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단편소설집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옮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앨런 스튜어트 코니스버그. 우리가 우디 앨런으로 알고 있는 미국 유대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 꼽는 감독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35살이나 차이가 나는 순이 프레빈과의 결혼으로 인해, 파렴치한 노인네로 평가절하 받고 있지만.

나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한 편도 보지 않고서 말이다. 하지만 <마이티 아프로디테>, <한나와 그 자매들>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쏴라> 같은 그의 걸작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우디 앨런 특유의 걸출한 수다의 입담, 냉소적이 블랙 유머와 그의 현학적인 잘난체에 반해 버렸다. 어찌나 유식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지 <한나와 그 자매들>을 통해 배운 “hypochondriac”(자기 건강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란 단어는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 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통해 처음으로 우디 앨런의 글과 만나는 즐거움을 갖게 됐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활동적으로 영화판을 누비고 있는 이 노친네는 저명한 잡지인 <뉴요커>에 기고한 18편의 단편들을 모아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니체의 유명한 저서를 팔아 타이틀로 삼았다.

평생 뉴욕을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아온 우디 앨런은 뉴욕 그 중에서도 여피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맨해튼에 서식하는 오만가지 인간군상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교육 경쟁의 단면을 그린 <탈락>에서는 유명 사립유치원 면접에 떨어진 아이를 둔 부모의 고뇌를 스케치해낸다. 이 장면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내니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타이틀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였다. 니체의 그 유명한 철학 산문시를 교묘하게 비틀면서 뉴요커들의 섭생의 미학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잘난 현학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로 인한 무지한 독자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데 있어 일말의 양심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사이비 종교와 보통 사람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건설업자 그리고 자신의 주 무대인 영화판 역시 우디 앨런의 냉소로 가득 찬 독설을 피해갈 수 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유사 이래 새로울 것이 없다는 영화판의 (우디 앨런이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천재적 창조성’의 부재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여과 없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열량을 섭취할 재화를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겠지?

<오, 친애하는 유모여>에서는 자신들이 고용한 유모가 소설의 주인공 부부를 모델로 해서 쓴 글에 대한 경악과 분노를 다루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디 앨런의 전처가 그들의 사생활을 책으로 출간을 해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우디 앨런식 패러디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딸 같은 순이 프레빈을 12년째 데리고 사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처럼 들린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는데, 글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분명 다른 스타일의 번역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흠, 그 정도로 무지했던걸까. 책의 판형도 보통 책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일러스트를 맡은 이우일 씨의 그림들이 마치 엽서처럼 책의 곳곳에 끼워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특히 니체와 같은 식탁에 앉은 우디 앨런의 그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밀레니엄 캐피털 뉴욕을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글들이 너무 재밌다. 역시 영화에서처럼 그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다들은 유쾌하기만 하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뻔뻔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이렇게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작가적 능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디 앨런 특유의, 비꼼의 미학이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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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2년 전 85세의 나이로 영면의 세계로 떠난 미국 출신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출세작인 <고양이 요람>을 읽었다.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보네거트가 쓴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읽었던 <마더 나이트>가 가장 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더 나이트> 역시 만만치 않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1963년에 출간된 <고양이 요람>은 보네거트의 네 번째 소설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상의 인물인 펠릭스 호니커 가족사를 파헤치는 저널리스트 존의 심층취재와 후반부의 산로렌조 공화국에서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내내 보코논교라는 산로렌조의 존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사이비 종교의 외경(外經)에 나와 있는 글들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다. 카라스, 듀프라스, 그란팔룬, 웜피터 그리고 포마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그 정체들을 알 수 없는 어휘들의 홍수가 쏟아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 존도 보노콘교의 신자였던가? <제5도살장> 첫 머리에 뻔뻔스럽게 정신분열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마 <고양이 요람>도 비슷한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만 했던 걸까. 글 중에서 “역동적 긴장”이라는 표현이 어찌나 이리도 공감이 가던지.

