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느와르 M 케이스북 - OCN 드라마
이유진 극본, 실종느와르 M 드라마팀.이한명 엮음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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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에서 제작·방송되었던 드라마들 중에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던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신의 퀴즈], [TEN], [실종느와르 M]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OCN에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던 점은, 왜 재미있는 드라마를 굳이 일요일 밤 11시에 방영하느냐는 것이었다. 잠이 많기는 하지만 일요일 밤은 오전부터 찾아온 월요병으로 인해 쉽게 잠들지 못해서 뒤척이다보면 새벽 두 세 시를 넘기기 일쑤였는데, 그렇다고 일요일 밤 11시 드라마가 끝나고 잠들자니 완전히 밤을 새울 것 같은 기분에 불안해서 마음 편히 드라마를 시청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드라마가 끝나고 잠을 청하면 드라마 속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려 월요일 아침을 끔찍한 기분으로 맞이하게 된 적도 있다. 월요일이 휴일인 날은 일요일 밤 OCN 드라마 시청하는 날. 그러다보니 띄엄띄엄 보게 된 드라마들. 재방송이라도 해주는 날에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번에 읽은 책은 [실종느와르 M]의 케이스북이다. 이미 [셜록]을 통해 케이스북의 매력에 폭 빠져버린 나로서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드라마를 볼 때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되살리기도 하고, 놓쳤던 부분을 침 꼴깍 삼키면서 읽어나가기도 했다. 길수현과 오대영 역을 맡은 배우 김강우와 박희순이 내뿜는 서로 다른 아우라는 이 드라마의 매력 중 하나였다. 무엇인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사연 있는 듯한 분위기의 길수현, 발로 뛰어 직접 부딪치는 형사지만 결국 자신이 정한 영역을 넘어서게 된 오대영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가 고급지게 완성되었을까 싶다. 책에서는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느끼기에는 약간 부족하지만 대신 완성도 있는 스토리라인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잔혹한 사건들이지만 사연 없고 마음 아프지 않은 케이스가 없었다. 드라마는, 그리고 이 케이스북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범행을 계획하고 무참히 살인을 저지른 이가 온전한 가해자가 아닌 것처럼, 겉으로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높은 직위에 오른 사람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잘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도 순수한 피해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점이 마음 아팠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이런 길을 걷지 않았을 사람이 타인의 악의와 뻔뻔스러움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졌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감.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겉으로만 보이는 범죄에 대해 온전한 평가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변할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어쨌거나 법은 지켜져야 한다는 오대영 형사의 신조는 그러나 마지막 케이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 때의 그는 형사가 아니라 피해자였기 때문에. 법만 지키면 정의가 이루어지는가?라는 길수현의 의문은 당연하다.

 

어떻게 이런 스토리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작가는 분명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불합리한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드라마이되 드라마로 끝나지 않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난 세계가 아니라 그 아래 숨겨진 것들을 보라고 촉구한다. 부디 [실종느와르 M] 이대로 끝나지 않기를, 아니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는 이 마음을 모른 척 하지 말아주기를. 법과 정의에서 갈등하는 길수현의 의문도 옳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위기 앞에서 무너진 오대영 형사의 어쨌거나 법은 지켜져야 한다는 신조도 옳으므로. 그들이 그 줄타기에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해답을 얻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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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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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작품을 몇 권이나 읽어봤는지 검색해보니 꽤 많이 읽었네요. 나오키상을 수상한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을 시작으로 [로맨스 소설의 7],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 [배를 엮다]와 같은 잔잔하고 소박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검은 빛]과 같은 어두운 이야기에 고서점을 배경으로 남자들의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낸 [월어]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는 깊고도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째서 미우라 시온의 작품을 이렇게까지 읽었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글쎄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식하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이 작가의 책을 계속 읽게 되었더라~와 같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끊임없이 읽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읽은 [마사&]은 독특하게도 곧 이 세상을 승천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두 노인의 이야기에요. 책을 읽는 내내 이들이 73세의 할아버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인지 이 노인이라는 단어 선택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다소 천방지축 느낌의 전통비녀 직인 겐지로와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아내가 집을 나가버린 처량한 신세의 구니마사가 반세기 동안 티격태격하며 온갖 일을 겪은 에피소드-는 아니고요(그렇다면 작품의 분량이 어마어마해질 테니까요), 73세의 이들이 조금씩 과거를 추억하며 나이를 먹는다는 것,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간다는 것 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그려져 있어요. 두 사람만 등장했다면 어쩌면 그저 잔잔하게 진행되었을지도 모를 이야기가, 겐지로의 싱싱한 제자 뎃페가 종종 등장하면서 주인공들을 소년처럼 느껴지게 하면서 진행됩니다. 중간중간 불쑥 나타나는 엉뚱한 유머들은 작품에 맛깔스러움을 더해줍니다.

