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4일 부터 6월 16일까지 읽은 책 가운데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공감하고, 감동하고, 재미있었고, 숙고해볼 만하고, 새삼스레 사람살이를 되돌아 볼 기회를 주었으며 그리하여 읽기에 즐거웠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개인의 호오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게 또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혹시 책을 고르실 때 조금 도움이라도 된다면 제게도 참 고마운 일일 겁니다. 순서는 읽은 차례이며, 원본의 초간 발행 순서일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1. 알렉상드르 뒤마, <삼총사>

 

 '소설 읽기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단연 뒤마와 위고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거의 누구나 소년시대에 축약본이나 만화로 본 적이 있어서 그냥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원전을 한 번 읽어보시면 전체에 깔려있는 음모와 드라마의 진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세 권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금세 뚝딱 읽어치울 수 있을 겁니다. 진정한 팜 파탈의 전형을 구경하는 것도 이 책의 대단한 즐거움이고요.




 2. 알렉시 드 토크빌,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

 

   프랑스 혁명보다는 혁명 전 시기, 즉 앙시앵 레짐이 권력 안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을 역량을 갖추고 있었으나 문제와 해결의 방법을 체제 내에서 찾지 못한 정치가와 철학자들을 은근히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높은 압력으로 구체제 안의 제도와 프로세스를 뚫고 뿜어져나온 인민들의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불평등을 초래한 당대 전제정치의 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귀스타브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플로베르의 미완성 장편소설이며 희극입니다. 독후감에 저는 "희극의 힘은 대단하다. 진정한 슬픔이 없는 희극은 희극이 아니라서"라고 썼습니다. 두 필경사가 서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어, 난데없이 큰 돈이 생겨 귀향해 벌이는 촌극입니다. 하는 일마다 되는 거 없는 두 중늙은이들의 인생의 석양. 그들이 씁쓸한 웃음으로 다시 필경의 업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가슴이 컥 막히는 희극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4. 헨릭 시엔키예비츠, <쿠오바디스>

 

  한때는 연말연시만 되면 TV에서 방영해주던 영화의 원작입니다. 영화를 봤으니 굳이 책은 읽어 무엇할까, 싶은 마음에 이제서야 그냥 별 생각없이 들춰봤더니, 하, 책을 읽어보지 않고 흘려보낸 세월이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베드로가 묻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청빈하고 순종하고 정결했던 초기 기독교를 충분히 공감하며 읽었던 한 무신론자가 있습니다.




 5. 제임스 M. 케인,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이것 역시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현대 소설은 뭐 별로겠지, 라는 선입견에 오래 빠져있어서 여태 읽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괜찮은, 아니, 저하고 궁합이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얼핏보면 로드 무비일 수도 있고, 케루악 류의 비트 문학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 다 놔두고 재미있는 치정 소설로 읽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학이 언제나 고상한 건 아니잖아요?




 6. 아서 밀러, <모두가 나의 아들>

 

 가족간의 기다림과, 사회적 정의가 가정에 끼치는 파편에 대한 드라마라고 거칠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희곡을 이리 단순하게 얘기하는 건 참으로 말도 되지 않는 일이겠습니다. 희곡을 읽는 재미는 머리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의 무대를 만들어 연출을 해보는 일인데, 이 책은 가족간의 갈등이 다방면에 걸쳐 등장하여 다양한 드라마와, 결국에 가서는 어쩔 수 없는 회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30대 초반에 썼는데도 나보코프 특유의 말장난과 인용, 패러디 등등. 이런 성향이 너무 강해 번역서에서는 제대로 그 맛을 알고나 있기는 할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선배작가는 도스토옙스키. 특히 <죄와 벌>, <악령>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터이고요. 내용은 뭐 말도 되지 않는 범죄행위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것이지만 그걸 핑계로 창작을 하는 작가의 지옥불길 같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8. 아르카디/보리스 스트루가츠키, <노변의 피크닉>

 

  마치 중류 정도의 가족이 차를 몰고 캠핑을 가서 때려먹고 놀다가 온 장소처럼, 13년 전에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놀러와 한 판 잘 놀다 쓰레기를 남기고 떠난 것을 전제로 합니다. 미개한 지구인들은 외계 생명체가 흘리고 간 것들이 어떤 영향을 주고, 무슨 기능을 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것들을 엄정하게 관리하는 가운데 도굴을 직업으로 하는 집단도 생긴답니다. 아주 재미난 착상으로 펼치는 상상력의 개가. 역시 스트루가츠키 형제들의 짓궂은 솜씨입니다.




 9. 카를로스 푸엔테스, <미국은 섹스를 한다>

  

  지금 절판이며, 원래 제목은 <다이아나>입니다. 한글 제목을 참 더럽게 지어놓아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책입니다. 무대는 1969년에서 1970년으로 넘어가는 12월 31일 밤. 미국은 마틴 루터 킹, 케네디,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말콤 X를 잡아먹고 거친 오른쪽 파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며 베트남에선 유사이래 최초의 패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미국에서 온 달의 여신 다이아나와 연애를 벌이는 푸엔테스. 제목이 후져서 그렇지 가히 푸엔테스 최고의 작품입니다.




 10.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오늘 소개하는 작품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수작. 아니, 명작의 반열에 까지 올려놓아도 별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거의 완벽하게 건조한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3부작. 3부 전체를 한 권으로 새로 만들어 내놓았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일 수도 있고, 분열된 자아를 보는 한 인간일 수도 있는 형제 루카스와 칼루스. 독자들은 1부 첫 장을 넘길 때 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지만, 하도 재미 있어서 그런 건 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근데 재미만? 아닙니다. 명작의 반열에 올릴 정도라니까요.




