그들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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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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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차일드의 그 유명한 잭 리처 시리즈에 드디어 입문을 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이게 바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전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타부타 군더더기는 빼고 바로, 알짜배기들만 골라내서 서술하는 사실주의 기법의 진수, 게다가 잭 리처라는 그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절대 당황하지 않고 어깨를 움찔하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전혀 문제없어’라고 말해주는 캐릭터는 금상첨화였다.

잭 리처가 1997년에 리 차일드와 함께 첫 방랑길에 들어선 이래 모두 12편의 작품들이 소개가 되었다. 그 말인 즉은 해마다 리 차일드는 잭 리처 시리즈를 발표해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 역시 13번째 작품인 <내일로 떠난>(Gone Tomorrow)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잭 리처의 두 번째 모험의 시작은 시카고의 세탁소에서 시작된다. 정말 기묘한 우연에 얽히게 되면서, 유능하며 미모의 연방수사관 홀리 잭슨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3인조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어떠한 단서도 없이 잭과 홀리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이후에 전개되는 과정은 홀리의 FBI 동료들과 그녀의 아버지인 합참의장 존슨 장군의 구출작전이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전 미국이 휴일 모드로 돌입한 가운데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홀리를 구하는 대규모작전의 승인불가가 떨어진다. 자, 이제 그녀의 몇 명 안 되는 그녀의 동료들과 존슨 장군 휘하 몇 명의 해병들만으로 그녀를 구출해야 한다.

이야기의 구성은 이처럼 단순하다. 연방수사관이 실종/납치되었고 그녀를 찾아라. 하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고, 납치범들은 왜 그들이 홀리를 납치했는지 전혀 그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축구를 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어져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리 차일드는 처음부터 주요 캐릭터에 이런 제한을 두고 게임을 시작한다. 진짜 주인공 잭 리처는 자신뿐만 그녀를 지켜야 한다. 잭,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홀리 수사관을 구출해 내라구.

잭 리처의 프로파일은 화려하다. 한 마디로 말해 내추럴 본 솔저(natural born soldier)로 태어났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흠잡을 데 없는 군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군인들은 한 개도 받긴 힘든 다양한 훈장들을 받았다. 앞으로 시리즈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특등사수로서의 출중한 능력은 해병 사격대회인 윔블던에서 비(非)해병으로 유일한 우승전력이 증명해준다. 게다가 시계가 없어도 경험치에 의해 시간을 계산해내고, 자다가도 알아서 척척 일어나는 모습은 거의 완벽 그 자체였다. 뭐 이런 주인공이라면 어느 추리소설작가라도 한 번 탐내볼만 하지 않은가.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총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민간인들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고, 자신들의 인구보다도 많은 몇 억정의 총기들이 거래되고 있는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그건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무기휴대의 권리”에서 민간인들의 총기 소지 권리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내용은 <탈주자>에서 중요한 갈등 요소로 등장하게 되는 몬태나 민병대와 같은 무장단체의 존립기반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과대망상에 빠진 시대착오적인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이 되다시피 다섯 명의 한 명 꼴로 미국인들은 정부에 반대해서 분연히 저항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리 차일드는 말하고 있다. 그가 선량한 미국인들을 선동하려는 게 아니라면 근거가 있는 발언이길.

