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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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조세현 작가는 사진을 영상 기호라고 표현을 한다. 기호가 나왔으니, 책의 기호에 대해 한 번 분석해 보도록 하자. 우선 <조세현의 얼굴>이라는 제목 글씨 뒤로 노란색 표지가 푸근하게 독자들을 맞이한다. 노란색의 상징성은 바로 따뜻함과 포용이다, 뛰어난 인물사진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이 표지 색으로 이미 독자들에게 조용히 그 신호를 보낸다.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최정상의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는 작가는 빛이 만들어내는 예술인 사진으로 더욱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자신의 믿음을, 멀리 중국의 시안[西安]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사는 이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빛과 그림자라는 사진 예술의 기본 명제처럼, 그의 첫 오브제는 바로 그림자 연극이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포토그래퍼와 즐거운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말대로, 회색빛 콘크리트로 물든 대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마른 인상을 짓는 이들의 그것보다 시골마을이나 시장통의 갑남을녀들의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들이 텍스트의 풍성함을 더해 준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사진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조세현 작가가 찍은 인물 사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기에, 낯선 이가 카메라를 가지고 근접촬영을 하는데도 어떤 거부감 없이 이런 자연스러운 표정들을 잡아낼 수가 있었을까. 하긴, 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이 책에 그렇지 않은 사진들은 실릴 수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마치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처럼, 카메라라는 빛을 담는 무기를 장착한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눈이 다 짓무르도록 카메라 뷰파인더를 노려 보았으리라.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사진을 찍었을 그 순간의 희열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었다. 천 개의 찐빵을 담을 수 있다는 통을 앞에 둔 부자의 모습에서, 그림자극을 보느라 정신이 팔린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 속에서, 코를 줄줄 흘린 채 아빠의 무등을 탄 꼬마에게서, 냉차를 팔다 말고 한없이 선량한 눈빛을 가진 청년의 모습에서 조세현 작가는 자신이 정말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고갱이를 남김없이 표현해내고 있었다. 





한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안의 편린들을 쫓는 작가의 시선도 느껴졌다. 이천 년 전 진시황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던 병마용갱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화(漢和)된지 오래지만, 이슬람교를 믿으며 여전히 중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그 골격과 생김새부터 다른 후이족[回族]들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서 세상과 침묵의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했던가. 멋지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말 “심안”(心眼)으로 우리네 삶의 본질들을 볼 수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정말 뛰어난 사진작가에게 한 수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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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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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작가 할런 코벤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어제 오후에 책을 펴들었는데, 책의 서두 부분을 읽는 순간 <결백>을 다 읽지 않고서는 뭘 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시 외출했다가 저녁 먹을 때만 빼고는 도저히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정말 제대로 된 “페이지터너”였다. 결국, 자정을 넘겨서 다 읽게 됐다.

혹자는 할런 코벤의 작품이 너무 편차가 심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어떤 책이고 처음 접하는 책이 좋으면, 그 작가는 좋은 편으로 들어서게 되고 그렇지 않다면 반대편에 서게 되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읽었던 폴 오스터 역시 전자의 대열에 들어설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주인공 맷 헌터의 기구한 삶을 잘 요약해서 들려준다. 대학 시절,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들어 과실치사를 저지르게 된다. 고의였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인명이 살상된 사건이니만큼 맷 헌터는 그로 말미암아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4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대학으로 돌아가 법학 학위를 받고, 자신의 친형인 버니가 일하는 법률사무소에 변호사 보조원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한다. 하지만, 전과자가 된 맷 헌터를 보는 지역사회의, 그리고 지인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에게 구원은 바로 아름다운 부인 올리비아다. 헌터의 대학시절 라스베이거스에서 우연히 만났던 인연의 끈이 닿아, 뉴저지에 보금자리를 튼 헌터 가족에게 어느 날 이 올리비아의 핸드폰 번호로 기이한 동영상이 전송되면서, 이야기는 매우 급하게 전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근처 수녀원의 어느 수녀가 죽었는데 그녀의 죽음에서 도저히 수녀로서의 삶과는 동떨어진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슬슬 미궁으로 빠져든다.