 11. 에두아르도 멘도사, <구르브 연락 없다>

 

  이것도 외계 생명체 이야깁니다. 멘도사 책 가운데 처음으로 범죄소설이 아니군요. 외계인이 UFO를 타고 지구에 상륙해 모습을 지구인과 똑같이 바꾸고 이름을 구르브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도무지 소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화자 '나'는 키 170cm, 두개골 크기 57cm, 눈알 두개에다가 꼬리 없는 여자로 변신하여 구르브를 찾아 나서서, 온갖 난처한 사태를 만나는 얘기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멘도사 작품의 특징은 독자로 하여금 새삼스레 뭔 깊은 생각을 할 필요 없이 만들어준다는 것이지요. 항상 무거운 책만 읽으면 사람, 겉 늙습니다.




 12. 마이클 온다치, <잉글리시 페이션트>

 

 저는 이 책에서 가장 깊은 관심으로 읽은 장면이, 영국인의 사랑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인도 출신의 공병 폭발물 처리반으로 등장하는 시크교도 출신 공병 중위입니다. 왜 유색인종인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뜨렸는가 하는 항의의 표현으로 탈영을 해버리는 장면입니다. 그는 단언하지요. 백인 국가에는 그런 무시무시한 폭탄을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나 번역한 한글 문장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13.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대박입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가 횡재한 느낌입니다. 가히 로스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날 로스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자의 청소년 시절에 멘토로 삼은 공산주의자의 일생을, 화자와 그 공산주의자의 형이며 화자의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기도 했던 90세 은사와 지난 날을 회고하는 장면입니다. 1976년대 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장악했던 우파에 대한 비판과 로스의 책답게 유대인의 정체성 찾기도 가미된 수작입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미국은 섹스를 한다>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좀 더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이 책이 더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14.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

 

 짧은 소설입니다. 죽음의 침상에 누운 사제가 지난 날을 회상합니다. 그와 그를 둘러싼 칠레 지식인들의 허위에 찬 가식을 적나라하게 들려줍니다. 볼라뇨가 하는 말이 전부 반어법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읽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장기가 훼손당하고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고문대 바로 위의 볼룸에는 술과 여자가 넘치는 파티가 벌어지며, 대통령 궁이 군대에 의하여 폭격을 당한 다음날 아침, 세상이 참 조용하구나, 평화로워, 라고 읊는 사람들의 초상. 볼라뇨, 처음엔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읽어볼수록 점점 끌리는 매력을 지닌 작가입니다.




 15.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천국은 다른 곳에>

 

  이것 역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책입니다. 그러나 품절이라 중고책방을 뒤져야 하지만 충분히 그 정도의 노고를 바쳐 마땅합니다. 미친 네덜란드 환쟁이 고흐의 아뜰리에를 떠나 타히티에 정착한 고갱. 매독으로 종양이 퍼져 다리를 절뚝이고 나중엔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는 고갱이 타히티에서 인생의 마지막으로 불태우는 예술혼, 그리고 고갱의 외할머니이자 맹렬 사회주의자이며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던 플로라 트리스탕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놓았습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데 품절이라 아깝습니다.




 16. 뮈리엘 바르베리, <고슴도치의 우아함>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서 한 지붕을 이고 사는 두 천재 여성의 만남. 한 명은 못생긴 쉰네 살의 수위, 또 한 명은 일찌감치 인생은 투명한 어항 속의 금붕어 이상이 아님을 알아채 오는 6월, 십삼 세가 되는 생일날 자살을 거행하기로 결심한 열두 살 소녀. 이들 속에 혜성같이 등장하는 돈 많은 은퇴한 일본 남성. 가난하고 못난 여성이 과하게 똑똑한 것은 사회생활 하는데 방해만 줄 뿐인 것을 충분히 이해한 수위의 은둔을 알아챈 소녀와 남성이 서로 맺는 따뜻한 연대가 어떻게 될지는 직접 확인을 하셔도 좋을 겁니다.




 17. 존 맥그리거, <개들조차도>

 

  읽기 거북할 수 있습니다. 죽은 지 7일 만에 발견된 시체를 집 밖으로 내오고, 시체 공시소에 저장하고, 꺼내 부검하고, 장례를 치루는 것까지 상세하게 묘사해놓았습니다. 친지와 가족이라고는 마약 중독자들 뿐이고, 결코 존엄하지 않은 시신만을 남긴 인물은 지독한 알콜 중독으로 자연사 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루저들이 만들어내는 인생도 존중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의 삶도 전혀 의미가 없는 삶은 아니니까요.




 18. 이병률, <찬란>

 

 개인의 독백이나 과도한 물기 또는 남발하는 은유가 판을 치는 시집들 가운데 이런 시집을 하나 고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시로 말하자면 최고의 미덕은 시인이 뭘 노래하는지 독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금씩 궁상맞고, 쓸쓸하고, 마음이 저린 이병률의 시들을 읽으며 참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전 아마추어, 잘 봐줘도 딜레탕트에 불과한 한 독자가 두달 여에 걸쳐 읽은 책 가운데 좋은 느낌으로 읽은 것들을 추려본 것입니다. 다시 얘기하자면, 혹시 이 감상문을 읽는 분들의 의견과 달리하는 것들을 발견하신다 해도 그냥 평범한 독자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하시어 심하게 까탈을 잡지는 말아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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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7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지리아 출신의 재원. 사실은 재수 없는 인간. 나이지리아에서 어쨌든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갈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집 따님이지, 나이지리아 슈카 대학, 드렉셀 대학,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예일 대학 등을 두루 섭렵하고, 섭렵한 만큼 의약학, 언론정보학, 정치학, 문예 창작, 아프리카 학 등을 공부했으며, 발표한 소설을 읽고 감격 먹은 미국의 평론가들로부터 미래를 이끌 젊은 작가 20인으로 뽑히기도 한데다가, 예쁜 얼굴에, 오동통하지만 보기 좋은 신체까지, 좋은 것들은 몽땅 갖춘 이. 우린 이런 사람들은 가끔 재수 없는 남자 또는 여자, 이를 다 합친 개념으로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딱 보면 그림이 그려지실 것. 이렇게 생겼다.

