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많지 않을 글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산숙-산중음'이란 글에 이런 글귀가 있었나.
앞서 저자는 '들믄들믄', '그즈런히'같은 글들은 연필로 필사해야 분위기가 살 것 같다고 썼다.
시대가 그래서인지 나도 볼펜같은 것으로 메모를 하지만 사실 부드러운 흑연의 맛이 살아있는 연필을 좋아한다. 가지런히 적당하게 속살을 드러내 깎아낸 연필을 필통에 재워놓으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백석은 어느 여인숙에 들어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한 웃간의 모습과 때가 새까마니 오른 목침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과 마음을 생각해보았다고 썼다.
나도 언젠가 휘항한 강남의 어느 아파트 베란다에 널린 말간 빨래들을 보면서 아 누군가의 땀과 삶이 절어진 것에 뭉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냥 고요해지는 책이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단아해서, 잠시 멈추어서서 바라보고 싶어지는 호수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가끔 소란스런 삶을 잠시 벗어나 여백을 가져야 한다.
여기 이 책에서 건져낸 글을 위로삼고 내 맘속에 고인 시끄러움같은 것들을 글로 뱉어내보면 어떨까.
한 줄 필사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