또 한 명의 멋진 캐릭터로 맷 헌터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이자, 이제는 뉴저지 검찰청의 민완 형사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로렌 뮤즈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뜻하지 않았던 자살로 심리적 내상을 입은 로렌은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불륜에 빠진 것으로 의심되는 아내 올리비아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맷 헌터가 사건 의뢰를 맡긴 도저히 사설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 싱글 쉐이커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런 다양하면서도 멋진 캐릭터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독자들은 황홀한데, 그의 치밀한 내러티브 구성이 결정타를 날린다. 가톨릭교를 기반으로 한 보수적인 미국 동부의 뉴저지와 이와는 대조적으로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할런 코벤은 화려한 전개를 펼친다. 책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서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할런 코벤의 소설적 깔때기에 걸려지면서 작가가 도처에 심어 놓은 암시와 복선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결백>은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내면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다. 가령, 예를 들어 실수지만 사람을 죽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 맷 헌터의 고뇌와 그를 바라보는 피해자 부모와 사회의 시선, 그는 과연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과거를 모두 받아들이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한 올리비아의 헌신적인 사랑, 자신을 버린 미혼모 엄마를 찾아나서는 십대소녀의 사모곡, 빗나간 우정으로 말미암은 궁극의 복수에 이르기까지 온통 인간의 삶을 혼란 그 자체로 만들 법한 이야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바로 그런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게 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역시 뭐니뭐니해도 미스터리 스릴러는 반전이다. <결백>은 그 반전에 있어서도 전혀 인색하지 않고 푸짐하게 독자들을 위해 진설한다. 모든 스릴러가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아주 작은 단서들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이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통에 이름 확인을 위해 다시 앞장을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비채에서 꾸준하게 나오는 모중석 스릴러 시리즈 21번째 책이었던 <결백>에 흠뻑 빠졌던 11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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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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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번째를 맞는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황순원 작가에 대해 아는 게 뭐지? 거의 없었다. 어려서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나기> 정도가 그에 대해 아는 지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도움을 빌려 황순원 작가에 대한 짧은 검색을 해봤다. 그도 어느 유명작가의 글처럼 누구나 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되짚어 보면 거의 읽지 않은 이름만 아는 아주 유명한 소설들을 집필했다.

한편, 황순원문학상은 변하지 않는 인간성과 한국인의 정체성 그리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계승 발전시켜 나간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두 차례의 예심과 한 차례의 본심을 통해 최종작 10편 중에서 이번 가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걸출한 장편으로 독자들을 찾은 박민규 작가의 <근처>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참고로 황순원문학상은 중편 혹은 단편들을 그 수상 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책의 표지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최종 본심에 오른 작가들의 이름이 아주 낯익다는 것이었다. 수상자 박민규 작가를 필두로 해서, 김경욱, 배수아, 그리고 은희경 작가에 이르기까지 신예 작가들보다는 기성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신인 작가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는 걸까? 아니면 그들의 역량의 기성작가들의 그것에 비해 월등하게 떨어진다는 반증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역시 수상작답게 박민규 작가의 <근처>는 탁월한 구성과 함께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몰입시켜야 하는 중단편의 특성을 잘 살려낸 것 같다. 시한부 삶을 선고하고 받은 낙향한 주인공의 신산한 삶에 대한 신속한 묘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타임캡슐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통해, 학업과 취업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단박에 뛰어넘으면서 바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현실 앞에 캐릭터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면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는 작가의 글발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암으로 죽어가는 육신의 소멸을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 앞에, 잊혔던 친구들을 차례로 배열시키면서 2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버린다. 결말 부분에 배치된 ‘나’의 감성적 환영은 그야말로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

최근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어느 사건을 연상시키는 김경욱 작가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의 키워드는 복수다. “이 도시에서 수백 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으로 시작되는 개별 사건들의 배후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을 조용한 어조로 하나씩 들려준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식의 냉철한 서술이 언제 어디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비극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통쾌한 복수가 생략돼서 좀 아쉬운 감이 없진 않았지만 역시 중단편의 마스터 김경욱 작가답다는 느낌이 진하게 풍겼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고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바로 강영숙 작가의 <그린란드>였다. 아니 ‘그린란드’라니, 덴마크령으로 캐나다 북쪽에 있는 그 섬나라 말인가? 정말 천국보다도 더 낯설게 들리는 그 지명이 주는 마력에 그만 빠져 버렸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근근하게 직장생활을 이어가면서, 남편과 그의 친구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한민국 평균 중상층 이상의 몰락하는 삶의 이야기가 리얼하게 그려진다. 우정인지 객기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그런 의리로 똘똘 뭉친 남정네들은 결국 서로 보증을 서고 돈을 빌려 주면서 자신의 아내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이 마누라들을 소외시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간 걸까? 개썰매를 끌며 북극광과 오로라를 즐기러 ‘그린란드’로 튀어 버린 걸까?