 

피부색은 뽀샵을 해서 원래보다 밝게 나온 거 같다

 

 

 나이지리아 작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아무래도 아프리카 삼부작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을 쓴 치누아 아체베. 그의 조국에서는 아디치에를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라고 할 정도란다. 그래서 그런가, 유심히 읽어보면 이 책의 주인공 이페멜루와 주위에서 작품을 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끝 장면에서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해버리는 오콩고와 같이 이보족族 출신이기도 하다. 아체베는 조국이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어떻게 투쟁했고 스러져갔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의 ‘21세기의 딸’은 어쨌든 독립을 쟁취한 나이지리아 사회의 전반적인 부패와, 서구를 향한 열망과, 영·미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미국 흑인으로 사는 것과, 다시 귀국하여 중산층 이상의 계급으로 편입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의 주인공 이페멜루는 1960년에 독립을 하고도 신생국이 거의 다 그렇듯 일정기간 (특히 군사정권 기간 중) 거치기 마련인 경제, 문화적으로 반식민半植民 시절의 막바지에 똑똑한, 그리고 나름대로 보통의 시민들보다 여유가 있던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이 흔히 그랬듯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중등학교 시절부터 연애를 해온 첫사랑 오빈제를 내버려두고. 대한민국도 기억한다. 부잣집 똑똑한 도련님이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더라도 접시 닦아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1960년, 70년대를. 제삼세계 국가에서 ‘좀 사는’ 정도로는 미국에선 생활도 못하는 수준. 이페멜루는 두 가지 핸디캡을 더 견뎌야 했으니, 나이지리아에 살 때는 조금도 실감 또는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이 흑인종이란 사실과, 여성이라는 젠더. 이거 참. 미국 안에서는 ‘흑인-미국인’과 ‘흑인-비미국인’이라는 간극도 있단다.
 두 권으로 된 작품의 1권(1부와 2부)은 이페멜루가 뽀글뽀글한 아프리카인 특유의 머리를 땋기 위해 미장원에 들러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머리를 하면서, 중등학교와 나이지리아의 대학에 다니면서 오빈제와 사랑을 하고, 첫 경험을 하고, 75%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떠나고, 미국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미국인으로 살고,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사매매춘을 겪고, 유사매매춘을 했다는 절망으로 첫사랑 오빈제와 결별을 하고, 다른 사랑을 만나고,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미국에서 흑인-비미국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여 유명인사가 되고, 성공적인 블로그로 인해 돈도 무척 벌고, 나이지리아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그러기 위해 남자와 이별을 하는 걸 회상하는 걸로 꽉 메워져있다.
 2권에는, 이페멜루가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첫사랑 오빈제가 교수 엄마가 학회 참석하는 걸 조수 명분으로 함께 런던에 갔다가 불법체류를 하다 위장결혼의 순간 체포되어 추방을 당해, 다시 나이지리아로 와서 오히려 부패한 정부와 ‘끈 대기’에 성공해 부동산 재벌이 되는 이야기인 3부, 반흑인 오바마와 흑인 미셸 여사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 결국 당선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유색인종들의 모습과, 드디어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이페멜루의 정착과정, 그리고 이페멜루-오빈제의 재회를 그려낸다. 오빈제는 그동안 어여쁜 아내 코시와의 사이에서 역시 어여쁜 딸 부치를 둔 유부남으로 변신했고, 이페멜루 역시 블로그를 통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름을 알린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가 됐는데, 과연 어떤 결말이 나올까. 이들 사이에 나이지리아 특유의 변형·고착된 기독교적 가치관이 마구 섞이는데.
 어떤 결말인지는 절대 알려드리지 않을 것이고,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평생 온전한 극동아시아 황인종이자 한 번에 열흘 이상 아메리카의 호텔방에서 고단한 머리를 뉘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확실하게 없을 내게, 길고 길게 이어지는 흑인과 흑백 혼혈과 유색 미국인, 유색 비미국인 등등 복잡하기 그지없는 피부색 타령은, 나이지리아에서 살던 소년시대 당시의 작중 주인공들인 이페멜루와 오빈제처럼, 이해는 가되 실감까지는 나지 않았다는 거. 근데 피부색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묘사의 파도에 둥둥 떠다녔다는 거. 2017년 3월 허핑턴 포스트에 나온 바와 같이, 페미니스트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트랜스젠더의 성적 정체성에 대하여 비판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의견을 낸 건 자신이 트랜스젠더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듯이, 나도 미국에 오래 살았던 적이 있는 흑인이 한 번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내의 유색인종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에 조금 질렸단 핑계를 대야할 거 같다. 반면에 1990년대 후반의 나이지리아, 특별히 군사정권 치하에 있는 그들의 조국 안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는, 나도 직접 겪어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이겠다.
 아디치에가 책 속에서 이페멜루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 것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백인 중심사회인 미국 문화계에서는 영어로 작품을 쓰는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시민권자인 아디치에가 인종간 차별을 강조한 작품을, 그들이 진심으로 좋게 생각했든 아니든 관계없이,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즉, 조금 삐딱하게 말하자면, 역 어드벤티지를 받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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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19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도 미국 언론에서 추켜 세워서 일단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못 지었네요.
아마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장면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장편보다 어쩌면 단편이 더 나은 지도 모르겠네요.

