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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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가 타히티에 갔다고? 우선 이 책 <무지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정체성은 참으로 모호하기만 하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책으로 만나긴 이번이 처음이다. 요시모토란 이름은 분명 일본 사람일 텐데, 바나나란 필명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지상낙원이라고 하는 남태평양의 타히티라니. 참으로 기이한 장소로 작가는 독자들을 초대한다.

<무지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27살 난 미나카미 에이코는 도쿄의 타히티안 레스토랑의 플로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해변 관광지에서 자란 그녀는 아버지가 어려서 바람이 나 도망가 버리자, 어머니와 역시 홀로된 외할머니와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생활한다. 아,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타히티에서 과거의 플래시백을 이용해서 전개된다.

어찌어찌해서 고향을 떠나 도쿄에 와서 십대 후반부터 <무지개>에서 일하게 된 에이코는 타히티의 그것을 고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레스토랑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레스토랑에 격무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결국 과로로 쓰러지게 되면서, <무지개>의 오너와 점장으로부터 오너의 임시 가정부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동시에 에이코는 타히티 본섬, 모로아 섬 그리고 보라보라 섬들을 유람하며 무엇엔가 휩쓸려 버린 감정을 추스른다. 남국의 강렬한 햇살에 생각마저 멈춰버린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이야기가 서술되는 곳은 분명 이역만리 타히티인데, 주인공의 심리는 모두 자신이 떠난 도쿄에 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유 여행이라는 명목이지만, 역시 자신의 생활 터전인 대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걸까? 듣기만 해도 부러워지는 라구나리움에서 바닷거북과 레몬색 상어들과 함께 헤엄을 치면서도,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남태평양 바다를 삼켜 버릴 듯한 에이코의 고민과 번뇌들이 조근조근하게 펼쳐진다.

오너 집의 가정부 생활을 하면서 돌보게 된 고양이 녀석과 개 녀석에게 한껏 정이 든 에이코는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포함한) 생물들이 사는 공간에서 불현 듯 삭막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너와 그의 아내의 가정불화는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심지어 곧 출산할 아이마저 오너의 아이가 아니라는 심증마저 굳혀지는 가운데, 개 녀석이 애완견 센터로 쫓겨나게 된다. 연민의 정으로 쫓겨난 개를 다시 구입한 에이코를 따라온 오너 다나카 씨와 작은 공명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타히티의 어느 호텔에서 우연히 저녁식사에 동석하게 된 가네야마 씨에게서 <무지개>의 오너와 점장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는 에이코. 하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보다도 두 번의 결혼을 경험하게 된 가네야마 씨의 이야기가 더 그녀의 가슴을 파고든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그 어느 사랑을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모든 존재들이 존재의 의미를 가지듯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느낀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줄 모르는 에이코의 갈팡질팡한 심리 묘사가 타히티 섬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어느 순간 다가온다. 시골에서 도시로 간 처녀는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근간을 잊고,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리라는 어머니의 염려가 적중했다는 사실을 과연 깨달았을까?

마스미 하라씨가 그린 일러스트는 마치 백 년 전 타히티를 찾아 원주민들의 강렬한 이미지를 서구 세계에 알렸던 폴 고갱의 그림을 닮았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일러스트들은 마치 타히티 현지인들과 흡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이라는 주장처럼 보인다.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들이 왠지 친근하게만 느껴진다.

<무지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행 시리즈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 말미에 작가 후기가 없었더라면 영영 몰랐을 게다. 남태평양의 작렬하는 햇살 속에서 어느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바나나의 다음번 기착지가 어디가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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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을 리뷰해주세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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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베를린에서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핀란드 출신의 청년과 쿠셋을 같이 사용하게 됐다. 사실 난생 처음 보는 핀란드 사람이라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긴 밤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파리로 향했다. 대학에서 하키를 한다는 그 친구는 등판에 수오미(Suomi)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티를 입고 있었는데 물어 보니 자기네 나라 말로 핀란드를 지칭한다나. 그리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핀란드의 전 대통령 만넬헤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집에 그 유명한 핀란드 메이커인 피스까스(Fiskars)의 녹슬지 않는다는 주황색 손잡이의 가위를 하나 가지고 있다.

