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리의 뼈 로컬은 재미있다
조영주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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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간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앞의 두 작품 중 읽은 것은 <크로노토피아>다.

이때 다룬 시간은 반복되는 무한의 시간이었다.

다음에 나온 책은 모르고 있다가 이 책을 통해 그 존재를 알았다.

이번에 다루는 시간은 상실의 시간이다.

치매에 의해 잊혀지는 기억을 말한다.

모든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이 치매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힘겨움 등은 이미 소설이나 주변 사람들 이야기로 충분히 봤다.

작가는 여기에 과거의 기억 속 죽음과 유골을 뒤섞고, 현실과 연결했다


윤명자. 해환의 엄마이자 <굴>이란 소설로 백만 부를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

사실에 기반을 둔 소설로 성공적인 작가 인생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런 그녀가 어느 날 치매에 걸렸다.

딸은 이제 겨우 대학교 새내기였고, 다음 해 코로나 19까지 발생했다.

학교 생활을 즐기기 전 그녀의 삶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해환은 어느 날 잠시 기억을 잃고, 치매 걸린 엄마에 몸에는 상처가 나 있다.

이런 불안하고 힘든 현실을 출판사하는 아저씨에게 상의한다.

외할아버지가 지은 평택에 있는 수북강령으로 이사하기로 한다.

실제는 수북강령 주변 아파트이지만 살기는 더 좋다.


주중 낮에는 엄마가 센터에 가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여유가 있다.

어느 날 창녀촌이 있는 쌈리의 한 집에서 아이의 유골이 발견된다.

엄마가 쓰고 있던 소설의 제목이 <쌈리의 뼈>였는데 해환에게 완성을 요청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아저씨와 함께 자료 조사를 위해 쌈리에 간다.

현장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무작위로 적은 글의 단서를 찾고자 한다.

그러다 발견한 핑크의 단서, 미니란 이름이 가진 역사 등을 알게 된다.

소설 속에 많은 미니란 이름의 여자들이 계속 죽었다.

현실에서 미니란 이름은 다른 성과 결합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이름이었다.

소설과 현실, 치매와 기억 사이를 오가면서 새로운 일들이 하나씩 터진다.


치매에 걸린 엄마가 쓴 단어들의 의미가 드러날 때.

그냥 부르는 듯한 이름이 그 주인을 찾았을 때.

힘겨운 삶에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

예상하지 못한 죽음과 치매 걸린 엄마의 연관성을 의심할 때.

그냥 평범한 일상처럼 보였던 것들이 서로 엮이고 꼬인다.

삶의 힘겨움을 벗어나기 위해 단맛에 중독된 사탕만 먹는다.

소설과 현실 속에서 혼란을 겪고, 이 괴로움을 토해내면서 위로를 얻는다.

갑자기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소설은 완성되고, 자부심 가득하다.

하지만 이 완성은 파격적이고, 자신의 출생에 대한 어긋난 환상이다.


의심은 불안으로 변하고, 불안감은 누군가의 위로를 통한 안도를 바란다.

이때 등장하는 전직 미나이자 블랑크 헤어의 디자이너다.

미용실 앞에는 붕어빵을 파는 할머니가 계시지만 치매인 듯하다.

작가는 여기서 교묘하게 독자의 시선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이 시선은 해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오해는 상황 판단에 문제를 불러온다.

의심스러운 죽음, 늦은 밤 엄마의 외출, 소설 속 살인 등이 엮인다.

해환의 꿈 속에 나오는 살인 장면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소설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나의 기억은 정확한 것일까?

불어나는 의심과 불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 밝혀지는 진실.

너무 갑작스러워 당혹스럽고, 머릿속에서 놓친 것들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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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 레이디가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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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전작은 아직 읽기 전이고, 이번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그리고 나의 오독 하나를 설명하자면 전작과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착각한 것이다.

이 오독은 읽으면서 사라졌지만 한동안 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이런 오독과 상관없이 1막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추리소설로 출간해도 될 정도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고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오마주했지만 살짝 비틀었다.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거대한 밀실인 섬에 차려놓고 참혹하게 풀어간다.

1막의 마지막과 이어지는 2막의 연쇄살인은 한참 뒤로 가서야 그 연결 고리가 드러난다.

2막도 역시 크리스티의 <ABC 살인 사건>의 오마주다.


