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골동품 상점
허아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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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지만 관심이 많이 생겼다.

제목과 소개 글만 보고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이 떠올랐다.

기이한 골동품을 받은 손님들이 겪게 될 이상한 일들을 다룰 줄 알았다.

보통의 소설들이 물건과 그 물건을 가진 사람들의 현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물건의 내력과 그 시대를 엮었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닌 과거 이야기를 더 들려준다.

이 방식은 괴담과 닮아 있는데 이야기의 마무리는 괴담과 다르다.

사료를 활용해 괴담과 현실의 연관성을 만드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이 골동품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다.

흙 먼지가 풀풀 날리고,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는 곳에 놓여 있는 콘테이너다.

찾아가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고, 장소도 늘 같은 곳이 아니다.

상점의 이름은 없고 붓으로 쓴 골동품점이란 간판이 전부다.

이 상점의 주인이 이전에 스님이었다는 정보가 나올 뿐이다.

이 상점을 소개한 사람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거시서 파는 건 죄다 수상쩍은 것들뿐이야. 특히 길한 물건일수록 불길하기 짝이 없지.”

길한 것과 불길한 것을 같이 놓고 풀어내는 이 말은 주인이 내놓는 골동품에 딱 맞다.

그리고 이야기도 괴담처럼 진행되다 역사의 단편을 재해석하는 쪽으로 넘어간다.


처음 이 곳에 온 손님이 마주한 골동품은 태항아리다.

그런데 이 태항아리의 사연과 모양이 독특하다.

태항아리를 묻은 곳은 길지인데 몰래 그곳에 묻은 것들이 많다.

그러다 아주 큰 태항아리를 들고 나오는데 이 안을 들여다보는 손님이 홀린다.

뭔가 이 손님과 관련된 괴담 등이 나올까 하는 순간 이야기가 끝난다.

아! 중간에 이런 항아리를 산 가족 이야기가 나오는데 괴담으로 흘러간다.

놋쇠 그릇과 관련된 이야기는 고부 갈등과 독살에 대한 다른 해석을 풀어낸다.

대를 이어 벌어지는 지독한 시집살이, 시어머니의 죽음.

놋그릇을 닦는 물건과 중독 가능성, 그 이면에 깔린 감정.

모호하고 이상한 상황을 연결해서 풀어내는데 저주가 담겼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딸랑이를 닮은 팔주령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조선왕조실록 속 사료를 찾아내 그 시대의 이면을 파헤친다.

아이들의 손가락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사초의 기록.

단순히 효행으로 무심하게 보고 지나갈 수 있는 역사 속 단편을 재해석한다.

과연 아이들의 그 행동이 자발적인 것일까 하고.

그 시대 상황과 연결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감안한다.

조선 최대의 성군이라 불린 세종 초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씁쓸하다.

이슬람교도가 조선 초기에 큰 활약을 했다는 해석도 더 파고들어볼 부분이다.

실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선왕조실록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봤다.

그대로 있는 이야기였다.


일본의 저주인형과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는다는 제웅.

이 제웅을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 삼강과 엮어 스릴러처럼 풀어내기도 했다.

주인이 하인을 강간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대.

이 시대의 권력자는 법의 바깥에서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이때 발생한 하나의 살인 사건과 의문 가득한 상황.

삼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용의자와 현령 사이에 오가는 대화.

씁쓸하고 기지 가득하면서도 안타까운 역사의 한 단면을 마주했다.

또 옥비녀와 명성황후를 연결하는 이야기는 그 기발한 발상이 재밌다.

왕권보다 시댁을 챙기면서 생긴 역사의 반전과 드라마의 허위가 만든 인물상.

이 기이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작가 어떤 식으로 자료를 모으고 엮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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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
니콜라스 볼링 지음, 조경실 옮김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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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9세기 초 영국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기가 발견되고, 과학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직 전기를 이용해 발전을 할 기술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직 과학기술과 연금술이 뒤섞여 있던 시기였다.

해부학을 위해 몰래 시체를 도굴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교회 뒤편 묘지에 머물던 묘지기를 통해 그 시절의 일부를 보여준다

첫 문장의 강렬함은 수많은 상상을 불러온다.