수년간 핀란드에 거주했다는 안애경 작가의 <핀란드 디자인 산책>은 비록 타이틀에 ‘디자인’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전적으로 디자인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수오미네들의 삶과 그 삶 속에 군데군데 아로 새겨진 디자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에서도 변방 국가에 속하는 국가다. 예로부터 이웃 국가 러시아(구 소련)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왔고, 2차 세계대전 중에 발발한 겨울전쟁으로 러시아에게 자국의 많은 영토를 할양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북구의 나라답게 왠지 핀란드하면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엄동설한이다. 작가는 숲과 호수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핀란드 디자인의 세계와 생소한 풍물들을 다년간의 체류 경험을 통해 멋진 사진과 함께 조화롭게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바로 실용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엄청난 숲이라는 천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핀란드 교육 과정에 목공 실습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국민들은 누구나 다 어려서부터 목공 기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게 된다. 목공 기술뿐만 아니라, 자원의 재활용 측면에서도 수오미들은 실용적인 접근을 보여 준다. 작가가 “에코 디자인”으로 명명한 자연에서 그 모티프들을 딴 자연친화적인 디자인들이 그야말로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특히 수도 헬싱키 외곽에 위치한 “글로베 호프” 작업실 탐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작가는 핀란드의 공공 디자인과 자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유도하는 도시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자연보호와 보존보다는 언제나 개발 논리가 우선하는 우리나라의 무계획적인 도시설계가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그렇게 다양하면서도 뛰어난 디자인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그들의 아이디어가 마냥 부러웠다. 그건 아마도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보다, 능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교육 시스템과 평등한 사고에 기반을 둔 사회적 노력이 그 바탕이 되지 않았나 추정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암석 교회>(Rock Church)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멀리서 보면 교회라는 종교적 색채조차 드러나지 않게, 그야말로 생활 그 자체로 다가오는 암석 교회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든다.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예배와 결혼식 혹은 장례식 외에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개방된 공간이라는 설명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사회봉사의 미덕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었다. 빛의 소리를 듣는다는 소제목 역시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역시 핀란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산타클로스와 온 국민들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우나 이야기 역시 백미였다. 어려서 읽은 작고하신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기 핀란드 편에서, 한 겨울에 사우나를 하고 눈밭에서 뒹구는 여인의 사진이 떠올랐다. 안애경 작가의 글을 보면서 정말 사우나가 수오미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수오미네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자작나무로 각종 목공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또 사우나의 연료로도 사용하는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삶의 모습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하는 그네들의 삶 속에 흠뻑 빠져 들었던 유쾌한 독서체험이었다.


*** 책을 읽으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내용들
 

1. 작가는 25쪽에서 ‘핀란드의 영웅 만넬헤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만넬헤임은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편에서 연합군에 대항해서 싸운 전범이다. 과연 그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이 어울릴지 궁금했다.
2. 예무르 -> 예르무 (오탈자, 133쪽)
3. 236쪽에 “카누 타는 방법”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사진에 나오는 건 카누가 아니라 카약이다.
4. 251쪽 : 핀란드가 독립하기 전, 그 유명한 러시아와의 겨울전쟁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건 1917년이고, 겨울전쟁은 1939년에 일어났다. 핀란드 역사 부분에 있어. 작가가 혼동한 것 같다.
5. 영어단어 joy 에 평화라는 뜻이 있던가?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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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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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해수면보다 낮다는 나라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도시를 구글맵을 통해 찾아봤다. 왜냐구? 지금부터 이야기할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 귀고리 소녀>와 동명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델프트”(Delft)이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의 여류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특이하게도 책의 첫 부분에 바로 이 델프트 시가도를 소개하고 있다.

1962년에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4년에 영국으로 이주해서 한동안 북에디터 생활을 하다가 전업 작가로 변신하게 된다. 그녀의 첫 소설은 <버진 블루>(1997)이었지만, 그녀에게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은 바로 두 번째 작품인 <진주 귀고리 소녀>(1999)였다. 아마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은 봤음직한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동명의 제목으로 미국 출신의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로도 소개된 바가 있다.

이 책 역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네덜란드 델프트 출신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그가 그린 작품들이, 작가가 빚어내는 허구와 함께 교묘하면서도 적절하게 배치되면서 팩션 장르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주인공인 16살 난 그리트는 타일공의 딸로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실명하고, 직장마저 잃게 되면서 부유한 구교도인 화가이자 길드 대표로 있는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 그리트는 영특하면서도 하녀인 자신의 신분에 넘어서지 않는 처신을 구교도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하나씩 배우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복한 가정에서 불편 없이 지내던 그리트는 가장의 몰락으로 인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베르메르네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빨래에, 시장에 장 보러 가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장의 화실 청소까지 도맡아서 하게 된다.

