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유영미 옮김 / 한길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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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예니 에르펜베크의 장편소설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읽었다. 사실 <카이로스>가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받았다고 해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일종의 에르펜베크 워밍업을 위하여 읽은 거라 해도 틀리지 않다. 오늘 <카이로스>를 마저 다 읽었는데, 두 작품의 문장은 비슷하되 어쩌면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나는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가 훨씬 마음에 든다. 작가가 <카이로스>를 통해 무엇을 말하는 지는 알 거 같은데, 4백쪽이 넘어가는 내내 나이 들고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으며 당시 동독 기준으로 돈도 잘 버는 쉰세 살 먹은 소설가 한스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영출판사에서 조판을 배우고 있는 열아홉 살 카타리나 양의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이 독자를 끔찍하게 괴롭힌다. 물론 저 뒤 에필로그에 가서 이 두 세대 간의 사랑과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껄끄럽고 화가 나는 학대 수준의 집착이 어떤 현상에 관한 은유인지 밝히고 있지만, 만일 예니 에르펜베크가 책의 제일 앞에 실린 “친애하는 한국 독자들에게”라는 제목의 서문을 충분히 기억한다면, 늙은 한스의 집착과 편집증의 정체를 책을 읽으면서 이 재수없는 은유의 정체를 내내 눈치채고 있었더라도, 그건 그거고 당장 읽기가 매우 피곤한 거는 피곤한 거다.

  책을 읽는 적지 않은 독자는 하필이면 서른네 살이나 많은 나이 든 남자와 어린/젊은 여자의 사랑이냐고 불평을 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이런 기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스로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와 카프카보다 서른여섯 살 더 많은 쉰한 살 사에키 여사와의 베드 씬을 읽을 때 기분과 같았을까? 도리스 레싱의 <그랜드마더스>, 사춘기 아들들을 서로 스와핑해서 대낮에 어린 소년과 섹스를 벌이는 두 여사님 이야기는? 같았겠지. 같았을 거라고 믿는다. 혹시 당신이 한스-카타리나 커플은 재수없고 카프카-사에키, 그리고 두 여사님 로즈, 일리안과 이이의 아드님들은 괜찮다고 생각했어도 뭐 그럴 수 있다. 당신 마음이니까. 생각하는 건 소리가 나지 않으니. 그러나 만일 나이든 남자여서, 늙은 남자라서 재수없다, 화가 난다고 말을 하거나 특히 글로 써 놓으면, 그건 성차별이고 노인 혐오이니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동안 세상의 모든 차별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주장해왔다면 조금 더.


  작중 두 주인공 커플은 1986년 7월 11일에, 비가 쏟아지는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버스에 내려 비를 긋다가 만난다. 한스는 1933년생, 쉰세 살의 소설가. 카탈리나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판을 배우고는 있지만 앞으로 할레에 가서 상업미술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기껏해야 열여섯 살 반 정도로 보이는 1967년생 열아홉 살. 한스는 카탈리나가 태어나기도 전에 첫 소설을 출간한 중견 작가이면서 방송국 고정 프리랜서로도 문화 전반에 걸친 방송을 하지만 음악학을 전공해 주로 작곡가와 연주가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다. 스스로 히틀러 시대에 걸음마를 했다고 하고 1933년생이면 전쟁 말기에는 10대 소년으로 당연히 히틀러 소년단에 입단해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했을 것이라서, 어린 시절에 뇌 속에 박힌 전체주의적, 일인독재적 가치관 역시 한스의 어느 곳에선가 한 순간, 한 대상을 향해 발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한스가 카타리나를 한 눈에 알아본다. 한스의 아내 잉그리트의 첫 연구실이 있던 대학에서 일하던 에리카 암바흐의 딸인 것이 틀림없다. 노동절 시위에서 엄마와 함께 소리를 지르던 아이. 그러나 한스는 모른 척한다. 카타리나는 헝가리 문화센터에 가는 길이다. 한스가 따라간다. 마치 자신도 그쪽으로 가는 것처럼. 문화센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 5분. 5분 차이로 문화센터는 문을 닫았다. 둘은 마주보고 웃다가 헤어진다. 각자 조금 걸어가다가 한스가 커피나 한잔할까요? 제안하고 그렇게 한다. 카타리나는 조금이라도 나이들어 보이느라 평상시하고 다르게 설탕을 넣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신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스가 세상물정을 놀라울 정도로 많이 알고, 경험도 많고, 가본 곳도 많고, 지식이 넘쳐흘러, 결국 오늘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제안도 받아들인다. 한스의 집에는 마침 잉그리트가 아들 루트비히와 함께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날이다. 한스는 자기 전공대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루빈스타인, 굴드, 하스킬이 연주하는 쇼팽과 바흐와 슈베르트, 그리고 모차르트를 들려준다. 다시 집에서 나와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드디어 밤이 깊어, 둘은 당연한 듯이 다시 한스의 집으로 되돌아와, 6백개가 넘는 모차르트의 작품 가운데 하필이면 진혼미사곡 K.626을 올려놓아 드디어 Kyrie Eleison,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입당송이 흘러나오면서 카타리나는 두 손으로 이미 중년이 넘은 쉰세 살 한스의 얼굴을 잡고 키스한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그러다 Kyrie Eleison의 합창이 하늘로 치솟는 순간에 맞추어 카타리나의 이가 한스의 살에 박힌다.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음악 가운데, 6백개가 넘는 모차르트 가운데 라단조 진혼미사가 흐르는 동안 이 커플의 첫 섹스도 흘러간다. 독자는 이때 알아차린다. 이 커플의 사랑은 결국 해피엔드로 마감하지 못할 것임을.

