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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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만난 폴 오스터의 책이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램프의 요정 중고샵을 통해 폴 오스터의 책들이 직접 판매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어지간한 책 한 권 값에 폴 오스터의 책 세 권을 살 기회여서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그때 산 책이 바로 <브루클린 풍자극>, <빵굽는 타자기> 그리고 <뉴욕 3부작>이었다. 이 세 권 중에서 지인의 추천으로 <브루클린 풍자극>을 가장 먼저 읽게 됐다.

소설의 배경은 뉴욕의 5개 보로(borough) 중의 하나라는 브루클린으로, 뉴욕이면서 동시에 뉴욕이 아닌 곳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보니 오래전 어느 추운 겨울날,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떠올리며 선배형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 다리를 건너갔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갔던 브루클린을 무대로 한 소설이라고 하니 더 정감이 갔다.

우리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바로 폐암으로 조기 은퇴한 전직 보험설계사로 죽은 자리를 찾아 브루클린으로 흘러들어온 네이선 글래스다. 그리고 브루클린에서 우연히 재회한 자신의 조카 톰 우드는 시카고 앤아버에서 문학박사를 꿈꾸다, 뉴욕의 택시기사로 추락한 인물로 동네 사는 유부녀를 짝사랑한다. 톰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오로라는 전직 포르노배우로 인간이 얼마나 방탕하고 타락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전범을 보여준다. 해리 브라이트먼(둥켈)은 톰이 일하는 헌책방 주인으로 한 때 재벌 상속녀와 결혼해서 잘 나가던 갤러리 오너로, 죽은 화가의 위작을 팔아먹다가 결국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렇게 브루클린에 사는 다양한 캐릭터만으로도 무언가 재밌는 이야기가 펼쳐지리라는 예감이 들지 않는가?

작가 폴 오스터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해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과거사를 들추어냄으로써 독자에게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게 흠뻑 빠지게 한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작가가 구상한 틀에 맞게 다양한 사건과 이야깃거리들을 물어온다. 무슨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아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예를 들어 주인공 네이선은 자신이 즐겨 찾는 식당에서 일하는 유부녀 웨이트리스 마리나 훔쳐보기를 즐긴다. 네이선의 호의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뻔하지 않은가? 오지랖 넓은 네이선은 조카 톰이 짝사랑하는 BPM(Beautiful Perfect Mother)에게 직접 말을 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 참, 그리고 네이선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하여>라는 무척이나 자전적인 글을 쓰기도 한다. 이점은 아마 브루클린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폴 오스터 자신을 모델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브루클린 풍자극>은 로리(오로라)의 딸인 루시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위기로 치닫는다. 그 존재조차도 몰랐던 루시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네이선과 톰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잠자고 있던 가족애를 자극한다. 이어지는 전형적 미국 스타일의 짧은 로드무비 스타일 에피소드, 해리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로리의 구출 잔잔한 호숫가를 걷다가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그런 극적인 점층적인 구조가 ‘씩’하는 미소와 함께 자태를 드러내는 느낌이다.

미국의 파편화한 가정에 대한 묘사는 참 인상적이었다. 자유연애주의와 높은 이혼율이 만연해 있는 나라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가족의 중요성은 그 어느 가치보다도 우선시 되고 있다. 역시 연장자로서 주인공 네이선은 가족들의 갈등을 봉합하고 조정하는, 다시 말해서 부서진 곳은 수리하고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그런 역할을 스스로 맡게 된다.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문학박사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가 되는 꿈을 가진 조카를 격려하고,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조카 손녀에게 옷가지와 운동화를 사주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의 모습이야말로 작가가 원하는 이상적인 미국인의 모습이 아닐까.

사실 이미 굳어져 버린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는 폴 오스터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삶의 경륜이 느껴지는 작가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몰려 사는 인종의 도가니탕 브루클린에서 (어쩌면 가족 간의) 사랑과 희망이야말로 삶의 원칙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하게 읊조린다. 저명한 작가와의 첫 만남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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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치타가 달려간다 - 2009 제3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0
박선희 지음 / 비룡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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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 책을 즐겨 읽는다. 특히 비룡소 출판사에서 블루픽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출간되는 책들은 재미가 있다. 나이 먹고 애들이 보는 책을 보느냐고 할진 모르겠지만, 재밌는걸 어쩌란 말이냐. 지난번에 읽었던 같은 출판사의 <닌자걸스>도 개인적으로 공명이 컸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십대들과는 거리가 있는 40대 중년 작가가 쓰는 십대들의 이야기가 어떨지 읽기 전부터 많이 궁금했다. 그런 나의 기우는 책을 읽으면서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박선희 작가가 어떻게 해서 십대들의 내면세계에 정통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의 스토리라인은 간단하다.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보통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불량 청소년의 범주에 들어갈 주강호와 그의 소싯적(?) 친구 범생이 이도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물론 그 외에 강호가 일하는 주유소의 동료인 효진, 건우 그리고 아미가 나오고 강호의 동생으로 오빠의 탈선을 저지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은 강이도 나온다. 소설의 곳곳에서 좀 도식적인 설정이 눈에 띄는데, 강호의 가정문제가 그렇게 느껴졌다.