존이 소설 속에서 쫓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등장하는 펠릭스 호니커 박사의 모델은 실존인물인 1932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출신의 화학자 어빙 랭뮤어라고 한다. 보네거트는 이 책에서 모든 인간사의 해결책처럼 제시되는 과학과 기술, 동시에 과학기술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다. 호니커 박사의 자식들을 통해 고인 생존의 모습을 스케치해 나가던 존은 아이스-나인이라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단번에 파괴시킬 수 있는 가공할 절대무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것은 50-60년대를 휩쓸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와 불안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반부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가상의 섬나라 산로렌조 공화국으로 떠난 존의 취재여행에 집중된다. 존은 그곳에서 그가 찾아 헤매던 호니커 박사들의 자식들을 모두 만나게 되고,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사이비 종교인 보코논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우리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소설은 뒤죽박죽인 상태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냉전 시대의 무한군비경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반전 평화주의라는 작가의 뚜렷한 메시지는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지만, 마치 쥘 베른의 철지난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이비 보코논교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정말 정신분열적인 상태에서 글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들고 있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언젠가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를 매긴 적이 있었는데 <제5도살장>과 더불어 <고양이 요람>에 당당하게 A+를 주었다. 소설 중에 나온 절대 자신의 글에 스스로 색인을 달지 말라고 했던 색인전문가의 경고가 떠올랐다.

냉소적인 블랙유머로 무장한 커트 보네거트는 핵폭탄으로 지구를 몇 번이나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 경쟁이 치열하던 시대상을 “실뜨기 놀이”(cat's cradle)에 비유하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을 교화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학교에서 지배자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생소한 커트 보네거트 특유의 용어들이 낯설어서 책읽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위트 넘치는 블랙유머들을 맛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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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 성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7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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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쥘 베른이라는 이름에는 언제나 근대 최초의 SF 작가라는 명칭이 따라 다닌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비행선 혹은 잠수함을 이용해서 육해공 심지어는 우주까지 망라하는 공상과학 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모두 54편으로, 1892년에 발표된 <카르파티아 성>은 37번째에 해당한다. 세상의 모든 신기한 것들에 관심을 가졌던 쥘 베른은 이 책에서 유럽의 오지인 오늘날의 루마니아(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일부였던)의 트란실바니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작가는 왜 그 많은 장소들 중에서 트란실바니아를 골랐을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지만 고대 로마시대 다키아 지역으로 불린 이래 유럽의 변방으로 이 글이 씌여지던 19세기말에도 여전히 미신과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일상화되었던 지역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이 책보다 5년 뒤에 출간된 브람 스토커가 “드라큘라”의 본고장으로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를 고른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카르파티아 성>은 현대 루마니아의 중앙부를 이루는 트란실바니아 중에서도 카르파티아 산맥에 자리한 웨르슈트 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의 양치기인 프리크가 떠돌이 방물장수에게 망원경을 구입하고, 예의 저주 받은 성으로 알려진 로돌프 데 고르치 남작의 “카르파티아 성”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보고를 하자, 대뜸 삼림감독원이자 마을 판사인 콜츠 씨의 미래의 사윗감인 닉 데크가 자발적으로 원인규명에 나선다.

닉 데크와 함께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탐험에 나선 파타크 의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에 진입하려다가 낭패를 당한 채 마을로 철수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전반부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던 마을에 프란츠 데 텔레크(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와 그의 하인 로츠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미스터리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텔레크 백작과 희대의 오페라 가수 스틸라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그들의 사랑의 장애물이었던 고르치 남작과 그의 과학자 동료 오르파니크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카르파티아 성의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책 소개가 문득 떠올랐다.

5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은 스틸라와 다시 만나기 위해,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델레크 백작의 모습은 독사에게 물려 죽은 에우리디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하데스의 명부로 뛰어드는 오르페우스의 현현이었다. 과연 델레크 백작은 스틸라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카르파티아 성의 비밀은 무엇인가.

역시 백여 년 전의 글이라 그런 진 몰라도, <카르파티아 성>의 놀라운 비밀은 오늘날에 보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문명의 이기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답게 쥘 베른은 당시 놀라운 문명의 발명품이었던 장치들을 이용해서, 여전히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믿고 있던 이들을 계몽하고 있었다.