일곱 명의 남녀가 무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숙박은 해상 코티지에서 머물면 되고,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이다.

유일하게 외부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섬에 있는 공중전화다.

섬에 머물 8월4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이들과 관리인 구조 이외 다른 사람은 없다.

8월 10일이 되면 다시 데리고 갈 배가 도착할 예정이다.

일곱 청춘들은 디지털 디톡스를 말하면서 자신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일곱 명 중 한 명이 나머지 여섯 명을 비소로 모두 죽이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히토이고, 다른 여섯 명과 친해진 것은 이사 알바에서 만난 오오이시를 통해서다.

히토를 제외한 여섯 명은 학창 시절 한 폭력과 화재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히토가 여섯 명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 폭력 사건 때문이다.

같은 방을 사용하던 선배가 이들의 폭력 때문에 혀가 잘리는 피해를 입었다.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던 둘의 미래가 한순간에 박살 났다.

이후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히토는 본명을 숨긴 채 이들과 가까워졌다.

히토는 섬에 들어오기 전에 이들을 모두 독살할 것이란 사실을 8월 9일 예약 발송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이 머문 첫 날 하시모토가 밀실 살인으로 죽는다.

얼굴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정도로 구타당했고, 혀도 잘린 채다.

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열쇠는 방안에 있었고, 창밖은 바다다.

누가 왜 죽였는지, 밀실의 비밀은 무엇인지 등의 의문이 생긴다.

이 이야기의 화자가 여섯 명을 모두 죽이려는 히토란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히토의 살인 계획은 갑작스러운 연쇄 살인으로 망가진다.

분노가 치솟고, 자신이 죽이지 않은 살인으로 누명을 쓸 수 있다.

수영으로 섬을 벗어나려고 하다 오히려 부상만 당한 채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다.

그가 벗어나려고 한 것은 범행 예약 발송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되어 그들을 데리러 배가 오기 전까지 섬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

유일한 전화기는 히토가 이미 선을 절단해 사용불가다.

거대한 밀실인 섬, 다른 외부인이 없다면 이들 중에 살인범이 있다.

그리고 한 명씩 사람들이 죽는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 순으로.

히토가 아니라면 누가, 왜 이런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마지막에 살짝 단서를 하나 만들어둔 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2막은 3년이 지난 시점이고, 히토의 범죄 예약 발송이 알려진 뒤다.

오사카 클린센터 수거작업원 마리아가 작업 중 규격 외 봉투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은 마리아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사전 청취와 데리고 온 이유를 설명한다.

이 사건 포함 이미 세 명이 살해당했는데 모두 처음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란 것이다.

여기서부터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지점을 하나씩 만든다.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여행사 이코쿠와 다른 형사 한 명을 붙여준다.

이코쿠는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고, 연쇄살인 수사에서 베제되었다.

조금씩 풀려나오는 마리아의 과거, 마리아와 함께 사는 오빠의 정체

기존 조사를 바탕으로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보는 이코쿠.

그 시각 중 하나가 애거사 크리스티와 다른 소설가들의 살인 설정이다.


고전 미스터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둘을 엮었다는 점이 재밌다.

집단 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연쇄살인범에 대한 평가도 눈여겨 볼만 하다.

당해도 싸’ 라는 해시태그는 고민의 흔적이 아닌 순간적인 감정의 배설이다.

여섯 명을 죽이려고 한 히토가 연쇄살인 속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 히토를 구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도.

긴 시간을 들여 여섯 명을 죽이려고 한 히토는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이 연쇄살인범의 행동인데 이해하기 힘들지만 서늘했다.

두툼한 분량이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남겨 둔 단서 때문에 범인 예측이 쉬운 것은 살짝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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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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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ANGST(앙스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유채색의 공포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그려내려고 한다.

일상과 공포라는 단어가 기존 호러물의 이미지를 먼저 심어주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공포는 초자연적인 것이나 인간의 살의 등이 아니다.

자신이 살면서 털어내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모멸과 혐오의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은 일상 속에서 자리잡고 있다가 갑자기 불쑥 튀어 오른다.

읽다 보면 기대와 다른 구성과 전개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주인공 연화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급작스럽고 돌출적인 부분이 많다.

적나라한 욕설과 재이에 대한 집착과 과거의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했다.


연화. 이 이름은 엄마가 개명하기 전 자신의 이름을 딸에게 물려주었다.