한동안 우리나라 중편과 단편들을 접해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원 없이 중단편을 즐길 수가 있었다. 앞으로도 황순원문학상의 순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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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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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그야말로 허겁지겁 다 읽어 버렸다. 항상 전위적인 작품들로 파문을 일으키는 장정일 작가가 십 년 만에 발표한 책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 탑재되어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장정일 작가의 소설 귀환에 즈음해서 많은 신문에서 “제대로 된 우파 청년”이 탄생했다는 기사들 쏟아냈다. 그동안 한국 문학계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좌파 지식인 청년들이 아니었던가, 그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였을까? 그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 담론의 언어적 유희에서 벗어나 뜨거운 감자를 꿀떡 삼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가 원래 책의 제목을 <금과 은>으로 정하려고 했다고 작가 후기에서 밝혔다시피, 이 책의 주인공 둘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 빛고을 출신의 금과 부산 출신의 은이다. 금과 은이라는 항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처럼 그들의 배경은 다르다. 금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지역타파를 외치며 진보운동을 한 후광으로 2003년 막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입성한 노무현 대통령의 보좌관이 되어 고향을 떠난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 은의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게 된다.

진보적인 집안 분위기에도 금은 이상보다는 현실세계에 더 집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반고경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인과 만나게 되면서, 황음(荒淫)의 세계로 빠져든다. 자 비로소 장정일 작가 특유의 성적 상상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 속에 리얼하게 펼쳐진다. 한편, 강한 것은 아름답고, 그것이 바로 선이라는 도식화된 이데올로기화 되어가는 시인지망생이자 문학청년이었던 은은 어느 갤러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환영[Maya]의 소녀’에게서 첫 사랑을 느낀다.

같은 대학에 입학한 금과 은은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알아가게 된다. 장정일 작가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아 엇갈리는 감정의 실타래 속에서 금과 은의 이야기들을 종횡무진 구사한다. 독자들이 무척이나 궁금해할, 제목 <구월의 이틀>에 대한 설명을 대학 강의식의 구성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틀’이 상징하는 시간은 바로 인생의 최절정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갱이란 것이다. 아마 찬란한 이십 대를 다 떠나보낸 이들이 들으면, 분개할지도 모르는 이십대 청춘예찬을 들으면서 저절로 ‘난 시절에 뭘 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시절에 책도 읽지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는 대신 죽도록 술을 먹었었다.

한 때 대문학(大文學)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우던 은은 예의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환영의 소녀’를 만난 뒤 은밀하게 꿈과 현실이 뒤섞인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노트에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암시하는 글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과 괴리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반발하게 되면서 은의 삶의 수레바퀴는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보수진영의 총아로 촉망받던 교수 출신 작은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창 태동하던 뉴 라이트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그리고 거북(拒北)선생을 만나 자신의 정신적 혹은 성적 멘토로 삼으면서, 걸출한 우파 청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은과는 달리 스무 살 정도 더 먹은 연상녀와 황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금의 캐릭터에서는 기대했던 극적인 변신 대신 21세기 평범한 대학생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는 반고경과 갖는 ‘헐떡임’이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닌 반복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지옥이었다. 문득 김소진 작가의 어느 책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지옥”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마 ‘아름다운 지옥’이 존재한다면 금이 빠져 있던 그 허무의 바다였으리라.

