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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 ㅣ 레이디가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4월
평점 :
에도가와 란포 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전작은 아직 읽기 전이고, 이번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그리고 나의 오독 하나를 설명하자면 전작과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착각한 것이다.
이 오독은 읽으면서 사라졌지만 한동안 꽤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이런 오독과 상관없이 1막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추리소설로 출간해도 될 정도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고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오마주했지만 살짝 비틀었다.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거대한 밀실인 섬에 차려놓고 참혹하게 풀어간다.
1막의 마지막과 이어지는 2막의 연쇄살인은 한참 뒤로 가서야 그 연결 고리가 드러난다.
2막도 역시 크리스티의 <ABC 살인 사건>의 오마주다.
일곱 명의 남녀가 무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숙박은 해상 코티지에서 머물면 되고,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이다.
유일하게 외부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섬에 있는 공중전화다.
섬에 머물 8월4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이들과 관리인 구조 이외 다른 사람은 없다.
8월 10일이 되면 다시 데리고 갈 배가 도착할 예정이다.
일곱 청춘들은 디지털 디톡스를 말하면서 자신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일곱 명 중 한 명이 나머지 여섯 명을 비소로 모두 죽이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히토이고, 다른 여섯 명과 친해진 것은 이사 알바에서 만난 오오이시를 통해서다.
히토를 제외한 여섯 명은 학창 시절 한 폭력과 화재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히토가 여섯 명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그 폭력 사건 때문이다.
같은 방을 사용하던 선배가 이들의 폭력 때문에 혀가 잘리는 피해를 입었다.
프로 축구 선수를 꿈꾸던 둘의 미래가 한순간에 박살 났다.
이후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히토는 본명을 숨긴 채 이들과 가까워졌다.
히토는 섬에 들어오기 전에 이들을 모두 독살할 것이란 사실을 8월 9일 예약 발송해 놓았다.
그런데 이들이 머문 첫 날 하시모토가 밀실 살인으로 죽는다.
얼굴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정도로 구타당했고, 혀도 잘린 채다.
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열쇠는 방안에 있었고, 창밖은 바다다.
누가 왜 죽였는지, 밀실의 비밀은 무엇인지 등의 의문이 생긴다.
이 이야기의 화자가 여섯 명을 모두 죽이려는 히토란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히토의 살인 계획은 갑작스러운 연쇄 살인으로 망가진다.
분노가 치솟고, 자신이 죽이지 않은 살인으로 누명을 쓸 수 있다.
수영으로 섬을 벗어나려고 하다 오히려 부상만 당한 채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다.
그가 벗어나려고 한 것은 범행 예약 발송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되어 그들을 데리러 배가 오기 전까지 섬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
유일한 전화기는 히토가 이미 선을 절단해 사용불가다.
거대한 밀실인 섬, 다른 외부인이 없다면 이들 중에 살인범이 있다.
그리고 한 명씩 사람들이 죽는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 순으로.
히토가 아니라면 누가, 왜 이런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마지막에 살짝 단서를 하나 만들어둔 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2막은 3년이 지난 시점이고, 히토의 범죄 예약 발송이 알려진 뒤다.
오사카 클린센터 수거작업원 마리아가 작업 중 규격 외 봉투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은 마리아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사전 청취와 데리고 온 이유를 설명한다.
이 사건 포함 이미 세 명이 살해당했는데 모두 처음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란 것이다.
여기서부터 앞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지점을 하나씩 만든다.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여행사 이코쿠와 다른 형사 한 명을 붙여준다.
이코쿠는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고, 연쇄살인 수사에서 베제되었다.
조금씩 풀려나오는 마리아의 과거, 마리아와 함께 사는 오빠의 정체
기존 조사를 바탕으로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보는 이코쿠.
그 시각 중 하나가 애거사 크리스티와 다른 소설가들의 살인 설정이다.
고전 미스터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둘을 엮었다는 점이 재밌다.
집단 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연쇄살인범에 대한 평가도 눈여겨 볼만 하다.
‘당해도 싸’ 라는 해시태그는 고민의 흔적이 아닌 순간적인 감정의 배설이다.
여섯 명을 죽이려고 한 히토가 연쇄살인 속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 히토를 구하기 위해 그들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도.
긴 시간을 들여 여섯 명을 죽이려고 한 히토는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이 연쇄살인범의 행동인데 이해하기 힘들지만 서늘했다.
두툼한 분량이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 노골적으로 남겨 둔 단서 때문에 범인 예측이 쉬운 것은 살짝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