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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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화가의 회화는 왠지 옷깃을 여미고 봐야할 것 같은 숙연함이 느껴진다.

소름끼치게 리얼하거나 아름다운 작품이어서이기도 하고 내가 가보지 못한 시간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있는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신화와 역사가 미묘하게 교차되는 그리스 신화속의 이야기를 화가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마치 실제한듯한 그 몽환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그리스의 아름다운 평원에서 님프와

노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스신화는 아름다운 이야기보다는 신들의 추악한 사랑이야기나 애욕, 질투와 복수극이

주종을 이루는 것 같다.

특히 제우스의 바람끼는 정말 못말리겠다.

'신'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신과 인간사이를 넘다들며 온갖 방법으로 바람을 피우는 꼴이라니.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미와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리고 태양의 신 아폴로의 애정행각은 실로 눈부시다.

당연히 이런 난봉꾼 신들의 누드화는 요염하고 풍만하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누드화가 금지되었던 중세시대에 억눌려있는 성의식을 이렇게 난봉꾼들인 신의 모습을 통해 표출해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1742년 프랑수아 부세의 '목욕하는 디아나'의 주인공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다.

미녀의 대명사로 떠올릴만큼 아름다운 아르테미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화가는 바로 부세라고 한다.

같은 여자가 봐도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그마한 머리, 근육이나 뼈를 느낄 수 없는 둥긋하고 나긋나긋한 팔다리, 정말로 손을 대어보고 싶을 만큼

온기가 느껴지는 알몸을 보고 있자니 질투가 느껴지기도 한다.

 

 

유명화가들이 그린 아름다운 여신들의 몸매를 보노라면 중세에는 조그만 가슴과 풍만한 허리뿐만 아니라

이중턱조차 미인의 기준이었다니 왜 그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건장한 모습의 아폴론과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스스로 빠져 수선화가 되었다는 나르시스의 모습을

보면 여인의 미모 못지 않게 남성의 미모도 중요했던 모양이다.

얼핏 지나치기 쉬운 풍경화와 인물화에 그칠지도 모를 명화들 속에 숨은 메시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야코포 딘토레토의 '불카누스에게 발각된 비너스와 마르스'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내의 바람을 의심하여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의 얇은 속옷을 들쳐보는 늙은 남편의 모습에서

꺼져가는 사랑과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한 사내의 속절없는 사랑이 서글프기도 하고

침대밑에 숨어있는 바람둥이 아레스의 한심한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추운겨울과 꽃피는 봄을 대비하여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여신들의 모습은 설명이 없었다면

결코 알수 없는 메시지이다. 역시 이곳에서도 서쪽의 바람의 신 '제피로스'는 음흉한 바람끼를 드러내고 있다.

잘못된 제목을 바로잡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보면 천을 짜는 여인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질투에 휩싸인

전쟁의 아테나와 베짜는 솜씨가 좋았다는 아라크네라는 젊은 여인의 겨루기라는 것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하기는 갑옷과 투구 차림으로 천을 사러 오는 여성은 없고 작업장에 첼로

같은 걸 놓아둘 리 없다고 왜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까.

'명화의 거짓말에 쉽게 속아서는 안 된다.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봐야 한다!' -208p

'무서운 그림'에 이어 명화의 잔혹한 진실을 알려주는 나카노 교코의 실랄한 눈은 청맹과니같은 우리의

눈이 제대로 떠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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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
코바야시 야스미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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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살인'은 추리물에서 가장 많이 도입되는 기법이다. 안에서 문이 잠긴 밀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면

과연 범인은 어떻게 살인을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 부분에 가장 큰 반전이

일어나는 플룻으로 짜여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기법상으로 '밀실 살인'을 도입하기는 해도 이렇게 대놓고 '밀실 살인'임을 밝힌 것을 보면 괘나 자신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땅한 사무실도 없이 자신의 집에 탐정사무소를 차린 '요리카와'는 고객이 자신의 얼굴을 알게되면

수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조수인 경찰 출신의 '요츠야 레이꼬'에게 의뢰인을 만나게 하고 모든 일을

주관하게 한다.

그러나 요츠야는 과거 경찰생활을 하면서 손상된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아 경찰생활을 그만둔 아픔이 있다.

의뢰인은 며느리가 죽임을 당했고 자신의 아들이 의심을 받고 있다며 무죄임을 입증해 달라고 한다.

