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같은 시와 삶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3월의 꽃샘추위가 시작되었다. 눈이 내린 곳도 있다. 남쪽 지방에선 겨울에도 보지 못한 눈이 삼월에만 연달아 내리던 때도 있었다. 3월은 봄인데, 꽃샘추위라고 부르기엔 괴상한 날씨, 그것은 점점 이상기후라 불렸다.

    3월이 봄이란 걸 안다. 그만큼 3월 초엔 꽃샘추위가 있을 것을 안다. 추위는 매섭지만 꽃샘추위라는 귀여운 말에 가려, 곧 따쓰해질 것을 알아서인지 놀랍거나 불안하거나 하지도 않다. 봄이라는 따스한 기운은 그렇게 마음 속에 스며 새겨지는 모양이다. 3월만큼, 봄이라는 느낌은 2월에도 느껴진다. 2월이라는 달력을 보는 순간부터 벌써 봄을 느끼며 상승한 기온과 좀더 따뜻해진 햇살을 느낀다. 그런 2. 이제는 2월하면 한 작가가 떠오른다. 실비아 플라스. 안타깝게도 이 강렬한 이미지는 211일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의 생애에서 온다. 다른 어떤 말도 작가의 작품 구절도 아닌 작가의 생애에 대한 한 문장. “그날 영국은 100년 만에 가장 혹독한 추위였다.”

   이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봄에 느끼는 꽃샘추위의 느낌일 거라고 그날을 생각한다. 211일의 날씨가 실비아 플라스를 삼키고 추위보다 더한 고독와 배신과 우울이 작가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날.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예술가의 비극적 마지막이 강렬하게 박혔지만 작가의 시 또한 강렬한 이미지로 사로잡는다. 실비아 플라스 시전집은 1956년 이후에 쓴 224편의 작품과 1956년 이전에 쓴 시 가운데 50편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실비아에게 괴로움을 안겨준 남편이었던 테드 휴스가 엮은 것이다. 테드 휴스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들은 지운 채 실비아의 작품을 정리했다고 한다.

   실비아는 문단에서 페미니스트 시인으로도 불리는데 그것은 실비아의 시가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시대, 여성에게 가해진 이 모순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비평가들이 실비아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시의 언어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아버지의 죽음과 자살 시도, 남편과의 이혼 같은 것)과 연계하는데 비해 1980년대 페미니즘 문학비평가들은 플라스의 시에 나타난 분노의 목소리를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여성의 격렬한 저항으로 재평가하여, 여성 문학의 신화혹은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부각한다(p657).”

   실비아의 시를 읽어 내려가기는 쉽지 않지만 이미지만큼은 강렬하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잿빛 이미지를 심어준다. 시를 읽다보면 반복적으로 뇌리에 남는 단어들, 울분과 결의의 소리들에 명징한 자의식을 찾고자 하는 실비아의 모습을 그려본다. 어쨌든 몇 년을 같이 산 전남편이자 시인인 테드 휴스는 실비아의 시쓰기에 대해 말하길 내면의 상징과 이미지에 큰 뿌리를 두고 있다했다. 실비아의 내면 속에 가득찬 것은 고뇌일까. 어릴 적부터 시를 쓰던 아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내면을 찾아들어갔을까. 외적인 사건들이 실비아의 생애에, 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분명 아버지와 남편과의 관계들은 영향을 주었겠지만 오로지 그것에 갇혀 있지는 않을 실비아의 시는, 읽고 있다 보면 마음이 힘겨워진다.

 

내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지.

자기가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일 년 동안 빨아 마신 흡혈귀,

사실을 말하자면, 칠 년 동안.

아빠, 이젠 돌아누워도 돼요.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지.

