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EBS 세계테마기행 1
이상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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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기 전에 소개된 이상은이라는 작가가 처음에는 여행 전문 에세이 작가인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펴보니, 예전에 <담다디>로 일세를 풍미했던 가수가 아니던가. <담다디> 이후에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EBS 여행 프로그램의 호스티스로 태양의 나라(이제 하도 많이 써먹어서 진부해져 버린) 스페인을 찾았다. 원래 자신의 몫으로 떨어진 나라는 아프리카의 말리였다고 하는데, 책 말미에 슬쩍 보니 말리에는 입걸은 배우 최종원 씨가 갔다고 한다.

가수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상은은 절친 “찐빵”이라는 동행과 두 명의 PD(아마 카메라맨도 겸했을)와 함께 14시간의 비행 끝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느리면서 쉬는 듯한 여행을 지향하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이상은에게 아마 EBS의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하는 여행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일이 되는 순간 생기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란…….

짧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안달루시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이자 매년 4월이면 열린다는 페리아 데 아브릴(4월의 축제)의 도시 세비야를 찾는다. 태양, 춤 그리고 꽃의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다는 페리아 데 아브릴에는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화려한 옷들을 입고 벌이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아쉽게도 사진으로만 보이는 원색의 물방울무늬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프릴이 들어간 화려한 의상들의 여인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드신 할머니도 그리고 젊은 아가씨들도 하나가 되어, ‘카세타’(축제용 천막)에서 먹고 마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나도 마치 그 태양의 나라에 가 있는 것만 환상에 빠지게 된다.

다음으로 스페인하면 빼놓을 수 없는 투우에 대한 취재를 위해 투우에 쓰이는 소를 기른다는 미우라 농장으로 향한다. 작가는 투우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지만,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인의 투우 문화는 누구나 한 번 쯤은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짧은 투우 관람을 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세비야 관광이 시작된다. 12세기까지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던 탓에 스페인의 오래된 남부 도시들은 예외 없이 이슬람 문화의 곳곳에 스며있는가 보다. 그 세비야를 내리 쬐이는 태양이 너무나 부러웠다.

다음은 이상은과 친구 찐빵의 자유여행이었던 바르셀로나가 소개된다. 스페인이면서도 스페인스럽지 않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의 지방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주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그네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그들은 서울의 대학로 같다는 람블라스를 독자들에게 소개해 준다. 열대에서나 볼 수 있는 야자수에 노천카페 그리고 아기자기한 상점가들과 갖가지 갤러리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다가 어느 카페에서 타파스 요리에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초짜 여행자들의 면면을 자랑하는 그들.

다음 코스는 바르셀로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우디가 설계하고 여전히 만들고 있다는 사그리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다. 그의 손길이 담겨져 있는 구엘 공원과 더불어 바르셀로나를 찾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찾아봐야 하는 명소 중의 명소란다. 실제로 보지 않고, 실물을 본 이들의 말만 듣고서 그 웅장한 자태를 상상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물론 사진도 같이 게재가 되어 있었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우디를 만나기 위해서.

세 번째 장에서는, 자신들의 스페인 일정을 되짚어 가는 과정을 밟는다. 맨 끝에 실린 지도를 살펴보니 거의 스페인 전국을 도는 일주처럼 보였다. 마드리드에서 출발을 해서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알리칸테, 발렌시아 그리고 톨레도에 이르는 긴 코스가 점선 몇 개로 그려져 있었다. 기타 연주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40년 동안 수제로만 기타를 만든다는 빠코 아저씨, 해발 1482m로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트레벨레스에서 만들어낸다는 돼지 뒷다리 햄(?) 하몽, 그리고 집시들의 동굴에 이르기까지 시각과 후각을 비롯해서 미각을 자극으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을 무엇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사진들이다. 아마 이상은의 친구라는 찐빵이 찍었을 것으로 사료되는 사진들은 참 감이 좋다. 평범한 스페인의 일상을 담아내면서도, 무언가 느낌이 있는 사진들. 우리네 일상도 가만 보면 그런 것들일진대 왜 그런 사진이 나오지 않는걸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일상의 일탈이 주는 여유라고 해야 할까? 여성의 시선으로(아, 찐빵이 과연 여자이길!) 담아내는 시선은 확실히 남자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평화의 땅일진 모르겠지만 스페인의 역사가 그리 평화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492년 컬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그전에 이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그리고 그 훨씬 전에 바이킹들이 발견했다고 하는데 과연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은 그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학살과 대박해 결과 얻은 부로 이루어진 것이며, 중세의 가장 혹독했던 종교재판과 화형들이 횡행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는 역사의식의 부재가 아쉬웠다. 게다가 지난 세기 베트남전과 더불어 인류의 양심에 지우지 못할 한 줄기 상처였던 스페인 내전의 기억들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에서는 발렌시아산 오렌지를 닮은 태양만이 빛나고 있었다.

