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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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면 책 제목을 <윌리엄 트레버>라고 달았다. 원래 제목은 2015년에 간행한 <SELECTION OF STORIES by William Trevor>, 즉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 현대문학에서 찍은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의 15번째 책이다. 단편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시리즈를 주목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눈에 들어오는 작가들만 보더라도 헤밍웨이, 포크너, 만, 해밋, 트레버, 멜빌, 겐자부로, 챈들러, 그린 등이 눈에 띈다. 흠. 외국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포크너와 그레이엄 그린의 단편집이라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
 같은 사람의 단편집을 두 권 연달아 읽는 일. 바로 전에 트레버의 열두 단편을 엮은 <비온 뒤>를 읽고, 곧바로 스물세 편이 실린 <윌리엄 트레버>를 마쳤다. 같은 사람이 쓴 작품이란 것은 물론 단박에 알 수 있다. 트레버의 문체와 서술방식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성향과, 주인공들의 행동방식과 주제 같은 것에 공통적인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 이것, 즉 작품 속에 일관하게 이어지는 특징 때문에 어떤 작가들(사실상 많고 많은 소설가들)의 단편집을 읽는 일이 지겨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트레버는 아니다. 연달아 서른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로운 흥미를 이끌어내곤 한다. 아무나 이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대부분 많은 세월을 살아낸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세계관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작품 속 시간은 쉽사리 과거에서 현재로 수십 년을 건너뛰고, 과거에는 많이 중요한 것들이 이젠 하잘 것 없는 일이 되기도 하며, 어려서는 모든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던 소년이 오늘,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위험한 중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노인과 몇몇 약자는, 대중과 상대적으로, 권력이 됐건 육체적인 힘이 됐건 간에 힘 있는 타인에 의하여, 비록 그것이 악의로 무장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선의와 천진에 의거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세계. 작가가 1928년생으로 대개 1920년대 중후반쯤에 출생한 인물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은 건 인지상정이라 여길 수 있으며, 간혹 그들의 (조)부모나 자녀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윌리엄 트레버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쓰는 독후감을 이리 건조하게 서술해도 되는 걸까? 문학과 관련한 강좌 한 번 들어보지 못했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괜찮은지 모르지만, (내가 읽은)트레버의 단편집들, <비온 뒤>와 <윌리엄 트레버>에 실린 작품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만일 단편소설 교과서가 있다면 바로 이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현대 우리나라 작가들의 감각적인 단편들과는 많이 차이가 나기는 한다. 그리하여 내가 느낀 교과서 운운은 정말로 단편소설을 쓰는 사람들, 소설 공부를 하는 이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만하겠다. 그러나 대상을 관찰하고, 취재해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진행과정이 어디 하나 넘치는 곳도 없고 모자란 곳도 없이 꽉 짜여 있으면서도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이야기의 쓸쓸함’이 매혹적이었다. 책 속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뭔가 하나가 결핍된 인물들의 이야기. 그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대단히 위대했던 여름이 드디어 갔다. 아직은 남은 태양의 여열에 숨이 막힐지언정 누가 뭐라 해도 이제는 가을이다. 만일 이 누추한 독후감을 보고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을 선택하시려 하면, 한 달쯤 더 흘러 가을이 깊어갈 때 더욱 어울릴 수 있을 거란 힌트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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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77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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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편집자님, 역자 유기환 씨, 책 앞 날개에 졸라의 생몰 연대가 틀렸는뎁쇼. 졸라가 죽은 해는 1902년입니다. (뭐 이런 거 까지 얘기하느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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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에선풍적수 2024-09-0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말씀하셨네요 그것도 재밋게
 