그들은 그것이 당신이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지.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 아빠

 

   실비아 플라스의 대표작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충격을 안겨준 아빠의 구절이다. 201640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김경욱의 아침의 문은 실비아 플라스의 이 시를 인용하고 있다. 이 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나치와 유대인으로 설정하며 더 극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삶에 대한, 사물에 대한 시선. 내면의 갈등은 끝이 난 것인가. 오래도록 길들여지고 관념화되어 버린 믿음이 조각나는 것, 감정과 이성을 끝없이 되뇌며 마침내 분노와 울분으로 내뱉는 말. 신화화된 관념을 깨뜨리는 일은 신화를 쌓는 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 삶의 고됨이 고통이 울분에 찬 말로써 해소될 수 있을까. 갈등, 공포, 고뇌, 울분들. 그 모든 것들을 내면속에 넘치도록 담고서 삶을 지탱한 실비아의 자의식은 시대와 실비아를 둘러싼 관계들과 그녀 자신의 관념의 산물이다. 실비아가 지향하는 삶은, 자아는 어디로 향하기를 원했을까.

하얀

고다이바처럼, 나는 벗어버린다.

과거의 유물과 과거의 핍박을.

 

그리고 이제 나는

바다의 광채 같은 밀밭을 휘젓는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벽에서 녹아내린다.

그러면 나는

화살이고,

 

새빨간 눈,

아침의 큰 솥 안으로

자살하듯 돌진해서 뛰어드는

 

이슬이다.

- 에어리얼

 

   실비아의 생이 유동치지 않고 평안하게 머물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인해 못내 울분을 토하고 있을 듯하다. 남겨지게 만들어버린 실비아의 아이들과 더 풀어내지 못한 울분들. 벗어버렸을 그 에어리얼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아니, 절반만 드러낸 채 시인은 떠났다. 시인의 생애도 시인의 언어도 꽃샘추위처럼 서늘하고 매섭다. 또한 그 한기가 청아함을 비장미를 씁쓸함을 준다. 서린 말들이 한없이 이어지는 시어들 속에서 푸욱푹 눈발 속에 빠지듯 실비아 플라스의 시 속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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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상황을 바라는 몸짓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Big Little Lies

 리안 모리아티, 마시멜로, 2015-10-12.


  커져버린 거짓말이라니. 처음부터 이 상황에선 ‘거짓말’ 이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소설 속 상황에서 ‘거짓말’은 당연한 공식이 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후의 생각이란 “거짓말”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불러오는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 폭력이란 거짓말을 일으키는 핵심이다.

  리안 모리아티의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세 가지 궁금증에 대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발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가 죽었는가, 누가 죽였는가, 아마벨라를 괴롭힌 아이는 누구인가. 흥미롭고 유쾌한 잡담처럼 풀어놓는 대화와 삶의 이면을 바라보는 내면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져 살인사건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음에도 유쾌하게 읽어나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스토리가 영화나 드라마화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드라마화가 진행 중인 소설이다. 니콜 키드먼과 리즈 워더스푼이 등장하는 미드로, 2월 19일 오늘자 방영이라고 나온다.

  소설 속 인물들의 관계맺음은 예비학교에서 이루어진다. 호주의 피리위라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도시의 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계로 말이다. 이야기의 축을 이끌어가는 마흔살의 재혼녀 매들린, 싱글맘 제인, 미모와 재력 모두 갖춘 셀레스트의 각각의 이야기 또한 흥미있고 그들의 관계 역시도 몰입감을 준다. 성격도 나이도 다른 세 명의 여자가 친분과 유대를 쌓아가며 또다른 학부모 그룹과 가지는 갈등이 이 사건의 전면에 나온다. 아이를 둘러싼 파워게임, 아이도 어른도 외모와 재력과 권력의 힘을 자랑하고파 하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힘을 가진 이에게 더 친분을 형성하고파 하는 익히 알고 있는 부모들의 모습이 전개된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유머스럽게 펼쳐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라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상황, 이혼한 부부가 한 학교의 학부모로 만나 벌어지는 일이 얽혀져 있다.