독서모임에서 자극 받아 그전에 사둔 단편을 하나
읽었는데 흥미롭더군요.

그나저나 나이지리아에 대해 알려면 아체베부터
섭렵해야 하나요...

Falstaff 2018-06-19 16:36   좋아요 2 | URL
암만해도 나이지리아 문학하면 반反식민주의 작가인 아체베가 시작이겠지요? 아체베가 조지프 콘래드를 식민소설 작가라고 몰아부친 식민/반식민 논란은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 다음 세대로 벤 오크리가 있는데 <굶주린 길>은 반半식민에 대한 리얼리즘 적인 소설을 재미있게 써서, 아체베와 현대 나이지리아의 사이를 연결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근데 굳이 나이지리아 문학으로 국한하지 않고 (식민지 시대를 본격적으로 경험한) 흑인대륙문학으로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면 식민, 반식민적 작가로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오, 남아프리카의 에스키아 음파렐레 등을 들 수 있겠고요.
같은 아프리카 문학이라도 존 맥스웰 쿳시나 도리스 레싱, 알라 알아스와니 같은 비 흑인이 쓴 작품은 당연히 흑인대륙문학에선 제외해야 하겠군요.
에구, 죄송합니다. 잘난 척이 넘 심했습니다. ㅠㅠ
 
사막 식당 창비시선 356
김성대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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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고른 이유는 작가 김성대가 ①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았으며, 이어 ②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으로 다른 시인도 아니고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데다가, ③ 창비시선의 356번째 시집이기 때문이었다. 즉, 창비에서 등단해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다시 창비에서 낸 시집. 김수영과 창비의 교집합. 이것이 내게 무슨 뜻이었는가 하면, 적어도 시 하나를 읽기 위해 고단위의 문학적 수련 내지는 ‘내공쌓기’ 관문을 통과할 필요가 없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희망사항이었다. 김성대는 자신의 시집에 든 모든 노래들 속에 나 같은 보통의 독자들은 애초부터 해독 불가한 암호 또는 기호들로 가득 채워놓았다. (이리하여 창비 역시 기어이 창비만의 색을 포기한 거디냐?)
 그나마 조금 이해했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 시는 <이안류 3> 정도.




 이안류 3
 1999년의 사진


 

 눈 속에서 실핏줄 하나가 끊어진다


 플래시가 터졌을 때 누군가의 눈과 마주쳤다
 불현듯 결빙된 얼음 같은
 눈 속의 종소리


 눈을 돌리지 못한
 아직 쏟아지지 않은 빛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인데


 역광이 고이는 내 눈 속의 인화
 유성 속을 떠도는 그늘처럼
 어느 시간을 번지고 있는지

 

  *


 눈 속에서 종소리 하나가 해빙된다
 지금의 내 눈과 마주쳤던 것이다
 사진을 보는 나의 눈을 인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번져올 것 같은 충혈이
 눈을 돌리지 못하고
 같은 눈으로 붉어지는


 나의 나의 운석이 되어가는 것일까
 사진 속의 그늘이 흘러나와

 눈 속에서 실핏줄 하나를 놓친다    (전문)




 누구나 경험해봤을 적목赤目현상. 사진을 찍을 때 주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잘 나타나는 현상으로 사람의 눈동자가 빨갛게 나오는 것을 말한다. 어두운 곳에선 홍체가 활짝 열려 있는데 갑자기 플래시가 터져 밝은 빛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빛이 눈알 저 뒤편에 있는 망막의 실핏줄에 반사되어, 눈동자가 빨갛게 현상된 사진, 누구나 한 장 이상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플래시가 터졌을 때 누군가의 눈과 마주쳤다”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한 순간, 플래시의 환한 빛이 피사체의 망막에 반사되는 짧은 순간에 “불현듯 결빙된 얼음 같은 / 눈 속의 종소리”를 듣는다. 1999년, 세기말 어느 저녁, 역광에서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무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종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시인이다. 안구 속을 울리는 종소리.
 이안류離岸流. 골치 아프게 사전 뒤져볼 것도 없다. 해수욕 시즌만 되면 1년에 한 명쯤 골로 보내는 파도. 파도는 파돈데 바다에서부터가 아니라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거꾸로 쏟아지는 파도. 여기에 휩쓸리면 순식간에 얕은 바다에서 먼 바다 쪽으로 확 휩쓸려버리게 된다. 해마다 한국방송 9시 뉴스에 나오니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여름에도 유심히 들어보시라.
 그러니까 플래시에 반사되어 붉게 보이는 실핏줄들의 반사를 거꾸로 흐르는 파도와 유사하다고 보는 건데, 나는 이의 없다. 또 사실 그리 시 애호가도 아닌 내가 이의가 있건 없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이 시집 <사막 식당> 안에서 내가 이해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가 이거 하나 정도. 나머지는 처음에 말했듯 오리무중의 암호와 기호로 도배가 되어 있다. 또는 그런 거 같다. 불행하게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암호해독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눈사람
 오늘의 눈이 녹는 동안 어제의 눈이 쌓인다. 어제의 메아리에 내려앉은 새들은 날개가 얼었다. 영하의 거울 속에서 초인종이 울렸고 올빼미의 눈을 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다. 첫 발자국을 향해 몇광년을 건너온 눈사람의 속도로. 절대영도로 이루어진 고집스런 녹는점으로. 사내는 겨울을 깁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가만히 목격되어 있을 발자국들로 자신의 액자가 되어가는.