비 온 뒤
윌리엄 트레버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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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세 때 펴낸 단편집. 12편을 실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은 여태 두 권을 읽었다. 둘 다 장편으로 <루시 골트 이야기>와 <여름의 끝>. 두 편 모두 참 아리아리하게 심장을 적시는 바람에 단박에 트레버의 팬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 좀 더 알아보니, 트레버의 정수精髓는 장편이라기보다 단편이라 하여, 그의 단편집을 두 권 샀다. 먼저 읽은 책이 바로 이 <비 온 뒤>. 나는 여간해서 외국 단편은 읽지 않는다. 번역한 시는 아예 가까이 하지 않으려했다가 움베르토 에코가 너무도 찬란한 찬사를 보내기에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다른 사람도 아닌 김현의 번역으로 읽었고, 똥 밟았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번역 시는 없다. 단편도 비슷한 이유로 번역물은 잘 읽지 않는데, 단편은 장편에 비해서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서로 얽혀서 만들어가는 조형미 또는 세련미, 혹은 감각적 화학작용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효과적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하는 의혹. 솔직히 그런 면이 있었다.
 그런데 트레버의 <비 온 뒤>를 읽으며 확 다가오는 건, 원 작품이 정말 좋을 거 같다는 느낌. 알라딘의 빅 데이터를 보면, 내가 2017년에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정영목 씨의 번역서였단다. 책을 많이 번역했다고 좋은 역자란 뜻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정 씨의 문체에 좀 익숙해지지 않았겠는가, 싶지? 아님. 일단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즉, 역자가 한국말로 다시 쓴 우리문장이 가슴에 삼삼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아일랜드 풍경화가 내 마음을 울렸다는 거. 딱 <여름의 끝>이 그랬듯이.
 첫 번째 작품이 <조율사의 아내들>이다. 조율사가 두 번 결혼했다는 뜻. 상처한 후 재혼을 했다. 60대 중후반의 맹인 피아노 조율사. 지금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무릎 한쪽이 관절염에 걸려 눅눅한 겨울이면 고생깨나 하지만 한 때는 늘씬한 매력남이었다. 그때도 시력이 거의 없어 다섯 살이나 젊고 훨씬 더 아름다운 벨을 선택하지 않고 못생기고 뚱뚱하고 옷맵시도 전혀 없고, 집안일도 지저분한 바이얼릿을 선택해 삼십년을 너머 살다, 아내가 먼저 갔다. 두 해를 홀아비로 지내다가, 수십 년 전 조율사와 맺어지지 못한 다음에 결혼하지 않고 여태 혼자 산 벨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니 조율사의 아내들이란 전처와 후처, 두 명의 정식 아내를 일컫는 것.
 이 작품집이 트레버가 67세 때 나온 것이니, 최종적으로 다시 고쳐 쓴 시기의 작가 나이가 노년이었다. 책을 읽어보면, 늙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면 절대 쓰지 못할 작품들이다. 하나같이. 1928년생이니 동시대인의 67세면 호호 할아버지. 그러면서도 이리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죽은 전처가 조율사와 살아온 시절. 그 시절 속에 어느 날 갑자기 편입해온 후처. 남편은 맹인. 마음 같으면 집안의 모든 것을 바꿔버리고 싶은데, 그러자니 늙은 맹인 남편이 자기 집에 관해서 처음부터 다시 익숙해져야 하고, 참고 살자니 참 속이 아픈 상태. 짐작하시지? 이런 걸 얼마나 찬찬하게 써놓았는지 첫 작품부터 사람을 아리아리하게 만든다.



 근데 2017년에 내가 읽은 것들 가운데 가장 많은 책을 만든 정영목 씨. 그의 문장 하나 보자. <조율사의 아내들>에 나온다.


 “그 시절 조율사는 맹인이었기 때문에 구호금을 받았으며, 이따금씩 일이 들어오는 대로 등받이 없는 의자나 일반 의자의 해초를 엮은 좌판을 배운 기술로 수리하거나, 이런저런 행사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나, 이거 적어도, 그러니까 최소한 20번은 읽었다. 그냥 읽으면, 읽는 대로 진도는 죽 나갈 수 있다. 근데 눈에 좀 힘을 주니까 문제가 생기더라. 앞에 구호금 받은 얘기, 뒤에 바이올린 연주한 얘기는 빼고, 쉼표와 쉼표 사이에 있는 것만 보자. 즉,


 “등받이 없는 의자나 일반 의자의 해초를 엮은 좌판을 배운 기술로 수리하다.”


