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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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2권에는 본래 작품의 제5권부터 8권이 실려 있다. 디도가 있던 카르타고를 떠나 다시 돌아온 시킬리아섬. 아이네아스는 아버지의 1주기를 맞이해 제사를 지내고 여러 가지 경기를 펼치는데, 전함 경주, 권투 시합, 활쏘기 경합 등이 18자역으로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쩌면 그저 평범하게 서술되어 있다면 그저 그런 경기 장면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매력적인 18자역으로 인해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함성이나 땀 방울 하나하나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러나 또 한 번 벌어진 신의 짓궂은 장난 같은 짓. 유노의 입김 한 번으로 이탈리아행을 위한 아이네아스의 배에 불이 난다. 이 일을 계기로 아케텟과 떠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이탈리아로 향하는 아이네아스. 항해사 팔리누루스의 애달픈 죽음까지 묘사되어 있다.

 

제6권에 해당하는 부분은 어쩌면 <아이네이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의 쿠마이에 상륙한 후 아버지 앙키세스를 만나러 저승으로 내려가는 부분! 사실 나도 이 장면들을 통해 <아이네이스>를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마치 단테가 지옥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만난 것처럼 엘뤼시움에서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는 아이네아스. 아버지 앙키세스에 의해 로마의 미래와 수많은 로마의 영웅을 보게 되고, 마지막에는 아우구스투스마저 등장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한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이 저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장면은 그 동안 여러 신화를 통해 접했기 때문인지 익숙한 느낌이다.

 

제7권과 제8권에서는 마침내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이네아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미 신탁을 받은 라티누스 왕은 아이네아스 일행을 환대하지만, 유노에 의해 복수의 여신 알렉토의 입김을 받은 라티누스 왕과 그의 부인. 시작된 전쟁으로 어려움을 맞이한 아이네아스는 티베리스 강의 신의 안내에 따라 에우안드로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베누스 여신이 남편에게 부탁하여 제작한 아이네아스의 무장들이 소개되며 2권은 끝을 맺는다.

 

18자역으로 인해 통통 튀는 듯한 리듬감을 맛볼 수 있지만, 이리 술술 물 흘러가듯 읽히는 번역을 위해 김남우님은 무려 9년이라는 시간을 공들여야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시간은 종일 번역에 매달린 시간이 아니라 번역해 놓고 기다린 시간이었다고 한다. 주변 연구자들의 조언을 통해 더 탄탄해질 수 있었던 [아이네이스] 2권. 주석을 통해 보다 개운하게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18자역과 그에 공들인 시간이 없었다면 이리 인상적인 작품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신들과 인간이 뒤섞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늘 현실인 듯 아닌 듯 그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다. 지금 [로마 시티]라는 책을 같이 읽으면서 로마 역사를 훑고 있는 덕분인지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아이네이스]. 신들의 개입으로 정신없는 삶을 살아야했던 사람들이지만 그 안에는 신을 향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분명 흐르고 있다. 과연 3권은 언제쯤 출간될런지. 아이네아스의 그 후 모험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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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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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등장한 아이네아스의 저승길 여행!! 내가 [아이네이스] 중에서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해서 등장하는 순간 반가웠다. 예전에는 분명 더 쉽게 풀이된 책으로 읽었을텐데도, 18자역으로 읽으니 더 생생함이 느껴져 내용들이 콕콕 박히는 느낌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네아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출간된 2권. 아마 많은 독자들이 만족하며 3권을 기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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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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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킹덤, 가족이라는 이름의 지옥]


우린 가족이다. 우리가 믿을 건 가족 뿐이야. 친구, 애인, 이웃, 이 지방 사람들, 국가. 그건 모두 환상이야. 정말로 중요한 때가 오면 양초 한 자루 값어치도 안 된다. 그때는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뭉쳐야해, 로위. 다른 모든 사람 앞에서 가족이 뭉쳐야 한다고.


p 13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을 맛보기 위해 몇 번이고 입 안에서 굴려본다. 분명 사랑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 네스뵈가 창조한 [킹덤]에서 가족이란 한 인간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는 가장의 거역할 수 없는 권력. 그것은 마치 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어쩔 수 없이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것처럼 한 인간의 전부를 강타하고, 그것도 모자라 뼛속까지 파고든다. 거역할 수 없는 주문. '가족'이라는 말로 로위는 영원히 칼에게 묶여버렸다.

 

칼에게 닥쳤던 불행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벌하기 위해 로위는 모든 것을 책임진다. 부모님이 탄 캐딜락이 추락한 사건과 프리츠의 밤으로 묘사되는 그 잔인하고도 성스러운 맹세와도 같은 그 날의 일들. 칼은 떠났고 로위는 남아 잊혀지는 듯 했지만 15년 만에 돌아온 칼로 인해 묻혀 있던 비밀은 다시 그 얼굴을 드러내려고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칼 옆에, 로위를 위협할만한 치명적인 꽃이 함께한다는 것.