개명 이후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황당한 상황은 분명하다.

어릴 때 연화는 예뻐 어린이 모델로 활동했다.

촬영할 때 어린 연화를 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연화가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촬영 현장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자세는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딸의 모델 활동에 모든 수입이 몰려 있는 엄마는 딸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

연화는 엄마의 차를 운전해 사람을 치여 죽이는 사건을 일으킨다.

이 사건으로 소년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평생 선생을 만난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면서 한문을 배웠고, 현재 직업도 그렇게 얻었다.


연화는 승정원일기를 번역하는 연구소에서 근무한다.

이것이 다 번역되려면 몇 십 년이 지니야 가능하다.

그녀의 일상은 단조롭고, 십 년 전 재이와의 만남은 큰 기쁨이었다.

학교에서 한달 무료로 나누어진 수영장 사용권을 통해 만났다.

그녀의 눈에 재이의 몸매는 너무 아름다워 계속 눈길이 갔다.

실제 재이는 현역 모델로 활약하는 중이고, 이때부터 둘은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된 둘은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연화는 자신의 소년원 생활을 속인다.

재이는 한 번 이혼했고, 모델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러다 미성년 재이를 반 누드를 찍은 사진사 턱수염의 인터뷰가 나온다.

재이는 과거 사실 폭로를 고민을 하는데 연화는 폭로를 주장한다.

자신이 저지른 자동차 살인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환경과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두 여인.

박사 학위와 미래가 보장된 듯한 직업을 가진 연화.

비수기에 먹고 살기 위해 카페 알바를 해야 하는 재이.

현실의 가혹함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재이는 알바하는 곳에서 만난 언니 로사가 더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것 같았다.

같은 이혼 경험, 무대에서 본 듯한 누군가의 모습에 대한 로사의 말 등.

하지만 로사란 이름은 연화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소년원에 있었고, 청소년 매춘 중개로 들어온 그 로사를 말이다.

다시 과거의 망령들이 연화 주변에 몰려들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방식으로 파고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변에 자신에 대한 것들을 많이 흘리고 살아간다.

연구자 연화는 SNS 등을 통해 턱수염과 로사를 파헤친다.

턱수염 조사를 통해 그를 질투하는 킴을 발견하고,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로사의 유튜브를 보면서 어린 시절 거짓과 현재의 거짓이 만나고 엮이는 지점을 발견한다.

깊게 파고들어가니 로사가 이전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보인다.

그 화면 속에서 재이를 찾는 모습은 집착과 광기의 변주다.

그러다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너지고, 어느 순간 연화는 폭주한다.

이 폭주하는 마음에 안식을 과거의 공간과 선생님을 통해 얻는다.

그리고 자신을 평생 집어삼키고 있던 감정들이 재이의 말 속에서 흐트러진다.

이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내 속에 담긴 이런 감정들을 잠시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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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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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권이다.

이 전집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읽고 있다.

사 놓고, 선물 받은 책들을 생각하면 다 읽을 자신이 솔직히 없다.

중간 중간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전집에 포함되면서 깔 맞춤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은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번역본이 여럿 있다는 것은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집을 뒤지면 이 책도 최소 두 종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선물 받았고,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로맨스다.

이 소설은 작가가 이십 대에 탈고한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유고작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출간 과정 등은 작품 해설에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열일곱 살 캐서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작가의 개입이 곳곳에 나온다.

캐서린의 어린 시절 외모에 대한 평가는 박하고, 선머슴처럼 자랐다.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앨런 부부의 초청으로 휴양 도시이자 사교 모임이 활발한 바스로 간다.

제대로 된 친구도 없고, 앨런 부인의 불친절한 안내는 사교 모임 적응을 힘들게 한다.

이때 이저벨라 소프와 절친이 되면서 바스의 생활이 즐거워진다.

이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은 헨리 틸리의 만나면서부터다.


헨리를 만나 그와의 관계를 진척시키고 싶지만 그는 모임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유일한 즐거움 중 하나가 이저벨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저벨라와 함께 거리를 걷다 그녀의 오빠 존과 캐서린의 제임스 오빠를 만난다.

둘은 같은 대학 친구이고, 이번에 같이 바스에 며칠 머물기 위해 왔다.

존은 캐서린에게 열렬히 구애를 하지만 캐서린의 마음은 틸리 남매에게 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존의 행동은 무례하고 거짓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 사교 사회를 잘 모르는 캐서린은 이저벨라와 오빠의 요청에 흔들린다.

