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실망시킨 적이 없던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등장!!입니다. 어라, 근데 책을 받아보니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얇아요. 페이지 수가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해리 보슈 시리즈들에 비하면 절반 정도의 분량이라고 할까요. 마구 복잡한 사건은 아닌가보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위기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도 그 동안 보슈 시리즈에서 맛보았던 모든 것들의 압축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그 동안의 해리 보슈 시리즈의 두께 때문에 쉽게 이 시리즈를 시작하지 못하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입문서’ 정도로 가볍게 읽어보셔도 될 듯해요. 그렇게 발을 담그기 시작하면 저처럼 출간되는 족족 사들이는 팬이 되실 거에요. 훗.

이번 작품은 표지부터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보라색과 자주색이 어우러진 도시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어요. 전혀 혼란스러워보이지 않는 도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고요함을 품고 있는 도시의 모습. [혼돈의 도시]에서는 [시인의 계곡]과 [에코 파크]에 등장했던 FBI 요원 레이철 월링도 재등장하면서 보슈와 은근한 로맨스 라인을 지속시키기도 한답니다. 사립탐정 일을 그만두고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으로 복귀한 보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처형당한 듯 뒤통수에 두 발의 총을 맞고 사망한 남자의 시체. 잠도 자지 않고 사건 전화를 기다리던 보슈는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고 레이철과 맞닥뜨리죠. 그녀가 FBI 요원으로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을 한 보슈는 노련한 기법으로 진실을 알아냅니다. 살해당한 남자는 방사능물질 접근권한을 가진 의학물리학자로 그가 병원 금고에서 세슘을 대량으로 운반한 것까지 알게 된 보슈. 최대한 빨리 세슘을 찾아내려는 레이철과 살인사건으로서 범인을 밝히려는 보슈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또 멋진 한 팀으로 수사를 시작해요.

엄청난 테러의 위험을 안고 시작된 수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사건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해요. 저로서는 'Life is simple‘ 이라는 문구가 생각나는 그런 케이스였다고 할까요.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은 단순한 사건이었지만 캐릭터, 스토리, 스릴러로서의 한 방까지 유감없이 갖춘 작품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여기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의 평이 있네요.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작품은 코넬리의 표준을 보여준다. 코넬리의 팬들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그가 가장 효과적으로 플롯, 인물의 성격 묘사, 그리고 고유의 색을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매력 넘치는 보슈(+이야기)입니다. 레이철과의 은근한 줄다리기는 이대로 끝을 맺지 말고 그냥 줄다리기로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 네임 이즈 메모리
앤 브래셰어스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전생, 윤회라는 단어에는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예전부터 이어져오는 무엇이 있다는 것, 죽음 너머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생명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이 한층 두터워지는 듯해요. 홀로 이 세상을 거듭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찌릿합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에 대한 갈망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순간을 붙잡으려는 허무한 몸짓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애달픈 존재들이니까요. 그 순간들 속에서 전생이라는 것, 다시 태어나 사랑한다는 것은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겠죠.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 말고 다른 어떤 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추억과 마음은 더 풍요로워질까요, 더 외로워지게 될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알 수 없고 어쩐지 나만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조차 이루지 못했던 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면요.

 

대니얼의 처음 기억은 541년 북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비잔티움의 시민이었던 대니얼과 그의 형 조아킴은 비잔티움에 대항하는 베르베르족을 무찌르러 그들의 땅으로 향하죠. 그 곳에서 조아킴의 판단 부족으로 엉뚱한 마을을 습격하게 되고 대니얼은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 소녀 소피아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합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억겁의 시간 속 사랑을 잃었고 또 좇게 된 남자 대니얼. 형의 판단 부족을 상부에 보고하고 그와 형은 비뚤어진 운명의 선을 타게 됩니다. 각각의 생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태어날 때마다 전생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게 된 대니얼은 소피아와의 만남을 염원하지만 얽히고 꼬여버린 운명의 실타래는 쉽사리 풀리지 않죠. 환생한 형의 아내로 직접적인 만남을 갖게 된 대니얼과 소피아이지만 그들 사이에 서 있는 조아킴의 존재는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맞추지 못한 채 계속되는 그들의 만남. 1900년대 초반, 잉글랜드 해스턴배리 저택에서 죽어가는 병사와 간호사로 소피아를 다시 만난 대니얼은 그들의 전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고, 마침내 소피아의 마음을 얻지만 대니얼은 부상이 심해져 다시 죽음을 맞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꼭 그를 기억하겠다는 소피아의 약속을 품고 또 다시 환생한 대니얼의 눈앞에 드디어 소피아의 환생 루시가 나타납니다.