어쨌든,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은 나로 하여금 스페인에 대한 동경심을 품게 해주었다. 미래의 어느 날, 스페인 모처에 있는 바르(마을회관이자 주막)에서 타파스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그렇게 느릿느릿 굴러가는 카이로스(의미 있는 시간, 크로노스의 상대적인 개념)의 시간 속에서 스며들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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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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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가정에서 기르는 골든 레트리버가 이웃집 아이를 물어 죽였다. 물론 그 아이가 이웃집까지 넘어 가서 그 개를 괴롭히다가 개주인에게 과실 책임이 돌아가진 않지만 그래도 도의상의 책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개주인은 그 개를 보호하기 위해,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이사도 생각하고 있다. 결국 개주인은 개를 데리고 가출을 하게 된다. 이게 이 책 <도피행>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이야기지만, 한 꺼풀 벗겨 내고 이야기의 본질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그리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걸 바로 알게 된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다에코상, 그리고 그 골든 레트리버의 이름은 포포. 다에코상은 평범한 주부로 두 딸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매우 평범해 보이는 전형적인 일본 중산층의 주부이다.

하지만 이 다에코상의 평화스러워 보이는 가정에는 아주 심각한 의사소통의 부재가 내재되어 있다. 딸들은 포포에 대한 어머니 다에코상의 집착을 갱년기 장애로 치부해 버리고, 남편은 노후 대책을 위해 나고야에 집을 사면서도 일절 다에코상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는다. 게다가 다에코상은 일전에 자궁 근종 수술까지 받아 건강한 몸도 아니다.

뭐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아주 작은 불꽃 하나만으로도 폭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뇌관을 바로 그 집에서 기르는 못난이 골든 레트리버 포포가 촉발시켜 버렸다. 이 기가 막힌 스토리를 가만 놔둘 리 없는 매스컴의 집요한 추적과 이웃들의 냉정한 시선을 이기지 못한 다에코상과 포포는 가출을 감행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빈손으로 나선 건 아니고, 2000만엔이 든 남편의 통장과 인감도장을 들고서 말이다. 어딜 가더라도 돈이 필요하다는 건 기본 아닌가 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중년의 다에코상과 노견 포포의 예측불허의 모험담이 펼쳐진다. 몰래 남의 차를 훔쳐 타며 시작된 그들의 도피행은 히치하이킹과 어느 시골집에 세를 들었다가 추격을 당하고 다시 정착하는 과정이 반복이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가족을 위해 희생한 다에코상의 무력한 모습들이 하나하나 들어난다. 근 30년간을 가정을 위해 봉사해 왔건만, 자신의 딸들은 자신의 이야기는커녕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원래 사냥견을 길들여서 교배한 종인 골든 레트리버인 포포는 야생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먹을 것을 사냥으로 해결하게 되면서 점점 야성화 되어 간다. 동시에 진행되는 포포의 노화는 다에코상을 절망으로 몰고 간다.

소설 <도피행>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슬픈 비가의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장인 가족에서 철저하게 남편과 자식에게 소외당한 어머니인 여성은 평안과 안정을 버리고, 대신에 위험천만한 모험 길에 나선다. 그것도 사람도 아닌 애견과 함께 말이다. 여기서 포포의 존재는 다에코상에게 가족의 존재 이상으로 비약된다.

결말은 도피행의 진행과 과정에서 주는 기대감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탈적인 다에코상의 도피행이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의 삶 속으로 어이 없이 스러져 버리면서 뭐랄까 맥이 빠져 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일상의 일어날 법한 일과 상상의 조화라는 경계의 줄타기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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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일러스트 연습장] 서평단 알림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일러스트 연습장 - 연필 하나만 있으면 상상하던 그림을 그대로 그릴 수 있다!
유모토 사치코 지음, 류현정 옮김 / 한빛미디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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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컴퓨터 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필기와 실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사실 3D는 그전에 해봐서 그런대로 따라갈 수가 있었는데, 일러스트의 경우에는 연초에 학원에 몇 달 배운 게 전부라 실기시험을 합격했지만, 필기에서 번번이 미역국을 먹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일러스트 연습장>이라는 책과 만나게 됐다.