  아이의 세계나 어른의 세계에나 평행하게 전개되는 거짓말. 우린 타인의 말에 대해 자의적으로 의심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타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타인의 삶이, 말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그것은 식탁 위에,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거짓말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거짓말은 늘 다른 것을 감추기 위해 하게 된다.

  폭력은 늘 거짓말을 끌어들인다. 학대받는 아동들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교사의 ‘폭력’을 알리지 못하는 것은 폭력을 경험한 공포 때문이다. 폭력을 당한 여성이 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을 고소하지 못하는 것 역시 공포다. 또한, 오랫동안 이 사회는 가정폭력의 일상성을, 문제없음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 후에 일어나는 “잘 될거야”와 “참아야 하는 것”이라는 자기암시적 거짓말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러니 친구의 폭력을 참고 그 가해자를 발설하지 못하는 아이나 폭력의 일상화된 모습을 목격하며 저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 자신이 폭력당하고 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셀레스트, 어릴 적부터 당한 학대와 폭력으로 인해, 또는 어쩌다 당한 한번의 폭력으로 인해 그 공포와 분노가 성인이 되어서도 내재화되어 떨치지 못하는 인물들 모두, 폭력의 피해자는 얼마나 같은 모습인가.

  아이를 둘러싼 엄마들의 갈등관계는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오히려 풀어진다. 진실의 순간은 오해가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진실 앞에서 서로의 유대가 강화된다. 오해로 인해 반목했음에 대한 사과가 이뤄지고 피치 못하게 면면의 거짓말을 해야 했던 이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이루어진다. 엄청난 사건 앞에서야 또다른 엄청난 사건은 드러나는 아이러니. 폭력의 희생자 셀레스트는 말한다.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폭력을 말하는 것일까. 폭력을 감추는 거짓말에 관한 것일까. 그냥, 그런 거짓말에 관한 것일까. 헬리곱터 엄마들의 종횡무진 난리부르스를 다룰 것 같은 이야기의 시작에서  사회에 넘쳐나는 폭력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아이와 어른의 동일한 행동을 나타낸다. 폭력을 행한 당사자로 지목되면서도 친구의 거짓말을 묵묵히 감내해내는 아이, 시끌벅적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살인자가 되어 버린 이를 감싸는 진실을 알고 있는 어른들. 사람들은 그것이 물리적이든 언어적이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가슴에 맺히는 폭력을 행사하고 또한 그에 맞서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을 동원한다. 이 맞물려가는 일련의 일들은, 그 사소한 거짓말 속엔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위한 몸부림이 숨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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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는 이유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창비, 2016-05-16.


  인생의 그 모든 비극의 끝자락에서 위로의 선봉장은 술밖에 없을 듯이 여겨진 때가있었다. 술기운만이 버텨낼 힘을 줄 것 같은 때. 술이 망각으로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하지만 막상 망각해야 할 것은 뚜렷하고 자잘한 망각에 부딪칠 때, 술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술에게도 기만당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더 이상 술에 대한 환희와 찬가는 없어지는 때. 술은 희극의 기쁨의 정점에 맞이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늘 비극과 함께 하고 비극속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된다.

  그런 술의 경험을 모르지 않을 텐데,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등장인물들이라니. 술에 대한 찬가라고 하기엔 비애가 가득한 인사말, “안녕. 주정뱅이“. 실제의 사람들에게 건네기엔 욕설같기도 하고 비웃음 같기도 한 인사가 소설 제목으로 전달되면서 느낌이 다르다. 그들의 술은 어떤 맛일까.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그 나날들 마다의 술과의 만남은 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그 만남이 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p176