열다섯 소년이 무덤을 판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약간 기대와 달랐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인물은 두 명이다.

묘지기 소년 네드와 몰락한 지방 영주의 딸 비드.

네드는 열다섯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홀로 묘지를 판다.

마을의 노부인 묘지인데 밤 사이에 다른 묘지가 파헤쳐졌다.

목사는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제대로 묘지를 관리하지 않았다고 네드의 할아버지를 협박한다.

파헤쳐진 묘지를 덮고, 새로운 시신을 매장한다.

이때 한 소녀가 등장해 네드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몰락한 웰레스트 가문의 딸인 오비디언스다. 애칭으로 비드로 불린다.

비드의 공손한 말과 외모는 네드를 사랑에 빠지게 한다.


비드의 아버지는 딸을 부잣집 아들인 피니어스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피니어스는 코가 망가져 금속으로 된 코를 달고 다닌다.

그의 아버지와 비드의 아버지가 아는 사이고, 서로 바라는 바가 있다.

아버지는 딸이 이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피니어스는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는데 비드 집안의 몰락과 관계 있다.

사실 웰레스트 집안이 몰락한 것은 200년 전 선조가 연금술 등에 막대한 부를 쓴 탓이다.

비드는 전혀 피니어스와 결혼할 마음이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피니어스가 진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당연히 부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상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명의 화자, 네 명의 인물이 뒤섞인 이야기.

네드의 파리 모스카는 정말 네드의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네드와 함께하면서 알게 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비밀 하나가 숨겨져 있다.

악당인 피니어스는 착한 구혼자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정체가 금방 드러난다.

가장 기묘한 인물이라면 네드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수준을 넘어선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목사나 마을 주민들에게 항상 저자세를 유지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네드를 가르치고 기원을 알 수 없는 금화를 가지고 있다.

가장 수상한 점은 네드가 사온 동물의 간을 먹고 혈색이 돌아온 것이다.


네드의 집에 들어와 난장을 피우고 열쇠 꾸러미를 훔친 도둑이 등장한다.

네드가 이들의 뒤를 따라가지만 어린 소년이 막기는 역부족이다.

다만 이들의 인상을 기억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말할 뿐이다.

하지만 나중에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다양한 사실들이 드러난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가 의도적인 숨김과 그 비밀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천천히 비밀의 일부를 흘리면서 반전을 예상하게 한다.

소년소녀가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이 노력은 경험의 부족으로, 힘 차이로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변수를 만들고, 탐욕이 파멸을 불러온다.

흔한 권선징악 같지만 서로 다른 욕망을 교차하고, 다른 의도로 상황을 구분한다.

시원시원한 전개는 아니지만 고전 고딕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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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카프카 단편선 소담 클래식 7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배인섭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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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클래식 7권이다.

세 편의 단편이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는 작품은 당연히 표제작 <변신>이다.

이 단편을 읽어야지 늘 생각만 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읽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도입부와 설정만 알고 있었지 그 내용은 몰랐다.

해설을 읽으니 이 세 편이 ‘아들’이란 제목으로 묶여 출간될 뻔했다고 한다.

다른 출판사의 카프카 단편선에 비해 분량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보에 고개를 끄덕인다.

난해한 소설들이지만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이 단편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에 카프카의 장편을 읽었을 것이다.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으로 끝까지 읽었는데 이해는 거의 하지 못했다.

고전에 대한 허세와 욕망에서 비롯한 독서가 큰 소득 없이 끝났다.

이 기억은 이후 카프카란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시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했다.

다른 출판사의 단편집을 사 놓고도 계속 묵혀둔 것도 이것의 연장선이다.

약간의 강제가 없다면 바로 읽지 않을 소설들인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오랜 시간 여기저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읽은 것 같을 때도 있다.

다행이라면 <변신>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기억하는 단편이라 혼란은 없었다.

다른 판본보다 더 현대적인 느낌으로 번역해 옛날 소설의 느낌이 사라져 조금 아쉬웠다.


<화부>는 완성하지 못한 소설이라고 한다.

여객선 3등칸을 타고 미국으로 넘어온 카를.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배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만난 화부, 그를 보고 선원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화부의 불만을 듣다가 1,2등 승객들만 다니던 곳에서 있는 한 선실에 도착한다.

