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부쳐준 올배쌀을 공기에 담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아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리를 흔들리게 할까.’
그날 자정까지 사랑채에선 남매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직하던 음성이 조금 높아지는가 싶으면 누군가 다정하 달래고, 누군가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 누군가가 나직이 달래는 사이, 부엌머리 방에서 까무룩이 잠들 때까지 너는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와 달래는 소리, 낮은 웃음 소리를 점점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