  프롤로그에서도 그랬다. 누군가 ‘그녀’ 앞에 앉아 묻는다.

  내 장례식에 올 거야? 침묵. 내 장례식에 올 거야? 다시 묻고, 내 장례식에 올 거야? 세 번 묻는다. 넉달 뒤 그가 죽었다. ‘그녀’는 피츠버그의 호텔에서 새벽 다섯 시, 그가 묻힐 베를린 시간으로 열 시에 인터넷에서 음악을 골라 듣는다. 모차르트 라단조 협주곡 2악장.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 쇼팽 마주르카 내림가장조. 애초 이 커플, 특히 카타리나에게 고전 음악은 죽음 또는 그와 유사한 형태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국영출판사에서 조판 배우기를 그만 둔 카타리나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의 극장에 무대미술 인턴으로 들어간다. 독일에 프랑크푸르트가 두 군데 있다. 차범근이 축구선수로 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헤센 주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이다. 카타리나가 인턴 생활을 한 곳은 폴란드와 국경을 맞댄 브란덴부르크 주에 속한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카타리나는 젊고 어여쁜 아가씨가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동베를린으로 와 한스와 데이트를 즐긴 다음에 다시 또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오데르로 간다. 이렇게 꼬박 일 년.

  사랑도 권력이 문제다. 카타리나의 넘치는 사랑을 한스가 너무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것. 사랑하는 것에도 경중이 있다면 더 많이, 더 진지하게, 더 철저하게 사랑하는 편이 상대방에 종속된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카타리나의 사랑이 더 깊고 진지하고 처절한 것을 믿는 한스는 이제 카타리나를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한다. 물론 한스도 아무 탈 없이 혼외 연애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내 잉그리트가 이를 알고 집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해체하는 건 절대 바라지 않는다. 이 작품이 이젠 유령의 모습을 한 채 독일 땅을 배회하는 히틀러 또는 전체주의의 영향 또는 피 내림의 은유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다만 사랑 한 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한스는 천하의 잡놈이라 해도 조금의 변명을 구할 수 없다. 결정적 기점은 1년 동안 혼자 지내면서 오직 한스 한 명을 위한 사랑에 자신을 다 던져야 하는 카타리나에게 당연하게 한 젊은 남자가 접근을 하고, 잦은 시도 끝에 결국 한 번 밤을 지새웠으며, 이것을 카타리나가 한스에게 말로 알려주는 대신 끄적거린 낙서를 우연히 읽는 바람에 한스가 알게 된 일이다.

