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듄!!

듄 신장판 6 - 듄의 신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명예의 어머니들과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참사회로 도망쳤던 베네 게세리트. 최고 대모인 다르위 오드레이드는 최초의 베네 게세리트 악솔로틀 탱크에서 마일즈 테그의 골라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아버지의 아기 모습을 대면하는 느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무르벨라에 의해 성적으로 각인된 던컨은 그녀와 비우주선에 갇혀 아이들을 낳고, 무르벨라는 명예의 어머니가 아닌 베네 게세리트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비우주선에서 탈출하기 위해 시이나와 비밀스럽게 접촉하던 던컨은, 이제 상황이 바뀌어 아기 테그를 훈련시키는 입장에 처한다. 계속되는 명예의 어머니들의 위협. 그리고 모래벌레의 출현을 기다리는 사람들.

총 6권의 <듄 신장판> 시리즈의 대망의 마지막 권. 완결편이다보니 좀 속시원하게 모든 것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을까 기대했건만, 작가님은 이번에도 비밀의 장막을 활짝 열어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상황은 베네 게세리트에게 위협적이고, 그 상황을 해석하는 오드레이드의 말들은 너무나 모호하다. 인간과 동물의 교배종인 '퓨타르'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그들을 조련하는 조련사의 존재가 명예의 어머니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말에 혹시나 그들이 극적인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내심 궁금했지만, 이번 편에서의 활약도 비록 골라이기는 하나 마일즈 테그가 다 한 셈이 되었다. 그 와중 마지막을 준비하는 몇몇의 담담한 모습이 유독 마음 아프게 다가온 것은, 이번 이야기가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명예의 어머니와 루실라가 '민주주의'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루실라가 그들에게 붙잡혀 위대한 명예의 어머니인 '다마'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마치 베네 게세리트 안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다마의 모습과 그런 그녀를 혼란시키려는 루실라의 대결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베네 게세리트는 또한 민주주의를 '평평하게 땅을 고르기 위한 흐름'이라고 정의하는데, 작가님은 혹시나 작품을 빌어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옹호하고 싶었던 것인가.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충격적인 장면은 아직 어린 테그를 각인시키기 위해 시이나가 접근하는 부분이었다. 너무나 어린 이 소년에게 성적인 방법을 적용시키는 장면에서 아주아주아주아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고 할까. 왜 작가님은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하필 성적인 것을 사용한 것일까. 대체 얼마나 큰 황홀경이길래 또 다른 자신에 대한 기억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인가.

6권의 마무리를 보면 작가님이 또 다른 방향을 계획 중이었던 듯도 한데, 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니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 뿐이다. 1권을 제외하고는 마치 도를 닦는 듯한 기분으로 어렵게 읽어온 듄. 좀 더 알기 쉽게 써주셨다면 좋았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3개월을 꼬박 채우고 헤어지려하니 허전하기도 하다. 조만간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듯한데, 영상에서는 어떤 매력을 발산할지 궁금하다.

[듄의 신전] 10 (완독) : 안녕, 듄!

듄 신장판 6 - 듄의 신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그들은 그걸 '평평하게 땅을 고르기 위한 흐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그것을 유전적인 시각에서 본능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뒤어난 부모들은 평균에 가까운 자식들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p 607

베네 게세리트가 원했던 체제, 그리고 명예의 어머니들이 세우려고 했던 체제. 민주주의인가, 아닌가. 조금 더 곱씹어봐야겠다.

베네 게세리트와 명예의 어머니들의 또 한 번의 격돌. 누군가는 죽음을 맞았고, 누군가는 떠나는 것을 선택했고, 누군가는 남아서 다시 그 자리를 지켜나간다. 3개월여를 함께 해 온 듄. 마지막 리뷰를 정리하려니 머리속이 복잡하다.

[듄의 신전] 09 : 각인

듄 신장판 6 - 듄의 신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각인사! 테그의 비명에 관찰자들은 펄쩍 튈 듯이 놀랐다.
환영합니다, 바샤르 골라.
당신이 날 각인하려고 했어!
p 506

시이나에 의해 성적으로 각인된 테그 골라. 어린 아이에게까지 이런 방법을 써야 한다니, 요런 부분은 도오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체 어떤 성적인 경험이길래 골라에게 예전의 기억을 되찾게 만드는 것인가. 각성과 함께 자신의 죽음의 기억까지 얻게 된 테그. 이 드라마에서 그의 역할은 무엇인가.

