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4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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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여중 추리소설 창작반>을 재밌게 읽었다.

이 기억이 개정판으로 나온 이 소설을 선택하게 했다.

최근 청소년 소설을 틈틈이 읽는데 상당히 재밌고,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한다.

전형적인 설정을 벗어난 구성이나 전개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이제 겨우 두 권 정도 읽었지만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문장의 단단함과 예상을 벗어난 설정 등은 몰입도를 높이고 재밌다.

여기에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그리고 네 명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처음 앞부분만 읽었을 때는 어색하고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에게만 보이는 집.

그 집에서 나온 할머니의 초대와 그 집안에 있는 기이한 세 개의 문.

이 문은 올해의 마지막 날에 열리고, 아이들은 한 곳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다.

세 개의 문은 과거, 현재, 미래의 문이고, 들어간 후에는 기억을 잃는다.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시간은 멈추고, 누구나 일주일에 세 번은 와야 한다.

각각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아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이 집에 들어온다.

같이 만나는 날도 있지만 서로 엇갈리는 날들도 많다.

작가는 이 네 명의 상처 입은 청소년을 내세워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선미는 엄마가 췌장암 말기 환자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아빠는 이사를 했고, 집은 언제나 비어 있다.

자영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고,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학교 가는 것이 두렵지만 임신한 엄마를 위해 겨우 힘을 내어 가고 있다.

이수는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치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엄마에 대한 반항과 늘 날 선 반응을 보여준다.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를 가진 강민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강민은 이 집에서 분위기를 밝게 이끌고,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된다.

이 네 명의 청소년들이 어쩔 수 없이 4개월 이상 이 집에 와야 한다.

연말에 있을 선택의 문을 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서로 알아 간다.


선미가 이 집에 계속 오는 이유는 혹시 엄마의 병을 낳게 할 방법이 있을까 하는 기대다.

지영은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이 집이 제공한다.

이수도 특별하게 갈 곳이 없다 보니 이 집에 와서 머물다 간다.

가장 밝은 표정을 지닌 강민은 왜 이 집에 오는지 후반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 넷은 자주 보고, 강민의 요청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다 지영의 학교 폭력 사실이 이수를 통해 알려지는데 넷의 반응이 모두 다르다.

가장 센 척하는 이수는 죽여줄까?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가장 교과서적인 답변은 부모님께 알려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실제 엄마에게 알려졌을 때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집에 찾아온 담임의 말에는 피해자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말이 전혀 없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집안에 우체통 속에 편지를 써서 궁금한 것을 묻는다.

선미는 시간을 당기고 싶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은 거절이다.

이때 강민이 쓴 편지를 몰래 보고, 둘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지영은 등교 거부로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항하지만 가해자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지영의 친구를 통한 호출은 예상한 장면이지만 그 다음 장면은 예상을 벗어났다.

이 사건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문을 여는 데 장애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수는 몰래 이 집에 다녀가면서 기회를 이어간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과 사연들은 학교 폭력을 바로잡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현실은 본질을 보기보다 다른 소문에 더 눈길을 준다. 잔인한 현실이다.

이 현실 속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 놓고, 미래 속에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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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아일랜드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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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머릿속에 <배틀로얄>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한 잔혹한 살인 게임. 영화로만 봤다.

이 소설은 조금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술집 아일랜드에 모인 단골손님 여덟 명이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한 물건들이 이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이 선택한 물건 속에는 고기와 술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무인도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목적이 아니라 여행용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술집 마스터가 자신이 상속받은 무인도에 대해 말한다.

각자가 고른 세 가지 물건만 들고 무인도로 휴가를 가자고.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도착한 무인도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이 낭만은 하룻밤을 지난 후 깨어진다.

타고 온 배와 마스터가 사라졌고, 비디오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만 하나 있다.

삶이 무료했던 금수저 마스터가 10억 엔의 상금을 내걸고 생존게임을 강요한다.

여덟 명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최대 2명.

최소 6명이 죽어야 하고, 이들의 시체는 해변에 전시되어야 한다.

이 시체는 위성으로 확인 가능하고, 확인되면 무선 보트를 보내준다.

