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400. 해질 무렵 (황석영)

노련한 작가가 어깨에 힘 빼고 '희미한 옛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개발로 허물어진 달동네(달골)과 영산읍은 주인공 박민수가 벗어나려 애썼던 고향이고 차순아나 윤병구에게는 그리운 장소다. 툭 하면 뽑힐 강아지풀 같이 힘없이 겨우겨우 살아왔던 차순아씨의 이야기를 우희가 읽고 다시 쓴다. 익숙한 이야기 소재이지만 전개나 설정이 부드럽다. 건설광풍의 시대의 '인간적'이지 못했던 건설, 재개발 이야기 (그것도 사십여년에 걸친)인데 '강남몽'이나 '낯익은 세상'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모두 지나왔고, 다 떠나버려 회한만 남았다. 얼핏 <사랑과 야망 2015> 같아도, 야망보다는 사랑에, 추억과 고향에, 그리고 해질 무렵 가만히 하늘에 눈길을 가게 만드는 소설이다. 바로 전에 읽었던 '여울물 소리'보다 훨씬 좋다. 우희의 갑갑한 반지하 생활은 어느 고향을 그리는 꿈을 꿀까. 그녀가 강아지풀에 물을 더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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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400.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책으로 읽는 조선시대 먹방이나 쿡방이 아닐까 싶었는데, 음식을 탐하고 즐기고 그리워했던 사대부와 양반의 이야기를 기록에 근거해서 알차게 엮어놓은 책이다. 저자는 탐식과 미식의 구분에는 조심스럽지만 호식하고 탐식하던 이들의 욕망과 권력을 짚고넘어갔고 절식과 자연식을 읊은 양반의 시에 숨어있던 세력가의 여유도 비판했다. 최고의 음식이나 최악의 음식 모두 중국 고사에서 끌어다 쓴 사대부들은 일단 돈과 세력을 잡은 다음에는 청렴한 척 굴었고, 유배지에서는 왕년의 기름진 음식을 그리워했다. 그시절 나무껍질이나 풀을 삶아 먹어야 했던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어서 읽는 동안 군침 대신 쓴맛만 입안에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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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400. 스무 살 (김연수)

소설이다, 소설.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일치하는 디테일 때문에 너무 몰입되어 나의 스무살, 작가의 그 시대로 돌아가 씁쓸하고 달콤한 기억을 꺼낼 필요는 없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그에게 책 읽기와 글 쓰기는 스물 여섯 살에 (훗, 난 지금 마흔....몇....살 인데...) 이렇게 의젓하고도 허세없는 스무살 회상하기를 가능하게 했구나. 여기 저기에서 자꾸 만나는 '스무 살'들. 곧 수능을 치르게 될 큰 아이 얼굴을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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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1-04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음 주네요?
떨지말고 굳건하게 잘 치르길 바랍니다^^

스무 살~~~저도 얼마전 스무 살적때 친구를 만난적이 있었어요
그후로 줄곧 스무 살 타령이라지요!
스무 살은 묘합니다^^

유부만두 2015-11-04 15:04   좋아요 0 | URL
스무 살은 묘하지요. 그 묘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요...
다음 주로 다가온 시험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막상 요즘은 덤덤해졌어요.

살리미 2015-11-0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작가의 스무살과 제 스물살의 경험이 많이 겹칠수도 있단 생각이 드네요. 우린 동갑이더라고요 ㅎㅎ 영화 <스물>을 보며 아들같아 보이던 주인공들 때문에 엄청 웃었는데 김연수의 <스무살>에서는 그시절 내모습을 볼수 있으려나요?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어제 수능을 앞둔 딸아이가 `응답하라 1988`이 나온다고 알려주더라고요 ㅎ 무려 1988이라고.... ㅋㅋ 제가 딱 우리 딸만한 나이때인데^^

유부만두 2015-11-04 15:06   좋아요 0 | URL
무려 1988! 예고편을 보면서 `저 정도로 촌스럽지는 않았는데` 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 해엔 수험생이었어요. 종로학원;;;;

김연수 작가는 저의 애정 작가라 한없이 추천해드립니다.
이번 개정판에는 새로 쓴 단편들이 많이 실려서 더 풋풋합니다.
 

382/400. Mr. Mercedes (Stephen King)

무섭다. 탐정 소설이라기 보다는 공포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기괴한 행동을 하는 범인도 무섭고 탐정이 조금씩 범인에 다가서며 기싸움을 하는 것이나, 주위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과정이 갑작스레 닥쳐서 무서웠다. 범인이 우리 주변에서 별 의심없이 나의 사생활을 관찰할 수 있다는 설정이 제일 두려웠다. 그래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일요일 밤에 시작해서 화요일 오전까지, 끝장을 봐야만 하는 책이었다. 의외로 범인은 기괴할지언정 전지전능한 악마까지는 아니었다. 탐정이 그를 추적해내는 과정이 너무 깔끔하기는 하지만, 범인이 City Center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목격자 없이 빠져 나간것이나 콘서트 홀에 어정쩡한 변장으로 들어선 것이 더 어색했다. Holly와 Jerome의 활약에 가슴 콩콩거리며 박수를 치고 싶었다. 끝까지 밉상 진상인 범인 이외에도 등장인물들 사이에 시기와 증오를 툭 까놓고 묘사한 것을 읽으면서 더 으스스해졌다. 이렇게 저열하고 비뚤어진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도, 밭을 갈아야 한다? 킹은 볼테르가 아니지만 깜깜한 지옥에서 소설이 끝나지는 않는다. 영어로 읽었는데 새로운 욕설과 속어를 꽤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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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381/400. 위험한 독서의 해 (앤디 밀러)

제목과 표지가 달랐다면 이 매력적인 책을 더 일찍 만났을지도 모른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 의미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며 책을 사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하던 어느날, 앤디 밀러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독서 클럽의 회원치고는 과한 경력을 가진 독서가) 고전 50권을 읽어내기로 결심한다. 긴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고 틈틈히 하루 50여쪽 (고전의 50여쪽은 다빈치 코드의 50쪽과는 다르다)을 읽어나가며 헤매고, 분노하고, 감탄한다. 그의 자유분방하지만 솔직한 반응과 해석은 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고전 50권을 읽은 후, 그의 인생은 개선되었는가? 그는 여전히 앤디 밀러다. 하지만 결코 같은 인간일 수는 없다.  

인문 독서로 인기몰이를 하는 자기계발서는 책읽기로 '인생이 달라진다'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앤디 밀러가 집중한 것은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 깔려있는 사회, 역사, 경제의 굴레와 싸우는 인간을 만나는 경험이다. 의외로 폼 재지 않고, 예리한 관점을 쿨싴한 어조로 전달하는 저자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책에 실린 그의 사진은 좀...) 그의 50권 목록 중 내가 읽은 것은 5권. 마침 요즘 내가 하고있는 '떡썰기 프로젝트' 400권(편)읽기에서 "채 다 읽지 않고" 발췌해 훑어 읽었던 두 권을 양심상 목록에서 뺐다;;;; 그 기록은 기록일 뿐, 앤디 밀러 처럼 나도 쓰는(자랑하는) 것 보다 읽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책을 사는 것과 읽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을 습득하는 것의 차이를 되새긴다. 새로운 결심이랄까, 나 역시 책장에 묵혀둔 고전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목침보다 두꺼운 War and Peace 영문판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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