 

대니얼의 계속되는 환생은 축복이라기보다 고통에 가깝습니다. 환생 자체라기보다 자신이 살았던 시간에 관한 모든 기억이요. 애처로울 정도로 안타깝고 슬퍼요. 예전에 전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전생은 무엇이었을까 무척 궁금한 적이 있었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생과 인연의 시작에만 얽매이면 현재의 삶에 충실할 수 없으니까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덕분에 대니얼의 삶 속에는 소피아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허무할 뿐입니다. 심지어 부모님조차도요. 그런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소피아만 찾아 헤매고 그녀만 바라보다 이루어지지 않고 또다시 맞게 되었던 죽음들. 한 번의 삶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대니얼의 그런 시간들이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에요.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제가 소피아같은 존재가 된다면 그런 그의 시간들을 알아챘을 때 무척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이야기는 현재에서 자신의 전생을 알아가는 루시의 시점, 그녀를 사랑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대니얼의 시점과 대니얼이 죽 살아온 전생의 이야기들이 교차되며 진행됩니다. 소피아와의 인연의 시작, 그녀를 사랑하게 된 시간, 그리고 운명의 훼방꾼 조아킴. 다음 생에서는 꼭 대니얼을 기억하겠다던 소피아의 맹세는 시간과 죽음을 뛰어넘어 루시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과연 그들의 사랑은 완성될 수 있을까요. 억겁의 시간 속을 살아낸 대니얼의 독백들이 잔잔한 감동과 설렘을 주는 붉은 실의 인연에 관한 아련한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다고 일컬어지는 5·7·5‘의 열 일곱자로 된 한 줄의 정형시이다. 하이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면서였는데 사실 그 때도 하이쿠의 매력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었다. 나에게 하이쿠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시험을 위해 누가 무엇을 지었는지 알아두어야 하는 시였기 때문이다. 사실 5·7·5의 짧은 시를 읽고 무엇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시인이 본 것을 내가 똑같이 보고 있지 않으며, 그가 느낀 감정을 내가 오롯이 느낄 수 없으므로. 그럼에도 내게 하이쿠는 우리나라의 시와는 다른 차원의 처연함, 애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아마도 그것은 내가 아직까지 외우고 있는 한 줄의 와카와 닿아있는 듯한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おもいつつ寝ればやひとのみえつらむ夢と知りせばさめざらましを

생각하면서 잠들었더니 꿈에서 그를 보았다, 꿈인 줄 알았다면 깨지말 것을 그랬다는 연정의 마음을 노래하는 이 시는 와카 중에서도 유명하기로 꼽힌다. 이 노래에서 느껴지는 애잔한 분위기가, 어쩐지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공식처럼 일본의 시에 모두 대입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쯔오 바쇼, 고바야시 잇사, 요사 부손 등으로 대표되는 하이쿠는 언어의 기교를 중시한다기보다 삶의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앞의 와카처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데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하이쿠뿐만 아니라 류시화 시인의 해설이 들어가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을 눈여겨볼 수 있게 해준다.

