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안부를 묻는 열두 살 민규는 지구 밖, 우주에 나와 있다. 때는 2045년. 지금부터 27년 후, 불지옥 같은 여름을 스무 번 넘게 지난 다음의 세상을 사는 아이. 컴퓨터도 전기도 있었던, 좋았던 옛날을 이야기 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민규와 동석이는 축구를 하고, 그런대로 놀고, 학교에서 시험도 보는 아이들의 생활을 살고 있었다. 꺠끗하지 않은 지구에서, 배부른 느낌도 모르는 채, 친구와 공놀이를 하던 아이가 얼결에 우주선으로 '끌려'와서 시간의 흐름과 기억을 통제 당하게 된다.

 

우주선의 지도부는 의심스러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새로운 거주지 행성 '에덴'을 찾아 가는 중이다. 발랄라라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민규의 편지, 혹은 일기는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우주선 안의 변화를 하나씩 적는다. 그 안의 어쩌면, 새로운 문화, 아니면 긍정의 힘으로 이어보려 애쓰는 '인간성'의 노끈. 여러 나라에서 각각의 문화와 언어가 서로 다른 나이대의 사람들로 나오고 그 이야기가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어쩌면 긍정적인, 대책없는 정신 승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함께 시작하자는 작은 손짓인지도 모른다. 포기하고 버리고 '실용성'을 기준으로 선을 긋는 대신 천천히 함께 걷자는 이야기.

 

 

지구는 .... 잘 있을거다. 민규야. 동석이는 네 생각을 많이 했지. 너네 할아버지를 매일 찾아뵙고. 너네 아버지는 그 술 마신 날 밤을 몇번이고 이야기 하셨어. 그때 잠결에 푸른 빛을 보았지만 그게 꿈이라고 술을 하도 오랫만에 마셔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하셨대. 하지만 어른들은 워낙 하루하루가 바쁘니까 그리고 너무 슬퍼지는 게 무서우니까 그날 밤 이야기는 안해. 그리고...너네 학교는 그 주 시험을 치르지 않았어. 종이 사용 제한법이 생겨서 이젠 공립학교에선 쓰기나 그리기가 금지 되었어. 그대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직접 말로 표현하게 하시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걸 싫어하진 않아. 집에선 사실....너무 심심하잖아. 동석이는 다른 아이들과도 놀고, (공놀이는 못했어. 공을 찾을 수도, 다시 구할 수도 없었어. 종이도.) 아파트 뒤의 공터에서 죽은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기묘한 모양의 본부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어. ... 민규야, 동석이는 이제 지구 나이로 스물한 살이야. 키는 예전 보다야 컸지만 여전히 '작은 편'이고 네가 살던 아파트 자치구 보안 담당이야. 그런데 근래엔 매주 수요일이면 어디론가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낌새야. 수요일의 그 모임은 매우 비밀스러운데 ... 아 맞다, 그 모임 이름이 '지구'라고 했던 것 같아. 아직도 동석이는 네 생각을 많이 해. 우주는.... 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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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엔 막내를 데리고 큰 서점에 갔다. 많이는 아니고, 그저 소소하게 몇 권 골랐다. (많이 참은 나, 칭찬) 인터넷 서점과는 또 다른 서점의 매력. 막내의 선택 '스탠 리 회고록' 만화책이 제일 비싼 책이다. 다시 안 읽을 것 같던 이기호의 새 소설도 포함해서 쉬엄쉬엄 읽을 엣세이와 단단한 엄마의 책 추천 도서도 골랐다. 정작 마감이 코앞인 일거리는 덮어놓았던 하루. 주말엔 일이 밀렸어도 쉬어야 하쟈나요.

 

 

 

 

스무디 아니고 토마토 주스. 쨍하게 머리 속까지 얼려주는 얼음과 채소의 힘!

 

 

집에서 받는 택배도 있는데 '모스크바의 신사'는 영문말고 번역본으로 샀고, 요즘 식단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다이어트 식단 책을 더 사고 있다. 핑계도 좋지. 하지만 성장기 어린이 저녁을 위해선 살치살 스테이크를 구웠다. (사진은 두번 째 판) 레삭매냐 님 덕분에 '새벽의 약속'을 떠올렸다. 하지만 난 남은 기름을 먹는 엄마가 아님. 내 스테이크도 크게 구웠다. 먹고 나서 마음과 배가 무거울 땐 다이어트 책을 읽는다.

 

하지만 어제 읽은 책은  다이어트 책 아니라 boon 이라는 잡지. 일본 문화 잡지라는 데 처음 사서 읽어보는 중이다. 벌써 25호. 이다혜 기자가 쓴 기사도 있고 꽤 알차게 일본 여행과 소설, 엣세이, 작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참아야 해! 책은 ...그러니까, 낮 최고 기온이 25도 아래가 될 때까지 그만 사기로 하자고!)