그리고 10억 엔의 상금도 생존자에게 주겠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먼저 공존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여덟 명 중 뒤틀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여덟 명의 남녀는 각각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회사원인 슈이치, 슈이치의 연인이자 부잣집 딸인 리리코.

유튜버인 유우, 공무원인 이츠키, 서바이벌 게임을 해본 대학생 스에히로.

평범한 직장인 가와카미, 과학학원 강사 요시다, 의사 아마노 등이다.

이들이 선택한 아이템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리리코가 슈이치를 선택하고, 자신을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생존에 필요한 아이템 하나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멤버 구성을 놓고 보면 상당 기간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다.

다양한 직업군과 경험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아마노가 제안한 방식은 생각보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악의와 억눌러져 있던 살의가 폭발하면서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살의를 표출하는 사람.

살의를 숨긴 채 몰래 사람을 죽이는 사람.

인간의 덕목을 지키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

너무나도 무력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줄 것 같은 사람.

각각의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여덟 명의 남녀들은 생존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심리 묘사는 적나라하고 불편하게 사실적이다.

화자가 바뀌면서 각 장이 달라지는데 목차를 보여줄 수 없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져온 아이템을 보면 가장 유리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가 죽게 되면 죽은 사람의 아이템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누가 죽기 전 사람들은 죽은 척하는 연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명이 섬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생기면 누가 나갈지 서로 다툰다.

생존과 함께 받게 될 거액의 상금은 남은 자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터진 살인.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진실을 둔 공방, 최약자의 위치 등.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진심과 탐욕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뛰어난 가독성, 섬세하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 간결하지만 잔혹한 설정.

가장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는 평범한 진리.

마지막까지 설정의 힘이 살아있고, 예상 외의 상황에 놀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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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지다정 외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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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단편 수상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늘 이 수상작품집이 나오면 눈길이 간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장르문학을 담고 있고, 예상한 것 이상의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대부분 낯선 작가란 것이다.

이 낯선 작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재밌다.

이 재미가 계속 이 수상작품집을 계속 읽게 하고, 기다리게 한다.

재밌게 읽다 보면, 혹은 읽고 난 후 예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만난다.

이 가능성은 장르 문학의 확장이자 발전이다.


지다정의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는 공포물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강남 중심가 재개발을 바라는 단독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서늘하다.

이 서늘함은 매일 특정한 시간이 들리는 돈까스 망치 소리가 아닌 인간의 탐욕이다.

처음에는 매일 들리는 소리가 공포를 자아내지만 그 실체는 쉽게 퇴치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싼 임차료에 넓은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다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실 거주 기간, 그 목적을 위한 싼 가격의 임차료.

화려하게 치장된 아파트 인테리어 덕분에 소득이 늘어난 주인공 영서.

성공에 대한 질투, 그 이면에 깔린 선망, 어느 순간 뒤틀리는 욕망 등이 폭주한다.


최홍준의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유명한 소설의 제목 패러디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했지만 코로나 19처럼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진 시대다.

좀비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구역에 격리시킨 채 놓아둔다.

냉동인간을 연구하던 한 연구가가 죽지 않는 좀비를 통해 생명 연장을 꿈꾼다.

좀비를 다시 인간으로 돌릴 수 있다면 수많은 의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구가 노인들을 좀비로 만드는 기회로 변한다.

좀비 인간화 의학이 개발되면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헛된 기대와 함께.

삶이 점점 더 양극화되고 힘들어지는 가족들에게 이것은 좋은 핑계다.

이 핑계가 나중에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거움으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김지나의 <청소의 신>은 배상민 소설가의 해설이 인상적이다.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두 남녀. 하지만 지위는 다르다.

화자는 모텔의 주인이고, 종수는 모텔의 청소와 기타 잡무를 담당한다.

종수가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이 불만이지만 그는 너무 일을 잘한다.

코로나 19로 오히려 수입이 더 늘어났지만 문제는 손님의 질이 문제다.

부랑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모텔에 손님으로 들이지만 문제도 늘어난다.

실제 일은 종수에게 맡겨 두고 돈을 벌면서 서로 다른 계급이란 생각을 한다.