이 선실 안에서 화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이 논쟁보다 먼저 시선을 끈 것은 조금은 갑작스러운 카를의 개인사다.

어느 순간 이 개인사가 앞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잊게 한다.

왜 미완성이라고 했는지 이해하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선고>는 솔직히 말해 마지막 장면을 오독했었다.

해설을 보고 다시 그 장면을 읽으면서 왜 놓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카의 자전적 색채가 짙다고 했는데 어떤 대목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연인을 친구에게 소개하는 편지와 아버지의 반발은 혼란을 불러왔다.

화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오해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독설.

자신의 선의와 의도가 왜곡되고 오해받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는 화자.

마지막 선택이 충동적으로 펼쳐지는데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다.

중간에 내가 놓친 대목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변신>은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늦잠을 잤다는 사실에 놀라고, 벌레로 변한 모습에 또 놀란다.

영업사원으로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그의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회사에서 출근하지 않은 그를 찾아오고, 그는 벌레로 변신한 몸으로 출근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몸을 보고 상사는 도망치고, 가족들도 그를 멀리한다.

그레고르란 사실을 알고 가족은 그를 방에 가둔 채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한다.

집안의 유일한 소득원이었던 그가 일을 못하면서 순간 생계가 힘들어진다.

벌레로 변한 그가 머문 방을 매일 찾아오는 것은 여동생이다.

시간이 더 흘러가면서 가족들은 자신들만의 일을 찾아서 한다.

이 일상의 변화를 방 안에서 그레고르는 듣고 잠깐 나와 보면서 알게 된다.

이 변화 속에 일하지 않고 혐오감을 불러오는 그레고르는 이제 귀찮은 존재가 된다.

돈을 벌던 존재가 혐오의 존재가 되면서 생기는 상황의 전환과 일상의 변화.

벌레 대신 돈을 벌지 못하는 환자로 전락한 가장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왠지 씁쓸하고, 너무 현실적이라 여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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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헤드 대드
성하성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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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첫 작품이다.

대단한 속도감으로 끝까지 몰고 가는 필력이 대단하다.

SF, 스릴러, 액션이 가미되었는데 복수를 엔진으로 끝까지 달려간다.

뇌를 스캔해서 칩에 담고, 몸은 의체로 만들어 이론적으로 영생도 가능한 시대다.

2057년이란 가까운 미래에 이런 기술이 가능한지는 의문이지만 그냥 지나가자.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탐욕은 상황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뇌가 파괴되지 않으면 뇌를 스캔해 시냅스칩을 탑재한 의체로 다시 살릴 수 있다.

이런 현실은 죽음을 마주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바꾼다.

하지만 범죄는 이런 현실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파고들어 삶을 뒤흔든다.

한 번의 접대, 그때 본 한 소년, 정의로운 선택이 복수의 불을 당긴다.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은 두 명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 명이지만 한 명은 다른 사람에 기생한 의식이다.

이 의식이 바로 천재 살인마이자 연쇄살인범인 두억시니다.

이 두억시니를 잡으러 경찰특수기동대와 함께 위험한 연희는 온서특별시에 들어갔다.

연희가 그곳에서 본 것은 남편의 모습을 한 두억시니였다.

현은 전쟁 무기 개발에 참여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팀장이다.

그가 군 장성의 요청에 의해 회사 접대 자리에 참석한다.

불편하고, 성향에도 맞지 않은 자리고, 잠깐 나온 밖에서 낯익은 소년의 모습을 발견한다.

딸의 친구이자 죽은 후 뇌가 파괴되어 되살리지 못한 아이였다.

거짓된 정보, 살린 아이를 성 노리개로 이용하려는 더러운 욕망이 엮인다.


세상의 혼탁함과 부조리는 보고 그냥 덮으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어느 순간에 나에게 다가올지 알 수 없다.

이기적으로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그 순간은 넘어갈 수 있다.

실제 현은 조금은 쉬운 길을 가는 대신 가족의 동의를 얻어 힘든 길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한 가족의 파멸로 이어졌고, 그 과정은 참혹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다른 의체로 다시 태어난 현.