 시 <겨울 SF>란 시의 부분이다. 첫 문장부터 예사스럽지 않다. 시제가 바뀌었다. 오늘의 눈이 녹는 동안 어제의 눈이 쌓인단다. 여기에다 갑자기 날개가 언 새들, 그것도 어제의 메아리가 내려앉은 새들이 등장하고, 초인종이 울리고 올빼미 눈을 한 사내가 또 등장한다. 올빼미 눈이 말하는 건 어떤 걸까. 원형의 눈에 눈동자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거? 근데 뒷문장하고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첫 발자국을 향해 몇 광년을 건너온 눈사람의 속도라니. 누가 왔지? 아니다. 눈이 쌓이는 속도를 얘기하는 거 같다. ‘몇 광년을 걸어온 눈사람의 속도’로 어제의 눈이 쌓인다는데, 또 절대영도 그러니까 영하 273도로 이루어진 녹는 점.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온도. 그게 영하 273도. 유클리드 물리학 상 모든 존재가 무無로 사라지는 온도다. 그러니 나 같은 보통의 독자들은 김성대의 시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배워먹은 것이 없다. 저 구름 위에 노니는 이런 시인들의 뜻을 어찌 뱁새가 알랴.
 심지어 해설 <눈사람의 탄생>을 쓴 장은석조차, “시인은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우선 특정한 감각적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나머지들이 천천히 섞이도록 놓아둔다. 그런 다음에 일치 불가능한 사태로부터 다른 잠재적 힘이 도래하도록 계속 자세를 바꾸며 그들을 북돋운다.”(139쪽)라고 했다. 물론 시집 뒤편에 달려 있는 해설은 당연히 주례사다. 평론가인 장은석조차, 시인은 독자가 “공감할 수 없는 상황에” 집중하고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특정한 감각적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일치 불가능한 사태로부터 다른 잠재적 힘이 도래하도록 자세를” 바꾼다고 했다. 참, 나, 원. 문학평론가조차 공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상태를 전달하는 것으로 현대시는 진화했나보다. 그것이 또 어떻게 읽으면 바람직하다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평론가의 말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일치 불가능한 사태로부터 다른 잠재적 힘이 도래하도록 계속 자세를 바꾸며”? 시 쓰는 게 뭐 섹스 하는 거야? 잠재적 힘까지 몽땅 끌어낼 수 있도록 계속 자세를 바꾼다니, 얼핏 읽으면, 시 쓰는 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섹스(공감할 수 없는 체험을 공유하는 행위)를 위하여 자꾸 체위를 바꾸는 것같이 읽히는 건 비단 나만 그런가?
 시인과 시집과 시들을 오해하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책의 가장 뒤편에 있는 “시인의 말” 가운데 한 부분을 가져온다.


 

 하나의 밤이 들어가서 닫힌 방
 그 방의 무한한 위치들
 우리의 전야는 반복되기만 해
 우리라는 미간을 띄워놓고도
 어느 얼굴이어야 하는지 모른다
 닮아본 적 없는 그것은
 계속 사라지고 있고
 계속 도착하는 하나의 창,


 ‘밖을 봐요. 섬이 하나 늘었어요.’


 다른 밤으로는 열리지 않는 미간의 기후를
 한쪽 눈을 불어주던 10시와 2시 방향 사이를
 다 살아볼 수 없다
 다시 살아볼 수밖에 없다



 시인은 자신의 방에서 결코 방을 나서지 않는다. 방 안에서 모든 것을 반복시키고, 사라졌다가 도착하기도 한다. 세상을 향한 오직 하나의 틀은 창 하나. 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기껏해야 시계바늘 10시와 2시 사이의 예각일 뿐이다. 이렇게 지극한 개인의 시각으로 쓴, 시인이 장착한 암호와 비의와 은유를, 한낱 독자밖에 안 되는 내가 어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겠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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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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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친한 두 여자의 유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정을 맺기부터 60년 후 결별에 이르기까지를 그린 장편소설. 총 4부로 되어 있으며 2011년 첫 작품 <나의 눈부신 친구> 이후 1~2년 터울을 두고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발표했다.

 

 