사실 그렇게 분량이 많지 않아서 일단 읽는데는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핵심은 그렇게 훌렁 읽는데 있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설명과 예제로 일러스트의 근간을 잡아 주면서 바로 옆에 TRY 라는 연습할 수 있는 공란이 있다 이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직접 해보지 않아서 어떻다고 말할 수가 없다. 서평을 마치는 대로 한 두어 장쯤 그려볼 생각이다.

일본 출신의 유모토 사치코 짱이 쓴 “연필 하나로” 시리즈가 제법 유명한 모양이다. 이 책 말고도, 비슷한 제목의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스케치 연습장>란 책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첫 번째 장인 다양하게 표현하기에서는 일러스트의 기본이 되는 부분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도형들이 만나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사람의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아, 참 그전에 그림에 필요한 도구들 설명이 있었지!

다음으로 그림의 기초 기법들에 대한 설명들이 아주 친절하게 이어진다. 특히 인체의 구조와 관절의 기능들에 대한 설명들은 압권이었다. 사실 그전에 3D를 배우면서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관찰이 부족해서 그랬는진 몰라도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이상했었다. 자고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많은 관찰을 해야 할 것이다.

기초 기법에서 소개된 원근법은 마침 회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직접경험의 장을 제공해 주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인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에서 읽었던 ‘그림’들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빛과 그림자 편에서는 농담과 콘트라스트에 대한 실전 예제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확실히 실전과 이론의 차이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짧은 분량이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결코 짧지 않은 알찬 내용들과 진짜로 한 번 그려 보고 싶다는 욕구를 마구 진작시켜주는 <연필 하나로 시작하는 일러스트 연습장>이었다. 바로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

* 책을 읽고 나서, 연습란에 있는 그림을 제가 직접 그려본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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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獨 GO DIE - 이기호 한 뼘 에세이
이기호 지음, 강지만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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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몰입에 빠지게 하는 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오늘 읽은 이기호 작가의 <독고다이>는 바로 무척이나 좋은 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기호 작가가 예전에 한국일보에 연재하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이 탄생했다고 한다. 왜 진작에 이런 보석 같은 글들을 그리고 그 글을 창조해낸 이를 몰라 봤을까. 이미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최순덕 성령충만기>라는 제목에 뻑이 가서 허겁지겁 구매를 해서 읽고 있었다. 그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독고다이>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

소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칼럼이라 그런지 왜 이렇게 절절하게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많던지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그리고 집에 와서 끼니도 거른 채 그렇게 간만에 집중적인 독서를 할 수가 있었다. 아, 그 사이에 <피스트>라는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았던가. 이기호 작가의 글들을 보면서, 아주 아주 오래 전에 한참 동안 빠져 있던 국내최대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이모 작가의 칼럼이 떠올랐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여기저기서 짜집기를 하고, 심지어는 다른 이들의 글을 도용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예 관심을 꺼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소설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사는 그야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스럽게 재밌다는거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작가가 수입이 꽤 쏠쏠한 통장의 꿈을 꿔보지만 통장의 조건 중의 하나가 철저한 안보의식이라는 문구에서 바로 포기해 버리고, 술 마시고 찾은 편의점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자신의 제자를 만나 데면데면해 하고, 결혼식 날 뷔페에 가서 푸짐하게 널려진 먹거리들 앞에서 고민을 하는 모습들은 우리네 누구나의 모습을 대입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 동질성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는 현대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의 기능 앞에서 기계적인 길잡이가 오히려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영혼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고 지적을 하고(작가의 뜻에서 벗어난 지나친 비약일까?), 자본주의 세계의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조차 철저하게 상품화시켜 버리고야 마는 신자유주의판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깨달으라고 독자들에게 조용히 외치고 있다. 또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조상의 음복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말하고, 또 죽음을 이야기하는(그래서 책 제목에 DIE가 들어가 있나 보다) 작가의 모습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체취가 묻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어디 유머가 부족한가? 어느 촌으로 여행을 떠난 작가의 3시간짜리 담배심부름 이야기, 외국인을 연상시키는 외모 때문에 불심검문을 하고자 하는 의경으로부터 아 유 코리언이라는 말을 듣질 않나, 지랄탄에 대해 묻고 지들끼리 최루탄 라면에 비교를 하는 신세대 학생들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그야말로 잘 버무린 한 그릇의 양푼비빔밥처럼 풍성하다.

