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이미 식어버린 사체는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아니 분명 뭔가를 말하고 있을터인데 읽어낼 수가 없다. 더구나 편안한 주검이 아닐 경우에는 죽음의 진실을 알아내는 일들이 쉽지가 않다. 바로 이런 비밀의 열쇠를 푸는 사람들이 있다. 범죄와 죽음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사건들을 파헤친 법의학 논픽션! 밤을 새워 보느라 눈이 궹할 정도로 열광하고 있는 미드의 CSI나 NCSI를 보다보면 마치 내가 수사관이라도 된양 범죄현장을 눈여겨보면서 열중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살인사건현장에는 반드시 법의학자가 먼저 투입되어 간의 온도를 측정하여 사망시간을 추정하고 대체적인 검안을 마친후에야 수사관들이 투입되는 장면이었다. 범죄현장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쳬가 냉동고로 옮겨지기전의 자연상태가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궁금하던차에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법의학자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진다. 우발적이든 계획된 살인이든 저지른 사람은 감추고 싶을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비밀을 찾아내야하는 과제가 남는다. 피가 흥건하고 훼손된 현장뿐만 아니라 사체를 부검하고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일들은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끔찍하기만 하다.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운 자리에서 일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았던 깔끔하고 과학적인 환경도 아닐뿐더러 체계적으로 훈련된 인원들도 많지 않은듯하다. 하기는 이런 고단한 현장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던 사건의 배경이며 죽음의 진실을 알게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속도로에서 위급상황을 119에 알리고 숨져간 두남자의 죽음은 참으로 궁금했던 차였다. 의학자라는 지식과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너무 가벼이 여겼던 사람들의 최후를 보니 입맛이 썼다. 쾌락을 쫓기위해 마약을 하거나 목을 조르다가 어이없이 숨져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며칠전에도 사랑받던 연예인의 죽음을 접하면서 살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억울하게 숨져간 대구지하철사고의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물로 씻어내렸다는 그 현장에는 사실 주검들의 흔적이 남아있었음에도.. 이제 일반사람들도 ’루미놀’이 무엇인지 아는 세상이 되었다. 범죄도 법의학도 함께 진화하면서 혹시라도 좀 더 지능적인 범죄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검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톱스타 최진실을 사건당일 야간에 부검하면서 모든 사물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만큼은 영혼의 안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의 고뇌가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냉정하고 공정한 법의학자 이전에 그들도 가슴 따뜻한 인간임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일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말했다고 했던가. 911테러로 뉴욕의 쌍동이 빌딩 무역센터가 사라진지 10여년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전세계적인 충격과 아픔을 느낀 사건이었지만 지구는 늘 그래왔듯이 무심하게 커다한 몸뚱이를 돌리고..그렇게 시간들은 지나왔다. 어느날 세계무역센터를 줄로 연결하고 지팡이하나를 의지한 채 줄을 건너는 남자가 있었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실제한 사건이기도 한 이 광경을 보고 이 사건의 주인공인 필리프 프리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엉뚱하게 그사건이 일어나던 시간에 뉴욕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짜여져 전개되리라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이사건을 맡았던 판사가족과 노예자손인 한 여자의 아픔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전해지고, 멀리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순결한 성직자의 뉴욕정착기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에.. 뉴욕의 뒷골목에서 처절하게 살아가는 창녀들의 이야기가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 같다. 평범한 우리는 용감하다 못해 정신나간 한사람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오로지 그사건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저자는 작가로서의 탁월한 작품세계를 펼쳐보여주고 있다. 단지 그장면을 목격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아닌 그때 뉴욕을 살았던 사람들의 어둡고 상처받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런한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도 더듬어 올라가면 지구의 어느곳에서 시작된 생명의 역사가 있었고 운명이었든 선택이었든 그시간 그곳을 스쳤던 바람을 함께했었다. 저마다 한때는 행복했었고 한때는 불행했었던 흔적들을 감춘채..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들도 모른 채 말이다. 이세상 만물이 모두 그러하지 않은가. 지금 이순간 스치는 바람한점, 비한줄기도 내삶의 한흔적이 될수 있는것...하물며 인간의 삶속에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인연이라는 것은 서로에게 큰 흔적으로 남을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심코 지나간 저 사람이 사실 내 운명의 한조각일 수도 있음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나중은 창대함을...