  독자는 안타까워 미친다. 어찌 보면 당찬 아가씨 카타리나가 싹 안면 거두고 한스한테 똑 부러지게 이별을 고하면 그것으로 끝장이 나거나, 아니면 한스가 팍 무릎 꿇고 한 번만 봐달라고 오히려 거꾸로 애원할 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나도 연애경험이 많지 않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씬이지만 이런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 그리고 작품 목적상 그렇게 끌고 가야 마땅하기도 하다. 카타리나의 사랑은 한 어린 아가씨의 순진한 사랑 하나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유겐트를 경험한 세대가 사회의 주도권을 쥔 시대 아래에서 성장한 그룹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스의 카타리나에 대한 가스라이팅, 역자 유영미는 ‘학대’라고 표현하기까지 한 것처럼, 그 말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 장면이 심하고 심했다. 꼭 이렇게, 그리고 길게 써야 했을까? 안 읽어본 분은 모르겠지만, 한스가 자신이 쓴 문자를 남기는 것이 싫어서 카타리나가 해야 하지만 결코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변명을 듣기 위한 질문을 카세트 테이프에 앞, 뒤 30분씩 한 시간 녹음을 해 전해주고, 카타리나의 육필도 읽기 싫어 그것을 타자로 친 문서로 받겠다는……. 말을 말자. 자꾸 생각난다.

  왜 영국의 유통업체였던 부커 리미티드가 이 작품에 부커-인터내셔널 상을 주었는 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읽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출판사와 역자에게 미안하다. 나는 이 책을 다른 독자한테 추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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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3-21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뤼도빅 에스캉드, 《밤의 몽상가들》
화요일. 오에 겐자부로,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
목요일. 하산 알리 톱타시, <그림자 없는 사람들>
금요일. 이혁진, <누운 배>

건수하 2025-03-21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두 문단 읽고 자세한 내용은 제가 곧 이 책을 읽어야 해서 (책모임 책이라서) 건너뛰었습니다.
은유라고는 해도 53살과 19살의 사랑에 심란하고, 추천 안하신다고 하니 책에 대한 기대가 줄어드네요.

전 <모든 저녁이 저물 때>만 읽었는데, 그건 괜찮았는데 말입니다...

Falstaff 2025-03-21 16:05   좋아요 0 | URL
이 작품도 후졌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데요, 다만 읽기가 불편해서 그게 문제지요.

잠자냥 2025-03-21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리고 그 어린 애가 늙은이한테 빠지는 설정이 너무 처음부터 몰입이 안 되더라고요..... -_-

Falstaff 2025-03-21 16:10   좋아요 1 | URL
어린 애와 늙은이 연애는... 아니지, 소설 속에 많은 연애의 설정이 좀 황당하지 않아요? 전 어떻게 해서 그 시절에 데스데모나가 오셀로한테 넘어갔는지 아직도 잘 납득이 가지 않거든요. ㅎㅎ
 
태양제도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0
다와다 요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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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ruko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출판사 은행나무의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가 다와다의 삼부작을 모두 출간한 것이 의외다. 다와다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올라서 만약 정말로 노벨상을 받게 되면 졸지에 대박을 칠 것 같아서? 설마. 하긴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니 모를 일이다.

  독자는 이 <태양제도>를 읽기 전에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별에 어른거리는>을 먼저 읽어두는 것이 좋다. 좋아도 훨씬 좋다. 아니면 이들이 왜 Hiruko와 Susanoo의 모국으로 떠나는 여정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Hiruko와 Susanoo는 일본 창세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다. 신화 속 히루코는 蛭子, 거머리다. 일본 열도를 만든 여신 이자나미가 남신이자 오라비이기도 한 이자나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동침하자고 꼬여 낳은 딸. 이 때문에 1번 신의 노여움을 타 허약하고 살이 거머리처럼 흐물흐물한 육체를 지녀 부모가 갈대로 만든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떠내려 보낸다. 모세 같지? 이게 중요한 포인트. 작중 Hiruko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북유럽에 와 공부를 하는 동안 모국, 누가 봐도 일본이 틀림없는 나라는 쿠릴열도에서 이탈해 바다 속으로 사라졌거나 태평양 중심 쪽으로 확 이동해 버렸거나, 재수 없이 한 방에 일본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바다로 흘러온 거대한 쓰레기 섬에 새롭게 정착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원래대로 있는데 Hiruko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모국에서 멀리 떠났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Hiruko의 신세를 다와다 요코는 신화 속에 버려진 거머리 여신 히루코와 병치하고 있다.