 

난 생각한 적 없어. 사후 세계 같은 거 없다고 생각해.”

맞는 말이야.”

그런데도 구니마사는 조금 쓸쓸해졌다. 죽은 뒤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는 안된다는 걸 구니마사도 겐지로도 이미 깨닫고 만 것이다. 그것이 쓸쓸했다.

내 생각엔 말이지......죽은 사람이 가는 곳은 사후 세계 같은 데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기억 속이 아닐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들도 사부도 집사람도, 다들 내 안으로 들어왔어. 가령 네가 먼저 간다 해도, 내가 죽는 날까지 너는 내 기억 속에 있을 거야.”  -p88

 

투닥투닥 다투고, 삐지고, 다시 화해하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역시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외롭게 지내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아내 역시 병으로 먼저 보낸 겐지로, 평생 가족을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와 딸들에게 외면당한 채 홀로 생활하게 된 구니마사.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전쟁 속 폐허 속에서 살아남았음을 확인하고 두 손을 맞잡았던 서로였어요. 싱싱한 뎃페의 눈부신 젊음을 접하며 젊은 날의 그들을 회상하고, 남은 시간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기운이 펄펄 넘치던 때의 모습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저도 이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을 꾸리다보니 어느새 나이 드신 부모님의 얼굴도 이제야 자세히 보이고, 제 옆에서 함께 늙어갈 이 사람의 소중함을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느끼게 됩니다. 며칠 전 형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그런지 [마사&]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나의 시간이 지나가는만큼 부모님의 시간도 지나갈테고, 그러다보면 저도 어느샌가 마사와 겐의 나이가 되는 때가 오겠죠. 그 때가 오더라도 마사와 겐처럼 유쾌하게 살고 싶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소박한 행복. 어쩌면 그것이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의 마지막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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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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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제이컵으로부터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둘로 쪼개져 죽음을 맞은 브리. 엄청난 고통이 소녀의 몸을 휩쓸고 지나간 후 브리는 영혼으로서 눈을 뜨고 그녀의 죽음 이후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슬퍼하는 가족과 친구들, 추도식, 장례 절차. 그리고 버스를 타고 천국으로 향하죠. ‘천국 한 조각’이라는 피자집에서 만난 다양한 영혼들. 하지만 브리는 여전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부디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지만 시간은 어느 새 일주일을 넘어갑니다. 그런 브리에게 다가오는, 역시 영혼인 남자아이 패트릭. 패트릭은 브리에게 다양한 경험과 조언을 건네죠. 영혼이 되어서야 알게 된 친구들과 가족들의 비밀. 그리고 자신의 전생과 패트릭의 존재가 갖는 의미를 알게 된 브리는, 이제 서서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비록 영혼이지만 한 발 내딛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치 브리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구조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초반에 단순한 틴에이저 소설로서만 다가옵니다. 남자친구의 폭탄고백에 심장이 둘로 쪼개져 죽고, 그런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곁에서 도와주는 또 다른 남자 패트릭. 이건 영혼들끼리의 삼각관계인가-라는 추측을 하기 쉽죠. 또 브리의 친구와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이컵을 보면서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라는 노래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일견 단순한 구조를 보이는 듯한 이야기지만 브리가 살아있었을 때는 결코 보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과연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하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보며 가장 돌아가고 싶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하는 면이 있어요.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고 처음에는 충격에 휩싸였으나 서서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준비하는 브리.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사랑과 배려를 깨우칠 수 있었지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행운의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진부하고 상투적일지 몰라도 브리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하며 살기를,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항상 돌보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조언을 남기네요.

행복이나 절망 한가운데에서도

슬픔이나 기쁨 속에서도

즐거움이나 고통 속에서도

옳은 일을 하면 평화를 찾을 것이요

삶에서 평화보다 더 좋은 선물은

사랑뿐이니

늘 사랑하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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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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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홋카이도에 갔을 때 저의 발목을 많이 붙잡았던 곳 중 하나는 서점이었습니다. 마음만큼 책을 사가봤자 분명히 쌓아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을 시간도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자꾸 욕심이 생기는 거에요. 여러 가지 먹거리도 사야 하고, 정해진 무게를 넘으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지만 결국 가방 여기저기에 책을 꾹꾹 눌러 넣는 형국이 되었답니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을 휩쓸고 다니던 그 때, 나가오카 히로키의 [교장]도 서점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무척 인기 있는 도서를 소개하는 코너 같은 곳에서요. 그 때 구입했던 책들도 1년쯤 지나자 한국어판이 나오기 시작했고, 제 기억 속 아스라이 존재하던 [교장]도 요렇게 만나게 됐네요.

