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 책을 아주 쉽게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어떤 책들은 잘 안 읽히는데, 그럴 땐 일단 끝까지 책장을 넘겨보라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참 전 대학생 때, 평소 접할일이 적었던 역사/사회과학 책을 읽을 때 들었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을 읽을 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마도 이 책을 필자만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두 번째 읽으니 좀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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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마르크스는 ‘커먼’이 재건된 사회를 가리켜 ‘어소시에이션 association‘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를 그리면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표현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사용한 용어가 ’어소시에이션‘이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어소시에이션)가 ’커먼‘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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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름들입니다. EBS <위대한 수업>을 다시 봐야겠습니다.

스티글리츠는 더욱 공정한 미래 비전을 ‘올바른 자본주의’라고 하며 기존의 ‘짝퉁 자본주의’와 대치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놓쳤다. 그 가능성이란, 스티글리츠가 동경하는 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황금기’야말로 오히려 예외적인 ‘짝퉁 자본주의’의 시대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글리츠가 규탄하는 현재의 자본주의야말로 실은 ‘진짜 자본주의’인 것이다.
지금이 ‘진짜 자본주의’라는 말은, 스티글리츠가 추구하는 ‘개혁’과 자본주의의 유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그 때문에 그의 ‘개혁’은 결코 실현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개혁을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며 진지하게 주장하는 스티글리츠를 지젝은 진정한 ‘공상주의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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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번스의 역설 - 효율화가 환경 부하를 가중한다

(...) 신기술이 개발되어 효율성이 높아져도, 상품이 그만큼 저렴해지는 바람에 결국은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 신기술 덕에 효율성이 올라가 ‘상대적 디커플링’이 일어나는 듯해도 소비량이 증가하여 효율화 효과가 상쇄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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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 열심히 비닐을 씻고 컵을 씻고 플라스틱을 씻고 드립백에서 커피 가루를 따로 분리하고 커피 가루를 말리고 대나무 칫솔을 쓰고 고체치약을 쓰곤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지속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 시절에는 사무실에서 조시락을 먹을 때 일회용 수저 대신 개인 다회용 젓가락을 사용하다가 심각하게 질문(항의)을 받았습니다. 뭔가 특정인의 심적 불편함을 유발한 것이지요.

회사에서 텀블러를 사용하는 건 가능합니다. 다같이 사용한다면 더 이상 컵을 씻는 행위가 이상하지는 않으니까요.

칫솔과 치약은 아직 못 미칩니다. 좋은 의도로 꽤 여러 개를 사용하고 선물도 했지만 플라스틱 칫솔과 튜브에 들어있는 치약을 대체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익숙함도 품질도 구매의 편의성도. 좋은 마음으로 동참하는 소비자도 굳이 지속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물건을 살 때 굳이 추가 포장은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유난함이(라고 느끼는 행동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제품 자체가 친환경으로 변하는 게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

생분해 플라스틱 포장지는, 몇 년 후에 정말로 부서지는 걸 경험하고나니, 왜 이렇게 친환경에 비호감과 비싸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걷히지 않는 걸까 생각해봅니다.

어쩜 기업에게는 사업의 방향을 바꾸는데 당장의 노력과 시간과 비용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빨리 상용화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룰수록 더 공고하게 입지가 다져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도 세워봅니다.

그때까지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은 다른 많은 연구자들처럼 지구의 한계를 넘지 않는 ‘녹색 성장’을 실현해내면 기온 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억누를 수 있다고 상정하면서 연구를 해왔다. 그렇지만 마침내 기존의 입장을 버리고 자기비판을 했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 또는 ‘기온 상승 1.5도 미만 억제’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조금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경제 성장과 환경 부하의 ‘디커플링 decoupling‘이 현실에서는 극히 어렵다고 록스트룀은 판단했다.

(...)

보통 ’경제 성장‘에 따라 ’환경 부하‘는 증가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연동해서 증대되었던 두 현상을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서로 떼어내는 것이 바로 디커플링이다. 즉, 경제가 성장해도 환경부하가 커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디커플링이란,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 성장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삭감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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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3-23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회용 젓가락”이라는 이름이 여러모로 안 어울린다고 느껴요. 젓가락은 예나 이제나 “오래오래 쓰는 살림”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쓰고 버리는” 젓가락과 물그릇에 길든 눈인 분은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따지게 마련인데, 왜 저희랑 똑같이 안 구느냐고, 유난하게 구느냐고 따질 테지요.

그래서 이때에는 거꾸로 “왜 애먼 젓가락을 오래오래 안 쓰고서 늘 버리고 또 버리셔요?” 하고 물을 만합니다. 이렇게 되묻는 사람이 늘어야, “쓰고 버리기에 길든 분”이 조금이나마 틈을 낼 수 있다고 느껴요. 쓰고 버리기에 길든 사람이 오히려 ‘유난’한 굴레라고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쓰고 버리기”에 길든 터전이라면, 사람도 똑같이 “쓰고 버리기”를 하게 마련이요, “두고두고 살림으로 건사하기”라는 터전이라면, 사람도 마을도 집도 숲도 곱게 돌보는 길로 나아간다고 느낍니다.

petites_proses 2025-03-2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회용 젓가락’과 비교해서 다회용이라고 썼는데, 맞지 않는 표현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일회용도 씻으면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으니 이름과 사용이 꼭 같은 것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