​  Hiruko는 언어를 공부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하기 힘들어 자기 스스로 ‘판스카’라고 하는 언어를 만들어 쓰고 있는데, 이 판스카를 쓰면 스칸디나비아 사람들과 상당한 수준의 대화가 통한다고 주장한다. 뭐 전생에 여신이었으니까. 이 판스카어 때문에 덴마크의 젊은 언어학자 크누트와 친해지고 드디어 3부에서는 같은 침대에 오른다. 기대하지 마시라, 하나도 안 야하다. Hiruko가 유럽에서 모어를 쓰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는다. 프랑스 아를에서 스시 요리점을 동업했다는 나이 든 남자. 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이 독일에 유학하고 있으며 지금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이 진행중인 인도인 아카슈. 여행중에 만난 그린란드 출신 에스키모(이누이트족이라는 말보다 에스키모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나누크는 독일에 공부하러 왔다가 나이 많은 여자 노라와 맺어졌지만 이제 정이 떨어진 상태. 이들과 함께 Susanoo를 찾아가는 것이 1부. 실어증에 걸린 Susanoo의 치료를 위하여 덴마크 병원까지 각자 알아서 출발해 도착하고, 병원에서 엉뚱하게 나누크의 성격만 개조하고는 Hiruko와 Susanoo의 모국으로 다 함께 떠나기로 하는 것이 2부이다.

  내 경우엔 1부 <지구에 아로새겨진>까지 읽고 말았으면 더 좋았겠다. 하여간 Hiruko와 Susanoo의 모국을 향해 떠나기로 결정한 이들은 2부 마지막에 배를 타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대신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도 경유하는 항로를 타기로 한다. 좀 미친 거 같지? 3부에 나온다. 왜 이런 미친 결정을 했는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중동의 이슬람 국가와 해적으로 유명한 수단, 소말리아를 스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 언제 어디서 폭격을 맞거나 납치를 당할 지 누가 아느냐는 것. 그렇다고 희망봉으로 둘러가도 서부 아프리카를 둘러싼 지역에서 해적들의 습격이 없는 게 아니라 이 역시 안심할 수 없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할까? 거기에 대해서 3부는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배를 타고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하여 타게 된 네덜란드 국적선 ‘발트의 빛’ 호는 선명船名처럼 코펜하겐을 떠나 독일의 뤼겐 섬, 폴란드의 슈체친과 그단스크,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우리가 쾨니히스베르크라고 알고 있는 옛 프러시아 영토), 라트비아의 리가,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러시아 본토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핀란드의 헬싱키로 향한다. 도대체 발트해에서 어떻게 해로로 일본에 가겠다는 거야?


​  작품 자체가 신화 속 등장인물이 되살아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히루코는 Hiruko로 변했지만 여전히 몸이 흐물흐물해져 갈대로 만든 배에 태워 멀리 흘려보낸, 쉽게 말해 버려진 딸이어서 Hiruko의 유럽 유학은 배우기 위하여 다른 나라에 머무는 유留가 아니라 버릴 목적으로 흘린 유流학이었던 셈이다. 언어를 공부하는 Hiruko가 애타게 찾은 Susanoo는 신화 속에서 히루코의 동생 스사노오이며, 무시무시한 완력과 잔인한 성격을 지닌 신으로 피륙 짜는 여인을 위협하다가 와중에 베틀의 뾰족한 곳으로 여인의 음부를 찔러 죽게 했다. 이 소설을 이성에 입각해 읽으면 Susanoo는 못해도 90살은 되어야 하지만 시간도, 환경도, 태양제도라고 일컫는 섬나라도 전부 비정상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편이 좋다. 작품의 전제 역시, 세상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씩, 하나씩 전부 이상 작동을 하는 바람에 세슘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이 몽땅 바다에 스며들어 먹을 수 있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으며,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온난화가 극에 달해 육지 면적도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다. 등장인물 나누크의 고향 그린란드 역시 빙하가 거의 몽땅 녹아버려 주민들은 사냥 대신 농사를 짓는 상태인데, 그건 1부에서만 그런 모양이라서 발트해 주변의 항구도시인 뤼겐 섬, 슈체친과 그단스크, 칼리닌그라드, 리가, 탈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도 손상없이 원형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고, 생선요리도 다양하게 잘들 먹는다. 뭐 그렇다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태양제도로 가려고 발트해 연락선을 탄 거야?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갔다가 거기서 다와다 요코가 20대 초반 대학 다닐 때 타본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배로 갈아타야 하건만, Hiruko와 Susanoo는 국적이 없으니 당연히 여권이 없고, 여권이 없으니 비자도 없고, 비자가 없으면 러시아 영토를 한 발자국도 밟을 수 없다. 얘네들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흥분하지 말라. 신화 속 갓난 아기 히루코는 갈대로 만든 배에 태워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멀고 먼 곳으로 버려졌다. 근데 Hiruko가 무사히 모국으로 돌아가면 거머리 아기 히루코 마음이 좋지는 않겠지? 히루코가 어디로 가든지 자기 발을 딛고 선 곳이 자기 집이었을 터. Hiruko도 러시아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가 집이라고 선언한다. 그걸로 끝이다.