하이쿠가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것은 ‘진실성’ 때문이다. 하이쿠 자체가, 언어적 기교가 시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시대에 반기를 들 듯 진실한 경험에 얼마나 가 닿았는가를 좋은 시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衣替えて座って見てもひとりかな

옷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 봐도 혼자여라

류시화 시인의 해설에 따르면 ‘혼자’는 비관도 동정도 아닌 혼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단어일 뿐이다. 꾸밈없이 자기연민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치장과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성이고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를 중시하기 때문에 시적인 맛, 읽는 맛이 떨어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바쇼의 제자인 기카쿠의 작품을 바쇼가 고쳐 쓴 것이 있다.

赤とんぼ羽根を取ったら唐辛子

고추잠자리 날개를 뽑으면 고추

唐辛子羽をつけたら赤とんぼ

고추에 날개를 붙이면 고추잠자리

하이쿠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고쳐썼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이 외에도 계어(계절어)를 사용하거나 단어의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한 시들을 읽어보면 이것이 바로 언어유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바쇼와 잇사, 부손 등 이미 알고 있던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았지만 그 외 기카쿠나 란세쓰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새로이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작가들의 사연, 배경 등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그들의 작품을 한층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꽤 두껍기도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작품을 꼼꼼이 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작품을 읽는 동안 나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 있다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들이 있던 방 안에, 대청마루에, 여름이 아닌 가을에. 어느 계절에 읽어도 좋을 멋진 작품들이 가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밟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낮잠을 잔 데다 바람이 거세 창문이 소란스럽게 덜컹거리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이 뻑뻑해서 책읽기도 싫어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고정한 프로는 <사랑과 전쟁>. 좋지 않은 이야기들은 유독 머릿속에 쉽게 남는다. 영향을 받기도 쉽다. 그래서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프로였지만 시간은 밤을 넘고 새벽을 건너 아침을 향해가던 때라 취침예약을 해놓고 멍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 날의 주제는 <못생긴 남편>. 앞부분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신부대기실에서 신부가 울상을 짓고 있는 데다 찾아오는 친구들은 신부를 불쌍해하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기에 신랑이 정말 못생겼구나 짐작은 했다. 결혼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변호사인 신랑의 선물공세와 주위사정에 의해 쫓기듯 결혼하게 됐다는 신부의 넋두리 뒤에 등장한 그의 얼굴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못생겼었다. 물론 분장을 과도하게 한 탓도 있겠지만 코주부 코에 툭 튀어나와 다물어지지 않는 입, 고르지 않다는 표현도 과분할 정도로 뒤틀린 치열. 아내는 아이를 임신한 뒤로 남편이 자기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자기 할 도리는 다 했다며 육아를 남편에게 맡긴 채 다른 남자를 만나며 밖으로 겉돌기 시작한다.

예전 알랭 드 보통의 [너를 사랑한다는 건] 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발톱이 발에 붙어 있으면 그건 괜찮아. 하지만 일단 떨어져 나가면 그건 쓰레기잖아. 예를 들어, 사람 머리에 난 머리카락을 보는 것하고 욕조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보는 건 다르잖아.

그런데 왜 발톱을 깎는 게 섹스를 하는 것보다 더 친밀한 거야?

섹스를 하는 상대는 그 앞에서 발톱을 깎아도 창피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일 뿐이야.

나는 이 문장들을 보면서 결국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가장 부끄럽고 창피한 부분을 공유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사랑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는 결혼은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깊은 부끄러운 부분들을 공유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해도 헤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선물공세와 남편의 경제력에 떠밀려 결혼한 신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쳐다보기만 해도 싫고 밥 먹는 모습도 꼴 보기 싫어지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 약속을 한 그녀의 어리석음을 탓할 일이지만 그것이 과연 남의 일이기만 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그런 때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가 밥 먹는 모습, 걸음걸이, 말투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사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그 모든 것들에 진저리를 치게 되는 날이. 발톱을 깎는 그의 모습이 싫어지게 되는 날이.