살인의 현장은 눈덮힌 시골의 한적한 별장.

의뢰인의 아들인 나시다와 그녀의 아내, 그리고 부부의 이혼을 도와줄 변호사 그리고 남편의 내연의

여자이자 아내의 친구인 레츠는 이혼협의를 위해 별장에 찾아든다.

하지만 아내는 남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단 한번도 방을 나서지 않은 채

짧은 비명만을 남긴 뒤 시신으로 발견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밀실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보면 마무리 부분의 반전이 크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긴 했지만 조금은 부족한 마무리가 아쉽다.

오히려 의뢰인과의 계약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진실을 감춰야만 하는 탐정 요리카와의 영악함이

더 내마음을 붙든다.

뭐 그렇게 막을 내려도 크게 손해 볼 사람은 없으니 서로 윈윈하는 결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조수인 요츠야보다는 탐정이나 경찰 못지 않은 예리함을 뽐내는 별장지기 토쿠영감이 더 인상깊게

다가온다. 다음편에는 이 토쿠영감을 조수로 써보는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인 코바야시 야스미가 차기작이 곧 출간 된다니 좀더 치밀한 짜임새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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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 앤 새디 vol.1 - 마린블루스 정철연의 미치도록 재미난 생활툰 마조 앤 새디 1
정철연 지음 / 예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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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유쾌한 마조군과 새디양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이다.

'30초마다 1번씩 빵빵 터질 수밖에 없는 웃음 중독'이라는 광고문구는 틀렸다.

30초라니...10초간격이거든.

 

 

마조군 그러니까 정철연작가는 당당하게 '주부만화가'라고 자신의 직업을 밝히고 있다.

물론 '주부'는 이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직업이다.

남자가 밥짓고 빨래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던 옛시대도 아니고 요즘 아침 주부 프로그램에는

당당하게 '주부'로서 가정을 이끄는 남자들이 나와 해도 해도 빛도 안나는 살림살이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세상이니 새삼스러울 것 까지도 없는'주부'이야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일까.

결혼후 주부가 되기 전까지는 멋진 전원주택을 꿈꾸고 모르는 길을 가더라도 남에게 길은

죽어도 물어보지 않았던 남자가 청소하기 힘들고 난방비 많이 나오는 전원주택에 콧방귀를

뀌고 아주머니 붙잡고 장조림 레시피를 나누면서 수다를 떠는 모습에 박장대소하게 된다.

네맛도 내맛도 안나는 요리에 슬쩍 조미료를 넣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나 일주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곰국을 끓여놓고 느긋해하는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얼핏 요즘 자유분망하고 실리적인 젊은 부부상을 보는 것 같아 상큼하기도 하지만

시대가 아무리 지나도 끓이고 무치고 삶고 지지고 볶는 우리 삶의 모습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아

미소가 절로 나온다. 마조씨 분리수거 쌓아 놓지 말고 바로 바로 없애시오.

일주일에 한번 꼴랑 그거 하나 도와주는 남편에게 내가 늘 하는 잔소리라오.

이러다가 마조씨...아이마저 그대가 낳는 것은 아닐지 몹시 궁금해진다오.

그리고 다음편...웃음 만발, 공감 백배의 리얼스토리 계속 기대하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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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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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리기위해 지금의 내 상태를 감정을 알리기위해 우리는 소통이란걸 한다.

말로 문자로 편지로 눈으로 심지어 온몸으로 나를 알린다.

하지만 이렇게 또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꽃.

물론 꽃에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 깃들어 있는 꽃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듯 강렬하게 꽃으로 소통하는 한 소녀가 있었다니 정말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내가

모르는 또다른 언어로 간절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또 한번 알게된다.

아주 오래전 이 책에서는 빅토리아 시대부터라고 하지만 더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주변에 있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또다른 언어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언어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또다른 언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소녀 빅토리아는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 때문에 여러 차례

입양을 거절당하고 보육원을 전전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민 독신녀 엘리자베스는

꽃과 포도밭을 벗 삼아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 자신도 부모로부터 소외당하고 언니로

부터 배신당했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알 수 없고 왜 버림받았는지 평생을 고통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고아소녀의

아픔이 절절하게 그려졌다.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상처를 곱씹으며 비참하게 숨어살아야 하는 아픔이

그녀 자신과 주변사람들까지 고통에 이르게 하는지 그녀 자신은 잘 알지 못했었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엘리자베스만은 자신을 구원해주리라 믿었지만 진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신을 버릴것이라가 짐작한 고아소녀 빅토이라는 커다란 죄를 짓게 된다.