 문제:  위 문장의 (생략된) 주어는 조율사. 술어는 ‘수리하다.’이다 다음 중 조율사가 수리한 것(문장의 목적어)은?


 ① 등받이 없는 의자와, 일반 의자의 해초를 엮은 좌판
 ② 등받이가 있거나 없거나 종류 불문하고 의자의 해초를 엮은 좌판
 ③ 등받이 없는 의자와, 해초를 엮은 좌판이 있는 일반 의자
 ④ 등받이 없는 의자와, 일반 의자에 붙어 있는 해초
 ⑤ 일반 의자 다음의 조사 ‘의’가 ‘를’의 오기typological error임. 따라서 등받이 없는 의자와 일반의자.


 여러분의 선택은? 나? 모르니까 묻습니다. 오죽하면 이 지랄을 허겄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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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8-08-3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번 같기는 한데... 수능이 이렇게 나오면 촛불켤지도?

Falstaff 2018-08-31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3번은 아닐 거 같습니다. 그거 말고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이번엔 저도 촛불을 켜겠습니다. ^^

잠자냥 2018-08-31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국내에 번역된 윌리엄 트레버 작품 가운데 이 책이 가장 잘 안 읽히기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저 문장, 예전에 읽을 때 조율사가 수리한 건 ‘의자‘가 아니라 어떤 악기(피아노)라고 생각했어요(그러니까 여기서 목적어는 숨겨진 것???ㅋㅋㅋ) 근데, 그 조율하는 기술을 정규 방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 ‘등받이 없는 의자나 일반 의자의 해초를 엮은 좌판을 배운 기술‘로 이해했습니다. ㅋㅋㅋ 이로써 문제는 더 어려워지는 것인가???

Falstaff 2018-08-31 10:22   좋아요 0 | URL
아, 잠자냥 님 의견을 읽으니 눈이 좀 밝아오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해초를 엮어 좌판을 만든 기술‘로 피아노 조율하는 방식을 배웠다, 이런 말씀이지요? 그럴 듯합니다.
‘이따금씩 들어오는 일‘이 의자 수리하는 것이 아니고 피아노 조율이라는....
하하하... 문장 하나 읽으며 꼭 이렇게 집단 스터디를 해야한다니, 참 재미있습니다.

세상틈에 2018-08-3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문장 정말 정영목씨가 한게 맞나요?;;; 그냥 읽으면 1번으로 읽히는데... 자꾸 다른 해석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네요.ㅋ 5번은 초판이라면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Falstaff 2018-08-31 11:06   좋아요 0 | URL
옙. 정말로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 교수로 재임중인 정영목 씨가 번역했다고 책 앞에 쓰여있습니다.
검색해보면 이이가 번역한 책이 수백권에 달하는 인기, 유명 역자입니다. 다만 이 양반도 사람인지라 가끔 삽질도 하는 것이겠지요. ^^;

세상틈에 2018-08-3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저도 번역 관련서 몇 권 읽고 외국시 번역본은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ㅎ 과장 좀 보태서 완전 새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Falstaff 2018-08-31 11:03   좋아요 0 | URL
시의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교훈을 잊고 랭보를 읽은 것이 2018년에 가장 잘못한 일이었습니다. ㅠㅠ

2018-08-31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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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자 룩셈부르크. 내 또래 사람들에겐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일종의 아우라, 또는 동경어린 존경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150cm 정도 작은 체구의 절름발이 유대인.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한 군대와 사회민주당이 야합한 무리에 의하여 소총의 개머리판에 머리를 강타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머리통에 확인 사살을 받고는, 시신마저 국경의 운하에 던져져버린 비운의 혁명가.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역사학자, 문필가, 정치가였던 막스 갈로가 서기 2000년, 20세기를 마감하며 새 세기를 여는 시점에 지난 세기의 대부분을 관통했던 공산주의를 조망하면서 새삼스레 로자 룩셈부르크의 평전을 썼다.