스틸라라는 아름답고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을 사이에 둔 연적 텔레크 백작과 고르치 남작의 로맨스 대결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요소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개연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고르치 남작과 오르파니크의 카르파티아 성 칩거의 이유에 있어 아주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닌 듯 싶었다.

카르파티아 성이 쇼르(Chort:악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웨르슈트 마을 주민들과 탐험에 나선 닉 데크와 파타크 의원의 갈등 구조는 전근대적 미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근대이성에 의한 합리주의의 충돌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거기에 이천년전 그리스 신화의 전설을 근대 버전으로 가미해서 쥘 베른은 트란실바니아라는 미지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를 멋지게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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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왕비의 유산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8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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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어려서 읽었던 책들의 저자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읽었던 마크 트웨인이 그렇고, <인도 왕비의 유산>을 쓴 쥘 베른이 그렇다. 전자의 경우에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15소년 표류기>와 <해저 2만리> 같은 소설을 통해 아주 오래 전에 만났었다. 성인이 되어서 만나게 되는 옛 추억의 작가들의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선 <인도 왕비의 유산>에는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독일)의 운명을 가른 전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시 프랑스 출신으로 애국심에 넘치는 쥘 베른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라쟁 박사와 독일 예나 출신의 화학자 슐츠 교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선악의 명확한 구분을 시도한다. 제목으로 나오는 인도 왕비의 어마어마한 유산(5억 프랑)이 예의 두 사람에게 유산으로 분배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답게 사라쟁 박사는 유산으로 받은 돈을 인류의 복지와 발전을 위해 쓸 것을 선언한다. 한편, 자신의 유산의 절반을 사라쟁 박사에게 강탈당했다는 원한을 품은 슐츠 박사는 미국 오리건 주의 모처에 슈탈슈타트(강철도시)를 세워 예의 유토피아 프랑스빌을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사라쟁 박사의 아들 옥타브의 친구이자 조국 프랑스를 사랑하는 열혈청년 마르셀 브뤼크망은 슈탈슈타트에 비밀리에 침투를 해서 슐츠 박사의 가공할 만한 음모를 알아내는데 매진을 한다. 엄청난 자금과 뛰어난 소재 그리고 최첨단 기술로 40km 이웃한 프랑스빌의 10만 명의 사람들과 도시를 단방에 날려버린다는 끔찍한 계획을 알아낸 마르셀 하지만 그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된다.

<인도 왕비의 유산>은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이상을 가진 과학자들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이 책의 저술 8년 전에 프랑스가 프로이센에게 당한 처절한 패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지역의 상당 부분을 프로이센에게 강제로 빼앗기게 된다.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마르셀의 고향이 알자스라는 설정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19세기에 이르러 전기의 도입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과학 발전의 힘으로 인류의 유토피아 건설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된 이면에는 전쟁기술 역시 발전하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대량살상의 위험이 극대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슐츠 박사의 예에서도 보이듯이 거대 자본과 전쟁을 위한 기술력의 결합이 평범한 삶을 사는 현대의 인류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쥘 베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지 못해서 그가 계몽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빌을 건설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인 쿨리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면서도, 신세계의 유토피아인 프랑스빌에 황인종의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겠다는 인종차별주의적 제도적 장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19세기 프랑스 지식인의 한계였을까?

작가의 눈에 비친 독일의 세계 정복 야욕에 대한 예언은 정확하게 반세기 후에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을 통해 현실화된다. 아울러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는 자의적 우생학에 근거한 슐츠 박사의 망상은 나치즘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과연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쥘 베른의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있는 걸까.

비록 엉성한 이론이긴 하지만 19세기 말에 이미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의 개념을 도입하고, 거대 포탄에 이산화탄소를 탑재한 생화학 무기에 대한 발상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쥘 베른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의 상상력은 많은 면에서 현실화되기도 했잖은가 말이다.