창녀의 손녀였지만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 아픔의 장소로 되돌아온 재슬린을 통해 보여주었다. 조상의 시간이 어떠했든 지금의 시간은 내가 만들어 나갈수 있음을, 그래서 희망은 항상 인간을 더 나은곳으로 이끌어준다는..믿음을..보여주었다. '노호하는 바다를 향하여..나는 가노라' 아마 이 메시지가 저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희망일것이다. 아무리 아파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간들도..지구가 무심히 돌듯..그렇게 흘러감을..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함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읽기가 무척 어렵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는 말도 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는 말인데.. 하긴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의 머리싸움을 보면 힘이 있어도 지략이 모자라면 패하는 것이요, 거대한 땅덩어리의 분할이 모두 이 지략에서 나온것임을 알 수 있다. 지략이란 바로 상대를 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물론 홈그라운드의 잇점이라는 환경도 무시못할 조건이긴 하지만 상대를 꿰뚫는 눈을 가진 사람이 당연히 이길 수 있을것임을 안다. 하지만 말이 쉽지..쪽집게 점쟁이가 아닌 이상..평범한 우리로서야 무슨 수로 상대를 읽을 것인가. 언젠가 SBS-TV 스타킹에 나오는 저자를 본적이 있었다. 상대가 가진 패를 알아맞추는 장면을 보고..아 프로포커로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 남들이 직장에 다니고열심히 일하는 동안 아마 그는 포커를 연구하고 그일로 먹고 사는 모양이구나. 했었다. 하지만 이친구...단지 프로포커만이 아니다. 물론 인생을 게임을 놓고 보면 우리 모두는 게이머가 맞다. 그런면에서 저자는 단순히 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 인생 그자체를 즐기며 주물럭 거리는 프로게이머인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대학에 과목이 있나? 아직 인생의 연륜이 묻어난다고 하기에는 젊은 사람이건만 이런 비법들은 어디서 전수받은 것일까? 읽는 내내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흔히 마술에서도 나오는 장면이니...상대방이 쥐고 있는 패를 맞추는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더라도.. 포커페이스를 하고 블러핑을 하고 베팅을 하는 모든 일들에 프로인 것은 물론 그과정을 지켜보고있노라니.. 인생의 축소판이 바로 이 포커게임과 같지 않은가. 집바깓에만 나가면 온통 적뿐인 살벌한 세상에서 뒤쳐지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들이 낱낱이 소개되어 있다. 상대방의 말이 거짓인지 표정하나 몸짓하나만으로 잡아내고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비법들이 리얼하게 그려져있다. 상대를 읽기전에 우선 상대에게 읽히지 않는 비법부터 무장해야 할 판이다. 멘사회원들도 풀지못했다는 '패턴 인식'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은 감히 꿈꿀수도 없거니와 그저 이비법책으로나마 미욱한 인생을 한번 바꿔볼까 꿈이라도 꿔본다면 욕심이려나.
아 언제 건너왔는지 기억도 아련했던 유년의 강가에 다시 섰다. 저자의 말대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넜을 그 강가앞에 다시 서니 잊혀졌던 시간들과 친구들과 사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나와 같은 시간대에 유년의 강을 건넌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건넜던 강가의 사물들과 인물들이 모두 친숙하기만 하다. '황금박쥐'의 노랫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은 환상에 취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다 보니 신통하게 가사하나를 잊어 버리지 않았음에 스스로 놀랍기만 하다. 핵무기만 빼고는 다 만들수 있다는 세운상가를 지나 헌책방이 즐비한 청계천을 걸었던 기억도 양갱과 사이다를 챙겨두고 가슴떨리던 소풍전날의 모습도 영판 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비장의 각오로 가출을 결행하여 걸어서 도착했다던 용산역앞은 바로 내가 다니던 여학교앞이었고 박포장기로 날릴뻔했다던 학원비의 종착역 종로2가의 YMCA앞에서 혹시 그와 한번쯤 마주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맞아야 할 이유가 아흔아홉가지였다던 그시절 체벌의 모습도 어찌나 비슷한지.. 마대자루로 엉덩이를 맞던 친구들을 보면서 맞는 아이보다 더 공포스러워 눈물을 머금었던 기억이며 마당 끄트머리에 있었던 변소에서 퍼지던 향긋한(?) 냄새까지도 고스란히 맡아지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한남동에 처음 세워졌던 현대식 마트 한남체인오픈식에 구경같던 일이 떠오른다. 변소가 아닌 화장실을 처음 들어가본 내가 사용법을 몰라 좌식 변기위에 올라타고 앉아 재래식변소체위로 일을 봤던 기억이...그 황당함이 지금도 또렷한데..어느새 우리는 그 유년의 강을 건너 흰머리가 희끗해진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달고나의 명성이 살아난다는 뉴스를 보고 인터넷으로 사들여 놓고 가슴이 설렜던 일도 있었고 어느식당에 가면 알루미늄도시락에 계란을 덮은 도시락을 서비스해준다는 소리에 동창들을 불러모아 우르르 달려갔던 일들...이제 우리는 추억한자락에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모든 것이 변해도 유년의 강 저쪽의 기억만큼은 나이가 들수록 또렷해지고 이제는 다시 건널수 없는 강이지만 이렇게 그시절을 같이한 동무들의 글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가난하고 보잘것 없을것 같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 어두운 밤 촛불을 밝히고 덜덜떨며 갔던 변소도 사라지고 버튼하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수세식 인생이 되어버린 지금 배고플일도 없건만....왜 자꾸 헛헛하고 공허한 것인가. 오늘....실컷 웃고 그리워하며 읽었던 이 책으로 하여 먼길 떠나기전 해주셨던 엄마의 따뜻한 밥한공기처럼 든든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