작가 트레이스 슈발리에는 처음부터 주인공 그리트와 그리트의 주인 베르메르 간의 좁혀질 수 없는 공간을 설정하고, 미묘한 심리전을 구사한다. 특히 베르메르의 주고객으로 거절할 수 없는 상대로 등장하는 반 라위번은 이미 그전에 자기 집에서 일하던 하녀를 임신시킨 전과를 가지고 있는데, 그의 집요한 시선은 그리트의 뒤를 쫓는다.

게다가 베르메르 집안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큰 마님 마리아 틴스(베르메르의 장모), 작은 마님 카타리나, 그녀의 말썽꾸러기 딸 코넬리아 그리고 선임 하녀 타네커에 이르기까지 온통 시기와 질투로 대변되는 여성들 간의 알력과 쟁투의 중심에 어느 날 갑자기 내던져지게 된 그리트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그리트의 삶은 어느 날 그녀가 베르메르의 작업을 비밀리에(물론 마리아 틴스의 방조 아래) 돕게 되면서,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혹은 감정의 위험 수위를 넘은 건 아니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전개가 아주 감칠맛이 났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모티프가 될 만한 순간을 포착한 베르메르는 거침없이, 그리트와 공모해서 필생의 역작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분명 수년간의 걸친 리서치 작업을 통해, 17세기 근대화에 선두에 서 있던 해양 국구 네덜란드의 시대상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상공업이 서유럽의 그 어느 나라에 비해 발전해 있던 네덜란드의 소도시 델프트와 교역을 통해 부를 이룬 부르주아 계층들의 예술적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화가들의 작업과 거래들을 책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아울러 치열한 독립전쟁을 통해 마침내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 신교국가 네덜란드에서의 구교도 가톨릭과의 미묘한 갈등 역시 은은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원래 신교도였지만 구교도로 개종한 베르메르 가정에, 하녀로 들어간 주인공 그리트는 신교도로 결코 융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큰 갈등 요인은 아니지만, 부차적으로 해묵은 종교갈등의 요소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내공에 새삼 놀랐다.

한편 푸줏간집 아들로 등장하는 엄친아의 모델, 피터는 주인공 그리트를 짝사랑하지만 항상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돌리기까지 기다림의 미학을 선사해 준다. 물론 피터가 그리트 집에 제공하는 식육이라는 물질적 시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포인트다. 자존감이 강한 그리트는 피터의 그런 행동이 못내 불만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급여만으로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는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은 베르메르 필생의 역작 <진주 귀고리 소녀> 제작 과정에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 속으로 파묻히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녀의 일이 아닌, 전문직 화가인 베르메르의 작업을 돕는 조수로서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그리트는 비로소 거듭나게 된다. 아울러 성장소설적인 측면에서도 그녀는 소녀에서 한 명의 어엿한 여인으로 재탄생한다. 대작 <진주 귀고리 소녀>의 모델로 등장하는 그리트는 한사코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르메르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마지 그녀의 순결에 대한 마지노선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림의 화룡점정처럼 다가온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끼기 위해 스스로 값비싼 정향을 사다가 마취시키고, 귀를 뚫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하녀로서의 비루한 삶 대신, 당당한 한 명의 그림을 위한 모델이라는 자각에 대한 선포처럼 다가온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던 중에 초반부의 전개가 몰입을 방해한다거나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지루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건 아마 소설에 대한 자신들의 모종의 기대가 작가에게 배반당하면서 생긴 반발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작가의 배신을 즐긴다면 이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다른 차원의 매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는 참으로 할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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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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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쓰면서, 이렇게 설렜던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루이스 세풀베다의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다만, 무척이나 주관적이라는 생각을 먼저 말하고 싶다. 내가 이 책과 만나게 된 계기는 역시 책이었다. 얼마 전에 읽은 박주영 작가의 <백수생활백서>에서 이 세풀베다 책 제목을 듣는 순간, 운명적인 만남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마누엘 푸익,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그리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이름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아쉽게도 루이스 세풀베다의 이름은 생소하기만 했다.