 

 

로자 룩셈부르크

 

 1871년 3월 로자 룩셈부르크의 탄생에서 1919년 1월에 암살당하기까지 갈로는 그녀의 일생을 일곱 부분으로 잘라 전 과정을 묘사한다. 부르주아는 아니지만 폴란드 국경도시 자모시치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2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로자. 바르샤바로 이사를 하고, 골수 결핵에 걸려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하는 장애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독서와 글쓰기에 입문한다. 독서와 사색과 글쓰기. 거기다가 유난히 총명한 두뇌. 로자가 속한 유대인 가정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교육열이라고 한다. 그래 부모는 로자를 스위스 취리히 대학으로 유학을 보내고, 로자는 그곳에서 사회주의에 눈을 뜨며, 공부도 열심히 해 얼마 되지 않아 법학박사 학위를 딴다. 이어 첫 남자이자 평생의 혁명 동지가 될 레오 요기헤스의 인도로 사회주의 운동에 전념하면서 경제학 박사 학위마저 받아낸다.

 

 

레오 요기헤스


 이어 스물일곱 살 때 구스타프 레뷔크라는 남자와 혼인을 해 독일인이 되는데, 레뷔크하고 혼인신고를 마친 다음 시청현관 앞에서 곧바로 헤어지고 5년이 흘러 다시 이혼을 할 때까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다. 독일인이 되기 위한 위장결혼이었던 것. 그러나 지금도 구글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검색하면 남편으로 이이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 쓰인 서류가 그렇게 무서운 법이다.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해 기관지를 통해 수정주의자이자 사민당의 거물 이론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을 통박하면서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룩셈부르크. 이후 이이는 특별한 통찰력과 강력한 단어를 동원한 글쓰기로 독일 혁명의 기틀을 잡고 행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거침없이 혁명을 주장하는 글쓰기와 천부적인 웅변 능력으로 국제 인터내셔널에서도 스타덤에 오른 이이는 레닌, 스탈린과도 안면을 트며 (스탈린을 별개로 하고) 레닌과 기묘한 동지의식을 쌓기도 한다. 룩셈부르크와 레닌은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개진, 동의, 협력하는 한편 자주 서로를 공박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레닌이 혁명에 성공하자 당시 독일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룩셈부르크는 감옥 안에서 한정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정보만 가지고도 소비에트에서 향후 벌어질 독재와 집단숙청, 공포정치 등을 예견하며, 비록 다시는 만날 일이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노선을 달리한다. 레닌이 권력을 위하여 모든 수단을 강구한 반면, 룩셈부르크는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독재체제 역시 보통선거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의 외형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상적 혁명관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 독자가 읽기에 룩셈부르크의 특징이자 한계가 바로 이런 낭만적 혁명가 기질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는 아는 게 짧아 그냥 ‘낭만적 혁명가 기질’이라고밖에 하지 못했지만, 막스 갈로는 이렇게 표현한다.