이제는 좀 진부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여전히 유효한 내부의 배신이라는 전통적인 소재 역시 스토리 전개에 활력을 더해 준다. 도대체 정체와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단체에 억류되어 있는 잭 리처는 자신과 홀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리고 연방수사관들의 움직임이 적들에게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직 군수사관 다운 직감으로 파악해낸다. 이 미스터리는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독자들의 긴장을 유지시켜 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잭 리처의 적들이 난공불락의 아지트로 삼은 몬태나 주 요크 마을에 대한 설정이었다. 구글 맵으로 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요크 마을과 그 주변을 위성사진으로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시카고에서부터 요크 마을에 이르는 대략적인 이동 경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마치 현장 스케치를 하듯 절묘하면서도 디테일한 작가의 묘사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그런 곳이라면 충분한 자금과 무장을 갖춘 어느 조직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역시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떠도는 방랑자답게 사건을 모두 해결하고 복수까지 마무리한 뒤에, 홀리와의 짧은 로맨스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어깨를 한 번 움찔해 보이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미련 없이 다시 방랑길에 나서는 잭 리처.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뱀다리] 책 표자에 “사립탐정”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탈주자>를 보면서 잭 리처가 사립탐정이라고 추리할만한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해내지 못해서 책을 읽는 내내 눈에 거슬렸다. 그 누가 잭에게 사건의뢰를 했던가? 굳이 그를 특정직업군에 분류하고 싶다면 자신이 말한 대로 문지기(bouncer)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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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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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0년 전에 발표된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마더 나이트>(1961)를 읽으면서 커트 보네거트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는 이십대 초반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그 유명한 벌지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리고 1945년 2월 드레스덴 대폭격을 경험하면서 반전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작가의 본능과도 같은 경험치로 자신의 드레스덴 경험이 창작의 소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후 거의 20년간 준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히로시마의 원폭투하보다도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낸 드레스덴 공습을 글로 표현해 낸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기 스스로도 정신분열증적인 소설이라는 말을 책의 서두에 적어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제5도살장>의 구성은 참으로 독특하다. 자전적인 이야기의 재구성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내면서도, 빌리 필그림이라는 얼치기 사병을 내세워서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투영시킨다. 전혀 전쟁과는 맞지 않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에나 들어맞을 인물이 삶과 죽음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전장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같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빌리 필그림은 집안 좋은 와이프 발렌시아를 맞아 검안사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 구조라면 얼마나 좋겠으련만, 보네거트는 SF 작품을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의 사실과 트랄팔마도어라는 외계행성에 납치된 빌리 필그림의 시간여행으로 뒤죽박죽으로 버무리기 시작한다. 하긴 전쟁이라는 미치광이 놀음을 단순하게 기술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빌리 필그림에 대해 세상에서는 미치광이로 판정을 내린다. 아내는 비행기 사고가 난 자신을 보러 오는 도중에 일산화탄소로 사망하고, 시집간 딸조차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트랄팔마도어 타령을 하지 않았더라도 빌리 필그림을 이해할만한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리라.

블랙유머의 대가답게, 빌리 필그림을 따라가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시선은 건조하고 냉랭하기만 하다. 물론 전혀 전쟁에 나선 병사 같지 않고, 전쟁을 희화화하는 것 같은 빌리 필그림의 옷차림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포로수용소의 연극무대에서 신데렐라가 신었던 은색 장화를 신고, 여자들이 하는 외토시에 커튼을 로마시대 토가처럼 두른 어릿광대 빌리 필그림의 모습은 “웃기지도 않는 전쟁”에 대한 보네거트의 조롱으로 다가온다.

<제5도살장> 읽기는  책의 어느 부분에서 나온 것처럼, 경이로운 순간들을 한 순간에 보는 경험이었다. “반전”(反戰)이라는 빤한 주제를 과연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예상을 단박에 부숴버리는 작가의 엉뚱한 파괴력이 느껴졌다. 유사 이래 인류와 함께 해온 전쟁이라는 현실이,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역설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해내고 있었다.

전작 <마더 나이트>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의 카메오 등장 또한 주목할만한 설정이었다. 전쟁포로로 도급노동을 위해 드레스덴의 시럽공장에 끌려와 있던 빌리 필그림은 나치의 선전요원으로 포로들의 생활에 대한 논문도 쓴 적이 있다는 하워드 W. 캠벨 주니어와 만나게 된다. 자신이 개발해낸 캐릭터를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을 하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국의 소설가, SF작가, 에세이스트, 풍자가, 불가지론자, 유니테리언, 포스트모더니스트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 세계에 너무 늦게 발을 들여 놓게 돼서 아쉬울 따름이다. 개인적 취향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비꼬는 그의 작법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 계속해서 그의 작품들을 섭렵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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