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환자 - 허원주 수필집
김호남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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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초록의 싱싱함만 보아도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늘 속에서 행복해지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무는 사계절 풍상을

혼자 버텨야 했다. (중략) 미칠 노릇이었다. <아마데우스>의 주인공

살리에르는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남보다 먼저

알아보는 재주는 왜 내려주셨나고.

 

 

 

 

 

 

- 본문 중에서-

 


 

병원의 느낌은 항상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의사는 하얀가운을 입은 판결관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신을 대신하여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그들의 존재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다가가기 어렵고 이기적일 것일것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내 생각이었다.

 

또 한번 나의 이런 막연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의사를 만났다.

왜 능력은 주지 않고 능력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재주만 주었냐고 절규하는 의사 허원주를 보면서

나역시 그처럼 간절하게 능력을 원했건만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절망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어떤 스승에게 글을 사사받아 이렇게 빛나는 글을 썼던 그는 제법 괜찮은 글쟁이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세상애 자신의 글을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가슴 깊숙한 그의 사랑과 감성을 제대로 표현한 멋진 글을 말이다.

 

영화를 사랑하고 어린 아들의 손을 이끌고 극장으로 향했던 아버지의 감성을 이어 받았을까.

말기 암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상황을 연기해야하는 의과대학의 '가상환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환자에게 말려들지 않으면서 이성적으로 '죽음'을 통보하는 의사의 모습은 가슴아프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눈물 한 방울없이 덤덤하게 짜여진 교본대로 삶의 끈을 놓아야 하는 환자를

대하는 말라버린 감성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되 돌아 보았다는 고백에서는 가슴이 시려온다.

단지 죽음과 삶을 진솔한 인간의 눈이 아닌 냉정한 의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회한의 고백일 것이다.

 

유방암 수술을 한 아내를 보면서 의사이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던 지단함과 유학을 보내 놓았더니 여자친구와

시시덕거리다가 온 것 같아 울컥했다는 참으로 인간다운 고백은 표지속에 과묵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 않던가.

 

적당히 눙치고 빠지는 삶이 싫어 불의와 맞서고 여전히 불안한 지진재난현장으로 달려가는 친구를 보면서

자신의 소심함을 탓하며 다 이룬듯 보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이렇게 세상에 자신의 글을

선보인 작가 허원주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꿈을 꿈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상에 당당히 드러낸 그의 도전도 아름답지만 그가 냉철한 의사로서,

하지만 따뜻한 사랑을 잃지 않고 자신의 가슴에 용설란을 키우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존경스럽다.

 

나도 여전히 꿈을 쫓고 있다. 그리고 작가 허원주는 또 다른 나의 멘토가 되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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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행운 생각하는 책이 좋아 9
신시아 로드 지음, 김난령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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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남녘의 섬으로 내려온 나는 이 책이 더 특별할수 밖에 없다.

어디서나 섬의 풍경은 비슷한 모양인지 뻔히 뭍이 보이는 가까운 섬임에도

학교를 폐교시킬만큼 사람들은 섬을 떠나고 있다.

시작은 적어진 학생 수를 채우기 위해서였다지만 열 한살짜리 소녀가

사는 섬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뜻 입양하기로 결정했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혈연'을 중시하는 민족과는 사뭇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캐나다 사람들이지만 잘 짜여진 울타리 안에 새 식구를 들이는 것은 모험과도

같을터인데...이런점에서 쿨한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알콜중독자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열 세살 소년

아론은 위탁가정을 전전하다 바다가재를 잡으며 살아가는 테스의 가정에 들어오게 된다.

 



 

 

 

얼마전 단짝인 에이미를 뭍으로 떠나보내고 외롭게 지내던 테스와 동생 리비는

아론을 환영하지만 다시 버려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아론은 쉽게 맘을 열지 않는다.

언젠가는 선장이 되고 싶었던 테스는 배려심이 많고 현명한 소녀이다.