 “(룩셈부르크는) 정치 문제에서는 ‘현재’에 자리잡지 못하고 항상 다른 곳에, 더 멀리, 일반적인 역사적 전망 속으로 자신을 던지곤 했다. 그건 이론이나 지식 측면에서는 높이 살 만한 미덕이지만, 전술을 결정해야 할 때는, 다시 말해 손에 총을 거머쥐고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쓸모가 없다. 아니, 최악의 경우에는, 오히려 해로운 것이 된다.”  (579쪽)


 위 인용은 독일 공산당,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를 중심으로 하는 스파르타쿠스 단 입장에서 약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혁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1919년 1월 5일에 있었던 노동자, 귀향군인들로 이루어진 8만 명의 시위에서, 기어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데 실패하고 만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가 늘 그렇다. 아이디얼리스트는 보기는 좋아도 실속이 없는 거. 로자 룩셈부르크도, 카를 리프크네히트도 그들의 뇌 속에 완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이상의 틀에 사로잡혀 있었다. 손 안에 든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로자는 폭동 후의 결과, 1871년 파리 코뮌의 후속 모델로 베를린 코뮌, 즉 한시적 성공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못했고, 카를 리프크네히트는 일초가 급한 군중을 앞에 놓고 수뇌부 회의를 무한정 늘려 혁명의 동력이 될 노동자, 귀향군인들의 맥을 뺀 것과 동시에, 사회민주당과 군부세력에게 반전을 꾀할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독일 공산당과 레닌의 차이점이었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룩셈부르크가 일찍이 예견했던 것과 한 치 다름없이, 레닌에 의해 소비에트에서 벌어지고 있던 공포정치와 대량학살의 공포가 독일 혁명을 가능하지 못하게 만든 가장 큰 위협이었다. (혁명이 끝나면 너나 나나 다 죽는 거야!)
 여태까지 쓴 것이 다는 아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그러면서도 천생 여자였고,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였다. 자신의 묘비에 “츠비-츠비”란 두 음절을 새겨주길 바란 룩셈부르크. “그건 검은 박새들의 울음소리예요. 내가 그 소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면 새들은 금방 날아오곤 하지요.” (199쪽) 혁명가 말고도 우애 좋은 유대인 가정의 막내딸로, 첫 남자 레오 요기헤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파란 젊은이들과 사랑을 나누었던 자유연애가의 모습도 그리고 있다. 혁명가이기 전에 인간 로자 룩셈부르크의 모든 것을 그리려 애쓴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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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노래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6
판쥔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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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데
 時不利兮騶不逝   때가 불리하여 오추마 달리지 못 하네
 騶不逝兮可奈何   오추마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하나
 虞兮虞兮奈若何   우희여, 우희여, 그대 또한 어찌 할꼬.