루이스 어드리크의 [그림자밟기]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아내 아이린과 그런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는 남편 길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마음에 그녀가 쓰는 일기를 훔쳐보는 길. 그리고 그런 길의 행동을 알아채고 블루 노트북과 레드 다이어리, 두 권의 일기장을 만드는 아이린. 아이린은 블루 노트북에는 진실을, 레드 다이어리에는 길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용을 적으며 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화가와 모델로 만나 한 때는 깊은 친밀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애정을 쏟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나고, 비뚤어진 욕망만이 그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아내를 모델로 그녀의 속살까지 화폭에 옮겨담으며 그녀의 이미지를 통해 예술가의 혼을 불태우려했던 길. 그런 남편 옆에서 타인에게 소모되는 이미지가 더 이상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주체성을 되찾고 싶어하는 아이린은 이혼을 요구한다.

아이린은 생각했다. 이미지는 사람이 아냐. 심지어 사람의 그림자도 못 돼. 그러니 이미지처럼 모호한 것을 묘사한 그림, 설령 비약이나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그림에 굳이 상처받을 필요는 없잖아?

 

그들의 관계는 기괴하다. 사랑이라기보다 이제는 집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길의 언행과 그를 감싸안는 듯 내치는 아이린의 모습. 특히 마지막에서 보여지는 아이린의 선택-그것이 정말 그녀의 선택일까 싶기도 하다-을 보면 그녀의 길에 대한 감정도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린은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 위니 제인은 아이린에게 자갈로 그림자를 덮어 없애려 하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로 병자들을 치료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자기 그림자에서 힘을 얻는 어느 사악한 위디고 전사는 딱 정오만되면 어린 소녀에게도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영혼은 그림자를 통해 빼앗을 수 있었다. 이것을 오지브웨 언어에서는 ‘와바무지차그완’이라고 하는데, 거울을 뜻하는 이 말은 그림자와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영혼은 눈에 보인다는 것. 길은 아이린을 그리면서 그녀의 그림자를 밟았다. 그녀가 아무리 기를 써도 그의 발에 짓밟힌 그림자의 실타래를 당길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을 통해 부부사이에서의 소유라는 개념과 애증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작가는 대학시절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마이클 도리스와 결혼했지만 16년의 결혼생활 끝에 종지부를 찍었다. 아이린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길에게는 남편 마이클의 모습을 투영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한 바 있다고 고백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이 작품을 어렵게 느꼈던 이유는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것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엮이지 않는다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을 것이므로. 지금의 나는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다. 손에 잡힐 것처럼 잡히지 않는 생각들이 있다.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 누군가와 함께 보내게 된다면 이 작품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지독하게 길을 밀어내고 싶어했지만 그의 심장에서 흔들리지 않는 빛을 봤을지도 모를 아이린의 선택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이, 진실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이지요?”

“벌을 주기 위해서지요. 백성들에게 전쟁의 상처를 남기고, 수많은 여인들로 하여금 목숨을 끊게 만든 죄. 제 아내와 딸아이를 잃어버리게 만든 죄. 왜 아무도 벌을 받지 않습니까? 저는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죄 지은 자에게 벌을 주어야겠습니다.”

기묘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4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자 했다. 그 날 그 시각에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 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와 사람들을 지켜야 했던 선장과 선원들은 제 목숨 살리고자 그 책임을 버렸고, 애꿎은 생명들이 대신 값을 치렀다. 국무총리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했지만 이어진 인사의 난항으로 그는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선장과 선원들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점점 잦아지고,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던 방송들도 이제 다른 사건들을 보도하느라 바쁘다. 백성들을 버려두고 홀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 가장 먼저 탈출하면서 자신의 짐들을 싣느라 백성들 태울 자리 하나 만들지 못했던 강화도 책임자, 청에게 끌려가면 어떤 꼴을 당할지 너무나 빤히 보여 강화도 앞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인들. 백성과 나라를 돌봐야 했음에도 가장 먼저 도망친 사람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소름끼치게도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소설 [이신]은 이씨의 신하로 살고자 했으나 다른 왕을 섬기게 된 ‘이신’의 이야기다. 그의 복수극이자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남자의 애처로운 고백이기도 하다. 얼자로 태어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전에 계해년의 반정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광해군의 내금위장으로 끝까지 그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고, 이신은 친우 유병기의 누이이자 동경하던 소녀인 선화, 어머니, 동생 숙이와 함께 산으로 도망간다. 선화와 연을 맺었고, 딸 난이를 얻었으며, 갖바치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일어난 정묘호란.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청으로 끌려갔으나 청 태종인 홍타이지의 눈에 들어 관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이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청의 칙사로서 다시 조선을 찾는다. 조선은 변한 것이 없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무능한 관리자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반정에 성공하여 왕의 자리를 차지한 임금은 단지 반정공신들의 하수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 받는 것은 백성들, 그 중에서도 여인들이었다. 환향녀라는 이름으로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자진을 강요당하고, 쫓겨나고, 살해당했다.