반면, 강호의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윤은 외고에 다니다가 강호가 다니는 일반 인문계 학교로 전학 온 범생이 클래스다. 그 둘은 초딩 시절 절친이었으나, 6학년 때 도윤네 집에 놀러 갔던 강호는 도윤 엄마의 ‘부류’ 발언으로 깊은 상처를 입는다. 강호의 거부와 이어지는 왕따로 도윤은 십대 청춘을 엄마에게 저당 잡힌 채 오로지 엘리트가 되긴 위한 과외와 학원수강에 매진 중이다.

강호와 도윤의 갈등이라는 중심축을 바탕으로 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학교와 집을 우습게 여기는 강호에게 유일한 멘토로 추앙받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김세욱 선생님이다. 김쌤은 강호가 좋아하는 일렉 기타의 길을 들어서게 해주고, 심지어는 밴드부를 만들겠다는 강호와 이경 그리고 도윤까지 가세한 일당의 수호천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라는 기존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청춘들의 고군분투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짧은 소설 안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해 자식들을 닦달하는 부모들의 욕심이 사교육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내고,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낙오자가 양산되는 악순환은 왜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학교와 가정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주유소나 홍대 부근의 클럽에 둥지를 틀고 앉아, 일탈을 꿈꾼다. 박선희 작가는 홍대를 십대 아이들의 잠정적인 해방구로 제시해 주었지만, 일단의 예술가들이 개척한 대학로나 홍대입구가 이제는 그들의 해방구가 아닌 소비지구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현실을 모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유소 사장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들은 최저임금보다도 못한 급여로 자신의 자식 같은 미성년자들을 착취하고, 주유소를 들락거리는 손님들은 종업원들을 희롱한다. 학교의 기관장은 학생들의 원하는 바가 아닌 그들의 부모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런 와중에서 삶의 목적도 없이, 그리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이들의 대결 구도는 청소년 문학의 “클리셰”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걸 어쩌란 말인가.

책 제목을 보면서 궁금했던 ‘도대체 파랑 치타는 뭘까?‘하는 나의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주인공 강호가 애지중지하는 엑시스 오토바이의 애칭이자, 그가 나중에 결성하게 되는 밴드의 이름이었다. 아쉬운 점은,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를 읽으면서 자꾸만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안도현 작가의 <짜장면>이 떠올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반항과 일탈의 출구는 오로지 폭주 밖에 없는 걸까 하고 말이다. 다 읽고 나서도 반향이 참 큰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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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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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한 심리를 한 가지 가지고 있다. 책을 그렇게 읽어 대면서도 이상하게도, 베스트셀러라는 딱지가 붙은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작년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나왔을 때부터, 이미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녔지만, 이 책은 항상 나의 관심 밖이었다. 물론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지난봄엔가 리뷰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사무실 동료에게 책을 빌려 두고서 지난 6개월 동안 읽지도 않았었다. 뭐 그동안 읽을 책들은 항상 차고 넘쳤으니까.
 
그러다가 지난 주말을 이용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채 1년도 안된 사이에 백만 부나 팔렸다는 책의 힘을 정말 대단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읽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의 쇄는 5번째였는데, 어제 들른 교보문고에서 집어든 책은 무려 94쇄였다. 그야말로 초강력 슈퍼울트라 베스트셀러의 위력을 직접 느낄 수가 있었다. 그냥 엉뚱하게 든 생각인데, 무조건 많이 팔렸다고 해서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동안 워낙에 언론이나 수많은 리뷰들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엄마를 부탁해>의 줄거리를 들어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대강의 얼개가 그려졌다. 이 세상에 엄마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그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나 물처럼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고마워할 줄은 모르는 배반 심리가 엄마에게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책은 그런 엄마가 자식들과 함께 아버지 생일을 지내기 위해 서울역에 상경했다가 실종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실종됐다고! 이 놀라운 소식에 모든 가족이 엄마를 찾아 나서지만,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 가족 개개인이 미처 모르고 있던 엄마에 대한 추억의 그림자 가운데서 미처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하나씩 발굴해낸다. 작가인 큰딸, 엄마가 자식들 가운데서 가장 사랑한 큰아들(내 이름과 똑같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애증의 관계로 얽힌 지아비인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 경험담인지 아니면 정말 순수한 창작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가운데 소설은 어느 순간, 실종된 어머니의 음성을 통해 판타지의 경계마저 아우른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장미 묵주>편은 사족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재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로마 바티칸의 피에타상에 접목시키는 작가의 노력이 왜 이렇게 생소하게 다가오던지.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입맛이 써졌다.
 