 형양성에 고립된 유방을 죽이기는커녕 천하의 전략가 장량의 계교로 숙적과 천하양분의 조약을 맺은 초패왕 항우. 조약을 그대로 믿어 철군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사기가 떨어진 초나라 군대를 수십만 대군으로 포위해버린 한신. 해골을 구걸한다는(乞骸骨) 역사상 가장 기막히게 멋있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패왕 곁을 떠난 범증은 이미 이리 비참한 파국이 닥칠 줄 짐작했었겠지. 해하성에서 사랑하는 아내 우희와 마지막 잔을 나눌 때 항우는 알았다. 우희가 목을 찔러 자살을 해버릴지. 사방에서 구슬픈 초나라 노래가 퉁소소리로 들려오고, 오랜 전쟁과 포위된 전황에 사기가 무너진 초군들이 속절없이 탈영하는 걸 본 패왕은 죽기로 한신의 군대를 뚫고 오추마와 함께 오강에 도착한다. 이때 오강에 나타난 나룻배 한 척. 패왕은 “우희여, 우희여, 이를 어찌할꼬.” 노래하고, 보검을 꺼내 자신의 목을 찌른다. (패왕이 노래하는 곳은 사실 오강이 아니라 해하성이다. 그리하여 노래 제목이 해하가垓下歌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도 해하성인데 내가 그냥 이렇게 만들었다. 더 근사하잖아?)
 역사상 패왕 항우는, 천생 군인으로 스스로 총명하며, 총명한 인간들이 가끔 그렇듯, 고집불통이기도 한데다가 성격이 잔인해 남의 사정을 돌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역사는 이긴 자, 살아남은 자, 기록한 자의 것이라 실제보다 훨씬 더 패왕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그려왔을 수도 있다. 심지어 전한 시대의 역사학자 사마천조차도. 한나라의 시조가 유방이니 그의 숙적을 좋게 기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팩트’를 보더라도, 진나라 명장 장한章邯 장군 휘하 투항군사 20만 명(중국인들의 위대한 과장법!)을 생매장 했으며, 진을 멸망시킨 후 망한 나라의 황제를 살려둔 유방과 달리 마지막 황제 자영을 참형에 처했으며(유방이 이랬다며. 내 손엔 피 안 묻힌다!), 당시 중국의 막대한 재화와 인력을 쏟아 부어 지은 아방궁을 불태워버렸다. 군대의 장군으로는 그의 용맹을 당할 사람이 없어 일찍이 파부침주破釜沈舟의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독선과 너무 곧은 군인정신으로 충일한 항우는 애초부터 대륙의 통일제국을 다스릴 그릇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 책에서 항우는 자신이 군인이고, 시인이며, 사나이라고 선언한다. 즉 극작가 판쥔은 기존의 항우와는 다른 인물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진나라의 명재상 (그러나 환관 조고의 모함으로 허리가 잘려 죽는 요참형을 당한) 이사李斯의 아들 이유와 일전을 앞두고 싸우기보다는 투항할 것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는 이를 거부한 채 항우의 칼을 잡고 자신의 가슴팍울 스스로 찔러 죽는 것으로 연출했다. (24쪽에 항우가 이유에게 하는 대사에 이런 것이 있다. “나는 자네를 괄목상대해야겠네.” 조금 의아했음. ‘괄목상대’는 항우 죽은 지 500년 쯤 지나 쓰인 진수의 <삼국지>에서 오吳나라 여몽을 보고 노숙이 한 얘기 아니었나?) 당시 초나라에서 왕을 먹고 있던 인물이 패왕 항우가 아니라 회왕懷王(진 멸망 후 ‘의제’라고 호칭하는 인플레현상 벌어짐)이란 좀 어리띨띨한 작자였던 바, 진나라 도읍 함양 공격군의 상장군에 ‘송의’란 게으른 인물을 임명했는데, 이 송의가 전쟁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아 이웃한 조나라 백성들이 죽어 자빠지는 광경을 보다 못한 차장次將 항우가 상장군 송의를 단칼에 베어 죽인다. 즉, 이유는 스스로 자살을 했고, 송의를 참한 것은 조나라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한 비겁한 장수를 제거했다는 해석. 그 외 패공 유방의 생명을 노린 “홍문의 연회‘, 형양성 전투 등에서 초지일관 계속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정의로운 길만 가려는 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설명의 방식은 항우가 한 면은 검정색, 다른 면은 붉은 색 망토를 입고 출연해, 붉은 색은 살아있는 항우, 검정색은 유령 상태의 패왕으로 나와, 홍문의 연회에서 조카 항장項莊의 칼춤을 꾸짖거나, 유령이 되어 2천년이 지난 연회에서 자신이 왜 그런 태도를 취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젠 세월이 많이 흘러, 항우는 초나라 고위 군인 귀족 명가의 자손으로 명예를 존중한 엄정한 장군이었던 반면 한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 로맨티스트 적인 성향도 곁들인 좀 까다로운 인간이었고, 유방은 작은 동네 패군 출신의 농투성이였지만 하라는 농사는 짓지 않고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동서이자 충직한 부하장수였던 번쾌의 직업이 개백정이었던 건 그냥 참조만 하시라) 때를 만나.... 어느 날 재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탈영을 하고 집단을 이뤘는데, 그게 커져 나중에 황제의 위까지 오른 행운아, 풍운아쯤이란 건 다 알고 있다. 판쥔은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상장군 혹은 패왕의 자리에 오른 “인간” 항우의 면모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한 위대했던 인물의 인간적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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