돌아온 여인들과 이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왕에게 주청드리던 사대부들의 모습은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노비와 다르지 않다. 전쟁에 졌고, 민심은 어지러워졌고, 백성의 원성은 천지를 울리는 시대를 만든 것은 그들의 대의와 명분 때문이었음에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 대의와 명분을 버리지 못한 채 여인들을 내친다. 일을 벌이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 제 배 두드리며 권리만 누리면서 의무와 책임은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가해버린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하는 이는 누구인가. 회절강을 만들어 돌아오는 여인들이 그 곳에서 정절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하고 몸을 씻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사대부들이 그녀들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먼저 몸을 씻었어야 하지 않을까. 400년 전에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애꿎은 목숨들만 사라져갔었다.

그런 어지러움 속에서 이신은 꿈을 꾼다. 정묘호란 당시 아내 선화와 함께 도망치던 때의 꿈을. 꿈속에서 그는 결코 그녀를 구해낼 수 없고, 오히려 강화도에서 가장 먼저 도망쳤던 김흥진이 그의 앞을 막아선다. 아내의 등에 화살이 박히고 어머니와 누이는 차가운 얼음물 속으로 빠지던 그 때. 김흥진을 죽여야 한다는 격렬한 살기 속에서 잠에서 깬 이신은 칼을 쥐고 그의 집을 찾지만 뜻밖에도 칼에 찔려 절명한 김흥진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자객과의 대치. 하지만 그 집을 찾은 제 삼의 인물에 의해 자객은 살해되고, 마치 꿈에서 일어난 듯 현실감각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내 선화와 비슷한 여인을 발견한다. 아내의 행방을 쫓는 와중 이신은 역모의 낌새를 알아채고, 인조로부터 반정공신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받은 채 심상찮은 흐름에 휩쓸린다.

권력이 무엇인가 싶다. 수많은 사대부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자리가 과연 많은 백성의 생명보다 귀중했던가 알고 싶다. 그들에게도 나름 할 말이 있었겠다. 태어나면서 보고 배운 것은 대의와 명분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정한 대의와 명분이 자기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의와 명분을 지키고자 그리 했다-하는 것이 아닌, 오직 살고자 그랬다, 이 자리가 너무 아까워 그랬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솔직해진다면 그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겠다.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 현실, 가슴에 새겨진 상처만큼이나 힘든 하루하루 속에 힘없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보듬어줄 사람, 그들을 버리지 않을 사람이었다. 백성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가버리는 힘없는 왕이 아니라. 그들 전체에 이신은 백성들의 몫만큼 분노한다. 이신은 한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그가 짊어진 분노와 복수심은 모두의 것이었다.  우리 모두가 이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저 밖에 있다.

2014년, 두 번의 호란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고, 국제정세는 어지럽다.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고, 중국의 시진핑이 방한해 한국의 지도자와 국제 정세를 논했으며, 북한은 당장 오늘 새벽 개성 북쪽에서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책으로 읽었던 비극이, 역사 속의 그 상처가 다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의 소중한 ‘선화’를 지키기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