실제 일 할 사람이 사라진 다음에 부부는 이 모델을 운영할 마음이 사라진다.

스스로 양심적인 고용주라는 말 속에 담긴 그들의 진짜 모습은 우리 주변에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건해의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는 인간의 호기심 중 하나다.

아직 양식이 되지 않는 생물 중 하나가 장어다.

인류의 과학 기술은 아직 심해 깊은 곳까지 들어갈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상력은 그 심해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해 평균 8,000미터를 넘는 곳을 탐사하는 것이 어떤 과학 기술로 가능한지는 생략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장어의 생태와 산란을 보기 위해 심해 드론으로 장어 떼를 따라 가는 것이다.

심해에서 드론을 운전하는 것은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고, 장 박사는 마지막에 어떤 것을 본 후 죽는다.

드론의 영상을 통해 가장 깊은 바다 속 해구에서 보게 되는 것을 무엇일까?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인물과 진실을 보려는 인물의 대립은 생각할 거리다.


이하서의 <톡>은 인류가 모두 바다에 잠긴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 중 일부는 잠수정을 탄 채 살아간다.

감염된 인간들은 수중류가 되어 물속에서 살아간다.

아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던 사람들은 누군가를 잠수정 밖으로 내보내 탐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삶의 의지와 욕망이 그들이 그렇게 혐오했던 수중류의 삶을 부러워한다.

점점 부스러지고, 망가지고 있는 잠수정의 상황 때문이다.

이기적인 욕망은 참담한 사건으로 이어지고, 인간성은 점점 사라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진한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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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을 빌려드립니다 - 복합문화공간
문하연 지음 / 알파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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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무대가 되는 춘하시는 춘천과 많이 닮아 있다.

서울 토박이 연재가 전 재산을 털어 산 호숫가 앞 2층 펜션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한다.

이름을 소풍으로 지었는데 홍보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전단지를 붙이러 갔다가 유아차를 끌고 나온 혜진을 처음 만난다.

한 달은 무료라고 홍보하고, 퀼트를 하는 아이 엄마들이 모인다.

네 명의 초보 엄마들이 퀼트 모임을 하면서 작은 사회의 모습을 재현한다.

이 모습을 보는 연재의 눈에는 뒷담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공간을 공짜로 빌린 이들이 커피를 주문하고, 서비스로 준 빵에 돈을 지급한다.

감격스러운 첫 매출이자 소풍의 작은 시작이다.


두 아들을 둔 엄마가 왜 홀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났을까?

카페도 아닌 복합문화공간을 연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런 호기심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하나씩 풀려나온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와 알바를 요청한 현의 등장으로 소풍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사업하는 연재에게 현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소풍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 날 김밥과 사이다라는 명찰도 만들어온다.

현의 아이디어와 홍보가 소풍의 매출을 높이고, 공간 활용도 더 많고 다양해진다.

현이 기획한 행사가 열리는 날 현은 연락도 받지 않고 잠적한다.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알바생의 일탈이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현의 사연은 학창 시절 사귄 여자 친구 희수의 자살에서 비롯한 조울증이다.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고 있는데 희수의 자살에 대한 비난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이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한다.

현에 대한 비난을 보면서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 아니 불과 몇 년 전에도 나의 입은 이런 말들을 전달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성보다 감정, 사실보다는 소문에 더 마음이 빼앗겼다.

한 학생의 자살, 이 자살로 인한 현의 조울증은 선생님의 삶도 뒤흔들었다.

이후 이런 사연들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씩 드러난다.


현의 노력과 소풍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현학적인 음악을 작곡하는 수찬, 목수로 일하면서 연재를 짝사랑하는 강훈.

현과 남매처럼 행동하는 요가 강사 제하, 처음 소풍을 찾아온 혜진 등.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읽는 재미를 주고, 연재의 속마음이 현실의 우리를 일깨운다.

현과 함께하면서 생기는 사건이나 일 등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연재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현실에 더 충실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녀가 왜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는지 알려주면서 소풍의 의미가 드러난다.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작은 연대와 위로 등은 자신들 속에 뭉쳐 있던 아픔을 토해내게 한다.