  세 고교 동창의 십여년 후의 만남을 그린 「실내와 한 켤레」의 문장이다. 친구는 치명적인 가스에 가까운 분위기를 남긴다. 그런 친구들은 삶의 어느 곳곳에서 튀어나와 그 치명적인 가스에 질식하게 만든다. 그 모든 술과의 만남 이전에 치명적인 가스로 타인을 질식케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삶은 나 아닌 사람에 의해 파멸할 수 있을 여지를 늘 안고 있다. 그 사람은 가족이기도 배우자기이고 친구이기도 관계없는 타인이기도 하다. 「봄밤」의 영경은 제 남편이었던 이에 의해 제 아이를 빼앗겼고 수환은 아내에게 버림받고 신용불량자마저 되었다. 「이모」속 이모는 제 가족에게서 오랜 동안 피폐해질 정도로 착취당했다. 「카메라」의 관주는 연인의 말 한마디를 품고 그것을 지키려 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생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이토록 잔인한 운명들은 술을 불러오게 만든다. 그래서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술에 의지해 망각하려 하고 비애를 달래려 한다. 그러한들 쉬이 잊어질 리 없는 삶의 비애를 어떻게 떼어버릴 수 있을까. 견딘다는 말이 갖는 무게는, 비애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도 않으려 한다. 모든 불행을 부여잡고 취한 와중에도 “자신에게 돌아올 행운의 몫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해”하는「봄밤」의 영경처럼, 이 생애에서 행운의 몫은 아직 남아 있을까?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p230


  치명적인 가스를 퍼붓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내게 닥친 불행이 「층」의 외침처럼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행은 받아들여야 하고 감당해야 하고 견디어야 할 뿐이다. 온 힘을 다해 불행 가운데 행운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것은, 누구든 한발짝 물러나 이렇게 말하기 때문 아닐까?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p242


  아니, 사실은 술보다도 바로 당신, 눈앞에 있는 당신의 도움이,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도움되지 않으리라 뒷걸음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 이 세상살이에 주정뱅이는 넘쳐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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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멋진 일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버티고, 2006-09-25.

 

  체코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인데 번역작은 단 세 권이다. 작가 자신이 마흔 아홉 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은 작가인가 했더니 그렇지 않았다. 보후밀 흐라발의 책은 정말 많았다. 금서로 지정되어 출판이 금지당하는 상황에서도 체코를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글을 쓴 작가라면 왜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의 작품이 작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체코라는 나라라는 언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이 작가의 사상 역시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이 나라에서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을 좋아할 리 없다. 이제, 이 작가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어 나올 수 있을까. 2016년 소설가들이 뽑은 소설로 보후밀 작가의 작품이 선정되었으니, 기대를 가져본다. 열정적으로 체코어를 배워 원서를 읽기에는 한계가 명확하기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이 소설은 1965년 출간된 작품이고 소설의 내용은 1945년의 체코를 배경으로 한다. 1945년은 잊혀지지 않는 해이다. 대한민국이 광복한 해이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많은 나라들이 전쟁에서 벗어나며 독립한 해이다.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 불리는 만큼 이 책 역시도 전쟁과 냉전의 분위기를 가득 담은 슬픈 이야기로 흐를 것이라 짐작하긴 했지만 등장인물들은 초반부터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지금에서야 그 때가 전쟁의 막바지라는 것을 알지만 당시 살아가던 사람들에겐 전쟁의 종결이 다가오는지 알지 못할 1945년의 체코. 여전히 독일에 점령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체코인들의 모습은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전쟁’이라는 분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한편으론 그렇기에 극도로 우습게 보이는 행동들이 전쟁의 탓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습 역무원인 주인공 밀로시 흐르마의 족보에서도 희화화되는 등장인물들이 비장미와 함께 등장한다. 밀로시는 가족의 이런 계보를 이어받는다. 