십 전 IMF 위기 이후, 우리들의 삶이 가장 힘들었다는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엄마를 부탁해>는 참 시류를 잘 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본성이 항상 그렇듯이, 자신들이 잘 나갈 적에는 자신들의 울타리에 대해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 아닌가. 위기가 닥치고, 다시 일어서야 할 힘이 필요할 때 어김없이 찾게 되는 게 바로 가족 아니었던가 말이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자신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화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고백을 통해, 가족에 대한 그리고 엄마에 대해 변명을 하고 싶은 독자들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킨다. 도대체 엄마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 앞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변명이 통하겠는가.
 
<엄마를 부탁해>의 정가는 만원이다. 그 만원이 백만 개가 모이면 백억이다. 신경숙 작가가 인세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끝을 모르는 출판계의 불황 가운데 이 책의 출간을 맡은 창비로서는 정말 효자 같은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신경숙 작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공지영 작가는 좀 배가 아프지 않을까 싶다. 규모(백만 부 판매)와 기록(최단기단 백만 부 판매 달성), 두 마리의 토끼 모두 이번 승부에서는 밀렸으니 말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작품 중에서 작가의 서술처럼 끝까지 타자의 시선을 고수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 자라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의 특히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산다. 그러니 엄마를 보듬고 사랑하라, 잊은 채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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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합 이원수 2009-12-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엄마를 부탁해.. 라는 책은 우리들에게는 청량음료같은 갈증을 해소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출판업에서는 불황을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 라는 우려의 말도 있을만큼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때 엄마를 부탁해~ 라는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아마 영화계에서도 기획을 하지 않나 싶다. 목말라 하고 있으때 좋은책이라 아니할수 없다.
감사를 드린다.
 
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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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5번째 소설집인 <위험한 독서>에 대한 북글을 쓰기에 앞서,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봤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란? 나에게 독서란 삶의 순간순간들이다. 퇴근 길 전철에서도, 건널목에서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는 그 순간마저도, 막 잠이 오기 전 눈꺼풀이 수마(睡魔)와 사투를 벌이는 순간들에도 나는 항상 책과 함께 하고 있었다. <위험한 독서>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서영채 씨는, 김경욱 작가를 소설기계라고 했는데 그에 비한다면 아마 난 독서기계쯤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참 색다른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김경욱 작가와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8개의 단편 중에서 달랑 두 개만을 읽은 상태에서 급만남을 가지게 돼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반면 마치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독서의 가능성을 그리듯 사전에 <위험한 독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해서 매우 독특한 독서를 경험할 수가 있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 촬영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위험한 독서> 첫 번째 단편으로 나오는 동명의 제목으로 설정 극도 해봤다. 그땐, 이게 뭐지 했었는데 나중에 시간을 내서 나머지 부분들을 읽으면서 아하 그게 그런 거였구나가 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역시 개인적 경험만큼 책을 읽는 삶 가운데서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본격적인 북글을 펼쳐 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집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장편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해서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단박에 잡은 것은 바로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던져진 화두인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라는 이슈에서 시작되어, 미국식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뛰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다. 맥드널드화 돼서 일하는 가운데 어느 날, 암호 같은 ‘불온’문서가 등장하면서 그녀가 일하는 맥도널드 매장은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된다.
 
김경욱 작가의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말맞추기 게임의 향연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다음, 그 격문의 주인공은 바로 제3세계해방전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테러에 대비한 초긴장 상태에서의 살인적 업무는 개개인 고유의 아우라 대신에 맥드널드화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세계화의 잔상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대량소비 대량생산의 시대에, 우리 먹거리 역시 붕어빵 틀에서 찍혀져 나오는 붕어빵들처럼 규격화된 제품의 형태로 제한된 시간 내에 우리의 입에서 씹히고,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삶의 모든 면면이 재단되고 있다는 현실에 입맛이 씁쓰름해졌다.
 