자기만의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친구들 덕분이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힐링 소설로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힐링보다는 아픔을, 이해를, 연대를 다루고 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관계를 맺는 두려움에 한 발도 내딛지 못하다가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면서 변한다.

이 변화는 이웃들의 위로와 작은 치유로 이어진다.

그냥 훑어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선택과 행동은 쉬운 것이 아니다.

불륜을 두고 벌어지는 서로 다른 입장은 또 어떤가!

괜찮아 너라서 괜찮아.”는 자신과 이웃들에 대한 주문이자 위로의 주문이다.

읽다 보면 울컥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독자마다 다른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가의 다음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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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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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이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동안 읽었던 작가의 소설 몇 편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읽었던 <뉴욕 3부작>은 전철에서 읽기 시작했었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뭔가에 홀린 듯 계속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 그의 소설들을 한 권씩 사서 모으고, 읽었는데 어느 순간 손에서 내려 놓았다.

그의 소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다른 소설가들에게 더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소설을 사서 쌓아두거나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했다.

이 마지막 작품을 읽으면서 쌓아둔 책 한두 권을 끄집어 내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늙어간다는 것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날의 날렵함과 강한 체력, 긴 집중력 등은 어느 순간 과거의 영광스러운 기억일 뿐이다.

이 소설의 앞부분은 아내 사후 홀로 늙은 바움가트너의 무력한 하루를 다룬다.

누이에게 전화하는 것을 깜박하고, 계량기 검침원을 지하로 안내하다 다리를 다친다.

검침원의 친절한 모습,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신과 아내의 과거와 과거의 기록 등으로 흘러간다.

앞부분의 무력함은 청춘의 활력과 상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아내의 어린 시절 이야기, 사랑과 상실, 그녀의 글쓰기 등이 먼저 나온다.

그녀의 첫 이야기도 그녀가 쓴 글을 통해 알려지는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 소녀가 남자들을 이기면서 얻게 된 성공과 그 후의 실패 등이 재밌게 나온다.


10년 아내를 사고로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

아내를 잃은 상실의 고통은 환지통을 앓는 듯하다.

평생 홀로 살 것 같았는데 주변 여자들을 쉼 없이 바꾸었다.

그러다 한 여성을 사랑해 결혼까지 생각하는데 그녀가 관계의 진전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을 파편적으로 보여주고, 기억은 더 먼 과거로 흘러간다.

그의 부모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 그때와는 다른 감상과 이해들.

아버지가 그에게 전달하지 못한 편지, 아버지가 바라던 삶.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던 어머니의 삶과 깊고 진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말이 떠오른다.


아내가 신생 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일을 하면서 쓴 시와 글들.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시를 선별해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었다.

교수인 자신도 몇 권의 책을 아내의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마지막 작품도 준비 중이고, 이 책에 대한 부분은 마지막에 나온다.

아내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은 젊은 날의 진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아내의 첫 시집은 느리지만 꾸준한 판매고를 올린다.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내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아 나타난다.

자신이 알던 교수의 추천, 그 학생의 열정이 바움가트너를 움직인다.

첫 장면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이때 알 수 있다.

표시되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은 노년에 얼마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지를 알려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초반에 약간 흐름을 잃었다.

이 흐름을 되찾은 것은 아내의 글이었고, 현실의 무거움은 무겁게 다가왔다.

그의 회상과 쓴 글이 나오면서 움츠렸던 생각과 마음의 문이 열렸다.

아내 안나는 첫사랑을 군대 훈련 중 허망한 사고로 잃고 하루 동안 오열했다.

이후 어떤 삶을 살다 바움가트너를 만났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젊음의 회복은 빠르다.

하지만 이 상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은 남겨진 글로 확인 가능하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만나고 맺은 수많은 관계들.

아내 잃은 상실과 살면서 맺은 관계들 속에 떠오른 기억의 편린들.

이 기억들은 나의 기억 속 단편들과 이어지고, 나의 부족함과 오만함을 떠올렸다.

나이가 들면서 몸은 말라가지만 기억의 가지들은 점점 더 풍성해진다.

바움가트너의 마지막 모험이란 단어가 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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