짤막짤막한 한 페이지에 실린 글들에서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학이 담긴 날카로운 비판들을 솎아내는 이기호 작가의 공력에 감탄사를 연발해냈다. 이 재밌는 책을 혼자만 읽는 것은 가히 범죄에 가까운 행위라 하겠다, 주위에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맛깔스러운 내용의 글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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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최병서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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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본 순간, 띠지에 둘러져 있는 “미술사를 움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경제의 힘이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강렬하게 내 마음 속을 파고들었다. 제목 그대로 경제학자 P 씨의 시선을 빌어, 경제학 교수인 최병서 작가가 미술에 문외한인 우리 독자들을 미지의 미술의 세계 속으로 지긋이 인도해 주었다.

최근 정통 미술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다룬 책들이 많이 출간된 것 같다. 이 책 역시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미술 해석에 접근한다. 개인적으로 미술 작품은 사유재(private goods)의 측면보다는 사회적 공공재(public goods)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르주아지가 중심이 된 산업혁명 이래 그 희소한 아우라를 가진 예술 작품들은 예외 없이 하나의 상품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잉여가치를 엄청나게 축적한 이들에겐 인류의 공동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품들이 부의 증식의 수단이라는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을 통해 아쉬운 대로 뛰어난 작가들의 예술품들을 친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 행복해야 할 것 같다.

경제학자 P 씨는 역시 경제학을 전공한 이답게, 모두 해서 20개의 경제학적 원리들을 적용할만한 예술품의 목록들을 정리하고 나름대로의 이론을 덧붙였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입체파 화가로 널리 알려진 피카소와 액션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에 대한 해석이었다. 우선,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피카소가 엉터리 미술이론으로 치장해서, 도대체 그 형태조차 파악할 수 없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미술품들을 우매한 미술애호가들에게 팔아먹어 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제학자 P 씨는 친절하게도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부분균형이론과 일반균형이론으로 나의 고정관념을 타파해 주었다. 기존의 원근법에서 사용되던 단일 시점은 시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불변으로 고정한 부분균형분석(partial equilibrium analysis)과 상응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단일 평면적인 방법을 거부하고, 3차원적 접근방법을 이용해서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회화 법을 개발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장들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일반균형분석(general equilibrium analysis) 기법의 그것이다. 그동안 내내 알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것은 한줄기 깨달음이었다.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 대해서도 경제학자 P 씨는 유사 이래 인류가 해온 수직면에 대해 칠하는 그림이 아닌, 수평면에 ‘뿌리는’ 그리고 사실묘사가 아닌 전혀 새로운 회화기법을 개발해냈다는 점에서 폴록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여기에는 이미 영화나 많은 텍스트들을 통해 알려진 카오스이론과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동원됐다. 그래도 여전히 폴록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테마는 바로 사실주의 회화였다. 19세기 중반 일세를 풍미했던 리얼리즘 사조를 이끌었던 쿠르베-도미에 그리고 밀레는 사실주의 회화들을 통해 산업혁명 이래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모습들을 그려냈다. 특히 현대 만평의 시조로 불리는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들은 예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와서 그런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테마는 바로 결혼이다. 경제학자는 사랑과 결혼마저도 철저하게 경제학적 시선으로 분석할 수 있구나 한다는 점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호가스, 얀 반 에이크 그리고 브뤼겔의 결혼을 주제로 다룬 회화들을 분석하면서 애덤 스미스가 언급한 개인의 이기심이 공리주의로 귀결된다는 개념을 도입하며 설명에 들어간다. 남녀가 결혼하고자 하는 이유도 결국엔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결혼이 주는 ‘효용성’ 때문에 결혼하게 된다고 경제학자 P 씨는 주장한다.

그리고 결혼 전에 자신들이 생각한 효용성이 사전에 예상한 대로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결혼 후의 제 문제들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혼전에 서로에 대한 정보(경제학적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들은 서로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안 좋은 정보들에 대해서는 제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결정에 치명적이라는 거다. 그래서 경제학자 P 씨는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 모의 결혼생활을 제안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 책을 읽으면서 내내 경제학자 P 씨의 말들이 어쩌면 이렇게 현실 생활에 딱딱 들어맞는지 경이의 연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펴자마자 잠자는 것도 잊은 채 계속해서 책장을 넘겼었나 보다. 실제 생활에서 경제학자 P 씨의 경험담에 덧붙여져서, 적절한 곳마다 안성맞춤식의 주제와 적합한 보통 사람들도 바로 응용할 수 있을만한 경제학 원리들의 조합은 책읽기 카타르시스의 정수였다. 경제학자 P 씨가 미술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로도 그 지평을 넓혀 주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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