개인적으로 <구월의 이틀>에서 장정일 작가가 구사하는 뉴턴역학적인 동시성(simultaneity)을 바탕으로 한 시간적 구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금과 은이 같은 시간대에서 각기 다른 무언가 - 예를 들어 황음의 세계에 빠진 금의 열락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환영의 소녀를 찾아 헤매는 은의 방황 - 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설적이게도 그 행동들은 나중에 서로에게 상대적 파문을 일으킨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장정일 작가가 서술한 다양한 인간 삶의 또 다른 층위들에 대한 묘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읽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겠지만, 나는 작가가 의도했다는 “우파청년 탄생기”라는 관점보다 꿈을 잃어버린 채 학문의 상아탑인지 아니면 취업소개소인지 모르게 되어 버린 대학에 갇혀 청춘을 저당 잡힌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한 장정일 작가의 일갈로 <구월의 이틀>을 받아들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에 와 닿은 문구는 바로 ‘나한테 절실한 책을 읽어라’는 작가의 선언이었다. 아마 책 좀 읽는다는 책쟁이들이라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수 있으리라. 오래전 빙하시대를 불태워 버릴 기세를 가진 열정을 품고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참, 작가가 후기에서 <구월의 이틀>의 속편에 대해 완벽한 구상을 해두었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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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
박재은 지음 / 낭만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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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 년에 처음으로 파리를 찾았을 때의 감동이 여전히 추억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유럽행을 꿈꾸곤 했었다. 첫 유럽행에서 나의 목적지는 딱 두 곳이었다. 파리와 로마. 사실 파리보다도 로마를 더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로마보다는 파리가 더 좋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한 번 더 파리에 가볼 수가 있었다. 영원의 도시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2009년 가을에 책을 통해 만난 파리도 역시나 코를 찌르는 장밋빛 향기를 한가득 품고 있었다.

글쓰는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박재은 씨의 <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를 받는 순간 그전에 읽고 있던 책들을 모두 놔 버리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제목에 들어가 있는 “편지”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박재은 씨의 글은 그렇게 부담 없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파리를 다룬 책을 많이 읽었는데 어느 소설가가 쓴 글이나 혹은 전직 개그작가의 글보다도 더 공감이 갔다. 




모두가 파리에서 낭만을 꿈꾸지만, 파리에서 이십 대를 보낸 글쓴이의 눈에는 파리가 낭만보다는 외로움을 품은 도시라는 말이 왜 이렇게 공감이 가던지. 살이가 아는 철저한 타인이자 이방인으로서 파리를 찾는 이들에게 파리는 쉽사리 자신의 마음을 내주지 않는 모양이다. 파리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허술한 물건들을 파는 벼룩시장, 백화점이라는 쇼핑공간이 생기기 전 부유한 부르주아들의 쇼핑공간이었던 파사주, 크레페 골목에 대한 소개에 점점 마음이 푸근해졌다.

책에 실린 사진작가 임우석 씨의 사진에는 글쓴이 박재은 씨의 모습이 아주 조금씩 들어 있다. 그녀의 모습을 찾는 것은 마치 파리 북역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부대끼는 가운데 ‘월리’를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모름지기 책에는 이런 즐거움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또 한 가지 사진을 보면서 느끼게 된 즐거움은, 포토그래퍼의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어떤 이들은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대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렌즈에 대한 확실한 의식을 보여준다. 작은 재미였지만, 참으로 즐겁고 유쾌한 체험이었다. 





<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에서 정말 좋았던 것은 파리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으니 한 번 체험해 보길 바란다는 식의 교훈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내가 그전에 여길 가봤었는데 좋더라, 시간 여유가 되면 한 번 가보길 권한다는 청유형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녀의 청유대로 그곳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물론, 두 번의 파리 여행에서 가봤던 곳에서 ‘아, 나도 거길 가봤지!’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곳으로 대통령궁에 빵을 납품하기로 유명하다는 <포숑>이 그랬다.

미처 책 날개에 실린 그녀의 직업이 요리사라는 것을 모른 채 책을 읽기 시작해서, 그녀가 무엇을 하는, 혹은 했던 사람일까? 미술에는 문외한이라고 하던데... 역시 요리사라는 자신의 직업답게 레스토랑의 소개, 음식과 요리 이야기에서 그녀는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보너스로 요령 있게 슬쩍슬쩍 자신의 연애사를 끼워 넣기도 한다. 지은이는 자도르 향수에서 카르멘 키스를 떠올리지만, 한때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던 나는 샤를리즈 테론의 고혹적인 자태를 떠올린다. 





개인적으로 <어느날, 파리에서 편지가 왔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두 개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음의 두 에피소드를 꼽고 싶다. 하나는, 베르시 지구에서 보드를 타며 즐기는 아이들이 무한한 자유를 즐기면서 동시에 강제하지 않은 무언의 질서와 규율을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의 슈퍼스타 쉐프들이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과거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고 새로운 맛을 창조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파리행에서도 역시나 먹어 보지 못했던 부르고뉴산 달팽이 요리와 개구리 뒷다리 요리를 먹기 위해서라도.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먹는 게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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