 다 합해서 2,300 쪽에 이르는 길고 긴 소설. 이 4부작을 읽기 위해 만 9일이 필요했고, 9일 가운데 이틀은 노느라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음으로 사실은 7일만을 독서하는데 썼으며, 과하게 집중한 때문인지 매일 점안액 두 개를 눈알에 투입했음에도 오후 여섯시 이후가 되면 눈이 침침해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은 책. 그러니 참으로 행복한 7일이었다. 낮엔 책 읽고 밤엔 쐬주 마시고, 아침엔 바가지 긁히고. “나하고 얼∼마나 살기 싫으면 그렇게 하루∼도 안 빼고 만날 술이야, 술이! 내가 지겨워서 살지를 못해, 못살아!” 아, 행복한 나날들이여!
 위에서 말한 2,300 쪽은 원고지 2,300 쪽이 아니라 신국판 판형의 소설책 2,300 쪽을 말하는 것. 원고지 2,300 쪽이라도 출판사만 잘 만나면 두 권짜리 장편소설로 불릴 텐데. 하긴 누구라도 자신의 혼자의 평생만 회상하면서 책을 쓴다 해도 장편소설 한 권은 나올 만한데 화자 엘레나와 화자의 평생 친구 릴라, 두 명의 일생과 둘을 둘러싼 이웃, 가족, 남자들, 그들과의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까지 등장시키고 그들 모두의 대략적인 인생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면 이런 분량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1부 독후감에서도 말했듯이 엘레나와 릴라, 이 두 명의 똑똑한 친구들은 평생에 걸쳐서 서로 상반된 성격이지만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대단한 독서량을 지닌 것으로 등장한다. 머리 좋고 책을 많이 읽은 것, 나폴리 변두리 빈촌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한 남자를 시간 차이를 두고 사랑해 그의 아이를 낳거나, 그의 아이를 낳았다고 착각하는 것, 그 남자와의 관계가 혼인 상태에서 벌어진 불륜이라는 것이 이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며, 나머지 모든 것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엘레나는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올리비에로 선생의 강권 비슷한 압력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순서에 입각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지만, 엘레나보다 훨씬 더 우수한 릴라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와 여성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구두수선과 구두제작 일에 종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고 획기적인 구두를 디자인 해 오빠를 비롯한 가족을 부유하게 만들기도 하는 번뜩이는 천재. 그래, 내 표현으로는 릴라를 두고 번뜩이는 천재 말고는 달리 표현하기 힘들다.
 이 번뜩이는 천재가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 4권의 604쪽에 이르러 엘레나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평생 품었던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인생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어디에 쓰여 있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대사가,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자질을 가진 책의 진정한 주인공 릴라가 숱한 시도와 도전, 학습과 모진 시련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거진 다 살아낸 다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에 깊게 동의했다. 글 속에서도 나폴리를 무대로 한 소설을 집중적으로 써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엘레나와는 달리 엘레나에게 계속적인 자극을 주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세 딸을 돌보아줌으로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주기도 했으나, 한 순간도 쉼 없이 긴장하게 만들고 틈이 날 때마다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직선적인 비난으로 피곤하게 하는 릴라. 그러나 천생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 출신답게 법보다는 폭력과 얼굴을 맞댄 대화와 협박에 친숙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유대를 배반하지 않고, 무엇보다 감정의 표현에 조금의 가림도 없는 전형적인 남부 이태리 현지인으로 늙어가는 번뜩이는 천재. 그녀가 험하디 험한 생을 살아보니, 인생에 꼭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화자 엘레나는 책이 끝날 때까지 릴라가 긴 세월을 두고 한 작품을 썼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릴라가 썼기 때문에 자기의 작품을 가볍게 능가하는 획기적이고 훌륭하고 흉내 낼 수 없는 걸작일 것이리라는 불안감에 평상심을 잃어버리기까지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느 날 자기 앞으로 릴라의 글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가 배달되어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겁나는 기다림’을 멈출 수도 없다.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고 해서, 내가 ≪나폴리 4부작≫을 “걸작”이나 “명작”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하는 건 아니다. 195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의 전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정치, 문화의 후진성을 샅샅이 그려내고 있고, 동시에 당시 젊은이들의 (순진하기도 했던)사랑과, 불륜과, 성추행과, 무제한적인 폭력과, 사회운동과 불운한 환경 등을 충분히 감상하게 해줌에도. 그래서 역시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나폴리 4부작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작가의 말대로 그건 독자가 읽는 방법이 언제나 옳다는 것으로 귀결한다. 그래서 책 외피를 벗겨내면 표지의 속지에 각 매체와 평론가, 작가들의 다양한 소감이 적혀있는 것처럼 사회소설로 볼 수도 있고,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도 있고, 그냥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 성장소설로 본다면 그냥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부 이탈리아 변두리에서 전국구 스타로, 무지렁이에서 지식인으로, 짐꾼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벽돌공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성장하는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는 의미.
 내가 여태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갈 인물 하나를 숨기고 있었다. 큰 키에 마지막 페이지 바로 전까지는 늘씬한 몸매를 지닌 밝은 갈색 머리의 기막힌 지성과 외모의 소유자. 이 빌어먹을 작자의 카사노바 행위를 좇아가는 것도 재미있어서, 앞 문단에서 말한 무거운 주제 말고, 니노란 이름의 놈팡이를 미워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이런 다양한 의미에서 재미있는 책.
 소설이 소설 같으려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을 맡는 것이 좋겠다. 이 책에서도 두 명의 주인공 릴라와 엘레나는 대단한 학습능력을 지닌데다가 노력까지 보탤 줄 아는 수퍼 우먼. 이들이 공통점으로 증오하는 동네 악당 솔라라 형제들은 막강한 재력에 뛰어나고 잔인한 폭력성과 기업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라토레 집안의 남자들은 훌륭한 외모에 하나같이 성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이들의 유혹에 무릎 꿇지 않은 여자들이 별로 없고, 사라토레 가문은 높은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로 가문의 이름 하나만 대는 것으로 거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러나, 이런 인간들이 과하게 많으면, 소설이 너무 소설 같잖아?
 말하기 참 힘든데,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비록 명작이나 걸작으로 꼽히기엔 역부족이지만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완전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미있지만 좀 과하게 평가된 작품 아닌가 싶다. 이토록 세계적으로 난리를 칠 정도는 아니라는 말씀. 21세기 들어 한국 출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블루 오션이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이탈리아 문학이라는 거. 앞으로도 다양한 이탈리아 작품의 소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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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6-1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점안액 두 개를 눈알에 투입하면서 책을 읽으시는 열혈 독서가 폴스타프 님! ㅋㅋㅋㅋ
폴스타프 님 소개만 읽으면 책은 참 재미날 것 같습니다. (만... 읽을지 안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칭찬은 많은데 안 땡기는 작품이네요.;; ㅎㅎ)
전 이 책 표지만 보고는 한길사 책인줄 전혀 몰랐어요.
마지막에 한국 출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블루오션이 이탈리아 문학이라는 데 깊이 동감합니다.