이 장면들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어린 소녀의 갈등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제임스 오빠와 이저벨라가 가까워지면서 존의 요구는 더욱 강해진다.

한 번의 실수는 틸리 남매의 오해를 불러오고, 상황은 알 수 없게 흘러간다.


캐서린의 애타는 마음. 존 소프의 무대포적인 구애 행위.

존의 본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오빠가 보여주는 반응들.

조금 밋밋하다고 생각하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갈등의 조짐들이 보인다.

이저벨라와 제임스 오빠의 약혼, 미루어진 결혼.

바스의 무대에 나타난 헨리의 형인 틸리 대위의 이저벨라에 대한 구애 행위들.

이저벨라가 이 구애에 대해 싫다고 말하지만 왠지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다.

그리고 틸리 장군으로부터 초대를 받으면서 틸리 집안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

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캐서린은 틸리 집안의 저택인 노생거 사원으로 초대받는다.

오래된 사원에 대한 캐서린의 환상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실 2부로 넘어오면서 캐서린의 환상과 현실이 재미와 속도감을 높여준다.

오래된 사원에 대한 환상은 소설 등을 읽으면서 상상한 것들이다.

극 중 소설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 등은 그 시대 분위기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노생거 사원에 머물면서 틸리 장군이 보여주는 강압적인 모습은 그녀를 불안하게 한다.

가끔 너무 친절하게 그녀를 대하는 장군의 모습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장군의 충동적인 성격과 친절한 행동은 후반부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너무 급작스러운 마무리로 이어지는데 왠지 아쉽다.

이전에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달리 조금 거칠다는 느낌도 있다.

이 시대 소설을 읽을 때면 그들의 삶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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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알고 있다
모리 바지루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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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세이초상 수상작이다.

신인 작가의 충격적인 데뷔작!’이란 흔한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너무 흔한 문구라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3장을 지나면서 이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앞장을 계속 찾아보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과 단어들을 찾았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 속에 이야기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다.

이 기발한 발상과 각 단편이 주는 재미는 섬세한 구성과 잘 어우러져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의 이름을 보고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개별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권의 책 속에 다섯 장르 소설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각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에서 시작해 연애소설로 끝나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겨울의 불꽃놀이 소리와 장면이다.

처음에는 그냥 하나의 배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SF소설을 읽다 보면 이 불꽃놀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기억력이 뛰어나다면 이런 연관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장에 나온 아오카게 탐정의 활약은 대단하다.

야쿠자의 시체 발견, 탐정 의뢰, 터무니없는 의뢰비 청구.

CCTV 자료 등을 생각하면 범인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조사 의뢰를 받은 후 그녀가 들려주는 추리 결과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일이다.

추리소설에서 자주 나왔던 얼굴이 없는 시체의 정체를 둘러싼 추리와 닮았다.

하지만 이 추리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진짜 탐정의 추리는 여기에서 풀려나온다. 뻔한 설정이지만 재밌다.

이 단편 속에 다음 단편에 나올 단서들을 하나씩 심어두었다.

아오카게가 응원하는 고등학생 만담 콤비의 이야기가 청춘소설에.

조수 하루사키가 풀고 싶었던 미스터리한 사건은 판타지소설에.

친구의 연애 이야기는 마지막 연애소설에 나오고, 에필로그 이름으로 모든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 단편만 놓고 보면 이 연관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보통의 연작 단편들이 장르가 비슷한 데 이 소설은 완전히 다른 장르들로 구성했다.

하나의 단편 속에 무심코 본 장면이 나중에 다른 이야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곳곳에서 나오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나의 상상력이 덧씌워진다.

물론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면 이야기의 개연성이 많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재미와 함께 장르의 매력들이 각 단편 속에서 펼쳐진다.

피를 빠는 흡혈귀 대신 뼈를 빠는 흡골족이라니, 우습지만 재밌다.

지구를 암계라 부르고 마력 때문에 얼굴 인식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니.

반지의 능력으로 비행하고, 집을 짓고, 불꽃을 만들어내는 SF 미래는 또 어떤가.

독자만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독자의 능력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누군가 친절하게 목록을 만들어 준다면 책을 뒤적이며 내가 놓친 것을 찾고 싶다.

다양한 장르 소설을 즐기고, 연작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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