한 가지 <인도 왕비의 유산>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중의 하나는 미국의 영토 내에서 이뤄지는 불법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슐츠 박사의 행동이 어째서 미국 연방정부의 개입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프랑스와 독일간의 민족국가의 대립의 연장선이라는 측면이 훨씬 더 크게 부각이 된 모양이다.

그동안 단순하게 아이들이 읽는 SF 공상과학소설 작가라고만 생각해온 쥘 베른의 다양한 작품 세계의 지평을 연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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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
마크 트웨인 지음, 린 살라모 외 엮음, 유슬기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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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에게는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왕자와 거지> 등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일화, 격언과 훈계 등과 같이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담은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을 만나게 됐다. 어려서 마크 트웨인을 읽을 적에는 단순하게 동화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접하게 된 그는 나에게 또 다른 인물로 다가왔다.

책을 읽던 중에 문득 얼마 전 텔레비전 모항공사의 광고에서 미시시피 강 유역의 마크 트웨인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훗날 자신의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해니벌이 떠올랐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인쇄공, 수로안내인, 광부, 저널리스트 그리고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을 섭렵한 그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마크 트웨인의 본명)의 글들과 일러스트 그리고 사진들을 접할 수가 있었다.

19세기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일상을 멋지게 풍자화해서 스케치해내는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역시 대가의 필력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일상의 소재들에 마트 트웨인 특유의 익살과 해학 그리고 냉소를 양념으로 곁들인 글들이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역시 세계를 돌며 수많은 강연회를 열었던 마크 트웨인은 세계인들이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리고 있다. 어쩔 때는 자신 특유의 냉소를 통해 또 어쩔 때는 어린 딸의 시선을 통해 자신들(미국인)이 보는 세계인들의 모습이 아닌 세계인들이 보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자신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오늘날 미국인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세기가 지나도 그네들의 여행 패턴은 바뀌지 않는가 보다.

45쪽에 나오는 마크 트웨인의 친필 사인이 들어가 있는 자신의 집을 불시에 방문하게 될 도둑님에게 알리는 친절한 공지문을 보면서, 그 특유의 블랙유머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게다가 용무를 마치고 나갈 적에는 이렇게 친절하게도 도둑님에게 살포시 문을 닫아 달라는 뻔뻔스러운 주문도 마다 하지 않는다. 하긴 자신의 창작을 괴롭히는 피뢰침 장사에게 막무가내로 피뢰침을 주문했다가 자신의 집이 우스개가 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니. 정말 그렇게 많은 수의 피뢰침을 집에 장착했을까? 에이 설마…….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마크 트웨인은 전화라는 이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받아 들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자동식 전화기가 아닌 항상 교환수를 통해 전화를 해야 했던가 보다. 어쨌든 전화 서비스 이용에 대한 불편은 호사가들의 변하지 않는 주제처럼 보인다.

6장 교육과 도덕적인 어린이 편은 특히나 오늘날의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듬뿍 담겨져 있다. 미국의 국부로 추앙 받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미 마크 트웨인 세대에도 모든 이의 귀감이 될 만한 행동과 격언으로 어린이들의 롤모델이었던 모양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엄친아 정도 된다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위대한 조상을 둔 어린이들에게는 아마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이다.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에, 언제나 근면과 노력을 다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위인의 삶 그 자체를 부모들이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짜증을 내지 않았을까? 마크 트웨인은 정확하게 그런 점들을 짚어낸다.

해당 장의 마지막에 실린 <젊은이들에게>에서도 그의 블랙유머는 유감없이 그 진자를 발휘한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테니까라는 아주 간단하지만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격언을 쏟아낸다. 역시 마크 트웨인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유쾌하게 사는 법>에는 일상의 예의범절, 식이요법과 같은 다이어트, 패션, 일상의 불평불만과 제안들을 비롯한 우리네 생활의 모든 것들에 대한 노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차고 넘친다. 동시에 남북전쟁을 통해 내부의 갈등을 내전이라는 방법으로 해결한 후 한창 산업발전기에 있던 미국 사회의 위선과 허영 그리고 거짓선전의 허구를 날카롭게 파헤친 “모럴리스트” 마크 트웨인 만년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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