Falstaff 2018-06-15 09:56   좋아요 0 | URL
옙.
저도 이 책을 권하기는 좀 그래요. 일단 재미 쪽에서 별 다섯개 정도의 수준이니까 출판사에서도 4부까지 계속 쓰게 했을 겁니다. 출판계에서도 광고가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무시하잖아요. 암만해도 이 사람들이 힘을 좀 쓴 듯합니다.
원래 독후감엔 블루 오션에 이이의 작품들을 포함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거였지만, 공포의 검열 단계에서 빼버렸답니다. ㅋㅋㅋ

sslmo 2018-06-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꾸벅~(__)

주관적인 시점과 객관적인 시점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런 님의 리뷰가 웬만한 책보다 더 재밌습니다.^^
전 재미로 보나 작품성으로 보나 이분보단 켄폴릿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Falstaff 2018-06-15 10:5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리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
켄폴릿이라면 학창시절 스카라 극장에서 본 <바늘 구멍>의 원작자 말씀하시는 거죠? 그당시에 책도 읽은 바 있습니다만 워낙 오래 전이라서요.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sslmo 2018-06-15 10:58   좋아요 2 | URL
전 ‘바늘구멍‘은 대기 중 아껴읽으려 하구요.
‘대지의 기둥‘ 3권과 ‘20세기 3부작‘ 6권은 빼어나다고 생각해요.
제가 님께 무언가를 권해드릴 깜냥은 아니지만,
켄폴릿만은 강력 추천합니다~^^

Falstaff 2018-06-15 11:29   좋아요 1 | URL
옙. 고맙습니다.
얼른 가서 찾아보겠습니닷!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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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거 안 보고 ‘한길사’라는 출판사에서 찍은 소설책이란 딱 하나의 이유 때문에 선택했다. 책을 고르고 보니, 이게 생전 처음 듣는 엘레나 페란테라는 작가가 쓴 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란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또 나머지 세 권의 책도 싹 구입했다. 근데 왜 한길사냐고? 내 기억력이 엄청 꽝이라서 그랬다. 한길사의 소설이란 걸 시각정보를 통해 인식하자마자 내 큰골의 회백질 안에선 엉뚱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베른하르트의 <소멸>을 떠올리게 됐고, 그리하여 주문하기를 클릭해서 네 권의 나폴리 4부작을 몽땅 결제하고 나서야, <소멸>은 한길사가 아니라 현암사에서 나왔다는 게 번쩍 떠올랐다. 하긴 한길사나 현암사나 나 소싯적에 열라 읽은(솔직하게 얘기하면, 읽으려고 했던, 또는 읽기를 원했지만 갖가지 핑계를 대고 읽지 않았던) 사회과학 책을 많이 찍어 정든 이름이긴 하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 이 여사님도 참 재미나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것이 티에리 코엔이 쓴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꿈꾸었다>의 주인공 요나처럼, 필명으로 책을 출간하고, 매체와 인터뷰도 서면(또는 e-메일)이 아니라면 극구 사양했던 작가란다.