사실 나가오카 히로키라는 작가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귀동냥]을 통해서였는데, -지난 20년간 최고의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은 작품치고 저는 그저 그렇다는 인상을 받았었거든요. 그래서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웬걸, [귀동냥]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급박한 사건이나 롤러코스터에 비유할 수 있는 스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내면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는, 어쩐지 이건 일본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일본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분위기와 사건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조금 섬뜩함을 느끼기도 했지만요.

6편의 에피소드에 에필로그까지, 총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배경은 경찰학교지만 경찰을 꿈꾸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청춘소설이 아니라, 마치 그 내부를 고발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다소 음울한 작품이었어요. 생도들 사이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경쟁의식, 그로 인해 비롯되는 고발과 복수, 부적절한 거래 등. 우리나라에서 경찰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면 그 안에서 맞게 되는 위기를 뛰어넘고 누구와 누구는 우정으로, 누구와 누구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전개되겠지만, 나가오카 히로키가 보여주는 경찰학교의 내부는, 마치 이런 저런 음울한 사회가 있다는 것, 졸업하고 현장에 뛰어들면 이보다 더 가혹한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사회 속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이 감탄스러웠던 것 같아요. 작가 자신이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계속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경찰이라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지만 역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가자마 기미치카일 겁니다.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잘 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을 가진 백발의 남자. 그의 교육법은 뭐랄까, 상당히 과격한 편입니다. 물리적인 힘을 가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는 생도들이 어디까지 행동을 취하는지,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지를 관찰합니다. 극한의 위기의 순간에도요. 그런 그를 의식하게 된 생도들은 그를 존경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름대로 무언가를 느끼고 얻게 되죠. 다른 작품들에서 보기 쉽지 않은, 정말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연작단편집이지만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한 장편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나가오카 히로키가 쓴 장편. 단편과는 다른 어떤 맛을 낼지 궁금합니다. 그 작품에 이 가자마 기미치카가 등장한다면 더 반가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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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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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더니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남기는 리뷰입니다. 그러나 책 내용은 잘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믿고 싶네요. 오랜만에 읽은 아멜리 노통브입니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을 꽤 읽었던 것 같은데, 너무 어렸을 때 읽었기 때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뭔가 어렴풋이,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는 느낌만 남아있어요. 그래서 한 동안 읽지 않았었는데 저를 그녀에게 인도한 것은 <푸른 수염>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 자신만의 비밀의 공간을 만들어두고 그 방에 발을 디딘 여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푸른 수염 이야기요. 그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지, 그녀는 어떻게 푸른 수염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채로 그려냈을지 오랜만에 궁금해졌습니다.

친구 집 불편한 소파에서 살던 사튀르닌.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싼 값에 빌릴 수 있는 방 한 칸이었지만 그녀와 함께 면접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많은 여인들의 관심은 그 집의 남자, 돈 엘레미리오였습니다. 그 집에 살던 많은 여자들이 실종되었다는 소문을 들려주며 돈 엘레미리오는 굉장한 매력남이라고 일러주죠. 그 말에 콧방귀를 끼고! 오로지 이 집의 방 한 칸만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돈 엘레미리오는 그녀에게 방을 빌려줍니다.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심지어 신부마저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개인미사를 드리고, 자신이 굉장히 고귀한 존재라는 자부심 속에 살아가는 남자. 그는 사튀르닌이 황금색 그릇에 담긴 노란 달걀 크림이 아름답다고 말하자마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열렬히 마음을 고백하는 엉뚱함을 보이기도 해요. 그와의 몇 번의 저녁식사를 통해 자꾸만 그에게 향하는 마음을 느끼지만, 명석한 사튀르닌은 그의 비밀을 알아채고 그를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책이 생각보다 두껍지 않아 더 읽기가 편했던 것 같아요. 마치 하나의 공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튕기듯 대화를 이어가는 돈 엘레미리오와 사튀르닌의 대사는 읽는 맛이 살아있습니다. 초반의 엉뚱함과 수상함을 걷어내는 다정함과 세심함을 보이는 돈 엘레미리오 앞에서 그의 행적을 의심하던 사튀르닌의 마음은 어느 새 ‘사랑’이라는 감정을 생각하게 되죠. 결국 자신의 편의에 따라 많은 여자들의 실종은 그와 관계가 없고, 여자들은 어딘가에 잘 살아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만 똘똘한 사튀르닌은 상황을 잘 살피고 모든 정황을 끼워맞춘 후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선택을 하기까지의 그녀는 괴로웠을까요? 잠시나마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통통 튀는 프랑스식 유머를 맛본 듯한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가볍지도 않고요. 무척 인상 깊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래, 이게 아멜리 노통브였어’라는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네요. 유머와 철학이 겸비된 아멜리 노통브 판 푸른 수염. 그 비밀의 방에 발을 들여보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저는 이제 발을 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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