 

햇살은 눈부시고 바닷물은 파랗게 빛나는 아름다운 도시 샌프란시스코이지만 창문도 없는 파란방속에

갇혀 스스로를 가둔 채 어두운 삶을 살던 빅토리아는 자신이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을 발견한다.

바로 꽃과 소통하는 일.

엘리자베스가 가르쳐준 꽃의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면서 그녀는 꽃말사전을 만들어 간다.

역시 외롭게 살아가던 청년 그랜트를 만나 사랑을 느끼지만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가족이란 울타리에 살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아님 다시 버려질까봐?

늘 도망치는 빅토리아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한 번 불에 데인 상처때문에 멀리서 불빛만 봐도 도망가고 싶어지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누구를 사랑하는

방법도 같이 사는 방법도 배우지 못한 채 19년을 살아온 그녀의 철저한 고독이 더 이상 그녀를 어둠속으로

밀어 넣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비록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빅토리아는 햇살 가득한 세상으로 이제 나오려 한다.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연약한 발자욱을 떼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의 삶에 가로놓여있던 엉컹퀴(꽃말:인간에 대한 불신,염세)를 과감히 버리고 안개꽃(꽃말:영원한 사랑)과

나팔수선화(꽃말:새로운 시작)와 산사나무(꽃말: 희망)잎사귀를 꽂아 그녀에게 선사하고 싶다.

이제 더이상 고독하지 않기를..어둠을 벽을 뚫고 환한 세상으로 당당히 걸어나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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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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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의 값은 얼마일까.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용화공고 삼학년 태만생군. 한강로 101-9번지에서 이태원으로 지금은 강릉의 어디쯤 헤매고 있겠네.

뭔가 다 알고 있는 척해도 넌 역시 너무 청순했어.

여자하고 잠을 잤다고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니?

세상은 여자의 자궁속보다 더 심오한 뭔가가 있다니까.

 

도대체 이 작가는 왜 어린시절 내가 떠돌던 곳들을 들쑤셔서 나의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것일까.

한강로의 그 음습하고 차가운 바람과 이태원 골목을 감돌던 낯선 바람의 냄새를 진정 알고 있는 것 같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지 않고 돌아가고 싶어도 여전히 빚장걸린 그곳들의 그림자를 어떻게 이렇게 잘

짚어냈는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그랬다. 한강의 바람과 재개발의 뒤안길에서 여전히 과거의 찌꺼기들을

간직한 그곳이라면 외로운 소년 태만생이가 태어나기에 아주 그만한 곳이 없었겠다.

 

건설 경기가 바닥을 쳐서 여전히 가난을 떨치지 못하는 미장이 아버지와 잠꾸러기 엄마가 왜 미국행을

택해야 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여전히 드림 오브 아메리카가 있다고 정녕 믿고 있었다고?

그래도 강릉의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고는 정말 믿고 싶지 않다. 차라리 드림 오브 아메리카를

믿어주고 싶다. 그래야 어른 흉내놀이에 빠져있는 태만생군이 덜 외롭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음주로 하여 호적에 남자로 올리는 바람에 자칫 남자의 운명을 살뻔한 이력때문인지

눈매도 가름한 이 작가 조금 수상하다.

왕성한 호르몬의 공격에 휘둘리는 소년의 육체와의 전쟁을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이제는 갱년기에 접어든 쭈그러진 아줌마의 몸도 괜히 움찔거린다.

혹시 미미형님처럼 불편한 몸뚱아리에 손좀 댄거 아니요?

분명 제 몸이 겪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은 남자 독자들이라면 금방 알터이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쯤에 서있는 소년들이 시덥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짝퉁이 진짜가 되고 진짜는 쓰레기통에서나 찾아야 하는 시대에 태어났음을

원망해라. 혹시 만생군이 부모님을 따라 어메리카로 향했더라면 덜 외로웠을까.

 

분명 이태원 짝퉁 골목에서 태만생이나 태주가 은근한 몸짓으로 허깨비세상을 향해 유혹의 눈짓을

보낼것만 같아서 더 슬퍼진다. 가끔 소설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혼동스럽기만 하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 남았다는 그것처럼 그래도 개떡같은 세상에 만생이가 외치는 한마디는

눈물겹게 희망스럽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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