보통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은 나 같은 젊은이는 무슨 고민으로 괴로워할까? 물론, 나는 마을 사람들이 마치 우리 루카시 증조부나 최면술사 빌렘 할아버지, 또 단지 25년 동안만 전차를 몰고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시는 내 아버지처럼, 나 역시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내 몫의 일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떠넘기려고 손목을 그은 거라고 생각하며,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p18


  전쟁 속 스물 두 살의 고민이 무언가, 시대적인 상황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간 것일까 잔뜩 궁금해하며 마음이 한창 아린 그때 밀로시는 말한다. 여자 친구와의 첫경험에서 실패했다고, 그것이 이유였다고. 지금 그토록 엄중한 시기에 그런 것을 이유로 자살하기엔 너무하지 않냐는 말이 튀어나올 듯하다. 아, 타인에게 말하는 것은 쉽다. 전쟁은 전쟁이고 개인에게 와닿는 일상의 고통은 그 종류와 강도가 다를 텐데도 ‘전쟁’을 들먹이며 밀로시를 비난하게 된다. 충분히 욕먹어도 되는 듯이 바라보게 된다. 밀로시도 그것을 느낀다. 누군가 자신을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벽돌공의 도움으로 살아난 소심한 성격의 밀로시는 3개월 만에 기차역으로 복귀한다. 그곳은 늘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드나드는 곳이고 신호를 잘못 보냈다고 총살당할 뻔하며, 화물 차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는 죽기 직전의 가축들을 보아야 한다. 비둘기를 돌보며 승진에 목말라하는 역장에 기이한 행동만을 일삼는 후비치카로 인해 감독관이 파견되기도 하는 등, 사건이 끊이지 않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기차역이다. 이러한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의 실패로 자살시도를 한 밀로시와는 달리 후비치카는 전신기사 아가씨와 쉽게 밀회를 즐기며 심지어 옷벗기기 게임을 하다 역의 직인을전신기사의 엉덩이에 마구 찍어대기도 한다. 이 일로 조사를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독일인의 관점은 너무나 자신들 위주로 사고하는 것이 명백해서,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죄가 성립하는 것 같지는 않군.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국가 공용어인 독일어에 대한 명백한 모독 행위라 볼 수 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으로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역에서 사용하는 도장의 반 정도가 독일어로 새겨져 있으니까! 이건 명백히 독일어에 대한 명예훼손이야!” p82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계속 달린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독일군이나 독일군에게 필요한 물품을 실은 기차를 가리킨다. 체코만이 아니라 점령지 곳곳에서 달리며 내키지 않으면 총을 쏘아대며 체코인들을, 점령지의 사람들을 공포로 몰고 갈 것이다. 여전히 이러한 기차가 칙칙폭폭 마구 내달리는 체코, 기차역에서 일하는 밀로시는 이러한 공포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까. 총살당할 위기에서도 벗어난 밀로시가 전쟁이라는 공포에서 자살결심을 하지 않는 것은 놀랍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외친다.


모두 똑같아, 너희 독일 놈들도 바보들이라고. 아주 위험천만한 바보들이지. 나야 고작 자기 자신이나 조금 다치게 하는 바보일 뿐이지만, 너희 독일 놈들은 항상 남을 해치는 바보들이잖아. p48


  밀로시의 말대로다.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는 것. 그러나 끝까지 그렇게 될까. 밀로시는 선택한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에 폭탄을 던져넣는 것을. 그것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떻게 소심한 밀로시가 이러한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천만에요. 이렇게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 저도 이제 남잡니다. 후비치카 씨처럼 그런 남자가 됐다니까요. 너무 멋진 일이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동안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짐을 벗어 버린 느낌입니다.“ 나는 책상 위에서 긴 가위를 집어 들어, 날을 벌렸다 철컥! 소리나게 닫았다.

    “이렇게 제 과거를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p117


  밀로시는 오래전 “독일군은 탱크를 돌려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라는 최면을 걸면서, 꿋꿋하게 부대 전체를 향해 혼자서 대항한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그때 목숨을 잃었지만 할아버지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자신이 일찌감치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면 폭탄을 던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감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가슴속엔 할아버지의 이 정신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다만, 이 숨겨진 자의식, 자존감을 일깨워준 것은 그를 ‘남자로 태어나게 해 준’ 사건이다. 그렇다. 그는 역에 들린 누군가의 도움(?)으로 첫경험을 성공한 것이다. 그것이 밀로시로 하여금 전환을 이루게 했다.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폭탄을 던져 엄중히 감시받는 기차를 폭파시킬 행동력과 함께 그 행동력을 강화할 정신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첫경험의 실패 때에는 근방의 폭격이 있었고 첫경험의 성공 후에 그는 폭격을 하러 떠난다.