 (이 자리에 있었던 사진은 페란테가 아니라 페란테의 작품을 번역한 앤 골드스타인 Anne Goldstein 이었기에 삭제했습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미 나이 들어 늘그막의 그늘에 접어들어 안온한 황혼을 즐기고 있는 화자 엘레나 그레코. 엘레나라는 이름 대신 애칭으로 ‘레누’라고 하니 독후감에서도 엘레나와 레누란 이름을 마구 섞어 부르기로 하자. 읽는 사람들이 헛갈리거나 말거나 그거까지 책임지지는 말자. 어느 날 아침 리노에게 전화가 왔다. 또 갚지도 않을 돈을 좀 빌려달라는 전화인줄 알고 앞 뒤 가릴 필요 없이 “안 돼!”라고 이야기할 찰라, 리노가 말하기를 “엄마가 사라졌어요!” 한다. 그것도 2주 전에. 그러면서 레누가 살고 있는 토리노에 엄마가 가 있는 거 아닌지 궁금해 전화질을 했단다. 레누가 리노에게 장롱과 서랍 기타 등등을 샅샅이 뒤져보라고 하니, 모든 엄마의 물건, 옷, 신발, 장신구, 편지, 사진, 선물, 책 몇 권, 필름, 플로피 디스켓, 컴퓨터, 심지어 출생증명서에다가 통신사 계약서, 영수증, 고지서 등을 싹 챙겨 사라져버린 거였다. 레누, 정말 신경질 났겠지? 엄마가 사라진 다음 2주가 지났는데도 아들이란 놈이 엄마 장롱도 열어보지 않았단 말이다. 이 한심한 중년남자 리노의 엄마가 라파엘라 체룰로. 엘레나만 ‘릴라’라고 부르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리나’라 부르는 66세의 노인.
 이 책이 4부작 가운데 첫 번째 1부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엘레나의 삶과, 그것(엘레나의 삶)에 밀접하게 접근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리나의 삶, 두 인생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하고 예측할 수 있겠다. 독자로서의 나는 엘레나 그레코, 이 화자가 우연히 작가 엘레나 페란테와 이름이 같기도 해서, 조금, 아니 많이 변형시킨 자신의 모습이며 ‘리나’는 엘레나가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많은 사람 또는 친구의 모습을 모두 합쳐 만든 가상인물인 듯했지만 그건 또한, 전적으로 독자로서의 내 짐작이란 측면에서 정당한 짐작이다. 작가 스스로 말했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야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자 후기 448쪽)
 작가는 책을 쓰기만 하면 되고 읽는 건 독자 마음이다. 그래서 이 책, 4부작 가운데 1부만 본다면, 이건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릴라가 증발했다는 리노의 전화를 받고, 메일로 릴라에게 도대체 너 어디 있는 거야, 라고 묻지만 결코 답장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엘레나는 곧바로 릴라와의 60년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기억 또는 추억의 저 먼 끈은 초등학교 교사 올리비에로 선생의 말처럼 “천민”들이 우글대는 당시 패전국 이탈리아의 나폴리 변두리에서, 자신의 기억이 흐릿한 유년 시절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어진다.
 작가가 떠올리는 눈부신 친구 릴라의 첫 번째 인상은 “아주 못된 아이”라는 것. 그런데 그런 아이가 누구나의 인생에 한 명쯤은 있었다. 못 된 아이고, 매사 설렁설렁, 별로 공부하는 거 같지도 않은데 언제나 1등만 먹고, 모든 사람가 사물을 비딱한 시선으로 보며 세상에 중요한 건 절대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어린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때는 여러 가지로 짐작해보니 1950년대 초반. 패전국 이태리의 한 도시에서도 아주 변두리 빈민지역. 릴라는 매우 탁월한 지능과 못 된 성격을 동시에 지녔으면서도 대표 모범생 엘레나와의 우정을 쌓아간다. 둘 다 매우 똑똑하지만 엘레나는 애초부터 릴라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항상 릴라의 뒤만 졸랑졸랑 따라다니는 소년시절을 지내며, 사춘기로 접어들어선 자신도 모르게 공부는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릴라보다 앞서는 모종의 것 하나는 갖고 싶어 하는 기분. 그래,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겠지. 릴라가 워낙 특별하고 릴라네 집이 워낙 가난해서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대신 동네 도서관에서 라틴어 교본을 빌려 엘레나와 같이(그러나 릴라는 집에서 오직 혼자) 공부를 시작하는데, 엘레나가 결국 릴라의 극적인 도움을 받아 최고 성적을 맞을 수 있게 된다는 거. 릴라는 똑똑하고, 못된 만큼 삶을 보는 시선이 다각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거. 자기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힘 센 사내의 목에 칼을 대고 정말로 찔러버릴 깡다구도 있다는 거.
 재미있는 책이다. 릴라와 엘레나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곁다리로 남부 이태리 사람들의 다혈질적 행동습성, 특히 남성들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관습적 폭력도 무지하게 재미있다. 엘레나는 남동생 하나를 둔 맏딸. 동네 껄렁쇠들이 엘레나를 함부로 만지지 못하는 이유는? 만일 엘레나를 함부로 만졌다가는 동생 페페와 잔니가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 컸다고 자기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그들의 칼이 자신의 목에 박힐 수도 있기 때문. 복수를 하지 않거나 못하는 건 가문의 최대 수치로 여기는 이태리 수컷들의 관습법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4부작을 읽고 마지막으로 좋다, 아니다, 나한테 맞다, 안 맞다는 정말로 4부작 끝까지 다 읽고 난 다음에야 얘기하겠다. 일찍이 대단한 작품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를 1부만 대충 보고 아, 이런 재미없는 책이 있나, 싶었다가 몇 달 후에 사 둔 것이 아까워 나머지를 읽어보고 악, 이런 명작을! 그땐 내가 미쳤었나봐, 라고 반성했던 기억도 있으니, 겨우 1부만 읽고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심정을 짐작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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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6-1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가 좀 베일에 싸여 있으면 어때 하는 입장이었다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누구인지 완전 궁금해졌었습니다.
다 읽어낸 지금, 얼굴을 봐도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는군요~--;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는 분도 잘 보지 못했고,
그래서 다 읽은 후의 감상을 들어보지도 못해서 아쉬웠었습니다.
님도 권을 더해 읽어나가실때마다 시시각각 느낌이 바뀌실지 궁금합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나머지 리뷰들도 꼭 찾아 읽겠습니다.

Falstaff 2018-06-14 10:08   좋아요 1 | URL
책의 주인공이 ˝릴라˝잖아요. 프랑스 소설 가운데 <릴라는 말한다>가 읽는 내내 생각나더라고요. 그 책의 작가 ‘시모‘. 필명이며 누군지 아는 사람은 출판사 편집장 한 명, 어느 매체하고도 어느 방식으로도 인터뷰 같은 거 하지 않아 아직도 시모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
책 다 읽었습니다. 내일 전편 독후감 올릴 예정입니다.
늘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자냥 2018-06-1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끝까지 다 읽으셨나봐요?! 이 책 저는 선뜻 손이 안 가던데 ㅎㅎ 폴스타프 님의 전편 리뷰 읽어보고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말씀하신 대로 뒤로 갈수록 재미난 작품이죠. 1부 읽을 때는 저도, 이 책을 왜 덜커덕 다 샀을까 살짝 후회를... ㅋㅋㅋ

Falstaff 2018-06-14 12:43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이 이리 유명한 작품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답니다. 위에 썼듯이 <소멸>을 찍은 현암사하고 한길사하고 헷갈려서 그냥 한 방에 구입한 것이지요. ㅋㅋㅋ
둘 다 괜찮은 출판사였다고 기억하거든요.
<알렉산드리아....>와 비견한다, 까지는 얘기하지 못하겠습니다. 내일 올릴 예정인 독후감 막바지에도 썼듯이 조금, 아주 조금 ‘과포장‘ 또는 ‘과평가‘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4부 끝날 때 쯤에 작가는 드디어 이 책을 다 써냈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는데, 독자 역시, 드디어 이 책을 다 읽어냈다,는 인내심 고양의 경험을 만끽할 수도 있고요. ㅎㅎㅎㅎ
분명히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책 속에서도 예를 들 듯이, 유명 출판사의 기획성 홍보도 이리 유명세를 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