게다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이미 절판되었다는 게 아닌가! 절판본에 대한 누구 못지않은 탐욕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책을 입수하게 만들었다. 책을 손에 쥐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책날개에는 루이스 세풀베다에 대한 약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칠레 출신의 작가로, 악명 높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망명해서 독일과 스페인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린피스 활동가로도 활동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 보자. 우선 이 책은 두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타이틀인 <감상적 킬러의 고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악어>다. 우선 전자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말 그대로 킬러가 주인공이다. 의뢰인과 중개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사진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산 자들의 명부에서 지우는 “목숨을 앗아 가는 천사”라는 직업을 가진 킬러. 국적도 이름도 모르는 우리의 주인공 킬러는 40대 초반의 남자다. 어느 날처럼, 표적을 받은 그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배후에는 최근 킬러가 만난 아리따운 프랑스 아가씨가 자리하고 있다. 킬러는 그녀를 평범한 소녀에서 세련된 여자로 만들어주었으면, 그들의 열렬한 사랑은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다, 조금은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일 것 같은 킬러의 본능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망명객 작가 세풀베다는 독자들을 마드리드의 번화가에서, 이스탄불의 바자 시장으로 그리고 다시 프랑크푸르트와 파리의 도심으로 인도를 하고 마침내 이야기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후덕지근한 대도시 멕시코시티로 인도한다. 소설이라는 미디어에서 공간이동의 자유를 만끽한다.

플롯의 중심에는 익명성과 물질주의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다가온다. 자신의 정체를 절대 밝히지 않는 킬러. 그의 의뢰인이나 중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킬러는 절대 표적이 왜 산 자의 명부에서 지워져야 하는가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대하는 모든 것은 물질로 변이된다. 그의 표적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아닌 세금도 따라 붙지 않는 여섯 자리 숫자가 찍힌 수표로 대체가 되고, 그의 ‘계집애’ 프랑스 아가씨 역시 욕구 해소의 도구일 뿐이지 애정이나 감성의 대상은 아니다. 문학가를 꿈꾸는 프랑스 아가씨의 용도 역시 얼마든지 대체될 수가 있다, 물론 금전적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작가가 설치한 장치로, 소설의 중간 중간에 흔들리는 킬러의 자아가 거울에 비춰지는 자화상과 대화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마치 한 편의 스파이 소설을 보는 듯한, 긴박감과 첫 실패로 코너에 몰려 은퇴의 기로에 선 킬러의 갈팡질팡하는 심리묘사는 너무나 멋지다. 게다가 표적과 자신을 위협하는 적들에게 납덩이를 선사한다는 그의 말투는 느와르 영화스타의 멋진 대사처럼 들려온다.

두 번째 작품인 <악어> 역시 <감상적 킬러의 고백>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바로 몰입하게 만드는 포스를 느꼈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브루니 피혁회사의 창업자인 돈 비토리오 브루니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접근해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그의 죽음의 사인을 밝히길 원하는 브루니의 딸 오르넬라와 사건을 맡은 아르파이아 반장과 키엘리 형사 그리고 죽은 브루니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회사의 사정관 다니 콘트레라스가 차례로 등장한다.

자연사로만 생각했던 브루니의 죽음에, 보호종으로 밀렵이 금지된 남아메리카의 야카레(Yacare Caiman)라는 악어 사냥과 야카레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아나레 족 인디오들의 몰살이 관계되었다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주인공 콘트레라스의 치밀한 추리에 의해 들어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아나레 족 인디오 전사들이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이탈리아에까지 잠입해서 치르는 복수전은 정말 통쾌 그 자체였다.

<악어>에는 파렴치한 서구 자본주의의 물질만능의 폐해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제3세계 환경보호라는 서로 상극을 이루는 두 가지 메시지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들의 삶과 밀접한 야카레 악어를 보호하려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아나레 족 인디오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솟아올랐다. 반대로 그들을 억압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서구인들에 대한 반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동정과 반감을 교묘하게 짜깁기한 작가의 교차 편집 서술에 찬사를 보낼 따름이다.

왜 그동안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에 대해 몰랐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 정도로 <감상적 킬러의 고백>을 읽은 경험은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세풀베다는 올해 내가 만난 작가들 중에 커트 보네거트와 더불어 최고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서둘러서 그의 다른 작품들인 <연애소설 읽는 노인>,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그리고 <지구 끝의 사람들>을 주문했다. 읽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으면서도(일단 짧다!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 주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들이 담겨져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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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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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몇 번이나 이정명 작가의 원작 <바람의 화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드라마도, 영화도 다 놓쳐 버리고 결국 책으로 만나게 됐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소설의 극적인 반전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고 있었나 보다.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 신윤복으로 캐스팅된 배우를 알아서인지 그 반전은 거의 기대할 바가 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원소스 멀티유스(one-source multi-use)에 대한 문학 작품의 예로 <바람의 화원>은 그 전범으로 꼽을 수가 있을 것 같다. 항상 그렇지만, 팩션 장르에는 소설가의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느낌이다. 사실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혜원 신윤복에 대한 두 줄의 서술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엮어낸 이정명 작가의 내공에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바로 직전에 읽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와 함께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양상의 전개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실재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모티프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꼽을 수가 있다. 하지만 좀 더 섬세하면서도 여성작가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진주 귀고리 소녀>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이정명의 작가의 글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친근한 화가들의 이름과 더불어 초등교육 시절부터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된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 그리고 속도감 넘치는 진행이 그 묘미라고 할 수가 있겠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바람의 화원>에서는 살인에 얽힌 미스터리까지 등장을 한다. 다만 그 수사관이 의금부 출신의 포졸이 아닌 화원(畵員)이라는 점이 다를 뿐.