  <지구에 아로새겨진> 한 편만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책 속에는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작가의 언어를 향한 그리움에 관한 시도로 읽는다면 꽤 근사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독일에서 무수한 폐차가 나오는데 그걸 아프리카에 수출한단다. 아프리카로 가면 폐차의 부품을 떼어내 잘 굴러가는 승용차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얼핏 생각하면 좋은 일 아니냐고 하지만 이렇게 만든 차는 시동만 걸어도 불완전 연소한 매연이 엄청나게 뿜어져 나와 지구 온난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문제는 화석연료. 방사능 오염의 위험이 있는 원자력도 더 이상 가동하면 안 됨. 그러면 남은 것은 청정에너지. 당연히 문제가 있다. 비싸다. 하긴 아무리 비싸봐라, 한남동, 청담동, 성북동, 평창동 사람들은 여전히 빵빵하게 에어컨 돌리면서 산다. 죽어나는 건 그저 없는 사람들뿐. 나라 단위로 봐도 마찬가지. 이미 산업화가 막바지에 접어든 유럽, 아메리카, 동아시아 같은 곳에서는 비싸도 화석연료를 감축할 수 있겠지. 그러나 아직 기아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 개발 도상에 있는 나라는 그럴 여력이 없는데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라고? 자기들은 첨단으로 발전하는 동안 실컷, 몇 백년 동안 질리도록 석유와 석탄을 태운 건 지나간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돈 없고 힘없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는 인류가 망할 때까지 이렇게 살라고? 

  이건 해결할 수 있다. 소위 선진국이 후진국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정도로 대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 그런데 여기에 더도 아니고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선진국이 미쳤냐, 그걸 공짜로 해주게. 그럴 일 없다. 그러면서 없는 사람, 없는 나라가 부르주아, 있는 나라가 수백 년 간 했던 것처럼 싼 연료를 사용해서 발전 좀 해보려는데 왜 하라, 마라를 이야기하느냐 말이지. 다와다 요코의 Hiruko 3부작에 나오는 것처럼 바다에 거대한 쓰레기 섬이 생기고 바다 생물은 이곳에서 유출된 미세 플라스틱으로 멸종을 하거나, 차례차례 폭발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물질이 스며들어 멸종을 하거나, 부지런히 배출한 화석연료 가스로 인해 평균온도가 한 10도 올라 남북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지구가 아니라 해구가 되어 인류마저 멸종을 하는 단계까지 가야 비로소, 억지로, 그나마 각성을 할 거 같다. 말발타살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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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역超譯?

  헉! 세상에 超譯이라니, 어떻게 번역을 했기에 번역 이후의 문장이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은 초역超譯의 단계로, 진흙탕의 번뇌 가득한 속세에서 올림포스까지 기어 올라갔을까?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을 낸 출판사는 틀림없이 超譯이란 이러저러한 것을 의미한다고, 그것도 모르냐고 할 것이지만, 超譯은 국어 사전에, 일본어 사전에, 중국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즉 출판사 혹은 역자가 만든 단어일 터인데, 그게 아니라면 혹시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초역初譯을 잘못 쓰신 거 아닌가 싶다.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번역한" 발췌 번역, 抄譯은 아닐 거 아녀?

 잘못 쓸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책의 표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간판, 문패라서.

 잘못 쓴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로 표지에 超譯이라 했는 지, 사실은 궁금하지도 않다.

 걍 우리 말로 써도 충분할 텐데 뭐하러 굳이 한자어로.... 씁쓸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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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5-03-20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췌번역 초월번역 의미로 쓴거 같아요. 철학자들 저서를 편집 (짜집기)한 원서 표지가 그래요.

Falstaff 2025-03-20 08:12   좋아요 0 | URL
핫, 그렇다면 발췌번역 抄譯이라고 쓰기 쪽팔려서 사전에도 없는 초월 번역이라고 하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은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나요.
 



  19세기 프랑스 소설의 결정체 가운데 하나인 루공-마카르 총서를 여는 첫번째 작품.