아론의 멋진 트럼펫 연주에 반하기도 했지만 차가운 아론의 마음을 열어주려고

노력하는 테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진한지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한단다. 서로 만나지 못한 때 조차도 말이야.

(중략) 사람은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 기억하기 쉽거든.

실제로 사람들은 더 복잡하단다." -158p

 

테스의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장면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런 가정이라면 얼음 심장을 가진 아이의 가슴을 충분히 녹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닥치든, 우리 모두는 포기하지 말고 어려움을 헤치고 나아가야 해.

테스, 때로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야

할 때가 있단다. 비록 네가 원치 않는 식으로 흘러간다 해도 말이야." -230p

 

섬에서 떠나려는 아론을 붙잡기 위해 아론의 친엄마를 섬으로 불러들여 큰 사건을

일으키지만 결국 아론은 테스의 따뜻한 사랑에 닫혔던 마음을 문을 열게 된다.

 

정말 우리는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다. 파란물이 사방을 둘러싼 섬에 이주한 나를

봐도 그냥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니말이다.

 

바다건너 어느섬에서 물 흐르듯 인생을 관조하는 멋진 아빠를 둔 테스가 진정한 친구

아론을 만난 것 같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아론, 테스 멋지게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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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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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서울내기’라고 생각했던 내가 서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직 남산도 못가본 서울사람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마’했지만 여기 저기 서울 구석구석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도 이렇게 깊숙하게 서울을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도시공학을 전공해서 인지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뼈대부터 길가에 나무까지

예사롭게 지나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그가 그린 서울의 일러스트는 정말 세심하고 아름답기까지하다.

 



 

또한 시공을 넘어서 예전의 서울과 현재, 미래의 모습까지도 그의 머리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그를 따라나선 서울 여행길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

시원하게 넓어진 광화문광장을 아예 차가 없는 광장으로 했으면 바람도 나와 같았다.

제일 먼저 광화문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서울의 중심이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미래의 움직임까지 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첫직장을 시작한 교보빌딩의 추억과 데이트를 즐기던 정동길과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을 눈물로 지켜보았던 정동교회의 정경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 서울을 이렇게 깊숙하게 들여다  본 작가가 있을까.

더구나 그의 눈은 아련한 과거와 옛스러움에 젖어있다. 그래서인지 촉촉한 옛추억에 빠져들고 만다.

둘레길 걷기가 유행인 요즘 이 책을 들고 그가 소개한 서울의 골목 골목을 따라 걷고 싶어진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과 내가 놓쳐버린 시간들을 만나고 앞으로 사라져버릴 시간들을 담고 싶기 때문이다.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넉넉한 시간을 가진 것 같아 너무나 편안한 여행길이 되었다.

아마도 저자는 그의 깊은 눈 못지 않게 맘도 깊을 것이다. 더불어 넉넉한 품까지 느껴지니 각박한 서울내기들이

한번쯤 여유롭게 꼭 한번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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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로드 - 한국의 첫 요하네스버그 특파원 리포트
김민철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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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컵이 끝난 후 지금도 귓가에 쟁쟁히 남는 것은 꽤나 시끄러웠던 부부젤라 소리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상당히 깨어있는 나라인 남아공 역시도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아프리카민족임을
전세계에 그야말로 소란스럽게 각인시킨셈이다.
이렇게 월드컵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남아공이지만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미국이나 영국, 그 다음에 필리핀 같은 곳으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보내는 유행이 한창이더니
어느 날 부터인가 남아공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간다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아프리카로 이민이나 유학을 가다니...우리보다 앞선 나라에 가는 것이야 당연하다치고
필리핀은 가깝고 싼 맛으로 간다니 그 또한 그렇다고 치더라고 장장 열 몇시간은 가야 닿을 수
있는 그 먼나라에 더구나 우리보다 결코 나을 것도 없어 보이더만...하는 것이 첫 생각이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백인들의 문화가 어우러져있고 물가가 싸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듣기고 치안도 엉망이고 교통도 상당히 불편하다던데..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남아공보다 GNP가 3배이상이고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요즘 우리나라의 물가를 보면
왜 남아공이 매력적인 나라로 인식되는지를 알것도 같았다.