조선 후기 정조 대의 활약한 것으로 알려진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는 사제 간의 설정이면서도 동시에 궁극적인 라이벌 관계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물론 대개의 서술이 김홍도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정도로 신윤복의 입장은 객체로 다루어지고 있다.

역시 도화서 출신의 화원인 신한평의 둘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로 등장하는 신윤복은 수백년간 정형화된 규격에 얽매인 도화서의 숨막힐 듯한 형식과 규율에 일대 반란을 일으킨 자유인으로 그려진다. 도화서 생도 시절, 외유사생에서 파격적인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자유의지를 알리지만,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식으로 체제에 도전적인 신윤복의 그림은 도화서를 좌지우지하는 원로 화원들의 눈에 날 뿐이다. 결국 그를 대신해서 그의 가형인 신영복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자진해서 단청쟁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그는 누구나 하찮게 생각하는 단청칠을 하면서, 자신의 동생이 필요로 할 색을 만들어내기 위한 위대한 장도에 들어선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신분의 자유로운 이동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화원들의 신분은 중인으로, 과거제를 통한 신분상승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 결과 소설에서는 자신의 스승인 강수항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캐는 김홍도의 수사를 조정의 신료가 된 강수항의 자제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마치 자신들의 과거를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강력의 의지의 표명처럼 다가온다.

한편 자유분방한 필치와 색을 구사하는 신윤복의 스승으로 나오는 김홍도 역시 한 세대에 나올까 말까한 명인이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길을 걷는다. 하지만 제자 신윤복에게서 자신을 능가할만한 재능을 본 김홍도는 신윤복을 위해, 아니 어쩌면 자신 스스로를 위해 위기의 순간마다 신윤복을 위한 변호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두 천재에 더불어,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천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절대군주 정조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가슴을 안고 사는 청년 군주 정조는 즉위 일성으로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선대왕 영조대를 주름잡은 노론 벽파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다. 정조 연간에 그 어느 때보다 군신간의 치열했던 권력의 암투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뒤로 하고 있다.

정조는 이 두 천재화가에게 세속의 모습을 담아오라는 주제를 내려 주고, 김홍도와 신윤복은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다른 그림으로 정조에게 어필한다. 아마 1권을 통틀어 이 동제각화 그림 배틀이야말로 압권이었다. 김홍도는 사실적 리얼리즘에 기초한 그림을 그려 오지만, 신윤복은 항상 메시지가 담긴 그림으로 정조에게 도전한다. 물론 그 둘에 비해 못지않은 천재로 그려지는 정조 역시 바로 바로 그 메시지를 잡아내면서 관계의 정풍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정명 작가가 직접 서술한 대로, 백 장의 상소보다도 한 장 그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한 반증이었다.

특히 정조의 어진화사를 두고 나오는 이야기는 정말로 있을법한 이야기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신윤복이 파국으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드는 점 중의 하나는, 정조는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자신의 치세 기간에 문체반정으로 세간에 떠도는 참신하긴 하지만 파격적인 문장들을 규제했던 정조가 어진화사에 있어, 신윤복의 파격을 용인했다는 작가의 서술은 그 설득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동일한 캐릭터가 어떤 일에는 용인을 하지만, 다른 일에는 절대 용인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강수항과 서징의 죽음에 대한 김홍도의 탐문조사 이야기가 어느 순간 실종되었다가 말미에 가서 다시 등장하는 개연성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지속적인 긴장감의 조성을 위해서라도 소설 진행 중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18세기 후반,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상공업의 발달로 치부한 상인 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공고하게 유지되어 오던 신분제의 이반현상에 즈음한 시대상 묘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예인으로 취급되면서, 역사소설에서 주인공으로 각광받지 못한 도화서의 화원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설정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재밌다는 점이 아닐까? 과연 2편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지어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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