행복하다면, 버터 따위마음껏 먹읍시다!!

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주로 새벽 독서를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치명적이다. 특히 버터간장밥의 유혹이란!! 조금만 덜 이성적이었다면 바로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고급 제품은 아니더라도 냉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는 버터를 바라보면서 어서 밥이 다 되기를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밥에 차가운 버터와 간장을 올리는 모습을 상상만해도 들뜨는 마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황금빛 색깔과 부드럽고 달콤한 풍미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음식에 대한 욕구를 참기가 힘들어진다. '감각적이고 칼로리 높은 미스터리물'이라는 문구는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읽다보면 버터가 가득 들어간 음식, 혹은 가지이 마나코가 리카에게 알려준 명란젓 파스타 등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므로.

2009년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수도권 연속 의문사 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버터]는, 결혼을 미끼로 접근한 남성들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있는 가지이 마나코를 기자인 리카가 취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에 매달려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먹은 것이 언제인지도 모를 리카와는 달리, 가지이 마나코는 음식에 '진심'인 사람. 자신과 사건에 대해서는 도통 입을 열지 않으려 하는 가지이 마나코에게 요리를 미끼로 접근한 리카는, 뜻밖에 그녀와 음식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안에 숨겨진 사회의 단면과 자신의 정체성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철이 들 때부터 누구나 사회에 세뇌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뚱뚱한 채 살아가겠다는 선택은 여성에게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이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동시에 무언가를 갖추기를 요구한다.

p 31

단순히 한 여성의 잔혹한 범행을 그리는 추리소설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생각이 복잡해졌다.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이상적인 몸매와 미모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기만 해야 하는 여성에게, 과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 존재하나. 그렇다면 그렇게 '노력'한 여성에게 누가 보상을 해줄 수 있는가. 제대로 먹는다는 것, 자신을 위해 먹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작품의 제목이면서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버터'는 사회의 편견에 갇힌 여성들을 유혹하는 재료임과 동시에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음식이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살이 찌면 타인의 찌푸린 눈살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여성들에게 버터란 세이렌의 노랫소리와도 같은 것이다. 작품에서 가지이 마나코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그녀의 몸이 세상의 통념이 원하는 이상적인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날씬하지도 않고 그리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도 아닌데 어떻게 남자들을 유혹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는지, 타인의 관심은 사건이 아니라 결국 가지이 마나코의 '몸' 그 자체가 된다.

초반에 그녀가 리카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이 사람은 굉장히 자신만만하구나, 자신의 몸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긍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리카의 취재가 깊어지고 가지이의 환경에 대한 조사가 거듭되면서 그녀 또한 사회의 희생자였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소외되고 외로웠던 그녀가 타인의 온기를 원하며 만들어낸 자신만의 세상. 그 세상에서만큼은 그녀는 남부러울 것 없는 미식가, 요리사였다.

이런 불평등하고 까칠한 세상에, 자신의 생활이나 자기 주변쯤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들로 단단하게 장벽을 쳐서 지키고 싶잖아. 돈을 들이지 않아도 머리를 스거나 품을 들여서 말이야. 게다가 그럴 때, 자기 손으로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즐거워.

p 470

평생 따라다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일의 무게에 짓눌려 살았던 리카에게 가지이의 이론은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리카는 결국 깨닫는다. 가지이의 이야기 속에 진짜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그러진 허상 속에 자신을 끼워맞춘 것이었음을. 가지이와는 반대로 리카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보기로 한다. 그 안에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요리, 자신을 중심에 둔 행복.

이 책을 읽다보니 소중한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열고 싶어졌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분위기.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그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이런 행복이 아닐까.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결국 누구나 바라는 온기. 그리고 자신을 긍정하는 만족감과 행복. 그것을 채우는 데 버터가 필요하다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남김없이 먹어도 좋을 일이다.

**출판사 <이봄>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듄의 신전] 08 : 퓨타르

듄 신장판 6 - 듄의 신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퓨타르 열여섯에 조련사 네 명입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조련사라고요. 그리고 그들은 명예의 어머니들이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위험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p244

인간과 동불의 교배종으로 보이는 퓨타르. 그들은 심지어 인간을 먹기도 하는 듯 하다. 그런 그들을 조련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퓨타르와 조련사가 베네 게세리트에 내미는 공조의 손. 이 손에 거짓은 없는가. 그들은 정말 명예의 어머니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어쩐지 얄미운 명예의 어머니들. 이 끝이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