 

르네 지라르의 말이에요. 철학자인데, 우리가 우러러보는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자동적으로 원하게 되는 욕망을 그렇게 불렀어요.


p 542

 

끝내는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로위는 마치 살인 기계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칼과 관계된 것. 과거의 빚을 청산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던가.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로위는 결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비밀이 있고, 사람을 죽이고, 결국에는 사랑하는 칼을 생각한다면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일까지 저지른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요 네스뵈가 그리는 세상 속에서 주인공들은 어찌 그리 하나같이 연민의 한끝을 건드리는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로위지만 차마 그를 미워할 수는 없다. 심지어 그가 벌였던 그 모든 범죄가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게 되고, 그의 주위를 맴돌며 매의 눈으로 로위를 의심하는 경찰관이 악당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스릴러 중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인 해리 홀레조차도 알콜중독자이고 어둠에 영혼을 사로잡힌 인물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정의의 편에 서 있기는 했다. 로위에게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오직 살아남는 것, 동생을 지켜야 하는 일만이 삶의 목표다. 맹수처럼, 야생 동물처럼 돌진하지만 새와 같은 가련한 심장을 가진 로위.

 

칼은 그가 가진 '아벨'이라는 미들 네임처럼 로위의 동생으로서 늘 로위의 보살핌을 받는다. 성서 속에서 형 카인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는 아벨. 하지만 이 작품에서 형제를 죽이고 있는 것은 로위가 아닌 칼이다. 생명이 아니라 그 영혼을. 로위에게 착 달라붙어 그 해사한 미소 하나로 조금씩 로위의 영혼을 좀먹어 간다. 형이라고 부르며,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 아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카인의 영혼을 가진 칼.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가족'이라는 단어다. 로위는 칼을 사랑했을까. 칼은 로위를 사랑했을까. 이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요 네스뵈는 결코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자비롭지 않다. 오히려 극한까지 그들을 내몰고, 어디 견뎌볼 수 있다면 견뎌보라고 채찍질한다. 해리 홀레에게도, 로위에게도. 그래도 해리 홀레는 마지막에 늘 자신이 하는 일에 형사로서 자부심 하나는 건질 수 있었다. 로위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가족'이라는 텅 빈 성 안에 홀로 남아 그는 끝없이 싸워야 한다. 영원한 원 안에서 그가 걷는 걸음은 결코 그를 앞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가족이라는 지옥. 오히려 죽음을 열망하게 되는 그 세상 속에서 그가 안식을 찾는 날이 오기는 할까.

 

이미 한 권 소장하고 있었음에도 사인본을 위해 한 권 더 구매한 [킹덤]. 요님을 만나 포옹까지 나눈 추억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리 홀레를 만나지 못하는 올해의 아쉬움을 이번에는 [킹덤]으로 달래본다. 비록 그 끝에서 이야기가 주는 칠흑같은 어둠과 절망에 정신을 못차리더라도.

 

** 출판사 <비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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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스 2 아이네이스 2
베르길리우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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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동포 에뤽스의 땅, 아케텟의 환대가 있다. 성을 예 샇고 도시를 마련한들 누가 막겠는가?
p 51

한창 흥겨운 시합 중일 때 나타난 신의 훼방. 오뒷세우스도 그렇고, 아이네아스도 그렇고 고대의 문학들을 읽다보면 인간을 향한 신들의 방해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신'이라고 하면 무한한 사랑을 가진 전지전능한 존재로 느껴지지만, 고대 문학에 등장하는 신들은 심술궂으면서 분노노 잘하는 듯.

노인 나우텟과 아버지 앙키사의 조언대로 아케텟에게 일부 사람들을 맡긴 채 또다시 길을 떠나는 에네앗. 이탈랴를 향한 그의 여정이 참으로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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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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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협찬 : 이다랜드 님

 

[변신]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는 문장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솔직히 나는 이 모든 일이 '그러나 꿈이었다' 식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잠을 자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벌레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백번 양보해 변할 수 있다고 쳐도, 자신의 몸이 그렇게 변화하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몸을, 그레고르 잠자는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에게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에게 일자리를 잃는 것은 벌레로 변하는 것보다 더 슬프고 공포스러운 일. 때문에 순식간에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일 틈도 없이, 어떻게든 회사에 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은 더욱 애달프게 다가온다. 이런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껴진 것은 우리 모두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 어떤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해도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각각의 일터로 달려가야 하는 현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지만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가족들과 회사 관계자가 경악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벌레로 변한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 뒤에 일어난다. 오직 자신만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줄 알았던 이 가정에서, 사실은 나머지 가족들 또한 하려고만 했다면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밝혀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수위로, 어머니는 바느질로, 여동생은 점원으로 취직해서 그래도 생활을 이어나가는 상황. 슬픈 일은 이렇게 가족들이 각각의 몫을 해내게 되면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의 존재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해버리게 된 것이다. 과연 그레고르 잠자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이 인간을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가족이라는 사람들도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를 혐오하며 더러운 존재로 인식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아이들이 벌레로 변해버린다면, 나도 그레고르 잠자의 어머니처럼 벌레로 변한 아들을 피해다니며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을까. 결말에 간단히 수긍할 수 없었으면서도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머리가 멍-했다.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 하다. 구로사와 이즈미가 쓴 [인간에 맞지 않는]에서도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아들을 마주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처음에야 물론 충격에 휩싸이지만, 그녀는 어쨌거나 자신이 배아파 낳은 자식이므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진다. 작가가 이 [변신]을 모티브로 작품을 지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너무나 상반되는 두 어머니의 모습. 당신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아이와 대면할 것인가.

 

 

이번에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한 번 읽고 끝낼 작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읽은 책은 또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기도 했고, 처음 읽는 작품은 이제야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기분. 이 [변신]은 나중에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가. 지금은 서늘한 바람이 마음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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