  나는 루공-마카르 총서 가운데 열두 편을 읽고, 1번을 열세 번째로 읽었다. 그러니 이제 일곱 편만 읽으면 마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번역을 다 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거 참. 벌써 눈이 침침하다. 책을 읽을 수 있을 때까지는 일곱 편의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정도의 작품인데 왜 이제야 번역본이 처음 나오게 되었을까? 유신시대나 5공화국 시대엔 저밀도이기는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사상을 반대하지 않는 작품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으나 5공화국 무너진 것이 언제적 이야기냐고. 그러나 지난 일은 뒤돌아보지 말자.


  미리 열두 편을 읽고 1번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등장인물을 이미 어디선가 한 번은 주워들었거나, 기억에 남아 있어서 그들이 이후에 어떤 일을 할 지 알고 있는 상태로 루공-마카르 총서의 첫 발을 떼는 1번을 읽으면 즉각적으로 등장인물을 이해하게 되니까 1번 작품을 원래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반면에 만일 총서를 순서대로 읽으면 20편의 주인공들을 생산하는 첫번째 여성 아델라이드 푸크와 푸크의 아들 피에르 루공, 아들 앙투안 마카르, 딸 위르실 마카르와 숱한 손자, 손녀들, 과 증손, 고손 관계의 기억은 아마도 이미 휘발된 상태일 것이다. 그래도 총서를 순서대로 읽는 건 큰 매력이 되겠지. 다만 우리 경우엔 특히 앞 번호에서 빠진,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은 작품이 많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OECD 국가 가운데 전편 번역이 나오지 않은 나라도 별로 없을 걸? 우리는 이렇게 드문 나라에 살고 있다. 어때? 프라이드 팍팍 생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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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3-18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공 마카르 총서 20편 중 한국에 번역된 13편을 다 읽은 독자, 폴스타프!
음, 대단하군
근데 조금 무서워 지는군
사람이 아닌 책 먹는 괴물인가 싶어지네˝
👍👍🤑🤑🤩🤩

루공가의 행운은 1권이라는 것과 아델라이드의 성격을 알 수 있어 좋았는데 재미가 없어서 아직 완독 못하고 있어요^^

Falstaff 2025-03-18 16:17   좋아요 1 | URL
에구, 답글이 늦었습니다. 낮술이 과했습니다.
아휴, 저 괴물 아닙니다. 걍 취미가 잘난 척하는 것인 703호 아저씨. ㅎㅎㅎㅎ
후속 작품을 읽어서 그런지 저 같은 경우는 아델라이드 아줌마 후손들이 어디서 다시 나오는 지 그것 만 가지고도 재미있었습니다. 드릴 말씀은 무지 많은데 에쿠, 이쯤에서...
 
포화 - 1916년 공쿠르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5
앙리 바르뷔스 지음, 김웅권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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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바르뷔스의 책이 번역해 나왔다고? 6년 전 이이의 <지옥>을 흥미롭게 읽었으나 <지옥> 말고 다른 작품이 아직 소개되지 않아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는 위스망스도, 폰 카이절링도, 스트린베리도 읽기 전이라 기묘하게 세기말적이고 유미주의적이기도 한 바르뷔스의 작품이 깊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휴대폰에 <포화> 발간 알림을 보았을 때는 <포화>가 <지옥>과는 아주 상반된 성향의 작품이란 것을 몰랐다. 전혀 몰랐다. 새롭게 <지옥> 독후감을 읽어보니 역자 오현우가 “바르뷔스는 에밀 졸라를 계승한 극명한 사실주의풍의 작품 세계로 프랑스 문학사에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라고 쓴 것은 인용했었다. 당시에 <지옥>은 에밀 졸라 류의 사실주의/자연주의와 완전히 다른 지점에 있는데 왜 난데없이 졸라를 가져와 비교를 했을까, 궁금했나 보다. 그런데 <포화>를 읽어보니 가히 졸라와 비교한 것이 이유가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대표적 졸라 시리즈인 루공-마카르 총서의 첫번째 작품 <루공가의 행운>이어서 두말할 것 없이 비교할 수 있는 바, 앙리 바르뷔스가 <포화>의 20장에서 묘사한 1차 세계대전의 돌격 장면은, 말 그대로 무조건 적인, 인간이 아니라 짐승 수준이라서 졸라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인간짐승’의 단계로 내려선 미친 인간 군상이 눈이 뒤집혀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생생한 장면을 그렸다. 이 정도면 졸라를 계승했다고 해도 언짢지 않을 수준이라 인정할 수밖에. 졸라도 작품당 최소 한 장면은 인간에 의한 무지막지한 질주의 장면을 묘사한 것과 같이.