 

 

라로님의 5년 일기장을 따라서 나도 샀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은 사이즈라 몇줄 못쓰는 게 아쉽다. 5년후의 나에게...라는 부제. 생각보다 5년은 금방 흐른다. 그때, 아이는 고등학생. 실은 이 '기록장'은 막내를 위한 것. 아이의 학습/게임을 기록하려고 ..(나름 치밀한 엄마임. 스테이크도 주고 덫도 놓는다)

 

 

오늘도 덥다. 언제쯤 낮 기온이 25도로 내려갈까. 밀린 일거리, 오늘은 마무리 할 수 있겠지?! 끝이 안 보이는 일도 조금씩, 매일 하니까 하게 된다. 집이 너무 더워서 얼릉 짐 챙겨서 동네 커피집으로 나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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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7-1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치밀한 엄마임. 스테이크도 주고 덫도 놓는...ㅋㅋㅋ

유부만두 2018-07-19 09:04   좋아요 0 | URL
기록을 해 두어야 엄마 말을 조금이라도 듣더라고요.
‘넌 맨날 게임만 해‘ 라고 할 순 없으니까요. ^^;;

레삭매냐 2018-07-1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오의 스테이키 ~

<모스크바의 신사>는 호기 좋게 읽기 시작했는데
그놈의 로맹 가리 읽기에 정신이 팔려 그만
매조지를 짓지 못했네요.

이러다 못 읽는 건 아닌지.

그렇죠, 아무리 바빠도 쉴 적에는 쉬어야 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유부만두 2018-07-19 09:05   좋아요 0 | URL
모스크바의 신사, 는 명성만큼 책이 폼이 나더라고요!
언제 시작할지, 언제쯤 완독할지는 저도 모르고요. ^^

요즘 레삭매냐 님의 로맹 가리 정주행, 응원합니다!
(저도 집에 꽤 있더라구요, 로맹 가리 .... )

목나무 2018-07-1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가 엄마의 5년 일기장을 5년 후에 보면 자기 보물이라고 할지도 몰라요. ㅋㅋ
무더위 날려줄 책보따리~~ 굿 초이스입니다! ^^

유부만두 2018-07-19 09:06   좋아요 0 | URL
보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무더위엔 책! (꽃피는 봄이나 낙엽의 가을, 군고구마의 겨울에도 책!)

라로 2018-07-19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생각만 했는데 제 아들 것도 하나 사야할듯요. ㅎㅎㅎㅎ
모스크바의 신사는 원서로 읽으세요. 강추
그리고 제가 읽은 salt to the sea 라는 책도 추천요!!(이렇게 강력하게 추천하고서는 주저합니다. 아시죠?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7-20 09:05   좋아요 0 | URL
라로님 추천하신 것 봤어요. ^^

네, 그 맘 알아요! 내 애정 책이 모든이에게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알면서도 상처받;;;;;
제게 맞을지 아닐지, 궁금해서라도 읽어보려고요.
 

토요일마다 억지로 가는 수영장, 자꾸만 배가 아픈 아이. 친구들은 재미나게 소리지르면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지만 아이는 작아서 끼는 수영 모자도 싫고 어색하고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했으면 좋겠다. 수영 시간이 지나면 배도 덜 아프다. 그러다 발만 담그고, 그러다 물 위에 누워도 본다. 수영선생님도 엄마도 아이를 혼내거나 '얘, 이게 얼마짜리 수업인데!" 라며 재촉하지 않는다. 기다려준다. 천천히 물과 수영장과 그리고 새로 산 깔맞춤 수영모자와 익숙해지고 즐거워 하는 아이.

 

 

하늘정원은 옥탑방과 금세 연결되었다. '만희네 집'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꽃 정원이 보인다. 하지만 첫장면 부터 심상치 않다. 아이 아빠의 물건을 내가는 사람들, 갑작스러운 이사. 옥탑방으로 이사 와서 옆에, 옥상을 함께 쓰는 이웃 할아버지를 만나는 아이. 엄마는 집안에만 있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어떤 일이, 아빠에게 벌어졌구나, 아빠는 함께 있지 않고 엄마는 그걸 견뎌내고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할아버지가 아이랑 놀아주면서 함지박이 '배'도 되고 꽃을 옮겨 심어 '정원'도 된다. 그제서야 엄마가 방 밖으로 나온다. 꽃이 부른걸까, 시간일까, 아이의 기다림이 통했을까. 마지막에 도착하는 편지. 어른의 복잡하고 힘든 사정 뒤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변화와 위로가 따뜻하다....그래도 어두운 사건이 뭘까, 계속 곰곰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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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07-1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적응반이라고 다녔는데 2달 동안 얼굴을 물 밑으로 못 담그고... 호통치는 선생님이 무섭다며 급기야 다리까지 바들바들 떨린다는 딸래미, 수영을 포기시킨 기억이 나는 군요.