독서치료사라는 이색 직업을 가진 화자와 그에게 치료를 받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모노톤으로 펼쳐지는 <위험한 독서>에서는 무언가 가슴과 머리를 공명시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가 분류하는 인간 군은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참 세상을 간단하게 보는구나 싶었다. 아, 그의 직업이 뭐라고 했던가, 독서치료사? 독서치료사는 ‘책으로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사람’(12쪽)이란다.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우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그는 독서카드를 작성한다. 그 독서카드라는 몇 개의 문자들의 나열을 통해 얻은 정보로, 그는 환자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고, 환자를 읽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화자인 독서치료사에게,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텍스트인 셈이다. 그는 그들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를 읽기 시작한다. 서른두 살의 상담여성은 칠 년 동안 남자친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이어트로 자신감을 재확인한 다음,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개인 홈페이지에 담아내면서 ‘밥벌레’에서 멋진 나비로 변해서 정해진 절차대로 독서치료사의 곁을 훌쩍 떠나 버린다. 반면, 독서치료사는 자신이 읽고 있던 텍스트에 감정이입을 시키게 되고, 그녀의 떠난 자리에서 어리둥절해한다.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빈자리를 공허함이 대신한다.
 
한 때 대한민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연상시키는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에서는, 자궁을 대여해서 대리모로 불임 부부들에게 아기를 대신 낳아주겠다는 어느 사나이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조건상, 그들은 가난하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한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궁 대여에 나서는 아내. 사나이의 사회경제적 무능력은 아내를 제어할 수가 없다. 습한 지하에 사는 그들의 곁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달팽이,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달팽이의 존재가 사나이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하다.
 
결국, 아이를 원하는 불임부부들과 계약서를 쓰고, 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아무 일 없이 그들의 프로젝트가 수행되어 가던 어느 날, 사나이는 아내로부터 임신하긴 했지만,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와중에 사나이는 우연히 달팽이를 집어삼키고, 그들의 삶이 아내의 대리모 계획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을 애꿎은 달팽이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아내는 날이 갈수록 인간 인큐베이터에서 어머니로 진화되어 간다. 화장실에서 서로 뒤엉겨 있는 두 마리의 달팽이들을 발견한 사나이는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 하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경욱 작가는 대학교 때 우연하게 글을 쓰게 되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분이어서 그런지 글을 쓸 적에 가장 즐겁고 평안하다고도 했다. 억지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바로 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는 많은 독서경험을 통해 체험한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라도 소설가는 자신의 촉수를 예민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가.
 
<위험한 독서>에서는 책을 읽는 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가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했다고 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마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작가의 예리함이 폐부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새로운 장편소설 구상 중이라는 김경욱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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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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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 모임에선가 시간이 되면 7번국도를 따라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그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김연수 작가에 대란 토론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몇 권의 김연수 작가의 책을 빌렸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관심을 두고서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은 절판돼서 구할 수 없다는 <7번국도>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절판 본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바로 도서관 검색창을 뒤져 보니, 다행스럽게도 <7번국도>의 존재가 확인됐다. 말이 필요 없었다, 바로 달려가서 대출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라니, 선영아> 저자 서문인가에서 1997년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독자특별판 소설로 이 <7번국도>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읽은 듯한 기억이 났다.

다 읽고 나서 휘발해 버린 기억들을 뒤적이며, 인터넷으로 실재하는 7번국도를 검색해 보니 부산에서 출발해서 함경북도까지 가는 장장 500km가 넘는 도로라고 한다. 나중에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책의 초반부에서 아주 친절하게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역시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를 적에는 매뉴얼을 볼지어다.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인 재현과 ‘내’가 말린 바다생물과 맥주를 마시면서 7번국도를 누비는 자전거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왠지 모르게, 그냥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 둘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매개이자 어쩌면 갈등의 원인일 수도 있는 세희라는 2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재현의 트라우마로 작동하는 옛 연인 서연이 불쑥불쑥 등장을 한다.

아, 그리고 보니 그 둘의 인연의 시작에는 비틀즈의 가공의 음반 <Route 7>이란 음반이 개입하기도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들을 사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김연수 작가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보니 이 책이 쓰인 시기가 지난 천 년이었던가? 세기말도 아닌 지나간 밀레니엄의 막판에 막 등단한 젊은 작가의 옛 글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의 만연체 스타일의 글이 잘 맞지 않아서 그의 작품들을 전작주의로 해서 다 읽어볼 계획은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혹은 읽다가 집어치운 책들을 비교해 볼 적에 역시 초기의 작품군과 최근의 그것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7번국도>에서는 세기말 증후군처럼 자신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니힐리즘의 그림자가 보였다고나 할까. 관계에서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적 탐닉과 유희에 대한 묘사는 근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책의 말미에 보니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서 난 왜 주인공들이 무슨 이유로 ‘7번국도’에 갔는지 모르겠다. 어느 역무원이 기록한 7번국도에서 죽은 이들을 기록한 리스트가 주는 존재의 소멸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재현과 “나”가 과연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얻은 희망이 무언지 대해서도, 국기에 단풍잎이 그려진 나라로 훌쩍 날아가 버린 서연도 또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 세희에게서도 도무지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조차도 모두 세기말적 증후군이라고 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은 느낌은 방부된 시간마저도 저 멀리 보이는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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