  신학 학위를 가진 개신교도이자 저널리스트, 연극 컬럼니스트 프랑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파리 인근 아니에르-쉬르-센에서 태어난 앙리 바르뷔스는, 어릴 때부터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극도의 진보, 극좌 편향을 지닌 시인, 소설가로 활동했다. 서른다섯 살 때인 1908년에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옆방에 들어온 하녀, 레즈비언 커플, 사촌 커플, 성인 남녀 커플의 관계를 훔쳐보는 세기말적이고 유미적인 <지옥>을 읽어보면, 이이가 1918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흥분한 유럽의 좌 성향 인텔리겐치아들이 대거 소비에트로 몰려갈 때 이들과 함께 모스크바로 가서 소련 여성과 결혼하고 볼셰비키에 입당한 것이 언뜻 이해가지 않을 수 있다. 유미주의야말로 볼셰비키라면 당장 두드러기를 유발시킨 알레르기 인자가 아닌가 말이지. 그러나 하여간 그랬다. 그 당시 소련으로 간 유럽 청년들의 상당수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한 반면 바르뷔스는 이후 소련과 프랑스를 왔다갔다 하며 지낸 것으로 보이는데(책의 연표에도, 위키피디아 영어판, 프랑스어판에도 나오지 않는다. 프랑스어 판은 구글 번역한 우리글로 읽었다.), 1923년에는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한 최초의 문학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공산주의, 공산주의면 무조건 몽땅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탈을 쓴 (볼셰비키를 비롯한 권력 독점) 독재형 빨갱이 치하에서 문학 등 예술에 복무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 가당치 않은 일이라 교조적인 뻔한 글(<러시아>, <스탈린 전기> 등)을 생산하다가 1935년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7차 인터내셔널, 이때는 코민테른이라 불렸겠지만, 하여간 이때 폐렴에 걸려 숟가락 놨으니 향년 61세.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8월에 시작해서 1918년 빼빼로데이 11월 11일에 끝난다. 앙리 바르뷔스는 아빠한테 진보 좌파적 교육을 골수로 받아, 당시 사회주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바르뷔스 역시 전쟁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그룹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놀랍게도 정말로 전쟁이 벌어지자 무려 마흔한 살의 나이로 자원 입대, 그것도 사병으로 입대해 2년 동안 최전방을 누빈 역전의 노병이었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기념비적인 대하소설 <티보가의 사람들>을 보면 진보 청년들의 1차대전 개전 직전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는데 주인공 자크 티보처럼 적극적 반전 입장에 있던 사회주의적 청년 말고 파리에 몰려 있던 나이롱 사회주의자들은 바르뷔스처럼 진짜 전쟁이 터지니까 제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가 서둘러 자원 입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티보가의 사람들>, 이거 명작이다. 꼴랑 1부 “회색 노트”만 줄창 읽지 말고 전권을 통독하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하여간 최전선에 투입된 바르뷔스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자주 부상과 후송을 반복했던 모양이다. 책에서도 나오는 조치 가운데 하나로 나이 들어 무릎 쑤시는 꼰대 병사들한테 조금 수월한 임무를 주게 하는 조치가 떨어져 1916년까지 일선에서 대치하다가 1917년 6월에 제대했다. 그런데 이 작품 <포화>를 발표한 것이 1916년. 아직 제대하기 전의 일이다. 독자는 이제부터 독자의 권리로 추리를 시작한다. 아직 제대를 하지 않고 일선 부대 소속이면서 본문만 48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쓸 수 있으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다른 곳을 모르겠고 눈과 손목과 손가락은 부상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야전병원의 침상 위에 있을 것. 바르뷔스는 전쟁 중에도 수첩과 연필을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전투 장면을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걸 적절하게 짜깁기해 소설형식으로 1916년에 신문에 발표하고, 발표가 끝난 후에 한 권의 단행본으로 찍었는데 그게 1916년 공쿠르 상을 받았다.