유부만두 2018-07-18 09:22   좋아요 0 | URL
아, 물과 친해지기도 전에 선생님 때문에 수영을 포기했네요. ㅜ ㅜ 이런.

전 요즘 조금씩 하는 운동으로 체력을 키운 다음에 수영 (다시) 배우려고요.
일단 예쁜 깔맞춤 수영복과 수영모자를 마련해야죠. ^^

목나무 2018-07-1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보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는.... 아~~~ 수영 잘하고 싶다. 무지 잘하고 싶다, 였어요. ㅎㅎㅎㅎ
수영을 배워볼까 심하게 고민중인 여름날입니다. 언능 물놀이 가고파요. ㅋㅋ

유부만두 2018-07-18 09:23   좋아요 0 | URL
바다가 멋진 곳에서 태어난 그대가 난 부러운데?!
수영이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시원한 물에 들어가서 물장구 치고 싶어.
너무 덥다...아침 부터.
 

도대체님의 두번째 글그림 엣세이가 나왔다. 첫 책을 그럭저럭 좋아했는데, 읽고 뭔가 아쉽기도 했고....그래서.... 팔아서 살림에 보탰다. 이번 책은 그냥 넘기려고 했다. 제목도 연애 잖아. 아줌마가 무슨.... 그런데 서점 나들이에 함께 한 막내가, 재밌겠다며 골랐다. 아니, 왜? 집에 와선 엄마가 먼저 읽어버림. 잘 샀네.

 

일상 다반사와 낮엔 참았다가 밤에 이불킥하는 이야기로 채웠던 '이런 저런' 이야기의 첫 책과는 달리 이번엔 확실한 주제, 연애가 있다. 주로 실패한 연애, 그립긴 하지만 다시 하라면, 그건 노땡큐인 인연들. 소심하게 복수 혹은 뒷담화를 풀지만 그것 또한 (이래서 도대체님이지) 자책하는 이야기. 하지만 찌질하거나 지겹기는 커녕, 공감이 됩디다. 특히 그 겨울날 달려가던 피씨방과 설렁탕 이야기요.  첫책 처럼 위로만 하려고 긴장하거나 용쓰지 않아서 좋았다. 연애한 이야기를 꺼내놓아도 질척이거나 남사스럽지 않았다. 무더위에 읽어도 안 쳐지고 제목과는 '달리' 좌절스럽지 않은 책.특히  만화컷에는 옛인연을 말하는 주인공과 쿨시크한 친구가 함께 나오는데, 이런 친구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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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 동화 주인공, 열세 살 부잣집 아이, 밝고 명랑하며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고 때론 어려운 환경의 아이도 친구로 잘 지내는 아이. 공주 같은 아이. 자기 배역에 만족하고 작은 불협화음에도 슬퍼하고 주변의 위로와 즉각적인 해결을 가져야 하는 아이. 그 외에는 자신의 행복에 의심을 품지 않는 아이.

 

희주. 하루하루가 불안한 아이. 주눅들고 조심해야 하는 아이. 부럽고 샘났지만 친구 사이니까 그냥 보고있었는데 자신을 홀대하고 학대하고 천대하는 어른들에게 쌓인 분노가 터지지도 않고 그대로 속에서 곪는 아이. 차라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게 다행으로 보이지만, 내가, 어른인 내가 뭘 해줄 수도 없는 아이.

 

영선. 가장 멀리서,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은 아이. 따뜻한 위로나 입에 말린 달콤한 칭찬의 무의미를 깨친 아이. 하루 하루 일상이, 그 무덤덤한 맨밥 같은 맛이 생각나는 아이. 섣불리 나서 이야기 하지 않아서 차갑다는 말도 듣지만 겉치장과 자랑같은 행복이 불안한 걸 알아보는 아이. 이 이야기, '3일간'의 사건과 그 아래 이야기들을 그나마 다 알고 있는, 하지만 주변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는 하지 않을 아이.

 

세 아이가 겪은 사흘간의 이야기다. 전형적인 공주와 하녀 캐릭터, 그리고 관찰자 캐릭터를 사용하고 시간과 사건을 집중시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흘 동안 세 명의 아이와 여러 어른들의 폭력적인 이야기. 조금 더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읽자니 섬뜩하기도 하다. 일요일 아침, 일상 속에서 읽은 흔들리는 일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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