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교롭게도, 마지막 리뷰로 올린 책이 ‘필경사 바틀비’다. 글이 게재된 때가 2020년 5월이니 지금으로부터 5년 하고도 2개월 전이다.
왜 하필 그 책이었을까. 왜 리뷰 제목은 “스러진다”였을까. 운명론자는 아닌데. 그런 물음을 묻고 나면 대답은 정해진 것처럼 나온다. 마치 운명을 예언하는 것처럼, 바틀비처럼 그렇게 나는 스러졌던 건가. 5년의 시간, 책리뷰 하나 올리지 못한 삶이 어땠을지 생각할수록 지난 나의 시간이 아쉽고, 안쓰럽다.
너무 오래 글쓰기를 하지 못하고 길어진 시간, 다시 시작하는 글은 ‘정의’를 말하는 책이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2019년을 겪고도 2022년 푸르른 5월의 선택이 그렇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말문이 막혔는데, 비단 막힌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던 터라. 나 또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로 살아지게 된 것이려나.
오래도록 분노와 무력과 환멸이 휘감는 삶에서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제 자신을 위해, 타인을 죽이려는 인간들이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을 동조하는 세력이 또한 많다는 것 또한. 12월의 밤에 겪었다시피 말이다. 여전히 그 여파가 해결되지 않은 채 있지만, 해결되기 위한 한걸음이 시작되었으니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려나.
그러나 그건 그것으로 흘러갈 것이고, 주위에 있는 그러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옛날 전설따라 삼천리식이라면 그건 하늘이 알아서 벌을 내린다는 인과응보, 사필귀정으로 귀결되는데, 요즘 세상이란 알 수 없다보니 마냥 하늘이 어떠한 정의를, 인과응보를 실현해 주리라 믿을 수도 없다. 기다릴 수도 없다.

뜬금 어지러운 머릿 속에서 이상하게 돈키호테가 생각이 났다.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 햄릿과 대비되는 인간상으로 그리고 비교적 긍정적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평가받았던 돈키호테. 돈키호테에 대해 한발짝 마음이 다가서게 된 것은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이긴 하지만.....햄릿형의 인간이나 책이 아닌 돈키호테를 떠올리며 마음이 가는 것은 지금 내게 돈키호테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새삼 돈키호테를 새롭게 만나는 여정이 설렌다. 이제, 마지막을 뒤덮은 새로운 제목은 스러진다에서 무엇이 될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