  그래서 <포화>는 마치 르포르타주와 소설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실제 전쟁은 우리의 <고지전>이나 헐리우드 판 <1917>처럼 늘 전투가 벌어지는 건 아니고, 오랜 대기와 고생스러운 행군, 그리고 며칠 동안, 길어봤자 1박2일이나 2박3일동안, 물론 잠은 한숨도 안 자거나 못 자면서, 진짜로 생과 사를 가르고, 당장 총알이 내 심장을 꿰뚫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세로로 두 쪽이 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처음엔 밀려서 뛰어나가다가 나중에 눈이 휙 돌아가는 바람에 거의 반쯤 미친 상태로 발악하는 심정이 아니면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악을 쓰며 뛰다가, 반 이상은 다행스럽게도 순식간에 죽어버리거나 신체의 상당한 부분이 절단당했음에도 아직 죽으려면 두어 시간은 남은 상태가 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저 달려가는 행위를 일컫는다. 살아남는 것은 용감해서도 아니고, 비겁해서도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아 포탄의 파편이나 기관총, 소총이 자기 몸을 관통하지 않고 그냥 비껴 지나간 덕택일 뿐이다. 병사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비단 같은 사람일 뿐으로, 내가 전장에 나온 이유와 정확하게 같은 이유로 우연히 저편에서 나를 표적으로 하고 있는 적군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현상도 적이 될 수 있으니, 이 자연이라는 적은, 나와 적군 모두에게 공통된 적이며, 정말로 피할 수도 없고, 그나마 조금의 인정도 없는 신적인 적이라서 가공할 폭력을 동반하여 이 모든 쇠조각의 폭포와 자연의 폭력을 다만 운이 좋아 명을 보전한 대가로 며칠 간의 휴가가 주어기도 하건만, 그 휴가라는 것이, 전쟁과 전투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후방에 계신 신사 숙녀들이 낭만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처럼 허망함이라니. 심지어 어렵게 휴가 받아 찾아 가 고향집 창문을 통해 바라본 조금 여위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의 옆 자리에 앉은 내가 아닌 병사, 나 말고 다른 수컷을 훔쳐보는 심정. 다 그런 거지. 다 그런 거야. 그런 걸 직접 목격하지 못하는 행운을 기대할 수밖에.

  한 노병은 수색 임무 중에 머지않은 곳에서 포탄이 터져 당분간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고, 두 귀 다 거의 절단된 상태에서, 완전히 잘라지지 않아 너덜너덜하게 간신히 매달려 있다. 이게 웬 장땡이야! 이제 자기는 틀림없이 후송될 것이고, 야전병원을 거쳐 후방으로 보내져 수술을 받은 다음에, 조금 나이가 들긴 했겠지만 아직 어여쁜 티가 가시지 않은 간호사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적어도 석 달 동안 입원을 해야 할 것이고, 퇴원을 해도 위로 휴가가 적어도 세 주일 또는 한 달 이상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노병한테는 전쟁이 끝난 거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번 전투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죽는 건 더더욱 아니며,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할지니, 하느님이 보우하사 제발 경미한 장애만 가질 정도의 부상만 입게 해주소서. 저도 병사로 낯짝이 있지, 아주 경미해서 얼핏 보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경미한 장애는 기대도 하지 않겠으니 그저 의병제대와 아주 적은 금액의 상이연금을 받게만 해준다면 메피스토펠레와의 계약서에 피를 묻혀 서명이라도 하겠나이다.

  전쟁 장면을 나열해서 썼지만 <포화>는 기본적으로 반전 소설이다. 앞부분은 늘 읽었던 그저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이 르포 형식으로 나열되는 느낌이어서 지루했다가,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다가 하는, 하여간 그런 상태였는데, 중간 부분부터 진짜 전투 예비단계로 접어들면서 관심이 집중되며, 앞에서 이야기한 20장 “포화” 작품 가운데 가장 긴 분량의 챕터의 자연주의적 세밀화가 등장할 때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전쟁소설보다 리얼한, 심지어 졸라의 <패주>나 적을 만나 사격을 하는 도중에도 바지에 똥만 싸 갈기는 노먼 메일러의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보다 훨씬 리얼한 전쟁의 비참함을 그대로 노출시킨 장면은, 혀 끝까지 포르노라고 하고 싶었다가 꿀꺽 다시 삼켰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건 작가가 직접 전쟁, 전투를 경험하고 본 것과 일부 들은 것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추악하지 않은 전쟁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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