  눈 내리는 기차역. 눈이 아름답게 내리는 밤. 밀로시는 최선을 다해 폭탄을 던지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독일군 병사에게 발각되어 총에 맞기까지 한다. 서로 총을 겨누며 눈밭에 쓰러진 채, 서로에게 죽음만이 마중 나온 상황에서 밀로시는 독일 병사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는다. 그가 엄마, 엄마 외쳐서이기도 하고, 그도 자신도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평범한 같은 인간인데도 서로 총을 쏘며 죽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서로 좋아할 수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병사의 손을 잡고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 열차의 폭탄 터지는 소리만이 그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만들었다. 그에 힘입어 우편열차 열차장이 독일인에게 했던 말을 자신도 병사에게 말한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그들이 그랬다면 서로가 총을 겨눌 일도, 타지에서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긴 하다. 눈 밭 위로 흘러내렸을 그들의 피가 얼마나 붉을 것인가.

  자존감과 자의식을 되찾은 밀로시는 그의 생에 마지막 순간, 독일군에게도 관대하다. 평범한 이들이, 소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며 첫경험에 실패한 것에 충격을 갖는 소심한 청년이 나라를 위해 제 의지를 가다듬는다. 기껏해야 권력을 쥔 이들의 더 큰 권력욕이 불사른 전쟁에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삶에서 수많은 첫경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스러져갔다. 지금도 여전히 특정한 이들이 제 야욕과 엉터리 정의로 세상을 지배하려 난리를 친다. 그깟 경험이야 하지 않아도 될 소소한 시민들이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를 제지시킬 방법은 정말 폭탄뿐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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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 하리를 느끼지 못했다

 

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16-09-23.

 

 

  실존 인물을 그린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객관적이어야지 하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될 때가 많다. 그래서 실제 인물의 생애를 다시 살펴보고 다른 이들의 평가를 보며 다시 인물에 대한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곤 했다. 그런데 마타 하리. 1차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를 받고 총살당한 무희인 그녀의 생애를 소설 스파이로 만났다.

  유명인물이지만 그녀의 생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생각보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우선 작가가 파울로 코엘류였기에 만족감이 덜했다는 점도 있다. 파울로의 글이라기엔 내용이나 문체가 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더 나아가 작가가 의도한 바대로의 마타 하리의 이미지, 작가가 그려낸 마타 하리의 생애에 대해 오히려 의문이 가득하게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마타 하리에 대해 감정이입을 해야 하고 작가의 의도를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가 한동안 계속 생각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마타 하리에 대한 검색을 여러 번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작가가 그려낸 것만큼이나 마타 하리의 실제 행적 자체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총3부로 구성된 1부는 마타 하리의 어린 시절과 결혼생활을 그린다. 네델란드 장교와 결혼하여 동인도에서 생활하지만 남편의 폭력과 외도에 고통스런 삶을 보내던 중 고대 인도의 전통 무용을 보며 충격과 환희를 경험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마타 하리란 이름으로 파리로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녀의 결혼은 사랑과 애정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남편의 ‘구혼광고’를 본 그녀가 ‘지원’하면서 이뤄진 결합이었다.

  2부에서는 마타 하리가 인도에서 본 춤을 재현하며 파리에서 무용가로 명성을 얻는 과정을 그린다. 마타 하리의 이국적인 외모와 나체로 추는 관능적인 춤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게 되며 인기를 얻는다. 유명 극장에서 공연할 기회를 가지며 고위 관료들과 어울리고 프랑스 사교계를 누비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네델란드 여권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그녀는 독일 정보부의 2만 프랑의 스파이 제안을 받았고 프랑스를 위해 일하고 있던 중 프랑스 당국으로부터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다.