죽으려는 시도조차 특별한 몸은 쉽게 막는다.

그는 복수를 바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도마뱀의 꼬리를 찾는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가 살인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잠든 그가 깨어나 자신의 시냅스칩에 든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양심이 조직의 욕망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세상.

특별한 의체를 얻었지만 그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모르는 현.

이 전투용 의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당연히 두억시니다.

이 둘은 한 몸에서 서로의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방법을 찾는다.

현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해킹과 전쟁 무기 쪽으로.

두억시니는 주저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뇌의 정보를 뽑아내는 쪽으로.

현의 주저와 양심은 어느 순간 복수심에 먹혀버린다.

이런 현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은 특수기동대의 연희 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연희에게는 정보가 부족하다.

얻은 정보는 내용이 부족하고, 속도마저 느린 경우가 많다.


적의 꼬리를 잡고 몸통을 잡으려는 시도는 쉽지 않다.

현의 의체가 혼자만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은 다른 사람이 판 함정으로 빠지게 한다.

알면서도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 새로운 전술 무기의 등장.

전투신은 박진감 넘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강렬한 액션과 미래 무기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그리고 이 잔혹한 현실에서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가족을 말할 때 놀란다.

가해자들이 그 참혹한 행동을 한 이유도 가족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명이 탐욕과 엮이고, 두억시니의 음모는 나중에 드러난다.

세계수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SF적으로 해석한 장면은 또 다른 재미다.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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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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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제목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서울을 버린다니 대단하다. 그런데 왜 버릴까?

누구는 이 도시에 살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부러워하는데.

산언덕에서 시작해 숲속 호수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한때 유행했던 수저론이다.

흙수저보다 더 낮은 똥수저를 등장시킨 것도 재밌다.

혹시 똥수저보다 더 낮은 수저는 무엇일까? 잠시 머리를 굴러본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내가 이름을 찾지 못한 것일까?

화자인 똥수저 주인공은 이름으로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단순히 목차만 보면 주인공의 신분 상승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저론의 벽은 높고 두꺼워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다만 그 수저들의 생활을 살짝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똥수저 동네에서 흙수저 동네로 이사를 가지만 신분까지 상승한 것은 아니다.

이 이사도 살던 집에 불탄 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게 된 곳이다.

지층의 방 하나짜리 집. 그래도 이전 집보다 좋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현실 속 집은 벌레와 곰팡이로 가득하다.

복지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의도가 순수했는지 의문이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 때 같은 건물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지하 창고라고 불렀다.

벌레 많고 곰팡이가 가득하지만 똥수저 동네보다 낫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동수저로 넘어가야 할 텐데 은수저 동네 이야기로 바로 넘어간다.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바로 은수저 동네다.

금수저 동네는 최고급 빌라촌인데 이곳의 풍경도 보여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런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이는 초등학생이고. 힘든 현실을 그대로 경험한다.

이 수저 동네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실현한다.

이 차별에 깊이를 더하는 존재로 초등학교 교사를 내세웠다.

그 담임이 내 준 숙제는 이 현실을 비틀어 보여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화자,

할머니와 함께 폐지를 주워 그나마 목숨을 유지한다.

아이들은 화자를 쓰레기라고 부르고 비아냥거리고 무시한다.

이 행동의 뒤에는 그들 부모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어른의 존재와 행동이 왜 중요한 지는 윤우 엄마의 말과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마지막 금수저 동네 이야기를 다룰 때 그들의 삶은 나도 쉽게 공감할 수 없다.

온몸에 비싼 물건을 휘두르지만 이들의 추악한 심성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밖에 보여주는 그들의 삶과 현실은 그 괴리가 대단하다.

현실의 파편들이 소설 곳곳에서 조용히 빛을 반사한다.


할머니는 화자를 손녀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이 소개 이면에는 어떻게 이 아이를 키우게 되었는지 살짝 알려준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화자.

이 화자의 의문에 답하는 어른들의 대답은 허망하기만 하다.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과거는 또 어떤가.

처참하고, 안타깝고, 힘겹고, 어려운 삶이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이는 포기한 채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들에게 조금씩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고 다른 의도를 의심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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