이런 저런 호기심을 갖고 있던 차에 한국의 첫 요하네스버그 특파원이었던 김민철기자가
쓴 이 책은 남아공의 탄생과 성장의 이야기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어 역시 꼼꼼한 기자의
눈으로 본 리포트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프리카 대다수의 나라들이 그렇듯이 어마어마한 땅덩어리와 무한한 자원이 있음에도
여전히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 서로 다른 인종과 부족간의 갈등이
큰 원인인듯 하다.  정작 땅의 주인이 객이 되고 손님이 주인이 된 격인데 세월이 흐르고
눈을 떠보니 억울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번영 뒤에는 손님들의 역할이 컸으니
과연 어떻게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나역시도 앞으로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주목할 것이다.

수도가 세 곳이나 되고 아름다운 국립공원과 해안을 가진 남아공은 열악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는 참 행복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우리 교민들도 점점 늘어가는 것이겠다.
'코리안타임'처럼 '아프리카타임'이 있다니 나처럼 성질급한 사람은 홧병이 날 일이겠지만
길지 않은 인생 복닥거리고 산다고 길어질 일도 아니니 노후에 남아공에 가서 느긋하게
인생을 정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트타운, 희망봉, 펭귄등 고작 이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던 내가 남아공의 역사와 인물
문화까지 환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가보지 못한 미지의 땅에 대한 배고픔을 면한 기분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특히 남아공과는 전생의 인연이 있었던지-하긴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땅에서
왔다는 설이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닐터-또 다시 남아공 특파원으로 나가있다니 몇 년후면 남아공의
새로운 소식과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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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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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의 이름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해진다.

어둡고 길었던 방황의 시간들이 그의 책들로 하여 견딜 수 있었으며 희망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가족'처럼 나도 그의 가족인듯한 착각속에 빠져 아주 오래전부터 편하게 지내온 오빠같다고나 할까.

그런 그가 어느 날 희귀암에 걸려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가 늘 경외하고 믿어왔던 종교의 힘도 그의 병을 치유치 못했는가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시간들이었다.

홀연히 붓을 놓고 사라져버렸다는 상실감은 한동안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런 그가 항암투병중에 손톱과 발톱이 빠지는 고통속에서도 불과 두어달만에 쓴 작품이 바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이다. 죽음과 마주한 작가가 이토록 급하게 붓을 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이한 예감같은 것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예감이 불행한 것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읽어내려가는 동안 마치 영화 '매트릭스'나 8초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계속 반복되는 사건을 보여준 '소스코드'를 보는 것 같았다.

 

자명종시계소리에 깨어난 토요일 아침부터 출근을 하는 월요일 아침까지 3일간의 이상한 경험을 한 K는

사실 우리 모두일 수 있다. 저 우주속 어딘가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고

믿어왔던 나에게 K1과 K2의 존재는 전혀 낯선 발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K3나 K4도 존재할런지 모른다.

4차원속 어디일수도 있고 우주의 반대편일수도 있고 영원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고리처럼

그렇게 존재할런지도 모른다.

 



 

그가 그토록 경외하는 그리스도조차 어떤 모습이 진실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장면은 바로 지구멸망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는 지금의 지구의 모습을 생각하면 끔찍한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짐작케한다.

그가 죽음의 사신을 붙들어 묶어놓고 그를 사랑했던 독자에게 그토록이나 주고 싶었던 메세지는

'때가 왔다'가 아닐까.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모두 인간을 만들어 이 세상에 내보내준 신의 뜻을 기억하라.

그리고 스스로 진실의 십자가에 자신을 묶고 스스로 못박고 거듭나기를 바라는 그의 강력한 기도가 아닐까.

 



 

내가 기억하고 있던 작가의 모습이 새겨진 책을 보니 투병생활로 수척해진 작가의 얼굴이 생각나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3기의 문학'으로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위에 못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믿고 싶다던 작가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역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제발 허락해주시기를...하느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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