  3부는 마타 하리의 변호사 클뤼네가 마타 하리의 처형 전 쓴 편지로 마타 하리가 고위층과 관계를 어떻게 쌓아나갔는지, 어떻게 이중 스파이로 의심받게 되었는지, 명확한 증거 없이 처형을 당하게 되는 모습에 대해 쓴다.

  이렇듯 총3부이지만 전체적인 분량이 많지 않다. 또한 마타 하리의 편지나 변호사의 편지 형태로 이야기가 정리된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의 내밀한 심리를 보여주기보다 사건 요약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독자가 마타 하리의 억울한 면이나 생애,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느끼며 ‘판단’할 새 없이 ‘마타 하리’는 이렇다라고 정해진 서술이었다. 어쨌든 그렇기에 마타 하 리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느낌도 갖지 못했고 열렬한 페미니스트의 느낌도 갖지 못했다. 마타 하리의 삶에서 춤에 대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고 이중 스파이로서의 역할에 대한 것도 너무나 부족하게 서술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부분은 실제 그녀의 이중 스파이 활동이 미미했다고 얘기된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1차 세계대전의 상황에서 불행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탓이리라.

  작가는 마타 하리를 “시대를 앞서간 여성, 페미니스트”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불성실한 독자였는지 작가의 의도대로 못 느끼는 것을 떠나서 오히려 마타 하리에 대해 ‘무지’한 모습만을 읽었다. 그녀가 자유롭고 독립적이어서 희생된 것이 아니라 무지했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그녀가 쓴 편지로 시작한다. 처형당할 때도 당당한 마타 하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마타 하리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삶의 모습은 당당한 여인보다 ‘무지하고 무지한’ 느낌만이 거듭 느껴졌는데 심지어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하며 아이에게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서술할 때, 반복적으로 자신을 빼내어줄 고위 관료 및 유명인이 많다고 거듭 서술할 때는 이 느낌이 극도에 달했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p29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라는 말은 공감하도록 하겠다. 모든 여성은 어느 때일지라도 시대를 잘못 타고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겠지만. 실제 마타 하리가 처형당할 때 당당하게 걸어갔다고 하니 마타 하리의 주장대로 그녀는 용기 있게 나아가긴 했다. 당당하고 자유로운 삶, 독립적인 삶이란 그녀 스스로 주장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에서 볼 수 있는 간략하게 전한 마타 하리의 삶의 모습에서 더 보여주지 못했다고 여겨졌다. ’독일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인 척하며 실은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기게 만들고 있었지요‘ 그녀의 주장을 느낄 만큼의 묘사가 없다는 것. 그저 그녀가 ’나는 이랬다‘라고 말로만 나타내 보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대로 마타 하리를 보기엔 그러한 심리를 느낄 만한 묘사와 서술이 부족하다. 마타 하리의 삶이나 그녀의 춤, 이중 스파이라는 것에서 갖는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겠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극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오로지 마타 하리의 입을 통해 덤덤히 전개된 까닭에 강한 감정이입이 덜 되는 것인가도 생각해 보지만. 간결하게 펼쳐지는 상황 설명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오히려 더 큰 듯하다.


나는 행복을 찾았던 게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라 브레 비La vraie vie’, 진정한 삶을 원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상심의 순간들이 함께 있고, 충성과 배신, 두려움과 평화의 순간들이 공존하는 진정한 삶. 내가 미행당하고 있다고 거지가 말했을 때, 나는 이전에 맡았던 그 어떤 역할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나 자신을 상상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독일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인 척하며 실은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기게 만들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신이 수학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신이 만일 사람이라면, 신은 상대방의 수를 앞질러 생각하고, 미리 무너뜨릴 전략을 준비하는 체스 선수일 것입니다. p157

 

  마타 하리가 원했던, 그렇게 살았다고 하는 ‘진정한 삶’. 그것을 느끼기에 소원했던 스파이는 그래서인지 마타 하리의 실제적 삶에 대해 궁금하게끔 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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